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과거의 인연
라우드 콜스(라 제국 근위기사단장, 데스 나이트)
○력:◆ 마▲: ▽ 근△: ▲
민■:★ ○능: ◇ ◎□력: ★
▼▲○★△▲★□▼■▲○
아슬란(라 제국 대마법사, 리치)
체◇: □ 마◆: □ ◆력: ◎
민●: ▽ 지■: ▲ 정▼☆: ○
◇◆▽■△□◆■▲▼☆○★□■▲▼☆
그나마 기존에 알고 있는 내용과 눈에 보이는 정보만 상태창에 뜰 뿐, 그들의 상태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몬스터들의 정보는 확인되는데, 왜 이들은 안 되는 거지?’
김강현은 지그문트와 싸움 이후 이 능력에 대해 헬릭스와 함께 분석해 보았지만, 아직까지 정보가 뜨지 않는 이유를 확인하지 못했다.
‘무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이 개입되어 있나?’
다만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건, 이 능력을 김강현에게 전달한 존재의 힘보다 지그문트, 그리고 라우드와 아슬란에게 개입된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 기운은 마족의 마력?”
“네놈들! 인간을 배신하고 마족에 붙은 자들이구나!”
그런데 갑자기 라우드와 아슬란이 아티팩트에서 뿜어지는 헬릭스의 마력을 읽고 분노했다.
“마족? 배신? 대체 무슨?!”
어떤 상황인지 김강현과 헬릭스가 생각하려던 찰나, 이미 아슬란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모두 피해라!”
“바로 몸을 보호해!”
쾅! 콰아앙! 콰아아아앙!
끝이 날카로운 얼음 기둥들이 바닥에서 솟구쳤다.
크기가 그들의 키를 훌쩍 넘을 정도여서 관통당하는 순간 바로 치명상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 폭발에 의해 얼음덩어리가 산산 조각 나면서,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뿌려졌다.
“미리 알고 있었느냐?”
“네. 저 수법을 알려준 게 저니까요.”
라셀이 얼음이 날카롭게 깨진다는 것을 알려주자 아슬란은 이를 활용하여 2차 공격법을 마련했다.
대량 살상용으로 초반 기세를 잡기 충분했다.
크아아아아아!
“저걸 어떻게 막아?!”
“얼음 기둥 뒤로 피해!”
이 틈을 노려 연달아 본 드래곤의 아이스 브레스가 쏘아졌고, 김강현이 다급히 소리쳤다.
‘완전 속수무책이야! 방법을 세워야 해!’
힐끔 라우드 쪽을 보니 바로 데스 나이트들과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면 초반 기세 싸움에서 밀린 채 계속 질질 끌려 다니게 될 터.
“헬릭스!”
“그렇지 않아도 알고 있느니라.”
헬릭스도 김강현과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감히 뼈다귀 따위가 날뛰어?”
“저, 저 괴물은 뭐야?!”
“크아아아앙!”
말과 함께 본 드래곤에 상응하는 검은색 덩치의 몬스터가 갑자기 나타나 아이스 브레스를 향해 검은 불꽃을 뿜어냈다.
그러고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불꽃 채찍을 휘둘러 하늘에 떠 있는 본 드래곤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본 드레곤은 전신에 옮겨 붙은 불꽃을 끄기 위해 뒹굴며 발버둥 쳤다.
“설마 헬릭스?”
“저 몬스터가? 말도 안 돼!”
“저게 본 모습이었단 말이지?”
저 몬스터는 낯익은 마력과, 인간 형태의 헬릭스가 쓰던 채찍을 쓰고 있었다.
“이제야 이 몸의 위대함을 알겠느냐?”
“헬릭스. 본 드래곤을 부탁해.”
“걱정 마라. 이 몸이 뿌린 씨앗이니 직접 거두마.”
현재 본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본신의 헬릭스밖에 없었다.
처음 지구에 소환되었을 때는 마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어린 강아지의 형태로 모습을 유지지했지만, 김강현이 강해지고 그 또한 꾸준하게 마력을 모으면서 발록으로 현신해 싸워도 문제없을 정도가 되었다.
