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테라의 흔적 (77/119)

4장. 테라의 흔적

“돌연변이 몬스터?”

“저게 말이 됩니까?”

“이 몸도 저런 몬스터는 한 번도 본 적 없구나.”

“용아병과 리빙 아머가 하나라고?”

자신들을 향해 용아병과 리빙 아머를 이끌고 오는 몬스터.

그런데 그 모습이 독특했다.

다른 용아병들보다 덩치가 2배 이상 크고 리빙 아머를 입고 있었다.

“우우우우!!!”

보스 몬스터로 짐작되는 돌연변이 용아병이 들고 있는 칼을 높게 들며 소리치자, 그 뒤에 있던 용아병들이 발을 구르고 리빙 아머들은 진동을 내뿜었다.

“용아병과 리빙 아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동일한 만큼, 두 개의 자아가 하나로 합쳐졌을 가능성이 높구나.”

“원래 리빙 아머는 입을 수 없지 않나?”

검천호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았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죠. 입는 순간 착용자는 마력에 전염되어 의지를 잃고 리빙 아머에 조종당하니까요.”

용아병은 드래곤의 이빨을 땅에 묻은 후 마력을 통해 탄생되며, 리빙 아머는 저주받은 갑옷에 마력을 부여하여 탄생된다.

‘처음부터 같이 만들어졌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야!’

드래곤 혹은 마족 등 고위 종족의 개입되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앞의 몬스터에 집중해야 될 때다.

‘마법 공격은 소용없고, 그나마 물리 공격만이 수월하겠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돌연변이 용아병이 입고 있는 리빙 아머는 마법 흡수막을 펼치고 있었다.

마법은 닿는 순간 흡수되어 바로 리빙 아머의 마력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놈이 들고 있는 칼에서도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상태창으로 확인해 보니 적의 마나와 마력을 흡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정말 미치겠네.”

“이래서 사람들이 S급 던전이라 부르던 거였군요.”

“젠장, 정말 죽을 각오로 싸워야겠다!”

갑자기, 기존의 용아병들이 리빙 아머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보통 용아병은 마법 공격에, 리빙 아머는 물리 공격에 취약하여 이를 이용한 전술을 사용했었는데, 약점이 없어져 버린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돌연변이 용아병처럼 급격하게 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귀찮지만 이 몸도 적극적으로 나서야겠구나.”

헬릭스는 폴리모프 마법으로 인간 형태로 몸을 바꾸며 허공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블러드 웨폰을 꺼내며 바로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오호, 아이들의 말대로 사람으로 변하는 걸 보니 신기하군.”

“그런가? 그렇다면 위대한 헬릭스 님을 경배하라.”

“그건 거절하지.”

“잡담은 그만하고 집중. 제가 돌연변이 용아병을 상대하고, 건과 헬릭스가 한 조를 이룹니다. 검 어르신과 세연이가 한 조를 이루고요.”

“강현아, 내가 상대하면 안 되겠느냐? 저런 녀석은 다시 만나기 힘들 것 같아 말이다.”

“검 어르신껜 죄송하지만 상성이 좋지 않습니다. 일대일 승부라면 시간이 걸려도 쓰러트릴 수 있겠지만 상황도 좋지 않고요.”

김강현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지금의 그는 여러 사람의 생사를 짊어지고 있는 수장으로서 단호하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치에 맞는 김강현의 설명에 검천호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저 보스 몬스터만 쓰러트리면 모든 싸움이 끝납니다. 잠깐만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용아병이 리빙 아머를 입는 것은 돌연변이 용아병의 스킬 영향이었다.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시간을 버는 것이라면 30여 분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다른 이들이 몬스터들을 막는 동안 김강현은 오러를 만들어 돌연변이 용아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돌연변이 용아병도 검은빛의 오러를 내뿜으며 이를 막아냈다.

“우우우우!!”

“내가 아는 용아병과는 확실히 달라.”

김강현은 돌연변이 용아병과 힘겨루기를 하며 자세히 그를 살폈다.

일반적인 용아병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고, 명령을 통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몬스터였다.

“어? 젠장!”

캉!!

그 순간.

