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장. 실종의 단서(6권) (48/119)

귀환한 절대자는 역대급 헌터 6권

1장. 실종의 단서

털썩!

김강현의 살기와 기세에 눌린 이상인은 겁에 질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반드시 놈을 잡는다!’

지금까지 김강현은 스콜피온 길드를 상대하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후방에서 블랙아웃 길드를 서포트했다. 괜히 나섰다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놈을 막으라고!”

“죽여 버려!”

스콜피온 길드의 간부들이 다급하게 소리치고 머더러들이 달려들었지만, 김강현의 마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모조리 쓰러졌다.

“으으……!”

“원거리에서 놈을 노려!”

근접전으로 김강현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안 스콜피온 머더러들은 원거리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조차 김강현의 마나 소드로 모조리 차단당했다.

‘큰형님의 실력이…….’

‘저 정도였어?’

‘한 방에 다 끝나!’

김강현을 힐끔 지켜보는 블랙아웃 머더러는 다들 놀란 기색이었다.

곽철용이 졌다고 한 만큼 실력이 뛰어날 거라고는 짐작하고 있었으나, 스콜피온 머더러들이 일격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다.

‘어디서 큰형님이 나타난 걸까?’

“아악!”

곽철용은 힐끔 김강현을 본 뒤 자신에게 달려드는 스콜피온 길드원의 팔을 부러트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강자가 뚝 떨어지진 않았을 테니, 곽철용은 김강현이 어딘가에 속해 있거나 신분을 감추고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니 헌터가 아닐까?’

그가 아는 김강현은 적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죽이는 법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손속에 사정을 두어 기절시키거나 일어나지 못할 정도의 부상을 입히고 있었다.

‘B급 머더러들을 쉽게 쓰러트리는 걸 보면 최소 A급 헌터!’

스콜피온 길드원들은 보통 B급에서 A급 머더러들로 곽철용도 6명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었으나 그 이상은 무리였다.

제압과 죽이는 것은 달랐다. 죽이는 것은 약간의 틈만 노린다면 적은 힘으로도 가능하지만, 제압은 상대보다 월등히 강해야 했다. 김강현은 수준급의 머더러들을 쉽게 제압하고 있었으니 그 실력이 가늠됐다.

‘마나의 색깔이 붉은색?’

그때, 김강현이 만들어내는 마나 소드의 색깔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몇몇을 뺀 대부분의 헌터와 머더러들이 가지고 있는 마나는 푸른색이었다. 곽철용은 그중 최근 유명해진 한 헌터를 떠올렸다.

‘그는 붉은색의 마나를 가지고, 검은색의 검을 쓴다고 했어! 파괴적인 힘으로 파멸을 가져온다고……!’

곽철용은 눈앞에서 머더러를 제압하는 김강현의 뒷모습을 보았다. 마나 소드를 날려 달려드는 4명의 머더러를 단숨에 쓰러트리고 있었다.

김강현의 정체를 파악한 곽철용의 두 눈이 크게 떠지는 사이 김강현은 이상인의 앞에 도착했다.

‘괴, 괴물!’

김강현을 본 이상인의 판단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쓰러트린 머더러의 숫자만 족히 50명이 넘었다. 그럼에도 김강현은 평온한 호흡으로 자신을 향해 살기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이런 놈에게 정면 승부는 소용없어!’

이상인은 겁이 가득 먹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 조용히 손을 벨트에 대었다.

“아까 뭐가 알고 싶다고 했지? 모든지 다 말할 테니 목숨만 살려줘!”

그는 바로 무릎과 고개를 숙이며 절실하게 말했다. 김강현은 이상인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좋아. 순순히 말하기만 하면 목숨은 건지게 해주마.”

아까와 달리 이상인이 순순히 항복하자 의외였지만, 김강현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인이 팔을 뻗으면 김강현의 다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줄어들었을 때, 이상인은 벨트에서 단검을 꺼내 심장을 향해 던졌다.

‘죽엇!’

단검에는 대형 몬스터를 바로 즉사시킬 수 있는 독이 가득 묻어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김강현은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아니, 옷조차 녹아 버릴 것이니 닿기만 해도 성공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 너 같은 녀석들이 이대로 포기할 리 없잖아.”

