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장. 연화 그룹과의 협상 (17/119)

8장. 연화 그룹과의 협상

“대장간의 화로를 1시간만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연철무의 눈썹이 심하게 찡그러지며 심기 불편한 기색이 드러났다.

대장장이에게 대장간의 화로는 유일무이 소중한 물건으로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빌려주거나 내어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연철무는 김강현의 눈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경험은?

“욕은 먹지 않을 실력으로 몇 년 동안 일을 배웠었습니다.”

“……따라와라.”

‘헛소리하지 않는 녀석이니…… 보면 알겠지.’

김강현을 몇 번 보지 않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일을 배웠다는 말을 믿고 그를 화로가 있는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대장간 안 화로의 불꽃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열기를 뿜어내고 있어 더위로 후끈후끈거렸다.

“필요한 것은?”

“이왕이면 도구들도 빌려 쓰겠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평소 연철무가 쓰던 도구들이 있었다.

검사에게 치면 검을 빌려달라는 말로 무례할 수 있지만, 연철무는 화로를 빌려준 김에 같이 빌려주고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다른 사람은 만들지 못하는 물건일 거라 예상한 연철무는 조용히 뒤편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예상대로 김강현은 능숙하게 화로 앞 의자에 앉더니 인벤토리에서 몇 가지 금속들을 꺼냈다.

‘크론과 아트롬?’

연철무는 김강현이 꺼낸 금속들을 보자 호기심이 생겼다.

크론과 아트롬은 활용성이 없는 금속이라 거의 버려지고 있는 형편인데, 다른 한 가지의 금속은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시작해 볼까?’

김강현은 연화 그룹과 미팅을 가지기 전 코팅 액체의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마법을 이용해 만들까 고민했지만 자신의 마나와 헬릭스의 마력이 섞이게 되어 효능이 떨어지거나 향상될 가능성이 있음을 떠올리고는, 연철무의 대장간을 빌리기로 마음먹고 찾아온 것이었다. 만약 연철무가 대장간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검천호의 집 옆에 대장간 화로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다음엔…….’

생각을 마친 김강현은 풀무질로 화로에 바람을 넣어 온도를 조절한 후 망치로 크론과 아트롬을 아주 작게 부수어 함께 녹이고, 또 다른 금속은 따로 녹이기 시작했다.

‘코팅 액체는 비율과 시간이 중요해…….’

그리고 정신을 화로에서 녹고 있는 금속들에게 집중했다.

크론과 아트롬을 녹이기 전에 미리 무게를 재 비율을 맞추었는데,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코팅 액체가 만들어지지 않아 이 비율을 맞추기 위해 굉장히 고생했다.

게다가 화로의 열기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만드는 데 굉장히 까다로웠다.

‘녹인 크론과 아트롬에 어스톤을 1 : 0.3 비율로.’

어스톤은 던전의 땅속에 숨어 있는 금속으로, 헌터들의 거래 내역에 존재하지 않기에 연철무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스톤의 존재를 알고 있는 김강현은 이 며칠 동안 던전을 돌아다니며 어스톤을 찾아냈다.

그리고 화로의 열기를 조절하며 어스톤을 조금씩 크론과 아크롬이 섞인 크론크에 넣기 시작했다.

‘금속이 액체화되고 있어?’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연철무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너무 놀라 커진 눈이 작아질 시간이 없었다.

보통 쇳물은 차가운 공기에 닿게 되면 식어 천천히 굳어지는 것이 정석인데, 김강현이 어스톤을 넣기 시작하자 액체화된 크론크가 굳지 않고 있었다.

“좋아. 완성이다.”

완벽한 불 조절을 통해 완성된 코팅 액체는 투명한 색을 띠고 있어 마치 점도를 가진 물과 같았다. 완성된 코팅 액체를 준비한 두 개의 유리병에 담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 그릇에 일부 남았다.

“그게 뭐냐? 어떻게 금속들을 조합했길래 액체화가 유지될 수 있는 거냐?”

연철무는 김강현이 화로를 쓴 시간은 30분에 불과했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기술의 향연에 대장장이로서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얼른 물었다.

