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암흑가 점령
‘클럽이 원래 이런 덴가? 내가 들은 것보다 심한데?’
나이트메어 클럽 구석에 앉은 김강현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행위들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몇몇 테이블에서는 대놓고 마약을 하며 정신이 몽롱한 상태를 즐기고 있었고, 술에 취해 정신없이 음악에 몸을 맡기거나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성행위를 하는 남녀의 모습들도 보였다. 머더러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있었다.
“이 새끼가 시비를 걸어?!”
“쳐봐! 한 번 깽값 좀 받아보자고!”
“썅! 죽어!”
게다가 술에 취해 슬쩍 부딪친 것에 시비가 붙어 두 무리의 사내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야야! 이 새꺄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버지 전화 한 통이면 다 죽어!”
“싸움은 밖에서 하시죠.”
“당장 팔 놓지 못해! 다치면 손해배상 청구할 거야!”
“네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싸움이 벌어진 지 5초도 안 되어, 이 상황을 유심히 보고 있던 클럽의 가드들이 나섰다.
이곳은 조용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동은 무난하게 넘어갔으나, 시끄러운 싸움은 바로 제압해 클럽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러한 모습이 익숙한지 주변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즐겁게 놀고 있었다.
김강현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자리에 앉아 계속 클럽 안을 두리번거리자 이상하게 여긴 웨이터가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손님. 찾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캔디 사러 왔나요?”
웨이터의 경험상 보통 혼자 왔을 경우는 두 분류로 나뉘는데, 여성을 만나러 왔을 경우와 마약을 거래하는 것이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마약을 즐기고 있는 만큼 웨이터를 통해서도 마약을 바로 살 수 있었다.
“사람을 찾고 있어요.”
‘캔디 손님이 아니잖아. 젠장!’
“아! 그럼 알려주시면 제가 바로 데려오거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마약을 판 대가로 받는 인센티브가 날아갈 것 같아, 웨이터는 팁이라도 얻을 요량인지 계속 말을 붙였다.
“그럼 블랙아웃 길드장에게 안내 좀 부탁드립니다.”
“뭐? 이런 미친놈-”
“죽기 싫으면 조용히…….”
나이트메어의 웨이터들은 신변에 위험이 생기거나 적이 침입하면 가드들을 부르도록 교육받았다. 강현이 찾는 사람이 누구인지 안 웨이터는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며 급히 가드들을 부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가 호출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 김강현의 손에서 붉은빛의 마나가 흘러나왔다.
“꺽!”
“손 빼. 그리고 가드들에게 아무런 일도 아니라고 신호 보내.”
인피니티 마나가 웨이터의 몸에 들어갔다가 나온 시간은 1초에 불과했으나, 일반인은 죽음을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신을 관통하는 엄청난 고통에 순간 작게 비명을 지른 웨이터에게 김강현은 조용히 지시했다.
웨이터의 비명 소리에 순간 클럽 안의 모든 가드들이 시선이 집중되었는데, 웨이터의 신호만 있으면 바로 달려와 김강현을 제압할 기세였다.
‘피, 피 냄새! 가드들을 부르면 죽는다!’
웨이터는 아까 김강현이 머더러들을 제압하면서 묻은 피 냄새를 맡았다.
이곳에서 일한 1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는데, 당연히 죽을 뻔한 경험도 여러 번 겪었다. 그 죽음의 기운을 김강현에게서 감지하자 등줄기에서 소름이 끼쳤다.
웨이터는 살기 위해 조용히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가드들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제스처를 보냈고, 가드들은 다른 곳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소, 손님. 그 사람은 아무도 못 건드려요. 가는 길목마다 침입자를 대비해 머더러들이 경계를 서고 있고요.”
“그 정도쯤은 괜찮아.”
“제가 안내했다간 침입자를 데리고 왔다고 죽는다고요.”
“그럼 가는 길만 알려줘. 너한테는 피해 없도록 할 테니까.”
“에휴.”
웨이터는 김강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말을 둘러댔지만, 그럴 때마다 김강현은 계속 파고 들어갔다.
결국 웨이터는 블랙아웃 길드장이 있는 VIP실로 가는 길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제가 말한 것은 비밀입니다. 발설했다간 제가 죽습니다! 진짜로요!”
“바로 가드들이 날 찾아오면 네 이름을 불 거다.”
“네네!”
“의심을 피해야 하니까 맥주 2병만 가져와.”
김강현에게서 겨우 벗어난 웨이터가 냉장고에서 맥주 2병을 가져왔다.
김강현은 맥주를 마셨지만 바로 인피니티 마나로 알코올을 날려 버리고, 10여 분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안에 화장실이 있나요?”
“여기는 출입 금지 구역이니 돌아가라.”
“이 앞은 지나갈 수 없다.”
그리고 웨이터가 말해둔 길을 따라 가니 두 명의 머더러가 통로 한가운데 서 있었다.
김강현은 화장실이 급한 척 연기하며 뚫고 지나가려 했으나, 그들은 단호하게 강현을 막았다.
“그럼 강제로 뚫고 가야지.”
“뭐?”
파앗!
말과 함께 김강현은 머더러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가 그의 명치에 인피니티 마나가 실린 주먹을 날려 단숨에 기절시켰다. 머더러의 큰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이 새끼가!”
이를 본 다른 머더러는 오른손으론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고 왼손으론 주머니에 있는 호출기의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소란스러워지는 건 거절이야.”
“컥!”
이번에는 발로 머더러가 들고 있는 단검을 천장으로 날려 버린 후, 점프하여 뒤돌려 차기로 머리를 가격해 기절시켰다. 단숨에 두 명의 머더러를 제압한 김강현은 VIP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야? 어떻게 여기 들어온 거야?!”
“앞에 있는 놈들은 잔챙이들 안 막고 뭐했어?”
VIP실 앞에는 또 두 명의 머더러가 문을 막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김강현을 보자마자 바로 짜증을 냈다.
“야. 앞에 있는 놈들이 없는 사이 들어온 것 같은데 꺼져라!”
“여긴 너 같은 놈들이 오는 데가 아니야.”
김강현이 두리번거리자 이런 일이 종종 있었는지 그들은 나가라며 손짓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은데?”
“서, 설마 적이냐?”
이 한마디로 머더러들은 바로 강현을 적으로 인식하고 태세를 갖췄지만, 김강현이 먼저 움직였다.
“마, 마나 피스트?!”
“젠장!”
“읏차!”
두 머더러들과의 거리가 멀어 단숨에 제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든 강현은 주먹에 마나 피스트를 실어 그들의 심장을 향해 날렸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대응하지 못한 두 사람은 기절했고, 강현은 쓰러지면서 소리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이 바닥에 닿기 전 받아내 조용히 눕혔다.
