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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1. 너를 만나 빛나는 오늘 (62/64)

외전1. 너를 만나 빛나는 오늘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었다. 날 때부터 부모가 아니었기에 새끼 호랑이를 돌보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과 작은 생채기도 남지 않게 하고 싶은 욕심이 충돌했다. 말도 못 하고 울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아기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무얼 해주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는 날의 연속이었다.

가끔은 의견이 맞지 않아 일방적으로 강무혁에게서 등을 돌리고 자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강무혁이 먼저 사과했지만 최서율은 제가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닐까. 제 행동을 다시 돌아보곤 했다.

초록 잔디와 풀벌레, 꽃이 만개한 나무, 먹이를 찾아 가끔 놀러 오는 작은 동물들과 함께 봄이 지나갔다. 다람쥐 식구가 마당에 왔다가 반가워 방방 뛰는 새끼 호랑이를 보고 기겁을 하며 도망가는 일도 있었고, 개미를 따라다니며 마당의 잔디를 일자로 파헤쳐 놓은 일도 있었다. 종종 유리창 너머로 만나던 담비를 코앞에서 만나곤 자기가 더 놀라 갸아악! 울어대는 이든이의 소리에 최서율의 심정이 철렁하는 일도 웃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꽃이 떨어지고, 더위가 찾아올 무렵에는 강무혁이 이든이에게 수영을 가르치겠다고 선언했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기에게 수영은 너무 위험하다며 펄쩍 뛰었지만, 호랑이들은 새끼일 때 수영을 배운다는 호랑이 부모님의 말씀에 한발 물러나기도 했다.

무작정 이든이를 깊은 물에 밀어 넣으려는 큰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최서율은 진이 다 빠진 얼굴로 앞발이 푹 젖은 채 수영장 주변에서 참방거리고 있는 이든이를 얼른 품에 안고 수건으로 감쌌다. 이렇게 해야 실력이 빨리 느는 거라고 말하는 강무혁의 등짝을 처음으로 찰싹 내리치는 최서율이었다.

“이렇게 하는 게 정답이라니까?”

“됐어요! 수영 안 해도 괜찮아요! 아직 아긴데 그렇게 깊은 물에 어떻게 들어가요!”

최서율이 전에 없이 흥분하며 바락 소리를 질렀다. 강무혁이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후. 짧은 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그가 최서율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 문질렀다. 최서율의 품에서 갸릉갸릉 울고 있는 이든이의 자그마한 머리통에 입술을 묻고 웅크린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내가 너무 성급했어. 괜찮아. 응?”

강무혁은 아직 갈 길이 구만리라고 생각했다. 토끼가 호랑이를 낳아 키우려니 우여곡절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본능을 거스르는 것을 어디까지 용납하고 기다려야 할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강무혁에게는 이든이보다도 최서율이 일 순위였다. 절대 겁먹게 하거나 속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한발 물러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최서율의 품에 꼭 안긴 이든이는 뒷발이 팔 아래로 비죽 나오고 꼬리가 아래로 축 늘어진 채 허공으로 발을 굴러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무 꽉 끌어안는 어미의 품에 얼굴이 찌그러져 불편했는데 눈치도 없는 아빠가 그 위를 덮쳐누르니 안에 깔려 죽을 지경이었다.

“갸아아악!”

전에 없이 우렁차게 성질을 드러내는 새끼 호랑이가 털을 비죽 세우며 버둥거렸다. 놀라 얼른 배 아래로 손을 밀어 넣어 받쳐주자 조금 안정적인 자세가 되었는데 씩씩거리는 콧김이 마구 터져 나왔다.

“이든아, 아팠어?”

눈을 동그랗게 뜬 최서율이 얼른 이든이를 추켜올렸다.

“성질은… 우리가 설마 너를 죽이기야 하겠어?”

최서율이 팔꿈치고 강무혁의 명치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어윽.”

“애 앞에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여러모로 산군 호랑이의 수난 시대였다.

