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장. 미래를 위한 스카우트 (57/119)

2장. 미래를 위한 스카우트

“토끼들이 원래대로 돌아가?”

돌연변이 토끼들의 덩치가 점점 줄어들더니 사람들이 알고 있는 토끼로 변하는 것이었다.

만만치 않는 그들의 기세에 당장에라도 싸우려 했던 김강현과 연세연은 그저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D급 토끼?”

혹시나 싶어 토끼의 상태창을 보니 원래 이 던전에 거주하고 있던 토끼가 맞았다.

평균적으로 D급에 스킬은 하나도 없는 일반 토끼였다.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토끼들로, 그동안 자신들을 강하게 해준 힘이 사라지자 허탈함과 분노가 찾아왔다.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덤벼!”

쿠웅!

“뀨우우우!!”

“뀨뀨!!”

토끼들이 토왕의 복수를 하기 위해 공격해야 할지, 약해진 지금 도망쳐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김강현이 발에 마나를 실어 땅을 굴렀다.

소리와 진동에 깜짝 놀란 토끼들은 두리번거리더니 재빠르게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반 토끼가 되니 힘의 격차와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는 본능대로 살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

토끼들이 사라지자 김강현과 연세연은 이들이 원래대로 돌아온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이거 마력석 아니야?”

토왕의 시체를 살피던 중 연세연이 반으로 잘라진 마력석을 발견했다.

반으로 잘린 인공 마력석(D급)

-총 천 명의 영혼이 담긴 A급 인공 마력석으로 그들의 억울한 원한, 슬픔, 증오 등 부정적인 감정도 함께 담겨 있었다. 반으로 갈라지며 현재는 마력의 잔재만이 남아 있다.

이제 더 이상 가치가 없는 돌에 불과한 것을 확인한 김강현은 표면에 각인된 마법진을 살폈다.

“이 마력석은 마법진의 핵으로 쓰이면서, 주변 생명체에 마력을 전이해 자신을 지키도록 만들었네.”

“그래서 돌연변이 토끼들이 보스 몬스터의 말을 들었던 걸까?”

“맞아. 마력석이 부서지고 지킬 대상이 사라진 데다, 마력도 사라졌기에 원래대로 돌아온 거고.”

“참! 마지막에 보스 몬스터는 어떻게 쓰러트린 거야? 분명 검이 놈에게 닿지 않았는데 날카롭게 베인 흔적이 있잖아.”

김강현이 허공을 벤 자리를 지나간 토왕의 몸이 베어졌다.

“공간을 베는 거야. 처음에는 다 섯 번 중 한 번 성공할까 말까였는데, 이젠 간신히 세 번은 성공해.”

“공간을? 그게 말이 돼?”

연세연은 김강현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공간을 베는 것이야말로 인피니티 포스의 궁극으로, 마나의 흐름을 읽고 공간을 베어 마나 소드를 그곳에 남기거나 공간을 넘어 적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김강현은 믿지 못하는 연세연을 내버려 둔 채, 토왕의 몸에서 나온 마력석을 수거하며 말했다.

“지금쯤이면 헬릭스와 김건 쪽도 마무리됐을 테니 만나보자. 거기서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을 거야.”

“으응.”

둘은 토왕이 죽은 자리에 만들어진 게이트를 통해 던전을 빠져나왔다.

* * *

쪼르르륵.

“늦었구나.”

“오, 오셨어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극과 극이야?”

헬릭스 일행은 이미 던전 클리어 후 호텔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헬릭스는 느긋하게 초코 케이크를 먹으며 쉬고 있는 반면, 김건은 군데군데 옷이 탄 데다 전신이 까맣게 익어 있었다.

“클리어는 쉽게 했지만, 나한테는 지옥이었어요.”

김건은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들어간 던전엔 엔트들이 있었다.

몬스터들은 바로 적을 공격하기보단 숲을 이용한 미로를 만들어 상대를 공격하는 타입.

자꾸 길을 헤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시점엔 이미 엔트들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몬스터들 따위가 이 몸을 함정에 빠뜨려?!”