“조합 방법은 저만의 방법이라 알려 드릴 수 없고, 이것에 대한 정체는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흐음, 그건 비기이니 어쩔 수 없겠지. 하면?”

“무구의 내구성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코팅 액체로, 사용 방법은 무구에 바르기만 하면 됩니다.”

“뭐, 뭣이?”

자신도 아무에게나 자신의 비법을 알려줄 수 없기에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코팅 액체의 존재를 알게 되자 아까보다 더욱 크게 놀라 소리쳤다.

연철무는 믿기지 않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 시험해 볼 수 있나?”

“물론입니다. 붓과 무구 두 개를 빌려주시겠습니까?”

바로 연철무가 대장간 한편에 놓여 있던 가슴 흉갑 두 개와 붓을 가지고 오자, 김강현은 그릇에 남은 코팅 액체를 가슴 흉갑 한 개에 발랐다.

코팅 액체는 순식간에 굳어졌지만 흉갑의 광택이 좋아졌을 뿐, 겉보기엔 옆의 흉갑과 차이점이 없었다.

“제가 볼 때 똑같은 재질로 양산된 무구인 것 같습니다.”

“그래. 불량품이긴 하지만 재질이나 강도 모두 동일하다.”

“그럼 이제 똑같은 힘으로 무구를 박살 내보십시오.”

자신만만한 김강현의 말에 연철무는 망치를 들어 코팅 액체를 바르지 않는 흉갑을 내리쳤다.

빠각!

흉갑은 단 한 번의 망치질에 산산이 박살이 나 버렸다.

이미 이를 예상했다는 듯 연철무는 무심한 표정으로 코팅 액체를 바른 흉갑을 망치로 내리쳤다.

쾅!

‘한 번 정도는 버티겠지.’

그런데 김강현의 말한 대로 흉갑은 부서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은 요행에 불과하기에 다시 연철무는 망치를 흉갑에 휘둘렀다.

쾅!

‘어? 이놈 봐라?!’

그런데 이번에도 흉갑은 부서지지 않고, 가느다란 실금만 났을 뿐이었다.

연철무는 전보다 강한 힘을 실어 망치를 내리쳤다.

쾅! 파지직!

그러자 이번에는 흉갑에 커다란 금이 갈 뿐, 앞의 무구와 달리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다.

세 번째 망치질에서 부서질 줄 알았던 흉갑이 네 번째에서야 부서지자 내구력이 최소 2배 이상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휴우, 이거 놀랍군. 액체를 바른 것으로도 이렇게 내구력이 높아질 줄은…… 대규모로 만들 수 있다면 엄청나겠어.”

“이번엔 비율과 불 조절을 완벽하게 했기에 최상급의 코팅 액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만약 대량으로 만든 코팅 액체를 발랐다면…… 완성도가 떨어져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에 부서졌을 것입니다.”

‘이건 팔릴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야.’

대장장이 연철무가 아닌 장사꾼 연철무가 생각해 보니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잡아야 하는 아이템이었다.

“혹시 팔기 위해 생각해 놓은 루트가 있냐? 없다면…… 좋은 곳을 소개시켜 주고 싶군.”

“회사를 한 군데 정해 그곳의 관계자와 미팅을 가질 생각입니다.”

“아쉽군. 혹시 만약 그 계약이 실패하면 나한테 연락하거라. 솔직히 개인적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아이템이야.”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연철무는 김강현의 손에 들린 코팅 액체를 보며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나 코팅 액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지.’

이러한 아이템이 시장에 나온다는 정보를 알게 된 이상 연철무는 코팅 액체가 시장이 풀리기 전에 다가올 충격을 준비할 계획을 세워야 함을 느꼈다.

“그리고 두 병 중 한 병을 줄 수 있겠느냐? 값을 원한다면 값을 치르겠다.”

“코팅 액체 한 병은 그냥 드리겠습니다.”

“흠?! 그래도 되겠느냐?”

“하하하, 대장간을 빌려주신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장사꾼 연철무보다는 대장장이로서의 호기심으로 불타고 있던 연철무였다.

안 그래도 코팅 액체의 조합법을 알아내고 싶던 차였으니, 김강현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냉큼 받았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가봐라.”