수영 사건은 여름이 무르익을 무렵 너무 더워하는 이든이를 위해 영유아용 풀장을 만들면서 일단락되었다. 여름에는 큰 호랑이도 수영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서 물을 뺄 수 없으니 휴대용 풀장이라도 써보면 어떻겠냐는 강무혁 형의 아내. 즉, 형수의 추천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네 개의 다리와 통통한 배 아래까지 잠길 정도로만 물을 받아 물에 익숙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하더니 풀장에 턱을 괴고 앉아 첨벙거리며 놀고 있는 이든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최서율이었다. 제가 낳았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용맹한 호랑이를 똑 닮았는데도 이렇게나 마음이 쓰이고, 정이 가고, 매일매일 입에 넣고 마구 굴려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제 새끼가 맞았다.

“갸릉, 갸릉….”

앞발을 하나 들어 물 묻은 발바닥을 핥아대는 모습을 보다가 얼른 사진을 찍었다.

토끼 가족 단체 채팅방에 올리면 아주 큰 인기몰이를 할 장면이라 놓치기 아까웠기에 재빠르게 행동했다. 찰칵. 셔터음에 눈이 동그래진 이든이가 제 엄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이든이 재밌어? 물 좋아?”

“갸아아!”

마치 대답하듯 말하는 이든이를 보며 최서율이 활짝 웃었다. 마당에 나와 놀고 있는 산군 호랑이의 아이를 보기 위해 이름 모를 산새들이 지붕 위에 자리를 잡고 예쁜 소리를 목청껏 내질러 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머리 위로 날아드는 작은 새들을 보느라 고개를 바짝 들어 올렸던 이든이가 뒤로 꽈당 넘어가며 물속에 빠졌다. 어푸어푸. 손쓸 겨를도 없이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도 물기를 푸드덕거리며 털어낸다. 최서율은 그런 이든이가 기특해 엉덩이를 톡톡 쳐주었다.

* * *

이든이는 최서율이 토끼로 있으면 앞발로 토끼를 만져보려 여러 번 시도하곤 했다. 그때마다 번번이 강무혁의 손에 붙잡혀 엄마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지만, 아직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애교를 부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를 팔랑거릴 뿐이었다.

토끼가 마당을 뛰어다니며 시간을 보낼 때 이든이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강무혁과 안에서 토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든이는 어미를 알아보듯 토끼에게 매달리는데 아직 아기라곤 하지만 토끼보다 커버린 새끼 호랑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규칙을 그렇게 정했다.

열어달라는 듯 유리창을 박박 긁어대던 이든이가 몸을 잡아 들어 올리려던 강무혁의 손을 냅다 물었다. 화가 난다는 듯이 갸아아악! 소리를 지르고 갸릉갸릉 목이 터지도록 울었다. 어미를 찾는 목소리가 애달팠지만, 손을 물린 강무혁의 기분이 무척 안 좋아졌다는 건 모르는 눈치였다.

“강이든.”

“갸아악!”

입을 쩍 벌리고 제법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드러내던 이든이가 제 아버지에게서 풍겨 나오는 큰 호랑이의 엄청난 위압감에 꼬리를 내리고 머리를 아래로 조아렸다. 동그랗게 솟아올랐던 귀가 안으로 또르르 말려들었다.

“이든아.”

강무혁이 새끼 호랑이의 턱을 잡아 올리자 겁을 잔뜩 집어먹은 동그란 눈망울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일렁거렸다. 낑. 앓는 소리가 들리자 마음이 약해졌지만, 강무혁은 무릎을 굽혀 앉으며 부릅뜬 눈에 힘을 풀지 않았다.

“강이든, 엄마랑 아빠 물면 혼난다고 했지.”

이든이는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아직 돌도 되지 않은 갓난쟁이였다. 수인이라는 이유로 가만히 누워서 예쁨만 받아야 하는 아이에게 너무 높고, 무거운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닐까. 최서율은 항상 그 부분을 걱정하고, 어려워했다. 이런 순간에는 강무혁도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 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곤 했다.

“또 그러면 정말 혼나.”

오늘도 지는 건 아빠의 몫이라 턱을 잡았던 손으로 보드라운 털을 열심히 쓰다듬고 품에 안아 들었다. 고개를 조아려 강무혁의 옆구리로 파고들어 얼굴을 감춘 이든이가 꼬리를 바짝 세워 발발 떨어댔다.

큰 호랑이의 위엄은 자식에게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놀랐을 마음을 잘 알기에 머리부터 꼬리까지 정성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위로 올라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짤막한 꼬리가 스르륵 아래로 떨어지고 낑낑거리던 소리도 잦아들었다.

