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예상치 못한 적의 등장Ⅰ
“후우…… 후우…… 후우.”
김강현은 마갑을 두른 채 마검을 들고 서 있을 뿐인데,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표정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지만, 계속 호흡을 고르며 가상의 적에 정신을 집중했다.
“흐어어억!”
그러기를 30여 분 후, 완전히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채 마갑을 역소환하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렇게나 힘든데, 그땐 어떻게 한 거지?”
지그문트와의 싸움을 되새기며 김강현은 마갑을 다루기 위해 수련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영혼을 흡수하여 완전 복구된 마검과 마갑은 필요한 마나양은 줄었지만 세밀한 마나 컨트롤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김강현은 최근 수련을 할 때마다 마갑을 착용했다.
과거에는 살기 위해 미친 듯이, 기억이 날아갈 정도로 마갑을 운용했다.
하지만 절박함이 사라진 탓인지 그때만큼 마나 컨트롤이 완벽하지 않았다.
물론 계속되는 수련으로 점점 오러와 마갑 사용이 원할해지고는 있었다.
“개인 수련은 다 했느냐? 그럼 한번 겨뤄보자.”
“네. 검 어르신.”
애검 천류신검을 들고 수련하러 나온 검천호가 김강현을 발견하고 말했다.
김강현은 마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며 물었다.
“이번에도 마나 없이 겨루는 거지요?”
“아쉽지만 그렇게 하자꾸나.”
전신이 지쳐 있었지만 김강현은 호흡을 고르며 마검을 검천호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인피니티 마나 호흡법을 운용하며 회복에 신경 썼다.
‘몸은 힘들지만, 머리는 차가워.’
앞서 수련으로 마나와 체력이 바닥나 있지만, 검천호의 기세와 살기를 받자 바짝 긴장되었다.
곧 머릿속이 눈앞의 적을 어떻게 쓰러트릴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쿵! 쿠우웅! 쿠웅!
두 사람은 어느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부딪치자마자 충격파가 생성되어 바람이 호텔 옥상 위로 휘몰아쳤다.
사방으로 뻥 뚫린 공간이라 파괴될 만한 물건들이 없어서, 옥상은 테라 길드의 좋은 수련장이 되어 있었다.
검천호와 김강현은 이것이 수련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격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크읏!”
“후우!”
두 사람은 거침없이 서로의 급소를 노리며 공격하고 처절하게 막아냈다.
이 와중에 전신에 잔상처들이 났지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정신이 흐트러지는 순간, 상대방의 검이 급소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여기서 마나를 사용하면 진짜 피를 볼 뿐이야!’
김강현과 검천호는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나를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마나를 발산하면 그때부터는 생사를 나누는 싸움이 될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아레스 호텔의 옥상이다.
마나를 사용하는 순간 호텔은 부서져 버릴 게 뻔했다.
“하아앗!”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던 김강현은 검천호의 호흡이 흐트러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마검으로 그의 목덜미를 노렸다.
“걸렸구나.”
“흡!”
그런데 그 빈틈은 검천호가 노린 함정이었다.
검천호는 김강현의 가슴 쪽이 드러나자 역으로 공격을 취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끝입니다.”
“많이 아쉽군.”
하나 김강현은 어느새 왼손으로 천류신검을 흘리며 오른 무릎으로 그의 허리를 노렸다.
검천호도 또한 2수, 3수를 읽고 왼손으로 그의 허리를 가격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이 이상은 수련을 넘어설 것 같군.”
“예. 그렇게 하죠.”
두 사람이 이렇게 격렬한 싸움을 하는 이유는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육체적인 수련보다는 정신적인 수련이 효율적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경지에 오르자 가끔 몸을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실전과 같은 싸움이 있어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수련할 수 있어,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마나를 배제한 비무를 하고 있었다.
“검 어르신. 무슨 고민이 있으세요? 요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음. 티가 많이 나냐?”
김강현은 주변 정리를 하다가 어두운 검천호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오늘뿐만이 아니었다.
지난번에 루시아가 방문한 이후 검천호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기색이 종종 보였다.
한시라도 빨리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괜찮다. 이건 내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결정이라 네가 도와주긴 어려울 것 같구나. 마음만 받으마.”
“네. 그래도 혹시나 싶어 한 말씀 드릴게요. 마음이 시키는 대로 결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생기지 않으니까요.”
“후회라고?”
검천호는 들려오는 김강현의 말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점점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이제 검천호는 계속 혼자서 살아갈 것인지, 사람들과 어울리며 같이 강해질 것인지 길을 정해야 하는 때라고 느꼈다.
자신은 나이도 있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하지만 김강현의 말 한마디에, 검천호는 드디어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하마. 고맙구나.”
“네. 좋은 결정을 내리셨으면 좋겠습니다.”
검천호는 김강현에게 인사를 표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김강현은 다시 스펠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기 위해 움직였다.
“강현아.”
“루시아?”
거실에 도착하니 루시아가 안색이 어두운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고민 들어주는 날인가?’
김강현은 예상치 못한 사람의 방문에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야?”
“스펠 바이러스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싶어.”
그 대답에 김강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로렌스가 투자한 제약 회사에서 스펠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들고 있는 건 알고 있을 거야.”