그리고 VIP실의 문을 열었다.
“호출 없이 왜 들어온 거지? 웨이터도 아닌 것 같은데?”
“네가 블랙아웃 길드장이냐?”
“그래. 이 몸이 블랙아웃 길드의 곽철용이다.”
“맞게 왔네. 그럼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방금 전까지 의뢰를 수행하고 온 곽철용은 굉장히 피곤한 상태로, 술을 마시며 기분 전환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강현이 허락 없이 다가오자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곽철용은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세와 살기를 내뿜었다.
“이 개자식이! 한 번 칼침 맞아야 정신 차리지? 앞의 놈들을 어떻게 뚫고 왔는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나도 시간이 없는 몸이야. 그리고 입 좀 닥치면 좋겠군.”
“흡!”
“아직 정신 못 차렸냐?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네놈은 오늘 죽어!”
김강현은 단숨에 곽철용의 기세와 살기를 없애 버리며 분위기를 장악했다. 날카로운 칼처럼 김강현의 기세가 그의 목을 겨누었다.
곽철용이 김건과 이유하를 납치한 범인이고 그들의 생사가 불투명하다면, 바로 죽일 마음이었다.
꿀꺽!
‘어쌔신? 설마 다크사이드 길드에서 날 죽이려고?’
곽철용은 김강현의 살기에 어느새 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것을 느꼈다.
‘도저히 피할 데가 없어!’
이미 기세 싸움에서 진 곽철용은 도망을 생각하고 눈동자를 굴려보았지만, ㄷ 자 형태로 놓인 의자와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 때문에 움직이는 순간 김강현이 달려들어 자신의 목을 쳐낼 것만 같았다.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야. 그렇지만 애들만 있으면!’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 곽철용은 길드원들과 함께 공격하면 쓰러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우선은 놈에 말대로 움직일까 생각했다. 그사이 김강현은 테이블을 사이를 두고 곽철용 앞에 섰다.
“우선 자리에 앉아 이야기 좀 하지.”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어떤 새끼가 길드장을 노리고!”
곽철용이 쭈뼛거리며 앉으려는데 타이밍 좋게 블랙아웃 길드원들이 닫힌 문을 부수며 안으로 들어왔다.
선두에는 김강현에게 맨 처음 제압당해 기절했던 머더러들이 있었는데, 정신을 차린 그들이 길드장을 노리고 있음을 파악하고 클럽 안에 있는 머더러들과 나이트메어 클럽 가드들까지 동원해 VIP실로 찾아온 것이었다.
길드원들을 보자 어두웠던 곽철용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들은 각자 너클과 단검 등 무기를 들고 달려들 기세였다.
“잘 왔다! 녀석들아! 당장 이 개자식을 죽여!”
“넵!”
“동작 그만.”
곽철용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김강현의 한마디에 모두가 움직일 수 없었다.
정확히는 방 안을 가득 채운 김강현의 기세 때문이었다. 그동안은 곽철용에게만 기세가 쏘아지고 있어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거기서 움직이면…….”
김강현의 오른 손바닥에 인피니티 마나가 동그랗게 집약되었다. 김강현은 작은 총알처럼 뭉친 인피니티 마나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겼다.
피잉! 콰아아아앙!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쏘아진 마나 구슬이 벽에 부딪치자마자 VIP실 2개 면적의 크기가 폭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너희들이 죽는다.”
“허억!”
“흡!”
이를 본 머더러들과 가드들은 몸이 굳은 채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움직이지 못했다.
게다가 방금 보았던 마나 구슬이 김강현의 머리 주변으로 계속해서 생겨났다. 그들이 발을 떼는 순간 자신에게 쏘아질 것만 같았다.
“조용히 꺼져!”
“넵!”
“즐거운 시간 보내십쇼!”
이어진 김강현의 말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VIP실을 나갔다. 김강현은 그제야 허공에 뿌려진 마나 구슬들을 회수했다.
‘저, 저승사자다! 으어어억!’
지금까지 모든 것을 지켜본 곽철용은 무서움에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주저앉았다. 김강현은 조용히 작은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그럼 이야기를 나눠볼까?”
“네! 뭐든 말씀만 하십쇼!”
곽철용은 살기 위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 *
“먼저, 이자들을 알고 있냐?”
“아니요. 모릅니다.”
“그래?”
김강현이 헌터폰에서 김건과 이유하의 사진을 보여주자, 곽철용은 진지하게 살펴본 후 말했다.
김강현은 곽철용을 자세히 살피고 기세로 압박했다. 혹시라도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두었기 때문인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거짓말을 한 것 같진 않아 보였다.
‘만약 거짓말이었으면 심박수가 오르거나 눈동자가 조금이라도 흔들렸을 텐데.’
곽철용에게서 거짓말의 징후가 없다면, 블랙아웃 길드는 김건과 이유하의 납치와 관련이 없었다.
“그럼 모든 흔적을 없애 버리는 건 어떨까?”
“허업!”
‘방금 날, 아니, 블랙아웃을 없애 버린다고 한 거야?’
작게 중얼거린 것이지만, 그 말을 들은 곽철용은 탄성과 함께 손으로 입을 가렸다.
김강현은 헬릭스를 불러 이들의 모든 기억을 지워 버리고 곽철용만 깔끔하게 죽여 분란을 일으킬 생각이었는데, 곽철용은 이곳에 원하는 사람이 없으니 기분이 나빠져 완전히 전멸시키겠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시작했다.
“저, 저기 잠시만요!”
“응?”
“원하는 게 뭔지 모르지만 한 번만 살려주십쇼! 시키면 시키는 대로 뭐든 하겠습니다! 어딘가에서 의뢰를 받았다면 의뢰 완수 금액의 2배를 드리겠습니다!”
눈앞에 저승사자가 있다고 판단한 곽철용은 정신없이 말을 내뱉었다. 김강현은 어이가 없어져 곽철용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됐고. 우선 스콜피온 길드와 다크사이드 길드에 대해 말해봐라.”
“넵! 먼저 다크사이드 길드는…….”
곽철용은 살기 위해 자신이 아는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크사이드 길드는 대부분 어쌔신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점이 드러나거나 의뢰인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상 대리인을 통해서 의뢰를 받았다. 그래서 많은 머더러가 다크사이드 길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대리인을 붙잡아 고문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했지만, 대리인들은 기본적으로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 있어 입을 열지 않았다. 심지어 버티다가 견디지 못할 경우는 자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스콜피온은 블랙아웃과 함께 마약과 성매매를 취급하며, 클럽과 건설 회사 등 힘 쓰는 일이 많이 필요한 곳에 사업체를 두고 있었다. 두 길드는 서로 고객 명단이 비슷하여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김강현은 다시 계획 수정을 고려했다.