“어우! 깜짝이야.”

마당을 뛰어다니며 풀을 고르고, 메뚜기를 따라 열심히 깡충거리던 토끼가 어느샌가 유리문 가까이 다가와 강무혁을 빤히 올려보고 있었다.

뭔가 잔뜩 화가 난 듯 귀가 바짝 올라서 있었고, 잠시도 멈추지 않는 분홍 코는 훔훔. 강력한 콧바람을 뿜어내듯 평소보다 더욱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유리창과 연결된 나무 데크를 쿵쿵 구르는 뒷발이 매우 힘차 보였다.

잘못하고 걸린 것처럼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져 괜히 큼큼거린 강무혁이 고롱고롱 잠이 든 듯 조용해진 이든이를 안은 채 폴딩도어를 열었다.

“벌써 들어오게?”

“삐!”

“왜, 더 놀아도 되는데?”

고개를 내저으며 강무혁의 발치를 밀고 들어온 토끼가 안으로 완전히 들어와서는 강무혁을 빤하게 바라보았다. 강무혁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거실에 만들어 둔 자그마한 이부자리에 위에 이든이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목놓아 울어대며 엄마를 찾아대더니 아빠한테 혼난 게 억울한 아기처럼 새끼 호랑이가 통통한 배를 몇 번 움찔거렸다. 퍼덕퍼덕 허공을 구르는 발을 손으로 잡아 눌러주고 최서율이 하는 것 같이 기저귀가 감싸고 있는 엉덩이를 토닥여주자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삐….”

인제 그만 자기 좀 봐달라는 듯 우는 토끼의 소리에 얼른 일어난 강무혁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움직였다. 토끼를 두 손에 안아 들자 토끼가 고개를 삐죽 들어 올렸다. 동그랗고 까만 눈을 바라보던 강무혁이 저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설마 내가 이든이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았어?”

“…….”

“그래서 달려 온 거야?”

“삐유….”

“엄마가 다 됐네. 우리 토끼.”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기가 생각한 대로 말한 강무혁이 토끼를 아기 안 듯 추켜올리며 토닥였다. 토끼가 코를 열심히 움직여대며 앞발로 강무혁의 가슴을 짚고 몸을 쭉 늘였다. 입술에 촉촉한 코가 닿았다. 강무혁이 토끼의 등과 꼬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곤 다시 코 위에 쪽쪽 입 맞췄다.

육아에 신경 쓰느라 살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배를 만지작거리며 거실 화장실로 가 흙 묻은 토끼의 발을 꼼꼼히 닦아냈다. 흙만 털어내는 수준이었지만 토끼는 강무혁의 팔에 매달려 얌전히 손길을 받고 있었다.

“옷 입고 나와.”

강무혁은 항상 최서율을 그대로 두고 밖으로 나왔다. 부부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수인으로서 서로에게 지켜주어야 하는 선이 있기에 지킬 건 지켜주고 싶었다. 강무혁이 자리를 잡고 앉기 무섭게 곧바로 최서율이 밖으로 나왔다.

“여보.”

“응, 이리 와.”

강무혁이 제 허벅지를 툭툭 두드렸다.

최서율이 얼른 곁으로 다가와 잠든 이든이를 살피곤 두툼한 허벅지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이든이를 낳고 혹시 살이 찌면 어떡하냐는 걱정과 달리 토끼 수인이 호랑이 수인 아기를 키우려다 보니 날로 살이 빠져갔다.

사람일 때도 토끼일 때도 여름에는 뱃살이 쏙 들어가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마르진 않았는데 살이 내려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많이 먹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고기며 보양식을 챙겨 먹이는 중이었다.

“살이 또 빠졌나? 왜 이렇게 가볍지?”

“원래 자기보다는 가볍잖아요.”

“아닌데… 더 빠진 거 같은데?”

“…조금?”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멋쩍은 듯 웃은 최서율이 냉큼 손을 뻗어 강무혁의 목을 끌어안았다. 바짝 안겨드는 등을 토닥이고 옆으로 늘어진 다리를 쓰다듬었다. 강무혁을 꽉 끌어안았다가 몸을 떼어낸 최서율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

“할 말 있으면 해.”

