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장. 비천 길드 (35/119)

6장. 비천 길드

“……흐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길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김강현을 대하는 연철무의 말투와 분위기가 진지하게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사적으로 편하게 말을 건넸지만, 수백 명의 헌터들을 이끄는 길드장의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었다.

더불어 헌터협회를 대변하는 유지운도 길드와의 거래 이야기가 나오자 신중해졌다.

“길드전은 누구나 쉽게 신청할 수 있지만…… 승인되기까지 절차가 복잡합니다.”

“그래. 길드전 요청이 들어오면 헌터협회는 길드들과 함께 출전 인원, 그리고 규칙을 정해 승인해야 하기 때문이지.”

김강현의 말에 유지운이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처음 헌터들이 나타나고 길드들이 만들어지면서 종종 불화가 일어나자 헌터들은 길드전으로 문제를 해결하고는 했다.

하지만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길드전이 약탈과 살인이라는 심각한 폐해로 나타나자, 세계 헌터협회에서는 길드전은 반드시 각국에 있는 헌터협회의 중재로 이루어져야 하며, 길드전을 하기 전 각 길드장과 헌터협회에 속한 헌터들이 모여 규칙을 정하기로 공표했다.

이때 서로 합의가 되지 않으면 헌터협회가 승인을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길드전의 규칙을 정하는 자리에서 지운 님이 중재자로 나와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쪽에선 널 죽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다.”

“오히려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허…….”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김강현을 보자 유지운은 속이 타들어가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도무지 지금 김강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을 도와주신다면 헌터협회에 대한 비천 길드의 간섭을 완전히 없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크흠…….”

김강현의 말에 유지운은 고민에 빠졌다.

비리에 찌든 헌터협회를 개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지만, 비천 길드를 배후에 둔 간부들의 반대로 번번히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만약 비천 길드의 힘이 약해진다면…… 좀 더 수월할지 몰라.’

이번 길드전으로 비천 길드의 힘이 약해진다면 백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협회의 암덩어리들을 쳐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네 말대로 따르마.”

“네. 그리고 연 어르신. 연화 길드에서 정보를 얻고 싶습니다.”

“무력이 아닌 정보를?”

의외의 말에 연철무는 놀라 되물었다.

“네. 전쟁을 하기 위해선 보급과 정보가 가장 중요한데…… 테라 길드의 구성 인원은 저 혼자입니다. 보급은 제가 가지고 있는 아공간을 통하면 얼마든지 물자를 저장해 싸울 수 있지만, 정보는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다 보니 연 어르신밖에 없더군요.”

“으음…….”

“잘못된 정보 하나로 승패가 바뀔 수 있으니, 중요성은 연 어르신도 아실 것입니다. 그 때문에 언제 적으로 변해 싸울지 모르는 비천 길드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계셔지 않습니까?”

“……그것은 세연이에게 들은 말이겠지?”

“네.”

김강현이 연화 길드가 비밀리에 진행하는 일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루트는 하나밖에 없었다.

‘주기적으로 세연이와 연락을 하다 소식이 전해졌구나. 으음…….’

주로 대장간에서 일하는 연철무는 연화 길드의 최종 결제와 감독만 담당했고, 전체적인 길드의 관리는 부길드장인 연세연이 맡고 있었다.

“비천 길드가 키우던 뼈다귀들을 네가 없애 버린 것은 알고 있다. 하나 이것만으론 비천 길드가 공개적으로 너를 죽인다고 나서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겠지?”

“네. 이한결을 코마 상태…… 식물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어째서?”

“A급 헌터 시험에 신분을 감추고 나타나 비천 추살조와 함께 저를 죽이려고 하기에 되돌려 준 것뿐입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구나.’

김강현에게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정보의 조각들이 연철무의 머릿속에서 맞추어졌다.

