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불사왕의 군대 (59/119)

4장. 불사왕의 군대

-임모탈이여. 주인이 명령한다. 너의 잠을 깨운 침입자들을 모조리 죽여라!

“적들을 모조리 죽인다…….”

-불멸의 군대가 너와 함께 있으니…… 무서울 것이 없도다!

“나의 군대…….”

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머릿속의 목소리를 따라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완전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간청드립니다. 길을 만들어주시겠습니까?”

“자, 잠깐, 뭔가 이상한데요.”

“뭐가 말입니까? 조금만 설득하면 됩니다.”

에마누엘레 2세의 분위기가 변하자 이를 읽은 김강현이 조심스레 말했지만, 로렌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을 떠올리며 고집을 부렸다. 공을 돌리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쿵! 쿵! 쿵! 쿵!

그때, 조용히 서 있던 언데드들이 발로 땅을 구르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헌터들은 바뀐 분위기를 읽고 각자 들고 있는 무기들을 꽉 쥐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워라. 한 명도 살려두지 않는다!”

“끄어어억!”

“그어어어억!”

에마누엘레 2세가 큰 목소리로 소리치며 언데드들을 향해 붉은빛을 뿌렸다. 그러자 갑자기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빨라지며 순식간에 헌터들을 향해 다가왔다.

‘조종당하는 건가?’

‘다크 위저드들이 배후에 있을 것이야!’

이 모습에 김강현과 헬릭스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바로 이해했다.

에마누엘레 2세가 로렌스의 말에 답변을 하기 직전, 그를 향한 마력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그 직후 이성을 잃고 조종당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S급 커멘더, 변질된 성실왕)

체력: A 마나: S 근력: A

민첩: B 지능: A 정신력: B

커멘드(S)-거느리고 있는 모든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려 임무를 수행하며, 군대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20% 향상된다.

불멸의 외침(A)-불멸의 군대를 소환하여 죽지 않는 불사의 힘을 부여한다.

소드 마스터리(S)-검 계열의 무기를 사용할 시 숙련도와 공격력이 상승한다.

‘S급 몬스터에 S급 스킬을 2개나 가지고 있다고? 게다가 군대 전용?’

김강현은 에바누엘레 2세의 스킬을 확인하고 크게 놀랐다.

보통은 개인의 역량에 맞게 스킬이 성장하는데, 그는 대규모 싸움에 특화된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진 모르지만, 소드 마스터리라면 개인 무력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방금 뿌린 붉은빛은 에바누엘레 2세가 시전한 커멘드 스킬이었을 것이다.

김강현은 서둘러 대응하기 위해 일행을 보았다.

“2인 1조로 서로 등을 기댄 채 싸워요!”

“흩어지면 죽어! 벽 안쪽에 붙어 공격해!”

‘여긴 엉망진창이잖아!’

테라, 피닉스, 크로스, 이 세 개의 길드가 함께하고 있는 이 파티는 지휘 체계가 달라 오합지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테라 길드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김강현과 헬릭스에게 집중하고 있었으나, 피닉스 길드와 크로스 길드는 각각 따로 행동하고 있어 언데드들이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만들어주고 있었다.

“임시로 지휘하여 작전을 내리겠습니다!”

“뭐?!”

“방법이 있나요?”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명령 체계를 통일했어야 했지만, 마족에 관한 생각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루시아가 로렌스와 함께 잘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정말 목숨이 다급한 상황이 되자 각자 따로 움직이는 행동에 답답했다.

‘저놈이!’

루시아는 바로 김강현의 지휘에 따를 기색이었으나 로렌스는 반발심이 살짝 들었다.

하나 자신을 보는 길드원들의 눈빛에 대항할 수 없었다.

지금껏 김강현은 가고일과의 싸움, 미로에서도 자신의 역량을 보여준 반면, 자신은 마땅한 공을 세우지 못했다.

이를 눈치챈 김강현이 바로 말을 이었다.

“지휘는 여기 있는 이유하 헌터가 할 것입니다.”

“네에?”

“물론 미덥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녀의 능력이 필요함을 알아주십시오!”

