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테라 길드
테라 길드와 비천 길드의 길드전이 끝난 지 이 주일이 지났다. 김강현은 유지운의 연락을 받고 헌터협회를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신분과 방문 목적을 알려주시겠어요?”
“테라 길드의 김강현으로, 감찰 팀장 유지운 님과 사전에 약속했습니다.”
“기, 김강현 님이요?! 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헌터협회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던 안내원은 김강현의 이름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 인사하며 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는 행동할 때마다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이래서 직접 오기 싫었는데…….’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자 김강현은 껄끄러움에 딴짓을 하며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비천 길드와의 길드전이 테라 길드의 승리로 끝나자 헌터 커뮤니티가 떠들썩했다.
대체 테라 길드가 어떤 길드길래 비천 길드를 무너뜨릴 수 있었는지, 테라 길드장인 김강현은 어떤 헌터인지, 길드원들은 몇 명인지, 길드 건물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하면 테라 길드에 들어갈 수 있는지 정보를 원하는 글들이 무수히 올라왔다.
그렇지만 테라 길드와 김강현에 대한 정보는 연화 길드와 US 그룹, 그리고 헌터협회 유지운에 의해 철저히 막혀 있었다. 덕분에 김강현과 관련된 정보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라 그가 나타나자 모든 시선이 집중될 만했다.
“네. 유지운 감찰 팀장님은 사무실에 계시니 12층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안내원도 주변의 시선을 느꼈는지 빠르게 확인해 주었고, 김강현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 어?!”
“어딜 가는 거야?”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회를 노리던 헌터들이 엘리베이터 주변에 모여 있었는데, 김강현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비상계단을 통해 재빨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늘은 뒤늦게 김강현을 쫓아갔지만 이미 김강현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어딜 가나 끈질긴 놈들이 있다니까.”
정확히는, 비상계단의 문을 열자마자 천장에 은신한 채 그들이 자신을 쫓아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쫓는 헌터들이 계단으로 올라가자 김강현은 여유롭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지운이 있는 12층으로 이동했다.
“무슨 일로 부르셨…….”
“와, 왔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하아…… 말도 마라…….”
유지운은 사무실 책상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책상 위에는 서류들의 탑이 쌓여 있었고 손은 멈추지 않고 키보드 타자를 두들기며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지난 2주간 못 본 사이 유지운의 얼굴은 반쪽이 되었고, 살도 빠져 있었다. 게다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듯 눈 밑에 진한 다크 서클이 생겼다. 길게 내쉰 한숨으로 그의 피곤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손님으로 왔으니 차는 대접해야겠지.”
유지운은 전화 호출을 통해 직원에게 차를 가져올 것을 부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이동했다. 김강현도 그를 따라 소파에 앉았다.
밖에선 직원이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바로 차를 두 잔 가지고 들어와 놓고 나갔다. 그동안 고생이 심했던 듯 유지운은 김강현에게 푸념처럼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2주 동안 비천 길드가 벌인 일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정리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하긴…… 자세히는 모르지만 감옥에 갇힌 머더러 헌터들을 빼돌려 인체 실험을 한 것 외에도 다양하겠지요. 게다가 헌터협회에서도 사고 아닌 사고도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아…… 진짜! 그 새끼만 생각하면 혈압 오르네!”
“어떻게 보면 잘된 일 같아요. 덕분에 헌터협회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었으니까요.”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끔찍해!”
그때를 생각하자 진저리가 나 유지운은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비천 길드와의 길드전이 마무리되었던 날, 유지운은 김강현에게 연락을 받은 후 믿을 수 있는 헌터들을 대동하고 이우경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동안 비천 길드가 벌인 인체 실험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 유지운은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함을 깨닫고, 관련자들을 확실하게 잡아들이기 위해 비밀리에 조사를 결정했다. 더불어 이 일에 참여한 감찰 헌터들에게는 입단속과 보안을 지키도록 단단히 명령했다.
