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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디펜더 검건 (23/119)

4장. 디펜더 검건

“으음…….”

정신을 잃었던 김건이 신음 소리를 흘리며 슬그머니 눈을 떴다.

‘내가 죽은 건가? 아니면 살았어?’

타닥. 타다닥.

살짝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모닥불이 있었고, 그 위에는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는 토끼 한 마리가 있었다.

꼬르르륵~!

‘꿀꺽!’

음식을 본 김건의 배 속에서 우렁차게 밥 달라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오른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냐?”

그 목소리에 김건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자신의 타워 실드를 찾았지만 도무지 잡히는 것이 없었다.

“타워 실드는 네 머리 위에 있으니 걱정 마라.”

낯선 목소리의 말대로 머리 위를 손으로 더듬거리니 타워 실드의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일어났으면 와서 잠깐 이야기하자.”

‘싸울 의사가 없다?’

김건은 상대방의 목소리에서 적의가 느껴지지 않자 안도하면서 급히 자신의 헌터폰을 살폈다.

‘아직 증표가 있어. 그럼…….’

하지만 김건은 쉽사리 경계심을 놓지 않았다.

이곳에선 모든 헌터가 서로 적이었다. 이렇게 방심시켜 놓은 후 자신을 습격할 수 있다는 생각에 타워 실드를 집어 들었다.

“참…… 의심이 많구나.”

“흡!”

그 순간, 김건은 상대방에게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전신을 옭아매는 살기와 함께 강력한 마나의 기운을 감지했다.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더불어 언제든지 자신을 쓰러트릴 수 있는 헌터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그의 말을 곱씹으며, 조심스레 모닥불로 다가갔다.

“왔냐? 배고플 테니 밥부터 먹어라.”

꿀꺽!

김강현은 노릇하게 잘 익은 토끼 다리를 찢어 건넸고, 김건은 침을 삼키며 받아 입안에 넣었다.

‘우와~!’

토끼구이의 맛에 반해 버린 김건이 이성의 끈을 잃고 정신없이 탐닉하기 시작하자, 김강현도 맛있게 토끼구이를 먹기 시작했다.

은신처를 만들던 중 우연치 않게 토끼 굴을 발견해 토끼를 잡아 저녁 식사로 준비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캔 구황작물과 헌터협회에서 받은 인스턴트 식량이 더해지자 두 사람이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김건은 배가 차자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이렇게 불과 연기를 피우면 다른 헌터들의 표적이 될 것 같아 불안감이 얼굴에 드러났다.

“걱정 마라. 주변에 마법진을 설치해 모습을 위장했으니 다른 헌터들의 공격 따윈 없을 거다.”

“그, 그게 가능한가요?”

“물론. 큰 부상은 없는 것 같은데 몸은 괜찮냐?”

“네. 우선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득 김건은 김강현에게 도움이 받아 살았다는 생각이 나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니야. 그보다…… 언제 헌터가 된 거지?”

“저요? D급 헌터가 된 게 17살이니…… 2년 전이네요.”

“2년 전? 그럼 고등학생?”

“네. 헤헤헤.”

이곳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서자 김건은 긴장을 풀고 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실은…… 아버지 사업으로 집안이 쫄딱 망해서 제가 가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니 헌터 활동으로 오전 수업만 듣고 남은 시간에는 던전을 솔로로 돌고 있고요,”

“솔로라면…… 혼자 디펜더에 딜러까지?”

“그렇죠. 처음부터 던전 사냥을 했다 보니 스타일이 굳어져 파티 사냥이 쉽지 않아요. 파티에서는 정확히 디펜더 역할을 하거나 딜러 역할을 해야 하는데 디펜더를 하기에는 방어 실력이 부족하고, 딜러를 하기에는 공격력이 부족하니 좀 애매모호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렇겠군.”

“게다가 솔로로 사냥을 하나, 파티 사냥을 하나 어차피 들어가는 던전의 등급은 똑같은데…… 파티 사냥을 하면 수입을 배분해야 하니 차라리 혼자 사냥해 수입을 독차지하는 게 마음 편합니다. 물론, 혼자 사냥하다 보니 비상용 포션을 챙기는 건 기본이고 종종 죽을 뻔한 경험들도 있지만 덕분에 강해질 수 있는 계기도 됐고요.”

‘재미있는 녀석이야.’

가볍게 대화의 물꼬를 틀어주자 김건은 그동안 담고 있던 이야기를 속풀이하듯 털어놓았다.