“가, 갑자기요? 제가 이 헌터들을 지휘해야 한다고요?”

모든 헌터들이 놀랐지만, 당사자인 이유하 또한 크게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김강현은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틈틈이 헌터들의 실력과 스킬을 살핀 결과 에마누엘레 2세의 커멘드 스킬에 대항하기 위해선 이유하가 최적의 인물이었다.

“너를 고른 이유는 신중한 성격이 한몫하긴 했지만, 분석 스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그 능력을 활용하여 지휘하면 충분한 승산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정말요?”

걱정 가득한 이유하의 목소리에 김강현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은 이유하가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헌터들이 자신을 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언데드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다 같이 살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그럼 제 말대로 움직여 주세요!”

마음이 굳힌 이유하는 분석 스킬을 사용하여 언데드들의 움직임을 읽고 적의 능력을 고려하여 헌터들의 위치를 배치했다.

“루시아 님은 디펜더들과 딜러들을 데리고 선두에 서고, 로렌스 님은 후방에서 디펜더들과 딜러들을 지원해 주세요. 이렇게 배치하면 같은 길드에 속해 있었으니 손발이 맞을 테죠.”

“이렇게 싸우면 우린 크게 문제없겠어.”

이유하의 결정에 모든 헌터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궁금증이 생긴 로렌스가 물었다.

“한데 테라 길드는 무엇을 할 계획입니까?”

“여기 헬릭스 님은 마법 실력이 뛰어난 비밀 병기인 만큼 위저드들과 후방에서 헌터들을 지원할 예정이고, 다른 길드원들은 별동대로 구성하여 보스 몬스터인 에마누엘레 2세를 노릴 예정이에요.”

“허억!”

“그럼 적진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

단호한 그녀의 결정에 헌터들이 크게 놀랐다.

그들은 이유하와 같은 길드원인 만큼 오히려 안전한 곳에서 싸울 줄 알았다.

‘저 몬스터의 능력을 알 수 없으니 우리로써는 최강의 수를 꺼낼 수밖에 없어.’

이러한 결정은 철저히 자신들의 능력을 분석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던전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조용히 헌터들의 실력을 살펴보니 김강현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헌터가 없었고, 이어진 위기들 또한 김강현이 해결했다.

헬릭스는 김강현 못지않은 능력을 가진 만큼 헌터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보험을 할 수 있었다.

‘나라도 이렇게 했을 거야.’

김강현 또한 이유하와 같은 작전을 펼쳤을 것이었다.

헌터들은 어느덧 언데드들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오자 바로 싸울 준비를 했다.

“우선 테라 길드는 위저드 뒤편에서 신호를 줄 때까지 기다리고, 디펜더들과 딜러들은 언데드들을 막아주세요!”

“그 정도야 간단하지!”

“단숨에 쓸어버리자고!”

“끄어어억!”

이유하의 말이 떨어지자 선두에 선 헌터들은 루시아의 지휘를 받아 빠르게 움직였다.

쾅! 쾅! 쾅!

“동시에 밀어버려!”

디펜더들이 스켈레톤들과 부딪쳤다. 타이밍에 맞춰 여러 번 충돌이 일어나자 스켈레톤들의 뼈가 부서지며 바닥에서 쓰러졌다.

“어. 림. 없. 다.”

“침. 입. 자. 는. 모. 조. 리.”

“죽. 인. 다!”

그 순간 스켈레톤의 뒤편에 있던 데스 나이트들이 검을 휘두르며 전진했다. 철제 갑주와 철제 무기를 지니고 있는 데다가 검술 실력이 뛰어나 순간 디펜더들이 밀려났다.

“체인지!”

루시아는 디펜더들을 잠시 뒤로 물러나게 한 뒤, 그동안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던 딜러들을 전진 배치했다.

딜러들은 주로 근접전 무기들을 다루는 만큼 데스 나이트들의 공격 패턴을 읽고 능숙하게 막아내며 일부러 한쪽에 모이도록 유도했다.

“로렌스 님!”

“5초 후 발동시키겠습니다!”

그사이 위저드들은 언데드를 공격할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고, 루시아가 타이밍에 맞춰 소리쳤다.

