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김강현의 분노Ⅱ
그는 김철진을 보호하는 아티팩트가 넥타이핀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움직였다.
“헛!”
“…….”
복면인의 움직임은 김철진이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빨라 순식간에 넥타이핀을 빼앗아 부숴 버렸다.
그 순간 김철진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불꽃이 사라지더니, 복면인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
전신이 불꽃에 타들어가는 와중에도 복면인은 독하게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했다.
“꺄아아아! 사, 사람이!”
“119, 아니, 112, 아니, 경찰!”
“소화기 없어? 근처에서 물이라도 가져와!”
갑자기 사람이 불에 타 죽어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그동안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원형이 무너졌다.
이 틈을 노려 또 다른 복면인이 김철진을 향해 움직였다.
‘지금!’
어수선한 상황을 노린 복면인은 손을 뻗었다.
이제 김철진의 몸을 잡고 미리 준비해 둔 차를 통해 이동하면 끝이었다.
‘어?!’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더니 눈앞에 김철진이 아닌 하늘이 보였다.
쾅!
그와 함께 복면인은 바닥에 제압당한 채 쓰러졌다. 김철진의 눈앞에는 익숙한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가, 강현아?!”
“네. 괜찮으세요?”
“그, 그래.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눈앞에서 김강현이 나타나자 김철진은 안도함과 동시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김철진의 아티팩트에는 헬릭스의 마력이 담겨 있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티팩트를 매개체 삼아 언제든지 그림자 게이트로 이동할 수 있게 조치해 두었다. 아티팩트가 부서졌어도 그 안엔 마력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덕분에 김강현은 바로 그림자 게이트를 통해 김철진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강현은 주변을 살핀 뒤 바로 헬릭스에게 메시지 마법을 시전했다.
“아버지를 집으로 이동시켜.”
“알겠느니라.”
“어? 어?”
말이 끝나자 김철진의 발밑이 꺼지더니 그를 집어삼키며 강제로 이동시켰다.
집은 적의 침입을 대비한 마법진과 트랩이 설치되어 있어 전쟁이 일어나도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김철진의 안전이 확보되자 김강현은 바닥에 제압한 복면인을 향해 살기를 뿌렸다.
“너는 모든 것을 말해야 할 거다!”
‘임무 실패!’
복면인은 김강현과의 무력 차에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이 자리에서 스스로 죽고자 이빨 안에 있는 독단을 깨물려고 했다.
“이렇게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이를 눈치챈 김강현은 그의 몸에 마나를 집어넣어 움직임을 멈춤과 동시에 기절시켰다.
놈은 잠시 가두고, 나도 집으로 이동한다!
김강현과 복면인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그림자 게이트를 통해 급히 모습을 감추었다.
“신고받아 왔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헌터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경찰이다. 꼼짝 마!”
뒤이어 사람들에게 신고를 받고 출동한 헌터협회의 헌터들과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상황은 정리된 뒤였다.
* * *
“여, 여보!”
“당신?”
그림자 게이트를 통해 집에 돌아온 김철진은 외출복 차림인 채 무서워하는 이수진을 발견했다.
“괜찮은 거야? 어디 다친 덴 없고?”
“응. 낯선 사람들한테 납치당하는 순간…… 헬릭스가 나타나 구해줬어.”
김철진은 이수진의 말에도 믿지 못하고 꼼꼼히 살펴보았고, 상처나 다친 곳이 없자 그제서야 안도했다.
“헬릭스가?”
“어. 검은 불꽃으로 적들을 한순간에 다 쓰러트리더라고.”
‘단순한 펫이 아니었구나.’
더불어 헬릭스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김철진이 아는 헬릭스는 굉장히 식탐 많고 특이한 모습을 한 몬스터였는데, 복면인들을 무찌를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헬릭스는 이수진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아티팩트의 발동으로 알게 되자 바로 그녀가 있는 장소로 이동한 뒤 복면인들을 모조리 죽였다. 물론, 그녀를 배려하여 복면인들을 죽이기 전 이수진은 그림자 게이트로 이동시켰다.
“그런데 아현이는?”
“아, 아현이!”
잠시 안심하던 그들은 김아현도 위험에 처했을까 싶어 발을 동동거리며 소리쳤다.
그때, 그림자를 통해 검은빛과 함께 김강현과 헬릭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현아, 헬릭스!”
“어머니, 아버지. 괜찮으신가요?”
