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S급 헌터 검천호Ⅰ
헬릭스(키메라 발록)
체력: B 마력: B+ 근력: B
민첩: C+ 지능: S 정신력: S
다크 윕(SS)-발록 종족의 특성 능력으로, 채찍을 활용한 공격에 능하다.
마법(10서클)-어둠, 불꽃, 그림자 속성의 마법을 사용한다.
키메라 세포(S+)-다양한 몬스터들의 능력을 세포에 이식하였고, 심장과 머리만 온전하다면 마력을 이용해 회복이 가능하다. 소환자의 능력치에 영향을 받아 일부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
‘말이 필요 없을 정도네.’
영혼의 계약 영향으로 헬릭스의 스탯이 줄어들어 있을 뿐, 가지고 있는 스킬들을 확인하니 하나하나가 대단했다.
가지고 있는 마력이 적어 온전하게 마법과 키메라 세포 스킬을 사용할 수 없지만, 추후 능력치만 복구되면 큰 전력이 될 것이었다.
너무도 뛰어난 스킬들의 목록에 김강현의 눈빛에는 부러움이 한가득이었다.
“훗! 그런 눈으로 보는 걸 보니…… 이 몸의 위대함을 알게 된 모양이로구나. 얼른 이 몸을 찬양하거라! 음하하하하!”
하지만 허세를 부리는 헬릭스를 보니 금세 부러움이 사라졌다.
“됐고! 집에 가서 밥 먹자. 이제 부모님이 일어날 시간이야.”
“오늘은 어떤 음식이 나올지 궁금하구나.”
헬릭스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뛰어난 미각으로 음식 평가를 하고 있어, 이수진은 매일매일 새로운 요리 개발을 하고 먹이는 맛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옆에선 항상 김아현이 헬릭스의 먹방 영상을 찍었는데, 너무도 재밌어 보여 김강현도 구경하는 맛에 식사 시간이 즐거웠다.
“응?”
“……!”
집으로 가려던 김강현과 헬릭스는 갑자기 긴장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경계를 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 올 때까지 몰랐을 줄이야.”
“가까이 다가오자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졌어. 그쪽도 경계를 하는 모양이야.”
“섣불리 공격하지 말거라. 이 몸조차 상대의 강함을 짐작할 수 없느니라.”
헬릭스의 말에 김강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침을 삼켰다.
지금 자신들을 향해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불과 200m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 존재감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만큼 현재의 자신들로써는 측정할 수 없는 상대이며, 만약 적일 경우 승부를 점칠 수 없기 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부스럭! 부스럭!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편에서 수풀 헤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40대 초반의 남성으로 움직이기 편한 무복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검 한 자루가 메어져 있었다. 몸을 보면 오랜 시간 수련을 한 듯 무인이라는 느낌이 났는데 눈빛에는 귀찮음과 무기력함이 가득해 보였다.
-어떡하겠느냐?
-기다려. 가능하면 싸우기보다 대화로 해결하는 게 좋겠지.
그를 본 김강현과 헬릭스가 메세지 마법으로 짧게 대화를 나누며 상황을 판단하는 사이 그는 둘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냐? 타 헌터의 관할 구역에서 날뛰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거겠지?”
“네?”
“그게 무슨 소리냐?”
“뭐?”
그는 대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던졌는데, 오히려 김강현과 헬릭스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 기가 막힌 일이 펼쳐지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자, 잠깐. 개가 사람 말을 해?”
“개라니! 이 몸은 하찮은 동물 따위가 아니니라!”
“이건…… TV에 제보하거나 기네스 협회에 연락해야 하는 것 아니야?!”
“뭬야?!”
더불어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김강현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고, 헬릭스는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승부를 점칠 수 없는 상대이기 때문에 말로 화를 냈을 뿐, 만만한 상대였으면 당장 마법을 시전했을 것이다.
“괜찮다면 타 헌터의 관할 구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너 헌터 된 지 얼마 안 됐냐?”
“네.”
“그럼 검천호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하아, 이놈의 현터협회는 쓸데없는 헌터증만 발급하고 교육 같은 건 안 시키나? 올해만 대체 몇 번째야!”
‘싸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검천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상대방의 반응을 보니 서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김강현은 상대가 싸울 마음이 없음을 확인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보다 어린 것 같으니 말은 편하게 하마.”
“네. 알겠습니다.”
“아까 말했지만, 내 이름은 검천호다. 네 소속과 이름은?”
“소속된 길드는 없고, 김강현이라고 합니다.”
“헌터가 된 지 얼마나 됐지?”
“한 달 정도 됐습니다.”