코팅 액체를 받자 연철무는 바로 금속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달려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그리고 김강현이 나가자마자 크론과 아트롬, 그리고 수많은 금속들을 수레에 한가득 싣고 나왔다.

“그럼 이놈을 분석해 볼까?”

연철무는 화로 앞에 놓인 코팅 액체를 바라보며 각오를 다졌다.

* * *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무렵, 정장을 입은 김강현의 표정에 불만이 가득했다.

‘몸에 딱 맞긴 한데…… 답답하네.’

며칠 전, 강려원으로부터 연화 그룹의 담당자와 미팅 날짜가 잡혔다는 연락을 받자 정장 한 벌을 구매했다.

그렇지만 핏을 살리기 위해 사이즈가 딱 맞는 정장을 구입하다 보니 파티의 연회복처럼 움직임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김강현의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헬릭스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많이 바빠 보이는구나.”

“아, 그러고 보니…… 며칠째 대련을 하지 못했네. 오늘 저녁엔 시간을 내서 같이 수련을 하자.”

“그러지 않아도 되느니라. 이 몸께선 언제나 바쁘니까!”

‘아니. 안 움직이면 네가 돼지로 변할 것 같아.’

이 순간에도 헬릭스는 아침 식사 전 에피타이저로 끊임없이 포도를 먹고 있었다.

이 집에 온 이후로 김강현은 헬릭스의 입에서 음식이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마력을 운용하면 음식의 칼로리는 모조리 소모되어 사라지겠지만,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헬릭스의 몸은 돼지처럼 통통해지고 있었다.

‘돼지를 키우는 건지, 소환수를 키우는 건지 헷갈린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외출 준비를 마친 김강현이 방을 나갈려던 찰나 헬릭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강현.”

“응?”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다니도록. 마나의 흐름이 격변하고 있느니라.”

“아! 아마 돌연변이 던전이 나타난 이후였지.”

“이 몸도 틈틈이 조사를 하고 있지만…… 느낌이 좋지 않구나.”

고개를 끄덕거리며 헬릭스의 말에 공감했다.

‘덕분에 세계 현터협회에서도 난리가 아니었지.’

유지운에게 돌연변이 던전의 존재를 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던전의 등급을 무시한 몬스터들의 등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다.

세계 현터협회는 이를 돌연변이 던전으로 지정하고 급히 던전의 등급을 높였지만, 당시 돌연변이 던전에 들어가 있던 헌터들의 8할이 죽음을 맞이했다.

돌연변이 던전이 나타난 후로 지구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이 불안정지고, 마력의 양이 증가하고 있어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헬릭스도 움직이고 있었다.

“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지?”

“……진척이 없느니라.”

“단기간에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하자고.”

아직 헬릭스는 돌연변이 던전의 원인을 찾으며 배후로 짐작되는 자를 김강현 몰래 찾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 답답했다.

김강현의 말대로 조급함을 버려야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럼 이따가 보자.”

“아, 참! 올 때 양념치킨을 꼭 사 오거라! 꼭이니라!”

“하핫, 알았어.”

김강현은 헬릭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강현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강 부실장님.”

“어서 차에 타시지요.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밖에 나오자마자 강려원이 차를 준비하고 김강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략기획실의 업무용으로 배정된 회사 차로 운전수까지 같이 배정되어 편하게 이동할 수 었다.

* * *

“여기 말씀하신 서류들입니다.”

차에 타자마자 강려원은 김강현이 요청했던 서류들을 건네주었고, 김강현은 빠르게 그 내용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서류들에는 연화 그룹의 중요 인사들과 헌터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헌터기획실에 대한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응?”

“무슨 일이십니까?”

“아닙니다.”

‘연화 길드에 어느 정도 연화 그룹 지원이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줄은.’

연화 그룹의 중요 인사 목록을 보던 중 익숙한 두 명의 이름을 발견하고, 김강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사보다는 공을 생각하자.’

김강현은 우선적으로 앞으로 만나게 될 헌터기획실 사람들의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후,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차는 연화 그룹의 정문에 도착했다.

“김강현 실장님.”

“네. 들어가도록 하죠.”