돌연변이 용아병이 오른발을 걸며 단숨에 김강현의 균형을 흩트린 동시에 허리를 향해 오러 실린 칼을 휘둘렀다.

다행히 옷 안쪽에 바실리스크 가죽으로 만든 내의를 입고 있어 공격을 튕겨냈다.

“단순히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으로 생각하고 싸워야겠네.”

눈앞의 돌연변이 용아병은 상대에 따라 변칙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생각이 들자, 김강현은 인피니티 소드를 펼치며 마검을 휘둘렀다.

이에 돌연변이 용아병은 자세를 잡더니 김강현의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반격을 취했다.

“어? 어?!”

‘몬스터가 검술을 익히고 있어?’

몇 차례 검이 부딪치다 보니 돌연변이 용아병이 상당한 수준의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하루 이틀 정도 폼으로 익힌 것이 아니라 상당 기간 수련한 듯 능숙했다.

‘왠지 낯이 익어? 기억 속에 있는 검술이야.’

돌연변이 용아병과 싸울수록 김강현은 그의 검술에 적응해 미리 검로를 읽어 방어에 나섰다.

그때마다 돌연변이 용아병이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무시하고 맹렬한 공세를 펼쳤다.

콰아아앙!!

검로의 흐름을 끊기 위해 일부로 오러를 폭발시켜 거리를 둔 순간.

“라 제국의 기사 검술?”

돌연변이 용아병이 펼치는 검술의 정체가 떠올렸다.

말 그대로 기사 이상만 익힐 수 있는 제국의 검술로, 아카데미에서 귀족의 자제들도 수련할 수 있도록 개방된 검술이었다.

절대 위력이 약한 검술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 검술을 익혀 소드 마스터가 된 기사들이 많았고, 상위 단계인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돌입한 기사도 있었다.

김강현이 보았을 때 돌연변이 용아병은 사람이라면 최소 30년은 수련했을 정도로 굉장히 능숙하게 기사 검술을 다루고 있었다.

“젠장, 약점을 파고들 수 없어.”

그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기사 검술의 약점을 떠올렸지만 리빙 아머의 마법으로 보완하고 있어 빈틈이 없었다.

그는 머리 한구석으로 기사 검술을 오랜 시간 익힌 사람이 누구였는지 떠올리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는 테라 길드원들도 치열했다.

아니. 김건과 헬릭스 쪽은 김건만 치열했다.

“시간만 벌어주면 된다. 놈들이 이 몸 뒤로 가지 못하게 막거라!”

“알겠습니다!!”

“정신 차려! 고작 이 정도로 앓는 소리 내면 이 자리에서 죽어!!”

헬릭스는 몬스터들이 돌연변이 용아병과 김강현의 싸움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방어에 집중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김건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보다 더 힘든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김건은 호흡을 헐떡이며 피어스 실드로 용아병들의 칼날을 막아냈다.

그렇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검천호는 김건과 협력하여 몬스터들과 싸웠지만, 헬릭스는 김건이 계속 몬스터들과 싸울 수 있도록 은근히 몰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한계의 한계를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직 헬릭스가 보았을 때 김건에겐 숨은 능력이 많이 남아 있었다.

김강현도 이를 알고 있으나 정말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밀어붙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헬릭스는 달랐다.

선천적으로 악마의 피를 타고난 발록으로, 한 줄기 목숨만 부지시킬 정도로 한계에 빠트릴 자신이 있었다.

그 의도대로 김건은 땀을 뻘뻘 흘리며 극한의 한계를 맛보고 있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니겠지? 내가 죽더라도 눈앞의 적 하나라도 더 죽이고 간다!!’

김건은 몬스터들의 수가 줄었음에도 용아병과 리빙 아머가 하나로 합쳐져 공격하자 곤혹스러웠다.

용아병의 칼이 날아들다가, 어느 순간 리빙 아머의 마법이 날아들어 정신없이 공격 패턴을 바꿔야 했다.

그럼에도 눈앞의 적을 하나하나 줄이자는 마음가짐으로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다.

“어?”

그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새하얀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고, 눈앞에 가득했던 몬스터들은 사라져 있었다.

