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돌연변이 던전 (13/119)

4장. 돌연변이 던전

‘육체는 바뀌었다 해도 영혼에 각인된 격은 그대로여서 초월자의 최소 자격은 남아 있을 테지만…… 지금은 독이 될 터.’

헬릭스는 김강현이 이 순간 간과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김강현이 현재에 충실해야 함을 알고 있었기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을 하기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다 보니 근처에서 오크들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그럼 사냥을 시작해 볼까?”

“물론이니라.”

그제야 헬릭스는 김강현의 머리 위에서 날개를 파닥파닥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는데, 그동안 마력 회복에 집중하여 머리의 뿔이 1㎝가량 커져 있었다.

뿔은 마족을 상징하는 증표로, 크기에 따라 강함의 척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날개가 작으니 불편하구나.”

“그럼 궁시렁거리지 말고 크기를 키워.”

헬릭스가 작은 날개로 수없이 파닥거리며 아둥바둥거리는 모습은 귀여웠지만, 앞으로 전투를 하는 데 있어서는 불편했기 때문에 날개를 몸보다 크게 키웠다. 그러자 한 번의 날갯짓으로도 공중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화르르륵!

김강현은 인벤토리에서 마검을 꺼내 들었고, 헬릭스는 탐지 마법을 펼치고 주변에 검은 불꽃들을 만들어냈다.

“전방 100m…… 오크 4마리와 오크 전사 1마리.”

“좋아. 서포트 부탁해.”

헬릭스의 탐지 마법은 게임의 맵 지도처럼 김강현의 눈앞에 반투명창으로 떴다가 사라졌다.

오크들의 위치가 정확히 파악되자 김강현은 오크들의 정면이 아닌 오른편에서 뛰어들었다.

“취익?!”

“취, 취이이이익!”

갑작스러운 적의 등장에 오크들이 놀라 소리치는 사이, 김강현은 단숨에 눈앞의 오크 목을 벴다.

“취이이익! 취이익!”

이들의 대장 격인 오크 전사는 자신의 부하가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자 분노를 드러내며 김강현을 향해 핼버드를 크게 휘둘렀다.

콰쾅!

“취익?!”

그러나 오크 전사의 핼버드는 김강현에게 닿기도 전에 폭발음과 함께 부서져 버렸다.

“파이어 미사일.”

헬릭스의 주변에서 일렁거리던 검은 불꽃들은 오크들을 향해 쏘아져, 정확히 오크들의 무기와 급소를 타격했다. 오크들은 움직임을 멈추거나 고통에 괴로워했다.

“생각보다 끈질기군!”

오크 전사의 가슴을 깊게 베었지만 생명력이 질긴지, 쓰러지지 않고 허리춤에 있는 검을 꺼내 들고서 김강현에게 달려들었다.

“어?”

김강현은 마검으로 단숨에 오크 전사의 목을 베었는데, 그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내뱉었다.

“왜 그러지?”

“방금…… 팔을 휘두르는 것처럼 검이 가볍게 느껴졌어.”

“……생각보다 검에 대한 자질이 있나 보구나. 계속 멍하니 있을 테냐? 곧 다른 오크 순찰대가 이곳에 지나갈 것이니라.”

오크들이 자신의 부락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순찰하는 습성을 알고 있는 헬릭스는 서둘러 김강현을 재촉했다.

김강현은 인벤토리를 열어 오크들의 사체를 넣고, 헬릭스는 싸움의 흔적을 지웠다.

“여기서 오는 놈들을 기다릴 테냐? 찾아갈 테냐?”

“움직이자. 곳곳에서 필요한 약초들도 수집해야 해.”

몇 번 던전을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김강현은 테라에서 눈에 익었던 약초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렇게 수집한 약초들은 외상과 내상에 필요한 약으로 만들었다.

시간만 있다면 자동으로 육체가 회복되는 라셀과 달리 김강현은 신체가 빨리 회복하려면 약이 필수적이었다.

‘포션을 사고 싶지만 가격이 살인적이야.’

이곳에도 트롤의 피를 기반으로 만든 회복 포션과 마나석을 정제해 만든 마나 포션이 있지만 개당 200만 원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어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다.

“응?”

“무슨 일이냐?”

김강현은 이동과 동시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약초를 수집하던 도중 갑자기 헬릭스가 왼쪽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것을 발견했다.

“약 640m 떨어진 곳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구나.”

“수는?”

“오크가 셋, 인간은 하나. 그리고 싸움지의 400m 떨어진 방향에서 오크 지원대가 오고 있느니라.”

