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낙하산 전략기획실장
돌연변이 C급 던전을 클리어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중에 유지운을 통해 이 C급 던전을 확인해 보니 김강현이 들어갔을 때처럼 돌연변이 몬스터들은 나타나지 않고 정상적인 몬스터들만 등장했다고 들었다.
유지운은 김강현에게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나, 돌연변이 오크들의 시체를 보여주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유지운은 또다시 돌연변이 던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면밀히 조사에 들어갔다.
그동안 김강현은 평소와 다름없이 수련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명원으로부터 김고엽이 자신을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아 방문하기로 했다.
“후우, 이번에는 조용히 들어갔으면 좋겠네.”
김강현은 눈앞 US 그룹의 본사 건물을 바라보며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방문, 헙!”
“쉿!”
1층의 로비로 들어가자 안내데스크 직원이 반갑게 김강현을 맞이해 주었는데, 지난번에 김강현을 안내해 주었던 직원이었다.
그녀가 김강현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치려고 했지만, 다급히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해 다행히 로비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막았다.
“조용히 출입증 하나만 발급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출입증과 직원증이 없으면 출입을 할 수 없도록 보안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김강현은 직원에게 출입증을 받은 후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비서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이명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도련님.”
“네, 오랜만에 뵙네요. 비서실장님. 그런데 그 도련님이란 호칭은 제가 좀 부담스럽네요.”
“허헛. 회장님의 손자분이신 도련님을 어떻게 부릅니까? 철진 님도 제게는 도련님인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땐…… 아시겠지요?”
“네. 물론입니다.”
마침 비서실의 직원들이 모두 외근으로 자리에 없어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가시지요.”
김강현은 그를 따라 비서실을 지나쳐 회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도착하자 이명원은 들어가지 않고 김강현만 회장실로 들어갔다.
“큼, 왔느냐?”
“네.”
김고엽은 김강현을 보자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김강현도 불편한 기색이 가득한 채 대답했다.
두 사람은 지난번 다툼의 영향으로 서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저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김강현은 한시라도 이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론을 꺼냈다.
“네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으니 기다려라.”
“……?”
“회장님, 도련님. 차를 준비했습니다.”
밖에서 이명원이 준비한 차를 가지고 회장실로 들어오자, 김고엽은 기다렸다는 듯 이명원이 준비한 차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그런데 이명원은 세 개의 찻잔을 놓고 나갔다.
“회장님, 사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똑똑똑.
곧 인터폰을 통해 전달된 이명원의 목소리와 함께, 회장실 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아, 아버지?’
김강현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의 얼굴이 김철진과 거의 흡사하게 생겨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니 들어온 사람은 김철진과 달리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복장도 굉장히 단정하며 깔끔했다.
평소 김철진은 밤샘과 야근을 자주 하느라고 머리가 부스스하고, 복장도 단정하지 못한 적이 굉장히 많았다.
“어서 오거라.”
“네. 그런데 이분은?”
“철진이의 큰애다.”
“……!”
남자는 김고엽의 말을 듣고 놀랐다가 곧 차가운 표정으로 뿔테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리며 김강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김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강현입니다, 큰아버지.”
“김우진이다.”
‘마치 뱀을 연상케 하는 사람이야.’
김우진을 보자 김강현은 어느 동물이 떠올랐다.
겉모습은 철두철미하고 냉정한 사업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눈동자를 통해 살짝 엿본 그의 내면은 기분 나쁜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철진이의 아들이라고? 갑자기 이놈을 왜?’
김우진은 김강현의 겉모습을 보고 집안에서 도망쳤던 김철진과 성격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동안 연을 끊었던 녀석을 왜 불렀는지 궁금해했다.
이렇게 간단히 통성명을 마친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김고엽의 말을 기다렸다.
“오늘 너희들을 같이 부른 건 단순히 안면을 트라고 부른 게 아니야.”
“……?”
“……?”
“우진아, 네게 US 전자 사장 자리를 맡긴 이유가 무엇이냐?”
“US 그룹을 물려받기 위한 후계자 수업 때문이죠.”
US 전자는 US 그룹에서 가장 큰 이익을 내고 있는 사업체로, 가장 믿을 수 있는 김우진에게 맡겨져 있었다.
더불어 US 그룹을 다스릴 수 있는지 시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랬지. 한데 요즘 회사 경영엔 소홀하고 파벌을 만든다는 소문이 들리더구나.”