“그래. 우린 괜찮다. 그런데 아현이…… 아현이는 어디에 있니?”
그들의 질문에 김강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에겐 헬릭스가, 아버지에겐 내가…… 그럼 아현이는?’
김강현이 슬그머니 헬릭스를 바라보니, 헬릭스가 어두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김강현이 김아현에게 선물한 목걸이였는데, 산산조각 부서져 있었다.
“미안하구나. 이수진을 구하고 뒤늦게 갔지만 이미 늦어 김아현을 찾을 수 없었다.”
“아, 아현아……!”
“수진아!”
“어머니!”
부서진 목걸이를 보자 이수진은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김철진이 다급하게 쓰러지는 이수진의 몸을 붙잡아 조심스레 소파에 눕혔다.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려? 공권력을 이용해서라도 놈들을 잡을 테다!”
김아현이 정체불명의 적들에게 납치되자 김철진은 바득바득 이를 갈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잠깐만요. 이 일은 제가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
이를 본 김강현이 팔을 잡으며 만류하자, 김철진은 이유를 물었다.
“우리 가족을 습격한 자들은 평범한 자들이 아닌 범죄를 저지르는 헌터들입니다. 헌터에게는 헌터만의 규칙이 있고, 그쪽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제가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살인이 아닌 납치를 했다는 건 제게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놈들의 연락을 기다릴 셈이냐?”
“아닙니다. 움직이기 전에 먼저 그들을 찾아 아현이를 구해야지요. 냉정하게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있는 이상 아현이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들은 편히 죽지 못할 겁니다!”
순간적으로 살심이 생긴 김강현에게 살기가 뿜어지자, 김철진은 숨이 턱턱 막히며 등에서 땀이 흘렀다.
“가족 앞이다. 흥분은 가라앉혀라.”
“후우…… 후…….”
간신히 헬릭스의 말에 김강현은 분노를 가라앉혔다.
자신의 일로 가족이 위험에 휘말렸으니 이 중에서 가장 분노하고 있는 이는 김강현이었다.
‘만약 비천 길드가 납치의 배후에 있다면……!’
이런 짓을 행할 수 있는 녀석들은 비천 길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 김강현과 대립하고 있는 유일한 세력인 데다가 그들이라면 이런 짓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아현이를 데리고 오겠으니 그때까지 어머닐 부탁드려요.”
“그래. 몸조심하렴.”
말을 마친 김강현은 헬릭스와 함께 그림자 게이트로 모습을 감추었고, 김철진은 기절한 이수진을 돌보기 시작했다.
* * *
“생포는…… 이 한 놈인가?”
“치밀한 놈들이야. 한 놈이 자기 목숨을 담보로 아티팩트로 제거하고 다른 한 놈이 납치를 하더군. 게다가 이빨에 독까지 숨기고 있어.”
“이럴 줄 알았다면…… 그놈들을 편히 죽이지 않았을 것을!”
관악산 중턱의 검천호의 수련장.
김강현과 헬릭스는 기절한 복면인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장소만 다를 뿐, 똑같은 시간에 납치를 시도해 동시에 대응할 수 없었다. 적들은 이것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띠링! 띠링!
“누가 전화를?”
중요한 일을 앞두고 갑자기 울리는 벨 소리에 김강현은 살짝 짜증 내며 화면을 보았다. 이름을 확인한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지운 님.”
-미안하다, 강현아.
“네?”
유지운이 다짜고짜 사과부터 하자 김강현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네 말대로 가족들 주변에 두 명의 헌터를 비밀리에 배치해 놓았는데…… 정체불명의 적들에게 당하고 너와 헬릭스가 나타나 가족들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여동생은 납치를 당했고…….”
‘그러고 보니…….’
유지운의 이야기를 듣자 김강현은 김철진을 구하러 갔을 때 쓰러져 있던 두 명의 헌터를 떠올렸다.
“아니요. 지운 님이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잖아요.”
-아냐! 뭐라 해도 내 잘못이다. 네가 미리 말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능력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어. 우선 네 여동생을 찾기 위해 협회의 헌터들을 동원하…….
“그건 역효과가 나니 헌터협회는 기다려 주십시오.”
-어째서?
“이렇게 소란스럽게 움직이면 상대방 쪽에서 움직임을 눈치채고 찾지 못하게 더 깊은 곳으로 숨을 가능성이 있으니…… 지금은 저와 헬릭스만 움직이겠습니다.”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겠냐?
