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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마검 크로노스 (11/119)

2장. 마검 크로노스

고작 10여 분이 흘렀을까? 김강현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에 따라 주변의 마나가 동조하더니, 검을 따라 마나의 흐름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저게 말이 되는 일인가?’

검천호는 믿을 수 없어 세차게 눈을 비비고 김강현을 보았지만, 여전히 마나의 흐름이 김강현의 의지에 동조하는 것이 느껴졌다.

‘라셀의 경험 덕분인가? 마나의 흐름을 파악하고 움직이는 것이 어렵지 않아.’

라셀은 평소 드래곤 하트와 주변 마나를 동조하는 마나 증폭을 자주 사용했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현재에 적용하니 마나의 흐름을 자신의 의지대로 다루는 것이 가능했다.

“내가 과소평가했군. 나를 따라잡기까지 3년이 아니라 1년이면 충분하겠어.”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김강현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으로, 자신이 아니었어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 강해졌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아직 나이가 어려 체력과 마나가 부족할 뿐, 그 외에 필요한 부분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검천호는 어떻게 김강현을 굴릴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끄응…… 온몸이 아프지 않는 곳이 없네.”

오른 주먹으로 왼팔을 두들기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김강현의 입에서는 투덜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검 어르신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은데…… 앞으로 고생길이 열린 것 같다.”

마나에 대한 감을 잡자 검천호는 다시 실전과 같은 대련을 하며 김강현의 기초 검 수련과 마나 수련을 동시에 병행시켰다.

처음에는 김강현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 손속을 조절하던 검천호는 정확하게 파악이 끝나자 극한의 한계까지 그를 몰아, 밑바닥에 남아 있는 한 줌의 힘까지 모두 끌어냈다.

더불어 이 모습을 보며 헬릭스가 즐거워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었다.

그리고 검천호는 김강현에게 호칭이 나이에 맞지 않게 부담스럽다며 앞으로 어르신이라 부르라고 했다.

“검 어르신이 말한 곳이 여긴가?”

헬릭스는 피곤하다며 검천호의 집에서 바로 집으로 향했고, 김강현은 을지로의 어느 헌터 상점 앞에 서 있었다.

헌터들이 등장하자 헌터 전용 물품을 판매하고 몬스터들에게 얻은 부산물들을 팔 수 있는 헌터 전용 상점들이 나타났는데, 그중 을지로 거리에 헌터 상점들이 모여 있었다.

김강현은 그동안 몬스터들에게 얻은 아이템과 사체들을 판매할 겸 검천호에게 헌터 상점을 추천받았는데, 도착해 보니 상점이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과연 이곳이 추천할 만한 장소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곳에 쓸 만한 검이 있을까?”

검천호는 김강현에게 당장 자신에게 맞는 검을 구할 것을 조언했다.

헬릭스와 마찬가지로 검천호도 무기 없는 마나 소드 발현을 문제 삼았다. 단기전일 경우 상관없으나, 장기전이나 다수와의 싸움일 경우 마나의 소모가 커 비효율적이었다.

게다가 계속 마나 소드를 사용함으로써 몸에 미치는 피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적을 상대할 때마다 계속 마나 소드를 쓸 수 없는 노릇이기에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검이 필요했다.

“계십니까?”

헌터 상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매캐한 불 냄새와 함께 비릿한 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깡! 깡! 깡! 깡!

그리고 안쪽을 힐끗 보니 대장간이 마련되어 있고,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계속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검천호가 이곳이 주인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니, 상점과 함께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김강현은 그의 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상점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투박하지만……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진 무구들이야.”

물건들 중 강철검을 보며 김강현이 중얼거렸다.

뛰어난 강철검(C+급)

-대장장이 연철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강철검으로, 끊임없는 연성으로 다른 강철검과 비교하여 튼튼하여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상점 안에 있는 무구들은 B~C급으로, 대부분에 플러스가 표시되어 있어 전부 각 등급에서 최상품이었다.

덕분에 이 헌터 상점을 운영하는 주인의 실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누가 가게 안에서 서성이는 거냐?”

무구들을 살펴본 지 1시간이 지나자 안쪽에서 사람이 나오며 소리쳤다.

그는 연세가 지긋한 노인으로 얼굴에는 고집스러움이 가득했고, 손은 망치질로 단련되어 거칠기 짝이 없었다. 피부는 불길에 까맣게 탔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마나?’

노인의 주변에 마나가 감지되어 그가 헌터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김강현은 인사를 하며 조용히 그의 상태창을 살폈다.