그리고 강려원의 말에 김강현은 차에서 내려 연화 그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1층에 US 그룹의 전략기획실장님과 부실장님이 도착했다고 하니 회의실로 안내해 주세요.”

“네. 실장님.”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하네.’

연화 그룹의 헌터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오돈형은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US 그룹에서 전달받은 서류를 챙기며 생각했다.

‘헌터 시장에서 연화 그룹이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

보안을 위해 서류에는 두루뭉술한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헌터기획실 내부에서도 과연 어떤 아이템일지 여러 가지 추측을 했다.

하지만 이것이다 싶은 아이템이 나오지 않아, 오돈형은 US 그룹에서 어떤 아이템을 제안할지 굉장히 궁금했다.

‘아마 저 사람이 전략기획실장이겠군.’

회의실로 들어간 오돈형은 김강현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강려원에게 먼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헌터기획실장 오돈형입니다.”

“안녕하세요. 전략기획부실장 강려원입니다.”

‘뭐, 뭐야? 그럼?’

그런데 예상치 못한 강려원의 대답에 오돈형의 시선이 김강현에게 향했다.

김강현은 미리 강려원이 준비해 준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건넸다.

“전략기획실장 김강현입니다.”

“하하하, 처음 뵙겠습니다.”

‘나이가 어린 거야? 아니면 굉장히 동안?’

오돈형은 김강현의 나이를 측정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명함을 받은 후 자리에 앉아 미팅을 주도하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US 그룹의 전략기획실에서 보내주신 제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자체적으로 판매하는 게 더 이익일 텐데, 굳이 다른 회사와 협력해 판매하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이 아이템을 팔기 위해선 헌터 장비들이 필요한데, 아쉽게도 US 그룹에서는 헌터 장비의 제조 라인과 판매 라인이 없습니다.”

“으음…….”

“게다가 헌터 시장에는 이미 많은 회사들이 진출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체적으로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보단 협력을 맺어 라이선스 수익을 얻는 편이 효율적이라 생각되어 이 자리를 요청드렸습니다. 더불어 물건을 팔기 위해선 때가 있습니다. 저희 쪽에서 제조 라인을 만들고 이 물건을 팔다간 나중에 누군가 개발해 판매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논리적인 김강현의 말에 오돈형은 수긍하며 말했다.

“그럼 그 아이템이 뭡니까?”

“그건…… 코팅 액체입니다.”

“코팅 액체?”

김강현의 말에 옆에 있던 강려원이 코팅 액체와 함께 그 위력을 시험할 수 있는 무구들을 같이 꺼내놓았다.

그리고 코팅 액체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연을 하자 오돈형은 계속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건 먹힌다. 무조건 시장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야!’

자신들도 이러한 아이템을 기획하고 제작해 보았지만, 단가와 제품의 효용이 맞지 않아 중간에 제작하기를 포기했다.

그런데 설명 과정에서 제작에 들어가는 총비용을 듣자, 1개를 팔면 최소 30~40%의 마진을 남길 수 있어 잡지 않으면 바보나 다름없었다.

‘확실히 제품 라인이 없는 US 그룹에서 코팅 액체를 파는 건 불가능해. 오히려 제품 라인이 많은 우리가 중간에서 팔기만 해도 US 그룹에선 커다란 이익인 셈. 잠깐! 이렇게 되면 기술 이전 및 라이선스 계약을 할 때 중간에 한몫 잡을 잡는 것도 어렵지 않겠는데!’

제품에 대한 확신이 생기자 오돈형은 딴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US 그룹에서 연화 그룹에 제안하는 코팅 액체의 지분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기 준비했습니다.”

그 말에 강려원이 준비한 견적서를 오돈형에게 내밀었다.

‘흐음…….’

견적서에는 협력 관계를 맺음으로써 양 회사가 얻게 되는 지분과 기술 이전에 대한 비용, 그리고 코팅 액체의 라이선스 비용까지 철저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내부에서 수차례 회의를 통해 정한 마지노선입니다. 이 아래의 조건을 제시하신다면 더 이상 거래는 없습니다.”

‘100%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US 그룹에는 10%의 순이익과 라이선스 비용으로 5%. 그리고 기술 이전 비용이 5조라고?!’