“만약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겠습니다.”
김강현의 설득에 유지운은 잠시 말이 없었다.
-후…… 네겐 늘 신세만 지는구나. 알았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지운은 김강현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통화를 종료하고 눈앞의 복면인을 보니 어느 새 깨어나,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는데 김강현의 마나에 의해 신체를 결박당해 몸을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헬릭스는 복면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쓰고 있는 복면을 벗겼다.
“허…… 정말 잔인한 인간들이구나.”
“어떻게 이런 짓을!”
“…….”
복면으로 가린 그의 얼굴은 화상으로 짓뭉개져 있어 확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혀도 잘려 있어 질문을 했을 때 대답할 수 없었다. 철저히 신분을 감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신분을 알 수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고, 지문조차 지워져 있었다.
“말을 할 수 없다면…… 고문을 해도 얻을 수 있는 게 많이 없겠지.”
시간만 충분한다면 고문 후 글을 쓰게 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강제로 기억을 읽을 수밖에 없겠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력을 몸에 키우고 있으니…… 잡아먹는 게 빠르겠지.”
잡아먹는다는 말에 복면인은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지만, 제압당해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방법이 확정되자 헬릭스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더니 복면인을 덮쳤고, 서서히 그의 몸을 잠식해 갔다.
지난번 켈베로스 사체의 마력을 흡수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헬릭스는 생명체가 살아 있는 경우 생명체의 기억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거의 쓸데없는 경우가 많아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흡수하지 않았다.
복면인을 삼킨 지 10초가 지나자 헬릭스는 마력과 기억 흡수를 마무리하고 입을 열었다.
“이놈들은 점조직으로 상부에서 쪽지를 통해 명령이 떨어지는구나. 이번 임무에 성공하면 인천 부두에 만나기로 했고. 그곳에서 여차하면 외국으로 도망칠 요량이야.”
“접선 시간은?”
“5시.”
헬릭스의 말에 시간을 확인하니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차를 이용해서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림자 게이트를 연속으로 써도 괜찮겠어?”
“어차피 마력은 다시 채울 수 있으니…… 한번 해보자꾸나.”
김강현은 헬릭스의 그림자 게이트를 통해 서둘러 인천을 향해 움직였다.
* * *
빠아아앙! 빠앙!
인천 앞바다에서 한 척의 크루즈가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을 울리며 바다를 나아가고 있었다. 흑무는 이 모습을 바라보며 수하들을 기다렸다.
흑무는 여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안개로 몸을 가린 채 눈만 보여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슬슬 시간이 되었는데…….”
해의 위치를 통해 시간을 확인한 흑무는 도로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멀리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세단을 발견했다.
차량은 흑무의 앞에 멈춰 섰다. 운전자석에서 복면인이 나와 뒷좌석에서 기절한 김아현을 데리고 나왔다.
각 표적마다 두 명을 보냈는데 한 명만 돌아오자, 흑무는 의구심이 들었다.
“응? 다른 한 명은 어디 갔습니까?”
-표적이 가지고 있던 아티팩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혀가 잘린 복면인의 수화를 통해 보고를 받은 흑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티팩트? 예상치 못한 변수군요.’
“혹시 표적에게 마법이 걸려 있는지, 또 다른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했습니까?”
-탐지 아티팩트를 통해 확인했으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음…… 혹시 적들에게 위치가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니 다른 접선 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
변수를 피하기 위해 흑무가 곧바로 이동 결정을 내렸을 때, 김아현의 그림자가 일렁거리며 강대한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서 피……!”
파아아앗!
이를 감지한 흑무가 김아현에게 떨어지며 다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림자 속에서 김강현과 헬릭스가 튀어나왔고, 동시에 김강현이 마검을 휘둘러 흑무와 복면인을 향해 마나를 난사했다.
흑무는 몸을 두르고 있는 검은 안개가 모습을 감추고 보호해 주어 난사된 마나에도 무사할 수 있었지만 복면인은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으음…… 이렇게 되면…….”
흑무는 못 쓰게 되어버린 차량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복면인 뒤로 차량이 있었지만, 김강현의 공격으로 인해 산산조각으로 갈라져 버렸다.
“헬릭스, 아현이는?”
“……잠시 기절했을 뿐. 어떠한 마법이나 저주는 보이지 않는구나.”
“다행이네. 여길 찾아내느라 고생했어.”
