소설리스트

5장. 괴의 천세광 (105/119)

5장. 괴의 천세광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떤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진위혁이 나섰다.

최근 마교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무림맹 장로들 간의 은밀한 권력 다툼들이 감지되었다.

처음에는 그만둘 거라 생각하고 내버려 두었으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심화되는 것을 느낀 그는 결국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 기회에 그들의 기세를 잡기 위해 내버려 두다가, 정말 위기가 닥치자 나선 것이었다.

“허억!!”

“후아아!”

그가 탁자를 치며 김강현이 뿌리는 기세의 흐름을 끊어버리자 무림맹 장로들은 작게 쉬고 있던 호흡을 크게 뱉으며 노곤한 표정을 지었다. 서 있던 자들은 간신히 의자에 앉으며 안도했다.

‘우리가 상대할 자가 아니었어.’

‘고작 기세 따위에 질 줄이야!’

모든 이들이 김강현의 무위를 절실히 경험했다.

내공을 끌어 올려 대항하지도 못한 것에서 힘의 격차를 느꼈기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진위혁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흐음. 먼저 시작한 건 저들입니다만?”

“알고 있네. 하나 내 얼굴을 봐서 넘어가 줄 수 있겠나? 부탁하지.”

김강현이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진위혁에게 말하자 그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무림맹 장로들이 속으로 매우 놀랐다.

[군사, 설마 천룡대주가 맹주와 동등한 실력을 가졌는가?]

[믿기 어렵지만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중 제갈명과 친분이 있는 무림맹 장로들은 전음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가 잘못 건드렸구나.’

또래 후기지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비슷한 나이인 데다가 외국인인지라 쉽게 천룡대주직을 받은 거라고 생각한 것이 커다란 착각이었다.

그들은 사색이 된 채 진위혁과 김강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당장에라도 싸울 기세로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한 기세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빚을 지신 겁니다.]

“알겠네.”

김강현이 갑자기 기세를 거두고 진위혁의 제안을 수락하며 메시지 마법으로 속뜻을 전했다.

당연히 진위혁은 이를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속으로는 김강현이 그들에게 더 망신을 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김강현을 내버려 두고 싶었으나, 무림맹 장로들 중에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도 있어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무림맹이라는 조직을 이끄는 게 쉽지 않았고 생각보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어? 이대로 끝난다고?’

‘체면을 살려주는 건가?’

무림맹 장로들은 이렇게 말로 끝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겐 내가 따끔하게 이야기하도록 하지.”

하지만 뒤이은 진위혁의 말에 무림맹 장로들은 소름이 끼쳤다. 자신에 의해 목숨을 구했으니 그 대가를 치르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은 당분간 몸을 숙인 채 주변 눈치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궁금한 것이 없으시면 이 회의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각 문파와 세가로 돌아가셔서 준비에 힘써주십시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납니다.”

제갈명이 말을 꺼내자 무림맹 장로들은 또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하여 일사불란하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후우,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아니라 천룡대주가 많이 고생했지.”

“후우, 역시 길드는 크게 만들지 않는 게 답입니다.”

세 사람은 긴 한숨을 토해냈다. 특히 김강현은 다시 한번 테라 길드를 크게 키우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많을수록 조직을 이끌기 어렵고 그 안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길드장이 고생하겠지만 어쩌겠어. 그게 팔자인 것을.’

김강현은 테라 길드의 전반적인 운영을 기동진이 맡아주고 있어 다행임을 깨달았다.

“에취! 누가 내 욕을 하나? 귀가 진짜 간지럽네.”

그 시각 기동진은 재채기를 하며 손가락으로 귀를 팠다.

길드장인 김강현이 중국으로 떠난 후 길드의 최종 결정은 모두 그가 처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길드장 대행으로, 테라 길드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다른 길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나 워낙 전폭적인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사업적으로 길드를 키울 차례인가?”