그리고 헬릭스는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에 화가 나, 지옥의 불꽃을 소환해 던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엔트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지옥의 불꽃은 상성이 좋지 않았다.

나무가 본체인 엔트들은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보스 몬스터도 엔트였는지 등장하지도 못한 채 불바다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했다.

“으아아앗!! 사람 살려! 타 죽는다!!”

분노에 이성을 잃은 헬릭스는 김건을 신경 쓰지 않고 마법을 시전했다.

다행히 목숨은 붙어 있었지만 옷과 살이 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오자마자 바로 이유하에게 화상 포션과 치료제를 받아 복용했기에 좀 좋아진 것이었다.

‘정말 많이 고생했구나.’

이야기를 들은 김강현과 연세연은 김건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쪽은 어떠했느냐? 마법진의 핵은 있었느냐?”

“아, 여기 있어.”

사건의 원흉(?)인 헬릭스는 초코 케이크를 가볍게 비운 뒤 본론을 꺼냈고, 김강현은 품속에서 반으로 잘린 마력석을 건넸다.

“이쪽과 똑같구나.”

헬릭스도 던전에서 얻은 마력석을 꺼냈다.

그러고는 돌덩어리에 불과한 마력석 조각을 붙이고 마력을 불어넣자 각인되어 있던 마법진이 발동됐다.

“자, 잠깐! 이렇게 되면 사람들의 영혼이 다크니스에게 전달되지 않아요?”

“걱정 말거라. 핵 위치에서 벗어난 이상 이것은 마력석에 불과할 뿐이니까.”

“혹시 몰라 이 방은 외부에서 감지가 불가능하도록 마나를 둘렀으니 다크니스가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머쓱해진 김건은 조용히 헬릭스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좋아. 분석이 끝났느니라.”

“어떤 마법진이지?”

“예상한 대로 총 6개의 서브 핵이 있고, 한 곳에 메인 핵이 설치되어 있다. 서브 핵을 통해 인간들의 영혼이 모이면, 메인 핵이 있는 장소로 보내도록 마법진이 구성되어 있구나. “

“메인 핵의 위치를 추적할 수 없나요?”

“흐음, 그렇지 않아도 이 몸도 시도해 보았으나 철저하게 막아놓고 있어 불가능하구나.”

“네가?”

연세연의 물음에 대한 답을 들은 김강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헬릭스는 드래곤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마법에 있어서는 전지전능했다.

“현재 지구의 기준으로 보기 힘든 수준의 마법인 만큼 분명 상위 마족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야.”

“흐음.”

“게다가 놈들은 서브 핵이 온전한 상태에서 메인 핵의 위치를 추적하려고 할 경우 폭파 기능을 설치해 놓았고, 파괴 시 모든 데이터를 지워 버리도록 해놨구나. 아마 서브 핵이 없어져 공급이 불편할 경우 메인 핵을 발동시킬 것이니라.”

결국 메인 핵의 위치를 찾기 위해선 서브 핵들을 모두 찾아 없앨 수밖에 없었다.

“좋아. 테라 길드는 유럽 협회에서 메인 핵이 있는 위치를 파악하기 전까지 휴식과 수련에 몰두한다.”

“네? 저희가 끝까지 찾는 게 아닌가요?”

“빨리 서브 핵들을 없애야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텐데?”

“불필요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야. 너희들은 마족과의 싸움을 대비한 헬릭스와의 수련이 끝났어?”

“그, 그건…….”

“그리고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는 몇 가지 준비할 물건들이 있으니 시간이 필요해. 괜히 여기에 힘을 쏟고 있다 나중에 진짜 싸워야 할 때 못 싸우면 억울하잖아. 거기에다 서브 핵을 없앤다 해도 사망자 수는 줄이지 못해.”

김강현은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했다.

돌려서 이야기했지만 그들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두 사람도 이를 눈치채고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번 던전만 하더라도 연세연은 미끼 역할을 했으며, 김건은 불길을 피해 도망쳤을 뿐이었다.