“……?!”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게냐?”
‘아버지 귀에 안 들어가게 조심하고 조심했거늘!’
평소 김고엽의 성격이면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로 자신의 목을 쳐낼 것이 분명했기에, 김우진의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갔다.
회사 곳곳에 김고엽의 눈과 귀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심어져 있어,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면 모두 김고엽에게 전달되었다.
실제 소문대로 김우진은 US 그룹에서 자신의 파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 소식이 벌써 김고엽의 귀에도 들어갔을 줄 몰랐기에 속으로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최근 새로운 사업으로 이사들과 각 부서의 장들로부터 인재들을 추천받아 인사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 얼마 전 보고를 받았지.”
“네. 한데 이 과정이 과해 그렇게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제가 경영에 소홀히 하고 회사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파벌을 만들겠습니까?”
“흐음. 그렇구나. 그럼 내용이 와전되어 그런 소문이 퍼진 게로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최대한 인사 평가를 빨리 마무리 짓겠습니다.”
‘앞으로 좀 더 조심해야겠어.’
김고엽의 눈초리에는 아직 의심이 가득했지만, 김우진의 유들거리는 말에 그냥 넘어가는 눈치였다.
김고엽은 헛기침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마. 앞으로 강현에게는 US 그룹의 헌터 사업 팀장직을 맡길 생각이다.”
“제, 제가 말입니까?”
김강현의 의사는 상관없이 이미 김고엽에 의해 모든 결정이 이루어졌다.
“회장님! 설마…….”
“그래. 너와 동일하게 강현에게도 후계자 수업을 진행할 생각이다!”
“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김강현은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난번 김고엽이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한 것은 자리를 하나 만들어 일을 시키겠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을 넘어 팀을 만들어 던지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강현을 US 그룹의 후계자 싸움에 던져놓았다.
‘이놈이…… 내 자리를 노린다고?’
김우진은 김강현이 더 이상 조카가 아닌 적이라고 인식하고 노려보며, 김고엽이 왜 김강현을 부른 건지 이해했다. 최근 자신의 파벌을 만들기 위해 신경 쓰고 있는 걸 들켜 이를 견제하기 위해 김강현이라는 분신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사이 김고엽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 평생을 바쳐 US 그룹을 만들었고, 순순히 능력도 없는 녀석에게 물려줄 생각 없다. 그러니 경쟁해라! 가장 뛰어난 자가 US 그룹을 가지게 될 것이야!”
김우진은 믿기지 않는 듯 김강현과 김고엽을 번갈아보다가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하하, 좋습니다. 회장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순순히 당할 것 같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그리고 속으로 차가운 냉소와 함께 이를 갈았다.
“너는 어떻게 할 테냐?”
“받아들이겠습니다.”
처음부터 김강현에게 결정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거절한다면, 김고엽은 가지고 있는 권력과 돈을 이용해 자신의 가족들을 압박할 것이었다.
“경쟁을 하기 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
“무엇입니까?”
“여기 김우진 사장은 오래 회사 일을 했기에 직접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인프라와 실력이 있지. 그리고 회사의 이사들도 두루 알고 있고 말이야.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없는 김강현 팀장과 경쟁하기에는 한쪽이 너무 불공평하지 않느냐?”
“으음…… 최소한의 기반이 주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이해가 빨라서 좋구나. 네 말대로 헌터 사업은 전략기획실에서 실시하고 김강현을 전략기획실장으로 임명, 겸임시킬 생각이다.”
그 말에 김우진은 눈썹이 심하게 찌푸리며 기분이 나빠졌다.
‘회사에서 대놓고 힘을 실어주겠다고?’
현재 US 그룹에서 가장 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부서는 회장 직속의 전략기획실이었다.
전략기획실은 그룹 내 모든 사업에 대한 권한이 최우선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대형 사업을 진행하기 전 전략기획실의 검토에서 탈락이면 다시 준비를 해야 했다. US 전자도 전략기획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긴장할 정도로 전략기획실장은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자리였다.
만약 김강현이 전략기획실을 등에 업고 힘을 휘두른다면 김우진으로서도 어떻게 대항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단, 전략기획실장은 6개월 겸임으로 헌터 사업 프로젝트와 같이 책임질 거다. 이후에는 전략기획실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생해야 할 것이야!”
“네, 회장님.”
“예.”