“싸움 양상은?”

“호각…… 아니, 인간이 불리하군.”

“가자.”

몰랐다면 모를까, 위험에 빠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김강현은 지체하지 않고 헬릭스가 알려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 *

“하아…… 학…… 하아!”

“취익! 인간! 취익! 강하다!”

“하지만! 취익! 우리! 취익! 더! 취익! 강하다!”

긴 머리에 차가운 인상을 가진 그녀, 연세연은 검을 꽉 쥐며 눈앞의 오크 전사들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몸 곳곳에 오크 전사들에게 베인 상처들이 있었지만, 이 고통이 오히려 바짝 정신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너무 강해!’

오크 전사들이 양쪽에서 배틀 액스를 크게 휘두르며 몰아붙이자 연세연은 검으로 막기 급급했다.

‘파티를 이룰 것을…… 잘못 생각했어.’

연세연은 B급 헌터로, 이제 C급 던전은 혼자서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C급 던전에 들어와 몬스터들을 상대해 보니 그 생각은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눈앞의 오크 전사들은 C급에 불과한데 B급 던전의 오크 전사들과 같은 힘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아아앗!”

그녀가 마지막 힘을 짜내 검에 마나를 불어넣자 살이 에일 듯한 차가운 냉기가 뿜어짐과 동시에 날카로운 얼음 검날이 만들어졌고, 두 오크 전사의 배틀 엑스를 막아내며 반격을 취했다.

까강!

꺙! 꺙! 꺙! 꺙! 콰광!

“취익! 취익!”

“취이익!”

그렇지만 오크 전사들은 연달아 배틀 엑스를 내리치며 얼음 검날을 깨부쉈고, 연세연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끄, 끝났어!’

“취이이익!”

흩날리는 얼음 조각들과 함께 자신을 향해 오크 전사의 배틀 엑스가 휘둘러지자 연세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취익?!”

“취이이이익!”

그런데 베틀 엑스는 날아오지 않고 고통 어린 오크 전사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슬그머니 눈을 떠보니 바로 앞에서 날아오던 배틀 엑스의 날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자신의 뒤편에선 끊임없이 불꽃 마법이 날아들고 있었다. 오크 전사들은 배틀 엑스로 불꽃을 쳐내며 허둥지둥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어?”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머리 위를 날아와 자신의 앞에 등장했다.

“아직 늦지 않았군.”

“여유 부리지 마라. 52초 남았느니라.”

“한 방 부탁해.”

연세연이 뒤쪽에서 들려오는 거만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날개 달린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공중을 날고 있었다.

헬릭스는 두 마리의 오크 전사를 향해 이전과 동일한 검은 불꽃을 날렸다.

“취익? 취이이익!”

“취이이익?!”

지금까지 날린 검은 불꽃은 오크 전사들이 휘두른 배틀 엑스에 닿자마자 꺼져 버렸는데, 이번에는 꺼지지 않고 남아 오크 전사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연세연이 놀람을 감추지 못한 것을 발견한 헬릭스가 허세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훗! 헬 파이어 마법 수식의 일부를 사용하면 쉬운 일이니라.”

연세연의 시선을 느낀 헬릭스는 나름 친절하게 혼잣말을 핑계 삼아 설명해 주었다.

헬 파이어는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는 지옥불을 만들어내는 마법으로, 마법 수식을 뜯어보면 단순하게 무지막지한 마나가 압축되어 있어 잘 꺼지지 않는 것이었다.

헬릭스는 이를 활용하여 일정 시간 꺼지지 않는 파이어 미사일 마법을 시전했다.

“인피니티 소드!”

김강현은 단숨에 두 마리의 오크 전사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심장을 박살 냈다.

“취, 취이익!”

“취익!”

“뭐지?”

그런데 오크 전사들은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손에 붙은 파이어 미사일의 불꽃을 꺼버리고는 김강현을 향해 배틀 엑스를 휘둘렀다.

“감히 오크 따위가…… 이 몸의 마법을 없앴다고? 감히?!”

두 오크 전사를 보는 헬릭스는 심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헬릭스는 독자적인 마법 체계를 구축하여 마법 위력이 높아진 만큼 자부심도 대단했는데, 이것이 오크들에게 깨지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두 번은…….”

자존심에 상처 입은 것은 김강현도 마찬가지였다.

김강현은 마나 소드를 씌운 마검으로 두 오크 전사의 몸을 단숨에 절반으로 베어내며 죽였다.

“없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연세연은 여전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죽기 직전에 나타난 한 사람과 소환수로 짐작되는 동물이 자신이 쩔쩔매던 두 오크 전사들을 쓰러뜨린 것이었다.