그러나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김강현은 마나 소드가 담긴 마검으로 독이 묻은 단검을 쳐냈다. 보통 머더러들은 바로 단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품속에 집어넣고 다니는데, 이상인은 벨트에 검집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다. 이럴 경우 보통 관상용이나 위험한 독을 바르는 경우가 많았다.

매번 쓰레기 같은 놈들을 상대할 때마다 계속 반복되는 상황이라, 패턴을 알고 준비하면 위협될 만한 것이 없었다.

아까 이상인이 무릎을 꿇었을 때부터 한 손이 벨트에 가 있는 것을 보고 무슨 꿍꿍이가 있으리라 판단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끝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만지기만 했어도 진짜 위험했을 거야.’

마검에는 마나 소드 덕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지만, 마나 소드가 독에 의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얼마나 독성이 강한지 인피니티 마나조차 이를 없애지 못해서, 폐공장 벽을 향해 독을 날려 보냈다.

“한마디, 한마디 신중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

‘젠장. 왜 이놈들은 안 오는 거야?!’

이상인의 눈에는 저승사자 한 명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보였다.

“자, 잠깐! 나, 날 죽이면 후환이 두려울 거다!”

“꼭 아무것도 없는 놈들이 죽기 전에 그런 말을 하지.”

콰앙!

“무사하십니까?”

“연락받고 도착했습니다.”

“으아, 살았다! 살았어!”

그때 갑자기 이상인의 뒤쪽에 있던 벽이 부서지더니 그곳에서 복면과 야행복을 입은 4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먼저 이상인의 안전을 확보하고는 동시에 눈앞에 있는 김강현을 경계하며 싸울 자세를 취했다.

‘드디어 왔어!’

이상인은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해 비밀리에 철혈 길드 최공에게 헌터들의 지원을 부탁했다.

이 제안을 들은 최공은 머더러들의 싸움에 나서는 것이 꺼림칙하여 거절했지만, 이상인은 암흑가를 지배하기 위해선 자신들과 연계해야 하고, 또 신분을 감추고 지원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결국 최공은 4명의 헌터를 이상인에게 보내주었다.

“당장 나를 지키라고! 저 새끼가 날 죽이려 한다고!”

“그렇게 할 테니 그 입 다물어!”

‘길드장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헌터들을 이끄는 강운기는 이상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물론 복면에 가려져 그의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말투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강운기는 머더러들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이 싸움의 이유와 철혈 길드에 떨어질 막대한 이익을 위해서 참여하기로 했다.

강운기는 옆에서 외쳐대는 이상인의 기세를 꺾은 뒤 눈앞의 김강현을 보았다.

‘이런 녀석을 상대하라고?’

김강현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조명이 모두 켜지지 않아 주변은 살짝 어두컴컴했다.

그렇지만 김강현에게서 풍기는 살기와 기세를 본 강운기는 그가 쉽게 쓰러트릴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짐작하고 긴장했다.

‘갑자기 헌터들이 등장해?’

반면, 김강현은 갑자기 나타난 이들의 등장에 순간 당황했다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를 확인하자 고개를 기웃거렸다.

김강현에게는 머더러들과 헌터들의 차이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었다. 대부분 머더러들의 기세에는 음침하고 어두운 감정들이 많이 섞여 있는데, 이들에게선 부정적인 감정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이런 기세를 가진 사람과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김강현은 그들을 이끄는 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메시지 마법으로 은밀히 대화를 시도했다.

[철혈 길드의 헌터들이냐?]

김강현은 암흑가 패권을 지배하기 위해 철혈 길드가 머더러들과 회동이 잦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철혈 길드가 나서는 만큼 형편없는 길드완 손을 잡지 않을 테니, 블랙아웃 길드, 스콜피온 길드, 다크사이드 길드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데 다크사이드 길드는 어쌔신으로 이루어진 길드로 철저히 의뢰를 통해 움직이는 집단이어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블랙아웃 길드의 곽철용은 음모보다는 정면 승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런 계책 따위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머더러는 스콜피온 길드의 이상인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에게선 최공과 같은 기세가 감지되었다.

‘흡! 드, 들켰어?!’

강운기는 갑작스러운 메시지 마법에 깜짝 놀라고, 정체가 발각된 것에 두 번 놀랐다.

