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절대자는 역대급 헌터 1권
프롤로그
테라의 곡창 지대로 유명한 디오스 평원은 인간을 비롯한 마족, 마수, 드래곤, 이종족 등 수많은 종족들의 썩은 시체와 피 냄새로 가득했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그런 디오스 평원 한가운데서 한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마수가 드래곤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주변은 신경 쓰지 않은 채 티격태격거리며 싸우고 있었다.
“이렇게 뒤통수 맞으니까…… 기분 진짜 더럽네! 젠장!”
“역시 도마뱀 말은 믿는 게 아니었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겠냐.”
“있었다면 이 몸이 먼저 도망쳤을 것이니라. 인간.”
마수의 몸은 상처로 가득한 데다가 지친 모습이 역력했고, 인간의 옷은 넝마가 되어 있을 정도로 전신에 상처로 가득했다. 게다가 인간과 마수는 그동안 싸웠던 적들의 피로 전신이 물들어 있었다.
“헬릭스, 몸 상태는 어떠냐.”
“체력은 바닥이고 마력은 고갈…… 단시간에 회복은 불가능하느니라.”
“서로 비슷하네. 역시 마왕들을 죽인 대가가 크긴 크구나.”
그들은 재생이 가능한 키메라 세포로 육체가 구성되어 있어, 거의 불사나 다름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상처를 입는다 해도 금방 회복되고, 심지어 머리만 존재한다면 몸이 사라져도 복구가 가능했다. 덕분에 이번 전쟁에서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잘 넘길 수 있었다
“젠장…… 지그문트가 발악만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위기는 없었을 텐데.”
“하하하. 마계를 배신한 너만은 죽이겠다고 미친 듯이 달려들었지.”
“라셀보다 쪼잔한 마왕 같으니라고.”
이번 전쟁에선 마계의 마왕들이 대륙에 강림했고, 지상의 모든 종족들이 힘을 합쳐 싸웠다. 그곳에서 라셀과 헬릭스는 항상 선두에 서서 마계의 존재들과 싸웠다.
그러나 무한재생에는 단점이 존재했는데, 회복하기 위해선 막대한 양의 마나가 필요했다.
예상치 못한 지그문트의 공격에 헬릭스의 몸이 절반이나 날아가,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남은 마력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라셀은 무한으로 마나를 공급해 주는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있었으나 지그문트의 반격으로 드래곤 하트가 깨져 버렸다.
그때, 드래곤들 사이에 한 마리의 골드 드래곤이 나와 입을 열었다.
“라셀, 헬릭스. 여기까지다.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여라.”
“으드득! 도마뱀 새끼.”
“이미 주변에 마법 결계를 쳐 도망칠 수도 없고, 도움 줄 인간들도 없다.”
“파벨리온, 한 가지만 묻자.”
“……말해라. 인간.”
헬릭스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드래곤 로드, 파벨리온을 노려보았다.
파벨리온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라셀의 질문을 수락했다.
“우리 뒤통수를 친 이유가 뭐냐? 분명 이번 일만 마무리하면 다시 볼일 없었을 텐데.”
“…….”
“그래! 원래 네놈 성격이 더러워서 배신할 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예의라는 게 있지 않냐? 딱 마계와 싸움이 끝나자 바로 뒤통수 치냐? 드래곤 로드나 돼서 엄청 치사하네.”
“…….”
시비나 다름없는 말에 파벨리온을 비롯한 드래곤들의 표정이 굳어졌고, 반대로 헬릭스는 속 시원하다는 듯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네놈들의 존재가 마계보다 테라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네놈들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그 말을 끝으로 디오스 평원의 공기가 서늘해지며 라셀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지자 어린 드래곤들은 라셀의 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헬릭스, 어떻게 생각하냐?”
“어떻게 생각하긴. 이 몸을 죽이려는 놈들 따윈 살려준 적이 없었느니라. 여태까지 파벨리온과 강제로 맺은 맹약 때문에 도마뱀들은 예외였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단숨에 풀어 주겠느니라! 빠득.”
“나 또한 마찬가지야. 이대로 순순히 죽어주기보다는 지난 300년 동안 쌓인 분노를 모조리 풀어주고 갈 테다.”
“로, 로드! 놈들이!”
“분명 한 줌의 마나와 마력도 남아 있지 않았을 텐데!”
라셀과 헬릭스가 기세와 함께 마나와 마력을 운용하자 드래곤들에게서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다.
