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장. 이한결과의 악연 (24/119)

5장. 이한결과의 악연

“이곳은…… 너를 죽이기 위해 마련했다.”

“나를?”

“그래. A급 헌터들도 동행했지.”

이한결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네 명의 헌터들이 얼굴을 뒤엎고 있던 인피면구를 찢었다.

“A급 헌터들이 어떻게 여길?”

“흐흐흐, 돈이면 안 될 것이 없어! 시험을 관리 감독하는 헌터협회 직원들을 돈으로 매수해 B급 헌터로 신분을 위장하고, 비밀리에 아티팩트를 가져왔다.”

“…….”

“검천호의 눈을 피해 아무런 방해 없이 죽일 수 있는 기회다. 이를 놓칠 수 없지. 흐흐흐.”

이한결을 제외한 네 명의 헌터들이 품속에서 무기와 함께 무언가를 꺼내 삼켰다.

“응?”

헌터 네 명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일렁거리더니 그들을 중심으로 2㎞가량 빛이 흩뿌려졌다.

“이건 뭐지?”

“아티팩트 결계다. 흐흐흐, 이로써 외부 마나와 차단되어 소환수를 소환할 수 없을 거다!”

“허?! 결계 따위에?”

허무맹랑한 이한결의 말에 김강현은 어이없어하며 헬릭스를 소환하려고 했다.

‘진짜…… 위험하다!’

그러나 인피니티 마나를 끌어올리는 순간, 등에 소름이 끼쳤다. 네 명의 헌터들이 친 결계가 일반적인 결계와는 달랐다.

‘단순히 마나를 차단하는 결계나 마법진이라면 부숴 버림 되지만…… 마나의 흐름을 완전히 꼬아놓았어.’

“흐흐흐, 내가 가장 경계한 것이 네놈의 소환수다! 그 무지막지한 소환수만 차단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지.”

핼릭스를 소환하지 못하는 김강현을 보며 이한결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소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주변 마나의 흐름이 중요했다. 만약 주변 마나의 흐름이 불안전하면 소환 과정에서 소환수가 차원의 틈에 빠지거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네 명의 헌터가 4중 결계를 쳤다. 뚫을 수 있다면 뚫어보아라!”

‘미친! 설마 아까 먹은 것이?!’

아티팩트로 결계를 쳤다는 이한결의 말에 김강현은 아까 네 명의 헌터가 아티팩트를 삼켰음을 눈치챘다.

만약 외부에 아티팩트가 있다면 싸우다 부서질 가능성이 있으니 이를 삼켜 버린 것이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이야.”

“뭐?”

말과 함께 이한결과 네 명의 헌터들은 약 하나를 삼켰다. 이와 동시에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마나가 증폭되어 뿜어졌다.

“말했지? 네놈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이곳을 네놈의 묏자리로 만들어주마!”

그들은 2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마나를 증폭시켜 주는 비약을 섭취했다.

당연히 후유증도 존재했는데, 한 달 동안 마나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네 명의 헌터들은 이 일이 성공한다면 이우경에게 소정의 대가를 받기로 약속했고, 기꺼이 비약을 먹는 것에 동의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겠구나.’

김강현은 굳은 표정으로 마검을 적들에게 겨누며 인피니티 마나로 육체 강화를 시전하고, 마나 소드를 만들었다.

그 모습에 이한결을 비롯한 네 명의 헌터들도 싸울 자세를 취했다.

* * *

지진으로 인해 지하에 위치한 신전이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아직 도망가지 못한 수십 명의 사제들이 모여 있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을 어찌 두고…….”

그들은 다급히 아름다운 금발의 소녀를 향해 소리쳤고,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그들을 보고 있었다.

“성녀님…… 부디 저희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하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이것이 대륙을 구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니까요.”

“저희들의 목숨으로 대륙을 구할 수 있다면…… 목숨 따윈 아깝지 않습니다.”

늙은 대사제를 시작으로 수십 명의 사제들이 다시 소리쳤다.

성녀의 눈앞에는 수십 명 사제들의 생명력으로 만들어진 신성 마법진이 있었다. 신성 마법진이 발동되는 순간 그들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었다.

“미, 미안합니다. 여러분…… 죄송해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신성 마법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의를 위한 그들의 희생을 알기에, 그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죄책감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사제들은 이러한 그녀의 마음을 읽고 오히려 밝게 웃었다.

“시,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이곳을 향해 놈이 오고 있습니다.”

밖에서 남성 사제가 다급히 소리치며 지하 신전으로 들어오자, 사제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향하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제가 자애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성녀님. 준비는 되셨습니까?”

“네. 그런데 정말 그분이 살아 계실까요?”

“물론입니다. 그분은 다른 차원에서 살아 계시니 도움을 청하라고…… 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사제님…….”

“그분이 이곳에서 사용하시던 물건이 차원과 차원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되어 차원 이동이 될 것입니다. 차원을 이동할 때 강력한 마나의 압력이 가해지니 반드시 정신을 잃지 않고 몸을 보호하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성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사제의 말을 명심했다.

