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마약 골든 크라운Ⅰ
“우리가 원하는 건 저 녀석의 목 하나다. 우리들과 악연을 만들고 싶지 않다면 물러나!”
암월은 나름 정중하게 김강현에게 경고했다.
앞서 사람들을 통해 자신들이 다크 사이드라는 밝힌 이상 무작정 싸우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방금 오러는 아무나 펼칠 수 있는 게 아니야. 어쩌면 나보다 윗줄, 아니, 그거보다 더 위일 거다.’
오러는 A급 헌터가 되면 스킬을 통해 쉽게 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빠르게, 혹은 강하게 펼치는 컨트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스킬을 발현할 때 마나 컨트롤이 되지 않으면 힘의 강약을 조절할 수 없고, 치열한 싸움을 할 때 타이밍이 늦을 수도 있었다.
다른 어쌔신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암월은 김강현이 마나 컨트롤을 통해 강한 위력으로 오러를 시전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어느 정도 스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식당 내부에 있던 길드원들이 모두 죽었어. 아무리 주도권을 빼앗겨도 실력의 차이인 거야.’
내부의 어쌔신들이 죽기 까지 걸린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는다.
한정적인 장소와 어두워진 시야, 식당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혼란이 있었지만, 그런 수련도 이미 거쳤던 이들이 아닌가.
그들을 쉽게 죽였다는 것만으로도 김강현의 강함이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 우리와 싸울 테냐?”
하지만 암월은 어쌔신들을 이끌고 있는 수장의 입장에서 최대한 태연을 가장하고 대답을 재촉했다.
“쓸데없는 살인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은원에 함부로 개입하지 마라.”
암월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며 단숨에 싸울 준비를 취했다.
그것은 단순히 말뿐인 경고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주변의 어쌔신들도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암월의 명령을 기다렸다.
“이 녀석은 내 사람이야. 내 길드원을 버리고 도망치는 길드장이 될 수 없지.”
“뭐?!”
“다크 사이드를 공격하라고 한 건 내 명령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 렌이 아니라 나를 쓰러트려야 할 거다.”
김강현의 대답에 어쌔신들이 분노를 드러내며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암월의 공격 신호가 떨어지지 않아 신호만을 기다릴 뿐.
‘길드장님!’
김강현의 뒤편에 있던 렌은 감동한 기색이 역력했다.
솔직히 혼자 길드의 지원 없이 다크 사이드를 상대하느라고 많이 힘들었다.
곽철용에게 도움을 청하긴 했지만, 그도 가드 업체를 운영하느라 잠이 부족할 정도로 매일 일하고 있는 상황.
이는 기동진도 마찬가지.
그런데 위기의 순간 김강현에 의해 보호받으니, 유럽에서 받았던 악감정이 사라지고 고마운 생각만이 남았다.
“우리를 공격한 이유가 뭐지?”
“암흑가의 통일을 위해선 어쩔 수 없으니까. 스콜피온과 블랙아웃이 사라진 지금, 이제 너희들만 남았잖아?”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었군.”
김강현은 대답에 복면을 쓰고 있음에도 어쌔신들에게서 욱한 눈빛이 보였다.
하지만 암월의 제지하자 침묵을 지켰다.
‘블랙아웃이 스콜피온을 없애 버렸지. 블랙아웃의 핵심 인력은 클라우드 가드를 세워 양지로 나섰고, 암흑가의 무주공산이야. 나라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암월은 냉정하게 김강현의 의도를 파악했다.
괜히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질까 싶어, 자신도 두 길드의 싸움 소식을 듣고 잠시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스콜피온과 블랙아웃의 싸움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다크 사이드를 움직여 단숨에 그들을 공략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두 길드의 싸움은 블랙아웃 길드의 일방적인 싸움으로 끝이 났다.
스콜피온 길드가 양지의 어느 대형 길드와 밀약을 맺고 싸웠는데도 패했다는 소식에, 암월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블랙아웃 길드의 동태를 살폈다.
음지의 일을 하는 만큼 정보가 하나라도 더 있어야 살 수 있었으니까.
한데 다크 사이드가 정보에 있어서는 유명한 길드였음에도, 블랙아웃을 승리로 만든 큰형님의 정체에 대해선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정보만 모으기에는 점점 길드의 자금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영업을 시작했는데, 렌과의 충돌이 일어난 것이었다.
‘자, 잠깐.’
그때, 암월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의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맞아! 분명 그 사람이다!’
암흑가의 통일이라는 말과 김강현의 외모, 막강한 무력, 검은색의 검, 외국인 어쌔신을 떠올리자 잊고 있었던 정보가 떠올랐다.
“그렇군.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군요. 테라 길드의 김강현 님.”
“응? 그사이에 알아냈어?”
“스콜피온과 블랙아웃. 두 길드의 싸움에 개입한 것도 강현 님이시겠지요?”
“맞아. 암흑가 통일을 위해선 어느 한쪽을 지울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깨끗한 쪽이 스콜피온이었지.”
더불어 그동안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도 풀렸다.
암월이 알고 있던 스콜피온과 블랙아웃의 전력은 거의 동등했다.
그런데 김강현의 개입이라면 모든 것이 정리 가능했다.