‘원래는 하나씩 방문하여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잘하면 다시 판을 짜지 않아도 되겠어!’
본래는 세 곳의 길드를 모조리 없애 버리고 암흑가를 무주공산으로 만들어 버릴 계획이었다. 이 편이 나중에 사람들을 솎아낼 필요 없이 깔끔해서인데, 곽철용이 순순히 자신에게 동조할 것 같자 방향을 틀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지. 원래는 블랙아웃 길드를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순순히 날 따른다면 목숨과 지금까지 누렸던 지위는 유지시켜 주도록 하지.”
“그 말은 길드도?”
“물론. 길드 전체를 날름 먹는 것이기 때문에 기분은 나쁘겠지만, 목숨과 비교한다면 가벼울 테지.”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목숨과 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오자 곽철용은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지금까지 블랙아웃 길드장으로 군림하면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았다. 이를 포기하고 깔끔하게 죽을 건지, 김강현을 따르며 지금까지 누리던 것들을 유지할지 고민되었다.
이러한 곽철용의 생각을 읽은 김강현은 조용히 설득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하게 뒤통수 맞으면서 살 거냐?”
“그건?”
“암흑가에 속해 있는 이상 배신은 어쩔 수 없지만, 참 안타까운 일이지.”
머더러들끼리 신뢰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다들 돈과 이익에 의해 움직이고 배신은 밥 먹듯 반복했다.
‘나도 3년을 거쳐 이 자리에 올랐지.’
곽철용은 길드장을 차지하기까지 3년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을 떠올렸다.
“나를 따른다면 마나를 걸고 두 가지는 확실하게 약속하겠다. 첫 번째는 배신하지 않는 것. 두 번째는 머더러라고 하더라도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요?”
곽철용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언제까지 밑바닥 생활을 할 순 없으니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위에 있는 머더러를 죽이고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수입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배신하고 그것을 뺏어야 했다.
“물론 어려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김강현은 곽철용의 말이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 또한 테라의 암흑가를 다니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왜 암흑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보고 경험했다.
“이런 암흑가의 구조가 아니라 길드원들에게 정기적인 수입과 지위를 인정한다면?”
“그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암흑가가 하나로 통일되어 양지로 나간다면?”
점점 현실적인 이야기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안정적인 사업체를 운영한다면?”
“그, 그렇다면 다, 당연히!”
순간 김강현의 말에 혹한 곽철용은 동의했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암흑가에 모인 머더러들은 억울하게 머더러가 된 자들도 있지만, 살인이 좋아 머더러가 된 자들도 있었다. 이런 자들을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김강현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다툼이 있었지만 테라의 암흑가도 통일시켰고, 그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다.
“물론 지금은 아무것도 드러난 것이 없으니 말뿐이지만, 믿고 안 믿는 건 네 판단이다!”
설명을 마친 김강현은 팔짱을 끼고 곽철용의 최종 선택을 기다렸다.
‘역시 쉽게 믿을 수 없지만, 가지고 있는 무력만큼은 믿을 수 있어.’
실수로 헌터를 죽인 곽철용은 어쩔 수 없이 암흑가에 들어왔는데, 3년간 김강현처럼 강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암흑가에서는 힘이 곧 법이었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곽철용은 결심을 굳혔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큰형님!”
곽철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올렸다. 김강현은 부담스럽지만 여기서 막으면 절을 할 기세에 내버려 두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스콜피온 길드를 없애야겠지. 다크사이드는 꽁꽁 숨어 있는 만큼 시간이 걸릴 테고.”
“전쟁입니까?”
순간 곽철용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지금까지 블랙아웃과 스콜피온은 서로 앙숙으로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나 있었다. 만약 김강현이 정면에 나선다면 단숨에 스콜피온 길드를 제압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미안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전쟁은 아닐 거다.”
“그게 무슨?”
“암흑가가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이유가 무엇이냐?”
뜬끔 없는 질문이지만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곽철용은 신중하게 대답했다.
“살인, 성매매, 마약, 탈세 등 불법적인 일들을 하기 때문이죠.”
“그래. 양지로 올라가기 위해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하지만 여긴 암흑가이니 모든 것을 단숨에 금지한다면 많은 머더러들에게 반발이 일어나겠지. 그래서 스콜피온 길드를 없애면서 하나하나 없앨 생각이다!”
“으음…….”
“물론 일부는 합법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지. 그래야 암흑가가 유지될 수 있으니 말이야.”
곽철용도 동감하지만, 바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힘들었다.
그동안 철저히 약육강식과 불법에 길들여진 곽철용은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암흑가의 법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양지를 지향한다고 해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강현을 따르기로 한 이상 믿고 가야 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곽철용의 말에 김강현은 자신의 계획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 * *
“젠장! 또 습격을 당했다고?”
“죄, 죄송합니다!”
“그딴 소리는 그만하고! 누가 정보를 빼돌리는지, 놈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란 말이야!”
“넵!”
스콜피온 길드장 이상인은 짜증이 한껏 난 얼굴로 서류들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보고를 올린 머더러도 살짝 짜증이 났지만 이를 내색할 수 없어 화를 꾹꾹 누른 채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 혼자 남게 된 이상인은 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돌아 버리겠네. 내가 없으면 제대로 하는 일이 없으니!”
며칠 전부터 블랙아웃 길드가 자꾸 자신들을 찔러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현재 놈들 따위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아래 머더러들에게 처리를 맡겨두었다.
이후 다시 보고를 받아 보니 어이가 없었다. 단순히 블랙아웃 길드에서 자신들을 찔러보는 것이 아니라 마약 거래 현장들을 덮쳐 스콜피온 길드의 자금 흐름을 완전히 막아버리고 있었다. 게다가 어떻게 된 것인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었다. 중간 간부를 자처하는 머더러들이 해결하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점점 상황이 악화되어 길드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납치 의뢰 건만 마무리되면 내가 움직여야겠어. 그럼 검정 녀석들을 직접 없애 버릴 수 있겠지!”
최근 이상인은 두 가지 일로 정신이 없었다.
하나는 헌터들의 납치 건이었다. 일주일 전에 어떤 의뢰가 들어왔는데 두 명의 헌터를 납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상인은 평소처럼 의뢰를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금액이 크고 비밀 유지가 철저했다. 이상함을 느낀 이상인이 의뢰를 수락하기 전 뒷조사를 해보니 어마어마한 배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양지의 일반인이나 자신들을 충분히 없애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잠깐 의뢰를 거절할 것을 생각해 보았으나, 현재 길드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다른 머더러들과 함께 의뢰를 수행했다.
