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장. 몬스터들의 배후Ⅱ(3권) (20/119)

귀환한 절대자는 역대급 헌터 3권

1장. 몬스터들의 배후Ⅱ

-살고 싶으면 이 몸의 말대로 움직이거라.

“뭐, 뭐야.”

“갑자기 머릿속에 목소리가.”

“모두에게 메시지 마법이-”

헌터들은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도로 아래 언덕까지 후퇴하고 디펜더들이 전면에 나서서 충격에 대비한 실드를 치도록! 그 뒤는 알아서 하고.

“누구냐? 누가 명령 내리는 거냐?”

“어떤 놈인지 모습을 드러내라고.”

“이대로 죽으나 마나! 어차피 똑같은 거 아냐?”

그런데 몇몇 헌터들이 건방진 뉘앙스의 말투에 발끈하여 화를 내며 메시지 마법을 보낸 녀석이 누구인지 찾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들은 재미있구나. 그렇게 죽고 싶으면…… 이 자리에서 죽여줄까?

“커억.”

“으으으!”

‘이건…… 김강현?!’

‘아냐. 이건 그 소환수! 발록이야!’

‘더, 던전의 괴물?!’

헬릭스는 자신에게 대항하는 인간들이 어이없어 그동안 숨기고 있던 본성이 담긴 살기를 살짝 드러냈다. 그것만으로도 인간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살기의 주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에라도 자신들쯤은 단숨에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유지운, 연세연, 이한결, 이 세 사람은 헬릭스의 무서움을 직간접적으로 느낀 적이 있어 공포심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고작 5초에 불과했던 살기가 사라지자 헌터들은 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역시 인간은 한 번 경험해야 움직이는구나.”

하늘 위에서 이 모습을 보던 헬릭스는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려 아크 스파이더 퀸을 보았다.

“브레스에는 브레스로 상대해 주지.”

헬릭스는 아크 스파이더 퀸이 마지막 발악으로 포이즌 브레스를 쏠 것을 예상하고 똑같이 대항하기 위한 마력을 준비해 두었고, 지금 이 순간 일제히 하나의 불꽃에 집약시켰다.

“케에에에엣!”

“플레임 브레스.”

잠시 후 아크 스파이더 퀸에게서 녹색의 브레스가 쏘아지고, 동시에 헬릭스에게선 검은 불꽃이 쏘아져 나갔다.

두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는 풀 한 포기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는데, 그 충격파로 인해 강이 갈라지고 주변의 나무와 건물들이 휩쓸릴 정도였다.

“모두 앞 사람을 꽉 잡고, 더 촘촘히 붙어!”

“저기에 휩쓸리면 바로 죽는다고!”

“살고 싶으면 전력을 다해!”

헌터들은 헬릭스의 플레임 브레스가 만들어내는 충격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킬을 시전하며 버텼다.

콰아아앙!

그사이 플레임 브레스와 포이즌 브레스는 한강 강변에서 부딪쳐 팽팽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강대한 충격파가 휘몰아쳤다.

“지금입니다!”

그리고 때를 노리고 있던 김강현은 아크 스파이더 퀸이 포이즌 브레스를 쏘자마자 바로 신호를 보냈다.

이 말을 시작으로 공격조 헌터들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강의 기술들을 펼쳤다. 순식간에 아크 스파이더 퀸의 다리들이 베이고 몸통에 커다란 상처들이 입혀졌다.

“케에에에엣!”

아크 스파이더 퀸은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상처를 재생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모았다.

“천류신화검(天流神化劍)!”

검천호의 몸이 마나에 휩싸여 거대한 검 하나를 만들어냈다. 아크 스파이더 퀸은 이것이 위협적이라는 판단에 다급히 남은 마나를 끌어모아 나선형 거미줄을 쏘아 보냈다. 그렇지만 검천호의 뒤에는 김강현이 서 있었다.

“가랏!”

“흐아아아압!”

김강현은 전신의 모든 인피니티 마나를 마검에 집중하며, 아크 스파이더 퀸의 목덜미에 있는 핵을 향해 몸을 날렸다.

놈은 필사적으로 거미줄을 쏘아 보내며 김강현을 막아보려 했지만 거미줄을 태워 버리는 강대한 인피니티 마나로 만들어낸 마나 소드에 의해 무력화되었고, 마검은 끝내 아크 스파이더 퀸의 목덜미를 뚫고 핵에 닿았다.

‘놈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야!’

