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절대자는 역대급 헌터 8권
1장. 예상치 못한 적의 등장Ⅱ
“이야기쯤이야. 얼마든지요.”
로렌스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소파에 앉았다.
여기서 화를 내면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나중에 이를 빌미 삼아 꼬투리를 잡힐 수 있었다.
그는 행동하기 전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 행동하고 움직일 만큼 철저했다.
‘얼마 전에 누락시켰던 협력 건에 대해서? 아님 관리본부에 대해서?’
최근 자신의 계산에서 벗어나는 일들은 전부 김강현이 등장한 이후부터였다.
로렌스는 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며, 앞으로의 대화를 예상했다.
“바로 본론을 말하죠. 내일부터 모든 헌터들이 다크니스가 숨겨놓은 스펠 바이러스 치료제 조사에 돌입합니다.”
“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게이트를 관리하지 않으면 몬스터들이 튀어나올 수 있으니 그쪽에도 헌터들이 투입해야 하고, 치안에도 인력이 부족합니다.”
스펠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의 활동이 거의 정지되어, 헌터들이 맡아야 할 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각 도시의 치안 업무 또한 마찬가지.
로렌스는 자신이 예상했던 질문이 나오자 준비한 대답을 말했다.
“게다가 곧 임상 실험을 거친 백신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접종이 이루어지면 곧 정상적으로 세계가 움직일 것이고, 그때 헌터들이 움직여도 늦지 않지 않겠습니까? 지금 강현 님이 제안하신 치료제 조사는 확실하지 않은 정보로 터무니없고, 실패한다면 그 대가는 큽니다.”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건지, 욕심에 눈이 먼 것인지 모르겠군.”
“네?”
작은 중얼거림이지만, 로렌스에게 들리긴 충분했다.
“이걸 읽고 다시 이야기하죠.”
김강현은 설명을 하기보단 종이들을 품속에서 꺼내 건넸다.
그 종이에는 백신의 약점과 스펠 바이러스의 변이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런 내용을 어디서?”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했고, 루시아의 도움이 있었죠.”
‘만약 이대로 백신이 공급되었다면!’
순간 로렌스는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백신은 3주일 후 대량 양산하여 생산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미 김강현은 자신들과 똑같은 백신을 만들어 스펠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지 실험한 상태였다.
심지어 결과는 실패였다.
게다가 김강현이 실험한 백신이 더 뛰어난 조합식임에도 불구하고, 스펠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효과만 있을 뿐 끝내 독을 없앨 순 없었다.
언론을 통해 자신들이 만든 백신이면 스펠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쳐놓았는데, 하마터면 개망신을 당할 뻔했다.
또한 헌터들은 스펠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 내용을 보면 몇 달 후엔 헌터들의 목숨도 끊어질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름대로 전문가들을 통해 스펠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모아 일을 벌였는데, 눈앞에 자신이 보지 못했던 낭떠러지가 있음을 깨달은 로렌스는 고민에 빠졌다.
‘지금의 선택이 분기점이 되겠지.’
김강현은 로렌스를 보며 인피니티 마나를 은밀히 움직였다.
‘만약 욕심을 택하면 바로 싸운다.’
이것이 로렌스를 바로 찾아온 목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주변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김강현은 조용히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로렌스가 내심 욕심을 택하지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욕심만을 이루고자 한다면, 로렌스를 조용히 없앨 생각이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의 적이니까.’
실제로 테라에서도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졌다.
중대한 싸움을 앞두고 있는데도 탐욕을 가진 자들에 의해 싸우기도 전 패배할 뻔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때마다 라셀은 그가 어떤 인간이든 상관없이 죽였다.
적과 싸워 죽는 것은 영광스러운 죽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나, 내부의 동료에 의해 배신당하거나 모르고 죽는 것은 어이없는 개죽음이었다.
게다가 지그문트와 싸워야 하는데 헌터협회에 이런 녀석들이 있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단, 바로 헌터들을 동원하는 건 어렵습니다.”
“네?”
“앞서 치료제 조사에 대한 결정은 제가 판단했고, 제가 실수한 것이 맞습니다. 하나 헌터들로 운영되고 있는 시설들도 있고,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조사에 모든 인력을 동원하지 못합니다.”
“그럼 얼마나 시간이 필요합니까?”
“이틀이면 충분하겠습니다.”
로렌스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수습하기 위한 모습을 보였다.
‘괜한 시비로 싸워봤자 좋을 게 없다.’