“체인지!”

그 말에 데스 나이트들을 가운데에 몰아넣은 딜러들이 양쪽 벽으로 이동했다. 이미 디펜더들은 이동한 상태.

이렇게 위저드들과 데스 나이트들이 일직선으로 바라보게 되자, 바로 그들을 향해 성수가 담긴 마나 탄들이 일제히 쏘아졌다.

“길드장님!”

“이미 가고 있어!”

성수에 의해 일시적으로 데스 나이트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빈사 상태가 되었다. 이전부터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린 김강현은 김건, 연세연과 함께 이미 움직인 뒤였다.

“흐아아아앗!”

일직선으로 뻥 뚫린 길을 따라 선두에 선 김건이 라운드 실드를 휘둘러 단숨에 데스 나이트들을 날려 버리자 놈들은 검은 연기가 되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보스 몬스터를 지키는 언데드들이 사라지자, 김강현은 마검에 마나 소드를, 연세연은 아티팩트를 이용하여 허공에 거대한 얼음송곳을 만들었다.

“침입자들 주제에 제법이구나.”

에마누엘레 2세는 소환한 언데드들이 모조리 사라졌지만, 느긋하게 미소를 띠며 여유가 가득했다.

김강현과 연세연이 그를 향해 마나 소드와 얼음송곳을 날렸다.

“죽어라!”

“좋아. 이대로 끝이야!”

두 사람의 공격이 들어가는 것을 본 헌터들은 승리를 장담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만큼 두 사람의 연계 공격은 강력해 누구라도 막아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콰아아앙!

그들의 확신대로 두 사람의 공격이 에마누엘레 2세에게 닿았고, 순식간에 뿌연 연기가 복도에 가득 찼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헌터들이 그가 쓰러졌을 거라 생각했을 때,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분명 모두 쓰러트렸는데?”

“왜? 어째서?!”

에마누엘레 2세의 앞에 10마리의 데스 나이트들이 검을 든 채 서 있었다.

그들이 김강현과 연세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그래도 공격력이 어마어마했던 덕에, 그들이 입고 있는 갑주와 검이 많이 망가졌다.

“적이지만 아주 훌륭했다. 하지만 이 몸에 그따위는 통하지 않느니라!”

‘혹시 불멸의 외침?’

데스 나이트들을 보며 김강현은 에마누엘레 2세가 보유하고 있던 스킬을 떠올렸다.

그것이 일회용 스킬이 아니라 계속해서 쓸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지금 데스 나이트들의 등장이 이해되었다.

“스켈레톤과 데스 나이트 구성으로 간단히 쓰러트리려고 했던 것이 실수였어.”

“그럼 이게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고?”

“불멸의 군대여! 깨어나라! 너희들의 주인이 부르노라!”

말과 함께 그의 주변으로 총 100명의 데스 나이트들이 검은 연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와 달리 흉흉한 기세와 마력을 뿜고 있었다.

“공간만 충분하다면 500명의 데스 나이트들을 소환 가능하거늘. 하나 걱정하지 말라. 500명의 해당하는 마력을 100명의 데스 나이트에 집어넣었으니 말이다.”

나름대로 친절한 설명이었지만, 그 말은 헌터들을 절망감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데스 나이트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번져갔다.

* * *

“여기서 물러나면 방법이 있나요?”

그때 루시아의 목소리가 헌터들의 흔들리는 마음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어 갔다.

“이들이 밖에 나간다면 막을 수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겠죠!”

“…….”

“그 사람들 중에는 여러분들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평상시에 들으면 뻔하게 사람들을 선동하는 말에 불과하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헌터들은 이 말을 듣고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대부분 A급 헌터들. 유럽 각국에서 모인 정예들이었다.

‘여기가 아니면 놈들을 없앨 수 없어!’

그들은 길드에 속해 있지만 지역별로 배치되어 있어, 이렇게 한 곳에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 데스 나이트들이 판테온 신전 밖으로 흩어지면 그때는 막을 수 없었다. 그 생각에 위기감이 든 헌터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들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호, 싸울 생각이 있는 모양이구나.”

쿵! 쿵 쿵!

