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20년이 걸린 만남
“치료 방법은 없는 거냐?”
“네. 관련 치료제를 얼마 전부터 연구 중이나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듯싶어, 연명 치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김철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김강현은 김고엽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유하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나눴다.
골든 크라운의 마력을 없앨 수 있는 마력 제거제의 완성은 언제가 될지 몰라 현재 상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아직 효력은 알 수 없으나 실험을 통해 마나 포션과, 마력 억제제, 그리고 체력을 키울 수 있는 포션을 수액 형태로 투여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이유하는 바실리스크의 부산물을 이용하여 마력 억제제를 만들고, 독자적인 연금술로 신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포션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김강현이 2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하여 골든 크라운의 마력을 억제시키기로 했다.
‘상급의 마나 포션이 대량으로 필요할 거야.’
이건 일시적인 치료였고,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아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다.
더욱이 끊임없이 마나와 마력이 충돌할 거고, 자연스레 김고엽의 몸이 쇠약해질 것이니 포션을 제조하는 자의 실력이 뛰어나야 했다.
이는 김강현이 아는 한 이유하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시간 벌이에 불과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구나.”
‘그 사람이 정말 죽는다고?’
김강현의 설명에 김철진은 머릿속이 심하게 엉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그는 철혈 같은 사나이로 병마로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내심 갖고 있었기에, 김강현이 말이 자신을 놀리기 위한 말로 들렸다.
“그리고 사전에 허락받을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우선 회장님이 쓰러지신 것을 이명원 비서실장이 철저히 통제했지만, 아마 김우진 사장님은 소식을 접했을 겁니다.”
“그렇겠지. 형님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아냈을 거야.”
어릴 적 기억하고 있는 김우진의 성격과 최근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는 성향을 보면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이제 회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 칼을 뽑을 테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직할 것이고, 계열사들이 찢어질 것이기에 제가 나서서 막아보려고 합니다.”
“음…… 그 말은 제가 전면에 나서겠다는 말이냐?”
“그래서 아버지에게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내 존재가 드러날 수밖에 없지.”
김철진은 연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구나. 어려워. 설마 강현이 때문에 연을 다시 이어야 하나?’
US 그룹의 전략기획실장 자리를 맡고 있지만 다른 임원들과 비교했을 때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김우진을 상대하려면 핏줄이라는 동등한 자격이 있어야 임원들이 인정해 줄 것이었다.
하지만 김강현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선 그동안 연을 끊고 지내던 김철진이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냐?”
김철진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돌아가신 할머님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의 유언?”
“네. 덕분에 이렇게 회사를 키운 이유와 회장님이 미친 듯이 일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명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김철진에게 들려주자, 김철진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리가 없다. 그 사람이 어머니의 유언 때문에 어머니를 버렸다고?”
“정확히는 감춘 것이죠.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회장님도 할머님의 상태를 몰랐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
그는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밖에 있던 가족들에게도 들릴 만한 목소리였지만 밖에선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김강현은 서재에 들어오자마자 마나로 이곳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명원 비서실장님의 말에 의하면 당시 어려워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 회장님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회사 일과 영업을 동시에 진행하셨다고 합니다. 이명원 비서실장님은 할머님을 설득해 병환을 알리려고 했으나 할머님께서 끝까지 만류하셨다고 하네요.”
“하아.”
김철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 갑작스럽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탓일까?
한순간에 10년 이상 늙은 것처럼 김철진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고생이 묻어났다.
‘명원 아저씨의 말이라면 거짓일 리 없겠지.’
그는 이명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김고엽을 보필했으며, 자신에게는 삼촌 같은 사람이었다.
김고엽과의 인연은 끊어졌지만 이명원과는 1년에 한 번씩 연락하며 안부를 물을 정도였다.
김철진이 이명원에게 가지는 신뢰도는 굉장히 높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은 친척이 없어 명절이면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가곤 했지.’
