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나 홀로 길드전
“모두 모였나?”
“던전과 밖에 나가 있던 10명의 팀장들이 오지 못했습니다. 각 팀장들에게 급한 소집이라 연락을 넣었으니 금방 도착할 것입니다.”
“서둘렀으면 좋겠군.”
“네. 길드장님!”
헌터협회에 다녀온 이우경은 바로 회의실에 팀장 회의를 소집했고, 부길드장의 말대로 속속 팀장들이 들어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모든 팀장들이 모이지 않자 다시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부길드장을 바라보았다.
“부길드장. 내 말이 이렇게 가벼웠나? 아니면 길드에 내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나?”
“다, 다시 전화 걸어보겠습니다!”
“…….”
“…….”
띠리리링!
싸늘한 분위기에 아무도 말을 열지 못한 채, 부길드장의 손에 든 헌터폰의 알람 신호만이 회의실에 매우 크게 울렸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자 점점 이우경의 얼굴 표정이 사나워져 갔다.
딸깍!
“지금 어디야?! 길드장님이 팀장급 헌터들은 모두 소집 명령을…… 뭐, 뭐라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기다렸다는 듯 부길드장은 다급히 말을 쏟아내다가, 낯선 목소리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채 이우경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길드장님으로 전화를 바꿔달라고 합니다.”
“스피커폰으로 돌려.”
‘누군지 모르지만 겁을 상실했어! 빠드득!’
눈썹을 심하게 찌푸린 채 이우경이 답했다. 이 기회에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다른 길드원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스피커폰으로 바꾸었다.
-안녕하세요. 이 길드장님, 그리고 비천 길드의 팀장님들. 저 때문에 소집까지 하시고…… 고생들이 많으시네요.
“김강현?”
-맞습니다. 불과 1시간 전쯤에 뵈었는데 이렇게 전화를 할 줄은 몰랐네요.
스피커폰을 통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자 이우경은 바로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리고 속으로 스피커폰으로 돌린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이우경이 입을 열기 전에 김강현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헌터협회에서 길드장님과 길드전 규정을 정하고 던전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비천 길드원들을 만났지 뭡니까?
“우. 연. 히?”
-네. 그래서 길드전 규정에 따라 비천 길드원들을 쓰러트린 뒤 계속 울리는 헌터폰을 받았을 뿐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허…….”
뻔뻔스러운 말에 이우경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지만 바로 반박했다.
“실로 유감이군.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어.”
“컥!”
“크흠…….”
말을 하던 이우경은 자신도 모르게 분노에 의한 살기를 뿜었다. 괜히 회의실에 모인 헌터들만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길드전이 시작되지 않았는데 상대 길드를 공격하는 건 심각한 규정 위반이라는 걸 모르고 있진 않겠지. 이 일은 바로 헌터협회에 항의하도록 할 것이야.”
-이상하군요. 뭐가 규정이라는 거죠?
“그걸 말이라…… 어?”
-이제 기억나십니까?
‘놈에게 말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우경은 그제야 놓치고 있던 사실을 떠올랐다. 길드전 규정을 정할 때 시간은 상대방이 항복하거나 죽을 때까지로 끝나는 시점만 정하고 시작 시점은 정하지 않았다.
이럴 경우 길드전 규정이 정해진 순간부터 효력이 발휘되는 것이 정석이니 김강현이 비천 길드원들을 공격한 것은 규정 위반이 아니었다.
“크크큭. 첫 번째는 요행일 것이야. 그리고 오히려 고맙기 그지없어.”
-……?
“나도 모르는 사이 가지고 있던 한 줌의 자만을 버릴 수 있었어. 이제 조금의 배려도 없을 것이다!”
상대는 A급 헌터 한 명. 독특한 소환수 한 마리가 있지만 머릿수로 계산했을 때 금방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김강현에게 뒤통수를 맞자 자신, 아니, 비천 길드가 농락당했다는 치욕스러운 기분이 들었고, 그 순간부터 김강현을 무시하는 마음을 모조리 버렸다.
“으으으…….”
“기, 길드장님. 살려주십쇼.”
“컥컥컥…….”