다시 정신을 차린 헌터들을 보며 에마누엘레 2세는 데스 나이트들을 전진 배치했다.

가까이 다가가 있던 김강현 일행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헬릭스, 언데드들을 상대할 방법이 있을까?]

[헌터들로 쓰러트리기 불가능하니 지금이라도 전력을 다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미루고 미뤘지만, 김강현도 헬릭스의 생각과 동일했다.

데스 나이트는 A급의 몬스터지만 5마리의 데스 나이트만큼의 마력을 1마리에 집중시켜 소환한 만큼, 최강의 A급 몬스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숫자로도 헌터들이 밀려 이들과 정면 승부하면 무조건 자신들의 필패였다.

[하나 인간들이 버텨준다면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라.]

[혹시 보스 몬스터를?]

[그래. 데스 나이트들이 나타난 것은 저 언데드 몬스터가 원인이지 않느냐? 다크 위저드에 의해 걸린 세뇌를 풀어준다면 데스 나이트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테라 길드가 에마누엘레 2세를 쓰러트릴 동안 데스 나이트들을 헌터들이 버텨야 한다는 말이구나.]

[언제까지 지켜줄 수 없는 노릇! 이제 그들도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야 할 때다.]

그동안 내색하지 않았지만, 헬릭스는 불만이 많았다.

다크 위저드들을 없애기 위해 헌터들과 함께 판테온 신전에 들어왔건만, 도움이 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약해빠져서 자신들이 도움을 주느라 전력이 분산되고 있었다.

이를 내색했다가는 김강현을 비롯한 길드원들이 피해를 볼 것임을, 앞서 테라에서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김강현은 영혼의 계약을 통해 헬릭스의 감정을 읽고 동감하며 헌터들이 제몫을 하기를 바랐다.

[유하야. 조용히 듣고 결정이 되면 사람들에게 전해줘.]

김강현은 이 내용을 이유하에게 전달하기 위해 메시지 마법을 시전했다.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에 이유하는 놀라 움찔거렸지만, 곧 김강현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가능성이 있어. 문제는 양날의 칼이야!’

이유하도 소환한 데스 나이트들을 보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김강현이 방금 전달한 방법과 똑같았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피해가 클 수 있는 작전이다.

김강현 일행이 에마누엘레 2세를 쓰러트리는 동안 헌터들이 버텨줄지가 관건이었다.

설사 버틴다 해도 그 피해는 클 것이었다.

그녀는 김강현 일행이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려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헌터들도 그녀처럼 그들을 믿어줄지 확신이 없었다.

“작전을 설명하겠어요. 진형은 이대로 유지하되, 디펜더와 딜러들은 방어에 집중합니다. 위저드들은 방어 마법과 버프로 앞의 헌터들을 지원하고요.”

“그 말은 별동대에 모든 걸?”

“네. 앞서 스켈레톤들과 데스 나이트들도 간신히 쓰러트린 만큼, 저 언데드들을 쓰러트릴 없다고 판단. 냉정하게 테라 길드에 이 싸움을 맡길 생각입니다!”

“으음.”

루시아는 한국에서 김강현의 무력을 본 경험으로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로렌스도 수락했지만 속으론 불만이 가득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나설 틈이 없어!’

이곳에 크로스 길드 정예 헌터들을 데리고 들어온 것은 이번 던전 사냥을 기회 삼아 피닉스 길드를 실력과 인지도로 눌러 버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흘러가는 상황을 보니 실력에 있어서는 김강현을 따라갈 수 없고, 루시아는 헌터들을 다독거리며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고 있었다.

‘내가 저년에게 밀려? 감히?’

그동안 로렌스는 루시아를 전체적으로 자신보다 밑으로 여겼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라이벌은 그녀의 오빠인 루크뿐이며, 루시아는 대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테온 신전에 들어오자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보였고, 자신은 살기 위해 눈앞의 것만 해결하기 급급하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이 몸을 쉽게 공략할 수 있다고 여기는구나.”

한편, 에마누엘레 2세는 헌터들이 데스 나이트들과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나를 무시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니라!”