세계헌터협회에서 김강현을 주목하고 있고, 앞으로 그를 비롯한 테라 길드는 유럽 헌터협회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로렌스는 자신의 욕심보다는 이를 이용하기로 결정한 것.
김강현은 로렌스의 속마음을 읽고 빠른 태도 변화에 감탄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걸 추가로 확인하시죠.”
그러고는 만약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으면 보지 못할 자료를 건넸다.
“치료제 생산 외주 계약서?”
“지금 백신을 생산할 제약 회사에 피닉스 길드가 투자했고, 상당 부분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테라 길드에선 스펠 바이러스의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이고,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안전한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죠.”
그의 설명을 들으며 로렌스는 꼼꼼하게 계약서를 살폈다.
백신에 투자하면서 약이 생산되는 프로세스와 효능을 어느 정도 파악 가능한 그는 금방 테라 길드에서 만든 치료제 효능이 뛰어남을 파악했다.
문제는 스펠 바이러스의 독을 완벽히 해독할 수 있는 치료제.
이 성분만 파악하면 치료제 양산은 쉬운 일이었다.
“이 치료제는 백신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고, 유통도 과정이 복잡하지 않으니 금방 생산이 가능합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단,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을 경우입니다.”
“그래서 조건이 있습니다.”
이 계약서의 효력은 김강현이 완벽한 치료제를 만든 후로, 이전까지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로렌스는 김강현이라는 사람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자신은 그를 배척하고 방해하는데, 그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싶을 뿐.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허…….”
‘망상에 불과한데 부정할 수 없군.’
형식적이고 허황된 답변에 로렌스는 어이가 없었지만, 김강현은 정말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계약서에 적한 금액 또한 최소한의 인력과 제작, 배송 비용을 제외하면 치료제를 판매하여 얻을 수 있는 수익도 적었다.
“알겠습니다. 그 뜻에 크로스 길드도 같이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김강현은 로렌스가 건넨 손을 잡아 악수했다.
스펠 바이러스뿐 아니라 마왕 지그문트라는 적을 상대해야 할 상황에서 로렌스는 김강현을 적으로 삼기보단 동맹을 맺기로 결정했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람의 영향력은 점점 커질 거야.’
김강현 스스로가 드러나지 않고 감추려고 해서 그렇지, 그는 이미 전 세계에서 손꼽힐 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이끄는 테라 길드 또한 소수지만 개개인의 무력이 웬만한 헌터들보다 뛰어나 나중에 큰 힘이 될 것이었다.
김강현은 결국 로렌스를 설득하여 유럽 협회의 헌터들을 움직였다.
* * *
“요즘 주변이 시끄럽네. 무슨 일이 있나?”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어 낮임에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깜깜한 숲속에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마법진이 있으니 들킬 리는 없겠지만, 상당히 큰일이 일어난 것 확실한 것 같은 느낌이야.”
그는 수련을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은밀한 장소에 마법진을 설치했다.
덕분에 외부로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내부의 모습을 감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산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과 군대용 비상식량들을 대량으로 가져와 장기간 머무르는 것이 가능했다.
쿵!
잠시 한 호흡을 쉰 남자가 다시 마나를 내뿜자, 그의 주변을 작은 물방울들이 소용돌이치며 감싸기 시작했다.
* * *
유럽 헌터협회의 움직임은 시시각각 여러 언론에 보도되고 있었다.
그런데 스펠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찾으러 찾는 내용이 아닌, 다크니스를 쫓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사람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이 바이러스의 치료제인 지금, 혹시라도 허탕을 쳤을 시 사람들에게 괜한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크니스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들을 쫓는다는 내용을 언론에 배포한 것이었다.
“정말 나서지 않아도 괜찮아?”
“응. 오히려 뒤에 있는 것이 전체 그림을 살피기 좋고, 괜히 마왕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까.”
이번에도 김강현을 비롯한 테라 길드는 유럽 헌터협회에 모든 것을 일임했다.
언론에 진행 상황이나 결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루시아가 나섰고, 본부장인 김강현은 절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기자들은 관리본부장의 정체를 쫓고 있기도 했다.
‘지그문트와 다크 위저드들은 지금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겠지.’
아직 유럽 헌터협회 내부에 그들의 사람이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어서 쉽게 전면에 나서는 것이 꺼려졌다.
또한 자신의 위치와 정보가 드러나는 것을 막을 필요도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시급하여 사람들을 통솔하는 일을 맡았지만, 자신은 유럽 사람이 아니라 외국인이니 이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었다.
