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장. 헌터의 자질 (25/119)

6장. 헌터의 자질

‘조금씩 시간차가 있지만…… 게이트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어.’

김강현은 어둠으로 가득한 숲을 질주하며 인피니티 마나를 퍼트려, 게이트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게이트는 섬과 주변 바다에서 대략 200m의 간격을 두고, 동시 다발적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나와 연관해 벌어진 일이니 최대한 수습해야겠지.”

본래 이곳에는 마력이 전혀 없어 게이트가 열릴 수 없었다. 게이트는 마나와 마력이 부딪쳐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천 추살조가 만든 마나 결계로 흐름이 비틀렸고, 결계를 없애기 위해 일으킨 폭발이 위태로운 마나 흐름을 다시 뒤집었다.

“어쩌면 마나 흐름이 바뀌면서 차원의 틈이 벌어져 마력이 나타났을지도……!”

그렇게 마나의 흐름이 뒤집히다 차원이 틈이 만들어져 그 속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면, 지구의 마나와 부딪치며 일으킨 마나 폭풍이 게이트를 생성했을 터였다.

“지원이 올 수 있을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륙에 있는 유지운이 생각했던 것처럼, 김강현도 이곳이 섬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섬을 중심으로 몰아치는 마나 폭풍에 바람과 파도가 거세져 지원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터였다. 더구나 가장 문제는 이곳의 헌터들이 섬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어 그들을 하나로 뭉칠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강현은 빠르게 이동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취이이이익!”

“이, 인간이다! 취잇!”

“공격!”

그때, 벌써 게이트에서 오크 전사 3마리가 나와 눈앞에 나타났다. 김강현은 잠시 생각을 접고 싸울 자세를 취했다.

오크 전사들은 매서운 기세를 내뿜으며 녹슨 무기를 들고 김강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은 너희 따위에게…….”

김강현은 오른손에 쥐고 있는 마검을 꽉 쥐었다.

“취이익!”

“신경 쓸 시간이 없다고!”

스아아아앗!

마검을 횡으로 휘두른 김강현은 오크 전사들 사이로 몸을 날려 그들을 지나쳤다.

“취이이익?!”

“왜 거꾸로 보이는 거냐? 취익?”

“취익. 따, 땅이 보인다!”

스산한 바람 소리가 함께 오크 전사들은 바람이 자신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이 뒤집혔다.

“취이이잇!”

“끄어어억!”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금세 비명 소리로 바뀌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녹슨 무기와 목을 베어버린 탓에, 놈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피 분수가 솟구치는 자신들의 몸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했다.

순식간에 오크들을 처리한 김강현은 표정을 굳혔다.

“게이트 밖으로 몬스터들이 나왔다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오크 전사들은 이곳에 있는 B급 헌터들이 힘을 모으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A급 몬스터들이 줄줄이 게이트를 통해 나온다면 이곳의 헌터들로는 역부족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헌터들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는데, 게이트에서 얼마나, 어떤 몬스터들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응? 이 목소린?”

섬의 중앙으로 향하던 김강현은 오른 방향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는 헌터들의 목소리를 어렴풋이 캐치했다. 그중 하나의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김강현은 혹시나 싶은 생각에 방향을 틀어 그곳으로 향했다.

* * *

“으아앗!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얼른 구조탄을 쏴!”

“어서 나 좀 도와줘!”

4명의 헌터들은 정신없이 5마리의 오크 전사들과 겨루고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의 헌터는 딜러로서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며 거센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고,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 아처는 화살을 쏘며 허둥지둥 품속에서 신호탄을 꺼냈다.

디펜더를 맡고 있는 김건만이 유일하게 냉정히 상황을 판단하며 싸우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계속해서 오크 전사들이 나오고 있어.’

눈앞의 오크 전사를 타워 실드로 밀치면서도 김건의 시선은 멀리 떨어진 게이트를 향해 있었다.

처음에는 두 마리의 오크 전사가 게이트에서 나오더니, 사방의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지금은 8마리에 이르렀다. 그리고 게이트에선 오크 전사들이 계속 나올 기색이 보였다.

“됐다!”

딜러들의 보호 아래 아처가 하늘을 향해 마나 신호탄을 발사했다. 그들은 마나 신호탄의 불꽃을 보고 협회 사람들이 구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어? 어?! 저게 뭐야?!”

“불량품이잖아!”