말과 함께 그가 허리춤의 롱 소드를 뽑아 들자 분위기가 무거워지며 살기와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는 생전에 크림 전쟁을 비롯하여 가리발디의 남이탈리아, 베네토, 로마 등을 병합하는 원정에 직접 나가 싸울 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통일과 입헌군주제의 체제라는 업적이 커서 가려져 있을 뿐, 그는 전쟁왕이라고 불릴 만한 자격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에마누엘레 2세는 김강현 일행을 향해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으윽!”

‘무슨 검이 뭐 이렇게 무거워!’

선두에 선 김건은 라운드 실드로 에마누엘레 2세의 공격을 막아냈다. 쏟아지는 묵직함에 라운드 실드를 쥔 손에 더욱 강하게 힘을 주었다.

겉보기엔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두를 뿐인데, 마력이 담긴 검이 순식간에 김건을 몰아붙였다.

‘라운드 실드가 손에 익었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영국으로 떠나기 전, 김건은 연철무에서 아이언 골렘의 심장을 주재료로 한 방패 제작을 의뢰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재료를 본 연철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최강의 라운드 실드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전까진 임시 라운드 실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 라운드 실드를 손에 익히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었지만, 임시로 쓰는 것이다 보니 조금은 아쉬운 감이 있었다.

‘무슨 공격이 하나도 통하지 않아!’

후방에 있는 연세연은 얼음 마법으로 계속 에마누엘레 2세를 견제했다.

하지만 얼음 공격을 날리면 귀신같이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고 바로 마력을 쏘아 보내 상쇄시키거나 검으로 부서 버렸다.

‘좀 더 시간을 줄여야 해!’

김강현은 김건, 연세연과 함꼐 에마누엘레 2세의 약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만약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면 1 대 3의 싸움으로 체력이 고갈되어야 하나, 언데드로 부활한 탓에 체력 소모의 흔적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싸울수록 불리한 것은 자신들이었다.

“조금만 버텨!”

“헬릭스, 오른쪽 디펜더들을 지원해 줘요!”

“알겠느니라.”

힐끔 뒤돌아보니 헌터들은 데스 나이트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나 점점 밀리는 형세가 취해지고 있어 남은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승부를 걸어야 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김강현만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답답한 싸움을 하는 거냐?!’

에마누엘레 2세의 눈으로 싸움을 지켜보는 록스는 짜증이 났다.

‘데스 나이트들을 이용하면 단숨에 놈들을 죽일 수 있거늘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서!’

자신이 에마누엘레 2세라면 데스 나이트들과 함께 힘을 합쳐 김강현 일행을 죽일 것이었다.

냉정하게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테라 길드와 루시아, 로렌스, 이들만 조심하면 다른 이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헌터들에게 소환 의식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록스는 서둘러 다시 세뇌 명령을 내렸다.

-임모탈이여! 데스 나이트들과 함께 놈들을 죽여라!

“끄으으윽.”

그 순간, 에마누엘레 2세의 움직임이 멈칫거리며 신음 소리가 들렸다.

이 틈을 노린 연세연의 얼음탄이 그의 가슴에 박혔고, 뒤이어 김건의 밀치기 공격도 먹혀 들어갔다.

‘응? 세뇌에 저항하는 건가?’

찰나였지만 김강현은 에마누엘레 2세의 눈동자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다시 명령한다. 임모탈이여, 데스 나이트들과 함께 눈앞의 적을 죽여라!

“끄윽! 이 몸은 고귀한 비토리오의 핏줄!”

-뭐?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 비토리오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노라!”

-이 미친놈이!

“크아아앗!”

록스는 계속해서 세뇌를 걸었지만 그의 영혼에 깊숙이 새겨진 정신은 건드리지 못했다.

록스의 목소리를 떨쳐 버리려는 듯 에마누엘레 2세는 검에 마력을 실어 사방에 흩뿌렸고, 이에 분노한 록스는 계속 세뇌를 시도했다.

“건, 세연. 잠깐이라도 놈의 움직임을 봉쇄해 줘.”

“알겠어요.”

“네!”