“그… 우리 이든이, 아직 아기니까….”

“혼내지 말라고?”

“네에….”

고개를 끄덕인 최서율이 정말 부탁한다는 듯이 눈꼬리를 내리며 눈을 빛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눈빛에 수없이 많이 흔들린 마음인데도 면역력은커녕 더 증세가 심각해져 가는지 덜컥 그러겠노라고 대답할 뻔했다. 강무혁이 잠시 숨을 고르며 대답을 미뤘다. 네? 네? 하며 얼른 대답하라고 종용하는 최서율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은 강무혁이 코끝을 맞췄다.

“요게 그거 말하려고 아까부터 계속 애교나 부리고….”

“넘어와 줄 거잖아요.”

“당연히 넘어가 주지. 내가 언제 네 부탁을 거절한 적이 있나?”

“그러니까아….”

“그래도 무는 건 안 돼.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서도 장난이랍시고 친구들도 물고, 화가 났을 때 통제하는 방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할 테니까.”

“물렸어요?!”

놀란 듯 힘을 빼고 있던 허리를 곧추세우며 눈을 동그랗게 뜬 최서율이 빠르게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물려본 경험자로서 생각보다 아팠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두 눈에 금세 걱정이 담뿍 들어찼다.

“그래, 물렸어. 그래서 혼낸 거야.”

“힝. 어떡해요… 우리 이든이가 무는 아이가 되면 안 되는데….”

“아직 아기라 몰라서 그래. 잘 가르치면 돼.”

호랑이 수인이 무는 건 당연한 본능이었다. 그 본능을 얼마나 잘 통제하고, 바르게 사용하는 가는 어른들이 가르쳐야 하는 문제고 부모의 능력이기도 했다.

“어디 좀 봐요.”

두툼하고 기다란 손가락에 남은 선명한 잇자국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아팠겠다…. 중얼거리며 호호 불어주는 간지러운 입바람에 강무혁이 소리 없이 웃었다.

“핥아줘.”

“아기도 아니고….”

“왜. 원래 상처는 핥아서 치료하는 거야.”

자국만 남았지, 상처가 난 건 아닌데 당당하게 구는 강무혁의 기세에 발그스름한 입술 사이로 조그마한 혀가 빼꼼 삐져나왔다. 움푹 들어간 잇자국 위를 조심스럽게 핥아내기 무섭게 턱이 잡혀 고개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읍…!”

미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혀를 덥석 잡아 문 강무혁이 크르릉. 요구사항이 분명한 울음소리를 냈다. 금방이라도 혀가 뽑혀 나갈 듯 성급하게 빨아당기는 힘에 한껏 들쳐 올려진 턱이 부들부들 떨렸다. 으응!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뒤틀어도 강무혁의 팔 안에 꽉 안겨진 채라 원하는 방향으로 도망가지 못했다.

정신이 몽롱해지도록 깊어지는 키스에 단단한 가슴팍을 더듬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입천장을 훑고 입술이 간지럽게 겹쳐졌다. 제 호랑이의 냄새에 작은 가슴이 얕게 부풀었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입술이 떨어지고도 한참 동안 몸은 꼭 붙은 채였다. 이마, 콧등, 볼, 턱으로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최서율이 작은 소리로 웃었다. 간지러운 소리를 내는 입술에 다시 입술을 붙였을 때 갸릉갸릉. 작은 호랑이가 자기가 일어났다는 걸 알리듯 힘차게 울어댔다.

* * *

여름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이든이는 마당을 넘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뒷문과 연결된 산길을 걸어 얕은 골짜기까지 가는 게 전부였지만 아기인 이든이가 걷기에는 그 길도 만만치 않게 험했으니 최서율은 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집을 나서는 호랑이 부자를 배웅했다.

처음 산길을 걷던 날은 돌부리와 나무뿌리에 걸려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최서율의 품에서 시름시름 앓기도 했다. 곤하게 잠든 아기를 보며 인간의 시간으로 치면 이제 겨우 뒤집고 기어 다닐 때인데 너무 무리를 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단단히 먹었던 마음이 흐물흐물 녹아내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강무혁과 호랑이 가족, 토끼 가족이 힘이 되어주었다. 저보다 앞서 아기를 낳아 기른 경험이 있는 형제와 부모님의 말씀은 제가 너무 이든이를 품에서만 키우려 했다는 반성을 하게 했다.