기동진이 여러 장의 서류들을 책상에 펼쳐놓았다. 거기에는 테라 길드와 협약을 맺고 싶다는 길드들의 리스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금 테라 길드는 길드원들의 숫자만 적을 뿐, 한국에 끼치는 영향력은 매우 컸다. 특히 김강현이 테라 길드장과 US그룹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US그룹의 지원을 받기 위해 테라 길드에게 손을 내밀었고, 기동진은 그러한 자들은 모조리 거절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길드엔 돈이 넘쳐흘렀다. 스펠 바이러스 사건으로 인해 지금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오고 있으며, US그룹과 협력하고 있어 매달 거액의 돈이 입금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돈들을 불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계속해서 쌓여 운용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자, 반대로 쓰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길드를 더 키웠다간 내가 죽어! 차라리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

테라 길드를 키울 수 없다면, 자신들에게 협조할 세력을 키우기로 결정했다.

김강현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재앙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럼 같은 편을 한 명이라도 늘리는 것이 좋다는 판단하에 테라 길드를 따르는 조직을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검천호와도 상의했는데 그는 좋은 생각이라며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목표는 김강현이 귀국하기 전까지 테라 길드의 영향력을 전국에 퍼트리는 것.

이를 위해 기동진은 이를 악물고 자세히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 * *

‘왜 소름이 끼치는 걸까?’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모르는 김강현은 이상하게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조용히 테라 길드를 운영하고 있어야 할 기동진이 이렇게 대형 사고를 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지만 말이다.

“그보다 부탁한 건 어떻게 되었나?”

“다행히 혈고에 중독된 사람은 없더군요.”

김강현은 무림맹 장로들에게 기세를 쏘아 보내며 그들의 몸을 살폈다.

바로 진위혁처럼 혈고에 당한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혈고에 당했다면 나중에 마교와의 전쟁을 치를 때 아군이 적으로 변해 사기에 치명적일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이번 회의에 참석해야 했었다.

“하지만 골든 크라운, 금천신단을 복용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참 큰일이군. 하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지 않나?”

“하루라도 빨리 마기를 없애야 하건만. 난해합니다.”

금천신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두 사람의 안색이 어두웠다.

처음 김강현에게서 금천신단의 부작용에 대해 들었을 때는 쉽게 믿지 못했지만, 전쟁을 앞둔 지금은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한다는 생각에 금천신단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하고 실험했다.

그 결과 금천신단이 마기였다는 것을 알고 큰일이라는 생각에 은밀히 치료제를 개발 중이었다.

물론, 당에 협조를 얻어 공식적으로 금천신단의 유통을 막았으나 암시장을 통해 은밀히 거래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내가 골든 크라운의 마력을 없앨 수 있다는 걸 밝힐 필요가 없지.’

무림맹이 이 정보를 접했는지는 모르지만 김강현은 최대한 감추기로 결정했다.

한두 명이라면 상관없었지만, 지금 무림맹은 수천 명의 사람이 금천신단을 복용한 상태였다.

만약 한 명을 치료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소문이 나서 다른 사람들도 치료하게 될 것이었다.

당연히 진위혁과 제갈명이 무분별하게 치료하는 것을 막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테니 아예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서 자네가 한 사람과 만나주면 좋겠네.”

“그게 누굽니까?”

“괴의. 장담하건대 천하제일의원이지!”

“그리고 금천신단의 마기를 없앨 수 가능성을 가진 유일한 사람입니다.”

일전에 진위혁의 혈고 치료를 위해 초빙하려던 자로, 지금은 금천신단의 마기를 없애기 위해 협력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혈고 치료를 해내고, 자신도 알지 못했던 금천신단의 비밀을 알아내자 진위혁에게 김강현을 보고 싶다고 간절히 요청한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어쩌면 할아버지 치료의 단초를 얻을지도!’

김강현은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기뻐하며 수락했다. 괴의를 통한다면 김고엽의 치료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위혁과 제갈명은 김강현이 흔쾌히 수락하자 안도하며 기뻐했다. 앞서 무림맹 장로들과 트러블이 있어 이를 핑계로 거절할까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은 함께 회의실을 나와 괴의가 있는 연구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무림맹 감옥의 지하로 가는 것이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 괴의가 있습니까?”