“몬스터들이…… 사라졌어?”

김강현이 오크 전사들의 사체를 인벤토리에 담은 것이지만, 인벤토리의 존재를 모르는 연세연의 눈에는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크 전사들의 사체를 처리한 김강현은 발을 굴려 땅을 뒤엎어 방금 전까지 존재했던 싸움 흔적을 완전히 없앴다.

“이렇게까지 오크들이 강했었나? 이렇게 강할 리가 없는데.”

“빠드득! 누군가 오크 따위에게 장난을 쳤구나.”

“확인이 필요하니 우선…… 이곳을 벗어나자.”

헬릭스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눈 김강현은 연세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가 갑자기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초면에…… 실례 좀!”

“……?!”

허락을 구할 것도 없이 김강현이 연세연을 등에 업자마자 헬릭스가 오른 방향으로 날아갔고, 김강현이 그 뒤를 따랐다.

연세연은 첫 번째로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라고, 두 번째로는 한 번 눈을 깜빡일 때마다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바뀔 정도로 달리는 속도에 너무 놀라 소리 지를 경향도 없었다.

선두에 선 헬릭스는 탐지 마법을 펼쳐 오크들의 동선을 확인한 후 이를 김강현에게 공유하며, 서둘러 오크들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 * *

“오크들 영역에서 벗어난 것 같지?”

“그래. 고생했느니라.”

“덕분에 살았다.”

“훗! 칭찬하는 거냐? 이 몸의 도움을 영광으로 알도록.”

헬릭스는 말은 위엄 있게 보이려 해도 김강현의 칭찬이 부끄러운지 몸을 꼬며 답했고, 다시 한 번 더 탐지 마법을 펼쳐 주변이 안전함을 확인했다.

“괜찮으세요?”

“네? 네.”

김강현은 조심스럽게 연세연을 땅에 내려놓으며 그녀의 몸 상태를 살폈다.

‘상처가 심한걸?’

“이걸 상처에 바르세요.”

연세연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김강현이 건넨 연고를 받았다.

그녀는 평소 가지고 있는 약과 포션이 있었으나 다 써버려, 마침 약이 필요하던 찰나였다.

‘이런 제품이 있었어?’

신기하게도 상처에 연고를 바르자마자 지혈되며 움직이는 데 약간의 고통만 느껴졌다.

일반적인 상처약은 간단한 지혈만 해줄 뿐, 상처의 치료는 1~2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상처약은 가벼운 상처들은 바로 치료되어, 적당한 가격만 책정되면 헌터들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엄청나게 팔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도움을 받는 처지이기에 이 말을 꺼내지 않고 그저 목구멍에서 삼켰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B급 헌터 연세연입니다.”

“C급 헌터 김강현이고, 이쪽은 제 소환수입니다. 혹시 같이 던전에 들어온 헌터들은 없습니까?”

“네. 혼자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무뚝뚝함과 냉기가 흘렀는데, 차가운 얼굴 표정과 함께 말투가 잘 어울렸다.

그리고 김강현은 그녀가 약을 바르는 사이 상태창을 살폈다.

* * *

연세연(B급 아이스 컨트롤러 헌터, 연화 길드)

체력: B 마나: B+ 근력: B-

민첩: B 지능: B- 정신력: A

아이스 마나(S+)-몸속에 빙정을 품고 있어 냉기에 대한 저항력을 150% 향상시키며, 마나를 통해 얼음을 만들어낸다.

아이스 소드(A)-연화세가의 연화 검술이 변형되었으며, 극성에 도달하면 검으로 얼음꽃을 피워낼 수 있다.

‘이, 이게 뭐야?!’

연세연의 정보를 살핀 김강현은 예상외의 스킬에 놀라 반투명창과 연세연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그녀가 가진 헌터 등급은 B급이나 가지고 있는 스킬의 성장 가능성은 A~S급이었다.

이 정도의 스킬들을 가졌다면 지금 B급이 아니라 최소 A급 헌터가 되어 있어야 했다.

‘게다가 특수 직업?!’

게다가 그녀는 얼음의 지배자라는 특수 직업을 가지고 있는 만큼, 얼음에 대해선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의 능력치를 가지고 고전한다고?”

김강현은 반투명창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지만 거리가 가까워 연세연의 귀에 들렸다.

‘내가 실력이 없어서 C급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했다고?”

그녀는 김강현이 자신의 실력을 비꼬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표정을 찌푸렸고, 그사이 헬릭스가 김강현에게 다가왔다.