A급 헌터 시험이 끝난 시점 이후 이우경의 동선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자정 무렵이 되면 남들의 시선을 피해 병원으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아는 이우경은 건강했고, 아픈 조짐이 있으면 의사를 집으로 불러 진료를 받았기에 왜 직접 병원에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식 놈이 그 꼴이 되었으면…… 눈이 뒤집어질 만하지.’

소문을 통해 이우경이 개망나니지만 하나뿐인 자식인 이한결을 옥이야 금이야 끼고 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연철무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그 꼴이 되었다면 그렇게 만든 놈을 죽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 연화 길드가 네게 비천 길드에 대한 정보를 준다고 치자. 한데…… 너 혼자 비천 길드를 상대할 무력을 가지고 있느냐? 검쟁이…… 검천호가 없는 상황에서?”

아크 스파이더 퀸과의 레이드를 통해 김강현이 자신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300여 명의 헌터들이 속한 비천 길드를 혼자서 상대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나마 검천호가 도와준다면 모를까, 연철무도 그가 임무로 한국에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강현이 정보를 원한다고 했을 때 무력에 대한 걱정을 한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뭐?”

“혼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운 님도 알고 계실 겁니다.”

연철무는 근심 걱정 없는 편안한 김강현의 말에 놀라고, 유지운이 알고 있다는 말에 두 번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얼마 전 한국, 아니, 세계 곳곳에 나타난 몬스터 출몰 사태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연철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다행히도 자네가 한국에 머물고 있던 타국의 헌터들을 섭외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덕분에 서울과 경기도에 머물고 있던 헌터들이 헬기를 비롯한 각종 운송수단을 통해 각 지방에 배치함으로써, 많은 인명을 구하고 몬스터를 없앨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을 하던 연철무는 이상함을 느끼고 갑자기 고개를 김강현을 향해 홱 돌리며 눈을 크게 떴다.

“서, 설마?!”

“맞습니다. 헬릭스과 함께 서울과 경기도에 나타난 모든 몬스터들을 없앴습니다.”

“허허허허…….”

“이제 A급이 된 헌터 한 명이 서울과 경기도에 나타난 모든 몬스터를 없앤다고 한다면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자 연철무는 하염없이 너털웃음을 뱉을 뿐이었다.

유지운의 말대로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A급 헌터 한 명이 서울과 경기도에 나타난 몬스터들을 모두 없앴다고 한다면 자신이라도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었을 것이었다.

‘검쟁이는……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본 건가?’

또래의 아이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헌터이자 돈이 많은 할아버지를 둔 녀석이라고 김강현을 판단하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계속 예상을 빗나가고 있었다.

“대규모 마법입니다.”

“으음? 검이 아니라?”

김강현이 몸과 검을 사용하는 무투형 딜러라는 것을 알고 있던 연철무는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유형화된 마나로 마법진을 그려 마법을 구현합니다, 물론 이번 같은 대규모 마법은 리스크도 크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헬릭스의 도움이면 가능하죠.”

“……너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이구나.”

이 말을 끝으로 그들 사이에서는 침묵이 흘렀는데, 연철무의 얼굴에선 수심이 깊어졌다.

“비천 길드에 대한 정보를 준다면…… 테라 길드는 연화 길드에 무엇을 제시할 테냐?”

이야기를 통해 테라 길드가 비천 길드를 상대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정보를 주는 대가가 무엇인지 확인할 차례였다.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은 비천 길드가, 강북은 연화 길드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길드들이 한강을 중심으로 갈라져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 비천 길드와 연화 길드가 있었다.

이렇게 길드들이 영역 싸움에 치열한 이유는 그 구역에 있는 던전들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정보의 대가로 강남을 연화 길드에 드리겠습니다!”

“뭐라?!”

“허억……!”

우당탕탕!

김강현의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연철무는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유지운은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이 소리에 안쪽에 있던 연세연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서…… 괜찮으신가요?”

“그래. 괜찮다.”

“네, 네.”