단호한 강려원의 대답에 오돈형은 자세히 견적서를 살폈는데, 생각보다 기술 이전 비용이 커, 중간에 돈을 착복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돈형은 이를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좋은 제안임에 틀림없군요. 그렇다면 일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중간 과정을 좋게 지나가기 위해 이게 좀 필요하지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구나.’

돈을 제스처로 표현하는 오돈형을 보며 김강현은 머릿속에 있는 그의 정보를 떠올렸다.

외적으론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지만, 뒷조사를 하니 타 업체로부터 커넥션으로 끊임없이 돈을 받고 있었다. 이 돈으로 밤이면 유흥과 도박을 즐기기 바빠 이번에도 유흥으로 탕진할 것이 분명했다.

“이 사람이! 어디서!”

“강 부실장님. 괜찮습니다.”

평소 부정부패는 용납하지 않는 강려원은 오돈형의 제안에 화를 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김강현의 제지로 이를 실천하지 못했다.

‘설마 대놓고 요구할 줄은!’

김강현에게 연화 그룹의 정보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강려원은 오돈형의 대한 내용을 떠올렸다.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빨리 이 미팅을 마무리하고 다른 회사를 알아보려고 하는데, 오히려 김강현이 노골적으로 오돈형에게 말했다.

“뒷돈을 이야기하는 거군요.”

“물론입니다. 설마 맨입에 일이 술술 풀리겠습니까?”

“그렇군요. 그럼 얼마 정도 예상하십니까?”

“이왕이면 아주 큰 한 장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주 큰 한 장이라는 말에 김강현은 짐작 가는 것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른 척 말했다.

“하하하, 실은 제가 이런 일에는 처음이라…… 많은 도움을 얻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까 반응으로 보아 부실장님은…….”

“걱정하지 마십쇼.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회유해서 이 사람도 같이 갈 테니 우리 이야기가 새어 나갈 염려는 없습니다.”

[계획이 있으니…… 지금은 조용히 제 말을 따라 주세요.]

강려원은 갑자기 머릿속으로 김강현의 목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랐지만, 미리 헌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금방 원래의 얼굴 표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급히 김강현의 말에 동조하는 말을 꺼냈다.

“제가 실장님께 이야기를 듣기 전이라 놀랬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하하! 이제야 안심되는군요. 그럼 저도 솔직하게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덕분에 오돈형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저희끼리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네.”

“실은 제가 줄을 대고 있는 이사님들이 있어, 그분들께 부탁드리면 쉽게 돈을 빼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분들에게도 일부분을?”

“네. 견적서를 보니 US 그룹에 내어줄 지분과 라이선스 비용은 건드릴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 기술 이전 비용에서 돈을 빼돌릴 생각입니다.”

“흐음…….”

김강현은 신세계를 발견한 듯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오돈형의 말에 집중하자, 이 반응에 오돈형은 신나게 입을 열었다.

“표면상 기술 이전 비용은 5조입니다. 하나 연화 그룹이 코팅 액체 제작에 필요한 기기들과 노하우를 일부 가지고 있다면 4조로 다운그레이드할 명분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럼 남은 1조를 챙길 수 있을 것입니다.”

“1조라…… 생각보다 크군요.”

“하핫. 그렇게 큰돈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주머니에 들어가는 건 1할에서 2할 정도일 겁니다. 그 돈을 이사님들에게 나누고 계약서 조작을 위해 공을 들이려면 또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흐음…….”

오돈형의 제안에 김강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척 생각하다가 말했다.

“좋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 실장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김 실장님!”

이후로 완전히 신이 난 오돈형은 지금까지 커넥션을 받은 다른 사례들을 말하면서 자신만 믿으라며 호언장담하며 이면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까지 술술 털어놓았다.

이 과정에서 김강현은 오돈형의 말에 호응하고 장단을 맞춰주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려원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싫은 내색을 참고 견디고 있었습니다.

“오 실장님. 이번 계약만 끝나면 거하게 한잔 어떻습니까? 제가 물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연락만 주십시오. 제가 보답으로 사도록 할 테니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나만 믿으세요. 제가 연화 그룹의 헌터기획실장입니다.”