“백신에 무슨 문제라도?”
“백신에 대한 정보를 얻었는데 백신이라고 하기보단 복용하기 편한 마나 포션에 불과해. 그렇지만 현재 전문가들은 마나 포션을 장기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스펠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루시아는 스펠 바이러스의 백신에 대한 조사를 꾸준히 했다.
스펠 바이러스의 근원지가 유럽이라고 알려진 이상, 유럽 협회 책임자인 그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
이런 상황에서 백신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더 큰 비난이 쏟아질 것이기에 조심스러울밖에 없었다.
“내가 백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성분표를 본 것이 아니니 정확한 대답은 어려워.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백신으로서의 가치가 없어.”
지난 시간 동안 김강현이 실험한 바에 의하면, 마나 포션과 마나석은 백신의 가치가 있기보단 시간을 끄는 용도에 불과했다.
스펠 바이러스에 포함된 독을 억제시킬 뿐, 해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백신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면 사기나 다름없었다.
이 대답에 루시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한 가지 더. 정말 헌터들에겐 스펠 바이러스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게 확실해?”
“왜 그렇게 생각하지?”
김강현은 다음 질문에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이상하게 요즘 마나와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껴. 단순히 피로가 쌓여서 그런 것이라면 이해하겠는데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야.”
“잠깐 손 좀 줘봐.”
순간 싸늘함을 느낀 김강현은 손을 통해 그녀의 몸 상태를 살폈다.
‘스펠 바이러스가 마나에 섞여 있어?’
겉보기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내부를 들여다보며 그녀의 마나를 살펴보니, 스펠 바이러스가 마나에 섞여 있었다.
“지금부터 말하면 마나 역류가 일어나니 참아.”
“뭐? 흡!”
루시아가 무어라고 말을 하기 전에 김강현은 인피니티 마나를 그녀의 몸속으로 흘려보냈다.
김강현의 유도를 통해 루시아의 몸속으로 들어간 인피니티 마나가 마음껏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루시아의 마나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말을 하는 순간 진짜 마나 역류가 일어날 것이었다.
루시아는 고통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아!’
그런데 그 통증은 시간이 지나자 시원함으로 바뀌었다.
김강현이 운용하고 있는 인피니티 마나가 그녀의 마나에 숨은 스펠 바이러스를 모조리 없애, 그동안 찌뿌둥했던 몸이 개운해졌다.
컨디션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보니 스펠 바이러스가 마나에 스며들어 갉아먹고 있더군. 그래서 없앤 건 뿐이야.”
“그게 가능해?”
“물론.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야.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이한 마나를 가지고 있어서.”
“결론을 내리면 헌터들에게도 영향이 있다는 말이네.”
“그래. 일반 사람들과 달리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뿐이지.”
이미 김강현은 스펠 바이러스가 헌터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여 길드원들에게도 아티펙트를 선물해 스펠 바이러스가 걸리지 않도록 조치한 상태였다.
일반 사람들은 가진 마나양이 적기 때문에 바로 증상이 바로 나타나는 것일 뿐, 증상은 나타나지 않아도 헌터들 또한 대부분 스펠 바이러스에 걸렸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스펠 바이러스는 대기 중에 존재하는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데 헌터들이 걸리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지금 뉴스를 보면 헌터들은 스펠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나.”
그렇기 때문에 김강현은 지난번 치료제의 단서가 있는 결계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루시아는 품속에서 여러 장의 종이를 꺼냈다.
“이건?”
“네가 원하는 거지. 지금부턴 유럽 헌터협회의 의장으로서 테라 길드의 길드장님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앞서 질문들은 테라 길드의 역량을 본 것입니까?”
“이미 길드장님의 역량은 알고 있지만,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니까요.”
“생각보다 까다로운 협상이 되겠군요.”
친구 사이로 편하게 이야기하던 두 사람은 곧 각 단체를 이끌고 있는 장으로서의 대화를 시작했다.
* * *
“이게 뭐야? 갑자기 테라 길드가 왜!”
로렌스는 자신에게 전달된 보고서를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시아. 그 녀석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테라 길드가 나서는 건 불가능한데!”
그는 권력과 야망을 가지고 있는 만큼 헌터들의 법에 대해서 철저하게 공부했다.
여기가 한국이 아닌 이상, 외부 헌터인 테라 길드는 유럽 협회에 일에 관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보고서에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스펠 바이러스 사건들을 관리하는 본부장으로 테라 길드의 김강현이 뽑혔다는 내용이 기입되어 있었다.
이러한 결정은 의장인 루시아를 비롯한 유럽 헌터협회에 속한 길드들의 동의가 70% 이상 필요했다.
최근 다른 헌터들과의 만남이 잦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꿍꿍이가 있었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당장 바꿔야 해. 그렇지 않으면 모든 계획이 틀어져!”
그 자리는 자신이 차지해야 할 자리였다.
로렌스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급히 루시아를 만나러 가기 위해 움직였다.
“굉장히 바빠 보이는데, 잠깐 시간 낼 수 있습니까?”
“김…… 강현!”
그런데 바로 문 앞에 루시아 다음으로 만나고자 했던 김강현이 서 있었다.
로렌스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