연철무는 간신히 놀란 표정을 숨기고 연세연을 돌려보냈지만, 아직도 격하게 뛰는 심장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유지운도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원위치시킨 후 자리에 앉았지만 놀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강현아. 그, 그 말의 무게는 알고 있는 것이겠지?”

“네. 지운 님. 그렇기 때문에 길드전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는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거냐?’

이제 유지운은 김강현이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눈앞의 이 녀석은 결코 자신의 범위로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엄청 거대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후우…… 비천 길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길드 중 하나다. 고작 길드전 하나로 무너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건 알고 있지 않느냐?”

“물론입니다. 그래서 비천 길드를 없앨 수 있는 명분을 준비했습니다.”

“응?”

김강현은 품속에서 헬릭스에게 받았던 물건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것은 이우경의 사무실에 있던 금색 캡슐이었다.

“아직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고 요즘 암시장에서 돌고 있는 약인데…… 헬릭스가 정보를 찾기 위해 암시장을 돌다가 우연히 구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비천 길드가 이 약을 정기적으로 구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흐음…… 보고를 통해 들었다. 구입 루트는 암시장에서도 은밀히 이루어져 알 수 없지만, 이 금색 캡슐을 복용한 만큼 헌터가 가진 능력을 키워준다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금색 캡슐을 보던 연철무는 며칠 전에 들어온 보고를 떠올렸고, 유지운은 이런 약이 암시장에서 돌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 약의 정체는…….”

연철무와 유지운은 귀를 쫑긋 세우고 김강현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 * *

“……사람의 정신을 부수고 조종하는 약이라고 하더군요.”

“뭐?”

뜬금없는 말에 그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자, 김강현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만약 비천 추살조와 싸울 때 보지 못했더라면…… 정보창이 아니었다면 나도 몰랐겠지.’

우연과 우연이 겹쳐 벌어진 일이었다.

무인도에서 비천 추살조가 금색 캡슐을 먹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비천 길드와의 연관성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정보창을 통해 확인하지 않았다면 김강현도 금색 캡슐을 영약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돈이 눈이 먼 비천 길드 헌터들이 남몰래 암시장에 팔지 않았더라면 헬릭스가 마인드 브레이커를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금색 캡슐(A급)

-약의 성분과 재료를 감추기 위해 연금술과 흑마법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마나와 신체의 능력을 상승시켜 준다. 하지만 복용 시 의지를 잃고 상대방의 꼭두각시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저보단…… 이것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전문가, 아니, 전문수에게 이야기를 듣도록 하지요.”

그들이 질문을 던지기 전에 김강현은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헬릭스를 소환하는 검은 구멍을 만들어냈다.

“음냐…… 음냐…… 감히 인간 따위가 이 몸에게 대들어……?”

헬릭스는 본능적인 마력을 이용해 공중에 뜬 채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주 행복한 미소가 짓고 있었다.

“라셀…… 이 몸이 누구냐면…… 마계의 귀족 헬릭스 님이란 말이다.”

“응?”

“내 발밑에 무릎 꿇으라고…… 헤헤헤.”

‘이 자식이……!’

헬릭스의 잠꼬대를 듣던 김강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 갔다. 꿈속에서 자신이 어떤 꼴을 당하고 있는지 짐작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잠꼬대를 듣기 싫었던 김강현은 헬릭스의 머리를 주먹으로 치며 말했다.

“일어나.”

“뭐, 뭐냐?!”

“정신 차리고 입가에 흘린 침이나 닦아.”

“응? 응?!”

잠에 취한 나머지 헤롱헤롱거리며 헬릭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였지만, 곧 정신 차리고 주변을 살폈다.

“맞아. 단잠을 자고 있었는데…… 감히 이 몸을 깨우다니!”

“그래서 나를 발로 짓밟으며 농락하니 기분 좋았냐?”

“그, 그건…….”

“한번 라셀 성격대로 놀아볼까?”

“크흠!”