그런데 하늘로 쏘아진 마나 신호탄이 폭죽처럼 터지지 않고 그대로 땅을 향해 고꾸라졌다.

그들은 몰랐지만 섬 주변에서 발생한 마나 폭풍에 의해 마나석이 발동하지 않아 신호탄도 터지지 않은 것이었다.

“젠장! 그럼 어떻게 오크 전사들을 쓰러트리라는 거야?!”

“도망도 못 치고…… 우리 실력으론 어렵다고!”

아처 헌터가 불만을 털어놓자 딜러 헌터도 무서움과 절망이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오크 전사들에, 도움도 받지 못할 상황이 되자 그들은 죽음을 직감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일러!”

“뭐?!”

“내가 놈들의 시선을 끄는 미끼가 될 테니 한 놈씩 천천히 죽여. 그리고 아처! 서포트를 부탁해.”

“으음…….”

방금 전까지 그들은 A급 헌터 시험에 필요한 증표를 노리고 싸우던 적이었다. 4명 모두 친분이 없어 서로의 전투 스타일도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김건이 먼저 나서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씨발, 좋아! 어떻게든 살아남자고!”

“혼자 너무 무리하지 마! 8마리를 혼자 맡는 것은 위험하니 우리도 서포트하지.”

죽음을 코앞의 둔 그들은 살기 위해 힘을 뭉치기로 결심했다. 딜러들은 곧바로 김건과 함께 디펜더 역할을 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이들이 오크 전사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아처가 뒤에서 기회를 노렸다.

‘이대로면 승산이 있어!’

한 번씩 날리는 화살로 빈틈을 파고들어야 하는 탓에 시간은 걸렸지만, 그들은 차근차근 오크 전사들을 쓰러뜨렸다. 어느덧 그들은 불안감과 공포는 지우고,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불태웠다.

‘강현 님의 훈련이 천운이었어!’

김건은 타워 실드로 눈앞의 오크 전사를 상대하며 주위를 판단했다.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김건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만약 그때 그가 제안한 피어스 방패술을 중간에 포기했다면 지금의 김건은 없었을 것이었다.

‘이 녀석…… 디펜더 맞아?’

옆에서 김건을 서포트하던 딜러는 그의 전투 스타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통 디펜더는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어 파티원들을 보호하고 딜러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존재기에, 솔플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패로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한다고?’

자유자재로 타워 방패를 휘두르며 공격과 방어를 펼치는 김건의 피어스 방패술은 딜러에게 신세계였다.

피잉! 피이잉!

그 와중에도 후방에서 아처가 화살을 쏘아 오크 전사들을 견제했지만, 여전히 오크 전사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앗, 위험해요!”

그때, 아처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의 견제에서 벗어난 오크 전사 한 마리가 김건을 향해 달려들었는데, 그는 이미 두 마리의 오크 전사를 붙잡고 있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등을 내어주고, 바로 목을 친다!’

김건은 그를 향해 달려오는 오크 전사에게 등을 돌린 채, 타워 실드로 상대하고 있던 두 마리의 무기를 쳐내고 가슴을 베었다.

그런데 등에서 느껴져야 할 고통이 찾아오지 않았다. 의아해진 김건이 슬쩍 시선을 돌리니 달려오던 오크 전사가 녹슨 도끼를 머리 위로 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뭐, 뭐지?”

이윽고 꼼짝 없이 멈춰 있던 오크 전사는 몸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지며 땅을 피로 흥건하게 적셨다.

“오랜만이야.”

“가, 강현 님!”

“빠른 재회지만…… 그사이 또 성장했어.”

갈라진 오크 전사의 뒤로 미소를 띤 김강현이 서 있었다.

“우선 이 돼지들부터 처리하자.”

“넵!”

[김건이 파티에 합류합니다.]

말을 하자마자 김강현의 눈앞에 지난번과 똑같은 반투명 설명창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구조대? 아니면 헌터?”

“그래도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 건 확실해!”

김강현의 등장에 세 명의 헌터는 반가워하며 각자 쥔 무기를 더욱 세게 쥐었다. 주변을 둘러본 김강현은 계속해서 게이트가 생성되어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것을 파악했다.

‘지금은 피해야 한다!’

몬스터를 토해낸 게이트는 이미 닫혔지만, 계속해서 게이트가 만들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놈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지형이 평탄하고 장애물이 없는 이곳은 싸움에 지친 헌터들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몸을 숙여!”

