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하오문
“이게 무슨 일이야?”
“그게 진짜 헬릭스였어?”
“지금까진 정말 우리들 수준에 맞춰 살살 했었구나.”
고작 30초일 뿐인데 모두가 마라톤을 전력 질주한 선수처럼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호흡은 굉장히 거칠었다.
“거의 1분에 한 번씩 죽은 것 같네요.”
“그 정도면 나보다 낫군. 난 50초였다.”
방금 일어난 일들을 회상한 렌과 김건이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3분 동안 그들은 각자 헬릭스와 싸웠는데, 쏟아지는 마법들이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설사 마법을 피한다 하더라도 헬릭스의 근접 공격이 뒤이어 날아왔다.
당했으니 처음 약속했던 대로 중국에 갈 수 없게 됐지만, 오기가 생긴 그들은 남은 시간 동안 본때를 보여주기로 마음먹고 싸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헬릭스의 몸을 건드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런데 왜 마나 역류가 일어났을까요?”
“잘못했다간 역류가 아니라 폭주가 일어났을 거다. 어떻게 보면 정신세계였기에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던 거고.”
두 사람은 싸우다가 느낀 이상한 점을 말했다.
“마나 흐름이 이상해서 마음과 다르게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 않았느냐?”
“맞아요. 검 어르신!”
검천호가 말을 거들자 길드원들은 맞장구치며 공감했다.
“분명 5의 힘으로 스킬을 시전하는데 내 마음과 달리 3이나 8의 힘으로 펼쳐지죠.”
연세연이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많은 헌터들이 생각을 말에 실어 의지로서 스킬을 구현하는 것과 달리, 그들은 김강현과 검천호의 영향으로 스킬을 스스로 마나 컨트롤하여 미세한 강약 조절을 하고 있었다.
아예 바닥부터 마나 컨트롤을 다시 익힌 것.
한데, 오늘 헬릭스와 싸움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부정당했다.
“너희들한테 말하지는 않았지만, 테티아를 만난 이후 일부러 힘의 제약을 걸어두었다.”
“그 영향으로 저희들이 약해진 것인가요?”
“아니다. 오히려 너희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니라.”
헬릭스는 그들에게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테티아에 의해 힘을 각성한 그들은 강해졌는데, 몸에 아직 신성력이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각성의 힘으로 수련해서 완전히 녹아들게 하지 않는 이상, 신성력이 그들의 마나와 충돌하여 마나 역류 혹은 폭주를 일으킬 터.
그래서 수련 효과에 따라 천천히 힘의 리밋을 조금씩 풀며 적응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야 이해되는구나. 내 기준에선 한계까지 힘을 소모했는데, 힘이 남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이상했거든.”
검천호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현상에 대해서 재빨리 파악했다.
“역시 다른 인간들과 다르구나. 눈치채지 못하게 현혹 마법까지 시전했거늘.”
검천호는 늘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수련을 한 사람이었다.
그 덕에 다른 이들은 1분 내에 죽임을 당했지만 검천호는 2분 30초 동안 버텼고.
길드원들은 왜 김강현이 자신들을 중국으로 가는 명단에서 제외했는지 이제야 알아차렸다.
‘이대론 같이 가봤자 짐이 돼버려!’
비슷한 실력의 상대와 싸우게 되면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는데, 힘을 컨트롤할 수 없다면 김강현의 발목을 붙잡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그들이 해야 하는 건 한시라도 이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뿐이었다.
“좋은 표정들을 하고 있구나. 수련 강도를 좀 더 올려도 되겠어.”
헬릭스는 길드원들의 기세를 보니 계획이 성공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실은 김강현으로부터 중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자, 한국에 남을 길드원들이 게을러지지 않을까 생각하여 일부러 소문을 흘렸다.
당연히 그들은 헬릭스의 말을 듣고 발끈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가슴 깊이 깨달으며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했다.
헬릭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했다.
‘이 자식이 나를 이용해?’