어린 시절에도 김고엽과 정옥연은 고아원을 방문하여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은 회사의 직원들도 같이 동창하기도 했다.
정옥연이 고아로 힘겹게 자랐다는 것과, 어린아이들이 올바르게 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김철진 또한 정옥연을 따라 많이 고아원과 양로원을 방문했었고, 아직까지도 그곳의 이름과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어머니와의 약속을 계속 지키고 있었다고?’
그러고 보니 김고엽은 항상 약속은 철두철미하게 지켰다.
바쁜 회사 일을 하면서도 가족들과 약속을 하면 시간을 내기 위해 다른 시간을 쪼갰다.
머리는 모든 상황을 이해했지만, 오랜 시간 차갑게 얼어 있던 가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잠깐 시간을 다오. 지금은 이 모든 걸 받아들이기 어렵구나.”
“네. 하지만 시간을 많이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루면 된다. 그 정도면 괜찮겠지.”
“알겠습니다.”
김철진은 조용히 기억을 떠올리며 어떤 것이 맞는 건지 고심했다.
김강현은 이틀 정도를 생각했는데, 하루라는 김철진의 말에 내심 두 가지 상황을 염두하고 준비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김철진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조용히 서재를 나갔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김철진은 뜬 눈으로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무엇 하나 뚜렷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김강현의 말대로 김고엽이 쓰러져서 의식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인지부터 의문이 생겼다.
“후우.”
결국 새벽까지 밤을 새워버린 김철진은 고민 끝에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상대방과 1분 정도 통화를 하고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 * *
“오랜만입니다. 작은 도련님.”
“네. 명원 아저씨. 목소리는 그대로인데, 많이 늙으셨네요.”
“하하하.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넘게 흘렀지 않았습니까? 나이를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겁니다. 반면 작은 도련님은 홀로 훌륭하게 성장하셨습니다.”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쳐보니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저씨. 그런데 면회는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정말 회장님을 뵙기 위해 오신 겁니까?”
이명원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김철진에게 물었다.
아침 해가 뜨기 전, 심사숙고 끝에 김철진은 이명원에게 연락했다.
평소 같으면 이명원은 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었으나, 김고엽의 입원으로 심란하기도 하고 향후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때 낯선 이름과 연락처가 핸드폰에 뜬 것이다.
“네. 강현이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도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명원은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김철진은 김고엽의 면회가 가능하다는 이명원의 확인을 받은 즉시 차를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은 사람들이 적어 이목을 덜 끌 수 있었고, 가드들도 최소한으로 배치된 상태라 안성맞춤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닮을 수 있지?’
이명원은 오랜만에 김철진을 보자 내심 깜짝 놀라며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의 김고엽과 정옥연의 얼굴이 모두 담겨 있어 두 사람을 동시에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김철진과 꾸준히 연락하며 지냈지만 직접 얼굴을 보는 건 거의 15년 만이었다.
‘핏줄은 끊어내려고 해도 마음대로 끊어낼 수 없구나.’
김철진은 정옥연의 죽음을 계기로 김고엽과 남남이 되었지만, 김고엽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다.
아직 두 사람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이명원을 평생을 홀로 살아온 탓에 자식이 없었다.
그렇기에 김고엽의 자식들인 김우진과 김철진에게 더욱 마음이 갔고, 진짜 가족처럼 그들을 아꼈다.
다만 나이를 먹고 성장한 이후 김고엽과 다른 뜻을 가지고 대립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아저씨, 이제 그만 들어가죠. 그 사람을 만나 봐야겠습니다.”
“네. 작은 도련님.”
자신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는 이명원의 눈빛이 부담스러운 듯했지만, 김철진은 곧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에는 가드들이 배치되어 철저하게 김고엽의 병실을 중심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그들은 낯선 김철진이 나타나자 조심스레 경계 상태로 들어갔다가 이명원의 지시에 경계 상태를 풀었다.
덕분에 김철진은 김고엽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짐작했다.
“여기입니다. 들어가시지요.”
“후우.”