‘원래 마족이라고 해도 어마 무시할 줄 알았는데 이건 상상이잖아!’
‘앞으로 까불지 말아야겠어.’
‘이놈과 싸우면 어떻게 될까?’
처음으로 헬릭스의 본신을 보게 된 연세연, 김건, 검천호의 생각은 각기 달랐다.
“연세연.”
“응?”
“이 몸과 함께 싸우는 게 어떠냐? 이 몸이 뼈다귀를 상대하는 동안 아슬란을 견제해 주었으면 한다.”
“내가 저 리치하고?”
연세연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고, 헬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의 뿔이 마력의 정수인 만큼 성장에 좋은 기회가 되겠어.”
그사이 아슬란이 본 드래곤의 몸에 붙은 검은 불꽃을 없애 버린 뒤 등에 탔다.
“불꽃 따위야 얼음으로 없애 버리면 될 터.”
단숨에 헬릭스의 속성을 눈치챈 아슬란은 본 드래곤과 함께 움직이며 공격을 차단할 계획이었다.
미리 아슬란의 생각을 읽은 헬릭스는 연세연과 함께라면 이 싸움에서 승산이 있음을 확신했다.
‘할 수 있을까?’
연세연은 우물쭈물하며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정확히 자신이 없었다.
앞서 김강현에게 슬럼프이라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 아슬란을 쓰러트릴 수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야.’
분명 테라 길드원들은 할 수 없다고 하면 괜찮다고 하며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테지만, 분명 힘들고 어려울 것이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김강현을 보았다.
김강현은 아무런 말 없이 굳은 믿음이 담긴 눈빛과 함께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제가 리치를 상대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느니라. 이 몸께서 기꺼이 어깨를 내줄 테니 타거라!”
연세연은 김강현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아슬란과 싸우기로 결정했다.
이에 헬릭스는 팔을 뻗어 어려운 결정을 한 그녀를 오른 어깨에 태웠다.
“아티팩트에 담긴 이 몸의 마력으로 불꽃의 영향을 받지 않을 테지만, 떨어지지 않게 발에 마나를 집중해라.”
“네. 헬릭스 님!”
대답을 듣자마자 헬릭스는 바로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솟구쳐 본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그사이 아슬란은 절대영도를 이용해 헬릭스의 불꽃 흔적을 없애고 다시 강화한 상태였다.
그를 보자 연세연은 긴장에 전신이 떨렸으나, 차분하게 호흡하며 얼음을 만들어냈다.
“오호, 얼음 계열의 마법사는 흔치 않은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하나, 배신자인만큼 살려줄 수 없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진 않지만, 이 자리에서 죽는 건 당신입니다!”
“좋은 마음가짐이니라!”
각오가 서자 떨림은 진정되었다.
연세연은 양팔을 얼음으로 감싸며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헬릭스는 본 드래곤을 향해 달려들었고, 연세연은 아슬란을 향해 얼음 마법을 시전했다.
이에 맞서 아슬란과 본 드래곤도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아슬란과 본 드래곤의 지원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라우드는 공중에서 싸우는 그들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가 금방 눈앞의 테라 길드원들을 보며 각오를 다졌다.
‘만약 라의 기사단과 아슬란이 합쳐졌으면 끔찍한 상황이 펼쳐졌을 거다.’
여러 번 그들의 실력을 확인했던 김강현과 헬릭스는 일찌감치 그들을 떨어트려 놓은 것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 아슬란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라의 기사단의 신체 능력 향상을 비롯한 각종 버프 마법들을 시전하여 적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언데드가 되었으니 버프의 위력이 업그레이드되었을 것이다.
“준비.”
창! 창! 창! 창!
라우드의 명령이 떨어지자 5명의 데스 나이트들이 허리의 검을 뽑아 들며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돌격.”
데스 나이트들은 삼각 나선형으로 자리를 잡은 뒤 바로 테라 길드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들 검에 검은색 오러가 맺혀 있어 S급 헌터의 실력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건이 가장 먼저 나섰고, 그 뒤에 검천호가 서서 서포트로 나섰다.
콰아아앙!
‘뭐, 뭐야? 큭!’