“약속 날짜가 내일 오전이면 지금 머더러들을 모아야 할까?”
원래 의뢰 내용은 헌터들을 납치하고 3시간 후 약속 장소에서 그들을 넘겨주며 돈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뢰인의 사정으로 인수인계가 늦어지면서 며칠 동안 자신들의 아지트에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추가 금액은 당연히 받을 예정이었다.
“그나저나 최공 녀석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단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옛날에 더 친하게 지낼걸.”
그러면서 어제 최공과의 만남을 떠올린 이상인은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는 철혈 길드의 최공과 젊었을 적 친구로 많이 치고받고 싸웠는데, 시간이 흘러 한 사람은 양지의 헌터가 되었고 한 사람은 음지의 머더러가 되었다. 비천 길드와 스컬 길드가 있을 때는 기를 펴지 못했으나 두 길드가 사라지자 둘은 서로 합심하여 양지와 음지를 동시에 지배하려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
이를 위해 최공은 자신의 길드원들을 암흑가로 보낼 의사도 내비쳤고, 사전에 만족스러운 내용으로 협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상인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 * *
김건과 이유하는 완벽하게 밀폐된 방에 갇혀 있었다. 창문도 없이 침대만 있고 화장실만 따로 격리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안 부숴지는 거야?”
쾅! 쾅! 쾅!
김건은 양 손목에 차여진 아티팩트를 부수기 위해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벽에도 쳐보았지만, 아무런 흠집도 나지 않자 점점 짜증이 났다.
“유하야,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감감무소식이야!”
“……생각 좀 정리해 보자.”
이유하는 방 가운데 앉아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는 거야.’
이곳은 빛조차 들어오지 않아 낮과 밤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략적이나마 시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하루에 한 번 자신들을 납치한 자들이 주는 식사 때문이었다.
‘려원 언니도 우리가 없어진 걸 알았을 거고, 강현 님한테 연락을 했을 거야.’
이유하는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하루에 한 번씩 꼭 연락을 주고받았고, 이틀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신변에 이상이 있음을 파악하고 김강현에게까지 이야기가 들어갔을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자신들을 찾지 못했다는 건…… 이들이 철저하게 움직였다는 것이고.’
그녀의 생각대로 스콜피온 길드는 실력이 뛰어난 자들로 납치를 준비해 결행했고, 철저하게 흔적을 지웠다. 그나마 김강현과 헬릭스가 움직였기에 남겨진 싸움의 흔적을 발견했지, 다른 자들이었다면 찾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흔적들이었다.
‘중요한 건…… 아직 납치 이유를 모른다는 거야.’
납치를 했다는 건 자신들에게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인데, 이유하와 김건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이곳에 갇힌 채 아무도 보지 못했다. 덕분에 이곳이 중간책이며 납치를 한 자들은 명령을 받고 움직인 심부름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우리들을 납치한 이유는 마나 전지?’
며칠 동안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밖에 없었다.
마나 전지 개발은 US 그룹의 전략기획실에서도 관련된 소수의 사람들만 파악하고 있었는데, 이 정보가 유출되었다면 마나 전지의 설계도를 빼돌리기 위해 납치되었을 것이라 짐작되었다.
‘아직 마나 전지는 시제품도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개발만 된다면 혁신적인 제품이 될 테니까.’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면 배터리 하나를 개발하는 것이지만, 이 배터리 하나가 모든 산업에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게다가 마법공학이라는 개념은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만큼 미래 먹거리로써의 가치도 엄청났다.
하지만 이곳에 갇혀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이상 추론에 불과했다.
“……지금은 기다릴 수밖에 없어.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확실하게 없잖아.”
“끄응! 분명 맞는 말인데, 가만히 있을 순 없어! 무슨 방법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이유하의 말에 김건은 공감하지만 답답함에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지금은 힘을 비축할 때야…… 그래야 나중에 강현 님이 우릴 구하러 왔을 때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으음.”
김강현의 이름이 거론되자 김건은 그동안 마음속에 가득 찼던 근심과 짜증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김강현에 대한 신뢰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가 아는 김강현은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매번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해냈다. 이렇게 생각하자 이번 일도 김강현이 나서준다면 무사히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시간도 남는데…… 가상 대련이나 해야겠네.”
생각을 굳힌 김건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싸웠던 몬스터와 헌터의 움직임을 복기하며 머릿속으로 더 좋은 방법이 없었는지, 어떻게 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상 대련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련 방법이나, 자신의 단점을 찾는 데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이라 전에 김강현이 꼭 해보라고 한 수련이었다.
‘나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겠지.’
이유하는 아직 개발 중인 마나 전지를 완성하기 위해 계속 설계도를 머릿속으로 보완함과 동시에 이곳에 있는 자신들을 늦게 찾을 경우를 대비한 준비도 마련하기 시작했다.
* * *
“상품은?”
“여기 있다. 돈은 제대로 준비했겠지?”
“물론. 세탁까지 완료된 깨끗한 놈들로 준비했지.”
달조차 구름에 가려 깜깜한 밤. 경기도 이천의 어느 폐공장에서 정장을 입은 사내 여섯 명이 모여 속삭이듯 은밀한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두 사람이 각자 007가방을 조용히 상대방에게 보여주었다. 한 사람의 가방에는 5만 원권 지폐들이 가득 들어 있었고, 다른 사람의 가방에는 하얀 가루들이 작게 소포장되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돈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은 소포장된 가루 봉지를 뜯어 살짝 맛을 보았다.
“좋아. 최상품의 물건이네. 가지고 오느라 고생했겠어.”
“돈도 연락 받은 대로 딱 맞군.”
이렇게 둘은 서로 약속한 물건과 돈이 맞는지 확인하고, 다른 일행은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살폈다.
“그보다 꼬리를 잡히진 않았겠지?”
“그렇지 않아도 우리들도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파. 어떻게 된 건지 블랙아웃 놈들이 덮치니 말이야!”
“보스의 말을 전달하지. 검정 녀석들이 덮치든 말든 계속 우리 쪽에서 피해가 생긴다면 앞으로 거래는 불가능하다고!”
“아, 씨! 이게 우리가 꼰지르는 것도 아니고, 검댕이 놈들이 움직이는 건데 어쩌라고!”
“그러다가 방법을 찾으란 말이다. 지금까지 뺏긴 것만 하더라도 10억이 넘어.”
“알았다고! 우리도 길드장에게 이야기할 때니까 그냥 넘어가자,”
그들은 거래를 마친 후 잠깐 블랙아웃 길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불만이 가득했다.
“형님. 지체하면 놈들이 들이닥칠 수 있습니다.”
“그래.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놈들이니 다음에 보자고.”
그들은 다음 거래를 기약하며 헤어지기 위해 악수를 했다.