걷다 보니 어느덧 김고엽이 있는 1인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김철진은 길게 숨을 내시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삐~ 삐~ 삐~
병실 안에는 김고엽이 누워 있었는데, 어제와 달리 마나 수액이 달려 있었다.
불과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김고엽의 외형이 많이 변해 있었다.
“정말 그 사람이 맞는 겁니까? 며칠 만에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강현 도련님께 여쭈어 보니 마력 중독의 폐해라고 하더군요. 응급처치로 마나 수액을 처치했고, 오늘 중으로 마력 억제제가 담긴 마나 수액이 세팅될 것입니다.”
얼마 전 사진에서 본 김고엽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지금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김고엽은 동일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변해 있었다.
어제보다 살이 더 빠져 미라가 연상될 정도로 뼈가 드러나 있었고, 산소 호흡기과 마나 수액으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 * *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헌터협회에 은밀히 도움을 청해 알아보니 강현 도련님의 말대로 마력 중독이 맞았습니다.”
김강현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고엽이 가지고 있는 위치가 위치인 만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이명원은 유지운 부협회장에게도 도움을 청했고, 입이 무거운 치료 계열의 헌터를 소개받았다.
물론 그 헌터에겐 환자가 김고엽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골든 크라운의 마력은 아직 현대 의료 기술로 알아낼 수 없었다.
이유하가 응급조치로 마력 억제 효과가 있는 약을 조합한 마나 수액을 투여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중간중간 더 큰 위기를 겪어야 했을 것이었다.
‘어쩌면 이곳이 아니라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군.’
그래서 이명원은 마력 중독 치료는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안전가옥을 고려 중이었다.
이곳은 외부인의 출입이 가능하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김고엽을 지키기에 안전하지 않았다.
현대 의학이 더 이상 필요 없다면 호위에 신경 쓰는 것이 최선이었다.
‘얼굴과 손에 주름이 늘고, 많이 약해졌군요.’
그사이 김철진은 김고엽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김철진은 이렇게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김고엽의 모습이 믿겨지지 않아 무의식중에 그의 팔을 쓰다듬었다.
그의 머리에 박힌 김고엽의 이미지는 철혈 같은 산이었다.
항상 그런 모습으로 있을 줄 알았는데, 병환에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가슴에 맴돌았다.
“아저씨, 강현이가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유언이라는 것도.”
“네. 작은 도련님.”
“후우.”
이명원의 대답에 김철진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몇 번을 내쉬는 건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아팠다.
“아저씨,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김철진은 눈앞에 있는 진실을 알고 싶었다.
김강현에게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다시 한 번 더 이명원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를 눈치챈 이명원은 김고엽과 정옥연 사이에서 있었던 일과 김강현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강현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긴 하구나. 회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김철진은 곰곰이 김강현과 이명원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두 사람의 말은 일치했고 거짓이 없었지만, 김우진의 움직임을 미리 예상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했다.
“지금 US 그룹은 김고엽 회장님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그럼 공백이 길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회장 대리 혹은 부회장을 주주총회에서 선출하겠죠. 그 자리는 김우진 사장님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US 그룹에는 부회장이라는 자리가 없을 뿐,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우진.
김고엽에게는 자식이 김우진뿐이라고 알려져 있었고, 김우진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진실로 알고 있는 이상, 이를 쉽게 바꿀 수 없었다.
‘김우진 사장님은 강현 도련님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 대책도 마련되어 있겠지.’
이명원은 가상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김우진 사장님을 따르는 임원들의 주식과 주주들의 위임장을 50% 이상 가지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그다음엔 이렇게 진행될 것이고요.”
“이건?”
“설명을 드리는 것보다 읽어보는 것이 빠를 겁니다.”
말과 함께 이명원은 병실 한쪽에 있는 서류 봉투를 건넸다.
‘사업 계획서?’
김철진은 봉투 안의 내용물을 보자, US 그룹의 개혁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대충 봐도 이건 김우진이 가지고 있는 극비 내용임에 틀림없었다.