그런데 어떤 미친놈이 비천 길드의 인체 실험 현장 사진들을 찍어 헌터 커뮤니티에 올려 버렸다.
그날로 대한민국이 완전 뒤집어졌다. 이건 인권을 유린하는 현장이라며, 헌터들에게 제약을 걸어야 한다, 모든 길드를 감찰해야 한다는 등 갖가지 여론이 들끓어 올랐다. 이 사실을 파악한 유지운은 헌터 커뮤니티에 사진들을 찍어 올린 놈을 찾아 죽을 정도로 팬 다음 기밀 유지 발설로 직위 해제를 시켰다.
그리고 소문을 무마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사를 공개 수사로 전환하며 비천 길드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헌터협회로 소환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자들은 비천 길드와의 끈을 없애기 위해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폐기하고 해외로 도망쳤고, 이우경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헌터협회의 강 이사도 관계를 부정하며 모든 자료를 없앴다.
“그런데 말이야…… 기적적으로 나타난 한 사람 덕분에 반전이 일어났지.”
“한 사람이요?”
“너도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이라는 말에 김강현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기억을 더듬었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기동진. 비천 길드의 부길드장이지.”
“네?”
예상치 못한 이름의 등장에 김강현은 화들짝 =놀랐다. 비천 길드 부길드장의 이름이 기동진이라는 것도 유지운을 통해 처음 들었다.
“정말 의외였어. 마음먹고 비천 길드의 재산을 빼돌리면 머더러 헌터 신분을 세척하고 해외로 도망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요?”
“물론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우경에게 죽은 팀장들을 보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이 변했더군.”
그 말에 김강현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평소 기동진은 다른 팀장들과 다르게 비천 길드를 바꾸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결국 이우경의 욕심을 막지 못해 이러한 사달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김강현에 의해 마나를 잃고 헌터로서의 삶이 끝나 모든 것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한시라도 이 사태를 수습했으면 하는 마음에 협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유지운은 그의 고유 스킬을 이용하여며 기동진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한 말에 거짓이 없음을 파악했다. 덕분에 관련자들을 수사해도 자료와 정보가 없어 막막하던 조사가 기동진의 등장으로 상황이 반전되어 급물살을 탔다.
그리하여 일반인들은 검찰에서 압수수색에서 들어갔고, 헌터들은 유지운이 직접 총괄하여 조사에 들어갔다.
“그래서 비천 길드와 연관된 각종 비리와 범죄들을 계속 밝혀낼 수 있게 있다. 근데 시체 유기, 살인, 인신매매, 성범죄, 마약 등 죄질이 심해 탈세, 뇌물은 애교로 넘어갈 정도야.”
“정말 범죄의 소굴이었군요.”
“범죄와 연관된 관련자들이나 강 이사 쪽에서 없애 버린 장부들이 기동진 쪽에서 나와 충분한 자료 확보가 되었지. 그동안 발뺌만 하던 강 이사도 증거가 나오니 속수무책으로 당황하더군. 아마 수사가 끝나고 결과가 나오면 불법적으로 모은 재산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협회와 나라에서 환수 조치하고 놈은 감옥에서 평생 썩을 거다.”
유지운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헌터협회를 장악할 계획이었기에 강 이사를 감옥에 넣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김강현도 강 이사라는 머리만 잡는다면 그 밑의 사람들은 알아서 해체될 것이 분명하기에 유지운이 잘할 거라 믿고 있었다.
‘한데…… 마인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은 것 같아.’
유지운과 계속 이야기하던 김강현은 이우경의 마인화에 대해선 기동진이 말하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말을 하는 순간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일이 커짐을 알고 있었겠지.’
김강현도 마인화에 대한 내용은 철저하게 함구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동진을 제외하고 이우경의 마인화를 본 비천 길드 헌터들은 모조리 죽었기에 진술할 헌터가 없었다.