지금까지 라셀은 헬릭스와 티격태격하며 대화를 하며 파벨리온에게 말을 건 것은 조금이라도 마나와 마력을 모아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라셀과 헬릭스가 비장의 한 수를 펼치기엔 충분했다.
“헬릭스! 1분만 버텨.”
“쳇! 이 몸이 마지막까지 도와준다는 사실에 고마워하거라.”
“끝까지 투덜거리며 생색내긴.”
“망할 인간 같으니라고. 크아아아아앙!”
불만 섞인 표정으로 앞으로 나선 헬릭스가 발을 구르자 땅이 뒤흔들렸고, 강력한 필사의 의지가 담긴 헬릭스의 피어는 드래곤들의 드래곤 하트에 두려움을 각인시켰다.
그 모습에 드래곤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움찔거리자 각 로드들이 다독거리며 사기를 끌어올렸다.
“일개 마수로 보지 마라! 놈은…… 발록의 왕이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마수를 죽여라.”
“저들을 죽여야만 테라에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다!”
용기를 얻은 드래곤들은 상처 입은 발록 한 마리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며 마법을 사용함과 동시에 헬릭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애송이들아! 마왕도 씹어 먹은 이 몸을 만만히 보지 말거라.”
파벨리온과의 맹약 때문에 불꽃 채찍을 휘두를 수도 없고 마법도 사용할 수 없지만 단단한 몸뚱어리가 있었다.
헬릭스는 어떤 드래곤도 라셀에게 가지 못하도록 몸으로 드래곤들의 마법들을 막아냄과 동시에 움직임을 묶었다.
더불어 파벨리온의 맹약으로 인해 육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붕괴 됨과 드래곤들의 공격에 상처가 깊어져 움직일수록 고통이 심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릭스는 자신을 공격하는 드래곤들의 뼈를 부러트려 움직임을 봉쇄했다.
“집에 돌아가는 게 소원이었는데…… 300년 동안 개고생만 하다 가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드래곤들의 마법 결계 수식을 파헤치던 라셀은 문득 테라에서 보낸 300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본래 라셀은 테라의 인간이 아니었다.
지구의 대한민국에서 살던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함과 동시에 파벨리온에 의해 멋대로 영혼이 테라로 소환되었다.
그리고 파벨리온의 실험체, 키메라가 되어 100년간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당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덕분에 이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실험을 받을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과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키메라 세포에 심어진 드래곤 세포와의 맹약으로 인해 드래곤을 공격하게 되면 키메라 세포가 붕괴되는 현상이 일어나 드래곤을 죽일 수 없게 되자, 어떻게 하면 맹약을 거스르지 않고 드래곤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했다.
그렇게 200년간 헬릭스와 함께 방법을 찾았다.
“로, 로드! 마법 결계가!”
“이게 어떻게.”
드래곤들은 마법 결계의 제어권이 라셀에게 넘어가자 기겁했다.
“라셀, 무슨 짓을 벌이는 것이냐.”
“헬릭스와 고민을 했지. 어떻게 하면 맹약을 피해 드래곤들을 죽일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우리를 공격하는 즉시 키메라 세포가 붕괴될 터.”
확신에 찬 목소리로 파벨리온은 대답했지만, 라셀은 씨익 웃으며 반박했다.
“직접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뭐라고.”
“지구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어차피 죽는 거…… 다 같이 죽자.”
“뭐, 뭣이.”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드래곤들은 크게 놀랐고, 그 반응을 본 라셀은 신이 나 계속 말했다.
“원래는 몸에 폭발 마법진을 새겼는데, 몸이 상처라고 인식했는지 마법진이 사라지더라고. 그래서 아예 몸속 깊숙이 아티팩트를 박았지.”
“…….”
“솔직히 마왕들과 싸우면서 망가졌을 줄 알았는데……. 멀쩡하네.”
라셀의 말에 파벨리온을 비롯한 드래곤들은 기가 막혔다.
말 그대로 라셀의 몸에는 디오스 평원은 흔적도 없이 없앨 버릴 정도로 무지막한 폭발형 아티팩트가 심어져 있었다.
“어서 마법 결계를 풀어라.”
“제어권을 어서!”
몇몇 정신을 차린 드래곤들이 라셀에게 넘어간 마법 결계의 제어권을 가져오려고 했지만, 이미 마법 수식을 엉망진창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라셀과 헬릭스가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던 마법 결계가 반대로 드래곤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이 되었고, 이렇게 그들은 라셀과 헬릭스에게 뒤통수를 맞아버렸다.