김강현이 아크 스파이더 퀸을 공략하기로 나선 또 다른 이유는 놈을 정신 지배하여 조종하는 배후를 찾기 위해서였다.

‘방법은 정신 지배가 깨어지는 순간 퀸의 기억을 읽는 것뿐!’

이를 위해 아크 스파이더 퀸이 죽는 그 순간에 가까워져야 했고, 그 방법은 유일무이한 핵을 부수는 것뿐이었다.

-조심하거라. 자존심이 상하지만 실은…….

-알았어. 고맙다.

그 짧은 순간 김강현의 계획을 읽은 헬릭스는 배후의 정체를 캐고 싶은 간절함에 오크 주술사의 기억에서 있었던 일을 풀어놓았다.

김강현은 헬릭스의 말을 참고하여 핵을 박살냄과 동시에 기억에 접속해 남아 있는 마지막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여긴…… 그린 드래곤의 레어?”

헬릭스는 제삼자의 눈으로 오크 주술사의 기억을 바라보다 배후에게 들켰으므로, 김강현은 기억의 주인인 아크 스파이더 퀸의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가 알고 있던 그린 드래곤의 레어는 대부분 인간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숲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야. 마력에 의해 숲이 모조리 사라졌어!’

나무들이 심겨 있던 자리들을 보니 마력의 흔적이 있었다.

“키에에엣…….”

아크 스파이더 퀸은 당장 목숨을 잃을 만한 상처들을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 안 남은 다리에 힘을 주어 누군가를 향해 기어갔다.

“쯧쯧…… 부질없는 짓을 하는구나.”

뒤쪽 어둠 속에서 한 존재가 천천히 걸어 나왔는데, 그는 검은 안개로 둘러싸여 있어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는 단숨에 왼손으론 아크 스파이더 퀸의 목덜미를 붙잡고, 오른손을 휘둘러 다리를 모조리 잘라 버렸다.

“케에에에엣!”

“한심한 미물 같으니…… 조용히 있었으면 덜 고통스러웠을 텐데.”

아크 스파이더 퀸은 다리가 잘리자마자 이를 재생시키려고 했지만, 마력의 방해로 상처의 고통만 더욱 심해져 갔다.

그는 아크 스파이더 퀸의 목을 비틀고는 계속 안쪽으로 들어가 한 존재와 대면했다.

* * *

“으으으…… 어째서 이런 만행을! 게다가 반항하지 않는 아이들까지 죽이다니!”

“내 힘을 위한 제물로 선택되었으니 그들에게 죽음은 영광이 될 거다.”

안쪽에서 안타까움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존재는 이 숲의 주인인 그린 드래곤으로, 두 날개는 부러지고 온몸에 상처가 가득해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이놈은 테라에 해악이 될 터. 죽더라도 같이 죽인다!’

그린 드래곤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적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폭사시켜 같이 죽을 것을 결심했다.

“응? 아주 재밌는 짓을 하는구나.”

그러나 그는 그린 드래곤이 폭사하려는 계획을 눈치채고 다가가 드래곤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으윽!”

“그동안 쌓은 마나와 드래곤 하트라면 이 레어는 물론이고 나마저 죽일 수 있겠지. 그러나 그렇게 죽어버리면 안 되지.”

그 말과 함께 그린 드래곤의 육체에 마력을 흘려 폭사를 막은 남자는 곧바로 정신 제압에 들어갔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

“내 목표는…… 이 세계의 멸망. 그 전에 거추장스러운 드래곤들과 그 종속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냐?!”

“지금 드래곤들은 키메라 라셀과 마계와의 싸움으로 힘이 약해진 상황. 게다가 무리를 짓지 않는 드래곤들이 누구 하나 죽었다고 신경이나 쓸까?”

“크르르릉…….”

그린 드래곤은 그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실제 그의 말대로 드래곤의 개체 수는 3분의 1로 줄었고, 남아 있는 드래곤들의 절반은 싸움의 후유증으로 레어에서 동면 중이었다.

더불어 대다수의 드래곤들은 안전을 위해 레어에 마법을 걸어 외부의 침입과 연락을 차단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서로 연락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죽어도 눈치채는 드래곤은 없을 것이었다.

“어째서 이런 무모한 짓을……!”

그 순간 그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지며 분노가 느껴졌다.

“분명 살아 있는데…… 놈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지.”

“뭐?!”

“그럼 이 세계를 멸망시킨다면…… 놈이 만든 평화를 없애 버린다면 나타나지 않겠느냐?”

“……진심으로 미쳤군!”