그때, 귓가에 유리창 깨지는 소리들이 들렸다.
“뭐, 뭐야?!”
“반항하는 놈들은 모조리 제압해랏!”
“잡아도 끝이 없구만!”
“몸 좀 풀어보자고!”
깨어진 유리창으로 블랙아웃 길드에 속한 10명의 머더러가 잽싸게 뛰어 들어와 건물 안에 있는 6명의 사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정 놈들!”
“여긴 저희가 막을 테니 물건들을!”
이에 경계를 서고 있던 4명의 사내가 돈과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내들이 도망치도록 길을 가로막았다.
“멍청한 놈들! 우리한테 당하는 게 좋을 텐데.”
“그쪽은 우리보다 무서운 분이 계시다고!”
“뭐?!”
“그게 무슨 말?”
머더러들의 이상한 말에 사내들이 고개를 기웃거렸는데, 이 틈을 노려 머더러들은 바로 사내들의 제압에 들어갔다.
사내들은 머더러들의 팔을 뿌리치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뒤이어 날아드는 주먹을 피할 수 없었다.
“가만히 있는 게…….”
“건강에 좋을 거야!”
10명의 머더러가 그들 전부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1 대 1로 싸우고 있었다. 6명은 적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퇴로를 막았다.
머더러들의 공격은 매서웠고, 막아낸다 하더라도 팔이 얼얼하여 다른 부위를 막거나 공격하기 쉽지 않았다. 덕분에 블랙아웃은 3분 안에 상대를 모두 제압하고 무릎 꿇렸다.
“큭!”
“이렇게 검정 놈들의 실력이 좋았다고?”
그들은 생각보다 큰 실력 차에 충격을 먹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놀랐구나. 하긴 우리도 이렇게 실력이 늘 줄 몰랐어.”
“하루에 몇 번씩 죽음을 넘나들면 가능해.”
“이게 다 큰형님 덕분이지.”
“암. 그렇고말고!”
‘큰형님?’
머더러들의 말에서 큰형님이라는 말에 사내들은 궁금증이 생겼다.
‘검정 놈들의 길드장이 바뀌었나? 곽철용이 물러나거나 배신당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서로에 대한 정보를 빠삭하게 알기 위해 그들도 블랙아웃 길드에 정보원들을 심어놓았지만, 곽철용의 신상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받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말이 머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사이 몇몇 머더러들이 주변을 수색하며 이들이 거래하는 돈과 물건이 있는지 확인했다.
“애들아, 고생했다.”
“아닙니다. 큰형님!”
그때, 건너편 문 쪽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강현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까 도망쳤던 두 사내가 기절한 채 양손에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사내들은 가방은 꼭 쥐고 소중하게 가지고 있었다.
블랙아웃의 머더러들은 길드장인 곽철용이 김강현을 깍듯이 대하자 그를 큰형님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은 일부로 내 쪽으로 보낸 거냐?”
“놈들이 길을 막고 있었던 터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놈들 제압은?”
“완벽합니다!”
“너희 중 다친 놈들은 없지?”
“넵!”
“아쉽네. 그랬다간 오늘 저녁에 굴려줄려고 했는데.”
‘으으으으! 살았다!’
순간 머더러들은 소름과 함께 정신이 바짝 들었다.
분명 눈앞의 큰형님 덕분에 평소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지만, 지옥 수련만큼은 참여하기 무조건 싫었다. 실력이 느는 만큼 지옥을 맛보기 때문이었다.
“농담이다. 이번 거래는 이게 다냐?”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몸 사리는 게 느껴지네.”
‘그래도 이 정도 성과면 충분하지.’
김강현은 제압당한 암상인들과 스콜피온 길드에 속한 머더러들을 보며 생각했다.
최근 암상인들과 스콜피온 길드에서도 자신들의 움직임에 민감하여 반응하여 거래 수를 줄이고,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제 슬슬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었다. 가능하면 스콜피온 길드에서 먼저 움직여 주었으면 바람이었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있어서 편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 좋고.’
김강현은 우선 스콜피온의 자금줄인 마약 거래를 끊어놓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마약 거래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군데에서 벌어지고 있어서 혼자서는 어렵다는 판단 아래 곽철용에게 실력 있다는 10명의 머더러를 추천받아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자신의 생각보다 실력이 뛰어나지만 몇 군데 부족한 점들이 보여 최근 저녁에 지옥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단련시켜 주니 더 빠릿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적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실수를 할 경우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하니 실력이 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남은 녀석들도 처리해라.”
“넵!”
암상인들과 스콜피온 길드원들은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머더러들은 단순하게 그들을 기절시킬 뿐이었다.
“고생했으니 오늘 저녁은 수련 말고 고기에다가 술 한잔하자.”
“큰형님! 최고입니다!”
“바로 삼겹살집에 예약해 놓겠습니다!”
“그래. 난 전화 하나 하고 갈 테니 먼저 가 있어라.”
원래 길드로 돌아가면 수련 일정이 잡혀 있었으나, 김강현은 갑작스럽게 회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늘 상처 없이 적들을 제압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머더러들은 고기와 술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주변을 정리한 후 움직였고, 김강현은 그들을 보며 헌터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
“이번엔 어디로 가면 되냐? 판은 크냐?”
상대방은 전화를 받자마자 빨리 대답하라는 듯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말투에서 즐거움이 느껴졌다.
“경기도 이천이고, 10억 정도밖에 되지 되네요.”
-시, 십억?! 그 정도면 엄청 큰 거래잖아!
“그동안 덮쳤던 30억, 40억짜리에 비하면 작죠.”
-야야! 갑자기 큰돈이 생겨서 이상해진 모양인데…… 엄청 큰 밀거래라고.
“그런가요?”
-어쨌든 덕분에 또 실적 올린다. 강현아, 고맙다.
“뭘요. 지운 님.”
전화를 건 상대는 헌터협회의 유지운이었다.
처음에는 블랙아웃 길드에서 돈과 마약을 처리할 것을 생각했으나, 갑자기 거액의 돈과 마약이 길드에 들어가게 되면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내부에 있는 마약쟁이들에 의해 정보가 흘러갈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마약을 근절하려는 상황에서 전리품을 챙겨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김강현은 고민 끝에 도와주는 머더러들에게는 따로 적절한 보상을 주고 유지운에게 뒤처리를 부탁했다.
‘역시 이 녀석은 복덩어리야!’
유지운은 계속 웃으며 김강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며칠 전, 김강현에게 마약 밀거래 현장을 덮친 후 놈들을 쓰러트릴 테니 뒷정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 제안을 수락했다. 마침 나라와 협회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실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강현의 도움을 받아 실적을 올린 유지운은 매일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콜피온 길드로부터 방패막이 되어주니 제가 고마운걸요.’