다른 곳에서 두 사람은 뛰어난 실력자임에 틀림없으나, 이곳에선 아직 많은 것이 부족했다.

“기죽지 말거라. 다음 던전에서는 각자 제몫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줄 테니 말이다.”

“네!”

“감사합니다!”

‘……저 녀석이 철들었나?’

평소 눈치라고 없던 헬릭스가 갑자기 둘을 위로하며 데리고 나가는 모습에 김강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들은 어려울 때 주는 고마움을 잊지 못했지.’

헬릭스는 나중을 기약하며 몰래 웃음 지었다.

물론 과연 두 사람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혼자 남은 김강현은 루시아에게 전화를 걸어 두 곳의 던전에서 얻은 정보에 대해 공유했다.

-정말 핵이 있는 두 곳을 갔다 왔다고? 그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서브 핵 사진을 헌터폰으로 받고서야 겨우 믿음이 간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헤어진 지 불과 3시간 정도였으니, 서브 핵이 있는 던전 두 곳을 클리어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두 팀으로 나뉘었다 해도 이동 시간에, 던전의 환경,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니까.

게다가 기존 던전들과 달리 다크니스의 손길이 닿아 있는 곳ㅇ니 며칠을 고민하고 들어가도 부족한 것이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김강현 일행의 무력은 자신들의 상식과는 너무도 멀리 벗어나 있었다.

“응. 이제 남은 4곳은 유럽 협회에 맡기고, 메인 핵을 공략할 때 합류할게.”

현재 4곳 중 2곳은 피닉스 길드와 크로스 길드가 방문 예정이며, 남은 2곳은 회의를 통해 정할 예정이었다.

루시아는 마음 같아산 테라 길드에 공략을 부탁하고 싶으나 외부인이나 다름없는 계속 부탁할 수는 없어 고맙다고 인사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고 보니 그쪽도 만나봐야지.”

의도치 않게 시간이 남자 김강현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

“에이, 이번에도 허탕 치는 거 아냐?”

50대 중년의 남성이 길을 걸어가며 퉁명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래도 US 그룹에서 직접 미팅을 요청했으니 어느 정도 마음이 있겠지. 일단 만나고 생각해 보자!”

몇십 년 전, 신개념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각 회사에 미팅을 요청했지만, 자금과 신기술을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어느 유명 브랜드의 자동차 업체에서 수석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지만, 아직 꿈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느리지만 조금씩 모은 돈으로 신기술 개발과 함께 부품들을 준비하고 있던 중, US 그룹에서 미팅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지.’

자신이 가진 기술을 빼내기 위해 허위로 접근하는가 싶어 경계했으나, 차분하게 전화를 건 강려원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진실성이 느껴졌다.

게다가 실장이 직접 자신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서 영국까지 온다는 말에 진심이라는 생각이 섰다.

그 미팅 자리가 바로 오늘 있었다.

“아직 안 온 건가?”

약속 장소는 현지인만 알고 있는 스테이크 맛집으로,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사람들의 방문이 뜸했다.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빈자리에 앉았다.

“미스터 최! 이 시간엔 어쩐 일이야? 설마 술 마시고 오후 근무 하려고?”

“잠깐 약속 있어서 식사 할 겸 들렀어. 평소 먹는 걸로 2인분 부탁해.”

“오케이!”

이 식당을 10년 동안 다닌 만큼 식당 주인과 편한 사이였다.

시간을 보니 아직 약속 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

그때,

“어?”

‘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20대 초반인 학생.

US 그룹의 실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혹시 엔지니어 최영하 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안녕하세요! 어제 연락 드렸던 US 그룹 전략기획실장 김강현입니다.”

“자, 자네가?”

순간 최영하는 너무 놀라 주방 안의 셰프가 들을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US 그룹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만큼 승진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중 전략기획실은 US 그룹의 모든 사업 전반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만큼 아무나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영하는 너무 어린 김강현이 의심스러웠다.

“여기 명함입니다.”

그의 생각을 읽은 김강현은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명함에는 김강현의 직함과 부서명, 그리고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으흠, 고맙군. 괜찮다면 말을 놓아도 되겠는가?”