그들은 이 차원 이동을 위한 신성 마법진을 구현하기 위해 수십 년의 시간을 투자했고, 간신히 한 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 기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디 차원 이동이 성공하기를…… 신께 기도하겠습니다.”

대사제의 말이 끝나자 신성 마법진에서 솟구친 새하얀 빛이 지하 신전을 덮쳤다.

잠시 후 빛과 함께 신성 마법진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있던 성녀도 사라져 있었다.

‘성녀님께 너무 큰 짐을 맡긴 채 이 늙은이 먼저 갑니다. 부디 뜻한 바를 이루시길…….’

이 모습을 지켜보던 대사제는 정신을 잃기 전, 흔적을 없애기 위해 신전 바닥에 있던 폭탄을 발동시켰다.

콰르르르릉!

폭탄이 발동하자마자 붉은 불꽃과 함께 땅이 무너지며 신전이 지하 깊숙한 곳으로 묻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사제도, 성녀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하필이면 차원 너머 그 시간, 물건의 주인이 있는 곳의 마나의 흐름이 심하게 꼬여 있다는 것을.

* * *

먼저 행동을 시작한 네 명의 헌터들은 김강현을 둘러싼 채 검을 들고 있었다.

김강현은 그들의 상태창을 살폈다.

비천 추살조 1호, 2호, 3호, 4호(A급 워리어 헌터, 비천 길드)

체력: A+ 마나: A 근력: B-

민첩: A 지능: B 정신력: A-

일루전 소드(A)-환영의 검을 만들어 적의 감각을 속이는 스킬로써, 일정한 양의 마나가 담겨 있다. 이 환영의 검은 일정한 충격이 가해지면 사라진다.

비천 추살진(B)-네 명의 비천 추살조가 적을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 만든 합격진이다. 적이 자신들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끊임없이 움직여 적의 시야를 현혹한 뒤 일격필살을 노린다.

네 명의 헌터들은 기이하게도 똑같은 능력치와 스킬을 익히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A급 헌터로써는 상위권인 능력치라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김강현의 눈앞으로 수십 자루의 일루전 소드들이 펼쳐졌다.

김강현은 일루전 소드들 사이에 숨어 있는 네 자루의 검을 찾기 위해 감각을 집중했으나, 스킬의 설명대로 각각 일정한 마나가 담겨 있어 실체를 찾기 어려웠다.

‘마나 결계가 방해하고 있어!’

만약 평상시였다면 일루전 소드의 실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비천 추살조에 의해 펼쳐진 결계로 마나의 흐름이 일그러져 미세한 마나는 감지하기가 어려웠다.

“죽어랏!”

비천 추살조 4호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일루전 소드의 공격이 날아들어 왔다.

김강현은 무작정 마검을 휘두르며 진짜 검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 중에 진짜 검은 없었다.

“크윽…….”

“눈앞의 것만 노리다간 네 목이 날아간다. 크크큭.”

일루전 소드들 사이에서 이한결의 검이 김강현의 목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다행히 김강현이 인기척을 느끼고 피해 검은 어깨를 베고 지나갔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한결은 비천 추살진에 포함되어 같이 움직이다가 김강현이 마검을 휘두르고 난 뒤 빈틈이 생기자 이를 노리고 공격한 후, 다시 추살진에 스며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순순히 목을 내놓아라!”

이렇게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는 김강현의 모든 감각을 현혹시키며 움직였다.

‘감각을 엉망으로 만들 줄이야!’

단순히 헬릭스의 소환을 방해하는 줄 알았던 마나 결계로 인해 마나 감지가 어려워지고 감각도 무뎌지자, 생각보다 많은 것이 불편해졌다.

김강현은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으나, 그들은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완벽한 호흡으로 김강현을 쫓아다녔다.

“그렇게 도망 다녀봤자 소용없다.”

“그동안 우리 손에서 벗어난 녀석들은 없었어, 흐흐흐.”

김강현은 마검으로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의 공격을 쳐냈지만, 그중 이한결의 검을 파악하지 못해 왼팔에 상처를 입었다.

“크읏!”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내가 알지 못할 뿐이야.’

김강현은 이들이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라도 없애기 위해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댔다.

점점 전신에 작은 상처들이 많아지고 호흡은 거칠어져 갔다.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의 공격은 거세졌다.

하지만 김강현은 머리는 차갑게 식히며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가 펼치는 비천 추살진을 살폈다.

빠각!

그 순간, 비천 추살조 2명이 나무를 박살 내며 김강현의 등 뒤를 노려왔다. 김강현은 인피니티 마나로 등을 보호하며 그들의 공격을 튕겨냈다.

“거기에만 집중하면 안 되지.”

“죽어랏!”

뒤이어 바로 정면과 좌우 양쪽에서 공격이 동시에 이어졌는데, 수십 개의 검날이 피할 곳 없이 하늘에 펼쳐졌다.

이를 막기 위해 김강현은 인피니티 마나를 담은 마검을 크게 휘둘렀다.

“헛? 페이크?!”

“눈치가 늦군!”

그런데 검이 사라지자 비천 추살조 3호만이 있을 뿐, 이한결과 4호는 보이지 않았다.