“그래. 나는 미쳤다. 그리고 놈을 죽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

광기 어린 그의 말에 그린 드래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놈이 모르는 것이 있구나.”

“뭐지.”

“네 말대로 드래곤들은 각기 생활하기 때문에 서로 신경 쓰지 않지만, 드래곤 로드는 다르지. 이런 때를 대비해 비상 연락망을 만들어두었고, 내 죽음은 전달될 것이다.”

그린 드래곤의 말대로 마계와의 전쟁 이후 드래곤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드래곤 로드의 제안으로 비상 연락망을 만들었고, 모든 드래곤들은 안심하고 동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그린 드래곤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웃을 뿐이었다.

“그렇군. 참고하지. 하지만 그 정도론 나를 막을 수 없을 것이야.”

그는 그린 드래곤의 정신 지배가 끝나기 직전 깜빡 잊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도 죽기 전에 내가 누군지 알아야 덜 억울할 테지?”

‘지금이 기회다!’

그의 말에 김강현은 아크 스파이더 퀸의 눈을 통해서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검은 안개로 인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린 드래곤은 그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자 경악했고, 그 순간 드래곤 하트가 지배당했다.

더불어 아크 스파이더 퀸도 그의 손에 넘어가 시야가 어두워지며 기억 역시 끊어졌다.

* * *

“케에에엣!”

김강현은 아크 스파이더 퀸의 목을 뚫고 나옴과 동시에 핵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

“좋아. 잘했어!”

“C급 헌터치곤 잘했다!”

남은 마나로 간신히 한강 위에 떠 있던 공격조 헌터들은 이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쿠우웅!

핵이 부서진 아크 스파이더 퀸의 거대한 몸이 한강에 파도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인간…… 고맙다.

“방금 목소린…….”

아크 스파이더 퀸은 정신 지배에서 벗어나자 김강현에게 테라어로 인사를 전하며 죽음을 맞이했지만, 김강현은 심경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드래곤을 죽일 수 있는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고, 마력을 사용하는 존재라면…….’

단 하나의 종족. 마족만이 유일하게 떠올랐다.

‘하나 나와의 싸움으로 마계의 상황도 좋지 않을 텐데…… 대체 누가?’

게다가 마지막에 그린 드래곤의 경악한 얼굴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린 드래곤과 생사를 같이한 아크 스파이더 퀸의 기억을 읽으면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정체를 파악할 수 없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끝났다!”

“살았어! 그리고 해냈어!”

“우와와와와!”

한편, 살아남은 헌터들은 승리의 기쁨에 취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 싸움으로 죽고 부상을 입은 헌터들이 있었지만, 살았다는 기쁨이 매우 컸다. 아크 스파이더 퀸이 죽자 아크 스파이더 솔저들의 시체는 재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앞으로 김강현이라는 헌터와는 부딪치기 전에 무조건 연락하도록 해.”

“저 소환수와 그 주인에 대한 정보를 모아.”

“혹시 길드에 소속된 게 아니라면 스카우트를 해라.”

그리고 김강현과 헬릭스의 무력을 직접 본 몇몇 헌터들을 미래를 생각하고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죽은 몬스터 사체는 헌터협회가 인수인계하여 공적에 따라 배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뒤이어 유지운에 의해 계속 주변 통제가 이루어졌다.

아크 스파이더 퀸의 사체는 아티팩트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될 수 있어 그 쓰임이 무궁무진했다. 누군가 아크 스파이더 퀸의 사체를 훔쳐가는 것을 막기 위해 헌터협회에 소속된 헌터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고생했다. 근데 왜 이리 표정이 어두운 게냐?”

공격조 헌터들은 아크 스파이더 퀸을 죽였다는 기쁨에 들떠 있는데 김강현은 그리 기쁜 기색이 아니자 검천호가 다가와 물었다.

아크 스파이더 퀸의 기억을 읽기 전에는 게이트를 만들어내고 몬스터들을 지구로 보내는 배후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배후가 누구인지 오히려 헷갈리기만 했다.

“아무래도 이런 싸움을 처음 경험하다 보니 피곤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럴 테지. 당분간은 많이 피곤할 테니 무조건 푹 쉬어라.”

“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냐?”

“저 몬스터의 사체는 어떻게 처리됩니까?”

“아까 들었다시피 협회의 관할로 넘어가며, 공적에 따라 배분 혹은 돈으로 정산이 될 거다. 공적은 곳곳에서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들과 헌터폰의 기록에 의해 나오고.”