“괴의는 사람들을 싫어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곳에 마련했다네. 그나마 자네를 보길 원했던 건 그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아예 보기를 원치 않았을 걸세.”

“저와 맹주님은 젊은 시절의 그와 친분이 있었기에 그가 만나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괴의를 보고 놀라지 마십시오.”

가는 동안 두 사람은 괴의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사람을 싫어하면서 어떻게 치료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만나보면 알 수 있다는 말에 김강현은 궁금증을 참고 감옥의 마지막 층인 지하 5층에 도달했다.

무림맹의 감옥은 공안의 허락을 받아 무인들의 법을 어긴 자들만 수감하고 있었는데, 지하 5층은 사형을 앞둔 자들만 가두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명의 사형수도 없어 이곳에 괴의의 거처를 마련한 것이었다.

진위혁은 지하 5층의 문 앞에 도착하자 노크하며 말했다.

“괴의. 날세.”

“진 맹주인가?”

“그렇다네. 제갈 군사와 함께 자네가 말했던 사람을 데리고 왔네.”

“클클클! 열려 있으니 들어오게.”

그 말에 진위혁이 문을 열었는데 순간 악취가 코끝을 스쳤다.

그것은 썩은 시체 냄새만큼 독했는데, 갖가지 약병 안에 든 약체에서 나는 냄새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게 실험실이야? 오히려 묘지나 다름없는 것 같은데?’

바닥에는 수백 권의 책이 어지럽게 놓여 있어 멀쩡한 바닥을 찾기가 어려웠다. 책상 위에서는 다양한 약재들이 달여지고 있었고, 곳곳에 동물 실험의 흔적들이 보였다.

책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곧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서 오게. 이쪽이 김강현이라고?”

“반갑습니다. 괴의님.”

괴의가 인사하며 가까이 다가오자, 놀란 김강현의 눈이 크게 뜨였다.

* * *

‘어떻게 사람이 이런 모습을 할 수가!’

괴의는 차마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일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을 만큼 길었는데 그 사이에 화상을 입은 얼굴이 보였다.

게다가 찢어진 옷 사이로도 화상의 흔적이 보였는데 간신히 두 손만 멀쩡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지 오른 다리에는 걸음을 걷기 위한 보조 기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그런 언질을 준 것이구나.’

괴의가 왜 사람들을 피하는지, 왜 이런 곳에 거처를 마련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클클. 재미있는 놈이구나.”

김강현이 괴의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자, 괴의는 웃음과 함께 인사를 받았다.

‘맹주와 군사가 데려올 만한 녀석이야.’

괴의는 김강현을 보자마자 그의 행동을 자세히 살폈다.

자신을 보고 놀라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실험으로 인해 악취가 상당할 텐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이런 모습이 된 후 그는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동을 할 때도 낮이 아닌 밤에 이동하는 편이었고, 극소수의 사람들과만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종종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괴물을 보듯 그를 바라보았고, 그것은 괴의에게 고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지.”

그 말에 함께 괴의가 먼저 몸을 돌려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진위혁과 제갈명은 안도했다.

괴의는 타인의 시선에 굉장히 신경 쓰는 만큼 사람을 가려서 만났다. 그나마 자신들은 그를 안 지 오래되어 이제 적응했지만, 김강현의 반응이 어떨지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잘 넘어갔지만, 만약 괴의를 본 김강현이 크게 당황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면 바로 쫓겨났을 것이었다.

‘굉장한데? 이런 시설로 여기까지 알아냈다고?’

김강현은 안쪽으로 들어가며 괴의가 연구한 자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은 테라 길드와 비교하면 굉장히 낙후되어 있었다.

하지만 괴의는 직접 만든 약과 침을 이용하여 혈고와 금천신단에 대한 조사를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만 두리번대고 여기들 앉게나.”

안쪽 테이블에는 손님 접대를 위한 다과를 준비되어 있었다.

