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장. 클럽에서 생긴 일 (28/119)

9장. 클럽에서 생긴 일

“유, 유나 누나?!”

“강현?!”

김강현의 사촌 누나인 김유나는 연예인답게 화려한 의상과 풀 메이크업, 블링블링한 주얼리들로 한껏 꾸민 상태였다.

둘은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김유나가 째려보기 시작했다.

“뭐야?! 그동안 연락을 안 받은 이유가 클럽 다니느라 그랬던 거야?”

“던전에 들어가거나 바쁠 때 연락 와서 못 받았어요. 반대로 누나도 제 연락을 하나도 안 받았던 이유가 노느라고 그랬던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로 이상하게 해외 공연 나가 있거나, 미팅 때 연락 와서 못 받았다고.”

“에이~”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을 하곤 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상황이 되지 않아 단 한 번도 통화가 성사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메신저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이것조차 서로 확인이 늦어 느리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긴 행사 있어서 온 거예요?”

“아니, 친구들과 함께 놀러왔어. 너 시간 되지? 괜찮으면 친구들을 소개시켜 줄게. 가자!”

“네? 네?!”

“자, 자! 빨리 오라고!”

‘빨리 자랑해야지!’

김유나는 동생을 친구들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대답을 듣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김강현의 손목을 잡아채 끌고 갔다.

‘에휴, 지은 죄가 있으니 따라가자.’

솔직히 말하면 김강현은 김유나가 건 전화들을 확인했지만 수련을 하느라고 받지 않은 적이 있어, 웬만하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해줄 생각으로 끌려갔다.

“애들아, 나 왔어! 내가 누굴 데려왔게~?”

“유, 유나…… 너 연애하는 거니?”

“철벽녀 유나가 남자를?”

“……!”

김유나의 친구들은 조용히 놀기 위해 룸을 빌려 자신들끼리 놀고 있었다.

총 3명의 여성들로, 그녀들은 김강현을 보자마자 모든 굳은 채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남자 친구 아니고…… 내가 계속 이야기했던 내 사촌 동생~!”

“내 기억에 의하면 사촌이 없을 텐데?”

“남자 친구인데 사촌 동생이라고 사기 치는 거 아님?”

”말도 안 돼! 너 친척 없는 걸 내가 아는데!

그녀들은 김유나가 US 그룹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친하고 가족 관계까지 꿰뚫고 있어 쉽사리 믿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김강현입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사이가 좋지 않아 가족 관계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 누나의 사촌 동생이 맞아요.”

김강현은 살짝 미소 지으며 설명하자 그녀들은 그제야 조금 믿는 눈치를 보였다.

“자자, 그럼 친구들을 소개해 줄게. 여기는 내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

“안녕하세요.”

“유나 동생이면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반가워~!”

“네네.”

“그리고 여기는 강민희라고 해. 인터넷에서 본 적 있지?”

“아뇨. 혹시 유명한 사람인가요?”

스타일리스트가 아직 소개하지 여성을 가리키며 물었는데, 당연히 강현이 그녀를 알 것이라 생각하고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김강현의 대답에 김유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놀라 입이 다물지 못했다.

“민희를 모른다고?”

“우리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민희야.”

“좀 더 노력할게요…….”

“나도 몰라봤던 앤데…… 민희를 알 리 없지. 헤헤헤.”

이미 이 상황을 예견했던 김유나는 멘붕에 빠진 친구들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김강현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이돌 출신의 만능 엔터테이너 강민희는 대한민국의 10대, 20대들이 대부분 알 정도였다. 또한 감미로운 음색으로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음원 차트에서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연기력도 뛰어나 드라마와 영화 활동도 하고 있었다.

김유나와 같은 소속사이고, 나이도 똑같고, 같은 매니저,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4명이 친해진 사이였다.

“TV나 컴퓨터를 잘 안 하다 보니…… 돌아가면 노래는 꼭 들어볼게요.”

앨범이라는 단어를 통해 가수라는 것을 짐작한 김강현은 삐친 듯한 강민희를 풀어주기 위해 질문을 건넸다.

“평소에 이 멤버가 클럽에 자주 모이나요?”

“아니. 오늘은 매니저 언니의 생일이라 모였어. 평상시에는 다들 바빠서 잘 만나지 못해.”

“오늘 모이려고 한 달 전부터 스케줄 조율했지.”