물론 영혼의 계약으로 헬릭스의 생각을 읽은 김강현은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도 골려줄까 잠시 고민하던 김강현은 결국 어찌 되었든 길드원들을 위해 그런 것이니 넘어가기로 했다.
“일주일 후, 떠나는 건 저와 헬릭스뿐입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힘을 되찾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중국에 올 수 있게 조치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강현은 길드원을 달래며 그들이 힘낼 수 있는 말을 남겼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각오를 다졌다.
김강현은 자신이 없는 동안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 * *
“그동안 서울이라는 도시가 제일 복잡한 줄 알았는데 여기도 만만치 않구나.”
“중국에서도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도시인 만큼 세계의 모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니까.”
“하여튼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단 말이지?”
“그래. 들를 곳도 있으니까 천천히 움직여 보자고. 그 전에 점심부터 먹도록 하지!”
“그렇지 않아도 이 몸이 미리 찾아놓은 장소가 있느니라.”
김강현과 헬릭스가 도착한 곳은 홍콩이었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중국에 특별행정구로서 반환된 곳.
이곳은 본토와 다르게 독립적으로 운영되어 중국과 분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중국과 왕래하기 위해 비자와 비슷한 통행증이 필요했다.
DON그룹의 초대한 날짜까지는 3일의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만날 수는 없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홍콩을 방문한 것.
‘암상회주가 아니라면 큰일 날 뻔했지.’
김강현은 2일 전의 일을 떠올렸다.
암상회주는 김강현이 중국에 간다는 말에 개인적인 만남을 요청했다.
“DON그룹을 방문하기 전, 홍콩에 들렀다 가시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홍콩에 뭐가 있나요?”
“세상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법이지요. 지금은 목적이 맞아 무림맹과 손을 잡더라도 나중에도 그럴 수 있을까요?”
암상회주는 DON그룹의 회장이 무림맹주라는 사실을 알고 말을 이었다.
“중국에도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는 암상회가 있습니다. 제가 소개해 드릴 테니 가보시겠습니까?”
상인들은 그 누구보다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암상회는 이름은 달라도 각 나라마다 존재했고,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다.
암상회주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암상회와 만날 수 있는 소개장을 작성하고 접선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곳에서 대규모 거래가 열린단 말이지.’
중국의 암상회는 홍콩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대규모 경매와 함께 암시장을 열었다.
홍콩은 외국과의 교류도 원활하여 외국인들이 쉽게 입국할 수 있고, 그들의 물건이 들어오기 좋은 환경이었다.
게다가 아시아 쪽의 물품들이 모두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큰 거래와 경매가 이루어지는 만큼, 이곳에 상당한 고위층의 사람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모습을 바꾸는 건 어때?”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홍콩의 유명한 딤섬 집에서 식사를 하던 김강현이 헬릭스에게 말했다.
“날개 달린 강아지는 눈에 띌 수밖에 없지 않나? 게다가 신기하게 말도 해. 분명 정체가 금방 드러날 거다.”
“그도 그렇겠구나.”
그 증거로 식당 안의 사람들이 그들을 신기해하며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지금 헬릭스는 부유 마법을 이용하여 마치 사람처럼 숟가락, 젓가락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김강현도 신기할 지경.
헬릭스도 상황을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라. 이미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했다.”
자신감이 충만한 헬릭스를 김강현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 *
“와아. 헬릭스 맞냐?”
“뭘 그렇게 쳐다보는 것이냐? 이러다가 이 몸이 닳겠구나.”
5시간 후, 김강현은 경매장에 갈 준비를 마친 헬릭스를 보며 감탄했다.
폴리모프를 사용해 인간 형태로 바꾼 다음 정장을 입고 깔끔하게 머리를 정돈한 모습.
헬릭스는 거의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미남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더 피곤해지는 거 아냐?’
그 예감은 적중했다.
밖으로 나오자 강아지의 형태를 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김강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암상회주가 알려준 접선 장소로 헬릭스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윽. 정말 여기가 맞느냐?”
“약도대로 가는 거니 맞겠지.”