더불어 푸른 선들 가운데 한 줄기 붉은 점이 보이자, 무의식중에 김건은 피어스 실드로 차지를 펼쳤다.

‘몸이 가벼워.’

계속되는 싸움과 바닥난 체력으로 당장에라도 쓰러져 누워 쉬고 싶을 정도로 몸이 무거웠으나 지금만큼은 깃털처럼 굉장히 가벼웠다.

콰아아앙!!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어?’

굉음과 함께, 김건의 눈앞에 펼쳐졌던 새하얀 공간이 사라졌다.

“우우우우!!”

그런데 몇 차례의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던 용아병과 리빙 아머가 단 한 번의 공격에 쓰러지며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어? 어?!”

“혼을 빼놓고 뭐 하는 거냐?! 어서 집중하지 못해!!”

“네?! 네!!”

그 모습을 본 김건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버버거리자, 헬릭스가 바로 소리쳤다.

다행히 몬스터들도 상황을 파악하느라고 대처가 늦었던 터라 서로 잠깐 멍해져 있었다.

그런 김건이 등을 돌리며 계속 싸우는 사이, 헬릭스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내 판단이 맞았구나. 잠시나마 무의식의 세계에 빠진 걸 보면 말이야.’

인간의 몸은 신기하여 지치고 힘들면 자신도 모르게 전신의 힘이 빠지면서 정말 필요한 동작만 하게 되는데, 그 순간 완벽한 타이밍의 공격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테라와 똑같이 헌터의 경우에는 극한의 정신력이 발휘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의 길이 보여 정확하게 약점을 파악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까지 몰입했는지 모르지만 김건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 감각을 잊지 마라. 너를 S급 헌터로 만들 기회니까 말이다.’

헬릭스의 생각대로 김건은 무의식의 세계에 빠졌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피어스 실드를 휘두르며 싸움에 집중했다.

자신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피어스 실드를 휘두르는 팔이 가볍고, 마나 회복이 빨라진 것이 느껴졌다.

“크으읏. 얼마든지 덤벼!!”

한 단계 성장했다는 즐거움에 김건은 지치고 힘들지만 몬스터들을 향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반면, 검천호와 연세연은 이 쪽과는 달리 최악의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집중해라! 이대론 뚫릴 수밖에 없다.”

“네. 검 어르신.”

연세연은 검천호의 호통에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마나를 운용해 얼음 공격을 시도했지만, 전과 같은 위력은 나타나지 않고 중간중간 실수가 만연하게 보였다.

이렇다 보니 같이 싸울수록 연세연은 점점 짐이 되고, 검천호가 나서는 부분이 많아졌다.

당사자는 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대론 안 돼! 무슨 방법을, 수를 써야 해!!’

다급한 마음에 연세연은 마나 포션을 마셨고, 마나가 차오르자 바로 운용하여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머리 위에 만들었다.

단숨에 눈앞의 몬스터들을 얼려 단숨에 검천호가 없앨 수 있도록 도와줄 계획이었다.

“읍! 콜록! 콜록!!”

“세, 세연아!”

그때,

갑자기 연세연의 입가에 한 줄기 피가 흐르더니 마나 역류 현상이 일어났다.

* * *

“세, 세연아!”

다급히 검천호가 그녀를 불렀지만, 마나 역류의 영향으로 정신을 잃은 뒤였다.

“저리 꺼지지 못해!!”

검천호는 크게 오러를 휘두르며 눈앞의 몬스터들을 쓰러트렸지만, 계속해서 나타나는 놈들 때문에 전진할 수가 없었다.

연세연이 쓰러진 틈에 당한 수모를 갚아주려는 듯, 용아병들이 검을 휘두르고 리빙 아머들은 마법을 시전했다.

“안 돼!”

‘세연이가 다치면 나중에 철무 얼굴을 어떻게 보라고?’

연철무가 연세연이 테라 길드에 가입할 수 있도록 허락한 이유 중 하나가 검천호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친구이기도 하지만, 검천호의 실력이 뛰어나 위험에 빠지더라도 최소한 목숨은 건질 수 있겠다는 확신에서였다.

이를 검천호도 알고 있었기에 연철무에게 걱정 말라고 단언했건만.