이우경이 내뿜는 살기는 더욱 진해져 회의실에 있는 팀장들은 밖에 나가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군.’
특히 20대 초반에 이우경과 만나 같이 헌터가 된 비천 부길드장은 이렇게 분노한 그의 모습은 본 적이 없어 오싹거리는 소름이 돋았다.
-언제든지 비천 길드와의 싸움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참, 기절한 비천 길드원들은 헌터협회를 통해 데려가시죠? 처음이라 죽이지 않고 간단히 뼈만 부러트려 놓았으니 며칠 거동이 어려울 것입니다.
“신경 써줘서 고맙군.”
그 뒤에 김강현이 던전 위치를 알려준 후 통화가 끊어졌다. 이우경은 살기를 거두며 회의실에 모인 팀장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들었겠지?”
“네!”
“이 시간부로 비천 길드는 테라 길드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놈을 죽여! 놈을 죽일 수 있다면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 것이야! 반드시 놈을 죽여!”
마지막 말은 마치 광기에 휩싸인 미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이우경은 김강현을 죽이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비천 길드의 팀장들은 그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무의식중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이우경과의 통화를 마친 김강현은 자신의 뒤편에 있던 게이트를 통해 던전을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혹시 협회에 팔 수확물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보다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출구에는 던전을 관리하는 헌터협회의 직원이 있었다.
김강현은 그에게 길드전 상황을 밝히고, 던전 안에 있는 비천 길드원들의 위치를 알려줌과 동시에 모든 몬스터들을 죽였음을 알려주었다. 더불어 곧 비천 길드에서 이들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말도 전달하자, 헌터협회 직원은고개를 끄덕거리며 부탁을 수락했다.
그 후 김강현은 근처의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왔네.”
“근처에서 볼일이 있어서.”
“그럼 부탁한 건?”
그녀는 김강현에게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주며 커피를 마셨다.
“고마워. 세연아.”
“할아버지, 아니, 길드장님에게 들었는데…… 정말 괜찮은 거야?”
“물론. 그보다 앞서 보내준 정보 덕분에 수월할 수 있었어.”
연세연의 질문에 김강현은 미소와 함께 답하며 서류 봉투에 든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김강현은 비천 길드와의 길드전 규정을 정한 후 바로 연철무에게 연락해 헌터협회 근처에 있는 던전들 중 비천 길드원들이 잘 다니는 던전의 정보를 요청했다.
이 정보를 받자마자 김강현은 바로 던전에 들어가 비천 길드원들을 쓰러트렸다. 이번에 건네받은 정보에는 헌터협회에서 보았던 비천 길드의 정보보다 디테일하게 조사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음…….”
연세연이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동안 김강현은 집중하여 종이에 적힌 내용들을 암기했고, 모든 내용을 숙지한 후 마나로 종이를 단숨에 불태워 버렸다.
화르르륵!
“까, 깜짝이야!”
“갑자기 왠 불 쇼?”
“진짜 불난 줄 알았잖아! 후우.”
갑자기 일어난 불길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들에게 집중되었고, 특히 카페에서 일하는 주인의 따가운 눈초리가 김강현에게 쏘아졌다.
“근데 번거롭게 종이로 받는 이유가 있어? 간단히 헌터폰을 통해 받아도 되잖아?”
연세연은 문득 김강현이 편한 방법을 두고 앞으로도 사람을 통해 정보를 요청해 온 것을 떠올리고 물었다.
“그게 편하긴 한데…… 비천 길드에 괜히 트집을 안 잡히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트집?”
“헌터폰은 라이선스 카드와 마나 인증을 통해 보안이 철저하다고 하지만…… 헌터폰을 관리하는 통신 업체와 헌터협회는 믿을 수 있을까? 분명 비천 길드가 나서면 최소한 기록을 파악하고 심지어 정보도 빼낼 수 있을 거란 가정을 했기 때문이야. 그럼 테라 길드를 연화 길드가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고, 자연스럽게 연화 길드에도 피해가 갈 수 있어.”
“아……!”
조그마한 구멍이 점점 커져 댐을 붕괴시킬 수 있는 것처럼, 김강현은 헌터폰을 통해 연화 길드에게 정보를 받고 난 뒤 즉시 방법을 바꾸었다.