최근 김유나는 해외 공연으로 바쁘게 활동했고, 강민희는 새로운 앨범 작업으로 매일 녹음실에서 곡을 만들고 있었다.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는 이런 두 사람을 케어하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돌아나녀 네 명이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클럽엔 혼자 온 거야?”

“……아! 아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잠시 루시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외국에서 온 손님과 같이 왔어요. 괜찮다면 여기에 합류해도 될까요?”

“당연하지! 원래 술자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재밌는 거야!”

“얼른 데리고 와!”

“그런데 남자? 여자?”

“여자인데요?”

“오올~!”

김유나가 옆구리를 툭툭 치며 건넨 질문에 김강현이 대답하자, 마치 눈빛들이 능력 있는 자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바뀌었다.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소개로 하루 종일 가이드하면서 같이 돌아다닌 사이니까요.”

“우리가 이상한 말 했니?”

“알았으니까 얼른 같이 놀자. 자, 건배!”

“건배~!”

매니저가 양주가 가득 담긴 술잔을 위로 들며 소리치자 스타일리스트가 뒤따라 소리쳤다. 강민희는 조용히 술잔을 들 뿐이었다.

김강현은 그녀들에게서 어마어마한 포스를 느끼고는 조용히 룸을 나왔다.

“누나는 왜?”

“왜긴……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그리고 너 길 알아?”

“그러게요?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김강현은 김유나에게 아무 생각 없이 끌려오느라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지금 김강현의 눈앞엔 이리저리 복잡한 복도만 보이자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김강현은 김유나의 뒤를 따라 루시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화장실에 간 사람은 언제 오는 거야? 화장실을 만들어서 볼일을 보나…… 캬아!”

한껏 춤을 춘 덕분에 땀으로 몸이 젖은 루시아는 맥주 한 병을 따 시원하게 들이켠 후 김강현이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실례합니다.”

“응?”

“혹시 혼자 오셨나요?”

그때 루시아에게 두 명의 남성이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었다. 한껏 명품으로 몸을 도배하고 있어 표정에서 자신감이 매우 흐르고 있었다.

“일행 없이 혼자 온 거 같은데…… 우리랑 같이 놀래요?”

“같이 놀면 우리가 술도 사 줄 거고, 좋은 데도 데려가줄게요.”

‘하아, 잘못 걸렸네.’

두 남성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재력을 표현하며 루시아에게 말을 건넸지만, 정작 루시아는 속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성질대로 한판 했다가는…… 경찰들이랑 엮이고 좋지 않게 끝나겠지?’

종종 유럽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단순히 아름다운 루시아의 외모에 반해 달려드는 불나방들이 있어 그럴 때마다 힘으로 그들을 제압해 흉포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동생 바보인 오빠의 힘으로 소문을 잠재웠다.

그래서 루시아의 오빠는 그녀가 밖에 나갈 때마다 경호원들을 대동시켰지만, 정작 루시아는 그 경호원들이 가끔 답답하기도 했다.

“일행이 있으니 다른 데 가서 노시겠어요?”

‘외국에까지 와서 사고 치면 개망신이지! 게다가 이 소식이 오빠 귀에 들어가면……!’

여기서 일을 벌이면 뒷감당이 안 될 것을 깨달은 루시아는 나름 예의를 갖춰 거절했지만, 두 남성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에이, 거절하지 말고요.”

“너무 튕기면 재미없어요.”

처음부터 수락하면 가벼운 여자로 보일까 봐 거절한 것으로 생각한 그들은 다시 루시아에게 말을 걸며 팔을 뻗었다.

‘그냥 사고 치자!’

결국 루시아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쓰기로 마음먹고, 그들의 팔이 자신의 몸에 닿으면 바로 반격을 취하려 준비했다.

“내 일행에게 무슨 볼일입니까?”

“응?”

그때, 갑자기 루시아의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팔이 루시아에게 닿기 전 낚아채 힘을 주었다.

“아아아악! 뭐, 뭐야?!”

“조용히 말할 때 다른 데 가서 노시죠.”

김강현이 손목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쥐자 깜짝 놀란 남성은 급히 소리치며 엄살을 피웠다. 루시아와 마찬가지로 괜한 소란에 휘말리기 싫었던 김강현은 손목을 놓으며 조용히 경고했다.

그렇지만 비명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을 향해 집중되었다. 괜한 다툼에 휘말릴까 사람들은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아! 강현!”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 일이 일어나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감강현이 바로 루시아에게 사과하며 기분 나쁘지 않도록 배려하자, 이를 눈치챈 루시아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잘됐네. 그럼 너는 집에 가고 이 여자는 우리가 데리고 갈게.”