김강현은 공중에서 2명의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드니.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두 자루의 검이 있었다.

“젠장!”

바로 마검으로 막기에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 땅바닥을 굴러 공격을 피했지만 흙투성이가 되었다.

한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김강현은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

“그만 포기하는 게 어떠냐?”

“더 이상은 시간 낭비라고. 크크크.”

“지금 항복하면…… 고통 없이 죽게 해줄게.”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는 천천히 김강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들의미소에는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가득했다.

* * *

‘얼마 남지 않았어. 드디어 이놈을 죽인다!’

특히, 이한결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굉장히 기뻐하고 있었다.

비천 길드장인 이우경을 등에 업은 그는 길드 내에서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의 말 한마디면 길드원들이 자신의 발밑에 납작 엎드려 기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하며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가졌다.

하지만 단 하나, 가질 수 없던 것이 연세연과의 친분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김강현이 그것을 가져 버리자 지난 수모의 복수와 더불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이렇게 자존심을 버린 이한결은 이우경을 통해 비천 추살조에게 수련을 부탁했다.

비천 추살조는 처음엔 이한결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수련을 도와주던 그들은 이한결에게 진심으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호기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물론, 이 과정에는 비천 추살조에게 돌아간 혜택들도 한몫했다.

‘그리고 세연을 독차지하는 거야!’

마지막에 김강현의 목숨을 끊는 것은 자신이 하는 것으로 비천 추살조와 이야기를 마친 상황이었다.

온갖 고문을 통해 김강현이 죽여달라 소리치도록 만들 생각에 저절로 입꼬리가 귀에 걸린 이한결은 김강현에게 걸어갔다.

‘우선 네 명의 비천 추살조가 번갈아 일루전 소드를 펼치고 있고, 이한결은 카운터 공격과 비천 추살조들이 움직이면서 빈 공간을 채우는 역할…….’

그렇지만 김강현은 그들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분석을 하고 있었다.

우선 비천 추살조는 오랜 시간 합을 맞추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이한결이 비천 추살조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어려워 반 박자 정도 느리긴 했지만, 다른 헌터들이 보기에는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덕분에 김강현은 이들의 약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짧은 시간에…… 이런 결과를 이루어낼 줄이야!’

김강현은 급속도로 빠른 이한결의 성장에 의문을 가지고 그의 상태창을 살폈다.

이한결(B급 워리어 헌터, 비천 길드)

체력: B 마나: B- 근력: B

민첩: B- 지능: C+ 정신력: A

윈드 윙(B)-바람 날개를 만들어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강화시키면 칼처럼 날카롭게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비천 추살진(B)-네 명의 비천 추살조에 의해 적을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합격진이다. 적이 자신들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끊임없이 움직여 시야를 현혹한 뒤 일격필살을 노린다.

리벤지(A)-복수를 위해 자신을 이긴 상대와 다시 싸울 경우 일시적으로 신체의 능력치가 1.5배 향상된다. 복수에 성공한다면 능력치 10%가 영구적으로 향상되지만, 다시 패배할 경우 20%의 능력치가 사라진다.

‘이것 때문에 전과 다르게 강해진 것이었어.’

지난번 헬릭스의 압도적인 무위에 도망친 적이 있어 이한결이 리벤지 스킬을 사용하는 조건은 성립되었다.

덕분에 지금 이한결은 B급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실력만큼은 A급 헌터와 비견될 정도였다.

“윽?”

“젠장…….”

갑자기 비천 추살조가 작게 신음성을 내뱉으며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강현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마나 결계가 흔들렸다.’

마나 감지를 통해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여기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인기척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나 결계가 어떤 충격에 의해 흔들리자, 비천 추살조가 반응하는 행동을 보였다.

‘내 행동을 옭죄기 위한 방법이…… 오히려 자신들의 목숨을 조이는 결과로 바뀔 수 있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를 쓰러트릴 수 있는 약점을 발견한 김강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품속에 손을 넣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거냐?”

“그건?”

“마나 신호탄? 크크크, 이미 네 것은 우리가 손을 써 고장 내버렸는데?”

“그러니 순순히 포기하고 죽어라!”

김강현은 품속에서 꺼낸 것은 무인도에 들어오기 전 헌터협회에서 받은 마나 신호탄이었다.

이를 본 그들은 김강현이 마나 신호탄을 쏘아 올려 위험을 알리려 한다고 생각했다.

“아,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했네. 그런데 어쩌지?”

“뭐?”

“미리 마나 신호탄을 고장 내 외부와 고립시키려 한 것은 칭찬해 주지. 근데 내가 원하는 것은 마나 신호탄이 아닌…….”

빠직!

“마나석이야!”

김강현은 마나 신호탄을 부셔 그 안에 있는 D급 마나석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마나석이 깨지기 직전까지 인피니티 마나를 강제로 집어넣자 마나의 양이 족히 B급 마나석과 동일해졌다.

그들의 커다란 실수는 마나 신호탄에 들어 있는 D급 마나석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었다.

“강력한 힘이 담긴 마나석과 마나 결계가 부딪치면 어떻게 될까?”