그들이 향하는 곳은 홍콩의 밀집 주택 단지로 길거리가 청소되지 않아 악취가 가득했고, 가로등도 없어 어둡기 짝이 없었다.
암상회주가 알려준 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암상회의 표식이 그려진 집의 문을 노크하자,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밤의 길을 따라 낮은 곳을 가기 위해 왔습니다.”
“준비물은?”
“소홍주 한 병과 말린 육포 네 장이죠.”
그와 대화하며 김강현이 암호를 말하자, 문이 열리며 젊은 남성이 안내역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첫 번째 대답은 하오문을 찾아왔다는 말이며, 두 번째 대답은 경매가 열리는 날짜와 시간을 뜻했다.
두 번째 대답은 경매 장소와 날짜, 시간에 따라 대답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하오문에서 고객에게 전달한 비밀 암호문을 알지 못하면 절대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곳은 루트가 험해 이전에도 고객분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잘 오셨네요.”
“네?”
“말 그대로입니다. 여기가 개발 낙후 지역으로 선정된 이후 불편해지는 바람에 이제는 이 길로 손님들이 오시지 않거든요.”
김강현과 헬릭스는 그 말에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이럴 거라고 암상회주도 생각지 못했다.
그도 이 루트를 통해 홍콩 경매장을 참석한 것이 15년 전이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곳으로 온 사람에게 드리는 특혜가 하나 있죠.”
안내자는 말과 함께 벽장의 문을 열었다.
밑이 보이지 않는 직각 형태의 구멍이 보였고, 기계 소리가 들렸다.
“보안을 위해 다른 입구에서는 카트를 타고 비밀리에 이동해야 하지만, 여긴 엘리베이터로 직행이 가능합니다.”
띵동!
그 말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하오문의 홍콩 경매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 *
‘썩 기분이 좋지 않은데?’
김강현은 20평 정도의 대기실의 소파에 앉아 있으며, 곳곳에 숨어 있는 어쌔신들의 기척을 감지했다.
그렇지만 표정으로 이를 드러내지 않고 한가로이 다과를 즐기는 척 연기했다.
홍콩 경매장에 들어서 지하 야시장을 발견한 헬릭스는 개인적 시간을 보내겠다며 갔고, 김강현은 이곳의 직원을 통해 관리자에게 초대장을 전달했다.
그러자 얼마 있지 않아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반갑습니다. 하오문 홍콩 지부장 신소라고 합니다. 한국의 암상회주님의 소개장을 들고 오셨다고요?”
뒤이어 치파오 스타일의 옷을 입은 여성 2명이 들어왔는데, 둘 다 몸매가 도드라져 시선을 어디다가 둬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김강현은 속으로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을 꺼낸 신소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테라 길드의 김강현입니다.”
“네. 원하시는 정보가 있으시다고요?”
“현재 중국 헌터들의 세력도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 * *
”정확한 기준이 어느 정도입니까?”
“각 세력의 무력과 인원, 그리고 A급 이상 헌터들이 있다면 그 인원도 정확하게 알고 싶군요. 잘 알려지지 않거나 신비한 세력도 포함해 주세요.”
그 말에 신소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김강현이 원하는 기준은 높아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고객님께서 원하는 정보는 트리플 S급으로 많은 비용이 청구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더불어 외부에 유출할 수 없는 민감한 정보들이 많아 이곳에서 확인하시고 나가야 한다는 점 동의하십니까?”
“네.”
“가격은 미국 돈으로 100만 달러입니다.”
‘한국 돈으로 11억 정도 되네.’
홍콩 달러가 있지만, 이곳은 외국인들도 많이 이용하는지라 미국 달러가 대중화되어 있었다.
본래 정보 가격을 8억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예상보다 높아 다른 곳을 갈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암상회주가 소개해 준 곳이니 믿기로 했다.
하오문은 중국 최대의 암흑가 정보 조직으로, 다양한 정보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보안에 있어서도 철저했다.