김강현과 일행이 자리에 앉자마자 괴의가 바로 말했다.

“빙빙 돌리지 않고 말하마. 금천신단의 마기는 어떻게 알아낸 것이냐? 그리고 어떻게 혈고를 없앴지?”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바짝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금천신단을 알게 되자마자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저 내공이 풍부한 영약이라고 생각했을 뿐 마기가 들어 있음을 알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마교에서 제작된 혈고는 특수한 약물을 통해 제거하지 않으면 혈고의 알이 남아 또 다른 혈고가 부화하게 된다.

괴의는 무림맹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진위혁의 몸을 살폈는데 혈고는 완벽하게 제거되어 있었고 알의 흔적도 없었다.

그랬기에 김강현이 어떤 방법으로 혈고를 제거했는지 더욱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금천신단의 마기는 제가 알아낸 게 아니라 헬릭스라는 소환수가 알아낸 겁니다. 본래 마력을 다루는 종족으로 금천신단을 복용한 자들에게서 마기를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 그 녀석은 어디?”

“지금 바쁜 일이 있어 오지 못했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김강현도 헬릭스를 보지 못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원래 2, 3일에 한 번씩 보기로 약속했으나 마교에 대해 깊이 파악해 보겠다며 잠시 연락도 끊기로 했다. 대신 위험한 상황이나 알아낸 정보가 있으면 바로 연락을 취할 것을 약속했다.

영혼의 계약을 통해 헬릭스의 상태를 느낌으로는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계속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어 근처에 마인들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자네 마나를 직접 확인하게 해줄 수 있나?”

이 자리에 헬릭스를 데려올 수 없으니 괴의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김강현의 마나를 파악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는지 책상 위에 있는 유리구슬을 집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일종의 봉인구로 여기에 내공 혹은 독을 담아 연구에 쓰려고 하네.”

“알겠습니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 김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구슬에 마나를 불어넣는데, 붉은 연기가 반짝이며 구슬 안을 채웠다.

“오, 재밌는 내공이로군.”

“그게 무슨 말인가?”

김강현의 마나가 유리구슬의 절반 정도 채워졌다. 구슬을 이리저리 흔들자 그 안에 있는 마나가 덩어리째로 구슬을 부수려는 듯 사방으로 솟구쳤다.

괴의는 이 현상을 흥미롭게 보았고, 다른 사람들은 궁금한 듯 이를 바라보았다..

“정종의 내공은 무거운 물처럼 고요하게 흐르고, 마종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산개하는 것이 특징이지. 한데 이건 두 성향을 같이 가지고 있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활용 용도가 굉장히 클 걸세. 덕분에 혈고를 어떻게 없앴는지 이해가 되는군.”

김강현의 마나를 유심히 보던 괴의는 감탄을 터트렸다.

“금천신단의 기를 없앨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겠어.”

“네?”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순수한 마기가 아니라 흑마법과 저주와 결합하여 굉장히 복합적이야. 그런 만큼 특수한 조건이 성립해야 금천신단의 마기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부터 금천신단의 마기를 감지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만, 이것은 내공으로 위장하고 있어 많은 무인들이 알아챌 수 없었다. 이를 가지고 마교가 무슨 수작을 부리면 꼼짝없이 당하게 될 터였다.

“이것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네요.”

“이게 뭔가?”

“본래 금천신단의 마기를 없애려고 만들었지만 효력이 부족하여 억제제로 쓰고 있습니다.”

“주변에 뛰어난 약제사가 있나 보군.”

“이를 개선해서 금천신단의 마기를 없애는 약을 만들 수 있다면 활용해 주십시오.”

중국에 온 뒤로도 김강현은 김고엽을 치료하기 위해 이유하와 연락하며 약의 개량에 힘썼지만,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괴의가 금천신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손을 내밀어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괴의는 예상치 못한 성과를 얻게 되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게 있다면 좀 더 수월할 테지. 고맙네. 이걸로 천세후에게 한 방 먹일 수 있겠어.”

“네?”

“바, 방금 뭐라고?!”