[대형 길드인 철혈 길드가 머더러들의 싸움에 끼어들었다는 말이 돌면 재미있겠네. 그렇지 않아도 최공이 머더러들과 만남이 잦다고 소문이 돌고 있는데 말이야.]

‘으음.’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을 테니, 얼마든지 덤벼.]

김강현은 자신만만하게 기세를 내뿜으며 그들을 도발했고, 강운기는 고민에 빠졌다.

“뭘 하는 거냐? 서로 여기 눈싸움하러 왔냐?”

“시끄러! 조용히 입 닥쳐!”

그때, 상황을 알지 못하는 이상인이 눈치 없게 강운기를 재촉했다.

그는 강운기가 자신은 지키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매우 못마땅했다.

‘대체 왜 저러지?’

‘무슨 문제가 있나?’

더불어 김강현이 메시지 마법을 시전했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다른 세 명의 헌터들은 강운기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의아해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길드장에게 엄청 깨지겠지. 길드에 피해를 끼칠 거고.’

이 싸움에 참여하기 전, 강운기는 최공에게 이 싸움의 목적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물러나면 길드에 미칠 여파에 대해 냉정히 생각했다.

‘잘못하면 비천 길드처럼 완전히 끝날 수 있어!’

비천 길드가 몰락할 당시 사람들이 외면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머더러 길드인 스컬 길드와 관계가 매우 깊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언론은 물론이고 대중들 또한 아무도 비천 길드가 망한 것을 애석해하지 않았다.

이익과 명예.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강운기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 * *

“후퇴한다.”

“네?”

“여기서 물러난다고! 지금 당장 돌아간다.”

철혈 길드의 헌터들이 믿기지 않아 되물어보자 강운기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미리 길드장과 이런 상황에 대해 이야길해 두었길 망정이지!’

길드를 위해 움직이는 만큼 피해가 있으면 안 되었기에, 만약 적이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차리면 어떻게 할지 출발 전 최공과 이야기를 나눴었다.

가장 좋은 건 적을 죽여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바로 후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비천 길드처럼 망할 순 없잖아!’

지금도 머더러들과 손을 잡았던 비천 길드 이야기가 언론에서 종종 나오고 있는 만큼, 스콜피온 길드와의 밀약은 아무도 알지 못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야.’

어느새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

힐끔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도 얼굴을 아는 머더러들이 쓰러져 있었다.

실력이 뛰어나 단숨에 제압하기 어려운 이들이었는데 김강현은 전혀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실력으로 김강현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

[좋아. 앞으로도 조용히 지낸다면 이 일은 묻지.]

상대방이 조용히 물러날 의사를 보이자 김강현도 일을 크게 만들지 않고 정리하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우린 물러날 테니 알아서 해결하도록.”

“어? 어?! 자, 잠깐만!”

강운기는 김강현의 메시지 마법에 고개를 끄덕거린 뒤, 결과를 통보했다.

그리고 이상인이 어버버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철혈 길드의 헌터들과 폐공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저 개자식들이! 최공한테 단단히 따질 테다!’

이상인은 사라지는 철혈 길드 헌터들의 뒷모습을 보며 욕하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온 녀석들이 겁을 먹고 도망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전에, 어두운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확인하니 살기를 품은 김강현이 어느새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우리 둘이 이야길 해볼까?”

꿀꺽!

‘아니야.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어!’

바짝 긴장한 이상인은 급히 깨진 멘탈을 수습하고 살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날 건드리면 철혈 길드가 움직인다. 아직 비밀이지만 철혈 길드와 스콜피온 길드는 동맹을 맺었다고!”

“뭐?”

“후후훗, 놀랐을 테지. 철혈 길드는 우리들과 함께 암흑가를 통일할 계획이다. 제2의 비천 길드와 스컬 길드가 탄생하는 셈이지!”

이상인은 살기 위해 진실과 거짓을 섞어 김강현에게 허세를 부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금방 넘어갈 정도로 능청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김강현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철혈 길드를 팔아? 대단한 놈이네.’

김강현은 강운기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내 그들이 철혈 길드임을 확인했고, 끼어들지 못하게 내쫓았다. 김강현이 모든 사정을 아는 상황에서 이상인은 뻔뻔하게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잘 생각해 봐. 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모든 들어주겠어! 하지만 더 이상 선을 넘으면 그다음엔 네가 죽을 거야!”