이명원이 이걸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다.
“일단 읽어보시죠. 그 후에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이명원의 말대로 김철진은 궁금증을 참고 서류 읽기에 집중했다.
‘인사 단행과 계열사 운영 방안?’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간략하게나마 US 그룹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과 인사 평가 등이 적혀 있었다.
기업 쪽에 관련된 사람이 보면 바로 이해될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추후 재단은 직원들의 연수 목적으로 활용? 자금은 개발 투자용?’
현재 US 그룹에서 운영하는 재단도 언급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지금 US 재단은 순탄하게 운영되고 있었고, 사회 곳곳에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설마?’
김철진은 자신의 기억과 서류들을 대조하며 차이점을 하나둘 찾았다.
“아저씨, 이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이건 아무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요.”
“눈치채셨군요. 맞습니다. 이건 김우진 사장님의 세력에서 얻은 겁니다.”
이명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김우진이 집 안 사람들과 비서실을 통해 자신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던 것처럼, 이명원도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사람을 그의 주변에 심어두었다.
덕분에 극비라고 할 수 있는 자료들이 종종 넘어왔고, 우연치 않게 김우진이 부회장이 될 경우를 대비한 시나리오도 얻을 수 있었다.
‘형님이라면 가능하지. 그런데 무엇이 옳은 것일까?’
서류들을 모두 살핀 김철진은 속으로 저울질을 했다.
솔직히 자신은 이 싸움에서 남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US 그룹과 연을 끊었고, 이들의 싸움과 상관없이 자신은 평상시와 똑같을 것이었다.
“아저씨, 결정했습니다.”
“네. 작은 도련님.”
“제 스스로 진실을 찾아서 직접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강현이는 제 품을 벗어나 잘하고 있으니 이번 일도 본인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김강현은 이미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는 아이였다.
아마 이명원에게는 자신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텐데, 아마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그랬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김철진이 생각했을 때 김고엽의 손자라는 타이틀은 김강현에게 부가적일 뿐, 그의 능력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최소한 나로 인해서 피해는 보지 않게 해야지.’
김철진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옥연의 뜻이 사실인지, 당시 그녀가 죽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김철진이 쓰러지게 되었고 깨어날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김철진은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먼저 김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세요. 시간이 되면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김강현은 헌터폰으로 통화하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김철진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도 큰 결단을 했네.”
전화를 종료한 김강현은 김철진의 결심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오늘 새벽 무렵 김철진이 갑자기 집을 나서는 것을 느꼈던 김강현은 바로 이명원에게 연락을 받아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었다.
이번 일을 알아보기 위해 휴직계를 낸다는 말에, 그가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진행 중인 업무가 있어 3일 후에야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 정도만 해주어도 김강현이 할 일을 덜 수 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주식 지분을 확보하는 거야.”
매년 정식 주주총회가 있지만, 한 주라도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신청하면 US 그룹에서는 심사 후 2주 안에 주주총회를 열어야 했다.
물론 이때에는 김고엽의 병환이 알려질 터.
‘지금 할아버지가 가진 지분은 17%, 큰아버지가 가진 지분은 12%.’
US 그룹의 경영 전선에 나선 김고엽과 김철진은 많은 주식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의 주식과 그들을 지지하는 임원, 주주들이 함께 나서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50%를 가볍게 넘겼으니까.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이용하여 경영권이 타인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견제를 이어갔다.
‘비서실장님이 주신 정보에 의하면 아슬아슬해.’
현재 김고엽과 김우진을 지지하는 자들의 지분을 합치면 회장파의 주식 지분은 35%, 사장파는 32%로 김고엽이 앞선다.
남은 33%의 지분은 소액 주주들과 중립을 지키고 있는 자들.
하지만 김고엽이 쓰러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 판세는 금방 뒤바뀌어 김고엽파의 기존 세력은 이탈하고, 중립을 지키던 자들도 김우진에게 움직일 것이었다.