개차반이며 거칠 것이 없었던 라셀을 떠올리자 헬릭스는 헛기침을 하며 김강현의 시선을 회피했다. 만약 라셀이라면 눈앞에 누가 있든 상관없이 지금 헬릭스에게 바로 주먹을 내질렀을 것이다.

이 광경을 연철무와 유지운이 신기하게 쳐다보자, 김강현은 한숨을 쉬며 말을 돌렸다.

“이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고…… 금색 캡슐에 대한 설명을 부탁할게.”

“알겠다.”

분위기를 읽은 헬릭스는 김강현의 말에 수긍함과 동시에 책상 위에 놓인 금색 캡슐을 마력으로 공중에 띄웠다.

“우선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아주 재미있는 조합이니라.”

“그게 무슨?”

“연금술과 흑마법으로 평범한 지식과 기술로는 이것의 정체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단 말이다.”

“흑마법?!”

“그래. 덕분에 재료의 정체를 감추고 약에 담긴 마력을 마나로 위장했더구나.”

흑마법이라는 말에 연철무와 유지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테라와 달리 지구는 흑마법사, 다크 위저드가 무조건 배척받는 환경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시체를 다루고 저주를 사용하는 다크 위저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현대의 의료 검사로는 약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말인가요?”

“그래. 그리고 약을 분석해 보니 연금술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오더구나.”

“이유요?”

“인간의 심장이 주재료이니라.”

“……!”

“……!”

“게다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 마력에 중독된 인간의 심장이야. 이걸 만들기 위해 흑마법을 이용해 인간에게 강제로 마력을 집어넣었겠지. 그 후 심장을 채취해 연금술로 마력을 마나로 위장하고, 몸에 좋은 몇 가지 재료를 더 넣어 괜찮아 보이는 약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니라.”

“……!”

“……!”

속사포로 꺼낸 헬릭스의 말에 연철무와 유지운은 입을 벌린 채 할 말을 잃었고, 미리 이야기를 들었던 김강현은 간신히 평정을 유지했다.

“마, 말도 안 돼! 왜 비천 길드가 이런 짓을……?”

“이게 사람의 심장으로 만들었다고?”

“쯧, 역시 인간들은 의심들이 많구나.”

그들은 머리는 헬릭스의 말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아직 가슴은 받아들이지 못해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웠다.

표정을 찌푸리며 보던 헬릭스는 답답함에 소리치며 마력을 움직여 금색 캡슐을 공중으로 떠올렸다.

“답답하긴! 그럼 직접 경험해 보거라!”

“흡!”

꿀꺽!

말과 함께 금색 캡슐은 유지운의 입안으로 들어갔고, 본능적으로 그는 입안으로 들어온 금색 캡슐을 삼켰다.

‘우……!’

효과는 먹자마자 나타났는데, 마나의 증가와 함께 신체의 감각이 전보다 예민해졌다. 게다가 주변에 감지되는 마나 또한 선명하게 느껴지자 유지운은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이 몸께서 넓은 아량으로 머리는 건드리지 않으마.”

“예?”

“크크크. 신나는 파뤼 타임이니라!”

비릿한 미소를 지은 헬릭스는 유지운의 몸속에 마나로 위장하고 있는 마력과 자신의 마력을 동조시키며 하나의 마법을 시전했다.

“어? 어?!”

따악!

“허허허허, 이게 무슨 짓이더냐?”

“그, 그게…… 그냥 때리고 싶어서 때렸다! 허업!”

“뭐?”

갑자기 유지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철무의 뺨을 세게 때리며 막말을 뱉자, 어이없는 상황에 연철무는 헛웃음을 지으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유지운은 직접 말을 내뱉고는 굉장히 당황한 듯 입을 손으로 막았는데, 더욱 이상한 것은 연철무의 반응이었다.

“더 때려라! 더 맞고 싶다! 어, 어엇!”

“죄, 죄송합니다! 제, 제가 그런 게 아닙니다!”

“지금 네가 마인드 스킬을 시전하고 네가 한 게 아니라고?!”