진위혁과 제갈명의 얼굴이 굳어지며 놀란 기색이 역력하자, 괴의는 당황했다.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겁니까?”

“천세후는 이번에 등극한 마교 교주의 이름일세. 그동안 가명으로 활동한 탓에 아무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지.”

그들의 말에 괴의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면 모를까, 진위혁과 제갈명이 천세후라는 이름을 입수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았고, 무림맹 장로들에게 알린 지는 1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 말인 즉, 괴의는 오래전부터 오래전부터 마교의 관계자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후우, 어쩔 수 없이 내 내력을 밝혀야겠군. 지금부터 하는 말은 비밀로 해주길 바라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잠깐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천세광. 현 마교 교주의 이복형이네.”

“그럼 마인?”

“처음부터 저희에게 접근한 것입니까?”

“흐음, 그건 내 과거를 듣고 말해도 늦지 않아.”

괴의는 약 40여 년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천세광은 소교주 후계자로 뽑혀 다른 형제들과 경쟁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능력이 뛰어나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고, 소교주 1순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천세후는 꼽추에다가 무공에 대한 자질이 없어 다른 이들에게 무시받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교에 커다란 화재가 일어났다.

천세광은 당연히 불을 끄고 도망치기 위해 내공을 운용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모든 내공이 소실된 상태였다.

이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날 저녁에 열렸던 연회 음식에 내공을 소실시키는 산공독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현장에서 잡히는 것을 막기 위해 독이 퍼지는 시기까지 조절해서 말이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내공도 없이 도망치기란 불가능했다. 더욱이 천세광의 숙소는 건물 안쪽에 위치해 있어 밖으로 나가려면 10분 이상을 뛰어야 했다. 게다가 자신의 건물 뒤에는 절벽이 있었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지. 어느 쪽으로 가나 죽음이 있었으니까.”

천세광은 고민 끝에 절벽에 몸을 날렸다.

다행히 절벽 밑에는 강줄기가 흐르고 있어 운이 좋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결국 그는 기적적으로 외부의 강줄기를 따라 외부로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오랜 시간 정신을 잃었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회복 시간이 무려 3년이나 걸렸다.

“돌아가 보니 마교는 정말 많은 것이 변해 있더군.”

그 화재로 인해 마교의 소교주였떤 후계자들이 모두 죽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는 천세후뿐이었다. 게다가 그동안은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각기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은밀히 마교 내부를 돌며 정보를 수집하자 지난날의 화재는 후계자들을 죽이기 위해 천세후가 일으켰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말할 용기가 없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천세후에게 찍혀 바로 죽임을 당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천세후의 권력은 마교 내에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더 이상 내 자리가 없는 마교에 남을 이유가 없었기에 바로 세상으로 나왔지.”

처음에는 화상을 입은 모습으로 살기가 무서워 다시 죽을 결심을 하기도 했다.

하나 우연치 않게 한 사람을 만났고, 그의 수발을 들며 세상을 떠돌았다.

“그가 바로 신의군요.”

“그래. 내 사부님이자 은인이시지.”

신의는 세상을 떠돌며 배고픈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던 이였다.

천세광은 그를 보며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고, 그의 전진을 이어 의원으로 살아왔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만약 내 출신을 이유로 마인이라고 한다면 부정하지는 않겠다.”

“자네도 참 힘든 삶을 살았군.”

진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괴의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군사, 진위 여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출신은 과거일 뿐, 현재가 중요하지 않은가?”

“맞습니다. 고작 출신으로 평가해 버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 말에 김강현도 공감했다.

괴의는 그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크흠, 믿어줘서 고맙군. 아무튼 앞으로 금천신단에 대한 연구는 내게 맡기게. 그리고 절대 천세후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명심해라.”

마교와의 전쟁을 앞둔 지금, 천세후는 무림맹의 가장 큰 적이었다.

하지만 진위혁을 비롯한 일행은 그들이 승리할 것이라 믿으며, 괴의와 함께 앞으로의 일정과 연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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