“……하나 물어보지.”

“좋아!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자신의 말이 먹히는 듯하자 이상인은 더욱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에 김강현은 가까이 얼굴을 대며 그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네 길드와 철혈 길드가 비천 길드와 스컬 길드를 합친 것만큼 강한가?”

“뭐?”

“김강현.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그런 말 따윈 안 나올 텐데?”

“김…… 강현? 허억?!”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가 기억을 더듬던 이상인은 곧바로 경악했다.

“철혈 길드가 덤비는 건 얼마든지 환영이야. 비천 길드도 없애 버렸는데, 철혈 길드도 없애지 못할 것 같은가?”

“어…… 어…… 어…….”

‘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처, 처음부터 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너무도 놀란 이상인은 말이 나오지 않았고, 정신은 패닉 상태가 되어 싸울 의지를 아예 잃어버렸다.

눈앞의 김강현은 스콜피온 길드가 한 트럭이 와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헬릭스, 그림자를 통해 사람 한 명을 흡수할 수 있겠어?]

[그 인간의 기억을 읽으려는 것이겠지?]

[그래. 이 녀석은 살려두는 것보단 차라리 죽여서 기억을 읽는 것이 편할 것 같아.]

[이 몸도 찬성이니라.]

김강현이 강아지 형태의 소환수와 함께 다닌다는 소문은 널리 알려져 있어서, 헬릭스의 모습이 보이면 바로 정체가 들통날 수 있었다.

그래서 헬릭스는 지금까지 김강현의 눈을 공유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언제든 도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이윽고 헬릭스는 김강현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이상인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사, 사람 살려! 몸이 사라진다고!”

“마음 같아서는 목을 쳐 입을 다물게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날 구하면 1억, 아니, 2억을 주겠다! 어서 날 구해!”

그림자는 이상인이 발버둥 칠수록 더욱 강하게 몸을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아니, 신체를 흡수해 없애갔다.

헬릭스가 생명체의 기억을 흡수하기 위해선 살아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 이상인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이상인의 다급한 외침에 돈을 탐하는 몇몇 머더러들이 움직였지만, 여전히 강한 기세를 뿌리며 서 있는 김강현 앞에서 멈칫거렸다.

“기, 길드장이 사라졌어?”

“아냐. 흔적도 없이 죽은 거 아냐?”

“젠장, 이제 어떻게 하지?”

스콜피온 길드원들은 그림자에 흡수당한 이상인을 보고 두려움이 가득한 기색이었다. 지금까지 김강현은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지만,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모를 일이었다.

이를 눈치챈 김강현이 목소리에 인피니티 마나를 실어 크게 외쳤다.

“스콜피온 길드장이 죽었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지만…… 대항하는 자는 죽인다!”

“으으으……!”

“진짜 길드장이 죽었다고?!”

이상인이 죽었다는 말에 분위기가 갈렸다.

절반은 이상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항복하려 했고, 절반은 눈치를 보며 이곳에서 살아남아 도망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커헉!”

“딴생각하지 마라! 너희들에게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항복하거나, 죽거나.”

몇몇 스콜피온 길드원이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눈치챈 김강현은 단숨에 마나 소드로 그들의 목을 날렸다.

아까는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죽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죽이지 않으면 후환이 생길 수 있었다.

덜컹! 쨍그랑! 쨍그랑!

압도적인 무력에 스콜피온 길드원들은 손에 든 무기들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양손을 위로 올려 싸울 의지가 없음을 보였다.

“철용아!”

“넷. 큰형님!”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애들한테 연락해서 뒷수습을 해라.”

뒷정리를 시킬 인원은 미리 곽철용을 통해 차로 10분 거리인 곳에 준비시켜 놓았다.

‘이상인이 죽고 간부들도 이곳에 대부분 있는 상황이면 충분하지!’

이제 이곳에 있는 녀석들만 제압하면 스콜피온 길드의 전력은 5할 이상 날아간 셈이었다. 곽철용은 급히 대기하고 있던 머더러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뒷정리에 나섰다.

[강현. 그 인간들의 흔적을 찾았느니라.]