그 말에 김우진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6개월? 그 시간엔 절대 불가능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6개월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짧은 시간으로, 기획을 만들고 기획에 맞는 사람들을 배치, 프로젝트가 시작할 무렵이면 6개월이 모두 흘러가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전략기획실의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룹의 모든 프로젝트를 맡아 병행하기 때문에 헌터 관련 사업을 6개월 안에 끝낼 수 없을 것이었다.
더불어 전략기획실장이라는 자리를 맡은 이상 헌터 사업 프로젝트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업까지 관여하게 되어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과연 내 의도를 알아차렸을까?’
김고엽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는 김강현을 보았다.
‘6개월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라…….’
김강현의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외국의 유명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것도 없는 낙하산이 그룹 내 가장 뛰어난 부서인 전략기획실의 실장을 맡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선 6개월 안에 자신의 능력을 보임과 동시에 확실한 성과가 필요했다.
* * *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전략기획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해!’
더불어 김강현은 김고엽의 숨겨진 뜻을 알아차렸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존재한다면? 전략기획실이야말로 US 그룹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김고엽의 판단이었다.
‘숨겨놨던 패들을 꺼낼 때가 됐네.’
일전에 헬릭스와 이야기했던 테라의 지식들과 경험들을 풀어놓을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는 이 지식들을 꺼내놓아도 기존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회사들로부터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어 보류하고 있었지만, US 그룹과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안에 손님들이 계십니다.”
“응? 밖에 웬 소란이냐?”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웅성거림이 들리더니 그 목소리가 회장실 바로 문 앞까지 들려왔다. 김고엽은 인터폰으로 밖의 상황을 알아보았다.
-회, 회장님. 아, 아가씨께서 방문하셨습니다.
“그래……? 안으로 들이거라.”
‘아가씨?’
인터폰에서 들려온 대답에 김고엽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김강현은 아가씨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김고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회장실의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뛰어들어 왔다.
그녀는 긴 생머리에 옅은 화장과 수수한 복장임에도 옆을 지나가면 누구나 뒤돌아 다시 볼 정도로 굉장히 예뻤다.
“할아버지~!”
“허허허, 우리 유나 왔구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 아버지?”
“오랜만이로구나.”
그녀, 김유나는 김고엽에게 인사를 하다가 건너편 소파에 김우진이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자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러다 낯선 사람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아버지, 혹시 중요한 회의 중에 제가 들어온 게 아닌가요?”
“아니야. 네가 오기 전에 모든 이야기가 끝났단다. 그러고 보니 소개해 주어야겠구나. 인사하거라. 네 동생이다.”
“네?!”
김유나가 놀라 김강현의 얼굴과 김고엽, 김우진의 얼굴을 번갈아 보니, 이목구비가 비슷하게 닮아 있었다.
“서, 설마……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
“뭐?!”
“……허허허허헛!”
그 말에 김우진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김고엽은 멍하니 있다가 웃겨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음을 느끼고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그동안 연을 끊고 지냈던 아들…… 네게는 작은아버지 쪽 가족이란다. 사촌 동생인 셈이지. 서로 인사하거라. 이쪽은 네 사촌 누나인 김유나다.”
“하. 하. 하. 하. 하.”
“처음 뵙겠습니다. 김강현입니다.”
김고엽은 친절하게 김유나와 김강현에게 서로를 소개시켜 주었으나, 김유나는 이상한 생각을 했던 자신에게 부끄러워 어색한 웃음 소리만 나왔다.
하지만 금세 정신 차리고 반갑게 김강현을 맞이했다.
“헤헤헤. 난 김유나라고 해.”
“네, 네…….”
“보니까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 것 같은데 편하게 말해. 이게 무슨 일이야? 작은아버지가 있었다는 건 얼추 짐작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큰 동생이 딱 나타날 줄 몰랐어!”
김강현을 이리저리 살피며 굉장히 신나 하는 김유나와 달리 김우진은 심기가 불편한 기색으로 김강현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몰라? 응? 응?”
“잘 모르는데요?”
김유나가 자신의 얼굴을 김강현에게 들이대며 물었다.
김강현은 갑자기 들이대는 김유나의 행동이 당황스러웠지만 행동과 말투에서 악의가 없어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는데, 김유나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에휴,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 아직 멀었네.”
“하하하. 강현이는 몇 년 동안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니, 모를 만도 하지. 나도 네가 말해 주기 전까지 몰랐지 않았더냐?”