연세연이 바로 눈앞에서 위험에 빠졌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심한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파아아앗!!

그녀가 착용하고 있던 목걸이가 검은빛을 내뿜으며 몬스터들을 감쌌다.

“이게 무슨?!”

검은빛은 불꽃이 되어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불태워 버렸다.

몇몇 용아병들이 겁내지 않고 덤벼보았으나, 금방 검은 불꽃에 의해 소멸되자 접근하지 못했다.

몬스터들이 당황하는 틈을 노려 검천호는 순식간에 연세연에게 다가갔지만.

신기하게도 검은 불꽃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검천호는 검은 불꽃에서 헬릭스의 마력이 감지되어 어떻게 된 것인지 묻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헬릭스는 여전히 김건과 함께 싸우기 바빠 보였다.

“아! 아티팩트!”

그는 연세연이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가 허공에 떠올라 빛나는 것을 보며 정체를 알아차렸다.

“정말 운이 좋구나.”

스펠 바이러스와 바실리스크 레이드용으로 김강현이 제작했던 아티팩트.

안전을 위해 정신을 잃거나 위험에 빠졌을 경우 주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헬릭스의 불꽃을 넣은 것이었다.

더불어 길드원들이 보호 불꽃에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법 수식을 추가했다.

이번 던전에 마력이 가득하여 미리 모든 길드원들에게 이 아티팩트를 준비시켰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발동된 것.

평소에도 연세연은 김강현이 준 선물이라는 생각에 잘 착용하고 다녔던 터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한데 얼마나 지속되는 거지?’

[불꽃은 30여 분간 지속될 테니 걱정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하거라.]

연세연을 이대로 두고 움직여도 될지 고민하던 찰나, 마침 헬릭스가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그 말에 검천호는 김강현에게 다가가려는 몬스터들을 다시 막아서기 시작했다.

* * *

‘어떻게 해야 놈을 쓰러트릴 수 있지?’

김강현은 몇 차례에 걸쳐 돌연변이 용아병을 쓰러트리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시도했으나 답이 보이지 않자 답답함을 느꼈다.

‘힘으로도, 스킬로도, 변칙적인 수도, 오러로도 소용이 없나?’

20여 분의 공방 동안 김강현은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방법을 강구했으나 소용없었다.

돌연변이 용아병이 입고 있는 리빙 아머가 가장 큰 문제였다.

마법뿐 아니라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오러를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려 공격조차 조심스러웠다.

‘내가 모르는 약점이 있을 거야. 세상에 불가능한 공략은 없어.’

하지만 김강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돌연변이 용아병을 살폈다.

지금까지 싸웠던 적들 중 결코 쉬운 적들은 없었지만 그만의 공략법을 알아내어 위기를 헤쳐오지 않았던가.

“응? 저게 뭐지?”

그때, 김강현의 시야에 돌연변이 용아병의 특이한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타이밍을 재? 용아병에게 습관이란 게 있었나?’

정확히는 검을 잡고 있는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김강현의 타이밍을 재거나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용아병은 상위 종족의 마법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기억과 습관이 만들어질 리 없었다.

게다가 숨을 쉬지 않아도 되는 존재이니 호흡도 고를 필요가 없었다.

“흐아앗!”

“우우우!!”

혹시나 싶어 김강현은 견제로 돌연변이 용아병과 대치하며 확인했다.

똑같이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타이밍을 재는 것이 보였다.

‘제국 기사 검술과 손가락으로 타이밍을 잰다면?’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테라의 라셀이었을 때, 누군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발로 타이밍을 재는 습관은 버리는 게 어떠냐? 적과 싸우다가 들키면 바로 죽을 수 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하지 않으면 제가 불안해서 안 되겠습니다. 라셀 님.”

“그럼 최대한 적의 눈에 띄지 말아야지. 그럼 검을 쥔 손의 손가락으로 재는 건?”

“싸우는 데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발로 할 경우 균형을 잃을 경우도 있어 더 위험해. 내 경험상 힘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어 오히려 유용할 듯싶구나. 잘 가리기만 하면 적에게 들키지도 않을 거고.”

“감사합니다!”