“항상 비천 길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이상한 점이 있으면 바로 사람을 통해 전달해 주길 바라.”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혹시라도 주변 아는 사람들의 눈에 띄어 이 소식이 비천 길드의 귀에 들어갈까 싶어 김강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은 어떤 방법으로 움직일까?’
* * *
툭툭툭.
자신의 사무실 책상을 손가락 끝으로 툭툭 치는 이우경의 이마 주름은 펴지지 않고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일주일…… 전력을 다해 놈을 죽이고자 했는데 아직 놈의 뒷모습도 발견하지 못했어.”
지난 시간 동안 이우경을 비롯한 비천 길드는 김강현을 죽이기 위해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다.
밤을 새워 김강현의 행적에 대해 조사하고 놈을 쫓아 죽이려고 했지만, 자신들보다 정보를 빠르게 취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14번의 접전이 있었고 모두 습격으로 놈이 우리들을 찾아왔다.”
헌터협회에서 제시한 정보에는 비천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의 숫자만 기입되어 있었을 뿐, 던전의 상세한 정보는 없었다.
게다가 헌터협회에 전달하지 않는 던전들도 있었는데, 김강현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비천 길드원들이 다니는 던전에 몰래 들어와 게릴라 전법을 펼쳤다.
“게다가 팀을 이루는 길드원들의 구성도 파악하고 있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천 길드원들이 던전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상황마저 일어났다.
보통 팀을 이룰 땐 A급과 B급 헌터들을 나누어 편성했는데, 김강현이 무작위로 노리는 것처럼 보이자 아예 A급 헌터들로 구성된 팀과 B급 헌터들로 구성된 팀을 만든 후 시간차를 두고 던전에 들여보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김강현은 A급 헌터들로 구성된 팀은 하나도 노리지 않았고 B급 헌터들로 구성된 팀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공격했다.
“과연 어디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걸까?”
덕분에 이우경은 속수무책으로 놈에게 당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비천 길드 내에 놈의 스파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승부수를 띄워보지.”
그제야 이우경은 손가락으로 책상 치는 것을 멈추고, 비천 부길드장을 호출했다.
* * *
“이건 뭐야?”
김강현은 연화 길드에서 보낸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보자마자 이상함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내게 초대장을 보냈네. 아주 재밌어.”
종이에는 비천 길드의 최근 행보가 적혀 있었는데, 아주 대놓고 던전 하나에 비천 길드원들이 모여 비밀스럽게 갖가지 물건들을 옮기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이번에 비천 길드가 승부수를 띄우려는 속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게릴라 습격으로 손해를 보았으니 만회하려는 속셈이겠지.”
김강현은 마나를 일으켜 단숨에 종이를 불태웠다.
“초대장을 받았으니 기꺼이 가주는 것이 예의겠지.”
그리고 종이에 적혀 있던 던전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 * *
“여기인가? 이 몸을 초대한 곳이?”
“그런데…… 생각보다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아.”
김강현과 헬릭스는 경기도 이천의 어느 B급 던전 게이트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던전 안에 얼마나 강한 몬스터들이 있는지 게이트 안에서 흘러오나오는 마나가 심상치 않았다.
“그렇구나. 아티팩트들로 짐작되는 마나들이 던전 안에서 느껴지는군.”
그런데 긴장하여 얼굴이 굳은 김강현과 달리 헬릭스는 입가에서 미소가 지우지 않았다.
“아주 좋은 수련이 되겠어. 말했다시피…… 이 몸은 목숨이 위험하지 않은 이상 나설 생각이 없느니라.”
“물론. 오히려 바라던 바야.”
“이 몸은 조용히 네 뒤를 따라가지.”
우둑우둑!
김강현은 긴장감을 풀기 위해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비천 길드와의 싸움이 시작된 이후 실력이 상승폭이 점점 커져.’
비천 길드원들은 정말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것도 한두 명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인원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김강현은 늘 긴장하며 마나와 힘의 분배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어남을 느꼈다.