세 명의 데스 나이트들이 동시에 김건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를 막아낸 김건은 당황스러웠다.
‘고작 일격일 뿐인데! 지금까지와 완전 달라!’
테라 길드에 들어온 이후 김건은 나름대로 많은 경험치를 쌓았고, 바실리스크 레이드를 통해 힘이 들긴 하지만 S급 몬스터도 시간을 들이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데스 나이트는 유럽에서도 겪어보았으니, 던전의 숲을 통과하며 보스 몬스터로 나타나도 이길 자신감이 있었다.
‘방심하면 바로 죽는다!’
한데 한 번의 공격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다행히 피어스 실드가 단단하여 버틴 것이었다.
김건은 피어스 실드를 꽉 쥐며 검천호에게 그들을 공격할 틈을 마련했다.
“어? 어?!”
나선형으로 선 데스 나이트 사이를 뚫고 천류신검을 휘두르던 검천호는 단숨에 그들이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검에는 오러가 쌓여 있는 데다가 중력의 힘도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콰아앙! 쾅! 쾅!!
“크윽!”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두 마리의 데스 나이트가 동시에 검천호를 막아냈다.
그러고는 또 다른 데스 나이트가 나타나 검천호의 가슴을 노렸다.
‘유럽의 데스 나이트와는 수준이 달라!’
유럽의 데스 나이트들은 육체를 중점으로 수련한 반면, 이들은 육체와 마나를 동시에 수련한 자들이었다.
게다가 지구의 기준으로 생전 A급 헌터 이상의 실력을 가진 만큼 쉽게 테라 길드원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건! 검 어르신!”
뒤쪽에서 김강현이 소리치자, 그들은 단숨에 양옆으로 피했다.
강대한 오러의 파도가 데스 나이트들을 휩쓸었다.
덕분에 그들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입고 있던 갑주에 금이 갔다.
“인피니티 포스!”
김강현의 몸이 오러에 휩싸였다.
마치 오로라처럼 피어오르는 오러!
마검을 휘두르자 김건과 검천호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던 데스 나이트들이 쓰러져 갔다.
“후우.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지난번 바실리스크와 싸웠을 때처럼, 인피니티 하트로 마나를 구현하여 오러로 발현한 것이었다.
그때는 자신의 것으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발현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그동안 마나 홀에 인피니티 하트를 계속 유지한 채 마나를 운용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그 뒤로 2마리의 데스 나이트가 김강현에게 달려들었으나 그의 오러를 이겨내지 못했다.
김강현은 김건, 검천호와 함께 5마리의 데스 나이트를 단숨에 쓰러트리고 라우드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라우드. 거기서 명령만 하지 말고 직접 나와라! 네가 기사라면 말이야!”
“오호, 배신자 따위가 감히 나를 상대하겠다고?”
라우드는 예상치 못한 도발에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김강현은 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 *
’어떤 상황에서도 강한 상대와 싸우는 걸 추구했던 라우드다. 데스 나이트라 해도 이것은 바뀌지 않았을 터!’
라우드는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더라도 늘 다른 기사들보다 선두에 나서서 싸웠다.
이 때문에 라의 기사단은 자신들을 지휘해야 할 기사단장이 명령과 함께 사라지니 곤란할 때가 많았을 정도.
그래서 총 9명의 부단장들을 뽑아 그들로 하여금 세세한 지휘 체계를 구성했다.
“나는 정정당당히 기사의 싸움으로 겨루고 싶다. 네가 진정한 기사라면 이 제안을 무시하지 못할 터.”
“좋아. 나는 절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아. 그 대가는 죽음으로 받지.”
김강현의 예상대로 라우드는 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데스 나이트들이 그가 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었다.
“이미 한 번 죽었던 몸이라 다시 죽는 건 경험하고 싶지 않군.”
이에 김강현도 오러를 내뿜으며 기세를 분출했다.
“이 승부에 다른 녀석들을 개입시킬 건 아니지?”
“신성한 기사들의 싸움이다. 다른 이들의 개입은 용납하지 않아. 단, 저들의 기세는 진정시켜야겠지.”
라우드는 부단장들 중에서 가장 강한 두 명을 검천호와 김건에게 배치했다.