김강현은 블랙아웃 길드와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헌터협회 헌터들에게 마약 상인들과 머더러들을 넘겨주기 전 자신의 얼굴은 기억에서 지웠다.
그래서인지 스콜피온 길드는 자신들의 밀거래를 방해하고 있는 녀석들이 블랙아웃 길드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람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니 정식으로 항의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회수한 돈과 마약은 헌터협회에 넘겨버리니 블랙아웃 길드는 뻔뻔하게 자신들이 한 짓이 아니라 대응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좋은 소식이 있다. 이제 이 주일 후면 부협회장으로 승진해.
“정말요? 갑자기 무슨 일로요?”
-무슨 일이긴.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빛을 발하는 거지만, 승진에 네 공이 커.
며칠 전 비천 길드에 연줄을 대고 있던 이사들과 헌터들을 모조리 몰아낼 수 있었다. 대부분 강 이사가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파고들어가니 부협회장이 강 이사를 얼굴 마담으로 내놓고 조종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협회장은 바로 기존 부협회장을 해임하고 모두 정리하도록 했다. 이후 회의에서 부협회장에 대한 안건이 나왔고, 투표로 유지운이 결정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강직한 성격과 아크 스파이더 퀸 레이드, A급 헌터 시험 등 많은 위기를 잘 지휘했으며, 이번 마약 밀거래 단속으로 얻은 실적도 자신의 사람들을 포함시켜 알뜰살뜰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강현의 도움으로 이러한 실적을 낼 수 있었기에 유지운은 항상 고맙기 짝이 없었다.
-시간 될 때 연락해라. 내가 거하게 밥 살게!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그래.
유지운과의 전화를 끊고 기절한 상인들과 스콜피온 길드원들의 기억에서 얼굴을 지우는데 벨소리가 들려왔다.
김강현은 또 유지운인가 싶어 화면을 보니 곽철용의 이름이 띄워져 있었다.
-큰형님. 철용입니다. 잠깐 만날 수 있으십니까?
“무슨 일이냐?”
-정보 하나가 들어왔는데 혼자 판단하기 어려워서 자문을 구하려고 합니다.
곽철용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지금까지 밀거래에 대한 정보는 곽철용이 거짓 정보를 골라낸 후 김강현에게 전달되었고 대부분이 확실한 정보들이었는데, 이번에는 결정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난감했다.
“길드 사무실 근처에 자주 가는 고깃집에서 애들과 밥 먹기로 했으니 그쪽에서 보자. 1시간쯤 걸릴 거다.”
-예. 큰형님,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를 종료한 김강현은 약속 장소로 블랙아웃 길드원들과 함께 이동했다.
* * *
“스콜피온 길드 내부에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받았는데…… 대규모의 밀거래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사이즈는?”
“약 200억으로 추정됩니다.”
“지금까지 잃은 돈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꽤 부자인가 보네.”
곽철용은 미리 식당에 도착해 있었다. 김강현은 식사하기 전 방에서 모두와 같이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김강현과 머더러들은 곽철용의 입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스콜피온 길드는 1년에 두 번, 길드장인 이상인이 나서서 대규모 밀거래를 했습니다. 매년 비슷한 시기였던 만큼 이것만 보면 확실한 정보죠.”
“근데 이 정보에서 뭐가 의심되는 거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큰형님 말씀대로 스콜피온 길드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죠. 최근 저희들에게 밀거래 현장을 습격당하며 거액의 돈을 허공에 날린 데다 건설 회사를 인수했는데 부실 회사를 인수해 버린 겁니다.”
“아주 재밌어. 양지에서 활동하려다가 망했네.”
“두 번째는 타이밍입니다. 지금 저희가 계속 밀거래 현장을 덮치고 있는 상황인데 대규모 밀거래를 강행하는 게 이상합니다. 제가 그놈이라면 적을 먼저 없앨 텐데 말이죠.”
마지막 말에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머더러들이 공감했다.
어떤 사람이라도 적이 눈앞에서 내 먹이를 빼앗으려고 노려보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결론은 함정이란 말이지?”
“네. 설사 진짜라 해도 습격을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놓을 테니, 이번에는 넘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최종 결정은 김강현의 몫이어서, 곽철용과 머더러들은 대답을 기다렸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스콜피온 길드장 이상인이 나서는 건 확실한 거냐?”
“네? 네! 맞습니다.”
“그럼 밀거래 현장을 덮치는 게 좋겠군.”
함정임에도 간다는 말에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김강현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목표는 암흑가를 재패하는 거다. 사정이 있어 빠른 시간에 해내야 해서 지금껏 스콜피온 길드의 자금줄인 마약 밀거래 현장을 공격한 거고.”
“그래서!”
“내일 가는 현장이 함정이라고 해도 놈들의 사정이 정말 급하다는 거고, 진짜라면 스콜피온 길드를 휘청거리게 만들 수 있겠지. 철용아, 어떻게 생각하냐?”
어쩌면 데리고 있는 머더러들을 함정으로 빠트릴 수 있는 상황이기에 이번엔 선택권이 곽철용에게 넘어갔고, 그는 고민에 빠졌다.
‘큰형님의 능력이라면 함정 따위쯤이야 가볍게 없앨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단기간에 애들 실력도 몰라보게 변했어.’
머더러 10명의 실력을 단기간에 폭풍 성장시킨 데다가 첫 만남 때 보았던 김강현의 무력이 잊히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단, 다음 현장에는 저도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함정일 수 있는데도?”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곳에 녀석들만 보내기에 미안해서 그럽니다.”
“길드장님!”
“이래 봬도 A급 머더러입니다. 위험에 빠지더라도 애들 도망칠 시간을 벌어줄 수 있겠죠.”
몇몇 머더러들이 곽철용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괜찮은 부분이 있잖아.’
김강현은 곽철용에 대한 판단을 고려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안 좋았던 터라 술 마시기 좋아하고 주먹질만 하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 꽤 정직한 성격에 자신의 사람들을 잘 챙겼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길드원들에게 나름 혜택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철용이도 같이 가는 걸로 한다.”
“넵! 큰형님!”
“그럼 오늘은 먹고 마시자!”
“네!”
이렇게 그들은 내일을 위해 만찬을 시작했다.
* * *
남양주에 위치한 어느 폐공장을 김강현과 곽철용이 옆 공장의 창문을 통해 보고 있었다. 동행한 머더러들은 아래층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때 성황했던 공장 단지지만, 지금은 문을 닫아 2주 후면 모든 공장들이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여기가 맞냐?”
“네. 이상한 점이 있으십니까?”
“느낌은 함정이라고 하는데, 준비된 걸 보면 진짜인 것 같아서…… 잘 모르겠군.”