연철무(S급 블랙스미스 헌터, 연화 길드)

체력: S 마나: A 근력: S

민첩: B 지능: A+ 정신력: S

파이어 마나(S+)-불에 대한 저항력을 120% 향상시키며, 자유자재로 불을 조종할 수 있다.

해머 타격술(S)-해머를 다루는 능력을 향상시키며, 정확하게 원하는 곳을 타격하여 충격을 가한다.

아이언 해머의 축복(S)-대장장이 신의 축복으로, 제조와 수리 시 원래 성능보다 업그레이드된다.

‘이, 이게 뭐야?

노인의 스탯의 체력과 스킬이 어마무시했다. 특히 지구에서 처음 보는 생산직 상태창이기에 더욱 놀라움이 컸다.

“그냥 다른 데 가라. 여긴 내 취미로 운영하는 데라 어중이떠중이들은 안 받는다.”

그사이 연철무는 다짜고짜 인사도 받지 않고 김강현을 내쫓으려 소리쳤다.

‘성격이 괴팍하다고 하더니…….’

김강현은 연철무의 성격에 대해서도 미리 언질을 받았는데, 고집이 세고 자신의 일밖에 모르는 대쪽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자신이 만든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 함부로 팔지 않고 사람을 골라 팔 정도여서 검천호도 연철무와 친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러한 연철무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오해하고 친해지지 못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검천호 어르신의 소개를 받아서 왔습니다.”

“검쟁이 녀석이?”

연철무는 다시 귀찮아하는 기색과 함께 손을 내저으며 김강현을 내쫓으려고 했지만, 검천호의 이름이 나오자 입술이 닷 발 나왔다.

“사람 귀찮게 하네. 소개장은?”

“여기 있습니다.”

김강현이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미리 검천호가 작성해 준 소개장을 건넸고, 연철무는 내용을 상세히 읽기 시작했다.

‘녀석이 내놓는 물건들을 사주고, 쓸 만한 무구들을 팔라고? 그리고 자신이 보증하고 책임져?’

소개장에 쓰인 글씨에는 독특하게 마나가 담겨 있었으며, 평소 눈에 익숙한 글씨체라 확실히 검천호가 쓴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검천호의 소개로 몇몇 헌터들이 자신의 가게에 방문하긴 했지만, 이렇게 소개장에 보증과 책임까지 지겠다는 녀석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연철무는 눈앞의 김강현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소개장을 가지고 왔느니 어쩔 수 없지. 나는 이 가게 주인이자 대장장이인 연철무다. 그럼 팔려는 물건들을 꺼내봐.”

연철무가 머리를 긁적인 뒤 왼손에 든 가느다란 철봉으로 상점 테이블의 상판을 툭툭 치자, 김강현은 인벤토리와 머더러 헌터에게 얻었던 아공간 주머니에서 몬스터의 부산물들과 장비들을 모조리 꺼내놓았다.

그 양이 많아 테이블에 부산물들과 장비들이 산처럼 쌓였는데, 이를 본 연철무는 신나 하며 물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오호…… 깔끔하게 급소를 노려 일격에 죽였네. 가죽도 깨끗하고, 뒤처리도 아주 좋아.”

몬스터들의 부산물을 보는 연철무의 얼굴에선 귀찮음이 사라지고 호기심이 드러났다.

몇몇 헌터들이 몬스터의 사체를 팔고자 가지고 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실력이 낮아 몬스터를 죽일 때 이리저리 쑤시고 공격해 엉망이 된 사체를 들고 오기도 하고, 어떤 부위가 쓸 만한지 알지 못해 분해도 하지 않고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사냥한 지 오래되어 부패된 사체를 가지고 오는 멍청한 헌터들도 있었다.

‘다 하급 부산물이지만 실력이 괜찮아.’

김강현이 가지고 온 몬스터들의 부산물은 C~D급이었지만, 사체에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부위들만 도축해서 가져온 데다 상처 없이 깨끗하여 비싸게 되팔 수 있었다.

가지고 온 물품들이 모두 만족스럽자 연철무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 부산물들은 추후 물건값에서 제하기로 하지. 그럼 어떤 무구들을 원하지?”

이 말을 연철무를 알고 있는 헌터들이 들었으면 놀랐을 것이었다.

검천호가 이곳을 추천한 이유는 연철무가 사람을 가려 무구를 팔긴 하지만, 실력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철무는 언제나 무구를 팔 때 상대의 실력을 테스트하고 어떤 헌터인지 확인했는데, 검천호의 소개장과 깨끗한 부산물을 들고 온 김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연철무의 시험을 통과했다.