“마법진은 총 4곳에서 발견됐지만, 이곳이 핵심인 만큼 신중하게 해체해야 해.”
“그렇지 않아도 헬릭스가 돌아다니며 살피고 있는 중이야. 다른 곳에서 연락이 오면 동시에 해체할 예정이고.”
“생각대로 잘되어야 할 텐데.”
김강현은 루시아와의 대화에서 지난 10일간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이곳은 처음 마법진을 발견한 곳으로, 제일 먼저 해체하려고 했지만 다크니스의 함정이 숨어 있었다.
다른 곳에 위치한 마법진과 연계하여 한쪽이 해체되면 다른 마법진이 폭발하는 식.
그래서 유럽 헌터협회는 헌터들을 모아 다크니스가 만들어놓은 마법진을 3개 더 찾아냈고, 동시에 해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이닷!”
드디어 헬릭스가 네 곳의 마법진에 마력으로 신호를 주어 동시 해체를 시도했다.
위저드들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성공을 기원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우우우웅! 우우웅!
네 곳의 마법진에서 동시에 진동이 울리며 헬릭스의 마력과 동조했다.
만약 실패하면 마법진은 헬릭스의 마력함께 폭파될 것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서, 성공이닷!”
“아자! 살았어!”
마법진을 유지하는 마력이 사라지며, 마법진이 해체되자 위저드들의 기쁨이 제일 컸다.
자칫 잘못하면 폭발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는 일에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으니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급히 다른 곳에도 연락해 보니 전부 무사히 해체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강현과 루시아 또한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안에 어떤 함정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헌터들은 일단 안으로 들어가지 말 것을 지시했다.
“이, 이게 뭐야?”
그리고 해체된 마법진 안으로 진입한 순간, 다들 예상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 * *
“이상한 게 없잖아?”
“여기에 뭐가 있는 거지?”
그냥 마법진으로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았을 뿐 밖의 모습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김강현과 헬릭스의 생각은 달랐다.
‘안에서 심상치 않는 마력이 감지된다.’
‘이 많은 사람이 들어갔다간 큰일이 일어날지도…….’
마법진 중심 부근에 거대한 마력이 존재했다.
가까이 가면 헌터들이 그 마력의 흐름에 휘말려 마나 역류가 일어날 터였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어떤 힘이 마력이 일정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여기서부턴 위험할 수 있어 저와 헬릭스, 루시아, 로렌스만 들어가도록 하죠. 다른 분들은 들어오지 않고 경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헌터들은 너무 주의하는 듯한 김강현의 말에 의문을 가졌으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인력을 나누어 주변 경계에 나섰다.
출발 전 김강현은 루시아와 로렌스의 팔을 붙잡고 마나를 흘렸다.
갑자기 손을 통해 들어온 마나가 몸 전체로 퍼지자 두 사람 다 놀란 기색이 보였다.
“응?”
“이게 뭐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제 마나를 심어놓았습니다. 아무 일 없으면 몸속의 마나와 합쳐 사라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요.”
‘이게 강현의 마나라고?’
이어진 설명에 진정하긴 했지만 두 사람은 속으로 놀라는 중이었다.
김강현의 마나 순도는 굉장히 깨끗한 데다가, 굉장히 사나운 기세를 띠고 있었다. 다행히 김강현의 통제에 따라 그들의 몸을 보호하고 있어 망정이지, 만약 이 마나가 공격한다면 대항하지 못하고 금방 무너질 것만 같았다.
갖가지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는데, 김강현과 헬릭스의 예상처럼 마력의 농도가 짙어져 갔다.
‘만약 평소의 나였다면 마나 역류가 일어났을 거야!’
‘역시 적이 아닌 동맹을 맺길 잘한 건가?’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선 느끼지 못했던 마력이 계속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라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 올렸을 것이나, 김강현의 마나가 자신들의 마나를 보호해 주고 있어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뱀 석상? 굉장히 견고하게 만들었네.”
“이건 무슨 용도로 여기 있는 거지?”
“살아 있는 생명체도 아닌 석상에서 마력이 뿜어지니 신기한데?”
10여 분을 걸어 마법진의 중심에 도착하니 3m 크기의 뱀 석상이 있었다.
뱀 석상은 사나운 모습을 한 채 강대한 마력을 뿜으며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생생했다.
“여기서 움직이지 마라. 먼저 확인할 것이 있느니라.”