헬릭스는 비천 길드와의 싸움이 김강현에게 좋은 수련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개입을 절제하고 있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
“그러지.”
평소 게이트 앞은 헌터협회 직원이 교대로 상주하며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비천 길드가 손을 써 놓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게이트를 통해 던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하아…… 젠장.”
“찝찝한 기분이 들어 마음에 안 드는구나.”
던전에 들어오기 전 지구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지만, 던전 안은 먹구름이 가득하고 부슬비가 내리고 있어 점점 옷이 젖어갔다. 게다가 숲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진흙이 달라붙어 움직임이 불편했고, 사방에 나무가 빽빽해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이 인간 놈들이 제대로 날을 잡았구나.”
비에서 느껴지는 마나를 감지한 헬릭스가 중얼거렸다.
던전 안의 날씨와 풍경은 고정되어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리는 비에서 희미하게 마나가 느껴졌다. 비천 길드가 인공적으로 비를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철저한 비천 길드의 준비에 김강현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숲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헬릭스는 부유 마법으로 김강현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딸각!
“뭐, 뭐야?!”
숲 안쪽으로 들어간 지 5분 정도가 지난 순간, 김강현은 발밑에서 기계음과 함께 땅이 꺼지는 느낌을 받고 당황하며 소리쳤다.
“미, 미친놈들!”
아래쪽엔 커다란 구멍과 함께 수십 자루의 창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콰아아아앙!
미리 표적이 피할 것까지 예상했는지 수십 자루의 창이 김강현을 향해 쏘아졌다.
파바바밧!
김강현이 급히 아공간에서 마검을 꺼내 들어 바닥에서 솟구치는 창들을 베어버리며 착지하려는 순간, 사방에서 마나 폭탄이 날아들었다. 김강현은 기겁하며 다시 마검을 크게 휘둘러 마나 폭탄들을 쳐냈다.
콰광! 콰르르르릉!
“크윽!”
마검으로 쳐낸 마나 폭탄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강력한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 나무 파편들이 사방에 흩날렸다.
급히 마나로 몸을 보호했지만 폭발의 충격이 느껴져 김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또?”
파앗! 콰르르릉!
그런데 땅에 착지한 뒤 몇 걸음도 걷지 않았는데 발끝에서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렸다. 마나의 흐름이 느껴진 김강현은 급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순간 진흙 파편이 튀어 오르며 땅속에 있던 마나 폭탄이 폭발했다.
“흐아아앗!”
‘돈을 땅에 뿌렸구나!’
콰르릉! 쾅쾅! 콰르르르릉!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마나 폭탄들이 터지자, 공중에 떠오른 김강현은 땅을 향해 마나를 뿌려댔다. 땅에 묻은 마나 폭탄들을 마나와 충돌시켜 없애 버리겠다는 의도였다.
‘이렇게 없애 버리면……!’
곧이어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자 김강현은 자신의 공격으로 마나 폭탄들이 모조리 없어진 줄 알고 자신 있게 바닥에 착지했다.
“어?”
콰앙!
그런데 발이 땅에 닿자마자 발밑에 있는 마나 폭탄이 폭발했다. 동시에 김강현은 살짝 공중에 떠오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직 깨닫지 못한 모양이구나. 쯧쯧.”
이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헬릭스는 비웃음 가득한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피잉!
“헛!”
그 순간 김강현은 갑자기 등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마나 집약체를 느꼈다. 급히 오른편으로 몸을 날렸지만 왼쪽 어깨에 작은 화상을 입고 말았다.
“레이저?”
자신의 몸을 스치고 간 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눈앞을 보니 파란빛의 레이저가 뒤편에서 쏘아지고 있었다.
* * *
‘으음…… 설마 마나 레이저를 피할 줄이야.’
비천 길드의 부길드장은 돌산 위에서 김강현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며 살펴보고 있었다.
숲을 돌산이 감싸고 있는 구조라 돌산에서 숲의 상황은 얼마든지 파악이 가능했다. 게다가 원활한 파악을 위해 곳곳에 위치 추적 장치를 설치하여 김강현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놈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을 때! 마나 레이저를 발사한다!”
“예. 부길드장님!”