“그럼 다음에는 수정된 견적서와 계약서, 그리고 이면 계약서를 가지고 뵙겠습니다.”

“좋습니다!”

김강현은 이야기를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오돈형과 악수를 나누었는데, 오돈형은 아주 만족스러운 미팅을 한 덕분에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갈 줄 몰랐다.

더불어 강려원은 끝났다는 생각에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르릉! 우르르르릉!

그때, 갑자기 건물이 흔들림과 동시에 사람들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강한 땅울림이 느껴졌다.

“어어어!”

“지, 지진이다!”

“사, 사람 살려!”

건물 곳곳에서 사람들이 비명 소리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다행히도 지진은 5초 후 멈췄으며 무너진 건물도 없고 다친 사람들도 없었다. 다들 안도하며 뒤늦게 도착한 지진 알람을 확인했다.

“후유, 갑자기 지진이라니…… 더 이상 한국도 안전한 곳이 아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응? 김 실장님?”

미팅을 하던 그들도 대처법에 따라 지진을 느끼자마자 책상 밑으로 몸을 숙였지만 김강현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서쪽 방향을 바라보며 표정이 굉장히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것은 마치 전쟁을 앞둔 사람의 각오를 보는 것처럼 심각했지만, 그는 금방 주변 분위기를 읽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처음 지진을 경험하다 보니 당황한 나머지 심하게 긴장했네요.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입니다, 실장님.”

“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김강현은 강려원과 함께 인사를 함께 헌터기획실을 나왔다.

그리고 1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자 그동안 조용히 있던 강려원이 속마음을 꺼냈다.

“정말 그와 이야기한 대로 리베이트를 할 생각이십니까?”

“강 부실장님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김강현은 질문과 함께 품속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 * *

“우선 이걸 들어보고 이야기를 하죠.”

김강현이 꺼낸 헌터폰에는 회의실에서 오돈형과 나누었던 대화가 모조리 녹음되어 있었다.

강려원은 놀란 표정으로 헌터폰과 김강현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저도 사람이라 돈을 좋아하지만 정당하지 않는 방법으로 버는 돈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중요한 미팅이나 회의 자리에서는 그 내용을 녹음하는 편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내용을 정리하거나 복기할 때 도움이 되니까요. 설마 이런 대화를 나눌 줄 몰랐지만 잘 활용하면 좋은 패가 될 겁니다.”

“아!”

‘미처 생각 못 했어!’

평소 회의 때에는 김강현처럼 회의 내용을 잘 정리하기 위해 요약이나 녹음을 했었는데, 이번 미팅에서는 정신이 없어 까먹고 있었다.

“이번 일만 잘되면 강 부실장님을 비롯해서 전략기획실 직원에게 보너스가 지급되도록 회장님께 건의할 테니 커넥션 금액은 잊어주세요.”

강려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다행이군요. 제가 생각했던 사람이어서 다행입니다.’

미팅 자리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강려원은 김강현이 오돈형의 말에 동조하며 리베이트를 수락하는 것 같아 마음이 철렁거렸다.

이렇게 돈에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모든 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잠시 김강현을 믿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 가지 더 할 말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리자마자 김강현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방금 지진은 경보에 불과하니 지금 당장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세요!”

“그게…… 무슨?”

“길게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곧 서울 전체가…… 싸움터가 된다는 겁니다! 회장님, 그리고 가족들에게 연락해 얼른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키세요.”

“시, 실장님!”

던전이 나타난 이후 대한민국은 곳곳에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대피소를 마련했고 1년에 1번씩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서울은 이 대피령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기에 상황이 다급했다.

그리고 강려원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김강현은 인벤토리에서 전투에 편리한 옷을 꺼내 입고 마검을 들고서 연화 그룹을 빠져나왔다.

* * *

“대체! 대체 뭐가 문제인 거냐?!”

쾅!

며칠째 연철무는 자지 못해 부스스한 머리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눈앞의 쇳덩어리를 향해 망치를 내려치며 짜증이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분명 김강현이 마지막에 제련한 금속은 어스톤이 확실해! 그럼 비율과 불 조절이 문제인데…….”

