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예뻐요?”
“응. 너무.”
강무혁의 품에 안긴 아기는 작은 가방 같아 보였다. 커다란 두 손으로 머리와 엉덩이를 받치니 아기의 몸이 쏙 들어갔다. 몸조리를 도와주고 있는 토끼 어머니는 호랑이 사위가 크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기를 안고 있으니 더 커 보인다며 신기해했다. 최서율도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의 산후조리원과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조산원은 따뜻하고, 안락했다. 아기가 동물화될 때까지만 있을 수 있다는데 대부분 일주일 안에 동물화가 된다고 하니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회복 속도가 빠른 수인이라고는 하지만 출산은 예외였다. 하지만 최서율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핸드폰 카메라를 자꾸만 아기에게 들이댔다. 신생아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짧은 며칠 동안 사진을 많이 찍어두어야 한다는 선배 엄마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대로 이행하는 중이었다.
“서율아 이 정도면 많이 찍은 거 같은데 그만 좀 하지 그러니?”
미역국을 커다란 사발에 가득 퍼서 탁자에 올려놓던 토끼 어머니가 한마디를 얹었다. 강무혁도 그만했으면 하는 눈치였는데 너무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최서율을 말릴 수 없어 가만히 아기를 안고 멈춰있을 뿐이었다.
“엄마, 그러다가 갑자기 동물화하면 우리 아기 이 모습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거잖아. 이것만 찍고 밥 먹을게요.”
“못 말린다 못 말려.”
“어머니 그냥 두세요. 밥은 제가 먹일 테니까 좀 쉬세요.”
“그래. 강서방이 알아서 할 테니까 나는 가서 쉬고 올게.”
최서율이 고개를 저으며 문을 나서는 토끼 어머니를 향해 대충 손을 흔들었다.
오늘로써 나흘째. 아기가 언제든 동물화할 수 있는 시기에 진입했다. 작고 앙증맞은 손과 발, 뽀얀 얼굴에 뺨만 발그스름한 포동포동한 볼. 이렇게 귀여운 모습을 이토록 짧게만 볼 수 있다니 너무도 아쉽고, 아쉬웠다.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
“너무 아쉽잖아요. 이렇게 예쁜 모습을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니….”
“동물화돼도 아기 모습일 텐데 그건 안 예쁠 거 같아?”
“당연히 그 모습도 너무 귀엽겠지만… 이거 좀 보세요. 자기를 똑 닮았어요. 눈, 코, 입… 귀까지. 이렇게 예쁜데… 1년 뒤에나 볼 수 있다니 속상해요.”
곤하게 잠든 아기의 볼을 톡톡 두드린 최서율이 얼른 아기를 제게 달라는 듯이 눈을 빛냈다. 강무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기를 보느라 자꾸만 밥때를 놓치는 최서율에게 아기를 넘겨주면 내려놓지도 않고 하염없이 아기만 바라보고 있으니 당장 아기를 넘겨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밥부터 먹어. 그 후에 안아도 되잖아.”
최서율이 안 그래도 삐죽삐죽하던 입술을 노골적으로 내밀고 흥흥거렸다. 강무혁이 눈썹을 치켰다가 내렸다. 조산원에서 제공한 두 사람분의 식사가 차려진 식탁에는 어머니가 따로 끓여온 미역국이 한 사발씩 놓여있었다. 조금 지겹긴 했지만 최서율을 위해 기꺼이 미역국을 먹어줄 의향이 있는 강무혁이었다.
아기를 폭신한 침대에 내려놓은 강무혁이 곧장 탁자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너무 오래된 시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좋은 곳에서 더 편하게 쉴 수 있는데 그걸 마다하는 토끼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했는데 조산원에서 며칠 함께 지내다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토끼 수인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인 만큼 그들을 위해 완벽하게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진화한 수컷 수인, 남자 임산부들을 꽤 자주 만날 수 있었으니 유용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모든 면에서 최서율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다음 주에는 돌아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회사를 더 비울 수 없어 돌아갈 날짜를 정했다. 처음에는 당분간 아기와 최서율을 토끼 마을에서 지내게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떨어져 있고 싶지는 않았다. 최서율도 같은 생각이라 돌아갈 날짜를 정해두었다.
“진짜 괜찮아요. 우리 집에 가고 싶기도 하고… 자기랑 떨어지기 싫어요.”