김강현은 밀거래 장소로 정해진 폐공장을 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폐공장 안의 인기척을 확인해 보니 안에 설치된 아티팩트의 마나 때문에 사람들이 가진 마나의 기운이 묻히고 있었다.
이를 통해 안에 함정들이 가득 준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거액이 움직이는 대형 밀거래이기 때문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설치해 놓은 것일 수도 있어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결정적인 것은 아무도 들어간 사람이 없다는 거다.”
“아!”
“전달받은 예정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없다면 철수하자.”
“예!”
그들이 이곳에 잠복한 지 3시간이 지났고, 거래 시간인 새벽 2시까지는 30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보통 밀거래를 하는 자들이 도착하는 시간은 거래 시간의 10여 분 전이니 기다려 보기로 했다.
“크, 큰형님. 저, 저기를 보십쇼!”
“응?”
갑자기 경계를 서던 곽철용이 다급하게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흰색 SUV 한 대가 밀거래 장소인 폐공장 전동 셔터 앞에 차를 세웠다.
드드득! 드드드드드득!
보조석에서 정장을 입은 한 사람이 내리더니 인식기에 카드를 대어 전동 셔터를 열었다. 전동 셔터가 열리자 차가 안으로 들어갔고, 사내는 다시 셔터를 내린 후 완전히 닫히기 전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저 차가 암상인들이 타고 온 차라면 한 대가 더 도착해야 합니다. 그럼 함정이 아닐 확률이 높은 게 아닙니까?”
곽철용의 말이 끝나자마자 검은색 SUV 한 대가 도착했고, 앞과 똑같은 방식으로 공장 안에 들어갔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좋아. 가자.”
차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곽철용과 머더러들이 대형 밀거래가 함정이 진짜 정보라고 확신했다. 곧바로 이어진 김강현의 명령에 모두가 정문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열려고?”
놈들이 가지고 있던 카드를 뺏었다면 쉽게 셔터를 열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카드가 없었다.
“잠깐 뒤로 물러나라.”
김강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셔터 한가운데를 향해 손을 뻗어 우그러트렸다.
우지끈! 와르르르륵!
“이게 말이 돼?”
“내가 잘못 보는 거 아니지?”
단숨에 천장에 박혀 있던 전동 셔터가 끊어질 정도로 우그러지고, 손에 잔해가 들렸다. 김강현은 전동 셔터를 왼쪽으로 던져 버린 후 놀란 머더러들과 함께 폐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 * *
찰칵! 쨍!
“뭐, 뭐야?!”
“윽!”
폐공장 중간 지점쯤에 도달하자 갑자기 천장에 달려 있는 조명들이 켜지면서 공장 내부가 환해졌다.
“어, 언제 이렇게?”
“함정이었어?!”
“움직이는 순간 죽는다!”
공장 안 건물 벽 쪽에 층수대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난간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1층부터 시작해 공장 꼭대기 층인 4층까지 스콜피온 길드원들이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자신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마나 폭탄에다가 마나 건까지?”
“이 새끼들이 단단히 준비했네!”
블랙아웃 머더러들은 상대가 들고 있는 무기들을 보자 놀라 소리쳤다.
마나 폭탄과 마나 건은 나라와 헌터협회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 만큼 머더러들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인데, 스콜피온 길드원들은 각각 하나씩 무기를 착용하고 있었다.
“어서 와라. 철용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인……!”
그리고 2층 난간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그를 본 곽철용이 앞으로 나섰다.
“요즘 네가 미쳤구나. 뭘 믿고 그렇게 날뛰는 거냐? 덕분에 우리 장사가 망하고 있잖아!”
“미치긴! 이제 더러운 짓 좀 그만하고 깨끗하게 살아보려고 그런다.”
“하이고, 제대로 미쳤네. 여기 있는 놈들 중 깨끗하게 산 놈이 몇 명이나 있다고 그러냐?”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지 않냐?”
어처구니없는 곽철용의 말에 이상인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여기가 함정이라는 걸 알고 들어왔구나. 많이 고민했을 텐데 말이야.”
“진짜든 함정이든 네놈이 나타날 것은 확실하니 고민은 없었다.”
“아주 자신만만하구나. 아주 칭찬하고 싶어! 네놈만 죽이면 다른 검정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암흑가는 내 것이 되겠지!”
지금 블랙아웃 길드는 곽철용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그를 대신할 수 있는 간부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곽철용만 죽이면 우후죽순으로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나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어. 블랙아웃 길드장은 나지만, 암흑가를 통일하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야.”
“뭐?”
첫 만남 때는 무력으로 압도당해 굴복했지만 대화를 나눠 보니 곽철용은 김강현이 자신보다 생각이 깊고 모셔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하하하하하!”
그 말에 갑자기 이상인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갑자기?! 네가 딴 놈을 모신다고?”
“그래.”
“그 녀석이 암흑가를 재패한다면 네가 그 밑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는 거냐?”
이상인은 곽철용이 다른 사람 밑에 들어가 충성하는 성격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믿지 못했다.
곽철용은 정확히 불같은 성격이었다. 자기 고집이 세고, 밑의 부하들을 많이 아끼는 성격이라 다른 머더러들과 불화가 잦았다. 곽철용이 전 블랙아웃 길드장을 배신한 이유도 부하들을 함부로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것이 싫어서였다.
게다가 곽철용의 무위는 일대일로 싸운다면 이상인이 질 가능성이 높을 만큼 만만치 않아 굴복시키기가 까다로웠다.
“물론. 내가 그 사람에게 힘으로 졌다면?”
“으음…….”
그 말에 이상인의 입이 다물어졌다.
머더러들이 상대방에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위뿐이었다. 암흑가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힘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어 이상인은 곽철용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아직 싸워보지 않았지만, 그 정도 무위라면……!’
곽철용이 김강현의 무위를 본 건은 첫 만남뿐이지만, 경험상 그런 무위를 가진 머더러는 헌터를 통틀어도 많지 않았다.
설사 김강현이 마나 구슬들을 쏘고 탈진한다 하더라도 그 공격을 피해낼 자신이 없었다.
‘큰형님의 실력이 그 정도라고?’
‘길드장님이 큰형님이라며 모시는 이유가 있었구나.’
블랙아웃의 머더러들은 그제야 곽철용이 깍듯하게 김강현을 대접하는 이유를 알았다.
자신들의 실력이 큰 폭으로 오르는 것과 나이트메어 클럽에서 몇몇 머더러들이 김강현의 무력을 보았기에 곽철용보다는 강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어떤 녀석인지 궁금하군. 설마 이곳에 있는 거냐?”
이상인의 말에 그동안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만히 있던 김강현이 앞으로 나섰다.