과거에는 거지로 이루어진 개방이라는 정보 조직 겸 무력단체가 있었지만, 요즘 시대에 거지의 인구수가 줄어들어 정보의 질이 낮다고 알려져 있었다.
김강현이 신소의 말에 동의하자 같이 들어왔던 여성이 결제기를 건넸다.
“지금 결제 부탁드립니다.”
결제하지 않으면 정보는 없다는 듯 단호했다.
김강현이 헌터폰을 이용해 일시불로 결제하자 바로 뒤의 여성이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신소에게 건네주었다.
“여기 요청하신 정보입니다.”
그녀는 태블릿에서 요청한 정보를 따로 분류하여 내밀었고, 김강현은 태블릿의 내용을 외우기 시작했다.
“확인하시는 데 시간이 걸릴 테니 잠깐 자리를 비켜 드리겠습니다.”
“네. 20분이면 충분할 것 같네요.”
‘그 정도밖에 안 걸린다고? 설마 몰래 마법을?’
신소는 방을 나가며 의아함이 들었다.
마법과 아티팩트로 정보를 빼돌릴 수 있는 만큼, 이곳은 그것들을 사용하면 경고음이 울리게 방을 세팅했다.
김강현이 설사 마법과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가 보는 정보의 양은 광대하여 머리에 저장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모두 기억해야 하는 것이니 똑바로 봐라.]
[걱정 마라.]
그리고 김강현은 헬릭스와 함께 편법을 이용하고 있었다.
둘은 영혼의 계약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데, 헬릭스가 김강현의 시야를 통해 내용을 확인하면 마법으로 저장하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헬릭스가 김강현에게 마법으로 전달해 주면 될 일이었다.
‘이건 많이 도움되겠어.’
헬릭스에게 맡기면서도, 김강현 또한 최대한 내용을 살피며 중요한 부분들은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특히 DON그룹의 파티에 같이 초대되는 사람들의 리스트와 관련된 부분은 놓치지 않았다.
“다 끝나셨습니까?”
“네. 물 한 잔 주시겠어요?”
“물론이지요.”
그의 말에 신소의 뒤편에 서 있던 여성이 밖에 나가서 금방 물을 가져왔고, 김강현은 갈증이 났던 터라 단숨에 비워냈다.
“생각보다 양이 방대했지만 지역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 보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다행이군요.”
“한데 누락되어 있는 세력이 있더군요. 그래서 정보 진위에 의심이 갑니다.”
“뭐라고요?”
김강현의 말에, 신소의 표정은 온화했지만 발끈했는지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정보 싸움은 찰나의 시간이 승패를 가리는 만큼 치열하게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 시간에도 하오문에 속한 길드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이것이 부정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김강현은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힌트를 흘렸다.
“천금신단과 흑무를 모릅니까?”
“네?”
“분명 잘 알려지지 않거나 신비한 단체도 포함해 줄 것을 요청했고, 가격에 포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흑무를 알고 있는 거지?’
신소의 등줄기에서 소름과 함께 식은땀이 흘렀다.
천금신단은 최근 암흑가에서 도는 영약으로, 복용하면 내공을 증진시키고 오감이 예민해져 많은 헌터들이 구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최근 이 약이닌 대량으로 풀리자 어떤 세력이 배후에 있음을 짐작하고 은밀히 조사하고 있었는데, 흑무라는 사람이 연관되어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습득한 정보의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판단, 고객님께 판매하기 어려워 제외했습니다.”
“하오문이 중국 제일의 정보 조직이라 해서 왔는데 실망이군요.”
“죄송해요. 이 부분은 금액에 포함된 것이니 빠른 시간 안에 전달드리겠습니다.”
시치미를 뗄 수 있으나 신소는 진실에다가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무사히 상황을 모면했다.
김강현은 처음 하오문의 대응이 아쉬웠으나, 추후 정보 제공에 대한 약속을 해주니 더 책망할 수 없었다.
“한 번 더 하오문을 믿어보도록 하죠. 전달은 알아서 잘 해주실 거라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때는 뒤쪽의 여성분과 대화하면 좋겠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김강현은 한마디 말을 남기며 방을 나갔다.