전날 헬릭스와 상의한 결과, 금색 캡슐을 과다 복용하여 마인화가 되었을 거라 짐작됐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
게다가 헌터였던 이우경이 마력을 사용했고, 마력을 얻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 후 심장을 먹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 길드전 상황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질 것이었다.
그사이 유지운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곧 세상에 금색 캡슐의 위험성을 공표할 거다.”
“정리가 끝난 건가요?”
“그래. 그동안 금색 캡슐을 은밀히 거래하던 암상인들을 체포하고 시중에 풀려 있는 금색 캡슐도 다 회수했다.”
“최소한 한국에서만큼은 금색 캡슐이 돌 일이 없겠군요.”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암시장을 여러 번 뒤집어놓았음에도 금색 캡슐의 최초 판매자를 찾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마치…… 유령 같군요.”
“그래서 그를 ‘고스트’로 지명하고 계속 찾고 있다. 고스트를 찾을 수 있다면 금색 캡슐의 유통 경로를 비롯해서 비천 길드 외 어떤 길드들이 협력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거다!”
‘아마 그는…… 흑무일 테지…….’
가족을 납치할 때 흑무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자신도 흑무의 존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도 어려운데 협회가 찾는 건 더 가능성이 낮았다.
길드전이 끝나고 생각해 보니 흑무는 오랜 시간 동안 비천 길드를 뒤에서 조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흑무가 거느리던 실력자들만큼 사람을 키워내고 금색 캡슐 같은 약을 만들어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조직의 덩치가 커야 했다. 그런 힘을 가진 조직이라면 꼬리를 잡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김강현의 예상대로 흑무는 암상인들과 거래를 할 때마다 모종의 방법으로 자신의 모습과 기억을 지워 자신이 찾아가지 않으면 거래를 할 수 없게 했다.
‘쉽사리 내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니…… 헬릭스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흑무와 관련된 일은 헌터협회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 또한 직접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저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 오랜만에 보니 사설이 길었군.”
유지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쪽으로 가더니 서랍에서 엄지손가락 마디만 한 서류 뭉치를 꺼내 김강현에게 건넸다.
김강현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서류 뭉치를 보자 표정을 찡그리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부러운 자식! 일단 보기나 해봐.”
유지운이 이상하게 질투와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서류 뭉치를 가리키자 김강현은 아무런 말없이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김강현의 눈이 점점 커져 갔다.
* * *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살 수 있다더니…….”
“불법으로 모은 재산들을 뺐다지만…… 나도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땅과 건물값이 장난 아니네요.”
“내 말이! 역시우리 나라는 부동산이 정답이야.”
서류 뭉치는 비천 길드와 이우경의 자산 내역이었다.
테라 길드는 비천 길드와의 길드전 조건으로, 승리할 시 길드를 해체하고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넘겨받기로 이우경과 협상했고, 이 조건에 따라 비천 길드와 이우경 명의의 모든 재산은 합법적으로 김강현이 가지게 되었다.
“대출이 있긴 하지만 급하게 부동산만 처분해도 1,000억을 넘는 돈을 얻을 수 있네요.”
“세금으로 이것저것 떼이는 게 많겠지만…… 워낙 재산들을 이리저리 찢어놓아서 시간이 걸릴 거다.”
이우경은 서울 곳곳에 땅과 건물들의 가격만 해도 500억이고, 비천 길드 명의로 있는 부동산도 500억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주식과 채권 등 무형의 자산도 가지고 있어 이것도 처분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올 터였다. 그러나 정작 김강현은 무감각해 보였다.
“그러고 보면 너도 대단하다. 보통 사람이 이런 돈을 얻게 되면 현실 감각이 없어질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차분해 보이네.”
“하하하, 서류상에 찍혀 있는 금액일 뿐. 아직 제 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설사 받더라도 대리인을 통해 관리할 텐데요.”