“정, 정말입니다!”

“얼른 이 입과 탭댄스를 풀어라!”

게다가 그 사이 유지운은 마인드 스킬을 사용해 연철무의 몸을 장악해서 마음대로 말하게 하고, 발은 탭댄스를 추며 쉴 틈 없이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근데…… 모, 몸이…… 마나가 말을 듣질 않습니다.”

“나랑 장난치는 거냐?!”

“사, 사실이라고요!”

“어허……!”

지금 이 광경은 굉장히 희귀했다.

유지운은 울먹거리며 자신의 몸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말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연철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탭댄스를 추다가 이젠 개다리춤을 추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 존재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크크크큭. 아주 재밌구나. 재밌어.”

“이제 충분한 것 같으니…… 그만해라.”

“쳇! 재미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조금만 더 하면 두 인간이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강현은 선을 넘기 직전 경고했고, 헬릭스는 툴툴거리며 유지운에게 시전했던 마법을 없애 버렸다.

덕분에 연철무는 유지운으로부터 육체의 자유를 얻었고, 유지운은 헬릭스로부터 몸과 마나의 통제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되자 힘없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연철무는 호흡이 진정되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게…… 금색 캡슐이 가진 위험성인가?”

“그렇습니다.”

“지금은 강제로 이 몸의 마력과 네 몸에 담긴 마력을 동조시킨 뒤, 마리오네트 마법으로 조종했느니라.”

“그럼 누구나 이걸 할 수 있는 건가요?”

“상당히 많은 마력이 소모되기에 이 몸만이 가능한 일이니라. 평범한 다크 위저드는 불가능한 일이지.”

유지운의 질문에 헬릭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헬릭스와 유지운의 몸속에는 마력이 있지만 서로 성질이 달라 즉석에서 이를 동조시키는 것은 고서클의 다크 위저드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금색 캡슐을 대량생산 중이라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조종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이 그들에게 있을지도 몰랐다.

‘자신도 모른 채 당하게 된다면?’

‘금색 캡슐의 정체를 모른 채 먹게 된다면?’

연철무와 유지운은 그 끝은 처참한 공포와 지옥이라는 생각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방금 전까지 같이 싸우던 있던 동료들이 자신을 향해 아무런 이유 없이 공격한다면, 게다가 공격하는 헌터마저 그 이유를 모른 채 조종당한다면, 누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른 채 대규모 패닉에 빠져 전멸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금색 캡슐을 먹으면 이렇게 꼼짝없이 당해야 합니까?”

“물론이니라.”

“그럼 금색 캡슐을 먹더라도 나중에 조종당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나요?”

“일반적으론 그렇지만 이 몸께선 가능하느니라!”

“지금 당장 부탁드립니다!”

유지운은 다른 사람에게 조종당해 움직인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 서둘러 헬릭스에게 부탁했다. 대답과 함께 헬릭스는 손을 뻗어 유지운이 가지고 있는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매우 더러워…….’

마력을 정제하는 동안 찌푸려진 헬릭스의 표정은 펴지지 못했다.

인공적으로 만든 마력이기에 질이 좋지 않은 데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인이 된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까지 느껴졌다.

헬릭스가 마력을 흡수를 한 후 정제하자 본래 담긴 마력의 5분의 1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연철무는 결정을 내렸다.

“비천 길드와 길드전을 하려는 이유를 잘 알겠다. 연화 길드는 테라 길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마.”

“헌터협회도 네 뜻에 따를 거다.”

“감사합니다.”

“하여간…… 인간들이란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종족이야. 쯧.”

이렇게 헬릭스의 도움을 받아서 김강현은 연철무와 유지운의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다. 빈정거리는 헬릭스의 말에 연철무와 유지운은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살짝 벌게졌다.

“이제 이 몸은 다시 가보도록 하마. 흐아암~!”

“다음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연 어르신.”