“지금 정신을 어디다 파는 거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않느냐.”

“아, 미안. 미안하다.”

“……?!”

그 말에 김강현은 정신을 차리고 인벤토리에서 죽은 두 오크 전사의 사체를 꺼냈는데, 연세연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어떤 아티팩트를 쓰는 것도, 마나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데 사물을 자유자재로 어딘가에 보관했다가 꺼내고 있었다.

김강현과 헬릭스는 등 돌린 채 오크 전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C급 던전의 오크 전사들이 아냐. 최소 B급, 아니, A급의 오크 전사들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어.”

“이 몸의 판단도 마찬가지니라. 하지만 오크들 따위가 강해져 봤자 이 몸의 마법을 상쇄시킨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구나.”

“분명 심장이 박살 났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걸 보면 비상식적이긴 하지.”

“던전이 강해진 건지, 돌변연이 몬스터인지는 아직 모른다는 거군.”

‘어?’

둘의 대화를 듣던 연세연은 의문을 느꼈다.

‘던전이 강해질 수 있다고? 아니, 던전이 강해진다는 게 말이 돼?’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의 색깔을 통해 던전의 등급이 정해진다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말은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며, 앞으로 몬스터들이 강해진다는 건 그동안 안전하게 들어갔던 던전이 위험지대로 바뀐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던전의 몬스터들이 강해진다면 그 어떤 헌터도 쉽게 던전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보기만 해서는 답이 없으니 확인해 봐야겠네.”

“이미 준비하고 있느니라.”

어느새 헬릭스가 마력으로 발톱을 강화한 후 오크 전사의 사체에 손을 뻗자 단단하던 피부가 부드럽게 잘리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김강현도 마나 소드를 입힌 칼로 다른 오크 전사의 사체를 해부했는데, 피부 조직을 비롯하여 내부 장기 등 모든 것을 분석하며 살폈다.

연세연은 차마 끼어들 수 없어 조용히 지켜보다가 그 모습이 참혹하여 해부가 절반쯤 진행될 때에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두 마리의 오크 전사의 사체가 산산이 해부되어 땅바닥에 펼쳐진 모습은 심신이 약한 사람은 기절할 만큼 잔혹한 광경이었다.

“전신 세포 분석을 해보았지만 인위적으로 조작된 건 없고, 몸속에 마나석이 있는 것도 아니구나. 심지어 뇌도 살펴보았지만 아주 멀쩡해.”

“여기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오크들에게 마나 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나 호흡법을 익힌 것도 아닌데 마나 감응도가 높아.”

“마나 감응도?”

김강현의 말에 헬릭스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다시 오크 전사의 사체를 살폈지만 마나 감응도가 높아진 조건을 찾지 못했다.

“설마.”

그러다가 문득 눈이 간 곳이 해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피 웅덩이였다.

헬릭스는 발톱에 죽은 오크 전사의 피를 살짝 묻혀 맛보고, 눈썹이 찡그러졌다.

“녀석들에게 드래곤 블러드가 섞여 있구나. 그래서 놈들이 비상식적으로 강해진 것이었어.”

“양은?”

“0.000001%로 아주 미약해. 조작의 흔적이 없어 철두철미하게나 이 녀석들을 만들었거나, 드래곤의 유희로 인해 만들어진 오크 부락일 가능성도 염두해 두는 것이 좋겠구나.”

“드래곤 블러드…… 용혈이라…….”

헬릭스의 말에 김강현은 생각에 잠겼다.

보통 드래곤 블러드를 먹게 되면 그 안에 담긴 마나를 이겨내지 못해 마나 폭주로 죽는 것이 일반적으로, 아주 운이 좋으면 불구가 되어 살아났다.

그래서 먹더라도 인체에 무리가 오지 않을 정도로 희석시킨 후 다른 재료와 섞어 먹는 방법이 알려져 있었다.

‘신체에 영향이 오지 않을 만큼의 적은 드래곤 블러드라면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들이 이해 돼. 전체적인 능력이 오른 만큼 C급으로 추정되는 오크 전사들의 능력치가 B급에서 A급이 되었을 테니까. 한데…….’

“이대로 내버려 두는 건 위험하겠지. 전자이든 후자이든.”

“물론이니라. 만약 전자라면 어떤 놈인지 확인해 봐야겠지. 아주 흥미롭구나.”

드래곤 블러드는 쉽사리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고, 오크들에게 아무런 부작용 없이 강화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궁금했다.