“벌써 거기까지 생각해 놓은 거야?”
“네. 부동산은 관련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천 길드가 관리하고 있던 영역도 정리하려면 복잡하니까.’
김강현은 정보를 제공한 연화 길드와 도움을 받은 철혈 길드에게 비천 길드가 가지고 있던 영역을 분할해 주려고 했으나, 과정이 어려워 헌터와 부동산과 관련된 전문가를 알아보던 참이었다.
‘이제 이놈의 행보에 따라 대한민국이 들썩일 거야.’
유심하게 서류를 살피는 김강현을 보던 유지운이 생각했다.
비천 길드가 관리하던 영역이 연화나 철혈 길드에 나눠진다고 해도 작은 다툼은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강현의 행보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터였다.
“지운…… 지운 님.”
“응?”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말을 못 들어요?”
“미안하다. 할 말이 뭐냐?”
“이한결. 그의 행방은 찾지 못했습니까?”
“이우경의 아들을 말하는 거지? B급 헌터이기도 하고…… 헌터 시험 이후 뇌사 상태에 빠져 죽었다고 들었다.”
김강현은 비천 길드와의 길드전이 끝났지만 가슴에 돌덩이가 앉아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이우경이 죽는 마지막 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어. 진짜 죽은 건가?’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장 큰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한결이었다.
길드전이 끝나고 헌터협회에서 사람이 오기 전까지 김강현은 헬릭스와 함께 이한결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연화 길드를 통해 이한결의 생사를 알아보았으나 유지운의 대답과 똑같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한결이 죽었을 것이라 확신하겠지만, 김강현은 이한결의 죽음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만약 살아 있다면…… 어디선가 이 소식을 들었을 거고, 언젠가 내 앞에 나타나겠지.’
모두가 이한결을 죽었다고 하지만, 김강현은 이한결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김강현은 유지운과 비천 길드의 재산 및 길드전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나누었다.
“이게 말이 돼? 혼자서 비천 길드를 없앴다고?”
연세연은 테라 길드와 비천 길드와의 길드전에 대한 상세 내용을 확인하고 믿을 수 없어 소리쳤다.
그동안 연세연은 김강현이 요청하는 비천 길드 정보를 제공했지만, 길드전 결과는 밀려드는 업무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연화 길드를 모든 업무를 총 관리하고 있어서, 하루라도 업무를 보지 못하면 연화 길드가 돌아가지 못할 정도였다. 당연히 길드장인 연철무도 이를 알고 도와주고 있었으나 아직 실무에 적응 중이라 여전히 많은 부분은 연세연의 손을 거쳐야 했다.
“게릴라전으로 비천 길드를 흔들 거라는 건 짐작했어. 근데 정말 혼자서 마무리 지었다고?”
아무리 강한 소환수인 헬릭스가 있어도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긴 연세연은 김강현이 게릴라전으로 시간을 끌다가 외부 세력의 도움을 받아 길드전을 마무리 지을 줄 알았다.
하지만 김강현은 게릴라전으로 비천 길드의 세력을 먼저 깎아놓은 뒤, 다른 길드의 힘을 빌려 손발을 잘라 버리고, 이후 무력으로 비천 길드를 없애 버렸다.
“표면상 A급 헌터일 뿐…… S급 헌터나 다름없네.”
김강현은 다른 헌터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돌연변이였다.
S급 헌터는 세계에서 10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만큼 극소수의 헌터만이 오를 수 있는 등급이었다.
그런데 1년도 채 채우지 않은 헌터가 A급 헌터가 되더니 대한민국의 2대 길드 중 하나인 비천 길드를 해체시켰다. 김강현이 S급 헌터에 가장 가까운 헌터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이렇게 강해진 그가 부럽기 짝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 강해진 거지?”
그녀는 차분하게 자신의 성장을 되돌아보았다.