“푸하하하하!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네. 신소가 말 한마디가 하지 못하고 당하다니 말이야.”
“저, 그게!”
갑자기 신소의 뒤편에 있던 여성이 큰 웃음과 함께 나타났다.
신소는 쩔쩔대며 당황하자 여자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천금신단과 흑무에 관한 건 내부에서 유출을 막았던 만큼 신소의 잘못은 없어. 흑무에 대해선 추가 조사 인원을 투입시킨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실수이기도 하고, 고객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했으니까.”
“감사합니다. 난화 님!”
“암상회주의 소개로 왔다지? 재미있는 사람이니 확실히 조사해 봐.”
“네, 알겠습니다.”
난화는 본토의 하오문 지부들을 돌아보다 홍콩에서 대규모 경매와 업무 일정이 잡히자 홍콩 지부를 방문했다.
그러다 한국의 암상회주의 소개장을 가지고 온 사람이 있다고 하여 재밌겠다는 생각에, 지부장 신소의 수행 역할로 현장에 직접 참여한 것이었다.
‘내가 명령하는 걸 알아차렸어.’
아까 신소가 김강현의 말에 당황할 때, 코치해 주기 위해 전음을 날렸었다.
‘오랜만에 호기심을 끌지만, 위험한 느낌이 들어.’
* * *
“아마 그 사람이 지부장보다 높은 직책의 사람이겠지?”
난화의 짐작대로 김강현은 그녀가 전음을 보낼 때 미세한 마나의 흐름을 감지했다.
분위기상 명령을 내린 것으로 짐작했고.
잠시 하오문을 엎어버릴까 했지만, 암상회주의 소개로 방문한 데다 자신의 정체도 곧 알아차릴 것이니만큼 그들의 태도에 따라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근데 여기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놈들은 얼마나 깊숙이 숨어 있는 거냐?”
그래도 중국에 놈들의 본진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정보가 있을 거라 판단했는데, 오히려 여기선 더 감춘 모양이었다.
하지만 하오문이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조금의 흔적은 발견할 수 있을 터.
“다 끝났느냐? 얻은 건 있었고?”
“아, 덕분에. 그쪽은 어땠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해외에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여기선 더 숨는 모양이다.”
“이제 믿을 건 무림맹밖에 없나?”
헬릭스 또한 그냥 지하 야시장과 경매장을 둘러보러 간 것이 아니라, 암시나 마법이 걸린 사람을 찾기 위해서 간 것이었다.
일전에 한국에선 그들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제삼자에게 정신적인 조치를 취해 거래를 했기에, 이곳에서도 그렇게 활동할 것이라 생각하고 나섰지만 그들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경매장에서 괜찮은 물건들을 구입했으니 나쁘지 않은 쇼핑이었느니라.”
“그럼 숙소로 가서 보지.”
[더 이상 따라오면 목숨은 보장하지 않으니 잘 생각하도록.]
김강현은 헬릭스와 함께 걸어가며 자신을 뒤쫓아 오는 사람에게 메시지 마법을 시전했다.
‘분명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을 텐데!’
하오문의 A급 정보 수집원인 그는 나무 위에 숨어 있다 깜짝 놀라 김강현을 바라봤다.
정확히 마주치는 시선.
난화의 명령으로 김강현을 조사하기 위해 투입되자마자 바로 들통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건 내 능력 밖이야.’
놀라움을 추스린 후 다시 김강현을 보았지만, 이미 사라진 뒤.
하오문의 정보원은 이를 난화에게 보고하기 위해 움직였다.
* * *
“초대장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아! US그룹의 부회장님이시군요. 혹시 같이 오신 분은 일행이십니까?”
“네. 제 가드입니다.”
“DON그룹의 파티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김강현은 헬릭스와 함께 DON그룹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했다.
이번 파티는 DON그룹의 125주년 창립 기념 파티로, 중국의 사업가들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그런 만큼 보안을 위해 DON그룹에서는 미리 보낸 초대장을 통해 신원을 확인했고, 동행자는 3명 이내로 한정시켜 놓았다.