검천호가 가리킨 방향들을 보니 지금까지 레이드 과정을 촬영하고 있던 드론 카메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동시에 헌터폰에 이런 기능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아크 스파이더 퀸의 거미줄과 핵을 가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크 스파이더 퀸의 거미줄로 만든 옷은 일상생활에서 입을 수 있을 만큼 편하고, 웬만한 충격은 흡수해 주기 때문에 전투에 있어 굉장히 효율적이었다. 더불어 핵은 인피니티 마나의 양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었다.

-이 몸은 먼저 가서 고민을 해봐야겠구나. 나중에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

헬릭스는 자신의 할 말만 하고 텔레포트 마법을 써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이미 김강현이 공유한 기억을 읽어 아크 스파이더 퀸의 기억 내용을 확인한 상태였는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아 그도 머릿속이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띠리리링~!

“응? 누구?”

갑자기 헌터폰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화면을 보니 강려원이었다.

“여보세요.”

-실장님,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보다 강 부실장님은 어디 다친 곳 없습니까?”

-미리 대피소로 피신한 덕분에 무사합니다.

헌터들이 아크 스파이더 퀸을 쓰러트리자마자 대피소에 있던 사람들에게 소식이 전해졌고, 강려원은 대피소에서 나오자마자 김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김강현의 안부를 물어보며 다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더불어 김강현은 강려원을 통해 김고엽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업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다행이네요. 그럼 빠른 시간 안에 연화 그룹과의 협약 건에 대한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네. 직원들과 이야기하여 대책을 세워놓겠습니다.”

“그럼 끝나는 대로 연락주세요.”

두 사람은 안부와 함께 간단한 업무 보고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김강현은 전화를 종료하기가 무섭게 뜨는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가족들도 무사하고 큰일 없어서 다행이다.”

아크 스파이더 퀸과의 싸움 도중 온 메시지들도 있었는데, 정신이 없어 확인을 못 한 것도 있었다.

우선 가족들에게 자신은 무사하고 곧 집으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기자마자 누군가가 김강현에게 다가왔다.

“연화 그룹과 협약이라고? 괜찮다면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길드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우연치 않게 김강현의 전화 내용을 듣게 된 연철무와 연세연이었다.

정확히는 김강현이 일부러 전화의 볼륨을 키워 받아 연철무가 들을 수 있도록 유도해 상황을 만들었다.

“그럼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군요.”

“음…… 그럼 이곳에 차가 오니 같이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그럼 천호, 다음에 보지.”

“그래. 너희도 조심히 가거라.”

그들은 검천호와 인사를 나누고, 한강 공원을 조금 걸어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연화 그룹 차에 탑승했다.

차는 고급 세단으로 앞좌석과 뒷좌석이 분리되어 인터폰을 통해 대화가 가능했고, 자리가 넓어 세 사람이 타도 넉넉했다.

“여기라면 편히 말할 수 있겠지.”

자리에 앉자마자 연철무는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고, 옆에 앉은 연세연도 말은 하지 않지만 표정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김강현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며 말했다.

“우선 제 소개를 다시 드리겠습니다. US 그룹의 전략기획실장 김강현입니다.”

“뭐엇?”

“네?!”

김강현이 인사하자 명함을 건네며 연철무와 연세연은 깜짝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연철무는 쉽사리 믿기지 않아 명함을 확인하니, 정말 소개대로 US 그룹 전략기획실장이라는 직책과 김강현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다.

‘천호 녀석의 소개장을 가지고 온 것도 놀라웠는데, 이번엔 US 그룹?’

김강현이 거짓말할 녀석이 아니기에 연철무는 조심히 물었다.

“개인적으로 고엽, 그 친구를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전략기획실장을 맡게 된 거냐.”

연철무와 김고엽, 두 사람은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인인 만큼 서로 친분이 있었다.

덕분에 연철무는 김고엽이 전략기획실장 자리에 누구를 앉혀야 할지 고민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공석으로 비워뒀던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대외비로, 비밀을 지켜주신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마. 세연이 너도 지키거라.”

“네, 할아버님.”

“실은…… 김고엽 회장님이 제 할아버님 되십니다.”

“뭐어?”

청천벽력과 같은 김강현의 대답에 연철무가 놀라 소리쳤다.

“그 친구에게 손자가 있었다고?! 그 전에 아들이 하나…… 아니, 죽은 큰아들도 있지만 그 아인 미성년자였을 텐데?”

연철무는 김고엽과 친분이 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개인사도 일부 알고 있었다.