각성몽을 통해 할아버지와 함께 헌터가 되었고, 집안은 연화 그룹이라는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집안의 자금과 인맥을 이용해 대형 길드를 설립할 수 있었고,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강해졌다.
“나와 김강현의 차이는……!”
연세연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통해 스스로 강해지기보다는 주변 길드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반면 김강현은 검천호와 대련하거나 혼자 던전에 들어가 계속 실전 속에서 자신의 실력을 키워나갔다.
오랜 시간 생각하던 연세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연철무가 있는 길드장실로 급히 향했다. 다행히 연철무는 대장간으로 도망치지 않고 끙끙거리며 서류 업무를 보고 있었다.
“할아버님, 아니, 길드장님!”
“응? 세연아, 무슨 일이냐?”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마침 쉬려고 했으니 차 한잔하며 이야길 하자꾸나.”
연철무는 잘되었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로 이동했고, 연세연도 건너편 소파에 앉았다. 차는 테이블 위에 마련되어 있어 금방 준비되었다.
“무슨 볼일인 게냐?”
“음…….”
연철무의 질문에 연세연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모습에 쉽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한 연철무는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10여 분이 흐르고, 연세연은 긴 한숨을 내쉰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은…… 연화 길드를 탈퇴하고 테라 길드로 가고 싶습니다.”
“콜록! 콜록! 커억!”
“괘, 괜찮으세요?”
“콜록! 괘, 괜찮다!”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연철무가 얼마나 놀랐는지 사레가 멈추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 거냐?”
“더 강해지고 싶기 때문이에요!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저는 강현을 따라잡지 못해요.”
“……자세히 말해보거라.”
“저는 온실 속 화초로 자라왔어요. 길드원들과 함께 사냥을 하러 던전에 가면 저는 늘 도움을 받았죠. 혼자 싸우려고 해도 연화 길드의 부길드장이기 때문에, 연화 그룹의 직계 가족이기 때문에 혼자 싸우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았어요. 그래서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길드원들 몰래 혼자 던전 사냥을 나가기도 했어요.”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연철무는 수긍했다.
“게다가 직책과 업무가 있으니 다른 길드원들과 달리 던전에 갈 수 있는 횟수가 적죠. 하지만 김강현은 다릅니다!”
“…….”
“검 어르신의 도움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시간 혼자 던전을 돌며 강해졌어요. 물론 그 과정을 겪는 동안 죽을 위기도 있었겠지만, 다른 헌터들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비천 길드와의 길드전도 혼자서 해냈죠.”
부정할 수 없는 연세연의 말에 연철무도 많은 상념들이 떠올랐다.
그 또한 김강현이 정말 비천 길드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밀어주었던 이유는 그의 감과 검천호가 선택한 김강현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점점 저와 강현의 격차는 더 벌어질 거예요. 그래서 테라 길드에 들어가 강해지고 싶습니다.”
“김강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테라 길드에 들어간다 해도 강해진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잖느냐?”
맞는 말이었다.
김강현이 거절한다면 연세연은 테라 길드에 가입하지 못했다. 게다가 김강현이 강해지는 방법을 알려줄지도 지금 상황에선 장담할 수 없었다.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죠. 그리고 옆에서 방법을 훔쳐서 배울 겁니다!”
‘애가 언제 이렇게 컸지?’
연세연은 20살이 넘은 성인이었지만, 연철무의 눈에는 항상 보호하고 싶은 아이로 보였다. 그래서 던전 사냥을 갈 때도 길드원들에게 항상 연세연을 보호하라고 명령했었고, 많은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품을 벗어나 혼자 날개짓하며 하늘을 날고자 하는 모습을 보니 할아버지로서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길드 탈퇴라…… 반발이 있을 터인데.’