드래곤이 유희할 때 만들어진 오크 부락이라면, 유희가 끝나는 순간 인연도 끝나기 때문에 오크 부락을 없애도 상관없었다.

결정적으로 이 오크 부락을 내버려 두었다간 모르고 들어오는 헌터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었다.

“우선 눈앞의 적부터 쓰러트려야 하느니라.”

“그래. 혹시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뭔지 알고 있나요?”

김강현은 드래곤 블러드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현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연세연에게 물었는다. 연세연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깜짝 놀라며 기억을 더듬어 답을 이끌어냈다.

“오크 전사의 수장이요.”

“그렇다면…… 최소 A급 몬스터라고 상정해 놓는 게 좋겠군요.”

“A급 몬스터? 그렇지만 여긴 C급 던전이라고요!”

“여기가 일반적인 던전이라면.”

“…….”

그 말대로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이미 이 던전은 상식을 벗어났고, 이를 연세연도 경험했다.

그렇기에 연세연은 김강현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오크 전사의 수장을 죽이러 갈 건데…… 당신을 여기고 쉬고 있는 게 좋겠네요.”

“하긴…… 여기라면 오크들도 오지 않을 테니 안전하겠구나.”

김강현은 연세연이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헬릭스도 동의했다.

“아니요. 저도 가겠…… 윽!”

“그 몸으론 어림없느니라. 인간!”

“으음…….”

“최소 며칠은 쉬어야 될 것이야.”

연세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성을 내뱉으며 몸을 움찔거렸다.

그 모습에 헬릭스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젓자 김강현은 잠시 생각 후 입을 열었다.

“극악처방으로 변형된 버서커 마법을 걸면 어떨까.”

“버서커라면 일시적으로 신체를 강화해 강해지지만, 후유증 있는 마법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죠. 그런데 생명력을 소모하여 신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내면.”

“음…… 불가능하진 않지만 후유증은 피해 갈 수 없겠지.”

“어떤.”

“며칠 동안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라. 생명력을 소모하는 게 아니라 한계까지 인체의 능력을 끌어낼 테니까.”

헬릭스의 말에 연세연은 고민 없이 대답했다.

“좋아요. 상관없어요.”

“음…… 인간, 나중에 후회하지 말도록.”

헬릭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세연의 몸에서 검은빛이 쏟아졌는데, 겉보기에는 똑같았다.

“통증이 없어.”

“버서커 마법에 상처와 통증이 잠시 느껴지지 않을 뿐이니라. 무리하면 회복 시간도 길어질 테지.”

그동안 족쇄처럼 느껴졌던 고통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움직이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마법 하나로 몸 상태가 회복되자 연세연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법의 유효는 반나절이지만, 몸을 과하게 쓸수록 시간이 줄어들 테니 항상 긴장하도록.”

“고마워.”

“흥! 인간의 칭찬 따위는 필요 없느니라.”

연세연의 말에 헬릭스는 대답과는 반대로 부끄러워했다.

“이제 준비가 끝났으면 작전을 설명할게.”

김강현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입을 열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 * *

“강현, 왼쪽에 오크들이 몰릴 것이니라.”

“알고 있어!”

“인간. 눈앞의 적에 집중하도록. 그리고 오른편에서 오크 전사가 오고 있느니라.”

헬릭스의 말을 듣자마자 김강현은 오크들이 모여 있는 왼편으로 마검을 휘둘러 마나 소드를 날렸다.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오크들의 목이 허공에 떠오르며 피 분수가 솟구쳤다.

“전방에 9마리의 오크들이다!”

“이 몸도 알고 있느니라.”

이미 김강현이 말을 하기 전에 헬릭스는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취이익!”

“취익! 조심해라! 취익! 마법이! 취익! 쏟아진다!”

“이미 늦었느니라.”

헬릭스의 주변에 수십 개의 불꽃 덩어리들이 떠 있는 것을 발견한 오크가 소리쳤지만, 그사이 파이어 미사일들이 오크들에게 쏘아져 머리가 꿰뚫고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아갔다.

“인간, 오른쪽에서 오크 전사들이 온다고 경고했을 텐데!”

“하압!”

연세연은 헬릭스의 말에 대답할 여유도 없이 눈앞에 있는 오크의 목을 자른 뒤, 오른편에서 오크 전사가 휘두르는 검을 간신히 막아냈다.

너무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약간의 휴식도 없어 너무 정신없었다.

‘이게 반년도 안 된 헌터의 실력이라고?’

연세연은 김강현, 헬릭스와 사냥하며 계속 놀라고 있었다.