“3 대 3 싸움으로 승부를 보도록 하지. 진 쪽은 목숨을 내놓는 거다.”
마침 데스 나이트와 마음껏 싸우고 싶었던 검천호에게도 좋은 기회였고, 밀린다고 판단했던 김건도 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라우드의 답답한 성격이 이렇게 도움이 되네.’
같은 편일 때는 이 성격 때문에 쉽게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를 이용하니 상황이 쉬워졌다.
현재 자신들의 전력과 라우드와 아슬란의 전력을 비교하면 상처뿐인 승리가 될 테니까.
‘김건과 연세연은 죽고, 남은 사람들은 다시 복귀가 어려울 거야.’
상대방의 현재 전력은 서로 비슷하니, 장기전이 될수록 언데드 쪽이 유리할 것이었다.
언데드의 장점을 활용하면 무한대로 싸움을 이어갈 수 있다.
결국 인간들이 체력의 한계를 먼저 느낄 것이고, 결국 확실한 패배의 이유가 될 터.
그렇기에 편법이지만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싸움을 선택했다.
앞서 헬릭스와 연세연이 본 드래곤과 아슬란을 데리고 각개전투를 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바지직! 빠직!
“이 몸을 불러낸 만큼 실력이 있었으면 좋겠군.”
말과 함께 라우드의 몸에서 검은색 전기가 일어났다.
“일렉트닉 오러의 색깔만 바뀐 건가?”
라우드가 라의 기사단장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로 실력이 뛰어나서지만, 저 독특한 오러의 영향도 컸다.
어릴 적 그는 수련하던 중 번개를 맞고 7일간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가 죽었을 거라 생각할 만큼 큰 번개였는데도 상처나 화상의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다시 깨어난 뒤에는 마나가 전기 속성을 띠게 되었고 말이다.
그래서 그가 일으킨 마나는 짜릿짜릿한 느낌이 들고, 이를 오러를 구현하면 강력한 전기를 발하게 되었다.
김강현과 라우드는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다가 거의 동시에 달려들어 휘둘렀다.
“크으윽!”
“하앗!”
두 사람의 마나와 마력이 충돌하자 둘을 중심을 강대한 폭풍이 일어나며 아슬란의 공간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두두두!
공간 결계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집중하며 공격을 펼쳤다.
김건과 검천호도 자신의 상대인 데스 나이트들과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 * *
“크하하하하핫! 아주 흥미롭구나. 흥미로워.”
“무슨 있으십니까?”
“너는 이 기운이 감지되지 않느냐?”
“지그문트 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그문트는 록스가 마련한 은신처에서 키메라 세포와의 융합에 신경 쓰고 있던 중, 갑자기 느껴지는 익숙한 마나와 마력을 감지하고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이 공간의 틈에서 격렬하게 싸우고 있구나. 우연치 않게 본왕이 감지했을 뿐, 이를 느끼는 자는 드물 것이야.”
극도로 정신을 집중하고, 그 또한 공간의 틈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김강현과 라우드가 싸우는 기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록스는 알 수 없는 지그문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도 예지할 수 없는 게 운명이니라. 설마 그 둘이 그곳에서 만날 줄은 그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야.”
“네?”
“네 일을 망친 놈이 한때 동료였던 자와 싸우고 있다.”
“제 일을 망친 놈이라면!”
그제야 록스는 지그문트의 말을 이해했다.
당시에는 이름도 알지 못했지만 김강현은 심혈을 기울여 키운 다크니스를 없앴고, 유럽 헌터협회에 의해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녀석이었다.
당연히 록스는 김강현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되는구나.’
지그문트는 지구에 나타나는 던전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고 있고, 심지어 누가 주도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전력을 던전에 분산하여 보관하고, 몇몇 던전에는 가장 쓸 만한다고 여긴 적들을 언데드로 만들어 보관해 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하필이면 김강현이 그 던전에 들어갔을 줄은 지그문트도,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지구에는 수천 개의 던전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가 특별하게 여기는 던전은 10개도 되지 않았으니까.
‘강현이 그들을 처치했으면 좋겠군.’