“나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널 구한 이유가 네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실력 때문이야.”

“제 재능과 실력이요?”

“그래. 머더러들과 싸우면서 보니 성장 가능성이 보였고, 앞으로 S급 헌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제, 제가 S급 헌터가 된다고요?!”

김강현의 말에 김건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벌어진 입이 다물지 못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 있는 사람인 만큼 네가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헌터 시험 중이지만 하루 동안 강해질 수 있게 도와주지. 시간이 빠듯한 만큼 쉽지 않을 테니 신중히…….”

“괜찮습니다! 하겠습니다!”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야!’

김건은 김강현의 마음이 바뀔까 봐 서둘러 대답했다. 다른 헌터에게 도움을 받거나 가르침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김강현은 김건과 악수하기 위해 손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잘 부탁한다. 난 김강현이다.”

“김건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손이 맞잡은 순간 김강현의 눈앞에 반투명 창이 떠올랐다.

[파티가 생성되었습니다. 파티원 김건이 파티에 합류합니다.]

‘파티? 파티창 오픈!’

시스템의 말에 궁금증이 생긴 김강현은 상세 정보를 살폈다.

[파티 정보]

파티장 -김강현[체력: 95%, 마나: 90%, 공복도: 10%]

파티원 -김건 [체력: 60%, 마나: 75%, 공복도: 15%]

‘오호~!’

김강현은 반투명창의 파티 정보창을 보며 효율적인 사냥을 할 수 있게 되자 미소를 지었다.

“그럼…… 바로 방패술을 하나 알려주지.”

그 말과 함께 김강현은 처음 던전에 들어갔을 때 머더러에게 빼앗았던 타워 실드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공간이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아, 아공간?!’

인벤토리의 존재를 모르는 김건은 김강현이 실력이 굉장히 높은 위저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타워 실드를 든 김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 공터로 발걸음을 옮겼고, 김건도 서둘러 자신의 타워 실드를 들고 따라갔다.

“지금부터 공격을 할 테니…… 잘 막아봐라.”

“네?”

“가장 빠르게 익히는 방법은 몸으로 직접 익히는 것이니까.”

“네?!”

‘과연 피어스 방패술을 익힐 수 있는지…… 시험이다!’

김강현은 김건이 정신 차리기 전에 타워 실드의 날을 들어 세우며 달려들었다.

“으윽!”

“정신 차려라. 고작 이 정도에 힘들어하면 어떻게 할 거냐?”

김건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막기에 급급했는데, 김강현은 타워 실드의 모서리를 세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휘둘렀다.

‘이대로 안 돼…….’

김건은 잠시 김강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숨을 고르며 뒤로 물러났다.

“헉!”

“도망치는 건 통하지 않아!”

“큭!”

까강!

김강현은 바로 타워 실드를 가볍게 던졌고, 김건은 급히 실드를 들어 막았지만 위력이 묵직하여 일순간 손에 마비가 왔다.

김강현은 공중으로 튕겨 날아간 타워 실드를 점프해 잡아챈 뒤 몸 쪽으로 바짝 잡아당겼다.

“차지!”

“으아앗!”

그러고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중력을 이용하여 김건에게 몸을 부딪치며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이 공격에 김건은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하고 손에서 타워 실드를 놓치고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으으…….”

“얼른 일어나. 고작 이 정도에 엄살 피울 생각이라면 이 방패술을 익힐 자격 따…….”

“알고 있습니다! 퉷!”

김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건은 자리에서 서둘러 일어나 입안에 고인 피를 뱉은 후, 다시 싸울 자세를 취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김건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헌터 생활을 하면서 누가 이렇게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모두가 다 적이었고, 경쟁자였다. 그렇기에 이 기회를 반드시 잡고 싶었다.

“피어스 방패술의 핵심은 세 가지다.”

이 모습을 보며 김강현은 입을 열었다.

“방패를 창처럼 활용해라. 기존에 방패를 사용하던 방법은 잊고, 어떻게 하면 방패로 공격해야 할지 고민해. 피어스 방패술에 방어 따윈 없어.”

“…….”

“타이밍을 살펴라. 적의 공격은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해 상쇄시킴과 동시에 적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핵심이다.”

“…….”

“마지막은…… 싸움을 즐겨라! 전쟁터에서 만들어진 피어스 방패술은 끊임없는 싸움만이 익힐 수 있는 방법이니까.”