“그래도요…… 할아버지는 연세가 있으셔서 모른다고 하는 게 이해되지만, 나름 열심히 활동했단 말이에요.”
영문을 알지 못하는 김강현은 고개를 기웃거렸고, 김우진은 어느새 핸드폰을 만지며 그들의 대화에 끼지 않았다.
김유나는 살짝 목을 가다듬은 후 거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누나가 아주 유명한 연예인이야! 유나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그래요?”
“하아.”
솔직히 연예인이라고 하면 엄청난 호응과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리액션 없는 대답에 김유나는 한숨이 쉬어졌다.
연예계에 관심 없는 김강현은 모르지만, 실제 김유나는 유나라는 예명으로 배우와 가수를 넘나들며 엄청난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더불어 대한민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김유나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몰랐다면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지. 너 핸드폰 줘봐.”
그 말에 김강현은 얼떨결에 주머니에 있는 헌터폰을 꺼내 김유나에게 건네주었다.
“엇! 헌터폰?! 너 헌터였어?”
그 말에 핸드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던 김우진의 시선이 김강현에게 향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살폈다.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싸~! 헌터 동생 생겼다.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네?”
“아무것도 아냐. 여기 내 번호 등록했으니 자주 연락해! 가끔 전화를 못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일하고 있는 중이니까 나중에 내가 연락할게.”
“네. 네.”
김유나가 헌터폰을 건네며 속사포로 말을 뱉자 김강현은 정신없이 대답하기 바빴다.
“회장님, 저는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알겠다.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네, 그리고 유나. 너도 같이 따라오너라.”
“알았어요.”
자리에서 일어날 타이밍을 보고 있던 김우진은 어느 정도 김강현과 김유나가 대화를 나누었다고 판단하자 김고엽에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터라…… 그래서…….’
김우진은 회장실을 나가며 김강현에게 적의 어린 시선을 보냈고, 김유나는 그의 뒤를 따라 나가면서 김강현의 손에 들린 헌터폰을 가리키며 윙크했다.
‘회장님…… 아버지께선 진심이시군.’
김우진은 엘레베이터를 타며 회장실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되뇌었다.
처음 김강현과 경쟁하라는 말엔 자신을 위한 발판으로 가볍게 눌러 버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전략기획실의 실장 직책과 헌터 사업 프로젝트가 맡겨지고, 김강현이 헌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김고엽이 김강현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후계자 경쟁을 하게 되었다는 확신이 생겼다.
“유나야. 좋은 동생이 생겼구나. 앞으로 강현과 친하게 지내라.”
“네. 아버지.”
‘유나를 이용해 놈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도 알아놓는 것이 좋겠지.’
김우진은 속마음을 감춘 채 김유나에게는 친절하게 말을 걸었고, 김우진의 속마음을 모르는 김유나는 핸드폰에 김강현의 번호를 저장하며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아버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엘리베이터가 1층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김유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김우진은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래. 나다. 지금부터 본사의 전략기획실을, 그리고 김강현과 주변 인물들을 주시하도록 해라. 더불어 이에 대한 보고는 매일 아침마다 하도록.”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하더라도 전력을 다하는 법. 다시 대항하지 못하게 쓰러트려 주마!’
김우진은 살기 어린 미소를 띠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는 김강현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 *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거라.”
김강현은 김유나가 휩쓸고 간 파도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김고엽이 식어버린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
‘이제 시간 싸움이야!’
그리고 김강현이 회장실을 나와 향한 곳은 비서실장실로, 이명원은 김강현이 자신을 찾아오자 하던 일을 멈추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명원 비서실장님, 혹시 제가 전략기획실장을 맡게 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보안을 위해 그룹 내 공지가 되지 않았지만, 저와 그동안 전략기획실을 이끄는 부실장에게는 회장님으로부터 전달받았습니다.”
“그럼 지금 담당자로부터 관련 업무를 인수인계받을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제가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이명원은 친절하게 질문에 답해준 후, 자리에서 일어나 김강현과 함께 전략기획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략기획실은 바로 비서실과 같은 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사무실의 크기는 족히 100평이 넘어 보였다.
전략기획실로 들어가자 한 직원이 이명원을 발견하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이 실장님!”
“반갑네. 강 부실장을 만나러 왔는데 어디에 있나?”
“강 부실장님은 직원들과 회의하고 있습니다.”