인간의 시간과 동물의 시간이 다르기에 지금 이 시기에 수인으로서 동물의 본능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의견에 마음을 다잡았다. 이든이는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흙을 밟고 풀더미를 헤치며 나무를 긁어대느라 하루를 빠듯하게 보내곤 했다.

“이든이 오늘 재밌었어?”

큰 호랑이를 따라 골짜기까지 내려갔다 돌아온 아기는 부모도 없이 어디서 혼자 열심히 뒹굴다 온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꼬질꼬질 거지꼴이었다. 곁에 산군 호랑이가 있으니 누가 괴롭히지는 않았을 테고… 오늘도 열심히 산을 헤치고 다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머리, 등,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듬성듬성 붙은 풀잎을 떼어주었다. 씻을까? 묻는 말에 마치 말귀를 알아듣는 듯이 어미를 향해 갸릉갸릉 귀엽게도 울어대는 작은 호랑이가 어제보다 더 많이 큰 것 같아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한테는 재밌었냐고 물어보지도 않네.”

가운을 걸치고 다가오는 강무혁을 향해 웃은 최서율이 이든이의 머리통에 쪽쪽 뽀뽀하곤 강무혁을 향해 비어있는 한쪽 팔을 내밀었다. 너른 어깨를 한껏 구기며 팔 안으로 들어온 강무혁이 머리통에 입 맞추려 내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고개를 돌렸다. 쪽! 경쾌한 소리를 내며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에 향긋한 나무 냄새가 났다.

“이든이 데리고 다니느라고 힘들었죠?”

“오늘은 좀 힘들었어. 새끼 너구리랑 신나게 뛰어다녀서 잡으러 다닌다고 혼났네.”

“너구리랑 아주 친해진 거 같아요.”

“응, 어미가 아직도 경계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그냥 두더라.”

토끼 엄마의 냄새를 맡고 기분이 좋은지 짤막한 꼬리가 허공에서 살랑살랑 흔들렸다. 신나게 뛰어놀고 나서인지 목욕하는 내내 고롱고롱하더니 털을 말리는 사이에 잠들어 버린 이든이는 누가 데려가도 모를 정도로 뻗어서는 분유를 먹이는 와중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

“병원은 잘 다녀왔어?”

“네, 의사 선생님이….”

곧 돌을 맞이하는 이든이가 신체적인 변화를 겪을 걸 대비해 미리 병원에 다녀왔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미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있는 호랑이 부모님과 토끼 부모님, 형제들의 조언을 얻은 상태였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안심될 것 같아, 이든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외출을 강행했다.

신생아 때 동물화를 겪으면서 이유 없이 울고, 보챘던 것처럼 인간화를 하면서도 그런 시간이 올 거라 했다. 어디가 불편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말하지 못하는 아기가 울음으로 그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건 당연하니 너무 겁먹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다.

보통 돌 전후로 변하는데 전이 될지, 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 잘 지켜보라는 말과 함께 인간화를 하고 나면 어떤 아이는 바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지만 그건 몇 안 되는 사례일 뿐, 대부분 걷지는 못하고 뒤집고, 기고, 잡고 서는 정도는 한다는 말도 들었다. 잡고 서는 정도만 되면 걷는 건 금방 한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랐던 탓이었다.

신체의 변화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당분간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넘나드는데 인간의 모습에 꼬리나 귀가 튀어나오는 때도 있으니 수인 아기용품을 치우지 말고 항상 잘 갖춰 두라는 말도 들었다.

인간의 모습에 호랑이 귀와 꼬리라니 제 모습에 빗대어 생각하면 기괴하고 이상했지만, 이든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을 앞에 두고 비죽비죽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조금 고생했다.

“돌잔치는 어머니가 대부분 준비해주신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신경 쓸 건 거의 없을 것 같아.”

“안 그래도 어머니가 연락 왔는데 혹시 몰라서 내일모레쯤, 만나기로 했어요.”

“왜?”