“……서, 설마?!”

“아, 안 돼!”

비천 추살조는 다급하게 소리치며 김강현을 향해 몸을 날렸으나, 이미 김강현의 손에 있던 D급 마나석은 마나 결계를 향해 날아간 뒤였다.

그렇게 마나 결계에 닿은 D급 마나석은 강력한 마나 폭풍을 일으켰다.

“끄, 끄으으윽……!”

“젠장…….”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비천 추살조가 창백한 안색으로 변해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가쁘게 호흡을 내쉬자, 사정을 모르는 이한결은 두리번거리며 상태를 살폈다.

“이제 반격을 시작하지.”

이 순간 마나 폭풍으로 인해 굳건하던 마나 결계의 일부가 깨졌고, 그 충격이 비천 추살조에게 부담되었다.

김강현은 일시적으로 무방비 상태가 된 비천 추살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정도 통증 따위쯤이야…… 으윽……!”

“크으으으. 쿨럭!”

비천 추살조는 입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검을 들었지만, 일그러진 표정을 통해 상황이 좋지 않음이 드러났다.

‘아티팩트를 보호하기 위해 삼킨 것이…… 패착인가?’

1호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훔치며 생각했다.

마나 결계를 펼치는 아티팩트는 내구도가 약해 싸움 중에 부서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몸속이었다.

큰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 아티팩트가 부서지지 않으니 몸속에 보관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김강현이 마나 결계를 공격해 아티팩트에 충격을 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승산은 우리가 더 높아.”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김강현의 몸 상태가 최악이기 때문이었다.

전신에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고, 방금 전까지 피할 힘이 없어 땅바닥을 굴렀다.

게다가 자신들은 5명이나 되니 고작 한 명을 쓰러트리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뭐, 뭐야?’

‘방금 전까지 싸웠던 상대가 맞나?’

단순히 검을 부딪쳤을 뿐인데 힘없던 아까와 달리 공격이 무거웠다. 비천 추살조는 당황하며 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세게 움켜쥐었다.

게다가 싸움 스타일마저 달라져 마치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질 수 있겠어! 크읏……!’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는 위기감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비천 추살진을 펼쳐 김강현을 압박하려 했다.

“인피니티 포스!”

그들의 움직임을 눈치챈 김강현은 마검을 크게 휘둘러 비천 추살진의 움직임을 방해하며 3호를 노리고 인피니티 포스를 펼쳤다.

“놈 주변에 가까이 가지 마라!”

“크읏!”

김강현이 마검을 휘두를 때마다 거센 풍압에 옷이 세게 흔들렸고, 동시에 강한 파동이 휘몰아쳤다.

여기에 닿은 돌멩이나 나뭇가지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산산조각 났다. 이를 본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는 거리를 벌렸다.

“이대로 계속 피할 수 없으니, 공격하는 게 낫지 않냐?”

“아닙니다. 놈은……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것입니다.”

이한결의 의문에 1호가 확신을 가지고 소리쳤다.

“방금 전까지 죽어가던 놈이었고, 부상으로 많은 양의 피를 흘렸습니다!”

“으음…….”

“제 판단을 믿어주십시오. 저건 허세입니다!”

확신에 찬 1호의 말과 눈빛에 이한결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럼 네 말대로 계속 압박하며 일격필살을 노리자!”

“네, 도련님!”

이한결은 가슴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자신보다 경험이 많은 1호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좋아. 이 정도면 평상시와 다름없는 상태야.’

한편, 김강현은 마검을 휘두르며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만약 김강현이 지금까지 비천 추살조가 상대했던 헌터들과 똑같았다면 1호의 판단이 맞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김강현은 다른 헌터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경험과 스킬들이 있었다.

‘하지만 마나 결계에 의해 인피니티 마나가 속박당하고 있어.’

마나 결계가 주변의 마나를 일그러트려 소환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피니티 마나에도 영향을 미쳐 운용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함부로 움직이기보단 시간을 끄는 것이…….’

무리를 한다면 단숨에 마나 결계를 없애 버리고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도 없앨 수 있었으나, 이들이 어떤 수를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들을 상대한 후에는 A급 헌터 시험이 남아 있다.

만약을 위해 힘을 아낄 필요성을 느낀 김강현은 연기를 통해 이들의 속셈을 파악하기로 결심했다.

“어? 어!”

“정신 차리지 못해?!”

“죄, 죄송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놈을 좀 더 압박해!”

‘크, 큰일 날 뻔했다.’

끝날 듯 말 듯한 공방은 계속 이어졌고, 이를 견디지 못한 3호가 균형을 잃고 삐끗했다.

간신히 위기를 넘긴 3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데…… 이 싸움은 언제 끝나는 거지?’

3호뿐 아니라 이한결과 다른 비천 추살조도 동일한 의문을 품었다.

분명 김강현은 지쳐 있고, 심한 상처들을 입었으니 금방 자신들의 승리로 마무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10여 분이 흐르고, 20여 분이 흘렀지만 싸움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문득 이한결의 뇌리에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이한결은 김강현의 움직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김강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몸은 흙먼지와 상처로 엉망진창이었다.

