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절대자는 역대급 헌터 5권
1장. 김강현의 분노Ⅱ
“연기 따위야 태워 버리면 그만…… 응?”
헬릭스는 불꽃으로 연기를 휘감았지만, 기이하게도 연기는 사라지지 않은 채 눈앞까지 다가왔다. 결국 헬릭스는 마력을 품은 팔을 휘둘러 상쇄시켰다.
“크읏…… 감히 인간 따위가……!”
“오호, 그럼 이것도 막아보시겠어요?”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린 흑무는 전신을 무기 삼아 광범위한 공격을 펼쳤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두르고 있던 연기가 날카로운 송곳처럼 변해 위력을 더했다.
차르르르륵!
“소환!”
그 순간, 붉은 선들이 어지럽게 난사되어 연기를 무력화시키더니 흑무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헛!”
흑무는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옆으로 숙여 붉은 선을 피했지만, 몸을 감싸고 있던 연기를 꿰뚫어 잠시간 얼굴이 드러났다 사라졌다.
그는 힐끗 시선을 돌려 자신을 공격한 물건을 보았다.
“채찍?”
붉은 선, 아니, 채찍을 든 헬릭스는 마력을 회수하며 길이를 줄였다.
정확히는 끝이 뾰쪽한 막대기를 들고 있었는데, 마력으로 길이를 조절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피를 먹이겠군.”
우우우웅!
헬릭스의 말에 막대기는 헬릭스의 피를 흡수하며 기쁨을 토해냈다.
블러드 웨폰(SSS급)
마계의 고대 마수 블러드 킬의 뿔을 압축해 만들어졌으며 주인의 피를 먹으며 성장하고 마력이 담긴 피를 먹일수록 더욱 강해진다. 사용자의 의지와 마력에 의해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헬릭스는 블러드 웨폰을 채찍으로 이미지화하여 자유자재로 길이를 조절해 휘둘렀다.
“죽어랏!”
채찍은 불꽃이 삼키지 못했던 연기를 가르며 흑무를 공략했고, 위기를 느낀 흑무는 잠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헬릭스를 휘감고 있던 불꽃에서 조그마한 불꽃 덩어리들이 분리되더니 바로 흑무를 향해 쏘아졌다.
“채찍으로 접근을 막고, 마법으로 공격하는 수법이군요.”
흑무는 쏘아진 불꽃을 연기로 집어삼키며 중얼거렸다.
불꽃만 처리한다면 쉽게 헬릭스를 쓰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던 흑무는 상황이 급변하자 눈꼬리가 휘며 결정을 내렸다.
“이건 어떻습니까?”
“응?”
“흑연기탄(黑煙氣彈).”
흑무는 연기를 몸에 둘러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마법처럼 사용하며 헬릭스의 불꽃 마법을 향해 달려들더니, 동시에 근접전을 펼쳐 헬릭스의 채찍을 무력화시켰다.
“오호……!”
흑무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연기의 위력은 불꽃을 잡아먹진 못하지만 상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몸을 두르고 있는 연기의 강도를 높였다.
헬릭스와 흑무의 부딪침은 점점 격렬해지며 한 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았다.
“재미있는 소환수군요.”
“흥미로운 인간이구나.”
흑무는 소환수 따위가 누구보다 마법과 채찍을 능숙하게 펼치는 것에, 헬릭스는 흑무가 지닌 순수한 마력에 흥미를 느꼈다.
‘내가 부족한 것이 저것이었구나.’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김강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느끼며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헬릭스가 마법과 채찍을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자신과 큰 차이점이 있었다.
‘분석을 통한 마나 컨트롤과 막강한 실력!’
헬릭스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산해 마법을 시전함으로써 낭비하는 마력이 없었고, 자신에게 불리한 행동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헬릭스는 행동 패턴을 분석하여 불꽃 마법과 채찍의 공격 패턴을 은밀히 바꿔 순간순간 흑무에게서 당황을 이끌어냈다.
‘저 강함이 내게 있다면!’
아직까지 김강현은 마나 컨트롤이 능숙하지 않았다.
라셀은 무한한 마나를 믿고 컨트롤은 신경 쓰지 않고서 싸웠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좋았지만 지금은 발목을 잡아 있는 형편이라, 이를 뿌리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정말 내가 알던 헬릭스가 맞아?’
“아야……!”
김아현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았지만, 통증이 있는 걸 보니 분명 현실이었다.
그녀에게 헬릭스는 틱틱대지만 재미있고 먹을 것을 좋아하는 신기한 동물이었는데, 여기에 강하고 멋진 변신 동물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응? 왜 그러느냐? 이제 슬슬 열이 오르는데?”
“하하핫!”
‘조금만 더 하면 놈을 쓰러트릴 방법이 보일 것 같은데!’
갑자기 흑무가 모든 공격을 멈춘 채 뒤로 물러나자 헬릭스는 그를 도발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군요!’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와 신분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감추었고, 방금까지 내보인 기술들도 암시장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구해 익힐 수 있는 스킬들이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헬릭스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 강한 기술을 써야 했다. 오랜만에 강한 상대와 싸우다 보니 저도 모르게 호승심도 생겨 위험했다.