“한 달이면 모를 법한데…… 응?!”
검천호는 귀찮음에 머리를 다시 긁적이다가 김강현을 보았는데, 뭔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눈빛이 바뀌었다.
“혹시…… 기술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나 스승이 있냐?”
“없습니다.”
“오호?”
처음으로 검천호의 표정과 눈빛에서 무기력함과 귀찮음이 사라지고, 호기심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는 헬릭스는 불길함을 느껴 김강현에게 메세지 마법을 시전했다.
-왠지 이상한 인간 같으니 조용히 가자.
-기다려 봐. 내 생각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이야기를…….
“사람을 앞에 두고 메세지 마법으로 이야기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군. 기분이 썩 좋지 않아.
“……?!”
“……!”
검천호의 말대로 메세지 마법을 서로 주고받던 김강현과 헬릭스는 순간 놀라 몸이 얼었다.
“이, 인간, 어떻게 안 거지?”
“어떻게 알긴! 마나 흐름이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뻔히 느껴지는데 모를 리가 있나!”
“마나 흐름을 파악했다고?”
헬릭스의 질문에 검천호가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궁금증이 생긴 김강현은 조심스럽게 검천호의 상태창을 확인하며 헬릭스와 공유했다.
검천호(S급 워리어 헌터, 천류문)
체력: S+ 마나: S 근력: S-
민첩: S- 지능: A 정신력: S
천류신공(S+)-항상 몸 상태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주며, 주위 마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마나의 컨트롤과 지배력을 상승시켜 효율적으로 마나를 사용한다.
천류검(S)-정해진 초식이 없으며 천류신공을 통해 결을 읽고 적을 공격한다. 천류신검으로 천류검을 시전할 시 공격력이 상승한다.
소드 마스터리(S)-검 계열의 무기를 사용할 시 숙련도와 공격력이 상승한다.
“헙!”
무지막지한 검천호의 스탯과 스킬에 김강현은 터져 나오는 감탄성을 간신히 막았다.
‘허…… 이 정도면 강하다는 지구의 인간들 중 손꼽히는 인간이겠구나.’
헬릭스도 검천호의 상태창을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껏 테라에서 강하다는 인간들을 보았지만, 이만큼 강한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검천호는 겉보기엔 담담하지만, 속으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세상이 놀랄 팔자군. 나 말고도 이런 녀석이 있을 줄이야.’
정확히는 김강현이 가진 현재 실력과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것인데, 그는 지금껏 이런 녀석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본 김강현은 자유자재로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최소 A급 헌터와 싸워도 지지 않을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옆에 데리고 있는 동물도 범상치 않았다.
이것이 한 달 만에 이룩한 결과라면 너무도 뛰어났다.
‘이 녀석이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검천호는 한시라도 빨리 김강현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었다.
“시간이 괜찮다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괜찮겠느냐?”
“좋습니다.”
“여기선 이야기를 나누기 불편하니 내 집으로 초대하마. 거기, 신기한 동물도 따라와라.”
“누가 신기한 동물이냐!”
헬릭스가 발끈하며 소리쳤지만, 검천호는 가볍게 무시하며 등을 돌렸다.
헬릭스는 툴툴거리며 김강현의 머리 위에 앉았고, 김강현은 조용히 검천호의 뒤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강현, 이런 곳에 집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일단 조용히 가자.”
검천호의 뒤를 따라갈수록 계속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데 동물들이 다닐 듯한 작은 소로만 만들어져 있을 뿐, 주변에 수풀이 무성했다. 결국 걸을 때마다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본 헬릭스는 바로 불만을 터트렸지만, 김강현은 검천호의 뒷모습을 보며 계속 따라갈 뿐이었다.
‘한 번도 멈칫거리나 발걸음이 멈춰 선 적이 없어.’
20여 분 동안 검천호를 따라가는데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검천호는 단 한번의 멈춤이 없었다.
게다가 아슬아슬하게 수풀들을 피하며 능숙하게 험한 산길을 올라가고 있어, 김강현은 검천호의 움직임을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머리도 쓸 만해 보이네.’
지금 이용하는 길은 예전에 사용했던 길로 지금은 따로 이용하는 길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길로 갔다간 바로 화를 낼 것이 분명하지만, 그는 김강현의 반응이 궁금하여 이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짜증을 내기는커녕 자신의 움직임을 훔쳐 배우며 뒤쫓아 오고 있어, 재미있는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검천호는 계속 수풀을 헤치고 산길을 올라가다가 족히 100년이 넘어 보이는 소나무 앞에서 멈춰 선 뒤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내 발걸음을 잘 보고 똑같이 따라 와야 한다. 만약 잘 따라오지 못하면 큰 곤혹을 치르게 된다.”