그들의 호흡은 완벽했고, 빈틈이 없었다. 서로 맡은 분야에서 전력을 다하고, 연계하여 몬스터들을 하나둘씩 쓰러트려 나갔다.

김강현이 워리어로서 몬스터들과 싸우며 근처를 경계하면, 헬릭스는 마법으로 지원사격을 하거나 전체적인 싸움의 흐름을 읽고 지시를 내렸다.

그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화 길드에 소속된 B급 헌터로서 지금까지 많은 몬스터 사냥을 해왔기에 또래 중에서는 실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 생각은 오늘로써 산산이 부서졌다.

‘짐이 아니라고 착각했어.’

자신의 몸 상태만 정상이면 C급 헌터인 김강현의 호흡에 맞출 수 있을 거리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김강현은 말만 C급 헌터이지 진짜 실력은 A급 헌터에 못지않아 오히려 연세연이 그들의 실력에 맞추기 위해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아이스 소드!”

곧이어 스킬의 시전되자 들고 있는 검에 차가운 냉기를 가진 얼음이 맺히더니, 얼음은 점점 커져 2m 크기의 검이 만들어졌다.

* * *

“취, 취익!”

“도, 도망쳐라!”

이를 본 오크들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연세연의 아이스 소드를 휘두른 뒤였다.

아이스 소드는 눈앞의 오크들을 베어버림과 동시에 얼음 가시들을 뿌려 주변에 있는 오크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취이이익!”

“응?”

그때 뒤편에서 들리는 오크의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니, 두 마리의 오크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런……!’

“큭!”

아이스 소드를 시전하여 일시적으로 몸이 무거워 막을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자, 연세연은 오크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지만 정면에 있는 있던 오크들이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그녀를 향해 던졌다.

“취이익!”

쾅!

연세연은 검을 들어 도끼들을 쳐내려고 했지만, 몸이 정면으로 엎어져 있어 팔을 쓸 수 없었다. 반대 방향으로 다시 몸을 굴리니 이번에는 뒤편에서 오크 전사들이 자신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앞뒤에서 오크들이 공격을 펼치자 연세연은 다시 위험에 빠졌다.

퍼벙! 퍼버버버벙!

“으앗!”

갑자기 도끼들이 불타오르더니 연세연의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크들과 오크 전사들 또한 심장이 뚫린 채 죽음을 맞이했다.

“멍청한 인간. 커다란 스킬은 빈틈이 많으니 조심하거라.”

“으, 으응.”

“정신 차렸으면 얼른 일어나서 한 놈이라도 더 죽이도록!”

그녀의 위험을 알아차린 헬릭스가 급히 마법을 날려 바로 연세연을 구하며 조언했다.

연세연은 헬릭스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크들을 향해 뛰어갔고, 헬릭스는 던전 전체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이대론 끝이 없겠구나.”

원래 계획은 김강현과 연세연이 선두에서 오크들과 오크 전사들을 붙잡아놓고 있으면, 헬릭스가 보스 몬스터의 위치를 파악해 기습으로 죽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실전에 돌입하니 오크들의 리젠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 그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오크 마을 쪽에서 계속 마나가 감지되는데 뚫을 수가 없어!’

계속 마법으로 오크들을 부활시키고 있어 흐름을 끊어 시전을 멈추려고 했지만, 강력한 힘이 가로막고 있어 불가능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의 마나가 고갈되어 마법이 끝나겠지만 그게 언제인지 모를 일이었고, 언제까지나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모두 이쪽으로 오너라.”

갑작스러운 말에 정신없이 싸우고 있던 김강현과 연세연은 급히 헬릭스에게 향했다.

“강현. 마나를 빌리겠다.”

“뭐?”

“그리고 이 사태를 정리할 테니 1분만 막고 있도록.”

그 말에도 김강현은 대답할 여유 없이 계속 오크들을 향해 마검을 휘둘렀고, 연세연도 헬릭스에게 오크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이건 마력? 그렇다 쳐도 이 흐름은?!’

마나는 청량한 기분이 들게 한다면, 마력은 어둡고 음습한 기분이 들었다.

연세연은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이었지만, 바로 뒤편에서 마력이 모이는 것이 느껴지자 정신 집중이 어려웠다.

‘마나와 마력이 잘 섞여 운용이 쉽군.’

헬릭스는 김강현의 인피니티 마나는 마력 내성을 가지고 있어 마력과 융합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 번도 섞어본 적이 없어 궁금했다. 그리고 서로 공유가 가능하면 위급한 상황일 때 마나와 마력을 한 명에게 모아 파괴력 높은 기술을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 지금은 헬릭스 자신의 마력만으로도 마법을 시전하는 데 문제없지만, 김강현의 마나를 가져온 것은 혼자 고생할 수 없다는 마음도 깔려 있었다.