자신의 할 일이 끝난 듯하자 헬릭스는 하품하며 그림자로 텔레포트를 열어 집으로 귀환했고, 김강현과 유지운도 연철무에게 인사한 뒤 상점을 나갔다.

한편, 연철무는 연세연을 통해 연화 길드의 모든 간부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다.

‘대규모의 변화가 있을 것이야!’

한 명의 헌터로 인해 대한민국의 헌터 세력의 판도가 뒤바뀔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연철무는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헌터협회의 접객실에선 싸늘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탁탁탁탁.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던 이우경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채,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이 2시인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시간 안에 오는 게 맞나?”

“그렇습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기다려 보지요.”

시계 바늘은 1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아직 김강현은 도착하지 않았고, 미리 도착한 유지운이 이우경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필 일찍 와서 나를 고생시키는 건지…….’

오늘 유지운은 테라 길드와 비천 길드의 길드의 내용을 협상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이우경은 약속 시간보다 1시간이나 미리 도착했고, 김강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유지운은 어쩔 수 없이 이우경과 불편한 자리를 함께해야 했다.

똑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접객실로 들어왔다.

* * *

“안녕하십니까?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크흠. 얼른 와서 앉으십시오. 테라 길드장님.”

“알겠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며 들어오는 김강현과 달리 유지운은 굳은 얼굴로 딱딱하게 답했다.

평소 김강현과 유지운은 편하게 말을 하는 사이였으나, 이우경이 있는 공적인 자리인 만큼 서로 존대했다.

‘이렇게 컸었나?’

이우경은 불과 몇 달도 안 되는 김강현에게서 나오는 기세가 강대해졌음을 느꼈다.

‘A급, 아니…… S급? 한결이와 같은 나이가 맞나?’

이한결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젊은 편이니 검천호의 후원을 받아도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 큰 오판이었다.

아크 스파이더 퀸 레이드 이후 만난 그가 어쩌면 자신보다 강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우경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서둘러 앉지.”

철저하게 내심을 감춘 이우경은 오른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손가락으로 반대편 의자를 가리켰다.

“비천 길드와 테라 길드의 길드전 내용을 협상하기 전, 협회에 등록된 각 길드의 자료를 공유드리겠습니다.”

‘쉽지 않는 협상이 되겠네…… 젠장!’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문 이우경은 유지운으로부터 테라 길드에 대한 자료를 받았다.

길드전 협상 테이블에 비천 길드에 우호적인 협회 간부를 앉혀 협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뇌물을 뿌리고 은근한 협박까지 했지만, 유지운에 의해 모든 것이 무산되었다.

‘이, 이게 뭐지?’

그런데 이우경은 테라 길드에 대한 자료를 보자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비며 다시 살폈다.

한편 김강현은 신중하게 비천 길드에 대한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A급, B급 헌터 150명과 C급 헌터들이 10명.’

비천 길드는 가입할 수 있는 헌터들의 숫자를 정해놓은 후 그들을 중점적으로 관리하며 실력을 키워 나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A급 헌터가 될 가능성이 있는 C급 헌터들의 발굴·육성도 그 일환이었다.

더불어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의 금싸라기 땅들로 짐작되는 곳들이 비천 길드의 영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말만 길드지…… 이게 뭐냐?’

이우경은 서류를 보다가 순간 어이가 없어 김강현을 째려보았다.

테라 길드는 길드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길드장만 있는 길드였다.

길드를 만드는 조건은 간단했는데, A급 헌터가 길드장을 맡을 경우 혼자여도 창설이 가능했고 B급 헌터가 길드장일 경우엔 길드장을 포함한 B급 헌터가 3명이어야 했다.

그사이 둘을 살피던 유지운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동안 행해졌던 길드전은 살인은 금지하며 서로 인원을 맞춰 진행했습니다.”

“음…… 그랬었지.”

“아시다시피 인원을 맞춘 이유는 각 길드마다 속한 헌터의 수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이번엔 각 길드에서 대표 헌터가 나와 승부를 겨루는 것이 어떻습니까?”