[어디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더구나. 그 건물의 지하니라. 근데…….]

[고맙다.]

김강현은 김건과 이유하를 찾았다는 말에 헬릭스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서둘러 움직였다.

미리 눈으로 지형을 익혀둔 터라 바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한 그는 철문으로 막힌 방을 찾아냈다.

김강현은 단숨에 철문을 쓰러트렸다.

“없어?”

그런데 방 안에 김건과 이유하는 없었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말은 끝까지 듣거라. 2시간만 전만 하더라도 여기에 있었지만, 의뢰인이 직접 와서 놈들을 데리고 갔구나.]

[그럼 찾을 수 없는 거냐?]

[이 인간의 기억을 자세히 살펴볼 테니 잠깐만 기다리거라. 생각보다 기억들이 지저분하여 찾기가 어려워.]

그래도 아직 흔적을 쫓을 수 있다는 말에 김강현은 안도했다. 그러고는 김건과 이유하가 남긴 흔적들이 있나 방 안 곳곳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앞서 스콜피온 길드원들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치우고 정리하여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나갈려는데 코끝에 익숙한 향기가 스쳐 지나갔다.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뭐였더라?’

달콤하면서 향긋한 향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머릿속을 차갑게 만들어주었다.

“추적 포션?”

김강현은 기억을 뒤져 향기의 정체를 파악했다. 정확히는 이유하에게 알려준 추적 포션의 향기였다. 그는 켈베로스 던전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혹시 놓친 몬스터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파이어 마나 포션의 조합을 고민하던 김강현에게 이유하가 물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포션 제작에 필요한 몬스터들을 잡아야 하는데, 개체 수가 적고 잘 도망을 쳐 고민이 많다고 했다.

“주변에 있는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추적 포션이 있어. 절반을 몬스터에게 뿌리고, 절반은 마시면 추적 포션의 향기에 민감해져 쉽게 쫓을 수 있을 거야.”

“그런 포션이?”

“냄새가 은은해서 설마 추적 포션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거다. 게다가 옷에 뿌려도 상관없고. 물로 씻어도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으니 유용하지.”

“여기서 추적 포션 향이 난다는 것은…… 유하가 보낸 메시지겠지.”

짐작대로 이유하는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재료들로 추적 포션을 만들어 절반은 자신들의 몸에, 절반은 방 곳곳에 뿌려놓았다.

“추적 포션 레시피를 알고 있으니 복용 후 쫓으면 문제없어. 남은 건 최종 위치.”

이제 남은 건 헬릭스의 연락뿐이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큰형님!”

“고생하셨습니다, 큰형님!”

‘애들이 왜 이래?’

지하에서 올라오자 뒷정리를 하러 온 블랙아웃 길드원들이 다들 하나같이 90도로 인사했다.

평소 블랙아웃 길드원들이 자신에게 깍듯하게 대하기는 했으나, 이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역시 형님이 큰형님으로 모실 만한 분이구나!’

‘이분에게 잘하면…… 나도 한 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하나같이 김강현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이 가득했다.

블랙아웃 길드에서 김강현의 존재는 공중에 붕 뜬 상태였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길드장에게 큰형님이라 불리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김강현이 곽철용을 제압했던 당시 이야기가 완전히 묻혀,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는 소문에 점점 불만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닥에 쓰러지고 항복하는 스콜피온 길드원들을 보자 그동안 쌓였던 불만들이 일거에 사라졌다. 대충 보기에도 쓰러진 스콜피온 길드원의 숫자는 20명이 족히 넘을 뿐더러,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무력으로 제압한 흔적들을 보자 싸울 의지가 사라졌다.

게다가 김강현과 함께 다닌 머더러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점점 더 김강현에 대한 경외심이 높아졌다.

“모두 정리가 끝났습니다, 큰형님.”

“그래. 고생했다. 철용아.”

“넷. 큰형님!”

“이 기회에 스콜피온 길드를 정리해 흡수시켜라. 어차피 길드장이 죽고 간부들도 붙잡힌 상황이니 어렵지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김강현은 앞으로 곽철용에게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었다.

“적이었어도 쓸 만한 녀석들이 있으면 품고, 다크사이드 길드와는 트러블이 있더라도 부딪치지 말고. 당분간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혹시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우실 겁니까?”