“음…… 그럼 다른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회의가 끝나면 전해 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이명원과 김강현은 직원의 말에 다른 직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2회의실로 들어갔는데, 사무실 내의 벽은 유리로 되어 있어 안에서 사무실의 모습을 환히 볼 수 있었다.
김강현은 회의실의 빈 의자에 앉아 조용히 사무실의 모습을 살폈다.
‘재미있네. 원래 사무실 분위기가 이런가?’
김강현이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니 전략기획실이라는 부서는 개방적이고 서로 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무실 책상과 책상을 가로막는 파티션들이 없어 자리에서 서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 처리를 하고 있었고, 복장 또한 딱딱한 정장 차림이 아닌 캐주얼 차림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얼굴에서 피곤이 느껴지긴 하지만 힘듦보다는 신남과 열정적인 기색들이 보였다.
그때, 사무실 반대쪽에 위치한 회의실 유리문이 열리며 직원들이 나왔다. 처음 이명원에게 인사했던 직원이 한 여성 직원에게 달려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눈앞의 직원에게 건네고 2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함께 이명원도 김강현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이 실장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강 부실장. 자네에게 한 사람을 소개시켜 주려고 왔네.”
“사람을요?”
이명원의 말에 강 부실장, 강려원은 옆에 있는 김강현을 바라보았다.
‘신입인가? 그런데 최근에 인력 신청을 한 적이 없는데? 파견?’
20대 초반의 김강현을 보자 강려원은 전략기획실에서 추가로 사람이 필요한 일이 있는지 떠올렸다.
그때, 김강현이 먼저 살짝 인사하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앞으로 전략기획실 실장으로 함께할 김강현입니다.”
“네?!”
말과 함께 강려원은 자신도 모르게 위아래로 김강현을 훑으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회장님의 직권으로 들어온 사람이…… 이 녀석이라고?’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살짝 드러났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녀는 30대 중반이지만, 10년 동안 전략기획실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며 부실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듯한 김강현이 갑자기 전략기획실의 실장 자리를 맡는다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오랜 사회 경험으로 이를 내색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전력기획부 부실장 강려원입니다.”
‘낙하산이라더니…… 그만큼 실력이 뛰어난 건가? 아니면 자리 차지? 회장님은 무슨 생각으로?’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 * *
지금 전략기획실은 US 그룹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뛰어난 실력자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새파란 애송이가 실장이라는 자리에 앉게 되면 전략기획실이 휘둘리고 일정이 꼬일 것이 먼저 걱정되었지만, 강려원은 이를 내색하지 않고 인사를 마쳤다.
“직원들에게 소개는 나중에 강 부실장이 했으면 좋겠군. 그리고 회장님께서 두 사람에게 기대가 많으니 잘 부탁하네.”
이명원이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말과 함께 회의실을 나가자, 잠시 두 사람 사이에선 정적이 흘렀다.
강려원은 김강현의 나이가 어리지만, 상사라는 생각에 공손하게 말했다.
“우선 실장님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그동안 주인이 없었던 전략기획실의 실장실로 김강현을 안내했는데, 전략기획실의 직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 새로 온 신입 사원이 아니었어?”
“신입 사원이었으면 인사과에서 바로 연락이 왔겠지요!”
“실장? 저렇게 어린 녀석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부실장님하고 대판 싸울까? 아님 부실장님에게 휘둘림당할까?”
“혹시 모르죠. 우리들보다 뛰어날지도?”
“그동안 몇몇 사람들이 저 자리가 탐나 앉았다가 했다가 부실장님에게 실력으로 발렸잖아요.”
“우선 두고 보자고. 그동안 회장님께서 뛰어난 사람을 컨택해 자리에 앉히겠다고 한 만큼 뭔가 했겠지!”
직원들은 실장실로 들어가는 김강현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지만, 뛰어난 청각을 가진 김강현은 이들의 목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잘못하면 내가 잡아먹히겠는데?’
김강현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강려원이 전략기획실을 얼마나 잘 이끌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강려원이 안내한 실장실은 사무실의 콘셉트에 맞춰 벽이 아닌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가구는 딱 책상과 의자, 그리고 업무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자기기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보시고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구비할 테니 전달해 주세요.”
“아닙니다. 업무를 보기 위해 마련된 장소니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여기에 붙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으니.’