깔린 양에 비해 데미지는 주지 못하고 있는 마나 폭탄과 달리 마나 레이저는 김강현에게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한 부길드장이 명령하자, 비천 길드원들은 김강현을 향해 포를 겨누었다.
* * *
“어디서 이런 아티팩트를?! 아니…… 이게 가능한 일이었어?”
피잉! 피잉! 피잉!
김강현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마나 레이저를 정신없이 피하기 급급했다.
가장 큰 문제는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인 탓에 마나 레이저가 어디서 날아오는지 파악할 수 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비천 길드라고 했나? 머리 쓰는 인간이 있구나.”
한편 헬릭스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아닌 김강현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작게 날아드는 파편이나 공격들을 날개로 쳐내며 수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마나 폭탄에 마법을 걸어 물리적 타격이 있어야 폭발이 일어나도록 작업을 해놓았어.”
헬릭스의 분석대로 비천 길드는 연쇄 폭발로 마나 폭탄이 한꺼번에 터지지 않게 2차로 마나 코팅을 해놓았다. 물론 막대한 금액이 투자되었지만 김강현을 죽이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있었다.
‘머리에 한 대라도 맞으면 끝장이야!’
곳곳에서 쏘아지는 마나 레이저를 감지한 김강현은 피하기 급급했다. 마나 레이저는 나무를 관통하고 그 앞에 있는 바위까지 꿰뚫고 있었다. 마나 레이저가 관통하면서 주변이 고열에 의해 녹아버려 쉽사리 쳐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언제까지 비천 길드에게 휘둘릴 수 없었다.
“헛!”
김강현은 손에 마나를 감싸 마나 레이저를 쳐냈다.
“크읏!”
다행히 마나 레이저를 다른 방향으로 쳐낼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손에 화상을 입었다.
“마나의 강도를 높이거라.”
“강도?”
“마나 레이저가 다이아몬드라면…… 네 마나는 강철 정도 되겠구나.”
뒤편에서 헬릭스가 조언과 함께 날개로 마나 레이저를 다른 방향으로 쳐내자, 김강현은 그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으음…….’
헬릭스의 날개를 비롯한 전신에 마력이 둘러져 있었다. 두께는 굉장히 얇았지만, 마력으로 촘촘하게 이루어져 있어 외부의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고 있었다.
“아……!”
덕분에 헬릭스가 말한 의미를 알아차린 김강현은 탄성을 터트리며 마나 컨트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나 레이저가 놈에게 통합니다!”
“화력을 집중해 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음…….”
비천 길드 부길드장은 길드원들의 말에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김강현의 상태를 살피며 신중하게 생각 중이었다.
‘마법 트랩과 마나 폭탄이 통하지 않고 마나 레이저만 통한다라…….’
마나 레이저는 한 발을 쏠 때마다 B급 마나석 2개가 일시에 소모되어 사용이 조심스러웠다.
이우경은 김강현을 죽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말라고 했지만, 비천 길드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길드장의 입장에서는 마나 레이저를 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이건 쓰지 않아도 되겠어.”
“네?”
“아무것도 아니다.”
부길드장은 품속에 있는 하나의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자신들이 준비한 수가 통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준비한 아티팩트였다. 하나 이것을 쓸 경우 자신을 비롯한 던전 안에 있는 비천 길드원들의 목숨도 위험해질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
“놈을 목표 지점으로 유인한 뒤 모두 마나 레이저를 집중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놈의 소환수는 공격하지 마라.”
“그게 무슨?”
“지금까지 지켜보니 놈의 소환수가 나선 적이 없어. 그러니 굳이 소환수 따위에게 신경 쓰기보다는 놈에게 집중해라.”
“알겠습니다.”
정신없이 김강현을 향해 마나 레이저를 쏘기 바빴던 비천 길드원들과 달리 부길드장은 김강현과 헬릭스의 움직임을 살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러한 예상은 적중했다.
“흐응? 꽤 머리 있는 인간이 있구나.”
헬릭스는 정확하게 부길드장이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김강현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느긋하게 구경하기 시작했다.
‘점점 공세가 심해지는데 어떻게 된 거지?’