“플레임 레인!”

헬릭스의 말과 함께 하늘에서 마력이 요동치며 검은 구름이 나타나, 검은 불꽃의 비가 폭우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화아앗!

“취, 취이익!”

“취익! 재앙이다! 취익!”

“신이! 취익! 분노했다!”

검은 불꽃의 비는 김강현 일행이 서 있는 주변을 제외하고 떨어졌다. 오크들은 방패로 검은 불꽃의 비를 막아보았지만 방패를 뚫고 몸에 닿았다.

놈들은 땅바닥을 구르며 필사적으로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끄는 속도보다 검은 불꽃의 비에 맞는 양이 많아 뼛가루만을 남긴 채 모조리 죽어갔다. 더불어 주변의 나무와 바위들도 검은 불꽃의 피에 닿자마자 흔적도 남기지 않고 불타버렸다.

‘무슨 소환수가 이런 마법을…….’

검은 불꽃의 비는 1분 동안 내렸을 뿐인데, 던전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찾아볼 수 없었고 나무로 가득했던 숲은 허허벌판이 되어 가려져 있던 오크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소환수는 들어보지 못했어!’

너무 강대한 마법에 연세연은 헬릭스와 불바다를 번갈아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소환수들은 이동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던전에서 얻은 물건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중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환수들은 전투에 나서기도 하지만, 헬릭스처럼 이런 무지막지한 마법을 사용하는 소환수는 듣지 못했다.

그들이 허허벌판의 끝에 위치한 오크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자, 오크 마을 입구에서 두 마리의 오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던전은 오크 전사의 수장보다 한 단계 위인 오크 족장이 보스 몬스터이고, 오크 주술사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깰 수 없는 던전이다.”

“설마 지금까지 오크들을 부활시킨 게 오크 주술사?”

“그래. 이 몸의 눈에는 오크 주술사에게 속박된 오크들의 영혼이 보이는구나.”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아닐 텐데? 일반적인 오크 주술사가 계속 무한대로 오크들을 부활시키는 게 가능하지는 않잖아.”

“다른 오크들처럼 드래곤 블러드를 가지고 있다면 가능하겠지.”

김강현과 헬릭스의 추측대로 오크 족장과 오크 주술사는 다른 오크들보다 덩치가 2배 이상 컸고, 무시무시한 마나와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다른 오크들보다 많은 양의 드래곤 블러드를 가지고 있어, 이성보다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저 정도면 이미 드레곤 블러드에 중독되었네.”

“간신히 목숨은 붙어 있지만…… 드래곤 블러드에 정신이 잡아먹힌 상태다. 원초적 본능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구나.”

가까이 가서 보니 오크 족장과 오크 주술사의 눈동자는 붉게 물든 채, 지금 그들은 적을 말살하고자 하는 싸움병기에 가까웠다.

콰앙!

“취이이익!”

그때, 오크 주술사가 지팡이를 땅에 강하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마을 안에 위치한 오크 움막의 입구가 새하얀 빛을 내뿜었고, 건장한 오크 전사 2마리가 걸어 나왔다.

그런데 그 두 마리의 오크 전사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오크 전사들보다 덩치가 1.5배 컸고, 더 강한 마나와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무한대로 오크들을 부활시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낀 오크 주술사는 두 마리의 오크 전사에게 모든 오크들의 힘을 집중시켰다.

“취이이익…… 취익!”

그리고 오크 족장은 자신의 키보다 큰 대검을 휘두르며 마나 소드를 만들어냈다.

“오크 족장은 내가 상대하지.”

“주술사는 이 몸이 맡아주마. 너는 저 오크 움막을 맡으면 되겠구나.”

“좋아요.”

더 이상 같이 싸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 일행은 흩어져서 각자의 적을 향해 움직였다.

김강현은 오크 족장이 처음부터 전력을 발휘할 만큼 강한 상대라는 판단이 서자 마검에 마나 소드를 시전했는데, 이를 본 오크 족장도 손에 들고 있는 대검에 마나 소드를 만들어냈다.

“취이이익…… 취이잇!”

“하아앗!”

이렇게 오크 족장의 대검과 김강현은 마검이 연달아 부딪치자 강한 파동이 일어나며 그들을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취이이…… 취익!”

“이런 무식한!”

“취이잇!”

그런데 오크 족장은 쉴 틈 없이 대검을 휘둘러댔고, 김강현은 그것을 막기에 급급했다.