“이상인에게서 얻은 정보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상인을 죽이기 전에 시간이 꽤 걸렸지.’

일단의 무리들이 나타났다가 싸우지도 않고 사라지는 것을 보았으나, 김강현에게 계획이 있음을 짐작한 곽철용은 수긍했다.

“여긴 저에게 맡겨주시고, 큰형님께선 볼일을 보고 돌아오시지요.”

“그래. 고생해라.”

‘큰형님과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지.’

곽철용은 자신감이 넘쳤다.

김강현이 헌터인지라 그의 이름을 대놓고 팔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충분히 먹힐 것이 뻔했다. 그 증거로 스콜피온 길드가 김강현 한 명에게 무너졌다.

곽철용은 이 기회에 스콜피온 길드를 완전히 흡수해 독보적인 암흑가 길드로 성장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강현, 배후를 찾았느니라.]

그리고 헬릭스의 연락이 도착했다.

* * *

‘……이번엔 어딜 가는 거야?’

‘지난번과는 달라. 철두철미하게 준비된 느낌이야.’

김건과 이유하는 눈이 안대로 가려진 채 의문의 인물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양손에는 마나 구속 팔찌가 채워져 있었는데 스콜피온 길드에서 했던 것과 달리 업그레이드되어 아예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다.

차를 타고 1시간 정도를 이동한 다음엔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소독약 냄새와 깨끗한 건물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어느 보안 건물인 듯했다.

“안대를 벗기고 몸수색을 하겠습니다.”

안대를 벗자 밀실이 보였다. 허튼짓을 할 경우 바로 공격할 요량인지 목엔 칼이 겨누어져 있었다.

여차하면 몸을 뺄 생각이었지만, 이미 품속에 숨겨두었던 단검과 포션도 빼앗긴 상태였다.

몸수색을 마친 이들이 밖으로 나가고, 바로 정장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유감입니다. 더 좋은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지금은 이게 최선이군요.”

“네가 우릴 납치한 녀석이냐?”

“납치라뇨? 아무래도 의뢰를 맡은 녀석들이 험하게 대한 모양이군요. 전 정중하게 모시라고 했습니다.”

“말 돌리지 말고. 원하는 게 뭐지?”

김건은 그와 말싸움을 하는 게 싫어 바로 목적을 물었다. 이유하는 가만히 대화를 들으며 조금이라도 빈틈을 찾기 위해 그의 말을 곱씹었다.

“원하시는 대로 바로 본론을 말하죠. 마나 전지의 설계도입니다.”

‘역시…….’

이유하는 예상대로 놈들의 목적이 개발 중인 마나 전지임을 확인하자, 머릿속에서 납치할 만한 자들의 리스트가 추려지기 시작했다.

“설계도만 넘기면 거액의 금액은 물론이고, 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들어주죠.”

“…….”

“…….”

“으음, 물론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죠.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드릴 테니 나중에 말씀 주십시오.”

김건과 이유하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남자는 정중하게 인사한 후 방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두 사람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은 원룸의 형태로 화장실이 따로 있고 침대 2개와 책상 하나가 배치되어 있었다. 창문이 없어 밖의 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고, 문은 30㎝ 두께의 철문으로 마나가 막힌 이상 부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방의 네 모서리와 화장실 안까지 CCTV가 있어 사각 지대가 없었다.

“유하야. 어떻게 하면 좋겠어?”

“방법이라 말할 게 없어. 지금은 기다리는 게 최선이야.”

“후우, 강현 님은 뭘 하는 걸까?”

계속 갇혀 있어 얼마나 며칠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최소 4일 이상은 지났을 것이었다.

‘US 그룹 대표 회의까지 시간이 일주일 정도 남았을까?’

이유하는 천천히 시간을 계산하며 놈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만약 외부 세력이라면 마나 전지의 설계도를 얻은 후 자신들을 죽일 가능성이 있었지만, 내부 세력이라면 김강현이 대표 회의에서 마나 전지를 발표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목적일 것이라 판단했다.

‘아직 마나 전지는 미완성이야. 넘기는 건 둘째 치고, 우선 완성이 중요해.’