헬릭스에게 분산되었던 공격이 김강현에게 집중되자, 김강현은 더 정신없이 마검을 휘두르며 마나 레이저를 쳐내기 급급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마검의 내구성이 단단하다는 것이었다.
“으으…….”
주변을 둘러보던 김강현은 그 원인을 금세 파악했다.
분명 아까 전까지는 비천 길드의 공격이 자신과 헬릭스에게 이어지고 있었는데, 헬릭스가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일제 공격이 김강현에게 집중된 것이었다.
‘레이저는 일직선으로 날아오니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반격하면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와중에 김강현은 비천 길드에 반격할 방법을 구상했다.
비천 길드원들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직접 움직이다가는 오히려 마나 레이저의 집중 사격을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마나를 마구 사용하기에는 뒤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 자제해야 했다.
‘잠깐? 오히려 공격을 반대로 이용하면 어떨까?’
다급히 비천 길드원들이 쏘는 마나 레이저를 피하던 김강현은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응?”
그런데 갑자기 비천 길드원이 쏘던 마나 레이저 공격이 끊기자, 이상해진 김강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 * *
“쯧쯧. 딴생각하며 싸우니 유인 따위나 당하지.”
“젠장!”
뒤쪽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헬릭스의 들려왔지만 김강현은 무시했다.
정신없이 마나 레이저를 피하다 보니 숲이 끝나고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주변에는 은폐를 할 수 있는 물체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숲의 나무에 몸을 가리며 피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더불어 멀리 떨어진 돌산에서도 정확히 김강현의 위치가 파악되었다.
“발사!”
콰앙! 콰아앙! 콰아앙! 콰아아아아!
부길드장의 신호가 떨어지자 총 30대의 마나 레이저포가 일제히 김강현을 향해 쏘아졌다.
‘견고하게…… 마나를 압축하여 몸에 두른다.’
김강현은 마나 레이저를 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리에 서서 마나를 몸에 둘렀다. 몸을 감싸는 붉은 마나의 빛이 진해져 핏빛을 연상케 했다.
콰아아아앙!
“끝이다!”
“죽었어!”
그 순간, 30발의 마나 레이저가 김강현에게 직격했다.
비천 길드원들은 환호하며 기뻐했다.
비록 연기와 흙먼지에 의해 김강현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으나 이 정도 위력이면 S급 헌터도 죽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저, 저게 뭐야?!”
“마나 레이저…… 뭉쳐 있어?”
“멀쩡하게 서 있잖아!”
빗줄기에 의해 연기와 흙먼지는 금방 씻겨 내려갔다. 그 가운데에 식은땀을 흘리며 거칠게 호흡하는 김강현이 있었다.
“후우…….”
‘계산 완료. 이제 강한 반탄력으로…….’
김강현의 주변에 30개의 구체가 떠올라 있었다.
이것은 바로 비천 길드가 쏜 마나 레이저가 압축된 것으로, 원래 김강현의 마나에 튕겨져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야 했다. 그런데 김강현은 마나 컨트롤을 이용해 레이저가 다른 방향으로 쏘아지는 것을 붙잡았다.
“인간은 재미있는 동물이로구나. 설마 이런 마나 컨트롤을 떠올릴 줄이야…….”
그리고 헬릭스는 김강현의 마나 컨트롤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본래 자신의 마나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나는 다루기 어렵지만, 김강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나 친화력 스킬의 효과를 경험하고 있었다.
“가랏!”
피잉! 피이이잉! 핏!
말이 신호가 되어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마나 레이저가 다시 비천 길드원들을 향해 쏘아졌다.
“으아아앗!”
“피, 피……!”
“사람 살려!”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발견하자 비천 길드원들은 소리치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레이저는 마나 레이저포를 요격하며 강력한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쾅쾅쾅! 콰아앙! 쾅쾅!
“확실히 이 인간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구나. 알려주지 않은 마나 컨트롤을 사용하는 걸 보면…… 충분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괜찮겠어.”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헬릭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마나 컨트롤이 뛰어나도 상대방의 마나를 다루는 것은 어려운데, 김강현이 이를 해낸 것이었다. 헬릭스는 앞으로 수련의 강도를 높여도 된다는 확신이 생겼다.