“뭐, 뭐?”

“네!”

갑작스러운 김강현의 외침에 세 명의 헌터는 어물쩍거리다가 급히 상체를 숙였고, 김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따랐다.

그리고 김강현은 마나 소드가 맺힌 마검을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취이이이익!”

“도, 도망! 취~!”

“오, 오크 살려…… 꺽!”

날카로운 마나 소드가 오크 전사들을 향해 쏘아지며 빠른 속도로 그들의 몸을 베고는 점점 그 크기를 넓혀 나갔다.

게이트에서 나오던 오크 전사들은 이 모습을 보고 다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그들의 발걸음 속도보다 마나 소드가 날아오는 속도가 빨라 단숨에 그들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후우…….”

이한결과의 싸움에서 무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량의 마나가 일시에 소모되자 살짝 피로가 느껴졌다.

“지, 지금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 맞지?”

“오크 전사들이 저렇게 약했어?”

“시, 신기루?!”

김강현의 무위를 알지 못하는 세 명의 헌터들은 한 번의 공격으로 눈 앞의 오크 전사들이 죽어버리자 눈을 비비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반면 어렴풋이 김강현의 무위를 눈치채고 있던 김건은 감탄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오크 전사는 B급 몬스터로, 일반적인 B급 헌터가 상대했을 때 한두 마리 정도는 시간이 걸리지만 충분히 상대 가능했다. 하지만 세 마리부터는 많은 시간이 걸릴뿐더러 상대하기까다로웠다.

그런데 이 오크 전사들을 일격으로 모조리 몰살시키자 눈앞의 김강현이 달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이 자리를 벗어나자. 계속 게이트가 열려 몬스터들이 나타날 거다!”

“네!”

김건을 포함한 세 명의 헌터는 빠릿하게 대답하며 얼른 김강현의 뒤를 따랐다.

* * *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더 이상 몬스터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죽는 줄만 알았던 상황에서 받은 도움에, 헌터들은 각자 감사 인사하기 바빴다.

“강현 님에게 다시 한번 도움을 받았습니다.”

김건은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김강현을 보았다.

“지금 시간이 없다. 서둘러 흩어진 헌터들을 모아야 해.”

“네?”

“지금 나타나는 몬스터들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까?”

헌터들의 얼굴을 보니 아직 현재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아, 김강현은 자신의 예측을 조심스럽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섬은…… 던전이 되었습니다.”

“허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지금 섬 주변에 마력과 마나의 충돌로 게이트들이 만들지면서 마나 폭풍이 형성되어 있어요. 이 때문에 외부와 통신이 되지 않고 들어오는 것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헌터협회에서 나눠준 진 마나 신호탄도 마나 폭풍의 영향으로 터지지 않을 것이고요.”

“아…….”

“그래서…….”

헌터들은 그제야 아까 사용했던 마나 신호탄이 왜 발동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섬의 중앙에서 강한 몬스터가 감지됩니다. 아마 지금 마나 폭풍을 발생시킨 핵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며, 이놈부터 없애지 않는다면 마나 폭풍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군요.”

그것이 김강현이 섬의 중심으로 가려는 이유였다.

‘설마 마력의 핵이 몬스터의 몸에 집약될 줄이야.’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느낀 것이라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거대한 마력 덩어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마력은 타인의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하며 성장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마력 덩어리는 섬에 나타난 몬스터들 중 가장 강한 몬스터의 몸에 들어가서 점점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진짜 여기서 죽는 건 아니겠지?”

“시험 치르러 왔다가 이게 무슨 난리야!”

정확한 사정을 알게 된 세 명의 헌터는 전전긍긍하며 어두운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B급 헌터 시험은 서울에서 가상 몬스터 구현 프로그램이나 대련을 통해 진행되었는데, 이번부터 실전 전투로 변경되었다. 가상 프로그램을 통해 진급 시험을 치르다 보니 정작 현장에서 싸울 때 A급 헌터로서의 자질과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긴 설마 이런 사건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현 님. 혹시 생각하고 계신 방법이 있는지요.”

지금껏 조용히 듣고 있던 김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헌터들의 시선이 김강현에게 집중됐다.

“방법은 단 하나.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그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마세요. 혼자서 싸우는 것보단 강현 님과 함께 싸우는 게 살 가능성이 높아 선택한 것입니다.”