김강현이 코팅 액체를 만들던 방법을 떠올려 스스로 코팅 액체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무단히 노력해 왔다.

덕분에 마지막에 제련된 금속이 몬스터가 아닌 던전의 땅속에서 채취할 수 있는 어스톤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더불어 김강현이 주고 간 코팅 액체의 샘플과 비교하여 분석하고, 제조 과정을 세밀하여 기록하여 코팅 액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완성된 코팅 액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건 녀석들에게 보여줘야 하니 더 이상 쓸 수 없고…… 막막하네.”

남은 코팅 액체는 극히 소량으로, 이젠 한 부분만 코팅할 수 있는 분량만 남아 있었다.

이 코팅 액체는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로 약속을 해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할 수 없지. 우선 샘플 없이 계속 만들어볼 수밖에.”

마음 같아서는 계속 코팅 액체를 만들고 싶으나, 선약을 떠올리며 억지로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땀으로 찌든 몸을 깨끗하게 씻고 작업복이 아닌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입고서 상점 밖으로 나왔다.

“할아버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래. 세연아. 오랜만이로구나. 나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아.”

“아니요. 저도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오히려 할아버지께서 고생이 많죠. 지금 연화 그룹 헌터 무구들의 제조를 총관리하고 계시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구나.”

밖에선 한 대의 세단과 여성이 연철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성은 지난번 김강현과 함께 돌연변이 던전을 클리어한 연세연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조손관계였다.

두 사람은 선약 시간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차에 탄 후 대화를 이어나갔다.

“잠을 못 주무셨는지 피곤해 보이네요. 괜찮으세요?”

“괜찮다. 요즘 만들려고 하는 게 있는데 잘 풀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보이냐? 하긴…… 요즘 재미있는 녀석을 만났거든.”

연철무는 연세연과 대화를 나누며 김강현을 떠올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알면 알수록 신기한 녀석이야.’

처음엔 검천호의 이름을 파는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자신이 모르는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무구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게다가 김강현이 매번 가지고 오는 최상품의 몬스터 부산물로 여러 가지 물건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최근 알게 된 사람이 있는데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 지식들을 많이 알고 있고 헌터로서의 실력도 뛰어나더군요.”

“오호~”

‘이 아이가 인정할 만한 녀석이 있어?’

연세연의 말에 연철무는 관심이 생긴 듯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가 아는 연세연은 자존심이 높은 만큼 또래 헌터들 가운데에서도 실력이 뛰어나 쉽사리 남을 칭찬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혼자 C급 던전에 들어갔었는데, 클리어하기 전에 돌연변이 A급 던전으로 변해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뭐, 뭣이?”

돌연변이 던전이라는 연철무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요즘 헌터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돌연변이 던전이어서, 연철무도 관심 있게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클리어할 수 있었던 게냐? B급 헌터인 너로선 클리어하기 어려웠을 텐데…….”

“실은 우연히 던전에 들어와 있던 한 사람을 만났는데, 소환수와 함께 압도적인 무력으로 A급 몬스터로 추정되는 오크 주술사와 족장을 단번에 무찌르더군요. 더불어 시중에는 판매하지 않는 치료 연고를 제작하는 스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녀석이 C급 던전에 들어왔다고…… 그만한 실력이면 높은 헌터 등급에 괜찮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겠구나.”

“아니요.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C급 헌터입니다.”

확신에 찬 연철무의 말에 연세연은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허어…… 그런 녀석이 있단 말이야? 역시 세상은 넓구나.”

두 사람은 동일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설마 똑같은 인물일지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여전히 회사 일에 치여 바쁘게 지내십니다. 게다가 요즘은 길드 일에도 도움을 주고 계셔서 정신없어 보이고요.”

“이제 헌터 무구 쪽은 시장에서 자리를 잡았으니…… 슬슬 정리를 하는 것이 맞겠구나.”

“네. 이제 복귀를 생각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할아버님.”

화제를 돌려 이야기를 나누던 연철무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 이상의 휴가는 끝이구나.’