“아니… 옷도 맞춰야 하고, 음식이나 이런 건 저도 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따로 돌잔치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두 집안에서 그래도 첫 아이인데 돌잔치는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여 결정한 일이었다. 부모인 강무혁과 최서율보다도 더 신난 호랑이 어머니가 호텔 연회장에서 해야 한다고 박박 우기는데 그 고집을 꺾지 못했다.

토끼 어머니까지 합세해서 거기가 좋겠다고 밀어붙이니 얼떨결에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직접 보지 못했고,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니 한 번쯤은 만나서 제대로 설명을 듣고 직접 장소도 볼 생각이었다.

이든이가 돌잔치 전에 인간화를 할지도 관건이었다. 입어야 할 옷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두 벌을 맞춰둔다는 말에 덜컥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해버린 최서율이었다.

어머니를 만난 날 아기 한복 두 개를 맞추고 강무혁과 제 사이즈의 한복도 맞췄다. 대여가 아니라 아예 사버려서 미리 한복을 받을 수 있었는데 한복을 입은 강무혁의 자태가 너무 멋있어서 침까지 흘릴뻔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저는 어때요?”

“멋있어. 신수가 훤하네. 토끼 양반.”

크기만 다르고 아예 똑같은 색과 모양의 한복을 맞췄다. 이든이까지 포함해 똑같이 생긴 한복이 세 벌이었다. 아직 인간화하지 못한 이든이에게 호랑이용 한복을 입혀 보았는데 카메라를 켜지 않고는 도저히 버티기 힘든 모습이었다. 너무 귀여워 절로 앓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든이도 제게 향하는 카메라가 싫지 않은지 한복을 입은 채 갖은 애교를 부려댔다.

돌잔치를 일주일 남겨두고 이든이의 모습이 변했다.

밤새도록 울어대서 안고 달래느라 동이 트는 걸 지켜보던 최서율이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든 사이 강무혁의 품에서 인간화를 해버렸다. 볼을 툭툭 두드리는 고사리같이 작은 손에 잠이 깬 강무혁이 저도 모르게 허!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란 이든이는 울었고, 덩달아 놀란 최서율도 울먹여야 했다.

“마! 마마!”

“그래, 엄마야, 우리 이든이 말도 잘하네?”

이든이는 인간화한 지 하루 만에 소파를 잡고 서더니 뒤뚱뒤뚱 걸음을 뗐다. 몇 안 된다던 아기가 우리 아기라니! 최서율은 너무 좋아 비명을 삼키며 이번에는 동영상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간화한 이든이는 강무혁을 쏙 빼닮아 있었다. 씨도둑은 못 한다더니 강서방이랑 찍어냈다고 웃어대는 엄마의 말에 아니야! 나도 좀 닮았어! 라고 말하던 최서율은 잠든 이든이의 콧대를 톡톡 두드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크면 아빠처럼 잘생긴 얼굴이 된다고 생각하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이든이는 엄마 껌딱지였다. 아빠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를 더 좋아하는 건 명확했다. 강무혁은 딱히 섭섭해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기보다 더 많이 최서율을 차지하는 이든이를 번쩍 들어다가 아기 침대에 혼자 두는 일이 생겨 집이 떠나갈 정도의 우렁찬 울음을 감당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생기곤 했다.

‘엄마’라고 칭하기는 했지만 이든이가 크면 가족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는 ‘아빠’라고 부르도록 가르치기로 했다. 당분간은 이든이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엄마와 아빠라는 호칭을 고수하기로 했다.

한복을 입고 아장아장 걷는 이든이는 가끔 쿵.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뒤로 벌렁 넘어가기도 했다. 새까만 머리 위에 동그랗고 부드러운 호랑이 귀가 솟아 있었다. 꼬리를 집어넣지 못해 한복에 꼬리를 뺄 수 있도록 구멍을 내주었다. 다행히 한복을 맞춘 집에서 수선해주어 멀쩡한 옷을 버릴 일은 없었다.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아기를 돌보느라 최서율의 몸도 나흘 만에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아장아장 걸어와 다리에 매달리는 이든이는 힘든 걸 전부 날려 버릴 만큼 큰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 * *

“어머! 최 대리님!”

“최 대리!”

돌잔치에 초대받은 부사장 지원실의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난 최서율은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특히나 모든 면에서 친누나처럼 살뜰하게 보살펴준 선 과장과는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었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집으로도 초대해야 하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어휴, 애 키우면서 누굴 초대해. 자기 몸이나 잘 관리해.”