이상함을 느낀 김강현은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김건과 연세연에게 에마누엘레 2세를 맡기고, 후방에서 마검에 정신을 집중해 오러 소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침입자는 용서할 수 없다. 모조리 죽인다!”

-제, 젠장. 놈이 폭주하다니!

“죽어라!”

계속해서 마력을 주입하여 에마누엘레 2세의 정신을 지배하려던 록스는 불완전한 세뇌 때문인지 그가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움직이자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그가 폭주하기 시작하자 데스 나이트들도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밀집 대형으로 벽 쪽에 붙어!”

“흩어지면 죽는다!”

헌터들은 데스 나이트들이 진열을 무시하고 사정없이 공격하기 시작하자, 벽 쪽에 모인 채 철저하게 방어에 신경 쓰며 김강현 일행을 보았다.

이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는 분명 에마누엘레 2세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굴의 정신! 피어스 방패술!”

김건도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스킬들을 총동원하고 이중 마나 실드를 펼쳐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얼음 폭풍이여. 몰아쳐라! 그리고 적의 심장을 꿰뚫어라!”

연세연도 마찬가지.

남은 마나를 모조리 끌어모아 얼음송곳에 얼음 폭풍을 집약시켜 공격을 날렸다.

에마누엘레 2세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늦은 뒤. 그의 가슴에 박힌 얼음송곳이 전신을 점점 얼려 갔다.

“진짜 끝내자!”

뒤이어 김강현이 싸움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인피니티 마나를 집약시켜 만든 오러 소드를 날렸다.

이는 단숨에 에마누엘레 2세의 신체를 소멸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이 몸은 죽지 않는 불멸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니라!”

하지만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단숨에 빈사 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마력을 내뿜어 얼음송곳도 없애 버리고는 김강현의 오러 소드를 없애기 위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 * *

헌터들은 에마누엘레 2세를 보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김건과 연세연의 공격으로 그의 패배가 확실하다고 여겼는데, 어느새 빈사 상태와 얼음 속박을 풀고 반격하는 모습을 보니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엇!”

“저게 뭐야?!”

에마누엘레 2세의 검이 오러 소드를 파괴하려는 순간, 갑자기 오러 소드가 사라졌다.

헌터들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마, 말도 안 되는?’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것은 당사자인 에마누엘레 2세였다.

갑자기 눈앞에서 오러 소드가 사라지자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순간 당황한 것.

하지만 이미 휘두른 검을 거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 놀랄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허억!”

사라졌던 오러 소드가 바로 자신의 몸통 앞에 나타났다.

도저히 막을 수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보며 김강현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생각한 것이 정답이었어.’

오러 소드에는 평소보다 많은 인피니티 마나를 집약해 있었는데, 이것뿐이라면 김건과 연세연에게 시간을 벌어달라고 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검에 의지를 담기 위해서.

계속해서 인피니티 포스를 수련하고 있지만, 아직 공간을 가르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숙련도가 조금 높아진 지금은 잠깐의 시간이 주어지면 원하는 지점을 가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상태.

그리하여 에마누엘레 2세가 김건과 연세연의 봉쇄를 뚫고 반격을 취할 경우를 상정하고 공간을 넘는 공격을 시전했고, 이 생각은 들어맞았다.

“끄아아앗!”

오러 소드는 단숨에 에마누엘레 2세의 전신을 덮쳤고, 순식간에 비명과 함께 신체가 파괴됐다.

허공에 검은 가루가 흩어지는 완벽한 소멸이었다.

“놈들도 사라지고 있어!”

“해냈다. 해냈어!”

“이겼다아아!”

에마누엘레 2세가 소멸하자 그 영향은 데스 나이트들에게도 미쳤다.

방금 전까지 격렬하게 검을 겨누었던 데스 나이트들은 에마누엘레 2세를 따라 검은 가루가 되어 사라져 갔다.

이 모습을 보며 헌터들은 끝났다는 생각에 바닥에 주저앉아 웃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살았다는 기쁨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후우, 고생했습니다.”

“다행히 잘 극복했네요.”

“지금 피해가 어떻게 됩니까?”