김강현의 마지막 말에 김건은 매우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앗!”

“흐아아앗!”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가며 타워 실드를 휘둘렀다.

* * *

“후우, 한 번만 더…… 부, 부탁드립니다.”

‘한 번 더…… 아직 할 수 있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김강현과 김건은 아직까지 싸우고 있었다.

특히 김건은 체력이 부족하여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김강현에게 싸움을 청했다.

‘체력과 마나가 10%, 공복도는 80%인데…… 끈질기게 달라붙는구나.’

파티 정보창을 통해 김강현은 김건이 자기 자신을 한계에 몰아넣으며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김강현은 아무런 말 없이 타워 실드를 들어 망설임 없는 공격을 취했다.

‘응? 뭐지?’

그런데 김건의 공격을 받던 김강현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체력과 마나가 바닥임이 확실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이 정교해지고 타워 실드의 힘이 세지고 있었다.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파티 정보 창을 살폈는데 김건의 체력과 마나가 8%로 떨어져 있었다.

‘이 느낌은 뭐지?’

그러나 가장 많이 당황하고 있는 이는 김건이었다.

땅바닥에 있는 모래 알갱이들이 몇 개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보이고, 휘두르는 타워 실드의 무게도 세밀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전신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힘이라면…… 쓰러트릴 수 있다.’

김건은 정체불명의 힘에 자신감이 생겨 타워 실드를 꽉 쥐고 김강현을 향해 휘둘렀다.

‘몸의 마지막 발악이군.’

잠시 생각하던 김강현은 김건이 어떻게 이토록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하는지 떠올렸다.

체력과 마나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일시에 발산하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파티 정보창의 김건의 체력과 마나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이제…… 끝내주마! 차지!”

이 이상 시간을 끌면 김건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김강현은 처음으로 타워 실드에 인피니티 마나를 담아, 방패 치기를 시도했다.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 순간, 김건에게 김강현의 타워 실드는 고속 카메라에 찍힌 것처럼 굉장히 느리게 보이고 있었다.

김강현의 방패 치기가 닿기 직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던 김건은 무릎을 살짝 숙여 무게중심을 낮춘 후 타워 실드를 위로 올려 쳤다.

“차지!”

“어?”

“체크메이트!”

반동에 의해 김강현의 실드가 위로 들려지고 상체의 빈틈이 고스란히 노출되자, 김건은 이를 놓치지 않고 타워 실드를 휘둘렀다.

“헛!”

‘인피니티 마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빈틈을 보인 김강현은 놀라 급히 인피니티 마나를 일으켜 육체 강화로 김건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순간 김강현의 눈앞에 두 개의 반투명창이 나타났다.

* * *

[파티원 김건이 피어스 방패술 습득의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피어스 방패술(S)-용병왕 피어스의 방패술로 전장의 싸움을 통해 만들어졌다. 방패로 적의 공격을 막는 것이 아니라 상쇄시키며 강한 체력과 힘을 요구한다. 아무리 적이 강하고 무섭더라도 나아갈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만이 성장할 수 있다.

김강현은 반투명창들을 보고 미소 지었다.

김건은 인피니티 마나의 반탄력에 뒤로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파티 정보창을 통해 보인 김건의 체력은 2%뿐이었다. 더 이상 무리를 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타워 실드를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지치고 괴로웠을 텐데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까지 취했다. 그 의지가 피어스 방패술을 습득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발현한 것 같았다.

“만약 테라에 김건 같은 녀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피어스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해, 김강현에게 방패술의 핵심을 알려주고 자신이 잘못될 경우 뒤를 부탁했다. 김강현은 테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틈틈이 피어스 방패술을 익힐 사람을 찾았으나 이것을 익히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하기에 쉽사리 도전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만약 이 자리에 피어스가 있다면 아마 김건을 얼싸안고 돌아다닐 정도로 굉장히 기뻐했을 것이었다.

“그럼 바로 두 번째 수련으로 넘어갈까?”

김강현이 쓰러진 김건을 보며 중얼거리자, 김건은 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싸늘한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한의 정체는 3시간 후 밝혀졌다.

* * *

‘지금 뭘 하는 거지?!’

“흐아아앗!”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혼란해하던 김건은 기합 소리를 듣자 머리에 차가운 물을 맞은 듯 정신을 차렸다. 오른 방향으로 실드를 들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던 공격을 막은 그는 자세를 정비할 새도 없이 실드를 크게 휘둘렀다.