“좋은 생각이야. 동진아.”

“그치. 동인아.”

신동진과 신동인은 서로 말을 주고받은 후 주먹을 가볍게 쥐더니 김강현의 가슴을 툭툭 쳤다.

‘이런 쓰레기들에겐…….’

김강현은 슬쩍 천장 구석을 바라본 후 가슴을 치는 신동진의 팔목을 낚아챈 다음 바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끄아아아앗!”

“신동진! 이 새끼가!”

신동인은 쌍둥이 동생인 신동진이 당하자 화가 나 달려가 김강현의 얼굴을 향해 오른 주먹을 휘둘렀지만, 김강현은 가볍게 피한 뒤 그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꺼거걱! 꺼억! 수, 숨이…….”

단 한 번의 주먹에 신동진은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먼저 나서준 것은 고마운데…… 내가 움직임을 놓쳐?’

김강현의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루시아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놀라고 있었다.

그녀는 동체시력이 뛰어나 몬스터나 헌터들의 움직임을 놓쳐본 적이 없었는데, 방금 김강현의 움직임을 놓쳐 당황스러웠다.

“너 이 자식…… 뭐야?!”

“이 새끼가 죽고 싶구나. 우리가 누군지, 우리 집안이 어떤지 알고 나서는 거야?!”

‘처음 보는 녀석 같은데…… 단숨에 깔아뭉개 주지!’

그들은 김강현에게 겁을 먹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해 자리에서 일어나 강한 척하며 크게 소리쳤다.

“누구긴 누구야?! 신성 그룹의 망나니와 양아치 아냐?”

“뭐, 뭐야?!”

“어떤 년이 지껄이는 거야?!”

그들은 누가 자신들의 치욕적인 별명을 이야기하자 화가 잔뜩 난 상태로 김강현의 옆을 보았다.

“안 그래? 신동진, 신동인.”

“으음…….”

“허억!”

그들은 김유나를 발견하자마자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신동진, 신동인은 신성 그룹 회장의 쌍둥이 손자로, 신성 그룹 회장이 김고엽과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김유나는 종종 US 그룹이 운영하는 모임이나 파티에서 쌍둥이 형제를 마주쳤지만, 그들과 김유나는 악연인지라 서로 감정이 좋지 못했다.

특히 두 사람은 사생활이 난잡하기로 유명해 여자 문제로 조용한 날이 없어, 신성 그룹의 이미지를 망쳐놓는 망나니와 양아치로 불렸다.

“으음…….”

김유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게 협박 어린 말을 날렸다.

* * *

“신성 그룹? 어디 한번 해봐. 그럼 US 그룹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보여줄게!”

그 말에 신동진과 신동인은 살짝 겁을 먹었다.

평소 김유나는 활발하고 웃음이 넘쳐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적과 싸울 때는 180도 달라졌다. 김고엽을 닮아 적이라고 인식하면 철저하게 밟아주는 성격 덕분에 치열하기 짝이 없는 연예계 생활을 계속 지속할 수 있었다.

“내 성격 알지? 한번 물고 늘어지면 죽을 때까지 물고 늘어질 거야.”

그 말에 신동진과 신동인은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초등학생이던 김유나는 연말에 아버지 김우진을 따라 정재계 모임에 나갔었는데, 어떤 아이가 그녀가 공부를 못한다고 무척이나 놀렸다. 당시 김유나는 연습생 신분으로 어쩔 수 없이 학업이 뒤처졌는데, 이후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자신을 놀린 아이가 나가는 대회란 대회는 모두 출전해 1등을 휩쓸었다. 그 기행은 시달리다 못한 아이가 싹싹 빈 후에야 겨우 멈췄다.

‘어떡하지?’

‘젠장…… 씨발!’

신동진과 신동인은 표정을 찡그린 채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 말이 아버님과 할아버님 귀에 들어가면…….’

‘우린 죽는다!’

그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했다.

유학을 가서도 사고만 치고 다닌다는 말이 퍼지자 강제 귀국 후 근신령이 떨어진 상황인데 몰래 클럽에 나와 신성 그룹 이름을 팔았다는 말까지 들어가면 호적에서 파일 것이 분명했다.

“하하하, 아니지, 아냐. 잠시 오해가 있던 것 같아.”