하지만 헌터들을 이끄는 루시아, 로렌스, 김강현은 쉴 틈이 없었다. 이번 싸움으로 죽거나 다친 헌터들을 파악하고 치료해야 할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현재 살아남은 헌터들은 31명. 아직 다크니스 녀석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는데 벌써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당했습니다.”

“부상자는 없어요. 정확히는 데스 나이트의 저주로 살 수가 없었어요.”

“이만큼 살아남은 것을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데스 나이트들의 검에는 시독과 마력이 섞여 있어 상처를 입은 헌터들은 부상이 악화되고, 마력이 전신으로 퍼져 단숨에 생명력을 빼앗아 갔다.

시간이 있었으면 응급처치라도 할 테지만, 다들 싸움에 집중하고 있어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지 못했다면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을 거예요.”

냉정하게 테라 길드가 에마누엘레 2세를 죽인 것이 유효했다.

로렌스도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테라 길드가 없었더라면 최악의 경우 테라 길드와 루시아, 로렌스를 제외하고는 이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반드시 다크니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현 님. 저, 저기!”

“응?”

“귀, 귀신이 나타납니다!”

갑자기 김건이 벌벌 떨며 손가락으로 에마누엘레 2세가 소멸한 자리를 가리켰다. 목소리에 놀람과 당황이 뒤섞여 있었다.

다른 헌터들도 그곳을 바라보니 뿌연 빛 무리가 점점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또 부활하는 거냐?!”

“이래서 언데드들이 싫다니까!”

혹시나 싶은 마음에 편히 쉬고 있던 헌터들도 다시 싸울 채비를 하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김강현을 비롯한 테라 길드원들은 선두에 나서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여긴 어디인가? 그리고 자네들은 누구이고?”

“응?”

“방금 우리가 싸웠던 놈 맞아……?”

무언가 이상했다.

에마누엘레 2세가 희뿌연 형체로 나타났는데 아까와 달리 싸울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김건이 경계하며 먼저 선제공격을 하려던 순간, 김강현이 만류하며 앞으로 나섰다.

‘아까와 달리 마력이나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

마치 순수한 영혼의 느낌이었다.

그동안 저주에 걸려 다크니스에 의해 이용당하던 육신이 사라지자 금제가 사라진 것이 아닐까 짐작되었다.

“나는 분명 궁궐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이곳은 당신의 무덤입니다.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내 무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천천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역시나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김강현은 자신들과의 만남에서부터 싸웠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헌터들은 정신을 차린 에마누엘레 2세가 적이 아님이라는 판단이 들자, 다크니스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다행이도 에마누엘레 2세는 자신이 했던 행동이 하나씩 떠올랐다.

“다크 위저드의 집단, 다크니스라고 했느냐? 감히 본 왕을 이용하다니! 괘씸한 놈들!”

그는 영면에 빠진 자신을 흑마법을 이용하여 불러낸 후 언데드로 부활시키고, 악한 일에 썼다 것에 분노했다.

생전이었다면 당장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쫓아 죽일 것이나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우선 짐을 구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한다. 더불어 놈들에게 조종당해 후손들을 다치게 한 것을 사과하고 싶구나.”

“아닙니다.”

“하아, 염치없지만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느냐?”

“말씀하시지요.”

“이 몸은 죽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구나. 짐 대신 그들을 벌해줄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저희들이 이곳을 들어온 이유가 그들의 토벌입니다.”

“고맙구나. 내 대가로 한 가지 선물을 주마.”

어차피 에마누엘레 2세의 부탁이 아니라도 다크니스와 같은 하늘을 두고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헌터들에게 자신의 보물을 주기로 결심했다.

“내 관 밑에 있는 단상을 부수게. 아이들이 내 말을 지켰다면 귀한 것이 들어 있을 것이야.”

그 말에 헌터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김건이 다가가 관 아래에 있는 단상을 어깨 밀치기로 부수자 빈 공간이 드러났는데 그 안에 철제 상자가 들어 있었다.

김건은 조심스레 철제 상자를 가지고 헌터들 앞에서 개봉했다.

“우와!”

“이, 이게 얼마짜리야?!”