“네. 그렇게 하십시오. 식사가 나오기 전에 가볍게 이야길 나눠볼까요?”

“그러지. 어차피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서 오래 있을 수 없네.”

김강현은 겉치레 없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알겠습니다. 우선 엔지니어님을 찾아오게 된 계기는 자동차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이시기 때문입니다.”

“험, 크흠!”

“최영하 님을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하는 팀에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나를?”

자신을 띄워주는 말에 최영하는 머쓱하며 헛기침을 내뱉다가 다음 말에 믿어지지 않아 되물었다.

“네. 20여 년 전의 일이라 미팅 내용을 자세히 확인할 순 없었지만, 대략적이나마 어떤 프로젝트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고서도 나를 데려가겠다고? 옛날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나를 찾아온 거겠지?”

“네. 기존의 석유, 수소, 전기가 아닌 자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이용한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하시지요.”

“하하하하! 여기 나 말고 미친놈이 또 한 명 더 있었군!”

너무도 당당한 대답에 최영하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네 말대로 나는 천연 에너지를 통해 연료 공급이 필요 없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선 막대한 돈이 필요하고!”

“자세하게 이야길 들을 수 있습니까?”

“좋아. 이렇게 된 것 시원하게 이야기하지.”

지금까지 그가 목표로 하는 자동차 개발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랬기에 먼저 찾아온 김강현의 제안은 최영하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석유와 가스를 연료로 이용한 내연기관 자동차는 점점 성능이 발달하고 있고, 여러 업체에서 개발하고 있는 전기차도 미래에 충분히 시장을 점령할 수 있는 자동차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료 공급이 필요 없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은 건 인류의 미래 때문이지.”

“인류의 미래요?”

“그래. 언제까지 우리들이 석유와 가스를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나? 전기차의 전기도 화석 원료나 우라늄을 사용해야 만들 수 있어. 그 부담은 각 나라에서 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질 것이고.”

최영하의 생각에 김강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라와 회사는 원활한 운영을 위해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손해가 나거나 큰 금액이 필요하면 거의 대부분 일반 사람들에게 전가한다.

“자동차는 고가지만 한 번 사면 그대로 가격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떨어져.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인 데다가, 샀다고 끝이 아니라 관리비와 유지비 명목으로 계속 돈이 들어가지.”

“…….”

“그렇기에 천연 에너지를 연료로 하는 새로운 자동차의 개발을 연구하고 있는 거다! 내가 목표로 하는 자동차는 부품 교체와 수리를 최소화하고 인공적인 연료 공급 없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태양 에너지를 기반으로 움직이니까!”

“좋은 생각이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자동차 판매 가격이 높지 않을까요? 신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데다가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이니까요.”

“대량생산이 아닌 소량생산일 경우에는 비싸겠지만 자동차 시장의 규모를 생각해 봐라. 어떤 자동차보다 효율이 높은 만큼 누구나 살 것이고, 기존의 내연기관과 전기차는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될 테지.”

열변을 토하던 최영하는 목이 말라 테이블에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의 말대로 전 세계의 천연 에너지 기반의 자동차를 살 수 있다면 가격 따위는 얼마든지 맞출 수 있을 터였다.

심지어 이 기술을 기존 자동사 업체에 대여만 해줘도 라이선스로 단숨에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문제는 기술 개발에 쏟아부어야 할 돈과 가능성이군요.”

“크흠!”

정곡을 찌르는 김강현의 말에 최영하는 헛기침을 내뱉었고,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어색해졌다.

그의 말만 들으면 돈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생돈을 그냥 계속 태워야 할 판이고, 수억의 돈이 들어갈 지, 수조의 돈의 들어갈 지 아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자, 맛있는 음식 나왔…… 뭔가? 왜 밥상 앞에서 인상을 쓰고 있는 거야?”

“이야길 하다 보니 진지해졌군.”

“그럼 이제 웃게나. 맛있는 음식 앞에선 고민하지 말고 즐겁게 웃어야 하지!”

“그러지.”