김강현은 김고엽에게 전략기획실 실장 자리를 맡으란 얘기를 들은 뒤부터 어떻게 이들을 이끌어 나갈지 고민했는데,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느 정도 방향이 잡혔다.
“그럼 직원들에게 인사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첫날이니…… 서로 좋은 인상 남기고 헤어지는 게 좋겠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니 현재 퇴근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아 업무에 대한 내용을 나누기가 어렵다고 느낀 강려원이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 인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네.”
‘무슨 부탁? 설마 회식할 식당 예약?’
강려원은 김강현이 좋은 분위기에서 전략기획실의 사기를 올리고 인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들려오는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현재 전략기획실에서 1년을 기준으로 완료된, 진행 중인, 준비 중인 사업에 대한 보고서들을 모두 가져다주십시오.”
“전…… 전부 말입니까?”
“네. 혹시 보고서들이 중복되어 있어도 상관없고 양이 많아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순간 잘못 들은 것 같아 다시 물었지만 김강현의 말은 변함이 없었다.
강려원은 대답과 함께 실장실을 나왔는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그 많은 걸 다 보겠다고 가져오라는 거야? 아니면 우릴 개고생시키려는 거야?’
지금까지 전략기획실 실장 자리에 배치되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권력 욕심이 많았는데, 전략기획실을 휘어잡을 수 있으면 US 그룹을 마음대로 흔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로 전략기획실의 업무를 파악하고 명령을 내리고자 간단하게 내용을 정리해서 가져오라는 사람들은 몇몇 있었지만, 모든 자료가 담긴 보고서들을 전부 가져오라는 황당무계한 명령은 처음이었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본때를 보여주지!’
강려원은 김강현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그녀의 주변으로 직원들이 몰렸다.
“부실장님, 저 사람 누군가요?”
“저 사람이 저희 실장님이에요?”
“어떤 사람입니까?”
“딱 보기에 어려 보이는데 잘생기지 않았어요?”
그들은 김강현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냈고, 강려원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실장이라는 건 맞는데…… 전체 공지 하나가 있습니다.”
순식간에 사무실의 모든 눈과 귀가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전략기획실에서 1년을 기준으로 완료된, 진행 중인, 준비 중인 사업에 대한 보고서들을 정리해서 실장님께 보고합니다. 지금 당장이요.”
“자, 잠깐만요?!”
“그, 그 많은 걸 다요? 지금 정리도 안 된 최종 보고서들도 엄청 많은데요!”
“중복된 종이 보고서와 전자 보고서들을…… 지금 정리하는 건 무리입니다!”
“……괜찮습니다. 종이 보고서들은 전부 실장실에 갖다놓고, 전자 보고서들은 메신저의 실장님 서류함에 전달해 주세요.”
“으아, 죽었다!”
“갑자기 이게 뭔 난리야?!”
정말 퇴근 직전 난데없이 떨어진 업무 폭탄에 전략기획실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들 하나같이 실장실을 째려보았다.
그사이 김강현은 불과 1분 전의 과거를 후회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많다는 건 짐작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인데?’
직원들이 실장실에 들어올 때마다 종이들이 한 가득씩 쌓이고 있었다.
이미 책상 위에는 종이의 산이 만들어졌고, 자리가 모자라 바닥에까지 종이들이 한 가득이었다.
게다가 컴퓨터를 켜자마자 자동 로그인된 메신저에서는 보고서 전달 알림이 계속 뜨고 있었다.
‘매번 에이트에게 서류 지옥에 빠졌다고 놀린 대가를…… 이제야 받네.’
종이의 산을 보자 재밌었던 테라의 기억도 떠올렸다.
에이트는 라 제국을 경영하느라 하루의 반나절을 굉장히 많은 서류와 싸워야 했는데, 라셀은 가끔 도와주긴 했지만 이를 볼 때마다 에이트를 놀리고 괴롭혔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일 서류들과 싸우는 에이트를 보며 누군가를 책임지는 자리가 굉장히 무겁다는 것을 배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자리를 맡은 이상 허투루 할 수 없지.’
김강현이 입고 있던 외투를 의자에 걸어놓으며 양팔의 소매를 걷자, 강려원이 양손에 가득 들고 있는 서류들을 실장실 입구에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실장님. 이게 마지막 보고서입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더 이상 실장실 안으로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의 서류들로 산을 이루고 있었는데, 1년 동안 US 그룹의 모든 부서들과 진행한 사업들에 대한 보고서들이기에 양이 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정시 퇴근을 원하는 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이 작업은 57분 만에 끝이 났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모레 오전 11시부터 저녁까지 급한 일이 아니면 스케줄을 비워놓을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모든 서류들을 다 살펴보겠다는 뜻?’