그는 기사단에 처음 임명된 초임 기사였는데, 라셀을 존경한다면서 열렬하게 쫓아다니며 배움을 청하곤 했다.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끈질기게 쫓아다녀서 결국 귀찮아하면서도 가르침을 주곤 했다.

결국 그는 가르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다른 기사들보다 성장이 빨랐고, 2년 만에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블루 기사단장 레이크.’

훗날 제국의 5대 기사 중 한 명이 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사.

레이크의 오러는 하늘처럼 밝은 파란색을 띠었다.

‘어째서 돌연변이 용아병이 그처럼 보이는 걸까?’

의문점은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돌연변이 용아병이 레이크라면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인피니티 포스!”

김강현은 마검에 오러를 가득 실은 채 맹렬하게 공격을 펼쳤다.

“우우우우!!”

그러나 돌연변이 용아병에겐 빈틈이 없었다.

머리, 어깨, 팔 등 다양하게 공략했지만 검으로 막거나 막지 못하는 부분은 리빙 아머의 보호막을 통해 철두철미하게 막아냈다.

수십 줄기의 오러 소드로 동시에 공격하기도 했지만 보호막을 뚫고 간신히 얕은 상처만 내는 데다 금방 복구되었다.

게다가 공격할 때마다 아티팩트에 의해 마나가 흡수되어 지치지 않고 오히려 힘이 강해지는 역효과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강현은 계속 오러를 뿜어내며 공격을 펼칠 뿐이었다.

“저, 저게 뭐 하는 거야?”

“헬릭스 님,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저러다가 먼저 쓰러질 것 같습니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놈이 아니니 기다려 봐라.”

검천호와 김건은 김강현과 돌연변이 용아병의 싸움을 지켜보다, 점점 상황이 좋지 않자 불안감을 느꼈다.

‘여차하면 이 몸이 상대하면 될 터.’

유일하게 헬릭스만이 차분하게 답했지만, 그럼에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이곳은 마력이 풍부하여 밖과 달리 무리해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 그동안 고갈된 마력을 보충하며 집약시켜 마력 탱크를 준비했다.

사람들에게 내색하진 않지만 그 또한 S급 던전이 처음이고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이쯤 되면 나올 때가 됐는데.’

김강현은 눈앞에 있는 돌연변이 용아병이 레이크라고 생각하고 상대하며, ‘그것’을 기다렸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공격을 펼치고 일부러 타이밍을 유도하며 마검을 휘둘렀다.

‘온다!’

그때, 돌연변이 용아병의 마력 운용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마력을 리빙 아머의 보호막과 나누었는데, 갑자기 검 끝에 모든 마력을 집중됐다.

무방비한 상태가 된 돌연변이 용아병의 검 끝이 정확히 김강현의 목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 움직임은 눈 깜빡할 찰나에 이루어져 차마 막을 틈이 없었다.

파앗!

“길드장님!”

“강현아!”

검천호와 김건은 제대로 된 상황을 보지 못했지만, 갑자기 바뀐 돌연변이 용아병의 기세와 공격에 놀라 소리쳤다.

방금 공격은 자신들이라 하더라도 막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했으며, 일순간 검에 마력 소용돌이가 맺힐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크으으윽.”

돌연변이 용아병의 검이 김강현의 몸을 꿰뚫고 치솟았다.

김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흘렀다.

‘미리 예상하고 방어했지만, 생각보다 치명상을 입었어.’

처음 노려졌던 곳은 목이었지만, 방향을 틀어 왼쪽 팔이 꿰뚫렸다.

‘레이크라면 적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카운터 공격을 할 거다!’

김강현은 냉정하게 레이크의 공격 스타일을 떠올렸다.

그는 효율적인 싸움을 추구해 다수와의 싸움에서는 적은 마나로 적을 죽일 수 있는 스킬들을 사용했다.

그리고 일대일 승부에서는 철저하게 수비를 하다가 카운터 공격으로 적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가 손가락으로 타이밍을 재는 결정적인 이유는 카운터 공격을 펼치기 위해서였던 것.

물론 카운터 공격을 펼치는 순간 완전히 빈틈이 되기 때문에 역으로 받으면 오히려 치명적이지만.