‘지금 두 사람을 제외하고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 사람을 움직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US 그룹은 김고엽과 김우진에 의해 좌지우지되된다고 알고 있지만, 그 사이에서도 중립을 지키고 있는 세력이 있었다.
“임재우. 그 사람일 줄은 생각지 못했는데.”
그는 US 바이오를 이끌고 있는 사장이며 임원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중도파를 이끌고 있는 수장인 그는 일전에 김철진이 자신의 친구라며 만나보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16%.
기존의 지분과 연합하면 51%가 확보되어 온전하게 김고엽의 경영권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김우진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을 터.
김강현은 그를 만나기 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감을 잡을 수 없군.”
임재우는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깔끔한 정장 차림에 짧은 스포츠머리, 호남형의 스타일로 건장한 덩치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회장 쪽은 조용한데, 김우진 사장 쪽에서 접촉이 이어지는 이유가 뭘까?”
아직 자신에게는 접촉하지 않았지만, 이미 중도파 임원들에게 김우진을 따르는 자들의 제안이 건네졌다.
아직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김우진의 건의로 주주총회가 열릴 것이고, 그때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해달라는 제안.
이렇게만 해주면 막대한 이익이 돌아올 것이라는 말과 함께, 동의하지 않는다면 기대해도 좋다는 은근한 협박도 돌아왔다.
임재우는 자신을 따르는 임원들과 주주들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정보망을 운용하여 US 그룹에 어떤 일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으나, 들어오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분명 이명원 비서실장이나 강려원 부실장이 움직일 텐데. 과연 어떻게 나올까?”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두 파벌 간의 싸움이 있으리라 짐작되었다.
그래서 임재우는 임원들과 주주들에겐 움직이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라 전했고, 자신에게도 접촉이 올 것이라 예상했다.
“응?”
그때, 책상 인터폰이 울렸다.
임재우는 잠깐 생각을 멈추고 수화기를 들었다.
“누가 찾아왔다고?”
“네. US 그룹의 전략기획실장님이 사장님과의 만남을 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 * *
“오랜만입니다. 임재우 사장님.”
“흐음. 그러게 말입니다. 혹시 커피 괜찮으십니까?”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임재우는 김강현의 방문이 내심 당혹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방문 의도를 읽기 위해 질문들을 머릿속에서 고르기 시작했다.
“그룹의 임원진들이 함께 있는 회의에서 처음 봤을 땐 솔직히 실력이 굉장하더군요. 역시 회장님의 안목이 뛰어나신 걸 느꼈습니다.”
“아닙니다. 강려원 부실장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거지요.”
“그렇지 않아도 헌터로서도 활동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거참.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합니다.”
임재우는 김강현이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일을 병행하는 것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김강현 또한 임재우가 US 바이오를 이끌며 여러 신약을 개발하는 뛰어난 성과를 짚으며 솔직하게 신약에 대한 의견을 내비치며 대화를 이끌었다.
‘응? 이것 봐라. 생각보다 많이 준비해왔잖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김강현이 바이오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 이틀 공부한 것도 아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상대의 의도나 읽으면서 딱딱하고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지 싶었는데 꽤 재미있었다.
물론 그의 예상대로, 김강현은 임재우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대화를 잇고 있었다.
‘고집이 세고, 부정부패를 싫어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겐 단점도 솔직히 말하는 게 좋아.’
독특하게도 임재우는 회사에서 실적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잠재능력과 인성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회사에 크게 손해를 끼친 직원은 보통 한직으로 내려 보내거나 기회를 없애 버리지만, 임재우는 자기 부하 직원을 믿고 다시 기회를 주곤 했다.
그리고 뛰어난 성과를 발휘할 수 없도록 서포트했다.
덕분에 US 바이오는 퇴사율이 다른 계열사보다 낮고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런 성격 탓에 김우진을 따르는 임원들이 돈으로 그를 회유하려고 찾아왔을 때도 끊임없이 거절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아들과 이름이 똑같네.’