그녀는 열흘 밤낮을 보더라도 이 많은 서류들을 한 번씩이라도 보기조차 힘들 텐데, 48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의아해하면서도 강려원은 실장실을 나오며 직원들에게 OK 사인를 보냈다. 전략기획실 직원들은 신나게 환호했지만, 모레 하루 스케줄을 통으로 빼놓으라는 말에 몇몇 직원들은 그룹 내 미팅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내일까지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지만 직원들은 퇴근 시간이 되자 한 명도 남지 않고 신나게 퇴근했다. 사무실의 모든 전등 이 꺼지고 전략기획실에서는 실장실만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이제 시작해 볼까?”
김강현은 각오를 다지며 눈앞의 종이들을 향해 손을 뻗어 하나하나 그 내용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안녕하세요!”
“으아아아…… 어제 너무 힘들었어.”
“오늘…… 오늘만 지나면 주말이니까 힘내자!”
“일하기 싫지만…… 오늘만 버티자.”
김강현이 전략기획실에 약속한 이틀이 지났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자 전략기획실 직원들은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했는데, 전날 오늘치의 일까지 마무리하느라고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채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가장 출근하기 싫은 금요일로, 직장인에겐 가장 체력적으로 힘든 날이었다.
그리고 전략기획실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실장실 안을 살폈다.
“어? 보고서들 어디 갔어?”
“보고 버린 것 아냐?”
“에이, 설마!”
그들은 전날 퇴근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실장실에 자신들이 올린 보고서들을 쌓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오늘도 실장실에 보고서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장실에서는 한 장의 종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이거 다 내가 낸 보고서들인데?”
“나도!”
“설마 각자 자리에 다 가져다놓은 거야?”
“우리들 얼굴도 모를 텐데 어떻게?”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들은 잘 정리되어 각자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어 깜짝 놀라 곳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라도 자신의 자리에 다른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들이 있을까 봐 확인했지만, 단 하나의 오차도 없었다.
더불어 메신저를 확인하니 자신들이 올린 전자 보고서를 모두 읽었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잠깐 생각해 보자. 어제 실장 본 사람이 있어요?”
“첫날 얼굴 비추고는 깜깜 무소식이었죠.”
“그럼 저녁 늦게 와서 보고서들을 정리한 걸까요?”
“전자 보고서는 다운만 하면 읽을 시 있으니 빨리 정리할 수 있다지만…….”
“우리가 올린 보고서는 순서 없이 전달한 거라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을 텐데!”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보고서 내용을 확인했다면 전략기획실의 1년 사업 현황의 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김강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파악하기란 무리였다.
“뭔가 믿는 수가 있겠죠?”
“하긴…… 그동안 공석이었던 실장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니…….”
“게다가 회장님이 직접 임명한 만큼 뭔가 다르지 않을까요?”
“이따가 회의하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겠죠.”
전략기획실 직원들은 11시에 김강현이 주도하는 회의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자신들에게 어떤 능력을 보여줄지 매우 궁금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자신들이 전달했던 보고서에 대해선 어떤 말을 할지 매우 궁금했다.
“자자, 다들 커피 한잔씩 하고 힘내자고요. 그리고 대~ 박 정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뭔데, 노 대리?”
“무슨 정보를 물고 온 거야?”
사무실에 입장하는 한 남성에게 시선이 집중되며, 곧 그의 자리 주변으로 직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노 대리는 전략기획실의 정보통으로 회사에서 가장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어, US 그룹의 모든 정보와 소문은 그에게 들어왔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건 초특급 비밀인데…… 이명원 비서실장님이 실장님에게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오호~!”
“진짜?”
“네. 그래서 두 가지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하나는 실장님이 해외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집안의 자제라는 거!”
“일리가 있네. 이명원 비서실장님은 친분 있는 그룹의 자제들에게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쓰니까.”
“한국 정계에 있는 사람이면 우리가 모를 리 없으니까!”
노 대리만큼은 아니지만 전략기획실 직원들의 정보도 빠른 편으로, 정계 내 인물도는 다 머릿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김강현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