이성을 잃은 상태였지만, 적을 죽이겠다는 일념과 본능적으로 가장 방어가 취약한 부분만을 노리고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으으으.”

공격을 막을 때마다 김강현의 손이 저려왔는데, 오크 족장은 무겁기 짝이 없는 대검을 한 손으로 휘두를 만큼의 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오크 족장은 지금까지 김강현이 알고 있는 오크 족장의 능력치를 벗어나고 있었다.

오크 족장은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움직임이 커 빈틈을 노리며 상처를 입혔으나 잠시 후 드래곤 블러드의 영향으로 상처가 회복되어, 결정적인 공격이 아니면 소용없어 보였다.

사아아앗! 사앗!

김강현이 인피니티 소드를 시전하는데, 마검이 움직이는 궤적에 따라 던전의 마나가 동조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천검호가 시연해 주었던 결의 움직임이었다.

아직은 수련이 부족하여 크로노스를 휘두를 때마다 잔뜩 정신을 집중해야 하지만, 결을 구현할 수 있었다.

“취이잇! 취익!”

지금까지 오크 족장은 무조건 덤벼들었지만 김강현 주변에 휘몰아치는 마나를 감지하자 위협을 느꼈는지 움직임이 주춤거렸다.

이를 본 김강현은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먼저 오크 족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크 따위가 이런 마법 조합을 구현하다니…… 요즘 오크 지능이 많이 높아졌군.”

“취이잇!”

“그래. 좀 더 가진 것들을 꺼내보아라.”

오크 주술사와 헬릭스 사이에는 끊임없이 무섭기 짝이 없는 마법들이 시전되어 날아다녔으나, 헬릭스의 말투에선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오크 주술사가 날린 마나 볼 마법이 머리를 노리며 날아왔지만, 헬릭스는 날개를 휘둘러 마법을 쳐냈다.

‘힘을 드러내지 않으면 놈의 바닥을 보긴 힘들겠구나.’

헬릭스는 오크 주술사와의 싸움보다는 그가 어디까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싶었다. 이 같은 생각은 기본적으로 언제든지 오크 주술사를 죽이거나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왔다.

더불어 좀 더 오크 주술사의 실력을 끌어내기 위해 마법은 준비했다.

“이건 어떠냐?”

그리고 순식간에 수십 개의 검은 불꽃의 창을 만들어내 오크 주술사에게 쏘아 보냈다.

콰앙! 쾅! 쾅! 쾅!

“취이이잇! 취잇!”

오크 주술사는 지팡이를 땅에 내리박아 땅으로 만들어진 벽을 만들어 검은 불꽃의 창들을 모조리 박아낸 후, 지팡이로 벽을 후려쳐 벽의 커다란 돌덩이들을 헬릭스에게 쏘아 보냈다.

그렇지만 헬릭스는 검은 불꽃으로 날아오는 돌덩이들을 모조리 녹여 없애 버렸다.

“취이이잇…….”

그 모습을 본 오크 주술사는 위기감을 느끼고는 주술로 붉은빛과 함께 두 마리의 오크 전사들을 소환했다.

“취익! 적을! 취익! 죽인다!”

“오르크 님께! 취익! 영광을! 취익!”

“소환술과 땅 속성이라…… 흔치 않게 두 가지를 다루는구나.”

‘이 몸으론 무리가 있겠어.’

우둑! 우두두둑!

오크 주술사에 대한 탐색이 끝나자 헬릭스는 육체를 변화시켰는데, 뼈가 꺾이는 소리들과 함께 성인 남성이 탈 수 있을 만큼 덩치가 커졌다. 그 모습은 마치 늑대와 비슷했는데, 다른 점은 머리의 뿔과 등에 날개가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신을 마력으로 만들어진 검은 불꽃이 감싸고 있었다.

“크아아아앙!”

“취, 취익.”

“취익?”

육체 변화를 마친 헬릭스가 피어를 시전하자 오크 주술사와 오크 전사들이 움찔거리며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모습으로밖에 육체 변화를 할 수 없지만 오크 전사들과 주술사를 상대하기엔 충분하지.’

작은 육체는 김강현을 서포트하며 마법을 시전하는 데 편했지만, 그 몸으론 혼자서 오크 전사들까지 상대할 수 없어 육체 변화를 선택했다.

가장 좋은 육체 변화는 본신으로 현신하는 것이지만, 그 순간을 1분도 유지하지 못할 게 뻔했다.

헬릭스는 눈앞의 적들을 직접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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