파티장의 입구에서 김강현과 헬릭스의 신분이 확인되자 그들은 무사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파티라는 건 여전히 화려하구나.”
“거대 기업인 만큼 남들의 시선이 있으니까.”
DON그룹은 이번 파티를 위해 회장의 저택 하나를 준비했고, 불편함이 없도록 완벽하게 준비했다.
김강현과 헬릭스는 이 수준에 맞추기 위해 미리 US 그룹의 중국 지부에서 마련해 준 자동차를 타고 왔다.
“다들 인사하느라 바쁜 것 같구나. 이 몸은 이런 번거로운 건 질색이라 시간을 때우다 오마.”
“그래.”
‘이런 자리에선 이놈이랑 같이 안 다니는 게 좋지.’
지금까지 본 헬릭스의 패턴을 보면 분명 먹을 것을 찾아갈 것이었다.
호화로운 파티인 만큼 음식도 잘해놓았을 것이고, 이 기회를 놓칠 헬릭스가 아니었다.
실제로 테라의 파티에 참석하면 그는 늘 음식 앞에 서 있었다.
“어? 오랜만입니다. 부회장님.”
“회장님께서도 여기 참석하셨습니까?”
“네. 저희가 DON그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이런 자리는 빠질 수가 없군요.”
“그렇군요. 제가 중국 출장은 처음이라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회장님께서 다른 분들을 소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때, 한국에서 안면을 익힌 사람을 만난 김강현은 그와 함께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부회장 자리에 오른 후 김강현은 하루에 두 번씩 외부 인사들과 미팅을 가졌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약간의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중국에서 유명하다는 사람들을 만나 안면을 익힐 수 있었다.
“이게 누구십니까?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진 회장님. 여전히 건강하시군요.”
“마땅한 후계자가 없으니 저라도 건강해야죠.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굽니까? 제가 알기로는 수행원들만 데리고 혼자 오셨다고 들었는데.”
“이쪽은 US그룹의 김강현 부회장님입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지요. 여긴 DON그룹의 진위혁 회장님입니다.”
“반갑습니다. 김강현입니다.”
이 파티 주최자인 진위혁.
김강현은 먼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 * *
“반갑습니다. 진위혁입니다. 그런데 김 부회장은 한국 사람일 텐데 중국어가 능숙하군요.”
“조금 공부를 했습니다. 통역사가 24시간 제 곁에 붙어 있기 어렵고, 그 나라의 문화를 알려면 언어를 먼저 배워야 하는 게 우선이니까요.”
“마음에 드는 생각입니다.”
진위혁은 김강현과 악수하며 기세를 쏘아 보냈다.
‘마스터 소드를 이길 정도라면 얼마나 강할까?’
그는 무림맹주이면서 S급 무인인 인물이었다.
나이가 있지만 완숙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 1, 2년 내로 SS급 무인으로 승급할 것이라고 중국에서 유명했다.
이미 10년 전에 검천호와 만나 싸운 적이 있었고, 지금 검천호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강해졌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반응이 없어? 아니, 주변 분위기를 장악했구나.’
기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니 김강현은 작은 구체로 기세를 압축시켜 반격을 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덧붙여 주변에 자신의 기세를 흘려 진위혁의 기세로 주변 사람들이 피해 보지 않게 배려하고 있었다.
“하하하,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제 장난이 지나쳤습니다.”
“네? 그게 무슨?”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김 부회장에게 장난을 좀 쳤습니다.”
김강현과 함께 있던 동행인은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기에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김강현과 진위혁 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
말과 함께 진위혁이 기세를 풀자, 김강현도 힘을 뺐다.
“개인적으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군요.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빠른 시간 안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진위혁은 김강현에게 자신의 개인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건넸다.
이를 본 동행인은 깜짝 놀랐다.
진위혁이 유명 인사인 만큼 공개 석상에서 개인 연락처를 건네는 일이 드물었다.