“검 한 자루와 보호 무구들을 찾고 있습니다.”

“검?”

‘몬스터들 사체엔 타격기의 흔적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봤던 사체의 흔적과 달리 김강현이 검을 청하자 연철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 내놔봐라!”

연철무는 김강현의 양손을 앞뒤로 자세하게 살폈다.

몸은 정직하여 어떤 것을 수련했느냐에 따라 그 흔적이 남는데, 김강현의 손에는 최근까지 타격기를 수련한 흔적이 보였다.

“네 손에서 검을 잡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검이 왜 필요하지?”

“맞습니다. 얼마 전까지 주먹과 발을 이용하여 몬스터들을 사냥했고, 최근 검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뭐, 뭐어?”

“그러고 보니 일주일도 안 되었네요.”

‘검에 미친 녀석이…… 이놈에게서 뭘 본 거지? 아니, 사기꾼 아냐?’

순간 연철무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녀석에게 자신을 소개시켜 준 것이 맞는지, 가지고 온 소개장이 불법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들었지만 연철무는 일단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어떤 검을 찾고 있지?”

“마나 효율이 좋고 부서지지 않게 튼튼하면 좋겠네요.”

“음…….”

단순하지만 까다로운 요청에 연철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녀석이 말한 조건에 어울리는 녀석들이 검쟁이의 집에도 있을 텐데?’

평소 검천호는 수련을 하면 검날이 망가질 정도로 무식하게 사용하는지라 김강현이 말한 유형의 검들을 꽤 많이 주었었다.

그런데 그 검 중 하나를 주는 것이 아니라 굳이 자신에게 보냈다는 사실에 의구심이 들었다.

“이유는?”

말로 설명을 하기보다 보여주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 같아 김강현은 오른손에 붉은 마나 소드를 만들어냈다.

“맨손으로 마나 소드를?!”

‘마나 속성이?’

김강현이 맨손으로 마나 소드를 만들어내자, 연철무는 김강현에 손에서 검을 수련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거기에다 김강현이 보인 붉은 마나는 쉽게 의지에 순응하여 반응하는 보통의 푸른 마나와 달리 파괴적이고 당장에라도 자신을 공격할 것만 같았다.

그사이 김강현은 마나 소드를 거두며 말을 이어나갔다.

“네. 위력은 뛰어나지만 마나 소모가 커 장기간 유지할 수 없죠. 그래서 평상시에 쓸 수 있고, 마나 소드의 매개체로도 쓸 수 있는 검을 찾고 있습니다.”

“마나 소드라면 손에 굳은살이 생길 리 없지. 그리고 일반적인 검이라면 네 마나를 버텨내지 않을 것 같고.”

‘이래서 나한테 이놈을 보낸 거구나.’

연철무가 검천호에게 준 검들은 강철검으로, 험한 수련을 견디기 위해 강도를 A급으로 만든 것뿐이었다. 그런데 김강현의 마나 소드가 강철검에 휩싸이면, 몇 번 쓰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 분명했다.

전후사정을 알게 된 연철무는 눈빛을 빛내며 상점 문을 잠그고 김강현에게 손짓했다.

* * *

“상점에 있는 건 B급부터 C급까지의 무구들이고, 진짜는 안쪽에 보관되어 있으니 따라와라.”

그의 말대로 상점에 진열된 물건들은 종종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가끔 이곳의 무구가 뛰어나다는 소문만 듣고 오는 헌터들과 혹은 실력도 없고 무구 보는 눈도 없는 헌터들을 쫓기 위한 것들이었다.

김강현은 연철무와 함께 상점 안쪽에 있는 대장간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몇 개의 광석들만 있을 뿐 무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데려갈지 궁금하던 찰나, 연철무가 대장간 벽면을 이리저리 더듬거리며 마나를 흘렸다.

‘설마 기관진식?’

끼이이익. 끼익! 우르르르릉!

예상대로 발밑이 흔들림과 동시에 기계음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화로 옆의 땅바닥이 열리며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드러났다.

“A급 이상의 무구들과 특수 광물들은 보안상 따로 보관할 수밖에 없지.”

“대단하네요.”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만큼 함부로 들어갔다간 바로 죽을 거다.”

A급 이상의 무구들은 그 가격이 가볍게 10억은 넘어가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했고, 기관진식에는 연철무의 지문과 마나가 등록되어 있어 여는 방법을 안다 해도 쉽게 열 수 없었다.

연철무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데 지하 공간 천장에는 빛을 발현하는 광석들이 박혀 있어 사물의 구별이 가능했다.