할아버지 연철무는 찬성이나 연화 길드장 연철무는 반대의 입장이라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특별한 사유 없이 멀쩡한 부길드장이 길드를 탈퇴하고 다른 길드로 간다면 내부에서도 이야기가 나올 것이었고, 외부에서도 연화 길드가 테라 길드를 흡수하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것이었다.
“네 뜻은 잘 알겠으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구나.”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바로 부정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연세연은 다행이라고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길드장실을 나갔고, 연철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
* * *
“주소는 여기가 확실한데…… 정말 맞아?”
김강현은 헌터폰 화면을 본 후, 눈앞의 건물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한 사람의 행방을 찾기 위해 유지운에게 정보를 얻어 방문했는데 그곳이 의외의 장소여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평안 고아원?”
“꺄아아앗!”
“이리 공 차! 패스! 패스!”
때마침, 고아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과 함께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강현은 이를 흐뭇하게 보고 있는 나이 지긋한 한 명의 수녀를 발견했다.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니, 수녀는 낯선 외부인의 방문에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강현입니다. 실은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누구를?”
“이름이…… 아니, 저기 있네요.”
이름을 말하려던 김강현은 멀리서 커다란 빨래 대야를 옮기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 후, 크게 그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오랜만입니다. 기동진 님!”
“다, 당신은?”
비천 길드의 부길드장, 기동진은 자신을 부르는 인물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들고 있는 빨래 대야를 떨어뜨리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김강현과 기동진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바꿨다. 사무실에 이상한 분위기가 흘렀다.
“여긴 어떻게 찾아온 거냐?”
“협회의 감찰 팀장인 지운 님과 친분이 있어 알게 되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김강현과 달리 기동진은 창밖의 아이들을 힐끗 보며 불안과 두려움을 드러냈다.
‘놈의 목적은? 원하는 건?’
기동진은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했다.
‘설마 날 죽이려고?’
비천 길드 헌터들 중 유일하게 이우경의 마인화 모습을 본 그는 아직까지도 그 기억만 떠올리면 잠에서 깰 정도로 무서웠다.
아니면 비천 길드의 비리와 적폐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으니 고문하러 온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죽으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지?’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기동진의 비밀이 평안 고아원이었다.
그는 이 고아원 출신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번 수익의 대부분을 이곳에 기부했다. 지금은 자신이 아니면 이 고아원의 운영이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기동진의 기색을 알아차린 김강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당신께 제안을 하러 온 것이니까요.”
“…….”
“바로 말씀드리죠. 당신을 테라 길드에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미친…… 그런 말을 믿을 것 같나?!”
기동진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벌떡 소리쳤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목숨을 두고 싸우던 관계였다. 김강현에 의해 그가 몸담고 있던 비천 길드가 해체됐고 마나가 사라져 헌터로서의 삶이 끝났기에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저 또한 심사숙고했고, 나름대로 조사한 후 말씀드리는 겁니다.”
김강현은 기동진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을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테라 길드를 소수 정예의 길드로 키우겠다고 결정했을 때 길드 운영을 도와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지만, 경영과 회계, 헌터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조건에 맞는 사람들을 찾았더라도 가치관과 성향이 맞지 않아 영입을 포기해야 했다.
그때 우연치 않게 기동진의 사정과 이야기를 들었다. 머더러 헌터가 된 상황에서 헌터협회에 자수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기에, 기동진이라는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조사를 해보니 이우경은 최종 결제와 헌터들의 관리만 맡고, 비천 길드의 경영과 행정 업무는 그가 맡아서 길드를 꾸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헌터들 사이에서 평도 좋은 편이었다. 이러한 점들을 참고하여 생각해 보니 실력도 출중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나중에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조용히 김강현의 이야기를 들은 기동진은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김강현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비천 길드의 일로 헌터협회에 도움을 주자 유지운은 머더러 헌터를 제명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거나 헌터들에게 쫓길 염려는 없었다. 테라 길드에서 일하면 꾸준히 돈을 받을 테고, 비천 길드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니 어렵지 않을 터였다. 고아원의 운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와서…… 거짓을 말할 리 없지.’