지그문트는 그와 동맹을 맺어 서로에 대해 간섭할 수 없었다.
어느 한쪽의 무력이 강해지면 이 동맹은 당연히 폐기될 것이기에 지그문트의 입장에선 그의 세력을 줄이는 것이 이득이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시킨 일은 어떻게 됐느냐?”
“다행히 지그문트 님께서 제 기억을 복구해 주신 덕분에 기대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
‘한시라도 키메라 세포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지그문트의 관심사를 하루라도 빨리 키메라 세포의 안정화였다.
‘라셀의 키메라 세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게 이렇게 큰 리스크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
단순히 키메라 세포에 담긴 라셀의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자신의 마력과 카메라 세포에 담긴 마나의 충돌로 인해 마력 역류가 빈번히 일어났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그들에겐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조력자로 찾은 것이 바로 흑무.
이 이야기를 들은 록스는 처음에는 이 결정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다크니스가 농락당했고, 이용당했었다.
하지만 지그문트가 흑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여 명령하면, 그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네. 지그문트 님의 예상대로 인간 개조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그의 세력 중 일부가 연구소를 꾸려 개량 인간을 개조하고 있답니다. 완벽한 결과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어디냐?”
록스는 다크 위저드로 낙인찍혔지만, 마법 실력은 건재했다.
그와 함께 인맥까지 동원하자 흑무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여력이 부족하여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직접 움직여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흑무의 세력은 견고하여 쉽게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번 록스가 보낸 사람들은 행방불명이 되거나 원인 불명의 사유로 죽임을 당했다.
“상관없다. 그만한 능력을 지녔다면 당연히 외부인들을 견제하는 게 당연하지. 직접 움직이자꾸나.”
“그럼 바로 출발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지그문트는 록스의 기억을 통해 흑무가 오러 기술뿐 아니라 흑마법, 주술 등 다양한 기술에 일가견이 있음을 확인했다.
단순히 흑마법으로 키메라 세포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지만, 언제나 최악은 대비해야 하는 법.
‘이제 머지않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지그문트는 김강현이 싸우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마음은 지금 당장에라도 공간을 찢고 싸움 장소로 가서 김강현과 겨루고 싶었으나, 아직 때가 아니었다.
분노를 누르고 누른 지그문트는 록스와 함께 힘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 * *
헬릭스와 본 드래곤의 싸움은 치열했다.
검은 불꽃과 새하얀 얼음이 서로를 향해 날아들었고,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크윽!”
헬릭스는 아슬란의 절대영도 마법에 직격당해 날개가 뻣뻣해지자 단숨에 검은 불꽃을 휘감아 얼음을 없앴다.
이 틈을 노리고 본 드래곤의 꼬리가 헬릭스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이스 실드!”
콰아아앙!
때마침 연세연이 얼음으로 된 방패를 만들어내 본 드래곤의 공격을 막아내며 헬릭스를 보호했다.
“고맙다. 인간!”
“아직 끝이 아니에요!”
뒤이어 아슬란의 얼음송곳들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날아들자, 헬릭스가 블러드 웨폰을 휘두르며 단숨에 검은 불꽃을 일으켜 상쇄했다.
‘이대론 끝이 없어. 아니, 이 몸과 인간의 패배다.’
헬릭스는 냉정하게 이 싸움의 끝을 예견했다.
다행히 연세연과 협조하여 아슬란과 본 드래곤을 라우드 일행과 떨어뜨려 놓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의 체력과 마나, 마력 운용이 힘들어졌다.
그나마 헬릭스는 대기 중의 마력을 보충하여 몸속의 마력량을 일정량 유지했지만, 연세연은 마나 보충이 어려워 육체적으로 헬릭스보다 빠르게 떨어졌다.
그나마 아티팩트에 담긴 헬릭스의 마력이 보호하고 있어 불꽃뿐 아니라 아슬란의 마법에도 버틸 수 있었다.
‘후우, 항상 나보다 빨리 마법을 시전하고 완성도가 높아!’
하지만 연세연은 다른 고민이 있었다.
바로 아슬란의 마법.