“내 보물 창고를 소개하지.”

“대, 대단하네요.”

계단을 내려가 지하 공간에 마련되어 있는 무구들을 보자 김강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기다 테라에 있었을 땐 몰랐던 무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지금은 감회가 더 남달랐다.

보물 창고라는 말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지하 공간에는 뛰어난 무구들이 완벽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무구들 중 몇 개를 골라 상태창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A급 이상으로 뛰어난 무구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특수 광석들이 있었다.

“이 녀석을 사용해 봐라.”

“네, 네!”

연철무는 무구들 중 검 하나를 골라 김강현을 향해 다짜고짜 던졌다.

얼떨결에 날아오는 검을 잡아챈 김강현은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지하 공간은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어 검을 마음껏 휘두르기에 충분했다.

‘생각보다 무겁지만…… 휘두를 때 느낌이 좋아.’

미리 김강현의 손을 본 연철무가 딱 손에 맞는 검을 골라주었기 때문에, 검은 오랜 시간 사용한 것처럼 낯설지 않고 친숙함이 느껴졌다.

‘그럼…….’

김강현은 검에 전력으로 마나 소드를 만들어내자 붉은색 마나가 천장을 뚫을 듯 솟구쳤다.

“어? 어?!”

후두두둑!

그런데 불과 10초도 지나지 않아 마나 소드의 힘을 견뎌내지 못해 검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김강현은 당황스러움에 부서진 검과 연철무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재미있어. 이번엔 다른 검을 준비해 줄 테니 기다려라!”

연철무는 화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검이 김강현의 마나를 버티지 못함에 오기가 생겨, 진열장에서 그에게 맞는 검을 찾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부서진 검값은 따로 드릴게요.”

“됐다. 그건 검을 잘못 준 내 잘못이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한 연철무는 은빛으로 빛나는 검 한 자루를 골라 김강현에게 던지며 자신감 있게 소리쳤다.

“이번엔 그 녀석을 사용해 봐라!”

은빛 섬광(S급)

-불멸의 금속이라 불리는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었으며, 단단한 내구성으로 A급 이하의 공격은 모조리 흡수해 없애 버린다. 마나 친화적인 아다만티움의 속성 덕분에, 마나를 활용한 공격을 펼칠 시 공격력이 증폭됨과 동시에 마나의 소모가 감소한다.

김강현은 아까와 달리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검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검의 상태창을 확인하니 S급이라는 등급에 어울릴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척 보기에도 뛰어나지 않느냐? 내 자신작이다!”

우연히 유성을 얻게 된 연철무는 아다만티움을 추출해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이 명작을 만들었다. 아직 검천호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검으로 김강현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자 꺼낸 것이었다.

김강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조심스럽게 마나 소드를 시전하여 은빛 섬광을 휘둘렀다.

쩌적! 쩍!

“이게 무슨?!”

마나 소드가 실린 은빛 섬광을 10번쯤 휘두르자 검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연철무가 그 소리를 쫓아 확인하니 은빛 섬광의 검날 전체에 금이 가 있었고, 김강현도 이를 발견하자 서둘러 마나 소드를 거두어들였다.

김강현은 더 이상 못 쓰게 된 은빛 섬광을 연철무에게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허…… 은빛 섬광마저…….”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은빛 섬광을 받은 연철무는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 반드시 네게 맞는 검을 찾든가! 만들어줄 테니까!”

그렇지만 금세 오기가 생긴 연철무는 김강현에게 검을 주기 위해 샅샅이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응?”

연철무가 검을 고르는 사이 김강현은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한 자루 검은색 검에 시선이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마나가 검에 반응하고 있어 호기심이 일었다.

궁금함에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검은 장기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두껍게 먼지가 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먼지를 털고 검집째 들어 휘둘러보니 손의 촉감과 느낌이 마음에 쏙 들었다.

“혹시 이 검을 봐도 됩니까?”

“응? 자, 잠깐! 그 검은 검집에서 꺼내지 마라.”

“네?”

검을 찾고 있던 연철무가 검을 만지는 김강현을 보고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그 검은…… 몇몇 헌터들을 죽인 마검이다.”

“마검이요?”

“그래. 어떤 헌터가 던전에서 발견했다가 돌고 돌아 검쟁이한테 왔지. 그 검은 까다롭게도 주인을 고르는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검을 잡은 사람의 마나를 폭주시킨다!”

“그럼 검 어르신은 시험을 통과했습니까?”