“크읏!”

게다가 비천 추살조의 공격을 피하기 급급했고, 방금 검상이 난 곳에서는 출혈이 쏟아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찝찝한 기분은 뭐란 말이냐?’

이한결은 이상한 생각에 주변을 살폈다.

* * *

이한결은 문득 땅바닥을 보았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흐트러짐 없는 김강현의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이한결은 그동안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서, 설마……!’

전신에 소름이 끼친 이한결은 다시 한번 김강현을 살폈다. 단서 하나를 발견하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그러십니까?”

“물러나. 1호. 이건…… 함정이야!”

“네?!”

“뒤로 물러나서 얼른 몸 상태를 점검해!”

갑작스러운 이한결의 행동에 1호는 비천 추살조에 명령을 내려 잠시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동안 놈에게 우리가 당했어. 오히려 함정에 빠진 게 우리였다.”

“그게 무슨?”

“지금 몸 상태가 정상인 사람이 있나? 체력은 고갈이고, 내상으로 몸이 엉망일 텐데!”

“헉!”

“자, 잠깐!”

이한결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낀 비천 추살조는 뒤늦게 자신들의 몸 상태를 살폈는데,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될 때까지 자신들이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도련님.”

“우리가 놈에게 속고 있었어…… 놈은 지치고 상처 입은 척 연기해 우리들의 체력을 야금야금 고갈시켰고, 은밀히 급소를 노려 내상을 입혔다.”

“이, 이럴 수가…….”

“우리가 오히려 놈에게 놀아났다는 건가?”

“놈은 일정 공간에서 움직이며 체력을 비축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들의 약점을 노리고 비천 추살진을 파훼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이한결의 말대로 비천 추살조의 다리는 힘이 풀려 부들부들 떨렸고, 거친 호흡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겼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공격을 펼치느라 내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김강현의 계략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적 대미지는 배가 되어 멘탈이 격하게 흔들렸다.

화르르륵!

그때, 김강현의 전신에서 붉은색의 인피니티 마나가 일렁거렸다.

“아쉽지만…… 여기까지네!”

이제 자신의 상태를 감출 필요가 없어지자 김강현은 그동안 최소한으로 운용하던 인피니티 마나를 최대로 끌어올려 마나 소드를 만들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이 마나 결계를 완전 무력화할 수 있었는데…….”

“뭣이?”

“그렇지만 충분히 약점을 파악하고 방법을 찾았으니 빨리 끝내자!”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를 향해 김강현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인피니티 마나의 기세가 커지며 마나 결계를 뒤엎기 시작했다.

‘마나 결계를 직접 없애기는 리스크가 너무 커.’

김강현은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를 상대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마나 결계를 없앨 방법을 궁리했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가볍게 힘으로 이 상황을 해결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실력으로는 어려운 일이라, 번거롭지만 아티팩트를 파괴해 마나 결계를 없앨 수밖에 없었다.

‘인피니티 마나로 마나 결계 내부의 영향을 일시적으로 없앤다면?’

가장 큰 문제는 마나 결계로 인해 자유자재로 인피니티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결계 안의 마나 밀도를 인피니티 마나 위주로 높인다면 안에서도 자유롭게 자신이 마나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강현은 마나 결계를 뒤엎을 만큼 인피니티 마나를 모을 시간이 필요했다.

“크으…… 아티팩트가…….”

“갑자기 포, 폭주를!”

그런데 김강현이 예상치 못한 일도 함께 벌어졌다.

비천 추살조의 몸속에 있던 아티팩트들이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피니티 마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놈들에게 내상을 입힌 것이었다.

“노, 놈을 빨리 쓰러트려야 해…….”

“하, 하지만……!”

비천 추살조는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다시 검을 들었지만, 그사이 김강현은 2호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한 명!”

“커어어억!”

콰앙!

2호가 공격을 펼치기 직전, 김강현은 왼 주먹에 인피니티 마나를 실어 상대의 가슴을 향해 날렸다. 정확히는 외부에는 충격을 주지 않고, 몸 내부에 있는 아티팩트의 마나를 노린 공격이었다.

몸속에서 아티팩트가 폭발하며 부서지자 2호는 그 충격으로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커헉!”

“이 자식이!”

3호가 김강현을 향해 검을 위에서 내리치며 달려들자, 김강현은 이를 마검으로 막아낸 뒤 옆으로 이동하는 척하다가 품속으로 파고들어 가슴을 노렸다.

“두 명!”

“쿨럭!”

콰앙!

그동안 쌓인 내상이 심했던 것인지 2호는 아티팩트가 폭발함과 동시에 검은 피를 토해냈다.

“동시에 공격해!”

이를 지켜본 이한결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1호, 4호와 함께 김강현에게 달려들었다. 그 기세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흐아아앗!”

김강현의 기합 소리와 함께 마나 소드가 이한결과 1호, 4호를 향해 뿌려졌다.

‘이건 위험하다!’

“윈드 윙!”