그런데 헬릭스가 그들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어디선가 낯익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단 말야.’
뱀의 모습과 석화 능력을 본 헬릭스는 마계의 라미아 종족이 생각났다.
그들은 상반신은 인간의 형태이고, 하반신은 뱀의 형태를 띠었다.
헬릭스는 지그문트의 수하 중 라미아 종족이 있었던 것까지 기억했지만 같은 종족끼리는 석화 능력이 통하지 않으니 그놈은 아니었다.
그는 꼼꼼하게 뱀 석상을 살피며 기억을 더듬었다.
“라미아 종족에서 위로 올라가면…… 바실리스크?”
“그게 무슨 몬스터야?”
“무언가 찾은 건가?”
무심코 던진 헬릭스의 말에 루시아와 로렌스가 물었지만, 헬릭스는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빠졌다.
지금의 상황을 바실리스크의 능력과 연관시키니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았다.
“확인할 것이 몇 개 더 있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구나. 우선 이곳을 포함한 다른 지역의 석상 주변에 인간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막은 뒤, 돌아가 있어라. 자세한 것은 나중에 확인하고 말해주도록 하마.”
“잠깐……!”
“헤, 헬릭스?”
루시아와 김강현이 궁금한 점을 물어보려고 했으나, 헬릭스는 다급한 표정으로 이동 마법을 시전했다.
기약 없이 헬릭스가 사라지자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세 사람은 우선 사람들의 출입만 막을 수 있는 마법을 설치한 뒤 각자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 * *
헬릭스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2일 뒤.
유럽 헌터협회의 한 사무실에서 김강현, 루시아, 로렌스와 만나 비밀스러운 회의가 이루어졌다.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헬릭스는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을 정리하고 분석하느라 고생했는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은 거냐? 급한 게 아니라면 좀 쉬고 하는 게 어떠냐?”
“이 몸 또한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구나. 더도 말고 딱 이 말만 하고 쉴 테니 남은 몫은 너희들이 맡거라.”
그동안 눈 밑에 보이지 않던 다크 서클까지 있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뱀 석상을 비롯하여, 스펠 바이러스의 정체까지 알려줄 테니 잘 들어라.”
“뭐?”
“그걸 알아냈다고?”
그 말에 루시아와 로렌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헬릭스의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지어졌다.
“모든 것의 시작은 이 뱀 석상, 바실리스크로부터 시작되느니라.”
말과 함께 헬릭스의 마력이 허공에 바실리스크의 모습이 각인했다.
마력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이 녀석은 전멸한 마계의 고대 마수 바실리스크로 단단한 비늘과 이빨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 능력 중 공기 중에 독을 뿌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래서 먹잇감을 사냥할 때 가까이 다가가 공격하는 게 아니라 멀리서 독을 이용해 공격하지.”
“그럼 스펠 바이러스의 정체가 독?”
“네 생각이 맞다. 참고로 상급 마족조차 단숨에 중독시켜 죽일 정도로 강력한 만큼 마계에서도 이놈들을 쉽게 건드리는 녀석들이 없었을 정도였다고 하더구나.”
“헬릭스, 지금 바실리스크는 존재하지 않아. 그 모습을 본뜬 석상만이 있을 뿐이고. 설마 석상이 독을 뿌리고 있다는 건 아니겠지?”
이야기를 듣던 김강현은 이상함을 눈치채고 물었다.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바실리스크의 종족 특성을 알면 그런 말을 나오지 못할 거다.”
“종족 특성?”
“이들은 상대방을 돌로 만드는 능력이 있느니라.”
“더 헷갈려지는데요? 분명 놈들은 전멸했다고…….”
“그것도 맞는 말이니라. 그들끼리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딱 한 마리만 제외하고 모두 돌이 되거나 죽었지.”
과거의 마계에 존재했던 고대 마수는 투쟁심이 강해 서로 부딪치기만 하면 싸우거나 마족들에게 싸움을 걸어 마왕들에게 골칫덩어리였다.
그중 바실리스크는 종족 내부에서 왕의 자리를 두고 싸움이 일어났는데, 살아남은 한 마리를 뺀 나머지는 돌이 되어버리거나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이때를 노린 마왕들이 살아남은 바실리스크를 죽였다고 전해져 오고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돌이 되었어도 살아 있다는 것이니라. 석화된 바실리스크들은 계속 독을 뿜어내어 마계의 어느 장소에 봉인했었는데, 설마 지구에서 볼 줄은 몰랐느니라.”