“미친! 이렇게 타워 실드를 쓰는 게 어디 있어?!”

“한 명만 붙어서 방패를 쓰지 못하게 하고, 같이 놈을 공략하자!”

“알았어!”

‘젠장, 우선 한 명씩 처치하는 거다.’

갑작스러운 싸움이었지만 김건은 눈앞에 있는 3명의 헌터에게 집중했다.

5분 전, 김강현은 근처를 지나가던 3명의 헌터를 제압한 뒤 솔깃한 제안을 했다. 헌터들은 제압당한 채로, 기절해 바닥에 자빠져 있는 김건을 보며 고심하는 중이었다.

“저 녀석을 완전히 제압하거나 기절시키면 증표 3개를 주지.”

“정말?”

“사기 치는 거 아냐?”

그들이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의심하자, 김강현은 헌터폰에 담겨 있는 증표들을 보여주었다.

“진짜잖아!”

“반대로 저놈에게 진다면 너희들이 가진 증표들을 받을 거다. 어떠냐?”

“중간에 개입 따윈 없겠지?”

“물론!”

김강현은 그들을 압도적으로 쓰러뜨릴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 언제든지 증표를 빼앗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기회 아닌 기회가 주어지자 지나가던 헌터 1, 2, 3은 냉큼 거래를 받아들였다. 김건만 졸지에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싸우게 된 셈이었다.

“이익!”

그사이 김건은 왼쪽에서 날아오는 검을 보고 다급히 몸을 비틀어 막아냈다.

‘벅차지만…… 충분히 잘하고 있어.’

김강현은 김건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위험한 상황이 되면 메시지 마법으로 알려주겠다 약속했지만, 정말 목숨이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피어스 방패술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겠지…….’

김강현은 김건이 피어스 방패술을 익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자 좀 더 혹독한 실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이곳은 증표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헌터들이 바글바글했다.

‘어젯밤의 감각을 떠올려 보자!’

김건은 김강현에게 펼쳤던 들어치기와 차지를 떠올리며 싸우기 시작했다.

“어?”

‘지난 수련의 결과가 나타나는 건가?’

이 모습을 지켜보던 김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 김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조롭던 김건의 움직임이 복잡해지고 공격 패턴도 다양해져 갔다. 그래서인지 공격하던 헌터들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좀 더 공격해!”

“놈에게 틈을 주지 마!”

이를 눈치챈 3명의 헌터는 공격 횟수를 늘리고 근접전으로 전투 스타일을 바꾸었지만, 기세를 탄 김건을 막을 순 없었다.

김건은 타워 실드로 3명의 헌터를 단숨에 밀어내며 기합을 내질렀다.

“크아아앗! 차지!”

“으윽!”

“크래쉬!”

기세를 몰아 휘두른 타워 실드에는 푸른 마나가 맺혀 있었다. 단숨에 헌터들의 무기를 부숴 버린 실드는 그들의 가슴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파티원 김건이 피어스 방패술을 습득했습니다.]

그 순간 김강현의 눈앞에 반투명창이 떠올랐다.

“젠장…… 우리가 졌다.”

“빠드득! 이 수모는 밖에서 갚아주마.”

“쳇!”

반박할 수 없는 상처에 세 명의 헌터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아마 저 헌터가 나섰다면 싸움은 진작 끝났겠지.’

김건과 겨루었던 한 헌터가 김강현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김강현이 일부 헌터들 사이에서 파멸자라 불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강현을 보자마자 싸움을 피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김건이라는 말에 덥석 거래를 수락한 것이 실수였다.

‘게다가 도망가더라도 쉽지 않겠지.’

그는 상황이 불리해지자 도망칠 각도 보았는데, 어느 사이엔가 그 길에 김강현이 서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순순히 헌터폰을 통해 증표를 김건에게 건네고 자리를 떴다.

“이 정도면 피어스 방패술을 나중에라도 혼자 익힐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김건은 김강현의 도움에 고개를 깊게 숙이며 인사했다.

마지막은 도움이 아니라 방치였지만, 만약 자신이 세 헌터들에게 졌다면 아마 그의 증표를 주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김건은 자신의 헌터폰을 꺼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얻은 증표 3개를 모두 드리겠습니다.”

“뭐? 그걸 왜?”

그 말에 김강현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가르쳐 주신 방패술만으로도 분에 넘칩니다. 게다가 만약 제가 졌다면 강현 님의 증표를 그대로 주셨을 것이 아닙니까?”