“시험은 통과했지만 자신은 천류신검이 있는 데다가, 성향이 맞지 않아 검이 자신을 거부한다고 하더군. 괜한 헌터들의 손에 넘어가 피해 보는 일이 없게끔 내가 보관 중이다.”

“그럼 녹여서 다른 무구로 만드는 게 낫지 않나요?”

“마검의 재질이 궁금하여 시도해 보았으나 녹지 않더구나. 만류해도 소용없을 것 같으니 한 번 뽑아봐라.”

김강현은 연철무의 설명에 두려움이 생기기보다 호기심이 일었고, 이를 눈치챈 연철무는 한숨 쉬며 말했다.

허락이 떨어지자 김강현은 천천히 검집에서 마검을 꺼내 들었다.

“크으으읏!”

손바닥을 통해 마검의 힘이 흘러 들어왔는데, 마치 날카로운 송곳으로 전신을 찌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고작 검에게 굴복당할 줄 알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김강현은 마검에 마나를 쏘아 보내며 공격을 시도했고,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연철무는 김강현과 마검에게서 격렬한 마나의 충돌을 느끼고 조용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평범한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 싸움은 금방 끝났을 거야.’

이 검은 파괴적인 마나를 가지고 있어, 아무것도 모르고 잡는 순간 마나 폭주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김강현의 인피니티 마나는 마력에 내성을 가지고 있을 만큼 힘이 강력하여, 마검의 힘에 지배당하지 않고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쉽게 끝낼 생각은 없단 말이지?’

마검은 상대방을 죽일 생각으로 공격했지만),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공격 패턴이 단순했다.

마검의 성향을 파악한 김강현은 마검에 대항하는 척하며 일부 마나를 다른 방향으로 보냈다.

‘이 녀석아. 늦었다.’

마검은 이를 뒤늦게 눈치채고 대응하려고 했지만, 김강현이 마검의 뒤를 노려 공격했다.

그리고 항복하지 않으면 완전히 의지를 부숴 버릴 정도로 강하게 마나를 흘렸다.

우우웅! 우우웅!

마검은 강하게 몰아치는 인피니티 마나를 버티다가 이대로 의지가 사라질 것을 느끼자 검명을 토해내며 항복했다.

“검명?”

지하 공간에서 울리는 마검의 검명에 연철무는 깜짝 놀라며 마검과 김강현을 번갈아 보았다.

“설마 시험에 통과한 건가?”

“후우…… 네. 맞습니다.”

마검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폭주할 경우를 가정한 연철무는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양손 해머를 들고 긴장하고 있던 그는 김강현이 정상인 것을 확인하자 해머를 다시 슬쩍 내려놓았다.

이를 본 김강현은 순간 움찔거렸지만, 바로 마검의 정보를 살폈다.

마검 크로노스(A급)

-마계의 희귀 금속 다크니움으로 만들어졌으며 고대 마수 크로노스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다. 단단함은 지상 최강의 금속이라 불리는 아다만티움과 비견되며, 주인의 기운을 증폭시킴과 동시에 손상 시 기운을 흡수해 성장한다. 그러나 현재 오랜 시간 방치되어 힘이 약해지고 일부 능력이 봉인되어 있다.

눈앞에 보이는 마검의 정보에 김강현의 표정이 매우 환해졌다.

의도치 않게 두 개의 검을 망가트렸지만, 자신의 마나를 견디는 튼튼한 검을 찾아낸 것이었다.

‘성장형 무구!’

강해질 때마다 힘을 견딜 수 있는 무구를 새로 구해야 하는데, 마검은 그럴 필요 없이 자신의 마나로 성장시키면 될 터였다.

게다가 지금은 A급이지만 힘을 회복시킨다면 S급으로 무조건 성장할 가능성이 보였다.

“다행이군. 그동안 그놈 때문에 골치 아팠었는데 주인을 잘 찾았어.”

“소중히…… 제 몸처럼 다루겠습니다!”

김강현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마검을 보다가 다시 검집에 넣은 뒤 허리춤에 맸다.

“이제 보호구를 골라야죠.”

“흠…… 내 생각엔 무구는 고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게 무슨?”

“무구를 착용하면 전투 때 부상을 방지할 수 있겠지. 근데 웬만한 검도 버티지 못한 마나를 무구들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음…….”

“그래서 무구를 구하기보단 몸을 단련하고 마나로 몸을 보호하는 편이 나을 거다. 보조로 타격기를 수련하면서 말이야.”

연철무의 조언을 곰곰이 곱씹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무구를 착용하면 움직임에 제약이 생겨 전투에 불편함이 있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마나를 버틸 만한 무구들이 흔치 않았다.