“으으으…….”
“이게 웬 날벼락이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김강현의 반격으로 인해 마나 레이저포는 단 한 대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파괴되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비천 길드원들은 폭발에 휘말려 부상을 입었다.
“콜록! 다들 괜찮으냐?”
“네. 콜록! 다들 약간의 화상과 부상만 입었고 중상자는 없습니다. 콜록!”
폭발로 인해 일어난 연기로 곳곳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이 와중에서 부길드장은 비천 길드원들의 상태를 살폈고, 빠르게 다음 방안을 생각했다.
“마나 폭탄과 마법 트랩은 얼마나 남았지?”
“40여 개의 마나 폭탄과 14개의 마법 트랩이 남았습니다.”
“3분의 1 정도인가?”
부길드장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30여 분만에 수백억이 증발됐군. 하아…….’
지금까지 소요된 마나석과 아티팩트, 그리고 파괴된 마나 레이저포의 가격을 상정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강현에게 통하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힘과 마나가 충분히 빠졌을 거야.’
일반적인 A급 헌터였다면 마나 레이저를 쏘았을 때 대응하지 못하고 죽었을 테지만, 이렇게까지 버틴 만큼 많이 지쳐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무엇이든 확실히 알아보는 것이 좋겠지!’
“B 포메이션을 발동해라.”
“네!”
부길드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50명의 B급 헌터들이 김강현을 향해 달려가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삼켰다.
“으으으으……!”
“크아아아앗!”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내뿜던 푸른 마나 또한 붉게 물들어 일렁였다. 게다가 계속 괴상한 신음성을 내뱉으며 눈에 초점도 잡히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결국 선을 넘었구나.”
“응? 선을 넘다니?”
이 모습을 지켜보던 헬릭스는 어이없어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놈들이 무언가 먹은 것을 보았겠지?”
“그것 때문에?”
“전에 금색 캡슐을 먹고, 이번에 다시 금색 캡슐을 먹었느니라.”
“그럼…… 마나와 마력이 충돌할 텐데?”
“네 말대로…… 마나를 쌓은 인간들의 몸에 과도한 마력이 담기면 두 개가 섞이지 못하고 마나 폭주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느니라. 그리고 저 인간들의 상태를 보니…… 마나 폭주까지는 아니지만 마력에 취해 이성이 희미하구나.”
“위험한…… 상황이네.”
“오히려 아주 좋은 수련이 될 것이니라. 크큭.”
얼굴이 굳은 김강현과 달리 헬릭스는 미소를 띠며 즐거워 보였다.
“힘에 취해 이성이 날아가 움직임이 단순화된 만큼 공격력은 강해졌을 테니까.”
“뭐?”
헬릭스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김강현의 눈앞에 도착한 비천 길드 B급 헌터들은, 마력에 취해 김강현을 죽이겠다는 생각이 얼굴에 고스란히 보였다.
“놈을 죽여!”
“이 힘이면…… 뭐든 다 할 수 있어!”
한껏 상기된 표정을 지은 그들은 김강현을 향해 갖가지 스킬들을 시전했다.
“인피니티 소드!”
이에 대항하기 위해 김강현이 스킬을 발동시키자 허공에 푸른 선, 마나의 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마나 소드를 뿌리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며 비천 길드 B급 헌터들이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통증이 얼마 없잖아?”
“게다가 금방 회복되고 있어!”
“그냥 놈에게 달려들어!”
그런데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현재 비천 길드의 B급 헌터들은 마력에 취해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했고, 일시적으로 회복력도 높아져 상처도 금세 회복되어 어떠한 공격에도 겁이 나지 않았다.
“그럼 방법을 바꿔 제압할 수밖에!”
본래 김강현은 마나 폭발을 이용해 그들을 제압할 생각이었으나, 달려드는 그들을 보고 방법을 바꿨다.
“이게 웬 떡이야?”
“모두 공격해!”
그러자 그들은 신이 나 김강현을 향해 스킬들을 날렸다. 불과 얼음, 갖가지 공격들이 쏘아졌다.