“…….”

“그러니 이 증표들은 제가 가질 수 없습니다.”

“……후우. 알았다.”

김건의 눈빛과 말에서 양보할 수 없는 진심이 느껴져 김강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김건은 바로 증표를 넘겼고, 이제 김강현은 총 7개의 증표를 가지게 되었다.

“다음에 만날 땐 적으로 만나겠죠?”

“그땐, 나 또한 인정사정 봐주지 않을 거다.”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눈 뒤 서로 반대 방향으로 헤어지자 다시 김강현의 눈앞에 반투명창이 떠올랐다.

[파티가 해체되었습니다.]

하루라는 시간이었지만 그사이에 정이 들었는지 김건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하지만 헌터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서로의 증표를 노리는 적이었기에 이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건이가 떠났는데도 시선이 느껴지는 걸 보니…… 목적은 나인가?”

그리고 남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김건과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계속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들이 노리는 표적이 자신인지 김건인지 확신할 수 없어 내버려 두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노리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더 가만히 있을 필요는 없었다.

* * *

“갑자기 놈이 이곳으로 옵니다!”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분명 아티팩트로 마나와 기척을 모두 감추었을 텐데…….”

하지만 김강현은 그들의 마나가 아닌 아티팩트에 담겨진 마나를 쫓았다. 시험을 치러 온 헌터들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지 않을 텐데, 섬 한쪽에서만 계속 미세한 기운이 느껴져 정확한 위치를 짚을 수 있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

“도련님?!”

“놈이 우리의 위치를 알아차린 것은 너희들도, 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야. 하지만 놈을 사냥하기 위한 준비는 완벽하니 걱정할 것 없다.”

“알겠습니다.”

“모두 싸울 준비를 해라.”

‘어차피 바뀌는 것은 놈이 죽는 시간뿐!’

이한결은 솟구치는 화를 참으며 가지고 있는 장비를 점검했고, 다른 네 명의 헌터도 가지고 있는 장비를 점검했다.

이 일에 이한결은 자신의 헌터 인생을 걸었다. 이우경의 도움으로 비천 길드원들과 헌터협회도 움직였다. 결코 실패는 존재할 수 없었다.

“옵니다!”

김강현의 움직임을 살피던 헌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강현이 그들 앞에 도착했다.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선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역시 네놈들이구나.”

“무슨 말이지?”

그런데 김강현은 그들을 보자마자 무언가 알고 있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이한결과 비천 길드원들은 인피면구를 쓰고 있는 데다가 신분을 세탁한 상태로, 김강현은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을 터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시치미를 뗐는데,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한결. 그 답답한 얼굴 가죽은 벗는 게 어떠냐?”

“……?!”

“……!”

“다른 네 명은 비천 길드 헌터들일 게 뻔하군.”

그 말에 너무 놀란 이한결과 비천 길드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눈을 깜빡거렸다.

찌이익!

하지만 곧 냉정함을 찾은 이한결은 얼굴을 뒤엎고 있던 인피면구를 찢어버리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마나를 가지고 있다 해도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마나의 느낌과 성질이 다르다. 그런데 분명…… 상대방에게서 낯익은 마나가 느껴지는데 얼굴과 달라 의심하고 있었지.”

“그걸 느꼈다고?! 아티팩트로 마나를 감추고 있었는데?”

“아티팩트가 만능일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

‘가장 중요한 건 본신의 실력이지!’

김강현은 아티팩트의 성능을 믿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티팩트 또한 사람이 만든 것이니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이한결과 비천 길드원들은 나름대로 마나를 감추었다고 확신하고 있었겠지만, 다른 헌터들은 느끼지 못할 미세한 양의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아티팩트는 마나석을 이용해 만드는 것이니 그 마나를 감지하면 될 일이었다.

아티팩트의 마나를 감지하는 것은 검천호 정도의 실력이 되는 헌터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김강현은 주변 마나에 민감도가 무척 높았다.

‘첫 번째는 헌터 시험 날…… 두 번째는 던전에서…… 세 번째는 아크 스파이더 퀸 레이드에서…… 잊을 수 없지.’

한 번의 만남이었다면 김강현도 인피면구를 쓴 이한결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몇 번 만나면서 이한결의 마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보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섬의 외곽인 데다가 주변이 수풀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는 쉽게 눈에 띄기 어려운 장소였다.

그 말에 이한결이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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