특히, 1호와 4호에게 뿌려진 마나 소드는 깊게 가슴으로 파고들어 아티팩트를 박살 냄과 동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한결은 간신히 검에 스킬을 시전하여 마나 소드를 오른 방향으로 튕겨냈으나, 강한 충격을 받아 가지고 있는 내상이 더 심각해졌다.

“마, 마나 결계가!”

결국 비천 추살조의 몸속에 감춰져 있던 아티팩트들은 모조리 부서졌고, 주변을 뒤엎고 있던 마나 결계 또한 천천히 사라졌다.

한 번 일그러진 마나의 흐름이 바로 원 상태로 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지만, 확실히 마나 운용이 수월해졌음이 느껴졌다

“이, 이럴 수가…….”

이한결이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철저하게 준비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이런 결말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충격이 컸다.

“또 남은 것이 있나?”

김강현은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그는 쓰러져 있는 1호를 지나쳐 이한결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응?”

“아직 방법이 남았지. 이 새꺄!”

1호가 입술을 이빨로 깨물며 고통을 참고 일어나 양손을 김강현의 등을 향해서 뻗었다.

순식간에 손이 등에 밀착했고, 1호의 마나가 김강현의 내부를 향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죽더라도 너만은 죽일 테다!”

‘마나 대결?!’

김강현은 몸 안에 들어온 1호의 마나를 느끼고는, 이를 몰아내기 위해 인피니티 호흡법을 그 자리에서 즉시 운용하기 시작했다.

‘으으으…….’

몸속으로 들어온 낯선 마나는 김강현의 내부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마나를 공격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김강현은 인피니티 마나로 이를 서둘러 막아내며 아득해지는 정신줄을 급히 붙잡았다.

‘이 정도쯤은!’

인피니티 마나는 1호의 마나를 발견하자 먹잇감을 본 듯 거세게 달려들었다. 마력의 흉포하고 잔혹한 성향을 이어받은 붉은색의 마나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낯선 마나를 공격하기 위해 날이 바짝 서 있었다. 오히려 인피니티 마나를 제어하는 데 집중해야 할 정도였다.

‘단숨에 집어삼켜 버린다!’

인피니티 마나는 거센 파도처럼 빠르게 1호의 마나를 흡수하며 점점 그 기세를 키워 나갔고, 김강현은 불어난 인피니티 마나를 마나 홀로 보내며 힘을 조절했다.

‘너, 너무 성급했어.’

1호의 마나를 모조리 잡아먹은 인피니티 마나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곧장 1호의 몸속으로 짓쳐 들어갔다. 이를 눈치챈 1호가 다급히 김강현의 등에서 손을 떼려고 했지만, 이미 인피니티 마나가 밀려들어 손을 뗄 수 없었다.

만약 지금 손을 떼버리면 마나 폭주로 바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이 모습을 보는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는 겉보기엔 상황을 모르기에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나라니!’

인피니티 마나는 흉포한 이빨을 드러내며 1호의 마나 로드를 지나갈 때마다 남김없이 마나를 집어삼켰다. 이때마다 1호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마나가 빠져나갔고, 생명력도 같이 빠져나가 몸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1호는 순간순간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마나가 폭주하는 것이 두려워 입을 열 수 없었다.

“저,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마나가 빨려 들어가고 있어……!”

“혼자서 무리라면…….”

“넷의 마나를 합친다면 분명 놈을!”

“무력으론 밀릴지라도…… 우리 네 명의 마나라면!”

‘아, 안 돼! 당장 멈춰!’

그런데 이 모습을 본 다른 비천 추살조는 1호가 위험해 보이자 위를 돕기 위해 고통을 참고 1호에게 다가가 손을 얹혔다.

인피니티 마나의 무서움을 느낀 1호는 다급히 속으로 소리쳤지만 이미 그들의 손은 1호의 몸에 올려졌다.

‘이게 웬 떡이야?’

즐거운 식사를 마친 인피니티 마나는 김강현에게 돌아갈려던 찰나 외부에서 또 다른 마나가 들어오자 크게 기뻐하며 다시 1호의 몸속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우리 마나가 빨려 들어가고 있어?!’

‘모, 몸에서 손을 뗄 수 없어!’

‘끄으으으윽!’

2호, 3호, 4호는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1호의 몸속으로 마나가 빨려 들어가자 이를 차단하고 떨어지려 했지만, 이미 마나 통로의 일부가 되어 손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앞서 엉망진창으로 변해 버린 1호의 몸은 이미 폐인이나 다름없었다.

‘미안하지만…… 더 이상 날뛰는 건 어렵겠어.’

한편, 이 상황을 지켜보던 김강현은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 마나가 많아지면 감당할 수 없어.’

마나 홀은 담을 수 있는 마나의 양이 정해져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더 이상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외부에서 흡수한 마나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놈들의 목숨을 끊는다!’

김강현은 전력을 다해 인피니티 마나를 운용하며 비천 추살조를 향해 쏘아 보냈다.

‘커, 커헉!’

‘마, 마나가 제어되지 않아!’

‘이대로는 마나 포, 폭주가!’

‘주, 죽는다!’

그동안 인피니티 마나의 먹잇감이나 다름없던 1호는 이 공격으로 몸 안의 마나가 모조리 사라지며 폐인이 되어버렸다.