“헛!”
“지금 내 눈이 삔 건가?”
말과 함께 검천호가 소나무 안쪽으로 발을 내디뎌 들어가자 갑자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간 김강현은 놀라 크게 숨을 들이마셨고 헬릭스는 눈을 비비며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검천호는 감쪽같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김강현은 서둘러 검천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까지 안개가 없었는데…….”
몇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눈앞에 자욱한 안개가 펼쳐지며, 희미하게 안개로 가려진 검천호의 모습이 보였다.
이 기이한 현상에 헬릭스는 마법의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헛수고였고, 김강현은 떠오르는 것이 있어 중얼거렸다.
“이게 진법인가?”
“진법? 그것이 무엇이냐?”
“주로 무협 소설에 나오는데…… 자연물 혹은 물건을 특정한 방식으로 배치해 안개, 비, 어둠 등 특수한 효과를 일으키는 수법이라고 해. 한데 아직까지 진법이 있을 줄은 몰랐어.”
“흥! 이곳에 마나와 마법이 존재하는데, 진법 따위가 있다는 게 무엇이 놀라우냐? 오히려 이 몸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게 아니더냐?”
“생각해 보니…… 그렇네.”
김강현은 헬릭스의 호기심을 해결해 주며 서둘러 검천호의 발걸음을 쫓아갔다. 그 뒤로 안갯속을 5분 정도 걸어가자 서서히 안개가 사라지고 두 채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와!”
“내 집에 온 걸 환영한다.”
‘가진 실력과 진법, 그리고 이곳의 집을 보면 보통 헌터는 아닐 테지.’
검천호의 집은 2층 저택으로 외벽이 화이트로 되어 있었고, 집 앞마당은 잔디밭으로 조경수가 군데군데 서 있었다. 저택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농작물들이 심어져 있었고, 오른편에는 연무장으로 짐작되는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진법을 마련하고 그 안에 집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검천호가 평범한 헌터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 * *
“거실로 들어가자.”
집 안엔 모던한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블랙 & 화이트로 깔끔하게 꾸며져 있어 검천호의 성격을 짐작하게 했다.
검천호는 거실의 소파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거기 앉아라. 손님이니…… 마실 것을 가져오지.”
김강현이 검천호의 말대로 소파에 앉자마자 헬릭스는 냉큼 어깨에서 내려왔고, 검천호는 거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헌터폰을 집어 들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어? 이 집 소파가 맛집이구나!”
헬릭스는 푹신한 소파의 촉감을 느끼자마자 바로 뒹굴며 편안하게 누웠다. 잠시 후 검천호가 거실에서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자, 마셔라.”
“잘 마시겠습니다.”
“응?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니구나. 설마 여기에서도 이걸 볼 줄이야.”
검천호가 가져온 것은 물이 가득 담긴 병이었는데, 물에 담긴 기운을 감지한 헬릭스가 중얼거렸다.
검천호를 따라오느라고 목이 말랐던 김강현이 기다렸다는 듯 물을 마시자마자 아침 수련으로 쌓였던 피로가 단숨에 없어져 정신이 맑아지고 마나 회복이 빨라졌다.
“정령수?”
“중급 물의 정령이 만들었구나.”
김강현은 물맛을 보고 물의 정령이 만들어낸 정령수임을 알아차렸고, 헬릭스는 물에서 느껴지는 정령력의 양으로 알아차렸다.
정령수는 물의 정령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정령력을 소모해 만드는 것인 만큼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더불어 매일 꾸준히 복용할 경우 병에 쉽게 걸리지 않았다.
“아침 수련의 피로가 싹 풀리는구나. 한 잔 더!”
“왜…… 그러십니까?”
검천호가 홀짝홀짝 물을 마시던 김강현을 빤히 바라보자 부담스러웠던 김강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러 번 시험했지만 네 녀석은 반응이 재밌단 말이야.”
“네?”
“고작 한 달밖에 안 된 헌터가 정령수를 알아차리고, 옆의 동물은 누가 만들었는지까지 정확히 맞혔어. 지금까지 헌터들은 피로가 회복되는 신기한 물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
“나야 아는 사람이 있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원래 정령수는 거액의 돈이 아니면 구하기 어렵고 수량도 적기 때문에 구하기 힘들어. 정령수를 알아차린다는 건…… 평소 정령수를 구입할 수 있는 거대 길드 소속이거나 막대한 재력을 가졌다는 말밖에 되지 않아. 한데 소속된 길드가 없다고 했으니 막대한 재력을 가졌다고 생각해야 하나?”