그 중얼거림을 들은 김강현은 조심히 대답했다.

“집안 사정이 있어 자세히 알려 드리진 못하나…… 큰아들이던 아버지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 또한 할아버지의 존재를 최근에 알게 되었고요.”

“허어, 놀랄 노 자로군. 어느 정도 고엽이…… 그 친구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은…….”

연세연도 말을 안 할 뿐이지 김강현의 대답에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연철무는 다시 김강현의 얼굴을 살펴보았는데, 김고엽의 핏줄이 맞는지 그의 얼굴이 김강현에게서 일부 보였다. 그사이 김강현은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연화 그룹의 연철무 회장님.”

“으음…….”

“이번에 연화 그룹과 협약을 맺기 위해 조사하던 중 알게 되었습니다.”

“하긴! US 그룹이라면 내 정체쯤이야 금방 파악하겠지. 그런데 혹시 협약이라는 게 그것과 관련된 것이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연철무는 김강현이 연화 그룹에 어떤 제안을 했는지 짐작되었다.

“네. 맞습니다. 바로 코팅 액체입니다.”

“흠…… 좋은 선택이다. 아무런 기반이 없는 US 그룹에서 팔기보다는 기반이 있는 우리 쪽에서 파는 것이 효율적일 테지.”

“코팅 액체라뇨?”

그동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연세연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쉽게 애기하면 바르기만 하면 헌터 무구를 강화시켜 주는 물건이지.”

“어떻게 그런 물건이?”

“내가 직접 보았고, 확인했다. 황금 알을 낳는 물건인 만큼 놓치면 어리석은 짓이지.”

며칠 동안 코팅 액체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했기에, 연철무는 전보다 코팅 액체에 대한 욕심이 보였다.

아니, 사업가라면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아이템이었다.

“그래. 아까 얼핏 들어보니 연화 그룹에 코팅 액체를 납품하려는 것이냐.”

“아닙니다. 기술 이전으로 모든 걸 넘기려고 합니다.”

“나라면 코팅 액체를 시작으로 다양한 아이템을 만들어 사업 확장을 했을 텐데…… 다른 생각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 말에 김강현은 대답하지 않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기술 이전이라면 제작자인 네게 라이선스 비용만 꾸준히 주면 되겠어. 조건은 어떻게 되냐.”

“그 전에 이걸 듣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바로 사업 이야기로 들어가려는 연철무에게 김강현은 헌터폰에 녹음된 대화를 재생했다.

-제가 줄을 대고 있는 이사님들이 있습니다. 그분들께 부탁을 드린다면 쉽게 돈을 빼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 이전 비용이 총 5조이더군요. 그 돈을 4조로 내린 뒤…… 남은 1조를 챙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편집 없이 녹음된 대화를 듣는 연철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고, 평소 차가운 인상을 가진 연세연도 더욱 냉기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녹음된 대화가 종료되었지만, 1분 동안 연철무와 연세연은 침묵을 지켰다.

“세연아.”

“네. 할아버님.”

“당장 네 아비에게 연락해 내 이름으로 이사진과 사장들을 소집해라. 아직도 이런 쓰레기가 있단 말이지…….”

분노 가득한 연철무의 목소리에 연세연은 긴장하며 서둘러 그녀의 아버지, 연종진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자신이 뒤로 물러난 사이를 참지 못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녀석들이 있다는 사실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당장에라도 폭발할 기세였다.

“협약 건은 이 일을 내부에서 정리한 후 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미안하다.”

“알겠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연락 주마.”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뒷좌석에서는 차가운 분위기가 흘렀지만, 목적을 이룬 김강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었다.

이렇게 김강현이 일으킨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커다란 태풍이 되어 연화 그룹을 덮쳐오고 있었다.

* * *

며칠 후, 김강현은 강려원에게서 협약에 대한 정리가 끝났다는 보고서와 연락을 받고, US 그룹 전략기획실로 출근했다.

“실장님! 혹시 연화 그룹 소식 들으셨습니까?”

“응? 무슨 일 있습니까?”

“아직 뉴스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어제 연화 그룹이 완전히 뒤엎어졌습니다!”

“노 대리, 그게 무슨 말이야? 확실한 거야?”

“연화 그룹이 쉬쉬해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분명 오늘 저녁에는 뉴스에 뜰 겁니다.”

출근하자마자 전략기획실의 소식통인 노의무가 호들갑을 떨며 김강현에게 다가왔고, 출근하던 직원들도 노의무의 말에 호기심을 가지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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