‘A급 헌터였을 때 혼자서 스콜피온 길드를 쓸어버린 것이 분명해. 그런데 S급 헌터가 된 지금이라면 우리쯤이야 간단하겠지.’
그는 불과 며칠 전 입수했던 정보를 떠올렸다.
김강현이 S급 헌터가 된 사실은 헌터협회 내부자 몇몇과 정보를 취급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암월은 이상함을 느꼈다.
보통 S급 헌터로의 결정은 떠들썩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만큼 S급 헌터가 가진 무력은 국가의 무력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헌터협회에서 지정하는 던전에서의 사냥과 S급 헌터와의 대련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심사 절차도 까다로웠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 없이 헌터협회 내부의 결정으로 S급 헌터가 되었다?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괴물일 가능성이 높다!’
헌터협회에서 어떤 사건으로 김강현의 무력을 알게 되자, 불필요한 과정을 패스하고 바로 S급 헌터로 지정했을 터.
‘게다가 검천호가 뒤에 있어. 이건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냐.’
설사 이 위기를 넘긴다 해도 테라 길드는 자신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었다.
테라 길드는 S급 헌터를 두 명이나 보유하고 있었고, 끝까지 공격할 것이었다.
게다가 김강현의 소환수도 주인 못지않은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자신들이 인원수가 많더라도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후우, 원하는 게 뭡니까?”
“길드장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항복하는 겁니까?!”
“상대는 S급 헌터이고, 뒤에는 더 강대한 적들이 있다. 죽을 걸 알면서도 싸울 순 없지 않나?”
“크윽!”
긴 한숨을 토해내며 암월은 정중하게 대답을 구했다.
거의 항복이나 다름없는 말에 어쌔신들이 분노했지만, 암월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김강현이 S급 헌터라면 자신들은 모조리 죽을 것이었다.
결국 김강현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
“제안을 하지.”
“그게 무슨?”
“일대일 승부로 결정짓는 게 어때?”
김강현은 고민 끝에 암월에게 하나의 제안을 건넸다.
‘이대로 죽이기엔 아까운 놈이야.’
원래 계획은 이 자리의 어쌔신들을 모두 죽이고 다크 사이드를 접수하는 것.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암월을 죽이기에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지금 김강현이 S급 헌터가 됐다는 것은 유지운에 의해 통제되어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테라 길드에 검천호를 영입해 헌터들 사이에서 경계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김강현이 S급 헌터가 되었다는 정보를 흘릴 이유가 없었다.
때문에 적절한 시기를 고르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암월이 알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암흑가를 완벽하게 점령하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한데, 쓸 만한 녀석들이 없어.’
스콜피온 길드의 녀석들은 거의 약에 의존하며 살고 있어 부하로 삼을 수 없었고, 블랙아웃 길드에서는 대부분의 머더러들이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클라우드 가드를 통해 양지로 나섰다.
몇몇이 암흑가에 남겠다는 의지를 밝혀 렌이 거두었지만, 인력 부족으로 암흑가를 지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네가 이 녀석과 싸워 이겨라. 그럼 살려서 보내주마.”
“이긴다면?”
“길드를 해체하든, 계속 우리와 싸우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거다.”
“만약 제가 진다면 어떻게 됩니까?”
“테라 길드의 휘하로 들어와라.”
“으음.”
‘어느 쪽을 선택하든 목숨을 구할 수 있겠구나.’
암월은 신중하게 김강현의 제안을 곱씹었다.
어떻게 보면 일방적인 제안이지만, 암흑가에서는 힘이 법이었다.
만약 김강현이 싸우고자 한다면 속수무책 죽어야 하는 입장에서, 암월에겐 이 제안이 가뭄의 단비나 다름없었다.
‘에엑, 내가 싸운다고?’
반면, 렌은 마른하늘의 날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
방금까지 김강현이 나서서 모든 것을 정리해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자신이 나서서 싸우게 줄은 생각지 못했다.
“고민할 필요 없어. 지면 지는 거고, 이기면 쓸 만한 수하를 얻는 거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다크 사이드의 수장과 네 실력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 이걸 뛰어넘느냐에 따라 네 성장이 달라질 거다.”
그 말에 렌의 표정으로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김강현이 보기엔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없었다.
얼마나 더 상대방에게 집중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럽에서 나와 싸웠을 때를 기억해.”
“넵!”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렌은 김강현의 말에 넘어가 반드시 암월을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길드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싸워야지.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 정말 우리를 거둘 수 있는 녀석인지도 알아봐야지.”
한편, 암월은 길드원들과 이야기하며 마음을 다졌다.
자신이 거두고 키운 다크 사이드였다.
누군가에 의해 무너지는 것도 용납할 수 없지만, 쉽게 바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최소한 자신을 꺾는 강자라면 조금 마음이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이는 것이 맞았다.
“혹시 내가 죽더라도 나서지 말고, 바로 길드로 돌아가라. 그리고 길드를 해산시켜라.”
“길드장님!”
“이 싸움은 나 하나로 족해. 괜히 나서서 죽을 필요 없어.”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단단히 어쌔신들에게 당부했다.
대부분은 말을 부정했지만, 몇몇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하나의 단체를 이끌고 있는 수장으로서, 그들을 올바른 방향을 이끌 책임이 있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린 암월은 앞으로 나서며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