때마침 식당 주인이 스테이크를 가지고 나왔다. 너스레를 떠는 말에 싸늘하던 두 사람도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다.

최영하와 김강현의 앞에 놓인 그릇에는 노릇하게 잘 구워진 스테이크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3인분이나 다름없는 양이었다.

“좀 많지? 여기 주인이 통이 커서 말이야! 어찌 되었든 한국에서 영국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을 테니 식사는 내가 사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주인 말대로 식사하기 전 고민 따위는 없애도록 하죠.”

“뭐?”

“US 그룹에서는 최영하 엔지니어님의 꿈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원하시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할 테니 반드시 스카우트하고 싶군요.”

“그, 그게 정말인가? 저, 정말?”

갑작스러운 승낙에 최영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이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네. 그렇지만 모든 걸 수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식사 후 조율해 보도록 하지요.”

“아아…….”

“서, 선생님?”

“에, 에이! 나이 먹고 이게 웬 주책이야! 눈, 눈물은 무슨!!”

김강현의 말에 최영하의 뺨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누가 볼까 자리에 앉아 소매로 얼른 눈물을 훔쳤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감추지 못했다.

남들에게 무시받고 수없이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몇십 년 동안 자신의 꿈이 담긴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단 한 명도 동참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더욱 이 자동차 개발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갑자기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나타나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을 듣자 한순간에 눈물이 터져 버렸다.

‘그동안 내색하지 않았지만 많이 힘들었구나.’

최영하에 대한 정보가 워낙 적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략 짐작했는데, 강현의 생각보다 험난했던 것 같았다.

김강현은 그동안 겪었던 안 좋은 기억들을 눈물로 흘려보낼 수 있도록 잠시 기다려 주었다.

‘생각대로 잘 풀려서 다행이야.’

현재 최영하만큼 실력이 뛰어난 전문가를 찾기 어려웠다.

거기에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니 자신과 비슷한 목표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강려원을 비롯한 US 그룹의 관련자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인성과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바로 스카우트를 하려고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의 흔들림 없는 눈과 말투, 마나를 통해 대략 그의 생각과 인성을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을 말할 인물이 아니며 순수하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무조건 자동차 개발 연구만 하는 것도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일하며 계속 시장의 흐름을 읽고 공부하고 있었다.

“미, 미안하네. 이거 괜한 모습을 보였어.”

최영하는 10여 분 정도가 지나자,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고 원래대로 돌아갔다.

“아닙니다. 아직 음식이 따뜻하니 식사를 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 조용한 곳에서 하도록 하죠.”

“알겠네.”

그제야 최영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스테이크용 칼을 들었고, 김강현도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 * *

원래 그들은 다른 가게로 옮겨 구체적으로 앞으로 진행할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넓은 식당엔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단 한 팀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그냥 식당 구석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김강현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마나막을 펼쳐 목소리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까? 벌써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원래 최영하는 점심시간 이후에는 회사에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회사? 입장 바꿔서 지금 그딴 거에 신경 쓰이겠나?”

최영하는 괜찮다는 듯 회사에 연락해 오늘 반차를 쓰겠다고 통보하곤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자, 얼른 이야기를 시작하지.”

그리고 열 살 아이처럼 김강현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우선 엔지니어님이 말씀하신 천연 자동차를 그대로 만들기 위한 지원은 할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제 생각으론 그 자동차는 실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죠.”

“뭐?”

갑자기 자신의 자존심을 긁어내는 말에 최영하는 얼굴을 찌푸리며 크게 소리쳤다.

“천연 에너지가 인류에게 미래에 남겨진 대체 에너지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력이 충분한 에너지를 구현할 만큼 뛰어나지 못해 최소 몇십 년의 시간은 지나야 할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개발하고 있는 것 아니냐?”

“회사에서 가능성 하나만을 보고 하염없이 투자를 해야 합니까? 아시겠지만, 태양열 기반의 자동차를 만든 회사가 있습니다.”

“나, 나도 알고 있지.”

“그런데 왜 사람들은 가스-전기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구매하는 걸까요?”

“…….”