“유희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또 만나도록 하죠.”
“어딜!”
흑무의 말에 김강현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실드 마법을 강화했고, 헬릭스는 흑무를 붙잡기 위해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파아아앗!
“콜록…… 콜록……!”
“뭐, 뭐야?”
그 순간 흑무가 두르고 있던 연기가 주변에 퍼져 나감과 동시에 시야가 가려졌다.
“모,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독을 흡입하다니…… 멍청한 녀석!”
연기가 퍼지자 헬릭스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 호흡을 멈추었지만, 김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연기를 흡입했고 곧바로 몸이 뻣뻣해지면서 마나의 흐름이 굳어졌다.
예상대로 흑무가 내뿜은 연기에는 신체와 마나를 움직임을 방해하는 독이 섞여 있어 일순간 실드 마법이 약해졌다.
콰아앙!
이때를 놓치지 않은 커다란 충격에 실드에 약간의 틈이 발생했다. 0.1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노, 놈은?”
“사라졌어…….”
연기는 금세 사라졌지만 그와 함께 흑무의 모습도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실드는 금세 복구되었지만…… 그 틈을 노려 도망친 게 아닐까?”
“아니야. 그 짧은 순간에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헬릭스가 변형하여 만든 실드 마법에는 적의 탈출 탐지 기능이 있어 민감하게 반응이 가능했는데, 한차례 충격만 있을 뿐 흑무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구쳤는지 흑무의 마력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쓴지 모르지만…… 도망친 게 분명해.”
“흐음…….”
그 이후로 10여 분간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 보았지만 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놈을 놓친 것은 아쉽지만…… 일단 물러나자. 우선 아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그들’을 상대해야 해.”
“알겠다.”
김강현은 무사히 납치된 김아현을 구할 수 있었고, 납치 배후가 비천 길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만족했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지고 있어 주변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돌아가기 직전, 헬릭스는 어느 컨테이너 박스 한 면을 바라보며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이냐? 이 몸의 감각이 왜 저길 가리키는 거지?’
“그만 돌아가자. 헬릭스.”
“……알겠다.”
이상한 감각에 점점 컨테이너 박스로 다가가던 헬릭스는 김강현의 외침에 다시 폴리모프를 시전해 소환수의 형태로 돌아왔다.
그 후 김아현에게 건 실드 마법을 해지하고는 그림자 게이트를 열어 집으로 귀환했다.
* * *
“하마터면 걸릴 뻔했군요!”
김강현 일행이 사라진 뒤 10여 분이 넘어서야 숨어 있던 흑무가 긴 한숨을 내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치는 헬릭스가 떠나기 전까지 노려보던 컨테이너 박스의 면이었다.
그는 연기를 뿌려 시야를 가린 채 실드를 공격하고 도망친 것으로 위장하고 숨어 있었다.
완벽한 은신을 위해 일시적으로 마력을 봉인한 데다가 호흡까지 멈췄다. 찰나간 헬릭스가 의심하는 듯 했지만 다행히 김아현의 안전을 위해 금방 사라졌다. 만약 그들에게 여유가 있어 계속 싸웠다면 그로서는 곤란한 상황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김강현과 헬릭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그의 계획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한 위험요소였다. 흑무는 그들을 이용할 계획을 떠올렸다.
* * *
“아, 아현아!”
“엄마, 아빠! 으아아앙!”
“그래. 우리 딸!”
집으로 귀환한 김아현은 김철진과 이수진을 보자마자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어리광을 부렸고, 그들은 토닥이며 그녀를 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헬릭스는 조용히 김강현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 어떡할 것이냐?”
“응?”
“이대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아닐 테지?”
“물론. 이미 준비는 끝났어.”
알 수 없는 말에 헬릭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준비를 했다는 것이냐?’
지금까지 헬릭스는 김강현이 비천 길드를 상대하기 위해 무언가 특별히 준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러 약속을 잡고 움직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띵똥~ 띵똥!
“이 시간에 누가?”
“아! 제 손님이니…… 제가 가볼게요.”
갑자기 누군가 정문에서 벨을 눌렀는지 거실의 인터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김강현은 인터폰을 통해 자신을 찾아온 사람인지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그래. 부탁한 물건들은?”
“넵! 주신 돈이 넉넉해서 재료 수급에 문제없었고, 유하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는 테라 길드의 예비 길드원 김건이었다. 그는 등에 메고 있던 커다란 산악 배낭을 김강현의 발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동안 게릴라 전법으로 비천 길드를 상대하던 김강현은 공략에 쓸 만한 아티팩트가 필요함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나섰다간 비천 길드에서 눈치채고 시장의 사람들을 겁박해 물건을 사지 못하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비천 길드의 감시망에 들어가 있지 않은 김건과 이유하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연금술사인 아유하는 확실한 재료 공급만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아이템들을 만들 수 있어, 대규모 전투에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아이템들을 만들어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김강현은 조심스레 산악 배낭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