“아마 마왕 지그문트가 그 장소를 찾아내고, 다크 위저드에 의해 소환되어 이곳에 있는 것이겠지.”
“우리는 바실리스크의 독을 스펠 바이러스라고 명명한 것이고요.”
“이제 독의 해독제만 찾으면 되겠군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스펠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게 되자 모든 일이 술술 풀릴 듯했다.
루시아와 로렌스는 기뻐 환호하다가 문득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보통 뱀의 해독제는, 피를 정제한 혈청으로부터 얻지 않습니까?”
“바실리스크도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어, 해독제를 구하려면 석화된 바실리스크를 풀고 사냥해야 하느니라.”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김강현은 지그문트가 절대로 스펠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 이제서야 이해되었다.
바실리스크의 석화를 풀어도 이놈을 죽일 수 없다는 확신에 찬 말이었던 것이다.
“이제 정말 중요한 본론으로 넘어가야겠구나. 우선 석화는 이 몸이 풀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지만, 문제는 공략이니라!”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모든 이들이 헬릭스의 입 모양에 집중했다.
“우리가 발견했던 바실리스크의 크기는 대략 3m쯤 되었지만, 석화되면서 마력이 봉인되었기 때문에 실제 크기는 10배가 넘을 게다. 지구의 기준으로 SS급 몬스터로 추정할 수 있구나.”
“허억!”
“바실리스크를 잡으려면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야겠군요.”
헬릭스가 바실리스크 석상을 보며 가장 의심을 가졌던 것이 크기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바실리스크는 성체가 되면 최소 5층 건물 크기만큼 커지는데, 석상은 너무 작았다.
그래서 자세히 분석하니 석화된 바실리스크는 동면 상태로,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덩치를 줄이면서 마력도 같이 봉인했던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뱀의 약점이라고 하면 불을 생각할 터인데, 오히려 바실리스크는 불을 마시고 언데드 계열 속성을 띠고 있어 일반적인 상식으로 상대하면 큰코다칠 게다.”
“그럼 물과 성수를 이용해서 공략해야겠네.”
“주변에 물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면 좋겠지.”
“주의할 점은 내부가 상하지 않게 죽여야 한다는 것이니라. 바실리스크의 피로 치료제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흘리는 피의 양이 많아지면 살릴 수 있는 인간들이 줄어들 테니 말이다.”
이렇게 헬릭스는 바실리스크에 대한 정보를 계속 제공했고, 이를 토대로 김강현과 루시아 그리고 로렌스는 공략 방법을 짜기 시작했다.
* * *
헬릭스의 주도로 소수의 비밀스러운 회의가 끝난 다음 날.
심사숙고 끝에 회의 내용을 내부에 완전히 공개했다.
이번 바실리스크 레이드의 핵심은 신속.
빠르게 정보와 공략법을 공유한 뒤 대책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와 함께 언론에 스펠 바이러스는 다크니스가 소환한 마계의 고대 마수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를 최대한 빨리 처단하겠다는 말과 함께 바실리스크의 독을 분석하여 해독제를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전 세계 곳곳에서 바실리스크 레이드에 필요한 물자들이 쏟아졌다.
덕분에 유럽의 헌터들은 많은 지원을 받아 순식간에 레이드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무조건 한 번에 끝내야 해!”
“우리의 손에! 인류의 미래가 달렸다!”
유럽의 헌터들은 전 세계의 시선이 부담 되면서도 자신들밖에 할 수 없는 레이드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루시아, 이쪽은 준비가 끝났어. 어때?”
“괜찮아. 크로스 길드 쪽도 끝났고.”
“헬릭스도 준비되었다고 하니 여기서 시작하면 되겠네.”
바실리스크 레이드는 네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기에 김강현은 철저히 확인했다.
원래 계획은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한 마리씩 차근차근 사냥할 계획이었으나, 한 마리의 석화가 풀릴 경우 동시에 다른 세 마리의 석화가 풀리게끔 지그문트의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전력을 네 곳으로 나누어 바실리스크 레이드를 준비한 것이었다.
“검 어르신. 다 끝나셨습니까?”
“그래. 생각보다 괜찮구나.”
그런데 김강현이 맡은 바실리스크 레이드는 인원이 굉장히 적었다.
“한데 괜찮겠느냐? 우리 둘이서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그치만 다른 쪽의 헌터들을 이곳으로 차출할 순 없으니까요. 어떻게든 해봐야죠.”
김강현과 검천호.
단 두 명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