“어서 놈을 죽여!”
“놈을 죽여야 우리가 살아!”
아티팩트가 폭발하기 전에 라셀을 죽이기 위해 파벨리온을 비롯한 드래곤들이 달려들었지만, 라셀 앞엔 피투성이의 헬릭스가 버티고 있었다.
으드드득!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그린 드래곤의 몸을 붙잡은 후, 목을 잡아 뒤틀어 꺾어버렸다. 그 순간 키메라 세포가 붕괴되어 고통이 찾아왔지만 헬릭스는 미소 지으며 고통을 견뎌냈다.
“도마뱀 녀석들아! 라셀에게 갈려면…… 이 몸부터 쓰러트려라.”
“카아아로오오옥!”
“파벨리온! 원하는 대로 네놈부터 죽여주마.”
분노에 찬 파벨리온이 헬릭스에게 달려들었는데, 헬릭스는 짧은 시간 동안 모은 마력을 검은 불꽃으로 형상화시켜 팔에 휘감았다.
헬릭스는 라셀에 못지않게 파벨리온에게 원한이 많았다.
파벨리온의 전 실험체로서, 라셀이 등장하기 전까지 모든 실험을 당해야만 했다.
만약 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라셀과 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그의 레어에 갇혀 있었을 것이었다.
“잘되었구나. 400년 동안 이 몸도 네놈을 죽이고 싶었느니라!”
“감히 마계의 하찮은 마수 따위가!”
“그 하찮은 마수 따위에게 죽어봐라.”
꼬리를 휘두르며 파벨리온이 공세를 취하자 헬릭스는 오른팔로 막아냄과 동시에 왼손으로 배를 노렸다.
“쿠헉.”
단 일격이었지만, 묵직한 한 방에 파벨리온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 틈을 노리고 헬릭스는 파벨리온의 숨통을 단숨에 끊기 위해 다시 공격을 펼치려고 하는 순간, 파벨리온의 뒤쪽에서 다수의 드래곤들이 헬릭스를 향해 브레스를 쏘았다.
“제, 젠장할! 끄아아앗!”
“로드, 괜찮으십니까.”
“그래. 고맙구나.”
미리 대비하지 못한 헬릭스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다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사이 몇몇 드래곤들이 황급히 파벨리온을 부축하여 후방으로 물러났다.
“망할. 도마뱀 녀석들 같으니라고! 또 도망을 쳤구나.”
“헬릭스, 괜찮냐.”
“네놈의 눈엔 괜찮아 보이느냐.”
“아니.”
“준비는.”
“아티팩트를 발동시키면 된다.”
그 짧은 사이 헬릭스의 날개는 부러지고 찢어졌으며, 전신에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육체가 너덜너덜해졌다. 게다가 호흡도 매우 거칠어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지만 그 모습이 라셀에게는 지금까지 보아온 모습 중에 제일 멋있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라셀은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진심을 드러냈다.
“……그동안 고마웠다.”
“허! 갑자기 죽을 때가 되니 미친 게로구나.”
“미친 건 아니고…… 생각해 보니 신세를 많이 졌어. 도움도 많이 받았고.”
“흥! 이제서야 이 몸의 위대함을 깨닫다니…… 어리석은 인간.”
등을 지고 있어 헬릭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라셀은 말투에서 쑥스러움을 느꼈다.
콰앙!
그사이에도 헬릭스는 달려드는 드래곤들을 막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 몸도 재미있었다. 마계에서 한가락 한다는 마왕들도 죽여봤고, 마지막엔 이렇게 도마뱀 녀석들에게 복수하지 않느냐? 아쉬운 게 있다면…… 끝내 네놈을 부려먹지 못한 게 걸리는구나.”
“날 부려먹는 건 다음 생에나 가능한 일이니까 꿈 깨라.”
그 순간, 라셀의 몸이 새하얀 빛에 휩싸이며 주변의 마나가 크게 흔들렸다.
“아, 안 돼!”
“모두 도망쳐!”
“아니다! 놈에게 일제히 브레스를 쏴!”
자폭을 발동시키는 아티팩트가 발동하자 드래곤들은 우왕좌왕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 내리지 못하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도망치려는 드래곤들은 마법 결계에 막혀 도망치지 못하고, 라셀을 공격하려는 드래곤들은 헬릭스에 막혀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렇게 라셀로부터 시작된 빛은 강한 폭발을 일으키며 디오스 평원을 휩쓸어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집어삼켰고, 라셀의 육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