능청스럽게 이야기했지만, 눈빛과 표정에는 김강현이 반드시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말에 세 명의 헌터들의 눈빛이 빛났다.

‘맞아. 저 헌터는 우리들보다 강해!’

‘우리들끼리 싸우는 것보다…….’

‘저 헌터와 같이 움직이는 게 훨씬 살 가능성이 높다!’

빠르게 계산을 마친 세 명의 헌터들도 자존심을 버리고 부탁했다.

“저,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저두요!”

“같이 가게 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크 전사 8마리를 단숨에 쓰러트릴 무위라면…… 최소 A급 헌터!’

김강현의 뒤만 졸졸 따라다닐 수 있다면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알겠습니다.”

[손명운 님, 단유 님, 이강문 님이 김강현 님의 파티에 합류합니다.]

허락이 떨어지자 김건 때와 마찬가지로 시스템 반투명창이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럼 함께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김강현은 그들과 함께 움직이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님이 김강현 님의 파티에 합류합니다.]

[……님이 김강현 님의 파티에 합류합니다.]

‘이걸로 끝인가?’

쉬지 않고 섬을 돌아다닌 김강현은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는 헌터들을 구한 뒤, 현재 상황을 설명해 자신의 파티에 합류시켰다.

처음 헌터들은 김강현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의 무위와 더불어 계속해서 게이트를 통해 몬스터가 나타나자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의 말대로 따르기 시작했다.

‘그 다섯 명은 알아서 살아남겠지?’

헌터들을 구하던 도중 문득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가 떠올랐다. 그들은 김강현에 의해 폐인이나 다름없어 몬스터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 녀석들을 굳이 구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데리고 온다 해도 어차피 움직이지 못하니 거추장스러운 짐만 될 것이었다.

‘총 34명이라…….’

총 50명의 헌터들이 이 섬에 들어왔다. 이 중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를 제외하면 자신을 포함해 45명의 헌터들이 살아 있어야 했지만, 김강현이 구하기 전 이미 몬스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였다.

“건.”

“네, 강현 님.”

“이들과 함께 섬 중앙으로 이동한다. 다른 헌터들에게도 연락해 모이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김강현의 말이 떨어지자 김건은 연락처가 저장된 몇몇 헌터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섬 밖으로는 통신이 터지지 않았지만, 섬 내부에서의 통신은 가능했다. 헌터폰에 작은 마나석이 박혀 있어 던전 안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기술을 일상에서도 활용하면 문명이 순식간에 발달하겠지만, 마나석 값이 비싸고 일정 시간 사용하면 마나 충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동안 몬스터들과 부딪힌 헌터들이 있나?”

“없습니다. 이게 다 몬스터 탐지석 덕분입니다!”

김건은 마법진이 각인된 마나석을 들며 씩 웃었다.

본래 마나석은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려야 얻을 수 있는 희귀한 물건이었다. 그렇지만 운이 좋게도 이곳에 나타난 몇몇 몬스터들을 쓰러트리자 C급의 마나석이 발견되었다.

‘그 많은 헌터들을 이끌고 다녔다면…… 으으으.’

잘못하면 한 번에 모두가 표적이 되기 쉬운 상황이었는데, 마나석에 탐지 마법진을 각인시켜 몬스터가 접근하고 있음을 미리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김강현은 은신처에 숨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덜고 다른 이들을 찾으러 돌아다닐 수 있었다.

“강현 님, 오셨습니까?”

“몬스터들의 침입은 없었습니까?”

“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은신처에 도착하자 손명운이 마중을 나왔다.

은신처는 수풀에 가려진 동굴로, 안에 들어가자 넓은 공간에 그동안 김강현과 김건이 구한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이제 앞으로 어떡해야 하는 거야?!”

“이 미친 협회 놈들! 무슨 이딴 곳에서 시험을 본다고?”

“그놈을 한번 믿어볼까?”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걸 혼자 해결한다는 건 말이 안 돼.”

안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적은 숫자의 헌터들이 모였을 때는 손명운, 단유, 이강문에 의해 쉽게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려야 한다고 설득되었다.

하지만 점점 헌터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동굴에선 손명운 일행이 말한 대로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입장, 곧 헌터협회에서 자신들을 구하러 올 테니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입장, 이 두 주장에 휘말리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입장 등이 뒤섞여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죄송합니다, 강현 님.”