선 과장은 아직 결혼 전이었지만 마치 한번 해본 사람처럼 최서율의 상태를 딱딱 집어 잘도 코치해주었다. 사회에서 만난 은인이나 다름없어 고마운 마음이 더욱 컸다.

오랜만에 만난 부장님도 유 대리도, 막내 사원도 새로 입사했다는 사원도 고 비서님도 이 비서님도 너무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동생 덕분에 자주 보게 된 윤 비서는 뒤에서 멋쩍은 듯 웃고만 있었다. 오늘은 정신없으니 회포는 조만간 풀자고 약속했더랬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라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돌잔치는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호랑이, 토끼 일가친척에 회사 사람들과 각자의 친구들까지 자리해주어 크고 넓은 연회장이 꽉 들어찼다. 그 한가운데를 당당하게 걸어 통과하는 강이든의 뒤에는 꿀벌 모양의 머리 쿵 보호대가 붙어 있었는데 귀여움이 한껏 고조된 모습이라 하객들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든이의 첫 생일을 기념한 1년의 기록 동영상을 보며 최서율은 조금 훌쩍거렸다. 직접 만들어 놓고 왜 우느냐고 놀리는 강무혁을 보며 눈물이 맺힌 채로 활짝 웃었다. 강무혁과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떻게 이든이를 만나게 되었는지… 작은 추억까지도 생생히 떠올라 자꾸만 눈가가 시큰거렸다. 코를 킁. 하고 들이마시자 강무혁이 천천히, 부드럽게 등을 토닥여주었다.

돌잡이를 할 때는 돈은 필요 없으니 다른 걸 잡으라는 아빠의 말을 무시하듯 단번에 돈을 잡아 쥐는 이든이었다. 뒤이어 연필을 잡아야 한다고 종용하는 엄마의 말도 무시하고 마이크를 잡아 들었다. 어이없어 웃는 두 사람을 옆에 두곤 두 팔을 치켜들어 꺄아아! 신나게 웃는 이든이 덕에 장내는 덩달아 웃음바다였다.

번쩍거리는 조명과 시끌벅적한 잔치에 금세 지친 이든이가 칭얼거렸다. 손님들이 식사하는 동안 돌아다니며 인사하려던 계획은 강무혁에게 맡긴 채 호랑이 어머니, 토끼 어머니와 대기실에서 아이를 대충 먹이고, 재웠다.

“오늘 고생했어.”

“자기도요. 정신없었죠?”

“그러게. 중역 회의랑 주주총회보다 더 정신없었던 거 같아.”

“에이, 거짓말.”

그렇게 잠들더니 집에 도착해서도 깨지 못하는 이든이었다. 밥을 먹여야 하는데 어떡하나 싶었지만 억지로 깨우지는 않았다. 새근새근 고른 숨을 내쉬며 기저귀 밖으로 삐져나온 꼬리를 붙잡고 잠든 모습이 귀여워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너무 많이 자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동물일 때 미처 다 크지 못했던 걸 채우기 위해 잠을 많이 잘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 괜히 숨을 몰아 쉬어보기도 했다.

이든이까지 잠든 늦은 밤, 강무혁의 품에 안겨 한참 키득거리며 웃던 최서율이 피곤했는지 어느 순간 까무룩 잠들었다. 이든이처럼 새근새근 어여쁜 소리를 내며 잠든 흰 뺨에 입 맞춘 강무혁이 동글동글 귀여운 콧방울과 콧대에도 짧게 입술을 내렸다.

고요한 산기슭, 가을을 머금은 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열매가 익어가고, 나무의 색이 변하는 계절의 내음이 가득 담겼다. 이든이가 태어난 계절의 냄새였다. 둘만 있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든이가 주는 기쁨은 또 달랐다. 서툴지만 천천히 부모가 되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축복하듯 밤하늘의 별들이 초롱초롱 저마다의 빛을 뿜어내며 하늘을 밝혔다.

이제는 서로에게 매우 귀한 존재가 되었으니 내일도 또 그다음 내일도 그렇게 몇 년, 몇십 년. 이 산의 주인이 바뀔 때까지 오래도록 축복이 내려앉길 바라는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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