그렇기에 김강현도 인피니티 포스를 단련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섰다.

“알겠습니다.”

“그럼 올라가서 계산을 하자꾸나.”

김강현과 연철무는 지하 창고에서 올라와 상점에서 검값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150억.”

“네? 50억요?”

“벌써 귀가 먹었냐? 백. 오. 십. 억. 이다!”

계산기를 두들긴 연철무의 말에 순간 김강현은 액수가 믿겨지지 않아 부정했다.

그렇지만 연철무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김강현에게 현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검 한 자루가 150억이라고요?”

“그래. 네가 부러트리고 망가트린 두 개의 검값은 뺐다. 만약 그것까지 포함했다면…… 800억이야.”

“8, 800억?”

말도 안 되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김강현이 입을 다물지 못하자 연철무는 친절히 설명을 시작했다.

“아직 헌터 생활을 얼마 하지 않은 너로선 큰 금액일 터지만…… 나중에 헌터 등급이 A급, S급이 되면 이렇게 좋은 검을 미리 구했다는 사실이 행운으로 느껴질 것이야. 실제 많은 헌터들이 돈이 있어도 자신에게 맞는 무구들을 구할 수 없으니까.”

“…….”

“그리고 그 마검은 장물이고, 검쟁이의 소개로 왔으니까 싸게 해준 거다. 아마 다른 데 가보면 200억에서 250억을 불렀을 거야.”

하나같이 뼈를 때리는 말로 틀린 말이 없었다.

우연치 않게 마검을 얻었지만, 다음에 방문했을 때 마검이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더불어 김강현은 만약 연철무가 스탯을 확인할 수 있어서 마검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절대 팔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결제는 어떻게 합니까?”

“헌터들의 모든 거래는 헌터폰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앞으로 네 앞으로 발생하는 수익의 50%를 자동이체로 가져가마. 물론 돈이 생기면 추가 납입을 해도 된다. 그리고 검쟁이 녀석 얼굴을 봐서 이자는 서비스로 무이자다.”

“알겠습니다.”

“충고를 하자면…… 너무 돈을 마음에 두지 마라. 앞으로 강해지면 이런 돈 따윈 금방 푼돈이 될 테니까.”

하지만 150억이라는 돈이 너무 커 연철무의 마지막 충고는 들리지 않았다.

결국 김강현은 마검을 포기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헌터폰으로 크로노스의 값을 지불했고, 150억이라는 빚을 진 빚쟁이가 되었다.

* * *

“내가 빚쟁이라니…… 빚쟁이라니!”

“시끄럽다.”

집으로 돌아온 김강현은 빚쟁이라는 말만 중얼거리며 넋이 나가 있었다.

테라에서도 한 번도 이런 거금을 빚진 적이 없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그깟 돈이야 벌면 될 뿐이니라. 그리고 지금껏 그렇게 살지 않았느냐?”

“하아…… 아, 무려 성 10채는 가볍게 지을 수 있는 돈이라고…… 그리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심하긴…… 지구로 돌아오더니 많이 멍청해졌구나.”

“뭐어?”

순간 김강현은 헬릭스의 말에 발끈하여 소리쳤다.

“왜 그렇게 돈을 어렵게 벌려고 하느냐? 바로 갈 수 있는 길을 돌고 돌아가려고 하고 있어 하는 말이다.”

“어떻게 돈을 단기간에?”

“이 몸이 지구의 문명에 대해 알아보니 테라에 비해 마나를 활용한 기술이 떨어지더구나. 네가 가지고 있는 테라의 지식을 조금만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헬릭스의 말을 듣고 김강현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테라는 지구처럼 과학이 아니라 마나를 활용한 기술이 굉장히 발달한 세계였고, 김강현은 테라를 화려하게 꽃피웠던 지식들을 원리부터 활용까지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돈을 왕창 벌 수 있는 블루 오션이야!’

덧붙여 지금 지구는 헌터들이 나타나고 마나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김강현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은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지고 있는 지식들 중에는 단숨에 공개하면 위험한 지식들도 있으므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면 빚쟁이 생활은 청산하고 부자가 되겠는걸?”

“그럼 이 몸의 조언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지분 나누는 것을 잊지 말거라.”

“알았어. 아 참!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었는데…… 혹시 크로노스라는 고대 마수를 아냐?”

“크로노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김강현은 문득 마검에 고대 마수 크로노스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물었고, 헬릭스는 크로노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김강현의 소환수로 지내지만, 그는 마계를 통치하는 발록들의 군주였다.