“효율성이 없기 때문이죠. 태양열 자동차는 운전할 수 있는 거리가 정해져 있고, 혹시라도 비가 오거나 구름이 없으면 충전할 수 없으니까요.”

말을 하지 않지만 최영하도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시장에선 전기차도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었으나, 전기 충전소를 설치하지 못하는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곳곳에 전기 충전소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전기차를 구매하는 사람도 적었다.

“그럼 US 그룹에서는 이를 보완할 방법이 있단 말인가?”

“물론입니다. 우선 이 영상부터 보시는 것이 좋겠는데, 이 영상은 회사 내에서도 극비로 취급되니 타인에게 언급하지 않겠다는 약속 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약속하지.”

최영하가 떠보는 듯 그를 슬쩍 찌르자, 김강현은 바로 영상 하나를 틀어 보여주기 시작했다.

바로 이유하가 마나 전지를 실험하는 영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최영하는 마나석이 전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깜짝 놀랐다.

“이, 이게 말이 되는가? 이거 조작 아니야?”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군요. 이 레시피를 개발하느라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데요.”

“여, 영상 좀 나한테 보내주게!”

“절대 안 됩니다.”

마나석이 전기로 변환되는 과정은 신세계였다. 이대로 마나 전지가 대량 생산되어 시장에 풀리면 모든 산업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었다.

‘이걸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다면!’

마나석을 활용한 마나 엔진을 개발할 수 있다면?

최영하가 꿈꾸는 무연료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선 영상을 자세히 분석해야 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압니다. 저 또한 그것을 생각하고 스카우트하려는 것이니까요.”

“저, 정말 이게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현재로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최영하 님이 합류하면 가능성은 높아질 것입니다.”

최영하는 김강현이 어떤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는 물건이야! 정말 이런 걸 만들 수 있을까?’

개발자로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설렘.

“무조건 참여하지! 아니, 작업실 하나만 만들어주면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하겠네!”

“진정하시죠. 그렇게 했다간 회사가 노동법 위반으로 고소당합니다.”

“아, 알겠네.”

“우선 빠른 시간 안에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본사가 한국에 있는 만큼 빠른 피드백과 지원을 위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야겠지.”

“그리고 개발에 필요한 금액은 무제한 지원하되 철저하게 확인할 것이니, 지출이 있을 때마다 정확하게 기록을 남겨야 할 것입니다.”

‘무제한 지원?’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보답받기라도 하는 것인지, 갑자기 나타난 김강현은 그동안 최영하가 고민하고 있던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있었다.

기록을 남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쓰는 돈은 모두 자동차 개발에 들어갈 것이고, 예외라고 해봤자 식비일 뿐이었다.

“월급을 비롯한 계약서 작성은 한국의 강려원 부실장님에게 이야기해 둘 테니 귀국 후 처리하도록 하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나도 잘 부탁하네.”

김강현은 대화를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건넸고, 최영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손을 잡았다.

“참! 앞으로 제 직속 부서에 소속될 것이니 공적인 자리에서는 실장으로 존대해 주세요. 나이 많다고 함부로 상대방에게 말하는 거 좋지 않습니다. 계속 걸렸는데, 말하니 시원하네요.”

“뭐?!”

“그럼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야, 이 자식아! 거기 좀 서봐!”

뒤늦게 말을 이해한 최영하는 씩씩거리며 김강현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미 재빠르게 식당을 나간 뒤였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그의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어떻게 이들을 이끌었던 거지? 내가 능력이 부족한 걸까?”

루시아는 각 길드에서 올라온 보고들을 확인하자 머리가 아팠다.

보고의 내용은 마법진의 서브 핵 토벌 결과.

결과만 보면 테라 길드가 없앤 2개를 제외한 나머지 4개의 서브 핵도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좋은 성과를 올렸는데도, 과정은 최악이었다.

‘분명 그렇게도 주의하라고 이야기했는데!’

김강현은 서브 핵이 온전한 상태에서 메인 핵의 위치를 추적하려고 할 경우 서브 핵이 폭파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루시아의 피닉스 길드가 맡은 던전은 바로 서브 핵을 파괴했으나, 크로스 길드와 휘하 길드들은 서브 핵으로 메인 핵 추적을 시도했다.