김강현은 시선과 마검을 흑무에게 겨눈 채 섰고, 헬릭스는 김아현을 발견하자마자 김강현이 마나를 난사하기 전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 그녀를 살폈다.
‘아현의 마나가 익숙하지 않았다면…… 어려웠겠지.’
단기간에 많은 마력의 소모로 헬릭스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특이하게도 흑무와 복면인은 가지고 있는 마력을 갈무리하여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고, 김아현은 마나를 적어 가까이 가지 않으면 감지하기 어려운 데다가 낯선 곳으로 이동했기에 좌표도 계산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오랜 시간 김아현과의 접촉을 통해 그녀의 마나가 가지고 있는 파장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음…… 헤, 헬릭스? 오빠?!”
“그래. 괜찮으냐?”
“아, 아니…… 무, 무서웠어! 으아아앙!”
김아현의 정신 상태가 괜찮은지 파악하기 위해 헬릭스는 그녀를 깨우자 아현은 두려웠던 감정이 눈물을 통해 터졌다.
“지, 진짜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사, 사람이 마, 막 죽고!”
김아현은 친구들과 학원으로 가는 길에 복면인들을 만났는데, 앞을 막아선 2명의 감찰 헌터들이 순식간에 두 명이 죽자 패닉에 빠졌다. 그 후 자신을 보호하는 검은 불꽃이 있어 나타나 안도했지만, 한 명의 복면인이 목걸이를 빼앗고 검은 불꽃에 휘말려 죽자 자신도 모르게 기절해 버렸다.
“괜찮아.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으응.”
김강현의 말과 함께 김아현의 발밑으로 마법진이 만들어져 빛나는 반원이 되었다.
김아현을 보호할 수 있는 실드 마법이었다.
“허…… 이곳 사람들은 빨리빨리 움직인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대처가 빠를 줄 몰랐습니다.”
흑무는 표적들, 김강현의 가족들의 납치가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신속하게 추적해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떻게 이곳을 찾았습니까? 그들의 입은 절대로 열 수 없었을 텐데요?”
“강제로 기억을 읽었다면?”
“흐음…… 영혼 금제가 되어 있어 쉽지 않았을 텐데. 이곳의 사람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네요.”
‘복면인을 그대로 삼킨 것이 다행이었군.’
내색하지 않았지만 김강현은 속으로 안도했다.
만약 이렇게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고문과 함께 마법으로 복면인을 취조했을 것이고, 흑무가 말한 영혼 금제가 발동하여 이 장소를 찾지 못했을 터였다.
“납치의 배후는…… 누구지?”
“제가 직접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검은 안개 사이로 보이는 흑무의 눈에서 장난기가 맴돌았다.
“스스로 짐작 가는 곳이 있을 텐데요? 본래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인과 관계가 있으니까요.”
‘비천 길드…… 빠드득!’
그가 건넨 힌트로 김강현은 현재 적대하고 있는 하나의 세력을 향해 이를 갈았다.
“강현, 정말 그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
“그게 무슨 말이지?”
“저 인간은 적이니라. 순순히 알려주는 것이 미덥지 않구나.”
뒤에서 김강현과 흑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헬릭스가 개입했다.
헬릭스의 말을 곱씹어 보니 흑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말을 무조건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있겠군요. 하나 이번 일은 계약이 아닌 부탁이라…… 저로썬 지켜야 할 내용이 없습니다.”
“응?”
“그럼 다음에 뵙도록…….”
“어딜 도망가려고?”
티 나지 않게 뒷걸음질 치며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던 흑무는 헬릭스의 눈치에 도망갈 길이 막혔다.
정확히는 김강현을 중심으로 사방 500m의 보호 마법이 펼쳐져 바깥에서 안으로, 동시에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됐다.
“흐읍!”
“어림없느니라!”
헬릭스의 실드 마법을 박살 내기 위해 흑무는 마력을 운용해 보호 마법을 공격했지만, 실드에는 실금 하나 가지 않았다.
“쉽게 보내지 않겠다는 거군요. 그럼…… 싸울 수밖에요.”
가능하면 김강현, 헬릭스와 싸우고 싶지 않았던 흑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연기를 회오리치며 강대한 뿜어냈다.
“저놈은 내가 상대한다!”