‘한 발짝 나선 뒤 오른쪽으로 살짝 몸을 숙이고…….’
생각과 함께 움직이자 겨우 1㎜의 간격을 두고 불꽃 마법이 왼쪽으로 스쳐 지나갔다.
‘왼쪽, 오른쪽, 오른쪽, 그리고 몸을 숙인 뒤 쳐낸다.’
김강현은 감각을 극대화시켜 B급 헌터들이 쏘아낸 스킬들을 감지했다. 감각이 세밀해진 만큼 스킬들이 굉장히 느리게 다가와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강현은 다른 스킬들도 미세한 간격을 두고 피하면서 점점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이, 이게 말이 돼?!”
“더, 더! 놈에게 스킬들을 더 시전해!”
“범위 스킬을 펼쳐!”
이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기겁한 B급 헌터들은 가지고 있는 마나를 모두 털어 다시 스킬을 시전했다. 몇몇 B급 헌터들은 마나를 한 사람에게 모아 범위 스킬도 준비했다.
“가랏!”
화르르륵!
곧 김강현을 향해 불꽃 형태의 파도가 빠르게 쏘아졌다. 헬릭스는 김강현이 어떻게 대응할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후우…….”
‘저게 뭐지?’
이상하게도 불꽃 파도에서 푸른 빛줄기가 느껴졌다. 마치 그것을 베면 불꽃 파도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김강현은 달려가며 그곳을 향해 마검을 크게 휘둘렀다.
파아아앗!
그 순간, 마검을 중심으로 불꽃 파도가 마치 눈송이처럼 흩어 사라져 갔다.
“저, 저건 사술이야!”
“아티팩트를 쓴 게 분명해!”
마나를 싣지 않은 평범한 공격에 불꽃 파도가 무력화되자, 김강현과 싸우던 B급 헌터들뿐 아니라 멀리서 보고 있던 비천 길드원들도 눈을 의심했다.
김강현은 불꽃 파도를 뚫고 비천 길드 B급 헌터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하지만 헬릭스는 그들과 다른 생각이었다.
‘이젠 절반의 성취를 이루었군.’
모든 동식물에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흐름이 있는데, 그동안 김강현은 수련을 통해 이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흐름은 일종의 급소로, 정확하게 끊어주기만 한다면 마나를 싣지 않은 적은 힘으로도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수 있어 유용했다.
“하나 남은 절반도 채울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 고작 마나의 흐름만 파악했을 뿐, 아직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
이 싸움에서 남은 절반도 채울 수 있을지 기대된 헬릭스는 김강현의 싸움을 지켜볼 뿐이었다.
“헛!”
“체크메이트!”
그사이 김강현은 비천 길드의 B급 헌터들이 날린 스킬들을 모조리 피하며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와 중얼거렸다.
“죽이지는 않아. 다만…… 꽤 고통스러울 거다!”
김강현은 손에 마나를 실어 오른편에 위치한 B급 헌터에게 뻗었다.
“크아아아앗!”
“바, 방금 뭐야?”
“일제히 공격해!”
그 B급 헌터는 몸에 김강현의 손이 닿으며 마나가 스며들자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아직 마나 폭주가 일어나지 않았고, 마력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면…… 추후 치료를 통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거야.’
어떻게 하면 이들을 죽이지 않고 쓰러뜨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김강현은 마나로 상대를 기절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선 심장을 정확히 타격해야 했다.
‘함부로 놈들을 죽일 순 없어.’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힘을 조절하지 않아도 되지만, 상대방을 기절시키는 것은 힘 조절이 필요하니 좋은 수련이 될 터였다.
더불어 김강현이 죽여야 하는 자들은 이런 잔챙이들이 아닌 비천 길드의 길드장 이우경과 그 간부들이었다.
또한 이들을 바로 다 죽였다간 밟힌 지렁이가 꿈틀대듯 더 필사적으로 대항할 수 있으니, 일부러 틈을 주어 도망치게 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모조리 상대해 주지. 덤벼!”
짧게 생각을 마무리한 김강현은 손가락을 까닥이며 손짓했다. 손짓을 신호로 B급 헌터들이 일제히 김강현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