그러자 서브 핵은 반경 5㎞에 해당하는 구역에 폭발을 일으키며 모든 것을 휩쓸었다.

다행히 헌터들의 목숨은 붙어 있었지만 크로스 길드의 전력이 절반으로 깎여 전력 손실이 컸다.

“마스터 소드가 도와주면 조금 편할 텐데.”

그동안 루시아가 유럽 협회에서 길드장 루크가 없어도 힘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검천호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루크와 친분이 있는 데다가 그의 부탁으로 여러 길드들을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었는데, 검천호가 부상으로 빠지자 공백이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테라 길드가 합류하면 검천호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유럽 협회의 일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수련 중인 검천호를 방문했지만 지금은 회복에 힘쓰겠다는 말과 함께 물러나 있겠다는 입장을 들었다.

“후, 이제 메인 핵이 있는 장소를 찾는 것뿐이야!”

루시아는 김강현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말하는 것이 무리한 부탁임을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이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할 일은 하루라도 빨리 다크니스의 본거지를 찾아 스펠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구하는 일.

루시아는 다시 심기일전하고 정보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 * *

“꿀꺽!”

‘이번엔 성공일까?’

이유하는 스펠 바이러스의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며칠간 만든 시제품을 이용해 동물 실험을 하던 중.

그녀는 스펠 바이러스에 걸린 쥐에게 치료제가 담긴 주사를 조심스레 투여했다.

“제발!”

쥐의 몸속에 들어간 치료제가 천천히 스펠 바이러스를 소멸시키는 것이 마나의 흐름을 통해 감지되었다.

문제는 이다음.

‘잔재까지 완벽히 없어져야 해!’

김강현이 제공한 마력 제거제 레시피로 만든 치료제는 완벽하게 마력을 제거했다.

문제는 스펠 바이러스의 독을 해독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이유하는 마력 제거제에 다양한 해독제를 합쳐 실험하고 있었다.

“찍찍! 찍!!!”

“휴, 이번에도 실패네.”

이번 치료제도 쥐의 몸에 있는 10%의 스펠 바이러스를 없애지 못했다.

숙주인 쥐는 바로 죽어버렸다.

스펠 바이러스는 소멸 위기를 느끼면 공격적으로 변해 숙주를 죽였다. 때문에 함부로 사람에게 실험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마나석과 마나 포션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불행 중 다행은 마나석과 마나 포션으로 스펠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의 생명이 연장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이 혜택이 돌아갈 순 없지만, 그래도 많은 국가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마나석과 마나 포션을 비싸게 팔기 위해 사재기하다 걸려 법의 심판을 받을 정도로, 현재 이 두 개의 물품은 엄격히 관리되고 있었다.

한편 테라 길드는 초기의 활약과 더불어 막대한 마나석과 마나 포션을 기부해 유럽에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었는데, 그 증거로 지금 이유하의 연구실에는 치료제 개발을 위한 마나석과 마나 포션이 가득 차 있었다.

“어때? 진전은 있어?”

“아니요. 도무지 답이 없네요.”

그때, 김강현이 이유하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역시 완벽한 해독제가 없이는 불가능한 건가?’

스펠 바이러스가 마력과 독을 합쳐 만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김강현은 이 일이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그렇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과 던전에서 나온 모든 독을 마력 제거제와 섞어 치료제로 만들어도 효용이 없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역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갈 수밖에 없네.”

“그 말은?”

“어. 놈들의 본거지를 찾아냈어. 당장 짐 싸고 다른 길드원들에게 연락해.”

“네. 알았어요!”

이곳으로 오기 전 김강현은 루시아로부터 메인 핵이 있는 위치를 전달받았다.

혹시라도 그사이 치료제에 진전이 있었을까 싶어 찾아왔지만, 결국 다크니스를 잡는 것이 급선무.

다크니스와의 싸움을 앞둔 테라 길드가 결전의 준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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