“아니에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니 잘못이라고 할 수 없죠.”

단유와 이강문은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해 고개를 숙였지만, 김강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헌터들의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크게 숨을 내쉰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자식들아, 모두 그 입 다물어!”

인피니티 마나가 실린 작은 목소리가 동굴 안에 있는 헌터들의 귀에 꽂혔다. 김강현의 전신에서 마나가 뿜어져 동굴 안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저 새낀…… 뭐야?!”

“방금 우리한테 한 말이냐?”

동굴이 어두워 김강현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아 몇몇 성질 급한 헌터들은 시비를 거는 줄 알고 화를 드러냈다.

“그래. 언제까지…… 한심하게 입으로만 떠들 거냐?”

“이 새끼가!”

화를 참지 못한 한 딜러가 김강현에게 검을 휘둘렀다. 서로의 거리가 2m에 불과했고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어? 어?!”

하지만 김강현에게 그런 공격이 통할 리 만무했다. 곧 몸이 뒤집힌 딜러가 정신없이 소리를 내질렀다.

“바, 방금 봤어?”

“그래.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반격했어.”

만약 자신들이었다면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까?

헌터들은 만약을 상상했지만 누구도 김강현과 같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김강현은 그 갑작스러운 공격에 반응한 것뿐만 아니라, 공격한 헌터의 품속으로 들어가 검을 잡은 오른팔을 쳐내고 멱살을 잡아 땅에 패대기쳤다.

‘저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우리 모두를 구해낼 수 있었겠지.’

다른 헌터들은 김강현의 무위를 보고 잊고 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김강현은 살기와 함께 서늘한 눈빛으로 누워 있는 헌터를 보며 말했다.

“위험에 빠진 녀석을 구해놓았더니 이빨을 들이대? 진짜 죽고 싶냐?”

“으으으……!”

“다음엔 이렇게 순순히 끝나지 않아. 경고는 한 번이야!”

“아, 알겠습니다!”

김강현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물론 목적이 있어 이들을 몬스터들에게 구해냈긴 했지만 이들에게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한 공격을 받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덤벼든 헌터는 방금 전 공방으로 충분히 실력의 차이와 살기를 느꼈기에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더불어 그들과 옥신각신거리며 말싸움을 하던 헌터들도 분위기를 읽고 입을 다물었다.

이 일로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김강현은 모인 헌터들을 모여 입을 열었다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김강현으로, 너희들을 이곳에 모이게 한 사람이다.”

평소 김강현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할 때 공손한 존댓말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은 이들을 자극하기 위해 하대했다.

“왜 여기에 모이라고 한 거지?”

헌터들은 조심스럽게 김강현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 모인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김강현은 모든 헌터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섬이 마나 폭풍에 의해 갇혔다는 것과 던전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함께 이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섬의 중앙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사실까지 들은 헌터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었다.

* * *

“이게 정말일까?”

“웃기지 마! 현실 속에 던전이라고?!”

“맞아! 어쩌다가 게이트 밖으로 나오는 몬스터들이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 헌터협회에서 우리들을 구하러 올 거야!”

몇몇 헌터들은 이 섬에 나타난 게이트들은 종종 불가사의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외부에서 헌터들이 지원을 올 거라 생각했다.

물론 갑작스럽게 마나 폭풍이 생겼지만 이 또한 그들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여기에는 B급 헌터들밖에 없지만, 밖에는 A급 헌터들을 비롯한 헌터들과 다양한 아티팩트들이 존재했다.

몇몇 헌터들은 신중하게 김강현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을 하는 반면, 거의 대부분의 헌터들은 반발하며 현재 상황을 믿기 어려워했다.

“후우…….”

‘이들을 이끌고 가는 것이 맞는 걸까?’

문득 김강현은 화를 내는 헌터들을 보며 자신이 짠 판을 뒤집는 것을 고려했다.

이들과는 남이나 다름없기에 챙겨야 할 이유 따윈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인 헌터들을 생각한 그는 동굴의 입구를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믿고 안 믿고는 스스로의 판단에 맡긴다. 거짓이라고 생각되면 밖으로 나가!”

“…….”

“…….”

아이러니하게도 밖으로 나가는 헌터들은 한 명도 없었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몬스터들과 싸워야 해!’

‘좀 더 말을 들어볼까?’

지금 밖은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로 가득했다.