김강현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던 임재우는 언젠가 한 번 가족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김철진의 말을 떠올렸다.
‘나이도 비슷하지만, 설마 아니겠지.
그렇지만 마음과 달리 의심을 버릴 수 없었다.
임재우는 김철진의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이며, 김고엽의 가정사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김강현의 등장도 의심스러웠다.
아무리 헌터라지만 그룹에서 중요한 전략기획실장 자리를 낙하산으로 차지했다.
물론 그 자리에 앉은 만큼 확실하게 실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어떻게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는지 알 수 없었다.
“임재우 사장님.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이야기는 소문이 돌지 않게 잘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 대체 뭔가?”
‘지금부터 본론이겠군.’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고 상대방의 스타일이 파악되자, 조심스레 김강현이 입을 열었다.
“아마 사장님을 따르는 임원들을 대상으로 김우진 사장님 쪽의 은밀한 움직임이 있었을 겁니다.”
“흐음.”
“곧 주총이 열릴 것이니 그때 자신들을 지지해 달라는 것이겠지요. 그 이유를 아십니까?”
김강현은 실시간으로 임재우를 따르는 임원들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제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암월과 다크 사이드에게 부탁하여 US그룹에 속한 임원진들의 최근 행적을 파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도 호위 가드들이 있지만, 다크 사이드의 움직임을 파악할 만큼 뛰어나진 못했다.
덕분에 김강현은 그들의 행적과 정보 면에서 앞서고 있었고, 이 사실을 임재우에게 흘리는 것이었다.
“어제 자택에서 회장님이 쓰러졌고 의식 불명입니다. 그리고 생명이 많이 위독하십니다.”
“뭐, 뭐라고?!”
그 말에 놀란 임재우가 의자에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입을 벌린 채 벌레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
정말 예상외의 소식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 심장병이 다시 발병하신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쓰러지실 리 없을 텐데.”
“모르겠습니다. 원인은 병원에서 찾고 있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임재우가 묻자, 김강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아꼈다.
‘누가 범인인지 아직 모르니까. 반드시 찾아낸다.’
김고엽이 쓰러진 원인은 마력 중독이었지만,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직 숨길 필요가 있었다.
모든 상황을 염두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김우진만이 아니다.
그동안 김고엽을 수발한 이명원과 강려원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크게 상황이 바뀔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
‘이제야 모든 조각들이 맞춰지는구나. 그래서 놈들이 움직였던 거였어!’
머릿속에서 뿌연 안개가 사라지는 것처럼, 임재우는 김우진의 세력이 왜 자신들에게 손을 건넸는지 파악했다.
‘김우진 사장은 반드시 회장 자리에 오르고 말 거다!’
그는 US그룹에 입사하기 전부터 김우진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지금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려졌다.
김고엽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입수한 그는 조용히 이 사실을 흘려 임원들과 주주들을 설득해 주식을 확보할 것이었다.
승리에 확신이 생기면 주주총회를 열 것이고, 그 자리에서 회장 자리를 손에 넣을 터.
“그러면 전략기획실장님은 절 설득하러 오신 겁니까? 회장님 편에 들라고요.”
“설득하러 온 것은 맞지만, 대상이 틀렸습니다.”
“그게 무슨?”
“김고엽 회장님이 아닌 제 세력에 들어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임재우의 두 눈이 크게 뜨였지만, 김강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김고엽 회장님의 후계자를 김우진 사장님으로 알고 있지만, 두 분의 경영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회장님은 또 한 명의 경영자를 키우기로 결정했지요.”
“그게 전략기획실장님이라는 거군요.”
예상치 못하게 많은 정보들을 알게 되자 임재우는 감탄만 나왔다.
‘그래서 낙하산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거군. 내가 모르는 사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구나.’
중도파의 수장으로서 다수의 임원들을 이끌고 있지만, 김고엽과 김우진과 달리 세력이 작아 정보 수집이 약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계속 신경 쓰며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그럼 전략기획실장님은 저희들에게 어떤 것을 제안하시겠습니까?”