“맞아. 술을 꽤 마셨더니 잠시 정신이 헤까닥했어.”

“미안해.”

“으음…… 사과할 상대는 내가 아니잖아.”

두 사람은 자존심 상하지만 여기선 접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김유나에게 말을 걸었다. 김유나가 김강현과 루시아를 가리키자 냉큼 그들을 향해서도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없던 일로 해주면 좋겠어.”

“레이디, 정말 죄송합니다.”

김강현과 루시아는 주변의 시선이 있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만약 여기서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들이 속 좁은 인간으로 찍힐 수 있었다.

‘여기서 끝내기는 찝찝한데…….’

테라에서도 귀족 자제들로 인해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은 적이 있었다.

김강현은 이들이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나중에 치졸하게 복수를 할 것을 알았다. 본때를 보여주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훗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두고 보자.’

‘유나가 없을 때 만나면 반쯤 죽여주마!’

김강현의 예상대로 신동진과 신동인은 복수를 꿈꾸며 자리를 떴다.

“미안해요. 많이 놀랐죠?”

“아, 네.”

“저는 강현이의 누나 김유나라고 해요.”

“김유나……?”

김유나는 혹시 루시아가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되어 먼저 그녀를 챙겼다.

김유나의 얼굴에 이름까지 들은 루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호, 혹시…… 가수 유나?”

“쉬~ 잇! 방을 하나 잡아 놓았으니 그곳에서 이야기해요.”

“네. 좋아요!”

김유나가 아시아의 별이라 불리는 가수 유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루시아는 목소리가 떨리고 상기된 얼굴이 되었다. 더불어 김유나가 조용히 하자는 제스처를 취하자 과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히 클럽 주변이 어두워 사람들은 아직 김유나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유나 누나가 그렇게 유명해?’

아직까지 김강현은 김유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없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김유나는 유럽 투어가 해외 뉴스에도 방영될 정도로 유명했고,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인기 가수였다. SNS를 통해 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유나를 계기로 루시아는 한국의 가수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루시아는 떨리는 마음으로 김유나를 따라 일행이 있는 룸으로 향했고, 김강현도 그 뒤를 따라갔다.

룸 앞에 도착한 김유나는 확 문을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나 왔어~!”

“왔구나! 그럼 술 한잔 받으시오~!”

“거기 같이 오신 손님 두 분도 같이 받으시오~!”

“엥?!”

자리를 비운 지 10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는 폭주하며 달렸는지 거나하게 취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빈 양주병들이 가득했다.

그나마 강민희는 절제하며 마셨는지 멀쩡했다.

“서, 설마 강민희 아니에요?”

“아~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우와! 노래 잘 듣고 있어요!”

루시아는 강민희도 알아보았고, 강민희는 수줍음에 얼굴이 빨개졌다.

강민희도 김유나처럼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어 영어 회화 실력이 뛰어났고,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도 평소 회화를 공부해 영어로 대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헤헤헤. 한 잔 더 주세요.”

“그래. 먹고 마시는 게 남는 거지!”

“아이고~! 먹는 게 왜 이리 예쁘냐?!”

어느새 루시아는 김유나 일행과 이금세 친해져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게다가 술을 마신 루시아는 평소 차갑고 냉정한 모습과 달리 애교가 굉장히 많아졌다.

‘그런데 저러다 취해 버리면 어디로 데려가지?’

김강현은 잠시 뒷일이 걱정되긴 하지만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생각에 김유나와 함께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나 누나.”

“응? 왜~ 동생.”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그룹의 임원이니 이쪽에서 일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누나는 왜 회사 일을 하지 않고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거예요?”

“음…… 내가 21살 때 딱 회사에서 일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

김유나는 17살이라는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해 9년이 지나는 동안 중간중간 슬럼프가 왔었다.

“그래서 반년 동안 아버지 밑에서 회사 다니며 일을 했었는데…….”

“했었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그만뒀지!”

“네에?”

“농담이고…… 정확히는 가수로서 느끼는 보람을 포기할 수 없더라고.”

김유나는 가요 프로그램이나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를 때 팬들이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환호성이 주는 짜릿함을 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뒤에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고독감도 컸지만 팬들의 사랑은 마치 끊을 수 없는 중독과도 같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알게 되니 내가 경영에는 자질이 없고, 내게 남은 건 음악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

이때부터 김유나는 수십 곡의 노래를 만들어 불렀고,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있었다.