[이탈리아의 영혼-S급]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갑주로 다크니움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착용 시 사용자의 신체 능력을 20%를 향상시켜 주며, 파손 시 시간이 지나면 자동 복구된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사후,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갑주에 보석을 각인하어 착용자의 권위와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수십억에 해당하는 보석들이 황금 갑주에 박혀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 보였다. 게다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색이 바라지 않았고, 당장 착용해도 될 정도로 보관이 잘 되어 있었다.

김강현은 갑주의 화려한 외관보단 갑주의 능력치에 탐이 났지만, 헌터들은 외관에 넋이 나갈 정도로 빠져 있었다. 하지만 다들 눈치를 보느라 먼저 가지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우우우웅! 우우웅!

“어? 이 녀석이?”

그런데 용감하게도 한 존재가 갑주를 차지하겠다고 주장했다.

김강현의 마검이 검명을 울리며 갑주에 대한 탐욕을 드러낸 것.

모든 헌터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김강현은 마검을 양손으로 꽉 쥔 채 인피니티 마나를 집어넣으며 진정시키려고했하지만 소용없었다.

“어, 엇?!”

“검이 갑주로 날아간다!”

“이 자식이!”

욕망을 참지 못한 마검은 단숨에 김강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갑주를 향해 쏘아졌고, 붉은 마나를 내뿜으며 갑주를 뒤엎었다.

김강현이 황급히 쫓아가며 마검을 붙잡았지만, 마검은 이미 갑주를 집어삼킨 뒤였다.

“허허허. 물건의 주인이 따로 있었구만.”

“검이 갑주를 흡수했다고?”

이 과정을 지켜보던 에마누엘레 2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갑주를 집어삼킨 마검은 칼날과 자루 사이에 둥근 구슬이 박힌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안에 갑주가 들어가 있었던 것.

갑주의 형태 또한 황금색이 아니라 마검과 동일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괜히 눈치를 보다 검 따위에게 귀중한 갑주를 뺏기자 헌터들은 안타까운 기색이 다분했다.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검이 갑주를 차지해 버렸네요.”

자아를 가진 마검이 멋대로 사고를 쳐버리자, 김강현이 고개를 숙이며 수습하기 바빴다.

“나중에 여길 나가게 되면 어떻게든 보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피닉스 길드는 괜찮아요. 여기서 테라 길드 도움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니잖아요.”

그때, 루시아가 나서서 말했다. 그 말에 피닉스 길드원들이 모두 동의했다.

테라 길드가 아니었다면 앞서 함정에서 모두 죽었을 것이었다.

데스 나이트과의 싸움에서도 그들 덕에 살 수 있었으니, 돈 따위에 목숨을 비교할 수 없었다.

“크흠! 크로스 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렌스는 무조건 보상을 받고 싶었지만 근처 길드원들을 보니 피닉스 길드원들과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마당에 고집을 부리면 외톨이가 될 것이 뻔하고, 치사하게 받겠다는 말을 할 수 없어 통 크게 넘어가는 것으로 말했지만 속이 많이 쓰렸다.

‘그거 하나에 수십억은 할 텐데!’

하지만 이미 말을 뱉었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었다.

“참으로 보기가 좋……!”

에마누엘레 2세가 화기애애한 후손들의 모습에 칭찬을 하려는데, 갑자기 영혼이 작은 구체가 되더니 출구 쪽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헌터들이 그의 영혼을 따라 다급하게 움직여 긴 복도를 벗어나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직경 100m의 원형 마법진이 각인되어, 그 주변을 다크 위저드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선 다크니스의 수장 록스.

에마누엘레 2세의 영혼 또한 그의 손바닥에 올라가 있었다.

“패배한 녀석 주제에 말이 많아. 쓸모없는 녀석.”

“다크니스?”

“그래. 설마 여기까지 올 줄 몰랐건만……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았구나.”

그는 흑마법으로 에마누엘레 2세의 영혼을 마법진에 집어넣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만든 3개의 관문을 모든 헌터들이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는데, 자신이 그들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모양이었다.

“이제 운 따위로는 살 수 없을 거다. 그분께서 세상을 내려오실 시간이다!”

그 말과 함께 록스는 소환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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