항상 연세연보다 0.5초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어, 점점 시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데 마법의 구현도 뛰어나 계속 밀리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아슬란을 살피며 그 비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만 발견하면 분명 놈들을 쓰러트릴 수 있어!’
이번 승부는 시간 싸움.
헬릭스의 힘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때 아슬란의 기세를 누르고 제압할 수 있다면, 충분히 본 드래곤과 함께 쓰러트릴 수 있을 텐데!
[잘 들어라. 놈은 온전히 수식으로 마법을 구현하는 반면, 너는 스킬의 발현으로 마법을 만들어내지. 서로 마법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놈의 것을 훔쳐선 소용없다.]
‘그럼 어떻게?’
[방법은 이미 네가 가지고 있느니라.]
연세연을 가만히 지켜보던 헬릭스는 슬며시 힌트를 던졌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알려주고 싶지만, 나중에 그녀의 성장이 더뎌질 것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연세연은 마법을 시전하며 루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 * *
“내게 도움을 청한다고?”
“네. 얼음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연세연은 TV 방송을 통해 루크가 물의 피닉스를 얼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자유자재로 물과 얼음을 다루는 것에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고 싶었던 그녀는 따로 루크와 시간을 잡아 만남을 청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반복 수련이지. 마스터 소드와 같이 다니는 만큼 이건 계속하고 있겠지?”
“네. 하지만 검을 수련하다가 중간에 얼음을 다루는 만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알고 있었으며, 편하게 구현할 수 있는 스킬은 약점이 있어 의존하지 않았다.
단순히 말에 의지를 담아 스킬을 시전할 경우, 정해놓은 레퍼토리처럼 구현하게 된다.
하나 마나 컨트롤이 뛰어나다면 스킬의 위력 조절이 가능하다.
때문에 정말 마나 컨트롤이 중요한 싸움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흐음. 그렇다면 나도 이야기할 게 없는데, 그냥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라서.”
‘와, 재수!’
순간 연세연은 당장 이 자리를 탈출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루크는 열심히 수련하다 보니 지금의 경지를 이룬 것이 맞았다.
“흐음. 대신 내가 얻은 깨달음을 하나 알려주마. 이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네게 달렸다.”
말과 함께 루크는 양손을 들어 올렸다.
왼손에는 물이 가득 맺혀 있었고 오른손에는 얼음이 맺혀 있었다.
“양손에 있는 두 개가 똑같다고 생각하나?”
“서로 다르지 않나요? 어떻게 물과 얼음이 똑같을 수 있나요?”
“그런가? 내가 볼 때는 똑같은데 말이다.”
“네?”
그런데 루크는 이상한 말만 할 뿐이었다.
물과 얼음은 엄연히 다른데 똑같다고 할 수 있는지 연세연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은 다 했고, 여기서 얻을 수 있을지는 네게 달렸다.”
* * *
연세연은 루크와의 회상을 마치며 대답을 이끌어냈다.
‘물과 얼음의 외형은 다르더라도 둘 다 본질은 물이야. 물을 다루는 루크 님이 얼음을 다룰 수 있었던 건 물을 변형시켜서고.’
그렇다면 그녀 또한 물을 다룰 수 있고, 얼음을 강화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지금의 실력으론 역부족이었다.
‘지구의 수학을 여기에 도입하면 어떨까?’
지금까지 그녀는 마나를 운용하여 얼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을 캐스팅하는 것처럼 계산하여 스킬을 시전할 수 있다면, 그녀만의 마법 체계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씩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연세연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낀 이는 헬릭스였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지만, 연세연이 구현하는 얼음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중간에 헤매기라도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아까와는 달라지고 있었다.
‘이번 싸움의 키는 이 인간이 쥐고 있을지 모르겠어.’
헬릭스가 연세연을 자신의 싸움에 합류시킨 이유는 아슬란을 통해 슬럼프를 이겨내길 원해서였다.
기대대로 연세연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자, 헬릭스는 아슬란을 쓰러트릴 준비를 시작했다.
‘놈의 정신세계에 잠입할 틈이 필요하다!’
이 싸움은 물리적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을 터.