이유하는 김강현이 자신들을 찾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머릿속으로 마나 전지의 설계도를 점검하며 생각에 잠겼다. 김건도 이유하를 따라 상상 수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한 사람이 CCTV를 통해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 * *

“윤석원 팀장?”

“그래. 그 인간의 기억을 뒤져보니 US 전자의 가드 팀을 맡고 있더구나.”

“그럼 큰아버지의 측근이나 다름없겠네.”

“그렇더군. 이 몸이 흡수한 인간은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 배후에 대해서 아주 철저히 조사해 놓았어.”

헬릭스의 연락을 받은 김강현은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인 탓에 부모님과 아현이 깨지 않도록 창문을 통해 몰래 들어온 후 김건과 이유하를 납치한 배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헬릭스의 말대로 이상인은 의뢰인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의뢰인을 비롯해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해둔 상태였다.

종종 양지의 인물이 암흑가 길드에 의뢰를 하고 흔적을 없애기 위해 폐기처분하는 경우가 있어, 이상인은 장부도 따로 준비해 둔 상태였다.

“그 인간들을 데리고 간 곳은 US 전자의 연구소니라.”

“연구소라면 보안이 철저할 테니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은데.”

김강현은 이 일에 김우진의 입김이 들어가 있음을 확신했다.

가드 팀장이 전체적인 보안을 담당하고 있다 해도, 함부로 연구소 시설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잠깐 생각 좀 해보자.”

‘연구소엔 일반 사람들도 있을 터. 아무리 조심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띌 거야. 게다가 소란이 일어나면 일이 커지겠지.’

보통 납치를 한다면 사람들이 없는 외딴 곳으로 가게 마련인데, 김우진은 아예 공개적인 장소에 납치 장소를 마련해 두었다. 외부인이 방문하면 누구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데다가, 이곳이 그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격리 시설도 따로 있고 내부인도 출입이 불가능해 약간의 소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김강현은 고민 끝에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실장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급히 상의할 일이 있어서요.”

-말씀하십시오.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지만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하기에 강려원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졸린 목소리였지만 급한 일이라는 말에 서둘러 잠을 깨기 위해 손바닥으로 뺨을 쳤다.

김강현은 머더러들과의 일은 제외하고 그동안의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강려원은 잠깐 고민하다가 방안을 이야기했고, 김강현은 그녀의 의견대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 * *

“흐아아암! 여깁니다.”

“이른 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급한 사안인 만큼 어쩔 수 없죠.”

김강현은 강려원과의 통화를 끝낸 후 한 사람을 소개받아 급히 만남을 가졌다.

그는 US 전자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으로, 이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강려원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미리 연락받은 대로 준비하긴 했지만, 시간이 부족한 만큼 서둘러야 할 겁입니다.”

연구원은 김강현은 US 전자 연구소에서 일하는 한 사람의 사진을 비롯해 그의 지문을 뜬 가상 피부, 보안 카드, 의상까지 건네주었다. 물건들을 확인한 김강현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띠며 답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보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직원들의 출근 시간이 9시니 늦어도 8시 안에는 끝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정말 이거면 됩니까?”

그는 강려원으로부터 US 전자 연구소 안에 납치된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필요한 물건을 구했으나, 정말 이것이면 될지 의문스러워 확인차 물었다.

“물론이죠.”

우두둑! 우둑!

“크허헉!”

김강현은 대답과 함께 선임 연구원이 건네준 사진을 보며 얼굴 골격을 바꾸기 시작했다.

뼈가 뒤틀리는 고통이 따르는 마법이었지만, 미리 통각을 마비시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기괴한 광경이 펼쳐지자 깜짝 놀라 소리친 선임 연구원은 10초 후 다시 감탄성을 내뱉었다.

“허어…… 헌터였습니까?”

“네. 이 사람의 목소리는 어떠합니까?”

“지금 목소리 톤보다 높고 신경질적입니다.”

김강현의 얼굴은 어느새 사진 속 얼굴과 똑같아졌고, 목소리도 사진 속 사람과 똑같이 맞췄다.

체격도 맞추고 복장도 갈아입으니, 김강현은 사라지고 사진 속 사람이 서 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합니까?”

“와, 완벽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름이 뭡니까?”

“지상길. US 전자의 부연구소장입니다.”

드디어 US 전자 연구소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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