이런 상황을 당하지 않기 위해 항상 완벽한 타이밍을 노렸었다.

김강현은 자신이 빈틈을 보이면 반드시 카운터 공격을 펼칠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우우우!!”

돌연변이 용아병은 카운터 공격이 실패하자 급히 팔에 꽂혀 있는 검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김강현이 거리를 두며 물러나자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카운터 공격을 펼치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았던 터라 그 역시 무방비 상태였다.

“흐아아아앗!!”

일부로 팔을 내어주고 만든 기회인 만큼, 김강현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마검에 실린 오러 소드를 돌연변이 용아병의 가슴을 향해 뿌렸다.

리빙 아머가 부서지고 놈의 신체가 파괴되어 갔다.

“우우우우…….”

파파파팟!

결국 돌연변이 용아병은 부서지며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 순간 그와 김강현의 시선이 부딪쳤다.

“어?”

‘감사합니다. 라셀 님.’

원래 용아병은 마법으로 태어난 몬스터인 만큼 감정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런데 마치 미소를 짓는 듯한 느낌이라니.

“……뒤는 내게 맡기고 편안하게 쉬어라. 레이크.”

김강현은 돌연변이 용아병, 아니, 레이크를 향해 닿을지 모르는 대답을 건네며 미소 지었다.

이와 함께 레이크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크윽.”

김강현은 팔에 꽂힌 레이크의 검을 뽑아 들었다.

‘확실해. 이 검은 녀석이 쓰던 거야.’

오랜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아 녹이 슬어 있었지만, 이 검은 레이크가 애지중지하게 아끼던 레이피어였다.

팔에서 피가 흘렀지만 김강현은 개의치 않고 레이크의 검을 왼손으로 들어 전신에서 오러를 내뿜었다.

* * *

“지금 당장 가까이 오너라.”

“네?”

“마법을 시전할 테니 당황하지 말고.”

헬릭스는 김강현에게서 뿜어지는 기세를 감지하고 불꽃 마법을 중단한 채 테라 길드원들에게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검천호와 김건은 살짝 당황한 기색이 보였지만, 바로 플라이 마법이 시전되며 연세연과 함께 그들의 몸이 떠올랐다.

“우우우우!”

“크아아아앗!”

몬스터들에겐 그들이 도망치는 것으로 보였는지 허공을 향해 공격을 펼치려고 했다.

그런데 시야 밖에 있던 한 사람으로부터 강대한 오러가 감지되었다.

놈들이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두 개의 검을 들고 있는 김강현이 있었다.

“흐아아앗!”

김강현은 두 개의 검에 5m 크기의 오러 소드를 만든 후 크게 옆으로 휘둘렀다.

오러는 마치 원형 칼날이 된 듯 단숨에 몬스터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파아아아앗!

오러 칼날은 전신을 덮을 정도로 커 몸을 숙여도 피할 수 없었고, 도망쳐도 끝까지 쫓아갔다.

“저 녀석들이 단숨에 쓰러진다고?”

“오러를 얼마나 집약시킨 거야?”

검천호와 김건은 순식간에 소멸되는 몬스터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감탄할 뿐이었다.

특히 김건은 자신의 오러 공격은 튕겨내며 반격하던 녀석들이 김강현의 오러 공격은 대항하지 못하고 쓰러지자 실력 차를 다시 한번 느꼈다.

검천호는 저놈들을 한 번에 죽이기 위해서 필요한 마나 양이 얼마나 들어갈지 짐작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아, 하아.”

오러 칼날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황폐했다.

주변에 빽빽하게 세워져 있던 나무들이 베어지며 땅도 휩쓸려 밀려나 살아남은 몬스터들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김강현은 호흡을 고르며 몬스터들을 보았다.

움찔!

몬스터들은 김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아무리 본능이 없다고 알려진 용아병과 리빙 아머라도 눈앞에서 수십 마리의 동족들이 단숨에 사라지는 것을 보니 움츠러든 모양이었다.

상대방은 자신들을 이끌던 돌연변이 용아병을 쓰러트린 강자였다.

돌연변이 용아병이 없어지자 그들에게 적용되던 일체화 효과가 사라져 용아병들은 리빙 아머를 입을 수 없었다.