밖에 돌아다니는 몬스터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니 쉽사리 떠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이곳이 안전지대라는 생각이 들자 굳이 이곳을 버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기 전에는 마나 폭풍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외부의 도움은 없다!”

“…….”

“지금 마나 폭풍을 유지하는 핵이 보스 몬스터이기 때문에, 이놈을 죽여야 이 섬을 탈출할 수 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

하지만 30여 명의 헌터들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보스 몬스터가 만만치 않을 텐데…….’

‘어쩌면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어. 젠장!’

‘이대로 몬스터들을 피해 협회의 구조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으으…… 모르겠다!’

진퇴양난이었다. 김강현의 말처럼 폭풍의 핵이 보스 몬스터에게 있다면, 얼마나 강할지 모를 그놈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반면 김강현의 말이 거짓이라도 그들로서는 협회의 구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답이 없었다.

밖과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니 얼마나 오랜 기간이 필요한지 예상할 수 없었다.

‘강현 님이 거짓을 말할 리 없어.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밖에 없어!’

방황하는 많은 헌터들 가운데 김건은 확신을 가지고 판단했다.

‘나중에 협회에서 구조가 올 거라면 헌터들을 모아 힘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움직이는 게 훨씬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그렇지 않다는 건!’

계속해서 헌터들의 침묵이 이어지자 다시 김강현이 입을 열었다.

“결정을 못 내리는 건가? 이렇게 생각만 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평생 A급 헌터는 되지 못한 채 B급 헌터로 끝이 날 거다!”

“뭐야?!”

“지금 강하다고 우릴 무시하는 거냐!”

“우리가 힘을 합치면…… 너 따윈 쓰러트릴 수 있다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발언에 헌터들은 화가 순간 머리끝까지 치솟았고, 당장에라도 싸울 의지가 충만하게 차올랐다.

“그래? 자신만만하면 얼마든지 덤벼.”

쾅! 우르르릉!

그 말에 김강현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땅 바닥에 발을 굴렀다. 동굴이 흔들리며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 땅울림이 울려 펴졌다.

“얼마든지 상대해 주지.”

한 발ᄍᆞᆨ이라도 움직이면 마검을 휘두를 것 같은 살기와 가세에, 헌터들은 식은땀이 흘리면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자꾸 날 도발하려고 하지 말고, 이용하려고 하지 마라. 더 이상은 참지 않는다!”

김강현은 진심으로 헌터들을 죽일 생각으로 말했다. 그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안 헌터들은 기세를 숙이고 들어갔다.

“질문 하나 하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김강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A급 헌터와 B급 헌터의 차이를 뭐라고 생각하지?”

“당연히…… 강함이다!”

“강해지기만 하면 A급 헌터가 될 수 있어!”

“……무력으로 A급 헌터와 동등한 헌터가 있다. 그런데 인형처럼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헌터라면 A급 헌터라고 인정할 수 있나?”

“……!”

“지금 너희들의 이야기라면…… 개나 소나 강해지면 A급, S급 헌터가 된다는 말이다.”

“그럼 네놈이 생각하는 A급 헌터와 B급 헌터의 차이가 뭐냐?!”

극단적인 예시와 함께 자신들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김강현의 말에 한 헌터가 소리쳤다.

“책임이다.”

“……?!”

“A급 헌터부터는 협회로부터 공식 명령이 떨어지면 들어오면 다른 헌터들을 통솔할 책임이 생긴다. 얼마 전 아크 스파이더 퀸 레이드에서도 B급 헌터들은 A급 헌터의 통솔 아래 레이드에 참여했지.”

“…….”

실제로 이곳에 모인 헌터들의 절반 이상이 아크 스파이더 퀸 레이드에 참여하여 A급 헌터의 지휘 아래 싸웠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미지의 적이 나타났을 때, 자신보다 강한 적이 나타났을 때, 너희들은 A급 헌터로서 앞장서서 싸울 수 있나?”

“물론이다!”

“그럼…… 왜 지금은 나서서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자고 말하지 않지? A급 헌터가 아니기 때문에?”

“…….”

어느 헌터가 김강현의 질문에 호기롭게 대답했지만, 다음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서지 못한다는 건 변명이야.’

‘그건…….’

날카로운 김강현의 질문에 그들은 그동안 꽁꽁 감추어놓은 자신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강한 몬스터와 싸우다가 죽는 것이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었다.