“…….”
검천호의 질문에 김강현은 입을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정령수는 테라에서 엘프들을 통해 쉽게 마셨던 터라 잘 알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정령수를 마시자 자신도 모르게 말해 버린 것이었다.
‘섣불리 말하면 안 되겠어.’
김강현은 말을 하면 할수록 검천호가 자신에 대해 파헤치자 조심해야 함을 느꼈고, 이를 눈치챈 검천호가 화제를 돌렸다.
“내 개인적인 궁금증은 여기서 접고 헌터들의 관할 구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지.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데…… 현터협회의 역할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음…… 헌터들과 던전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강현은 유지운을 떠올리며 대답했고, 헬릭스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대며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네 말이 맞다. 한데 현터협회는 헌터들을 관리하는 것이 힘들어 이 역할을 각 길드들에게 부담시켰다. 이로 인해 각 길드들에게 관할 구역이 정해지고 관리하게 되었지.”
“말씀대로라면 이 관악산은 검천호 님이 계신 길드의 관할 구역이고, 전 관할 구역을 무단 침입 한 셈이군요.”
“그래. 두 달 정도 해외에 가 있느라고 몰랐는데…… 최근 네 녀석이 내 관할 구역에서 수련을 하고 있더구나.”
“제가 실례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김강현은 자신이 현터협회가 정한 관할 구역을 잘 알지 못해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지하자 바로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검천호는 그 행동이 마음에 들어 바로 답했다.
“알면 됐다. 그리고 혹여 다른 데 가서 실수나 하지 말고.”
“네. 그런데 아까 대화 중에서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해 봐라.”
“제 생각엔 길드들이 관할 구역을 순순히 관리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혹시 길드들이 가져간 대가가 있지 않습니까?”
“눈치가 빠르구나. 네 말대로 협회는 관할 구역 안에 있는 일부 던전의 사용 권한을 길드에게 양도하면서 머더러들의 토벌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헌터들의 싸움 중재, 던전이 나타날 시 일반인들이 휘말리는 것을 막고 있지. 관악산에는 던전이 존재하지 않지만, 내 집 앞마당이기에 겸사겸사 내 관할 구역으로 정해 치안을 담당하고 있고.”
“그럼 다른 헌터들은 어디서 수련하나요?”
“각자 길드 건물에서 하기도 하고, 협회의 수련장을 빌려서 하지. 그나마 네가 있던 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 괜찮았지만, 일반 사람들이 휘말렸으면 큰일 났을 거다. 실제로 헌터들이 등장했던 초반에는 이런 규칙들이 정해져 있지 않아 낭패를 보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헌터들의 수련 장소도 현터협회의 규칙으로 정해져 있고 이를 위반할 시 조치가 가해지지만, 헌터 등장 초기에는 이런 규칙들이 없었다.
그러다 일반 사람들 중 헌터들의 수련과 싸움을 신기해하며 가까이 구경하다가 부상을 입고 죽는 사람들도 나타나자 협회에서 서둘러 이러한 규칙을 정했다.
검천호는 그 후로도 김강현의 몇 가지 질문에 답해 준 후 입을 열었다.
“네 궁금증은 충분히 해결된 것 같으니…… 이제 내 궁금증을 해결해 보도록 하지.”
“네?”
“개인적으로 너와 같은 아이들에게 아주 관심이 많다.”
“그게 무슨?”
“첫 헌터 등급 시험에서 C급을 받았지만 내가 볼 땐 너는 A급 헌터와 견줄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혼자서 머더러 길드인 스컬 길드를 쓸어버린 루키이고 말이야.”
“……!”
“현터협회에서 나름대로 수를 쓰고, 비천 길드의 압박 때문에 일반 헌터들에겐 공개되지 않았지만…… 알 만한 헌터들은 각자 루트를 통해 알고 있지.”
유지운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 정보를 검천호가 알고 있자 김강현은 놀라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잠이 깬 헬릭스는 조용히 검천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루트라면…… 정보 단체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래. 감찰 팀의 유지운이 나름대로 노력하긴 했지만 연관된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에 틀어막기엔 역부족이었지.”
검천호는 평소 이용하던 정보 단체가 있었고, 김강현이라는 이름으로 정보를 얻고자 하니 관련된 정보들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인공 마력석 때문에 스컬 길드와 싸웠다지.”