“우우우우-”

승산이 없음을 깨달은 몬스터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며 김강현은 양손에 든 검을 내려놓았다.

“강현 형님!”

“강현아. 괜찮으냐?”

“네. 조금 무리하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그보다 세연이는?”

“이쪽 인간은 걱정 마라.”

몬스터들이 사라지자 그제야 허공에 떠 있던 테라 길드원들이 김강현에게 다가왔다.

그사이 헬릭스는 연세연을 감싸고 있던 검은 불꽃을 회수함과 동시에, 아티팩트에 마력을 보충하여 또다시 위험이 발생할 시 작동할 수 있게 조치했다.

파사사사삭!

그때, 김강현이 들고 있던 레이크의 검이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어, 검이?”

“거의 수명이 다한 검이었어. 아마 주인을 따라간 걸 거야.”

“네?”

이를 예상했던 터라 김강현은 담담하게 검의 가루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김건은 김강현의 뜻 모를 말이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기웃거렸다.

“우선 야영지부터 정할까? 이대로 계속 이동하는 건 무리고, 할 이야기도 많을 거야.”

“그게 좋겠구나. 다들 지쳐 있는 상황이라 안전한 장소를 알아보자꾸나.”

김강현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 거의 10시간가량을 쉬지 않고 싸웠고, 환경 자체가 달라 너무도 지쳐 있었다.

게다가 김강현은 큰 부상을 입고 있었고, 연세연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황이라 장거리 이동이 힘들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을 싸움 장소를 벗어나 한적한 공터에 자리를 잡고, 밤을 보내기로 했다.

* * *

타닥! 타닥!

공터 가운데에서 모닥불이 피어올라 나무 타는 소리가 울렸다.

그 짧은 시간에 어두워져서 일행은 밤을 이겨낼 준비를 해야 했다.

테라 길드원들은 바로 점검 및 휴식에 들어갔다.

검천호는 큰 부상이 없어 오늘 경험했던 싸움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시간을 보냈고, 김건은 헬릭스를 도와 김강현의 치료를 돕고 있었다.

헬릭스는 인간 형태에서 작은 강아지의 형태로 다시 폴리모프를 한 상태였다.

“헬릭스, 살살 부탁해.”

“쯧, 이 정도는 이 악물고 참거라.”

헬릭스는 마나석을 김강현의 상처 부위에 댔다.

그가 마법을 캐스팅하자 마나석에게서 마나가 김강현에게 흘러 들어가며 순식간에 구멍 뚫린 상처가 치료되었다.

치료받는 김강현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지며 펴질 줄 몰랐고, 신음 소리도 흘러나왔다.

“후아. 확실히 빠르긴 한데 너무 아파.”

“세상에 공짜는 없느니라.”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덕분에 수개월 동안 걸릴 치료가 30분 만에 치료되었다.

이렇게 기이한 광경에 김건은 할 말을 잃었다.

이건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이 방법이 적용되면 상처나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치료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만 하면 웬만한 상처는 다 치료되는 게 아닙니까?”

“아냐.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리스크도 너무 커.”

“네에?”

하지만 김강현의 만류에 의문점을 자아냈다.

“헬릭스가 마나석에 치료 마법진을 각인시킨 뒤 이를 강제로 뽑아내서 주입시키는 거다.”

“으, 그럼 엄청 고통스러울 텐데요?”

“그럴 수밖에. 상처 부위의 세포를 강제로 한꺼번에 시키는 만큼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어. 참고로 마취는 통하지 않아서 계속 마나를 운용해서 최대한 통증을 줄일 수밖에 없다.”

“아!”

그제야 김건은 김강현의 이마에 맺힌 땀을 발견했다.

“게다가 기절하는 순간 마나 역류가 일어나니 결코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 아니야. 다만,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부상을 얼른 치료한 것이지.”

김강현은 왼팔을 움직이며 상태를 살폈다.

분명 방금 전만 하더라도 깊은 상처가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상처의 흔적 없이 깨끗하게 치료되어 불편함이 없었다.

“세연아.”

“어?! 응?”

연세연은 김강현의 말에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싸우다가 마나 역류에 정신을 잃고 있던 연세연은 휴식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정신을 차렸다.