“아! 혹시 돌연변이 고대 마수를 말하는 것이냐? 그놈은 어떻게 알고 물어보는 것이냐?”

“실은…….”

헬릭스가 고대 마수 크로노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자, 김강현은 연철무의 헌터 상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고대 마수 크로노스의 영혼이 봉인된 마검이라…… 하나같이 위험한 것들만 꼬이는 건지 모르겠구나.”

“위험하다고?”

“우선 마검의 개념부터 설명하는 게 좋겠구나. 마검은 다른 검들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용자의 정신을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에 방심하는 순간 몸과 정신의 통제권을 빼앗아 버릴 것이니라.”

“항시 경계하고 강해져야 한다는 말이네?”

“마검에 몸과 정신을 빼앗긴 인간들은 폭주하여 살육자가 되었으니 조심해야겠지. 그리고 고대 마수 크로노스는 지구로 치면 코뿔소라는 동물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더군.”

“그 말은 본 적이 없다고 들리는데?”

이야기를 듣던 김강현은 헬릭스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물었다.

“이 몸이 태어나기 전의 일이니까. 아무튼 본론으로 넘어가서…… 당시 무력이 상당하고 마왕들의 공격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고 들었다. 게다가 피아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니 상당히 골치였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각 마왕들이 힘을 모아 놈의 영혼은 검에 봉인 후 차원의 틈에 던졌고, 크로노스의 시체는 어딘가에 봉인되었다고 들었느니라.”

“그럼 마검은 차원의 틈을 떠돌다가 던전이 생성될 때 지구로 흘러들어왔다는 말이네.”

헬릭스의 설명 덕분에 마검이 어떤 존재인지, 이 안에 봉인된 고대 마수 크로노스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되었다.

“그렇다. 그보다 이 몸께서 설명하느라 배가 고프니 음식을 바쳐라.”

“마침 저녁 시간이니…… 내려가서 밥 먹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숨에 헬릭스는 김강현의 머리 위에 올라타며 얼른 주방으로 갈 것을 명령했다.

“어떡하지? 밥 먹으려면 아직 20분 정도 더 걸릴 것 같은데?”

“도와드릴 건 없나요?”

“거실에 가서 아버지랑 TV 보고 있으렴. 그리고 헬릭스는 밥 먹기 전에 이거 먹어보지 않을래?”

1층 주방으로 내려왔지만 저녁을 먹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수진의 대답에 헬릭스는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무언가를 그릇에 담아 건네주자 얼굴이 환해졌다.

“에피타이저로 만든 크로와상이야.”

“빵이라고 해봤자 고작…….”

“일단 먹어보고 말해봐.”

테라에선 맛있는 빵이라고 해봤자 부드럽고 약간의 단맛이 날 뿐이었기에 헬릭스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빵을 한 입 물었다.

바삭! 바삭!

“어? 이, 이게 빵이라고?”

“어때? 달고 바삭하지? 엄마의 최신작이라고!”

“겉과 속이 완전 바삭한 데다가…… 버터의 달콤함이 입안에 퍼지는구나! 게다가 빵이 따뜻하니 더욱 맛있군.”

극강의 바삭함과 단맛에 헬릭스의 표정이 행복함으로 물들었다. 너무 맛있는지 조금씩 크로와상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이제 애완동물이 다 됐네.’

김강현은 이제 파괴의 대명사로 흉흉했던 헬릭스가 눈앞의 존재가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수진을 보니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핸드폰으로 귀여운 헬릭스의 모습을 담기 바빴다.

김강현은 작은 미소를 띠며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거실에는 김철진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조용히 말을 걸었지만, 자세히 보니 TV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깊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 어! 그래. 무슨 일이냐?”

김철진은 뒤늦게 김강현의 인기척을 느끼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표정이 좋질 않네요.”

“하하하, 네가 보기에도 그래 보이느냐?”

“네. 눈 밑의 다크 서클이 평소보다 진합니다.”

딱 보기에도 고민이 있다는 얼굴을 하고 있어 김강현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철진의 딱딱한 얼굴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주변을 둘러본 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긴 이야기 나누기에 마땅치 않으니…… 자리를 옮기자꾸나.”

김철진은 TV를 끈 후, 조용히 김강현을 데리고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재는 밖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방음이 완벽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네 엄마와 아현이에게는 비밀이다.”

너무도 진지한 표정에 김강현은 장난을 치려는 생각을 접고 김철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갑작스럽지만…… 내 과거부터 이야기해야겠구나.”

“…….”

“우선 나와 네 엄마를 고아라고 알고 있을 거다.”

“네.”