“주식을 가진 주주로서 올바르게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이거 하나만 으로도 충분해!”

US 그룹은 김고엽이 온갖 고생을 하며 만든 회서였기에 김유나는 연예계에서 번 돈으로 US 그룹의 주식을 사고 있었다.

“그럼 넌 어때? 듣기로는 전략기획실장으로 일한다고 하던데?”

“……재미있어요.아직까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어렵지만, 제가 낸 아이디어가 실현되고 헌터들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좋고요.”

“다행이네. 그런데…….”

갑자기 김유나는 김강현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고는 입을 열었다.

“모델이나 연기자로 데뷔할 생각 없어? 너 정도의 외모와 피지컬이면 딱인데!”

“데뷔라고?”

“오케이! 네가 마음이 있다면 이 누나가 팍팍 밀어줄게!”

대답은 김강현이 아닌 한껏 취한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에게서 나왔다.

아무리 술을 마시고 있더라도 습관적으로 데뷔라는 말에 반응한 것이었다.

“아니요. 지금 하는 일도 벅차서 그것까진 좀 .”

“아쉽아쉽…….”

“그럼 아쉬우니 사진 한 장만 찍을게.”

매니저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김강현의 얼굴과 상체가 보이도록 사진을 찍었다.

김강현은 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말을 돌렸다.

“유나 누나. 혹시 나중에 시간 괜찮으시면 동생을 소개시켜 드려도 될까요?”

“동생? 또 다른 동생이 있었어?”

“헤에…… 사진 있나요?”

이번에는 루시아도 반응을 보였는데, 그녀도 취한 듯 혀가 많이 꼬여 있었다.

김강현은 김아현이 SNS를 한다는 것을 떠올리고 김유나의 핸드폰을 통해 SNS로 들어갔다.

“꺄아! 이 생물체는 뭐야?”

“강아지? 아냐! 등에 날개가 있잖아!”

“영상들 조회 수도 대박이고 등록된 친구들도 대박 많아!”

‘헤, 헬릭스? 왜 네가 거기 있냐?!’

김강현은 SNS에 올라온 사진들과 동영상들을 보자 허탈해짐과 동시에 최근 들어 헬릭스가 자신을 찾지 않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SNS에는 예쁜 장소에서 찍은 김아현의 사진과 함께, 헬릭스가 음식을 먹는 사진과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댓글을 보니 강아지로 보이는 동물이 날개로 날아다니고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고 난 후 한국어로 맛 표현까지 정확하게 해내는 것을 굉장히 신기해하며 열광하고 있었다.

갑자기 SNS 맛집이 생긴 그녀들은 김아현이 올린 사진들과 영상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요즘 이거에 빠져 사는구나.’

김강현은 옆에서 헬릭스의 영상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에 귀환한 뒤 헬릭스는 수련을 핑계로 김강현을 괴롭히는 것에 재미가 들렸는데, 요즘에는 지구의 음식에 완전히 맛들인 모습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음식의 칼로리는 마력에 의해 사라져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체형이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한번 날 잡아 같이 놀아야겠어.’

빠득.

누구는 며칠 동안 적들과 힘겹게 싸우고, 회사 일을 하느라고 밤새 고생하는데…… 누구는 맛있는 음식들을 마음껏 먹으며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부러워서, 억울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이런 생활을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게을러지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야! 암, 그렇고말고!’

김강현은 헬릭스에게 이를 갈며 며칠 후를 기약했다.

“강현아, 네 동생 좀 소개시켜 주라!”

“빨리 날짜 잡아서 얼굴 좀 보자!”

김아현의 사진을 보자 반한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는 김강현을 재촉했다. 정확히는 귀여운 페이스와 영상 콘텐츠에서 그녀의 스타성을 발견했다.

“알았어요. 그럼 연락처를 알려주시겠어요? 아현이한테 물어본 뒤 연락처를 건네줄게요.”

“좋아! 그리고 네 번호도 알려줘!”

“허, 헌터…… 포, 폰?”

연락처를 교환하기 위해 각자 핸드폰을 꺼내던 그들은 김강현이 헌터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자 깜짝 놀라며 동공이 크게 뜨였다.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시아도 놀라며 김강현의 얼굴과 헌터폰을 번갈아 보다 자신이 김강현의 움직임을 놓친 이유를 알았다.

이렇게 그들은 연락처를 나눈 뒤, 다음 약속까지 정한 후에야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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