헬릭스는 아슬란의 정신을 원래대로 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본 드래곤을 공략하면서도 아슬란에 대한 견제를 꾸준히 하며, 끊임없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대론 위험해.’
연세연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나와 기세가 바뀐 것을 감지한 아슬란도 위기를 느꼈다.
그녀는 이 싸움을 통해 성장하고 있었고, 내버려 두었다간 자신마저 잡아먹어 성장할 것 같았다.
‘이르긴 하지만 승부를 볼까? 서둘러 마무리하고 라우드 녀석을 도와줘야 할 테니까.’
결심이 선 아슬란은 싸움 중간중간 마력을 모으며 헬릭스와 연세연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틈을 노렸다.
* * *
‘헬릭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야!’
영혼의 계약을 통해 서로 생각을 공유한 김강현은 시간을 더 끌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동의했다.
“고작 이 정도로 도발한 거냐? 좀 더 검을 휘둘러보란 말이다!”
“아직 입이 살아 있는 걸 보니 좀 더 텐션을 높여도 되겠네.”
“기대하지.”
김강현은 마검을 휘두르며 계속 라우드를 압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라우드 녀석! 예전의 약점 따위들은 모조리 없애 버렸어. 아니, 언데드가 된 지금은 약점이 없어졌어!’
김강현은 기억을 더듬어 라우드의 약점을 공략했지만 시간이 지난만큼 일부는 약점을 보완하여 방어에 치중했고, 일부는 언데드의 불사 능력으로 무의미해져 버렸다.
언데드가 되어 상처를 입어도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금방 회복되니 단숨에 죽일 수 있는 위력의 공격이 아니면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기술을 쓰기에는 시간이 걸리는데, 이 시간을 라우드가 기다려 줄 리 없었다.
“저쪽은 끝이 났군.”
라우드는 김강현에게 검을 휘두르며 검천호 쪽을 힐끔 바라봤다.
“후우. 다음 상대는 누구냐?”
검천호는 자신에게 배정된 데스 나이트, 라의 기사단의 부단장을 쓰러트린 후 멀쩡하게 서 있는 데스 나이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가 상대했던 데스 나이트는 검천호에게 입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채 기절한 상태였다.
‘만만한 놈이 아니었군. 하지만 얻는 게 있어!’
땀으로 옷은 축축하고, 몸은 상처투성이.
하지만 검천호의 얼굴은 희열로 가득했다.
이렇게 몸을 쓴 것이 오랜만이었다.
정확히는 유럽에서 부상을 입은 후 정상인 컨디션으로 싸우는 게 처음이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다듬었던 중력의 검을 실전에서 쓰며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감이 잡혔다.
“크아아아앗!”
김건은 데스 나이트에게 밀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그때, 라우드가 검에 오러를 강하게 실으며 폭발을 일으켜 김강현과 거리를 두었다.
“아무래도 판단이 잘못된 것 같군.”
그는 부단장들의 싸움을 보며 말했다.
“어느 한쪽이 죽어야 하는 싸움에서 순수하게 일대일 승부라니! 장난은 여기서 끝을 내지.”
그러더니 데스 나이트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당장 한꺼번에 덤빌 기세를 취했다.
게다가 검천호에게 쓰러졌던 데스 나이트는 마력을 보충해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잠깐. 라우드. 항상 승부는 정정당당히 이루어져야 하며, 무리 지어 싸우는 것은 기사의 도리가 아니라는 네 기사도를 꺾는 거냐?”
“배신자 주제에 기사도를 논하다니! 나는, 나는!”
갑자기 라우드의 말이 바뀌자 김강현은 반박했다.
그런데 반응이 이상했다.
마치 혼란스러워하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혹시 정신 지배가 완벽하게 안 된 게 아닐까?’
김강현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배신자는 우리들이 아니고 너희들이 아니냐? 데스 나이트가 된 너희들 말이다!”
“거짓말하지 마라. 우리들은 죽었으면 죽었지, 어둠의 기사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참혹한 용마전쟁을 겪었는데! 어떻게 언데드 따위가 될 생각을!”