‘강현에게 최고의 시나리오야!’

유지운은 속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아무리 김강현이 평범한 A급 헌터의 실력이 아니라고 해도 비천 길드를 혼자 맞서는 불가능했다.

“수용할 수 없군. 길드전의 의미가 퇴색되었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일대일로 겨룰 필요가 있을까요?”

김강현의 말에 유지운과 이우경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는데, 표정에 담긴 의미가 각기 달랐다.

유지운은 자신의 심정도 모른 채 불길에 기름에 부어버리자 화가 나 있었고, 이우경은 자신의 말에 반대해야 하는데 오히려 편을 들어주자 황당할 따름이었다.

“크흠!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차피 테라 길드에서 길드원은 저 혼자이고 영역도 없으니…… 비천 길드장님께서 길드전의 규칙을 제안해 주시면 최대한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배짱 두둑하게도 이우경에게 역제안을 요청하자, 이우경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질렀다.

“테라 길드와 비천 길드. 두 길드의 전면 대결이 어떠한가?”

“이 길드장님! 1명을 상대로 160명이 싸운다고요?!”

“이게 어때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말만 길드전이지…… 몰이사냥이지 않습니까?”

낯짝 두꺼운 뻔뻔한 이우경의 말에 유지운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화가 잔뜩 치밀어 올라 얼굴이 벌겠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그래, 이렇게…… 뭐?”

‘내가 잘못 들었나?’

자신의 귀가 고장 난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황당해진 유지운은 김강현의 대답에 감정 섞인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니…… 좋다고 했습니다.”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미쳤어?!”

‘의견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이건 아니잖아!’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김강현의 모습에 화가 난 유지운은 자신도 모르게 길드전 협상 자리라는 사실을 잊고 김강현에게 반말로 외쳤다.

반면, 이우경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김강현을 보며 조심스럽게 살폈다.

‘놈이 내 뜻대로 움직이는 건 반갑지만…… 정말 진심일까?’

워낙 능구렁이 같은 놈이라 김강현이 한마디 말을 할 때마다 그 속에 숨겨진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고 있어 긴장한 상태였다.

“혹시나 싶어 말하는데…… 비천 길드와 동맹을 맺고 있는 길드들이 길드전에 참여하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 만약 타 길드의 개입이 발견되면 그 즉시 비천 길드의 패배임을 인정하지. 설마 그 정도로 치사한 짓을 할 것 같나?”

“하하하! 아닙니다. 가끔 다른 길드전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여쭈어보았습니다.”

‘협회의 눈을 피해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

길드전이 펼쳐지는 동안 협회에서는 각 길드에 감시관을 파견하어 사전에 정해진 인원이 참여하는지,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파견되는 감시관은 1명으로, 이우경은 충분히 몰래 뒷공작을 할 자신이 있었다.

“길드전 날짜와 시간도 정해야지요?”

“물론.”

“지운 님. 다른 길드들은 길드전 일정을 하루로 잡지요?”

“그, 그렇습니다.”

‘또 무슨 말을?!’

유지운은 김강현이 어떤 말을 할지 몰라 긴장하며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날짜와 시간을 정하지 않고 서로 항복하거나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게 어떻습니까?”

“그 말은…… 살인을 허용하겠다는 말?”

“맞습니다. 비천 길드장님. 어떠십니까?”

“음…….”

갑작스러운 김강현의 제안에 이우경은 감정이 복잡했다.

‘놈을 죽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길드전에서 살인은 각 길드장이 합의만 한다면 가능했지만, 협회의 중재 아래 이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나 이우경은 이한결을 폐인으로 만든 김강현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오자 굉장히 솔깃했다.

“원하는 게 뭐지?”

“제가 이길 경우 비천 길드를 해체하고 모든 것을 테라 길드에 넘겨주십시오.”

“……!”

“……!”