“이 A급 헌터 시험의 의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라. 50명의 헌터들을 한 섬에 가둬 각자 싸우게 만든 후 10개의 증표를 얻은 헌터만 A급 헌터가 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냐?”

“…….”

“만일 강한 헌터가 있더라도 다른 헌터들의 표적이 되어 행동 불능이 될 게 분명하니 온전히 10개의 증표를 모으기 어려울 거다. 그럼 헌터들끼리 미치도록 싸워 10개의 증표를 모아야 할까?”

사실 자신이라면 혼자 10개의 증표를 모으는 것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생각하지만, 헌터 시험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었다.

“10개의 증표를 다른 헌터들에게 뺏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받아 얻는 거지. A급 헌터는 강함은 기본이고, 동료들과 함께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나설 수 있는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다!”

“……!”

그 순간 이 자리에 모인 헌터들은 A급 헌터가 가지고 있는 이름의 무게와 책임감을 느꼈다.

만약 A급 헌터가 되어 B급 헌터들을 이끌고 적과 싸울 때마다 매번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면 전투에서 그들이 자신을 믿고 싸울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할 뿐 아니라 함께 싸우는 것도 꺼릴 것이었다.

“이건 내가 내린 결론이기에 너희들에게 이것이 맞다고 강요할 수 없다.”

“…….”

“결정은 스스로의 몫이다. 만약 내 말이 진실이라 생각하면 나를 따라 섬 중앙으로 와라. 그렇지 않은 자들은 이곳에서 헌터협회의 구조를 기다리도록!”

말을 마친 김강현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동굴 밖으로 나갔고, 김건은 망설임 없이 김강현을 따라나섰다.

“…….”

“…….”

그리고 남은 헌터들은 깊은 고민에 빠져 동굴 안에 침묵만이 감돌았다.

“뭘 고민하는 거야? 이미 답은 나왔잖아!”

“……?!”

“A급 헌터가 될 수 없다고?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다면 헌터 자격증을 버리는 게 맞지!”

어느 헌터가 다른 헌터들이 들리도록 크게 소리쳤다.

그는 김강현의 말에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와 함께 오기가 생겼다. 자신은 이대로 B급 헌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A급 헌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맞아. 숨어서 외부의 구조를 기다릴 바에야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려 섬을 탈출하는 게 폼 나지!”

“게다가 그놈은 C급 헌터야. B급 헌터가 C급 헌터에게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놈이 얼마나 강한지…… 직접 옆에서 보겠어.”

한 명의 헌터가 목소리에 힘을 내자 그 뒤를 이어 다른 헌터들이 힘차게 소리치며 열의가 불타올랐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어?’

손명운, 단유, 이강문은 김강현이 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 여겼다. 자칫 잘못하면 이들을 적으로 돌려 싸워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헌터들의 마음을 돌리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자 김강현이라는 헌터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할 뿐이었다.

* * *

‘나도 많이 변했군.’

섬 중앙으로 이동하던 김강현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옛날을 떠올렸다.

‘만약 라셀이었다면…….’

헌터들을 보스 몬스터를 죽이기 위한 미끼로 사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두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문화의 영향이 컸다.

테라에서는 사람이 죽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 귀족의 사리사욕에 의해 아무런 죄도 없는 수십 명의 영지민들이 죽기도 했고, 귀족들이 일으킨 영지전에 휘말린 수백 명이 죽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곳이 테라였다.

하지만 지구는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 사회로, 살인은 범죄의 정점이라 할 수 있었다.

‘사람을 죽여도 모든 것을 무마할 수 있는 힘이 있었지.’

테라의 제국과 왕국에서도 지켜야 할 법이 있었지만, 라셀은 그 법조차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력으로 헬릭스와 함께 모든 상황을 종결시켰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해.”

라셀은 자신의 힘을 너무 과신했고, 그 대가로 파벨리온에게 배신을 당했다. 죽음을 계기로 김강현은 라셀을 본보기 삼아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했다.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함께 어울려야 해.”

테라에서 3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혼자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쉽지 않았지만 유지운, 검천호, 연철무, 연세연 등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혼자의 힘은 한계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면 그 한계는 없어질 테니까.”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만약 라셀이 사람들을 끌어모았다면 미래가 바뀌었을 터였다.

그 증거가 바로 자신이었다. 만약 혼자의 힘으로 옛날의 힘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의 절반밖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검천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강현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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