1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대장장이 일을 하기 위해 회사에 관련된 업무는 아들에게 떠넘기고 길드에 대한 운영은 연세연에게 맡겼다. 대장장이 일을 하며 헌터 무구 제조의 총괄을 맡는다는 조건이 있었으나, 좋아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어 쉽게 수락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점 회사와 길드가 점점 커지자 그의 빈자리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어 이제 복귀 시기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빨리 그룹과 길드를 분리해야겠어.’

그가 속해 있는 연화 길드를 키우기 위해 길드를 일부러 연화 그룹 안에 포함시켰다. 물론, 길드를 키우는 비용은 연화 그룹이 아닌 연철무의 사비로 이루어졌으나 연화 길드에 속해 있음으로써 얻는 혜택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연화 그룹이라는 안전한 울타리에 있다가는 그 안에 갇혀 약해질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더 이상 연화 그룹의 지분이 커지면 계열사로 속해 독립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러자꾸나. 내일부터 길드에 복귀하도록 하마. 그동안 부길드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느라 고생했다.”

“네, 길드장님.”

그때, 갑자기 차가 격하게 흔들리더니 진동이 전해졌는데 그 시간은 5초에 불과했다.

“지진?”

“다행이 금세 멈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불안감은 뭐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지진이라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하니 사람들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원래 생활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5초밖에 되지 않는 지진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연철무의 마음속에선 불안이 쉬이 없어지지 않고, 마치 커다란 일을 앞둔 경고처럼 계속 가슴이 뛰며 진정되지 않았다.

그사이 세단은 연화 그룹 본사 정문 앞에 도착했다. 연철무와 연세연이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다급히 뛰어나오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강현?”

“김강현?”

김강현은 그들을 보지 못했는지 지나쳐 달려갔는데, 연철무와 연세연은 서로 김강현을 알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저놈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아까 차에서 말씀드린 사람이 강현입니다. 할아버님.”

“허허허, 세상이 넓은 게 아니라 참 좁군.”

말과 함께 연철무는 김강현을 뒤쫓아 갔고, 그 뒤를 연세연도 뒤따라갔다.

* * *

“누구?”

김강현은 연화 그룹을 나오자마자 자신을 뒤따라오는 두 명의 기척을 느끼고 따돌리려고 했지만, 계속 쫓아오자 어느 건물의 옥상 위에서 멈춰 서 그들을 기다렸다.

“연 어르신? 세연?”

“지금 어딜 그리 가는 것이냐? 괜찮으면 잠깐 이야기를 하자꾸나.”

“지금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김강현은 느긋한 연철무의 말에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의 게이트가 열릴 것입니다.”

“네?!”

“뭐엇?!”

“그리고 한국에선 서울에 게이트가 나타납니다.”

믿을 수 없는 말에 연철무와 연세연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강현은 마나의 격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진을 시발점으로…… 마력이 모여들고 있어.’

원인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력이 일정 지점에 모이면 마나와 충돌을 일으키고, 차원간의 균열이 일어나 게이트가 생성된다는 것이었다.

지진이 일어난 시점부터 김강현은 계속 마력이 모이는 것을 신경 쓰며 확인했지만 아직 능력이 미흡하여 지구에 마이너스 마나가 생성되는 장소를 전부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인근 나라인 중국, 북한, 일본, 러시아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감지되었으니 전 세계에서 일어났을 거라 파악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강현이냐?”

-네, 검 어르신.

때마침 헌터폰으로 검천호의 연락이 오자 김강현은 볼륨을 스피커로 바꾸어 연철무와 연세연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너도 느꼈겠지?

“네. 거리상 한강공원으로 생각됩니다.”

-그래. 마침 근처에 있어 금방 발견했는데…… 모이는 마력의 양을 짐작하건대 얼마나 큰 게이트가 열릴지 짐작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같은 현상이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어.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서울 한 곳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곧 현터협회의 소집령과 함께 정부에서 사람들의 대피령이 떨어질 것이다. 너는 원래 C급 헌터라 사람들의 대피를 도와야 하나 내가 따로 말을 해둘 테니 이쪽으로 합류해라.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검천호가 다급히 전화를 끊자, 연철무와 연세연도 그제야 김강현의 말이 사실임과 동시에 심각한 상황임을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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