그 증거로 주변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이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진위혁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이야기하며 자리를 떴다.
“김 부회장님! 대단합니다!! 어떻게 진 회장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겁니까?”
“네?”
“그 명함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웬만한 공인이나 사업가로서는 받기 어려운, 제대로 된 꽌시를 얻으셨습니다.”
중국은 꽌시로 시작해서 꽌시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데, 실제로 공산국가인 중국에서는 실력보다는 꽌시로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경우가 있었다.
진위혁의 이름이 중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만큼, 난해한 일이 있을 때 그의 명함을 이용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신기업의 소량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아퀄리티의 제이슨입니다.”
그 증거로 아까는 김강현을 본체만체했던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 있었다.
정확히는 진위혁과 친해지고 싶은 자들로, 그가 김강현에게 호기심을 보이자 조금의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속셈이었다.
이를 알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인 파티장에서 내색할 수 없었기에, 김강현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며 그들과 친분을 나누었다.
* * *
“후우, 죽겠다.”
거의 4시간 동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대화한 김강현은 숨을 돌리기 위해 정원으로 나왔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날씨가 쌀쌀하여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진위혁과의 만남 이후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신없이 대화를 나눴더니 머리가 아팠다.
이제 차가운 바람을 쐬니 답답했던 머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뭐 하시나요?”
그때, 얼마 있지 않아 화려한 금색 드레스에 진한 화장을 한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잠깐 쉬고 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던데 바람 쐬러 나오셨나 봐요.”
“어머, 저를 계속 지켜보고 계셨나 봐요?”
“저를 보고 있는데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지 않습니까?”
그녀는 아무런 무리에도 끼어 있지 않고 파티장의 한쪽 구석에서 술만 마시고 있던 터라 김강현도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몇몇 남성들이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 다가가 말을 걸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녀가 몇 마디 하면 사색이 되어 도망가기 일쑤였다.
“맞아요. 전 김 부회장님에게 관심이 아주 많아요.”
“개인적입니까? 아니면 하오문입니까?”
“음, 언제부터 알아차렸나요?”
“처음 봤을 때부터입니다.”
“어떻게 알아차렸어요? 그때와 달리 나름대로 잘 꾸몄다고 생각하는데.”
“나름의 방법이 있습니다.”
김무심하게 대답했음에도 난화는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보는 듯한 반짝이는 눈빛으로 김강현을 바라봤다.
‘김강현. US그룹의 부회장이자 S급 헌터. 역시 만만한 사람은 아니야.’
며칠 전, 김강현과 만난 난화는 암상회주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얻은 후 하오문의 정보망을 이용해 자세히 알아봤다.
처음에는 단순히 강한 헌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뇌사상태에 빠져 있던 것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알게 되니 대단해 보였다.
게다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유럽헌터협회에서 막고 있던 바실리스크 레이드에 대한 정보와 스펠 바이러스 해독제 제작에도 김강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자, 경영과 무력뿐 아니라 광활한 지식의 근원은 어디인지 궁금했다.
‘좀 부담스러운데?’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난화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김강현은 뒷걸음질 쳤다.
어쨌든 난화가 가진 마나의 기질을 감지한 적이 있었던 터라, 하오문에서 신소 뒤에 있던 인물이라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제가 원하는 정보를 가져왔다는 것입니까?”
“현재 하오문이 가지고 있는 내용을 정리했어요. 이 이상은 추가 수당이 있습니다.”
말과 함께 난화는 품속에서 작은 구슬을 꺼냈다.
“정보를 기록해 놓은 아티팩트예요. 여기에 마나를 흘리면 내용이 머릿속으로 스며드는데, 구슬은 바로 깨져요.”
외부에는 저장 장치를 가지고 나갈 수 없기에 하오문에서는 일회용 아티팩트를 활용해 정보를 판매했다.
의외의 정보 기기 형태에 김강현은 신기해하며 구슬에 마나를 흘렸고, 바로 정보를 입수했다.
“마교?”
“네. 헌터의 시대가 시작된 후에도 나타나지 않아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숨어 있을 줄 꿈에도 몰랐죠.”