깊게 고민하던 기동진은 헌터로서의 삶이 끝난 지금, 그에게 이보다 더 나은 조건은 찾기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
“……테라 길드에 가입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길드장님.”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강현은 대답과 함께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고, 기동진은 그 손을 잡았다.
비천 길드에서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이 이우경과 다른 간부들의 주장으로 범죄와 관련된 일에 손을 대는 것이었다. 기동진은 이때마다 길드를 때려치우고 싶었으나 이미 너무 많은 치부를 알고 있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모든 일이 정리된 후 천천히 되짚어보니, 이우경이 이천 B급 던전에서 길드전 지휘를 맡겼던 것은 비천 길드의 치부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김강현과 같이 죽으라는 뜻으로 뉴클리어 웨폰을 준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동진은 소름이 끼쳤다.
‘테라 길드라면…… 비천 길드와 다르지 않을까?’
소문으로 듣고, 또 직접 경험했던 김강현은 순수하게 헌터로서 강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테라 길드는 자신이 원했던 대로 깨끗하게 길드를 운영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 어떤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기동진의 말에 김강현은 가볍게 미소를 띠며 아공간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건넸다.
그것은 유지운에게 받은 비천 길드의 자산 내역으로, 기동진도 첫 페이지를 보자마자 서류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비천 길드의 자산 내역을 정리하며 테라 길드의 길드 건물을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길드를 운영하기 위한 예산도 편성하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길드 예산에 사회 후원 금액도 책정해 주십시오. 후원 리스트는 일임하겠습니다.”
“네? 네.”
김강현은 기동진이 헌터 생활에 필요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는 평안 고아원으로 보낸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고아원에 보내는 돈이 줄어들까 봐 집을 구하지 않고 길드에 숙소를 마련했을 정도니 이곳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었다.
조금이나마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결정이었으니, 기동진은 이런 김강현의 배려가 너무도 고마웠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김강현은 눈빛이 빛나는 기동진을 보며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잘 뽑은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상대로 기동진의 일 처리는 완벽했다.
그동안 이우경이 길드 몰래 숨겨놓은 재산을 모조리 찾아 테라 길드 소유로 전환시키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건물들 중 하나를 골라 길드 건물로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자재들은 아낌없이 무조건 최상급으로 결정해 척척 진행하고, 연화 길드와 철혈 길드에게 주기로 했던 비천 길드의 영역도 기동진이 알아서 처리해 주니 김강현은 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사이 김강현은 종종 US 그룹에 방문하여 프로젝트 회의에 참석하고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손댈 것 없이 연구원들에 의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어서 빠르면 이 주일 안에 시제품이 나올 거라는 보고를 들었다.
또한 길드전 이후 회복을 위해 명상과 마나 호흡법에도 집중해서, 현재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몸도 완벽하게 회복됐고, 모든 것이 순조롭네. 한 가지만 빼고…….”
김강현은 틈틈이 헌터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방은 계속 받지 않고 있었다.
그 상대방은 검천호로, 요 며칠째 시간을 가리지 않고 연락했지만 그저 신호만 갈 뿐이었다.
‘직접 가는 건 불가능하니…… 이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나?’
원래 김강현은 회복이 완료되면 바로 검천호가 있는 독일으로 떠나려고 했지만 집에서 쉬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반대로 떠날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신 때문에 큰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트라우마 없이 무사히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똑똑!
“오빠~!”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갑자기 김아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갖은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뒷골이 뻣뻣해졌다.
“왜?”
“3일 뒤에 US아울렛에서 굉장히 예쁜 신상 옷들이 나온대! 사 주라~!”
“일주일 전에 구두가 낡았다고 해서 구두 두 켤레를 사 줬고, 이 주일 전에는 나 때문에 납치를 당했기 때문에 미안할 테니 가방을 사 줬고, 삼 주 전에는 부서진 아티팩트 목걸이를 대신해서 새로운 목걸이를 줬잖아.”