“지금 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네?”
“하지만 이번 위기를 넘기면 그룹 내에 존재하는 파벌을 모조리 없앨 겁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에 임재우의 눈썹 사이로 깊은 주름이 생겼다.
부가적인 설명을 위해 김강현은 말을 이었다.
“타 회사와 다르게 US그룹은 오로지 실적만을 평가하며 인사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을 끌어주는 라인이 있고, 파벌이 있습니다. 지금 회장님, 김우진 사장님, 그리고 임재우 사장님으로 나뉜 것처럼 말입니다.”
“맞습니다.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기 위해서 힘 있는 사람한테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파벌이 생겼죠.”
“그게 적당하면 회사 성과에 시너지를 낼 수도 있으나, 지금은 파벌 싸움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 끝은 주주총회로 이어질 것이고요. 김우진 사장님이 회장 대리가 된다면 과감하게 회장님과 사장님의 사람들의 목을 치겠죠.”
“흐음.”
“명분은 충분합니다. 인사 개혁을 통해 그룹 운영을 쇄신하고, US그룹에서 운영하는 계열사 중 이익이 나지 않는 곳은 버리고 재단을 처분하면 되니까요.”
일리 있는 말에 임재우는 자신도 모르게 끄덕거렸다.
정확했다.
그 또한 사람들을 통해 김우진의 계획을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이익보단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선 김우진 사장님의 야망을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김우진 사장의 사람들도 포용하겠다고 해석해도 됩니까?”
“실력만 된다면요. 이건 제가 어떤 세력에도 속해 있지 않고, 갑자기 떨어진 낙하산이기에 가능한 거라 판단합니다!”
임재우는 자신감 넘치는 김강현의 말을 듣자 깊은 고심에 빠졌다.
‘과연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과 중도파 임원들, 김고엽을 따르는 임원들을 끌어안은 뒤 회사를 이끌어간다면 가능성은 차고도 넘쳤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그랬었지.’
문득 그는 옛날 생각이 났다.
임재우는 수도권의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바로 미국으로 가서 일했다.
US 바이오가 만들어질 때 김고엽의 스카우트를 통해 귀국했지만, US그룹 초기 멤버였던 아버지의 후광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경영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안 좋은 시선과 소문으로 고생할 거라 짐작하고 각오를 다졌다.
게다가 아버지를 통해 임원들의 정치 싸움이 심하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임원들과 달리 일반 직원들에게서 정치 싸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새로 들어온 자신을 챙겨주며 합심하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 고마움을 많이 느꼈다.
임재우는 이들 덕분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고, 지금은 이 사람들과 함께 US 바이오를 이끌고 있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과연 이 사람은 어떨까?’
임재우는 김강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흔들리지 않고 굳셈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만큼 사람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데, 김강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았다.
“좋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결코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임재우 사장님.”
머릿속에서 계속 저울질하며 고민하던 임재우는 김강현과 손을 잡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보면 김강현의 말은 허황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강현은 어린 나이임에도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마나 전지라는 실적을 만들어냈고, 이를 활용한 상품들을 개발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략기획실을 통솔하며 전반적으로 US그룹의 사업들을 진행하는 것만 봐도 실력만큼은 뛰어났다.
여기에 김고엽과 이명원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다면 앞으로 승승장구할 터.
그 길을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역시 아버지에게 들은 대로 호탕하시네요.”
“아버지라고요?”
“네. 회사 일에 사적인 감정이 섞일까 싶어 말을 아꼈습니다. 같은 회사를 다니니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거라며 사장님 명함도 주시더군요.”
“제 명함을 말입니까?”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말에 임재우는 어리둥절했다.
물론 명함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돌리기 때문에, 예의차 준 명함을 소개받았다며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 그건?!”
하지만 김강현이 품속에서 한 장의 명함을 꺼낸 순간, 이를 본 임재우는 크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