흑무의 반응에 김강현이 나서며 말했다. 김아현의 안전이 확보되었지만, 자신에 의해 가족의 안전이 위협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한데 이를 헬릭스가 날개로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강현, 이번엔 이 몸께서 나설 테니…… 네가 아현을 보호하는 게 좋겠구나.”
“뭐?”
“네 실력으로 놈을 상대할 수 없다는 말이니라!”
“……!”
단호한 헬릭스의 말에 김강현은 할 말을 잃었다.
“힘을 모두 되찾는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론 승부를 가늠할 수 있구나.”
‘검천호…… 그 인간보다 몇 단계는 위야.’
가족의 신변에 신경을 쓰느라 적에 대한 판단이 부족했던 김강현과 달리, 헬릭스는 냉철하게 흑무를 살폈고 아무리 생각해도 김강현이 상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흑무는 지구에서 본 인간들 중 최강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헬릭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김강현은 흑무의 상태창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어?!’
상대방의 이름을 비롯하여 스탯과 스킬들이 보이던 상태창은 모든 것이 물음표로 이루어져 있었다. 김강현은 놀란 눈으로 반투명창과 흑무를 번갈아 보았다.
그때 헬릭스가 흑무를 향해 나서자, 그는 재미있다는 듯 눈꼬리가 휘어졌다.
“오호. 당신이 나서는 건가요?”
“너라는 인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말이다.”
‘순수한 마력을 쌓고 있는 인간이라…….’
김아현을 찾기 위해 삼킨 복면인의 기억에는 흑무에 대한 기억도 있었다. 그들은 흑무를 신처럼 추앙하고 있었으며 그의 말 한마디에 언제든지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마족들도 순도 깊은 마력을 쌓기 어렵건만, 한낮 인간이 자신과 비견될 정도로 마력의 질이 좋아 어떻게 마력을 쌓았는지 궁금했다.
‘흑마법을 사용하는 소환수라…… 후훗.’
전 세계를 돌아다닌 흑무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경험을 했지만 헬릭스 같은 존재는 처음이었다. 아니, 소환수라는 존재를 본 적이 없어 상당히 흥미로웠고 자신과 똑같은 마력이 느껴져 더욱 관심이 갔다.
“흐음…… 이 모습으로 싸우긴 무리겠지?”
헬릭스는 자신의 앙증맞은 몸을 바라본 후 마법을 시전했다. 몸에서 검은빛이 뿜어짐과 동시에 아기 강아지 같던 헬릭스는 사라지고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지구에서 인간의 모습은 처음이구나.”
“어머!”
“어엇!”
“폴리모프?”
그는 오만한 표정으로 주변을 깔보는 날카로운 눈빛과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 새하얀 피부로 마치 귀족 같은 20대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매우 정체가 궁금하군요?”
“그건…… 직접 알아보거라.”
검은 안개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놀라는 기색이 역력한 흑무와 달리, 헬릭스는 양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몸의 상태를 점검하고는 천천히 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말과 함께 숨 막힐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 전신에서 뿜어지며 주변을 압도했다. 그 기세는 김강현과 흑무의 전신이 짜릿하게 저려질 정도였다.
“인간으로 싸울 정도로…… 진심으로 상대할 모양이야.”
한편, 김강현은 헬릭스에게서 마법의 전권을 위임받아 흑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실드 마법을 유지하고 있었다.
테라에서도 헬릭스가 인간으로 변해 적과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도시 불량배를 퇴치하기 위해, 혹은 위협하기 위해 마법을 몇 번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으로 변한 헬릭스의 전투 스타일이 궁금해졌다.
“자, 잠깐! 오빠! 헬, 헬릭스는 어디 가고 왠 남자가 나타난 거야?”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김아현은 당황하며 김강현에게 물었다.
“헬릭스는 마계의 존재로 원래 마법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해. 그러니 모습을 바꾸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럼 저게…… 저 사람이 헬릭스라고?”
“응. 지금부터는 눈을 크게 뜨고 보는 게 좋을 거야.”
김아현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비비며 헬릭스를 다시 보았다.
화르르륵!
그 순간 헬릭스의 양손에서 검은 불꽃이 치솟으며 전신을 휘감았고, 흑무는 헬릭스를 향해 몸을 날려 선제공격을 펼쳤다.
“흑연귀화(黑煙鬼化) 천살무(天殺武).”
누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중얼거리며 달려가는 흑무의 등 뒤로 악마의 얼굴이 나타남과 동시에 헬릭스를 향해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