“와~ 그걸 다 기억하고 있네!”
“그런데 뭐가 또 필요하다고? 맞을래?”
“그냥 봐주라! 오빠 돈 많잖아!”
김아현은 김강현이 길드전 협약을 통해 비천 길드 소유 재산을 모조리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을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자, 마치 돈을 맡겨놓은 것처럼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나 돈 없어. 요즘 새로운 헌터 장비 구입하고, 길드 건물 마련해 리모델링하느라 거지라고!”
“에이~ 500억 이상 벌었다는데!”
“그거 세금 떼고 나니까 별로 없다.”
실제로 길드 쪽에 아낌없이 돈을 쓰다 보니 김강현에게 떨어지는 것은 단 0원도 없었다.
기동진은 길드의 운영을 장기적으로 판단하고 계획하기 위해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통해 길드 재산을 늘리고 있었다.
게다가 바로 들어올 김건과 이유하에게 필요한 아티팩트와 장비들을 구입하고, 추후 들어올 길드원들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고, 꾸준하게 길드에서 쓸 아티팩트 예산을 마련하고, 길드원에게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운용비를 책정하니 비천 길드의 재산은 한순간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기동진이 전달해 주는 서류에 사인하기가 겁날 지경이었지만, 냉정하게 판단하면 다 필요한 것들이고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라 승인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기동진은 신나서 일을 벌이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김아현은 김강현이 오히려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 더 떼를 쓰고 졸라댔다.
그때, 김강현의 헌터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유나? 설마 연예인 유나는 아니겠지? 혹시 여자 친구?!”
“시끄러.”
마침 옆에서 헌터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본 김아현이 놀려대자 김강현은 무시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또 술 먹자고 연락한 거예요?”
-어허! 나 맨날 술 먹는 사람 아니야. 크게 오해하고 있구나!
“맨날 전화해서 술 먹으러 나오라는데……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헤헤. 그냥 반주 삼아 마셨을 뿐이라고.
“한 자리에서 소주 6병을 마시는 게 반주예요? 게다가 매일 취하는데?”
-음음…….
처음엔 발랄했던 김유나의 목소리는, 끈질긴 진실 앞에 사라졌다.
3주 전쯤 김강현은 안부차 김유나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고 서로 근처에 있어 식사 약속을 잡았다. 그때부터 편하게 말을 놓게 되자 쉬는 날이 되면 김유나는 휴식 중인 김강현을 불러댔다.
면박을 당한 김유나는 당당하게 말을 끊으며 자신의 목적을 꺼냈다.
-됐고! 근처로 행사 갔다가 회사로 돌아가는 길인데 네 집 근처야. 잠깐 얼굴 좀 보자.
“지금요?”
-응. 한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아.
연예인 유나는 회사의 빡빡한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터라 대기 시간과 이동 시간에 짬을 내거나 스케줄 펑크로 쉬었을 때 만나야 하다 보니, 약속은 늘 즉흥적이었다.
-그리고 여기 민혜도 같이 있어. 민혜가 꼭 보고 싶고 부탁할 게 있으니까 빨리 나오래!
-어, 언니! 제, 제가 언제요!
“뭐야, 뭐야! 오빠! 진짜 연예인 유나와 강민혜야? 응?! 응?!”
수화기 너머로 강민혜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김강현은 옆에서 시끄러운 김아현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근처 카페 주소 알려줄 테니 거기서 만나요.”
-옛썰! 동생님!
우선 김아현을 진정시키기 위해 김강현은 통화를 서둘러 종료했다.
“오~ 빠! 하나뿐인 동생 소원이야! 나도 같이 갈래! 응?! 안 돼?!”
“끄응…….”
애교, 아니, 진상을 부리는 김아현을 보며 김강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