다른 비천 추살조는 밀려드는 인피니티 마나에 대항하려 노력했지만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끝이다!’

“쿨럭!”

“끄으으으…….”

하지만 기세를 잡은 김강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계속해서 인피니티 마나를 쏘아 보냈다.

* * *

김강현의 공격에 2호에서부터 4호까지 전부가 차례대로 마나 역류 증상을 보였다.

내부 장기가 날카로운 칼에 계속 찔리는 듯한 고통을 이어졌고, 살갗에 핏줄이 두드러졌다. 마나가 모조리 사라진 그들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으으으…….”

‘이, 일어나야 해. 어서 놈을 죽여야……!’

이 모습을 바라보던 이한결은 김강현의 무위에 겁을 먹고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한결은 그동안 가지고 있는 힘으로 사람들을 지배했다. 하지만 그 힘이 김강현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고,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이제 남은 건 네놈뿐이군.”

김강현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한결은 아등바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젠장, 죽어엇!”

이한결은 김강현이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오자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 순간, 팔목에 숨겨져 있던 열 개의 은색 바늘이 암기가 되어 김강현에게 쏘아졌다. 어릴 때부터 호신을 위해 지니고 있던 암기로,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무시무시한 독이 묻어 있었다.

“이런 것에 당할 정도라면…….”

화르르륵!

빠르게 쇄도하던 은색 바늘들은 김강현의 몸에 닿기 직전, 불꽃처럼 일어난 인피니티 마나에 휩쓸려 사라졌다.

“쓰러져 있는 게 나였겠지!”

마지막 비장의 수마저 통하지 않자 이한결은 깊은 절망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끄아아앗!”

“그럼 천천히 이야기해 볼까?”

김강현은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다리뼈를 분질러놓고 입을 열었다.

“으으으…….”

“날 죽이려는 이유가 뭐냐?”

이한결과는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평소 한마디 말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왜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를 떠올려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냐?”

“응?”

“네놈이 스컬 길드를 몰살시키고 내 인공 마력석을 가져가지 않았느냐?! 그 일로 얼마나 큰 수모를 당했는지 아느냐!”

‘스컬 길드? 인공 마력석?’

이한결의 말에 스컬 길드의 배후에 비천 길드가 있다는 유지운의 말이 떠올랐다.

‘그랬어. 그래서 비천 길드…… 이놈이 나를 노린 것이었어.’

그 인공 마력석 덕분에 이 정도로 인피니티 마나를 운용할 수 있었다.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니 이한결이 적대감을 불태우는 상황이 이해되었다. 김강현이 인공 마력석을 숨겼다고 생각했다면 더더욱.

“그리고 세연을 내게서 빼앗아가지 않았느냐?!”

“세연? 설마 연화 길드의 연세연?”

“그래! 그년은 내가 가지려고 했는데, 네가 빼앗은 만큼 반드시 네놈을 죽일 거다!”

그리고 이어진 이한결의 난데없는 말에 김강현은 어이가 없었다.

‘망상에 단단히 빠진 미친놈이네.’

당사자의 의견 따위는 상관없이 이미 결론을 내린 이한결은 연세연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천 추살조는 일부러 목숨을 붙여놓았지만…… 이놈은 어떻게 하지?’

이곳이 헌터 시험장만 아니라면 김강현은 이미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헌터 시험 중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협회 내부에서도, 언론에서도 굉장히 시끄럽게 떠들 것이고, 그 피의자로 자신이 지목될 터였다.

그래서 일부러 목숨은 건지도록 힘을 조절했지만, 자신을 노린 이유를 들으니 좀 더 냉정할 필요가 있었다.

“죽이지는 않지만…… 살아 있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느끼게 해주마.”

김강현은 널브러져 있는 이한결의 무릎에 손을 올려놓았다.

“지,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거냐?”

빠각! 파파파팟!

“끄아아아앗!”

귀를 찌르는 이한결의 비명 소리와 함께, 전신의 뼈가 토막토막 쪼개지기 시작했다.

이한결은 몸부림치며 김강현의 손바닥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접착제라도 붙인 듯 떨어지지 않았다.

‘주, 죽여줘!’

맨 정신에 뼈가 조각조각 부러지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면 고통을 잊을 수 있었겠지만, 김강현은 일부러 인피니티 마나를 주입하여 이한결의 정신이 또렷하도록 만들었다.

“그다음은…….”

‘마나 홀과 마나 로드!’

지구의 헌터와 테라의 기사·마법사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마나 호흡법의 존재 유무였다.

테라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마나 호흡법을 통해 마나 홀에 마나를 쌓거나 심장에 서클을 만든 후, 마나가 흐르는 길인 마나 로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마나 호흡법이 보급되지 않은 지구의 헌터들은 마나 홀만 형성되어 있을 뿐, 마나 로드와 서클을 만들 수 없었다. 마나의 양을 쌓는 방법 또한 마나석을 복용하는 것밖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마나 호흡법의 존재를 알고 있는 헌터는 정말 소수에 불과했다.

파직!