“맞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S급 인공 마력석을 없앴다고 하더군. 그건 좋은 판단이야. 쓸데없이 가지고 있어봤자 소용없는 물건이고, 오히려 다른 머더러들에게 소문이 돌았다간 쫓기는 몸이 될 테니까. 그런데 내가 아는 S급 인공 마력석은 쉽게 없앨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
“C급 인공 마력석은 흑마법과 저주가 약해 영혼들이 복수를 꿈꾸기보단 승천하려고 하지만, B급부터는 흑마법과 저주로 인해 자아가 강해져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놈을 찾아 죽이기 위해 폭주하지. 그래서 그들의 영혼을 달랠 수 있는 사람, 혹은 영혼들이 가진 마력을 빼앗을 수 있는 자가 필요해.”
‘그래서 영혼들이!’
김강현은 이제서야 자신이 S급 인공 마력석을 부수었을 때 영혼들이 폭주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나 이 정보는 악용될 여지가 있어 몇몇 헌터들만 알고 있는 만큼, 유지운이 알고 있을 가능성은 없어. 그럼 네가 멀쩡한 것을 보니 가정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S급 인공 마력석을 부수지 않고 빼돌렸거나 S급 인공 마력석을 부수고 영혼들이 가진 마력을 빼앗거나.”
“…….”
“현실적인 판단으로는 전자가 확실하지만, 내 느낌은 후자라는 생각이 드는군.”
정확히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검천호의 말에 김강현은 소름이 돋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김강현이 S급 마력석이 가진 마력을 흡수할 땐 여러 가지 운이 따랐다.
인피니티 호흡법이 마력의 등급을 압도함으로써 마력을 흡수할 수 있었고,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마력을 제어했다는 이유도 컸다.
최소 정신력이 A급이었기에 망정이지, 그 밑이었다면 마력의 영향을 받아 폭주가 일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제게 원하는 게 있으시군요.”
“그래. 그럼 바로 본론을 말하지. 지금과 같은 성장 속도라면…… 네가 3년 안에 나를 따라잡을 정도로 강해질 것이라 판단한다.”
“…….”
“내가 그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세상엔 절대로 공짜가 존재하지 않죠. 대가가 무엇입니까?”
한시라도 강해지고 싶은 김강현은 단숨에 검천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으나,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말했다.
“대가는…… 나와의 싸움이다!”
“그게 무슨?!”
“응?”
김강현은 검천호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드러냈고, 그동안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헬릭스도 궁금함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내가 원하는 것이 강자와의 싸움이기 때문이지.”
“오호~”
검천호의 말에 헬릭스는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고, 김강현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쳤다.
“어릴 때 스승님으로부터 천류신공이라는 고대 무공을 전수받아 무인의 삶을 살아온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나와 동류인 사람들과 수없이 겨루었다. 하나 나와 싸울 수 있는 동등한 무력을 가진 무인들을 찾을 수 없었지.”
“…….”
“게다가 우연치 않게 S급 헌터가 되어 외국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강자들을 찾기 어려웠어. 몇몇 강한 녀석들을 찾긴 했지만 패배를 당해 본인의 명예가 깎기는 것이 싫어서, 혹은 두려워서 싸움을 거절당하기만 하다가 방법을 찾았다.”
“…….”
“바로 나와 싸울 상대할 수 있는 너석을 직접 키우는 것이었지만, 자질이 뛰어나다는 헌터들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녀석이 없더군. 그렇다고 함부로 돌아다니기엔 나이도 들고 지쳤다.”
“그 나이에 힘들다고?”
“아! 겉보기에는 40대 중반으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내년으로 80이니라. 헌터가 되기 전에는 나이와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으나 헌터가 된 후 깨달음을 얻자 환골탈태라는 걸 겪었지.”
검천호의 나이를 알게 되자 김강현과 헬릭스는 신기함을 느꼈다.
테라에서도 종종 깨달음을 통해 한계를 뛰어넘어 젊어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10년에서 20년 사이였다.
젊어지는 만큼 깨달음의 깊이가 깊다는 것을 알기에 검천호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네가 나타났다. 너라면 이 기회를 놓치겠느냐?”
“저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군요.”
“그래. 나를 쓰러트릴 수 있는 강자와 싸울 수 있다면, 수고스러움과 도움을 주는 것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
그제야 김강현은 처음 검천호를 보았을 때 느낀 귀찮음과 초탈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강자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자신과 동등한 자와 싸워 더 강해지고 싶은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 테라에서 라셀도 이러한 기분을 느꼈으나 동등한 무력을 가진 헬릭스 덕분에 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검천호가 말을 마무리하며 마나를 내뿜자 집 안에 거센 마나 폭풍이 몰아쳤는데, 김강현과 헬릭스는 마나 폭풍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 굉장히 여유로웠다. 그들은 김강현의 마나로 몸을 감싸며 보호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서로 팽팽하게 대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