“이 조건을 수락한다면…… 비천 길드가 제안하는 모든 조건을 수용하지요.”

‘이놈이……! ’

꽁꽁 감춰졌던 김강현의 속셈을 알게 되자 이우경의 양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몇 년 동안 이우경은 비천 길드를 키우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는데, 김강현은 이를 단숨에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더불어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나오자 숨겨놓은 무언가가 있는 의심스러웠다.

“길드와 복수.”

“응?”

“어느 것이 길드장님께 중요합니까?”

“……이 새끼가!”

이우경에게서 망설이는 기색이 보이자 김강현은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동안 참았던 화를 쏟아냈다.

“그래. 너였구나! 한결을 그 꼴로 만든 새끼가!”

“시작은 비천 길드가 먼저였습니다. 길드장님이라면 자신을 공격한 적을 그대로 보내겠습니까?”

“으으으……!”

“목숨이 아까우면 거절하시지요.”

이우경은 이한결이 김강현을 죽이기 위해 비천 추살조와 함께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를 위해 헌터협회를 매수까지 해서 자신이 직접 움직였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가 뇌사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는 범인으로 김강현을 생각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을 참고 참았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김강현으로 밝혀진 이상 더 참을 이유가 없었다.

미소 어린 김강현의 마지막 말에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진 이우경은 마나를 사방에 분출시키며 김강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진정하시지요.”

“너……!”

“이 자리는 길드전 협상을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후우……!”

그의 공격이 김강현에게 닿기 직전, 유지운이 스킬로 막아섬과 동시에 이우경에게 말을 건넸다.

그제야 김강현의 농락에 넘어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자각한 이우경이 자리에 앉았다.

“……실례했군. 미안하네.”

“아닙니다. 이제 길드전의 틀이 나온 것 같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설마 이 제안을 수락할까?’

정상적인 길드전의 범위를 벗어난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수십 명의 인명 피해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 언론의 먹잇감이 될 여지가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유지운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하하…… 하하하하!”

그러나 이우경은 대답 대신 한참을 사무실이 떠나가도록 웃을 뿐이었다.

“테라 길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네?”

“귀가 먹었나? 테라 길드의 제안대로 길드전을 할 것이니 협회에서도 인지했으면 좋겠군.”

예상외로 시원스럽게 대답한 이우경이 일어나자 유지운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러나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이 제안을 한 걸 후회하게 될 거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흥!”

콰앙!

밖으로 나가던 이우경의 협박에 김강현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이우경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문을 세게 닫고 나갔다.

“후우…… 잘 끝났네.”

“잘 끝나? 이게 잘 끝났다고?”

“아닌가요?”

“비천 길드와 전면전을 벌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단 말이야.”

둘만 남게 되자 유지운은 속사포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길드전이 결정되면 이 내용을 협회에 소속된 길드들에게 전달해 두 길드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공지해야 했다. 이때 살인이 허용된 1명과 160명의 싸움이 외부에 알려지면 굉장히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했다.

“비천 길드가 사라지는 것과 금색 캡슐이 퍼지는 것. 어떤 걸 선택하시겠어요?”

“끄응…….”

“비천 길드가 없어진 자리는 곧 다른 길드들이 차지할 테니 금방 수습되겠지만, 금색 캡슐이 퍼지면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하아……!”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자 유지운은 걱정스러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가능한 일이겠지?”

“네. 믿으셔도 됩니다.”

상식적으로 A급 헌터 한 명이 비천 길드를 상대로 싸운다는 건 미친 짓이다.

게다가 비천 길드장 이우경은 A급 헌터로 현재 S급 헌터를 목전에 둔 사람이었다.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긴 일들을 해낸 김강현을 믿을 뿐이었다.

“지운 님. 길드전을 시작하는 날짜와 시간은 정확하게 정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곧 아주 재미있는 소식이 들려올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장난기 어린 미소가 김강현의 귀까지 걸렸다. 유지운은 그 미소를 보며 섬뜩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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