생각이 끝나자 김강현은 주먹으로 마나 홀을 가격해 완전히 박살냄과 동시에, 차후 마나 로드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까지 산산조각으로 끊어버렸다.

“커어어어억!”

‘제, 제발 죽여달라고…….’

너무도 비명을 질러댄 탓에 쉬어버린 목소리로 가쁘게 소리를 내뱉은 이한결은 마치 검으로 자신의 몸을 계속해서 찌르는 듯한 고통에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이한결의 몸속에 들어온 인피니티 마나는 날카로운 칼처럼 변환되어 이한결의 근맥을 모조리 자르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한 이상…… 끝까지 간다!’

전설의 엘릭서가 나타나지 않는 한 신체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망가트릴 생각이었다.

이한결은 너무 심한 고통에 혀를 깨물고 죽을 생각으로 입을 움직였다.

‘입이, 아니…… 몸이 움직이지 않아?!’

기이하게도 몸 전체가 움직이지 않더니, 한순간에 그를 괴롭히던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그 뒤엔 눈이 보이지 않았고, 잠시 후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강현이 통각과 함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등 모든 감각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악몽의 저주(Curse of Nightmare).”

마지막으로 김강현은 평생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을 꾸게 하는 마법을 시전했다.

이 마법은 마계의 어느 마족을 상대하다가 얻은 것이었는데,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강현은 이한결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가사 상태로 만든다면 깨어날 리 없겠지!’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한결의 뇌신경을 끊어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 만에 하나 악몽의 저주에서 깨어난다 해도 이제 일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후우…… 이것으로 끝이다.”

김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한결을 바라보았다.

마나 홀, 뼈와 근맥이 산산이 부서지고 모든 감각이 사라진 채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이한결의 모습은 처참했다. 살아 있지만 시체나 다름없었고, 평생 누군가의 수발과 도움 속에 살아갈 운명이었다.

“이제 목표는 비천 길드.”

이한결과 비천 추살조가 처참하게 당한 이상 복수를 하기 위해 비천 길드장, 이우경이 움직일 것이었다. 자식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을 안 이상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응?”

그렇게 이한결까지 처리한 후 자신의 싸움 흔적은 지우고, 놈들이 서로 싸우다 마나 폭주를 일으킨 상황으로 수습하던 중, 김강현은 갑자기 머리 위에서 느껴진 거대한 마나의 흐름에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시선이 닿은 그곳에는 섬을 뒤엎을 정도로 넘실거리는 마력이 갈라진 차원의 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한국 헌터협회의 게이트 관리 팀은 갑자기 울린 경고음에,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삐! 삐! 삐! 삐! 삐!

“수치를 잴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의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대, 대규모 게이트가 바, 발생합니다!”

“위치는?”

유지운은 헌터협회 직원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아크 스파이더 퀸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마친 유지운은 협회장의 지원 아래 감찰 팀장과 게이트 관리 팀장 직책을 동시에 맡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협회장이 일 잘하는 유지운에게 많은 권한을 준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중립에 속해 있던 유지운을 끌어들여 부협회장 세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 그게…….”

“뭘 꾸물대는 거냐?!”

유지운은 직원이 쉽사리 말을 하지 못하자, 재차 다그쳤다.

대규모 게이트가 복수로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일은 시민들의 피신이다. 이를 위해서 빠르게 게이트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전남 신안에서 조금 떨어진 무인도에서 마력 감지, 게이트가 열리고 있습니다.”

“후유~! 무인도라고?”

시민들의 인명 피해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한 유지운은 뒤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입을 열었다.

“광주 공항과 신안항에 연락해 무인도로 향하는 비행기와 배를 수배하도록. 각 길드들에게 레이드 요청을 하고.”

“그, 그런데 무, 문제가 있습니다.”

“응? 무슨 문제?”

“대, 대규모 게이트들이 발생한 무인도에서 A급 헌터 시험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뭐?!”

“그리고 현재 마나 폭풍의 영향으로 바람과 파도가 거세 무인도 주변으로 비행기와 배의 접근이 어렵습니다.”

이어진 협회 직원의 말에 유지운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의 말대로면 지금 외부에서는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헌터 시험 팀에 연락해 참가자들의 명단을 띄우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도록!”

“네, 넵!”

유지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무실 정면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헌터들의 증명사진과 이름이 띄워졌다.

“그리고 헌터들이 소속되어 있는 길드에…….”

“……?”

명단을 보며 말을 잇던 유지운의 시선이 스크린에 띄워진 어느 증명사진에 멈췄다.

협회 직원들은 그의 말이 끊기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기웃거리며 유지운을 바라보았다.

“……연락을 취해 A급 이상인 헌터 소집을 요청하도록.”

“네, 팀장님!”

그것도 잠시, 게이트 관리 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지운의 시선은 계속해서 스크린 속한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

‘강현…… 김강현이라고?’

대규모 게이트들이 나타난 장소에 김강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지운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김강현이 가지고 있는 무력이라면 자신들이 섬에 도착하기 전에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나오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도 시간을 벌어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유지운은 이 상황을 협회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무실을 나간 그는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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