‘이러려고 들어온 게 아닌데.’

하지만 이런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이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잠깐 기분 전환 할 겸 정찰하러 가자.”

“아니…… 난.”

“엇! 저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연세연이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 김건이 자청해서 갈 것을 요청했다.

‘싸우면서 의문이 들었던 걸 강현 형님에게 물어보는 거야!’

최근 피어스 방패술을 펼치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었고, 피어스 실드를 다루면서 궁금한 점들을 해소하고 싶었다.

물론 김강현이 피어스 방패술을 익히고 있지 않지만, 그에게 전수해 준 만큼 자신보다 많이 알 거라 생각했다.

“너는 여기 남아서 식사 준비를 하거라. 식사 시간을 놓쳤더니 배가 많이 고프구나.”

“네에? 그렇지만…….”

“그럼 이 몸이 하랴? 아니면 저 인간이?”

“아닙니다. 제가 해야죠. 암요.”

하지만 김건의 바람은 헬릭스의 말에 무참히 깨졌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막내는 김건으로, 가장 궂은일을 해야 할 순번이었다.

김강현과 연세연이 정찰을 가면 남아 있는 길드원은 헬릭스와 검천호인데 두 사람에게 시킬 수도 없었다.

김건은 결국 속으로 눈물을 머금고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착한 건지, 눈치 없는 건지 모르겠구나.’

간신히 김강현과 연세연에게 김건을 떼어낸 헬릭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강현에게 맡겨놓으면 무언가 수가 나오겠지.’

최근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헬릭스는 연세연이 슬럼프에 빠졌음을 확신했다.

유럽에서 그녀를 수련시킬 때 보니 이유하와 김건을 많이 의식하고, 자신의 성장이 느리다는 것에 대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게 보였다.

스스로 잘 이겨낼 거라 생각했으니 쉽지 않은 모양이어서 김강현이라면 무슨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해 일부러 김건을 뺀 것이었다.

“건아, 음식을 많이 준비하거라. 배가 든든해야 내일도 잘 싸워야 하니 말이야.”

어쨌든 지금은 밥이 먼저.

평소 움직이지 않다 격렬하게 움직이니 배가 고팠다.

그사이 연세연은 김강현과 같이 숲속 안쪽으로 이동했다.

* * *

김강현과 연세연은 야영지를 중심으로 반경 500m를 살폈다.

몬스터들의 기척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100m 간격으로 마법 알람과 트랩을 설치했다.

주변이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이를 이용해 몰래 자신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

“…….”

단둘이 있는 게 어색한지 둘 다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정찰할 뿐이었다.

“세연아, 연 어르신은 잘 지내셔?”

“요즘 길드 일 하느라고 바쁘시지. 종종 대장간 일도 하시고.”

김강현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둘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연철무는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대장장이 일을 하기 위해 길드 업무는 오전 안에 모조리 끝내고 오후부턴 대장간에서 나오지 않는다니.

역시 블랙스미스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연 회장님도 잘 지내시고?”

“아버지? 당장에라도 테라 길드를 나오라고 하시는데?”

“뭐?”

“귀하게 키운 딸을 보낼 수 없다면서. 대체 할아버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야?”

“한번 만나서 오해를 풀어야겠네. 아니, 연 어르신께 부탁을 드려야 하나?”

“무슨 일이 있었구나.”

연종진은 김강현에게 이를 갈며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하고 있었다.

연세연이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러는지 몇 번이고 물었으나, 연종진은 입을 꽉 다물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게 말이지.”

김강현은 이명원을 통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양쪽 할아버님들이 우리 둘의 혼사를 추진하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반대한단 말이지?”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말이야.”

“푸하핫!”

드디어 연종진이 김강현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게 된 연세연은 어이가 없어 크게 웃었다.

굉장히 사소한 질투였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아직 아무런 사이도 아니기에 연종진의 설레발이 귀엽게 느껴지기 했다.

“그래도 별일 아니어서 다행이네. 난 또 두 사람이 크게 싸우지 않았나 싶었어.”

두 사람은 편하게 대화하며 계속 주변을 정찰하다가, 조심스레 김강현이 본론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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