정식 명칭은 천마신교.
힘과 무술을 연마하는 행위 자체를 숭배하며, 그들 중 가장 강한 자가 천마가 된다.
천마에 오르기 위해선 특별한 시험을 거쳐야 하기에 쉽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림맹에서 이 정보를 선점하여 봉하고 있었다니!’
난화가 크게 놀랐던 사실은 이미 무림맹에서는 흑무과 마교의 존재를 눈치채고 은밀히 조사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과거에도 무림맹과 마교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 명색이 정보 단체인 하오문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덕분에 난화는 하오문의 전력 중 30%를 마교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한데 자신의 감이 이상하게 수하들보다 김강현에게 신뢰가 쏠리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상상 그 이상이구나.’
마교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자 김강현은 수심이 깊어졌다.
흑무와 그의 추종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만큼 어느 정도의 세력이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어쩌면 대규모 전쟁을 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완전히 뒤엎어야겠네.’
원래 계획은 무림맹을 이용하여 흑무에 대해 조사한 후 조용히 그를 없앨 계획이었다.
흑무가 있기 때문에 조직이 운영되는 것이고, 골든 크라운에 의한 폭주도 거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림맹 안에 놈들의 세작이 있을 수 있고, 그렇다면 당국과의 리베이트도 있겠지.’
하나의 세력을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적대하는 세력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단순히 흑무 한 명만 없애서는 이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은 김강현은 추가로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혹시 저와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제게 관심이 많으신 것 아닙니까? 대신 원하는 정보를 마음대로 얻고 싶습니다.”
“오호.”
재미있는 제안이었다.
하오문에서는 이 사람의 행방에 따라 향후 세력 판도가 달라질 거라 예상했는데, 이렇게 말해주니 반갑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속마음을 감추며 말했다.
“좋습니다. 대신 그에 맞는 조건을 제시해 주시겠어요?”
“곧 마교가 발호하면 하오문은 하나의 노선을 강제로 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가림막이 되어드리죠.”
난세가 오면 힘이 없는 세력들은 눈치를 보며 결정을 해야 했다. 특히, 하오문은 정보력은 뛰어나지만 약한 무력이 늘 약점이었고.
‘굉장히 좋은 제안이야.’
정보를 모아보니 김강현의 말대로 마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고, 곳곳에서 수상한 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않는다면 하오문은 온전할 수 있을 거다.’
김강현의 테라 길드에 대해서도 파악했는데, 인원은 적지만 전력만큼은 세계의 어떤 길드도 따라갈 수 없었다.
하나의 길드에 S급 헌터가 세 명이나 있는 데다가, 지금도 강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제 판단으론 결정하기 어렵네요. 본 문에 연락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오문의 소문주라고 하더라도?”
“맞아요. 어? 어떻게 제 신분을……!”
“다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자 난화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혹시나 싶은 마음에 상태창을 살피자, 그녀의 이름을 비롯한 여러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난화는 말실수를 한 것이 있나 생각해 봤지만,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혹시 또 다른 정보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녀로서는 조심스러울 밖에 없었다.
자신의 정보는 극비로 처리되어 지부장 이상이 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다.
덕분에 그녀는 감찰관으로 활동하며 하오문에서 벌어지는 비리들을 처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외국인이나 다름없는 김강현이 만난 지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은 지금 자신에 대해서 알아내다니.
내부에서 정보가 흘러나간 것인지, 다른 조직을 통해 얻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서, DON그룹의 회장 진위혁에 대해서 알고 싶군요. 특히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말이죠.”
“건강이요? S급 무인인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을 리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하오문을 믿지 못할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고객님이 원하시는 정보를 반드시 전달드리죠.”
김강현은 진위혁의 만남에서 기분 나쁜 마나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전에 경험한 적이 있던 기운.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소름 끼치는 일이야.’
이번만큼은 김강현도 자신의 직감이 빗나가길 빌었다.
이틀 후, 김강현은 진위혁과 만남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