어린 시절 친구들은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이 되면 친척들과 모여 지냈지만, 김강현과 김아현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거나 고아원에서 명절을 보냈다.

이유가 궁금했던 김강현이 이수진에게 사정을 물어보자, 이수진은 김철진과 그녀 둘 다 어릴 적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고아원 원장 선생님이 키워주다시피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었다.

“사실 아빠의 가족들은 사고로 죽지 않았단다. 정확히는 내가 18살 때…… 가족들과 의절을 했지.”

“그게 무슨?”

“US 그룹은 알고 있겠지?”

갑자기 등장한 가족 이야기에 김강현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김철진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US 그룹이라면……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회사가 아닙니까?”

“그래. 그리고 US 그룹의 회장 김고엽이 나의 아버지였던 사람이자 너의 할아버지 되는 사람이란다.”

“……?!”

너무도 충격적인 이야기에 김강현은 놀라 경악했고, 김철진은 김강현이 진정할 때까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TV에서 보았던 김고엽의 얼굴과 김철진의 얼굴을 비교해 생각해 보니, 신기하게도 나중에 김철진이 나이를 먹는다면 김고엽의 얼굴이 될 것 같았다.

3분여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김강현의 표정을 통해 흥분과 놀람이 가라앉는 것을 확인한 김철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어릴 적 집안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단다. 철저하게 모든 것을 숫자로 계산하는 아버지와 반대로 포근하고 자상했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미치도록 노력하는 형. 그 집은 절대 실패는 허용되지 않고 오로지 성공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낙오되는 곳이란다.”

“…….”

“물질적으론 부족함 없이 풍족하지만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힘든 그곳에서 어머니가 계셨기에 살 수 있었지. 만약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집안에서 난 버티지 못하고 죽었을 거고.”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겠지.’

김철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강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테라를 다녀오기 전의 김강현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무조건 부러워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인 이 세계에서는 돈으로 무엇이든지 사고, 모든지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돈으로는 절대로 마음의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다.

테라에서 돈에 의해 죽은 자, 돈을 포기하고 행복을 찾은 자, 돈을 쫓다가 죽은 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아온 김강현은 김철진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럼 가족들과 의절을 한 이유가 할머니를 제외한 가족들과의 다툼 때문인가요?”

“아버지와의 다툼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아버지는 오직 1등만을 원하고, 항상 최고가 되기를 바랐으니까. 형은 아버지의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켜 주었던 반면,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형은 날 볼 때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지.”

“…….”

“결정적인 계기는 어머니였다. 몸이 연약해 건강이 좋지 않으셨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장병까지 앓고 계셨는데, 어느 날 병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들어갈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단다.”

“…….”

“급하게 아버지에게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질 않았고, 비서실을 통해 해외로 나가 있다는 소식을 받아 간신히 어머니가 위급하니 당장 귀국해 달라는 말을 전달했지만, 결국 아버지는 오지 않았어. 며칠 뒤 어머니는 돌아…… 가셨지.”

말을 하는 김철진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목소리에 울먹거림이 가득했지만, 김강현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 슬픔과 눈물을 억누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나중에 아버진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나타나지 않더구나. 간신히 발인날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김철진은 그때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렸다.

칼같이 잘 다려진 검은 양복에 슬픔은 찾아볼 수 없는 냉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죽은 아내의 영정 사진을 잠시 바라보고는, 급한 일이 있다며 회사로 떠났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사에 커다란 이익을 줄 수 있는 바이버와의 약속이 있었다는구나. 그런데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보다 중요했는지 잘 모르겠다.”

“…….”

“아버진 세상 무엇보다 돈에 대한 욕심이 가득하다. 아마 지금은 권력과 명예도 가득할 테지. 만약 그 집안에 계속 있었더라면…… 아버지의 욕심에 휘말려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고 이용당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집안과 의절을 하고 집을 나왔지.”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었구나.’

평소 김강현은 김철진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철진은 이수진을 19살 때 만나 20살 때 결혼을 한 후 가정을 이끌어가기 위해 낮에는 고된 일을 했고, 밤에는 고시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를 했다.

이런 생활을 2년 동안 한 끝에 노력이 빛을 발해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로서 발을 내디뎠다고 알고 있었다.

만약 어릴 적 가족들과 의절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지냈다면…… 어쩌면 검사로서의 꿈이 빨리 이루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김철진은 이를 포기하고 당당히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것이었다.

얘기를 듣던 김강현은 김철진이 그동안 숨겼던 이야기를 왜 지금에서야 하는 것인지 숨은 의도를 알아차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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