모자를 쓰고 있지만, 체형과 생김새로 김강현의 나이를 짐작한 이상인이 소리쳤다.
“이거 우리보다 애송이 아냐? 설마 어린 녀석에게 무릎 꿇고 밑으로 들어간 거냐?”
“저 새끼가!”
이상인의 말에 스콜피온 길드원들도 동조하며 비웃자, 발끈한 블랙아웃 길드원이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의 앞에서 곽철용이 막아서며 나직이 말했다.
“나서지 마라.”
“그렇지만 저 자식들이!”
“나도 너희들의 마음과 똑같다. 큰형님도 알고 있을 거고…… 근데 여기서 발끈하면 모두 총알받이가 될 뿐이야.”
“젠장!”
“기회가 되면 나서는 거다.”
“예!”
스콜피온 길드원들은 계속해서 마나 폭탄과 마나 건의 총구를 자신들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곽철용은 김강현에게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머더러들을 진정시켰다.
“실력은 나이와 상관없지.”
“뭐?”
“스콜피온은 실력이 쓰레기라서 지금까지 우리한테 당한 게 아니었냐?”
“이익!”
“그래서 지금까지 잡힌 머더러들만 30여 명에, 잃은 금액은 300억 정도 되지?”
김강현은 도발에다가 아예 기름을 부어 이상인의 화를 키웠다.
“말만 하지 말고 덤빌 거면 그냥 덤벼. 애들은 허세나 부리려고 모아놓은 거냐?”
“이 새끼가……!”
“길드장님. 어차피 죽을 놈들입니다. 여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도발에 넘어긴 이상인은 당장에라도 김강현은 찢어 죽이기 위해 나서려 했지만, 운(?)이 좋게도 옆에 있는 한 머더러가 이상인을 진정시켰다.
“그래. 후우! 어차피 죽을 놈들인데, 이런 말 따위에 넘어갈 필요가 없지. 나중에 시체는 바닷가에 뿌려줄 테니 여행이나 실컷 하라고.”
이상인은 명령을 내리기 위해 손을 어깨 위로 들었고, 스콜피온 길드원들은 김강현을 비롯한 블랙아웃 길드원들에게 총구를 조준했다.
블랙아웃 길드원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하는데, 오히려 김강현은 태연하게 말했다.
“이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마지막으로 대답 하나 해줬으면 좋겠군.”
“뭐냐?”
“최근에 헌터 2명을 납치한 적 있냐?”
“어떻게 그걸…… 흡!”
질문과 함께 이상인을 유심하게 살피니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였다.
“뭔가 알고 있군. 잠깐 대화 좀 나눠야겠는걸?”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저놈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목격자가 있었나?’
김강현은 이상인의 반응에 김건과 이유하의 행방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반면, 이상인은 스콜피온 길드에서도 소수만 알고 있는 사실을 김강현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아니야. 그냥 여기서 죽이면 아무도 모를 일이야!’
“그건 저승에서 네가 알아봐라!”
이상인은 자신은 의뢰를 받아 수행했을 뿐 의뢰인의 배후와 엮이기 싫은 마음에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와 함께 1층부터 3층에 위치한 스콜피온 길드원들이 김강현 일행을 향해 마나 폭탄을 던지고 마나 건을 쏘았다.
‘이, 이건 피할 수 없어!’
‘젠장! 좀 착하게 살걸!’
‘다음엔…… 부자로 태어났으면!’
곽철용을 비롯한 머더러들은 도저히 피할 수 없어 죽는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으며 각자 생각했다.
휘이이잉!
그런데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그들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콰광! 콰르르르릉! 콰와왕!
그 후, 땅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이 일어났다. 블랙아웃 길드의 머더러들은 자신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으으으…….”
“사, 살려줘!”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죽었는데 귓가에 사람들의 신음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자신들은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슬그머니 눈을 떠 몸을 살폈다.
“내 팔? 내 다리?”
“다 붙어 있어?”
“이게 어떻게 된 거?”
“저, 저기 봐봐!”
자신들의 몸은 멀쩡하기 짝이 없었고, 오히려 공격한 스콜피온 길드의 머더러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죽어 있었다.
게다가 폐공장의 벽엔 구멍이 뚫려 있거나, 곳곳이 부서져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눈을 감은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블랙아웃 길드원들은 얼떨떨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게 가능한 일이야?’
그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눈을 감지 않고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곽철용은 아직까지 자신이 본 것이 진짜인지 믿을 수 없었다.
‘붉은 바람이 우릴 보호했어?’
마나 폭탄과 마나 건의 탄환이 자신들에게 쏘아짐과 동시에 김강현에게서 인피니티 마나가 유형화된 채 뿜어졌다.
뿜어져 나온 인피니티 마나는 블랙아웃 길드원들을 스쳐 지나가며 단숨에 마나 폭탄과 마나 건의 탄환을 되돌려 주었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적들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도리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철용아.”
“네, 네!”
“난 저놈에게 가봐야겠으니, 애들 다치지 않게 잘 데리고 있어라.”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너만 믿겠다.”
곽철용에게 말을 남긴 김강현은 아공간에서 마검을 꺼내 들고, 경악한 채 서 있는 이상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곽철용은 서둘러 머더러들에게 명령했다.
“놈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움직인다. 2인 1조로 놈들 사이로 파고들어라!”
“네, 네!”
스콜피온 길드의 머더러들은 각각 원거리 형태의 무기들을 가지고 있어 뭉쳐 있을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었다. 이렇게 열 명의 블랙아웃 머더러들은 스콜피온 길드원들이 뭉쳐 있는 곳으로 들어가 사나운 야수처럼 그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곽철용은 계속 길드원들을 지켜보며 위험 요소를 제거해 나갔다.
‘간신히 발견한 흔적이야. 놓칠 수 없어!’
김강현은 지금까지 김건과 이유하의 행방을 알기 위해 스콜피온 길드를 쑤시고 다녔다. 이제 두 사람의 행방을 아는 사람을 발견한 이상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중간중간 김강현의 발걸음을 막기 위해 스콜피온 길드원들이 나섰지만, 휘둘러지는 마검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지금 저, 저놈은 막을 수 없어! 그렇다면……!’
잠시 김강현의 무위를 보고 겁을 먹었던 이상인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여기 있는 길드원만으로는 놈을 죽일 수 없음을 깨닫고, 시간을 벌기 위해 옥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금방 갈 테니 잠깐만 기다려라. 도망쳐 봤자…… 내 손바닥 안이다!”
김강현은 도망치는 이상인을 보며 살기와 함께 나직이 말했다.
그러자 살갗을 꿰뚫을 정도로 날카로운 인피니티 마나가 그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