라우드는 목의 핏대가 설 정도로 발악하며 소리쳤고, 그 뒤의 데스 나이트들도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들 대신 라셀 님과 헬릭스 님이 마족과의 싸움으로 돌아가셨다! 마족들과 그 편에 붙은 배신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말과 함께 라우드는 지끈거리는 머리의 통증을 감추며 마력을 내뿜었다.
데스 나이트들 또한 감정을 동조했고 금방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분노를 드러냈다.
하지만 덕분에 김강현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본인들이 데스 나이트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 눈앞의 헬릭스를 알아보지 못해.’
잠깐의 대화였지만 조금이나마 그들을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이 엿보였다.
“검 어르신, 건. 앞으로 더 격렬한 싸움이 될 테니 제게서 떨어지지 마세요.”
“저들의 기세가 무서운 거냐?”
“아닙니다. 저들을 쓰러트리기 위한 전술입니다.”
“너를 보호해 달라는 말이구나.”
“일방적인 보호는 아니니 적당히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김강현과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머릿속으로 라우드를 비롯한 데스 나이트들을 공략할 방법을 세웠다.
그것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어서 시간을 벌어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셋까지는 지금 상대로 가능하고, 그 이상은 목숨을 걸어야 해.’
‘후우, 어떻게든 쓰러트릴 수 있다면!’
검천호는 데스 나이트와의 실력 격차를 가늠했다.
저들은 기사들로, 일대일 승부에도 능하지만 합격진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터.
김건은 아직 그만의 실력으로 데스 나이트를 온전히 상대하는 것이 어려웠으므로, 김강현의 제안이 가뭄 속 단비와 같았다.
“상관없다. 그냥 배신자들은 모두 죽이면 돼!”
라우드는 통증의 원인인 김강현을 없애면 된다고 판단했다.
데스 나이트들 또한 그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테라 길드원들을 향해 돌격했다.
* * *
‘역시 그 수밖에 없겠구나.’
김강현이 헬릭스의 기억을 읽은 것처럼, 헬릭스도 김강현의 기억을 잃고 판단에 확신을 가졌다.
콰앙! 쾅! 콰아앙!
하지만 우선 눈앞의 싸움에 집중했다.
계속 불꽃과 얼음이 서로 겨누어지며 폭발이 일어나고 있어 한시라도 정신을 파는 순간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긴박했다.
“연세연. 과격한 몸싸움이 있을 테니 꽉 붙잡아라.”
“네? 우아아앗!”
헬릭스는 말과 함께 본 드래곤에게 달려들며 블러드 웨폰을 휘둘렀다.
그동안 헬릭스는 본 드래곤과 일정 간격을 둔 채 원거리 형태의 공격만을 펼치고 있었다.
근접전으로 들어가면 본 드래곤에게서 뿜어지는 냉기를 버텨야 하는데 불꽃을 다루는 헬릭스에겐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아슬란과 본 드래곤을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이 보였으니, 리스크를 무시하고 공격을 펼칠 뿐이었다.
“응?!”
갑작스럽게 헬릭스의 공격 패턴이 바뀌자 아슬란은 살짝 당황했지만, 금방 본 드래곤에게 명령을 내려 채찍을 막아냄과 브레스를 쏘았다.
콰아아아아앙!
“어림없습니다!”
그 순간, 연세연이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쏘아보내며 브레스의 방향을 틀었다.
쿠우웅!
블러드 웨폰이 본 드래곤을 옭아매며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자, 헬릭스는 발톱에 마력을 실어 본 드래곤에게 날렸다.
“크아아아앙!”
“젠장!”
헬릭스의 마력에는 볼꽃의 기운이 담겨 있어 본 드래곤에겐 상극이나 다름없었다.
아슬란은 헬릭스의 마력을 없애기 위해 급히 자신의 마력을 본 드래곤에게 주입했다.
그때 헬릭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아슬란.”
“마족 따위가 어찌 내 이름을?!”
“라 제국의 대마법사라고 소문이 자자하지. 그 이름은 이 몸이 지어주었는데 기억나지 않느냐?”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지금 누가 헛소리를 하는지 정녕 모르는군. 한때 거지였던 아이야.”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과거를 언급하자, 크게 놀란 아슬란의 마력 운용이 흐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