마음에 드는 대답에 웃음을 감추지 못한 강무혁이 미역이 가득 들어차 빵빵해진 최서율의 볼에 입 맞췄다. 밥 먹다가 말고 뭐 하는 짓이냐고 제 볼을 문지르던 최서율도 결국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웃는 사이 아기가 울음을 터트렸다. 벌떡 일어난 최서율이 며칠 사이에 능숙해진 손길로 아기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 * *
호끼는 태어난 지 닷새가 되던 날 이름이 생겼다. 몇 개의 후보를 남겨 놓고 정하지 못했는데 아기를 바라보고 있던 최서율이 이름을 결정했다. ‘강이든’ 착하고 어진 성품으로 자라길 바라는 순 한국말로 성은 한자를 사용해도 이름은 한글로 출생등록을 하기로 정했다.
호랑이 가족도, 토끼 가족도 모두 이든이의 이름이 예쁘다며 반가워해 주어 더욱 기분이 좋았다.
“이든아….”
“그렇게 마음에 들어?”
“네, 너무 예쁘죠? 이든이도 자기 이름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좋아할 거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니까.”
“그렇겠죠?”
기저귀를 갈고 있는 강무혁의 옆에서 종알거리던 최서율이 기분 좋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아이의 이름을 직접 지을 수 있다니 색다른 기쁨이었고, 평생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행복이었다.
엿새가 넘어가는 밤에는 빽빽 울어대는 이든이를 달래느라 혼이 빠져나가기 직전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얌전히 잘만 자던 아기가 왜 갑자기 밤이 새도록 울어대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대기하던 조산원 베테랑 직원이 달려와 주었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갔다. 이든이와 마찬가지로 땀을 뻘뻘 흘리는 최서율을 보고 설핏 웃은 직원이 아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이구, 그랬어? 인제 와서 변하려니까 힘들어서 자꾸 울음이나?”
응애응애. 이든이가 부드럽게 팔다리를 주물러주는 손길에 더욱 우렁차게 울어댔다. 신생아라 눈물도 나오지 않는데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숨을 헐떡이며 우는 아기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선생님, 우리 이든이 아픈 건가요?”
“아프긴요. 엄청 건강한걸요? 이제 곧 동물화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기들이 동물화하려고 본능적으로 힘을 쓰다 보니까 힘들어서 우는 거예요. 수유는 잘하셨죠?”
“네, 먹은 지 얼마 안 되는데….”
“혹시라도 오늘 밤 안에 동물화하면 그때부터 전용 젖병으로 먹이면 돼요. 방법은 알려드렸으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입술을 말아 문 최서율이 이든이를 꼭 끌어안고 보들보들한 뺨에 제 뺨을 대었다. 드디어 이든이가 종을 드러낸다니 기대와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자꾸만 마음이 떨렸다.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대더니 자기 풀에 지쳐 잠든 아기를 눕혀 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강무혁이 둥그렇게 굽어진 허리에 팔을 감고 끌어당겼다. 아직은 아기를 안는 행동보다는 강무혁의 품에 안기는 게, 더 익숙했다. 제자리를 찾아가듯 너른 품에 등을 기댄 최서율이 배 앞으로 둘린 두툼한 팔을 살살 쓰다듬었다.
“호랑이 수인은… 돌까지 많이 성장하나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돼요. 토끼 아기들은 아주 작은 채로 1년을 보내는데… 호랑이도 그럴까요?”
최서율이 제 두 손을 동그랗게 구부려 손끝을 맞닿게 했다. 두 손이 모여 타원형을 만들었는데 토끼 아기들은 딱 그 정도 크기라고 하자 오히려 강무혁이 놀란 눈치였다. 그렇게 작다고?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이 집안에서 나름 많은 정보를 습득해 놓은 상태였지만 실제로 아기가 어느 정도의 크기일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토끼라면 걱정 없지만, 호랑이라면 아무래도 크기도 중요했기에 자꾸만 고개가 갸웃갸웃 움직였다.
강무혁이 최서율의 배를 슬슬 쓰다듬다가 말고 고개를 내렸다. 목덜미에 닿는 얼굴을 피하며 몸을 비스듬히 비틀고 강무혁의 어깨에 뒷머리를 기대자 가까운 곳에서 눈이 마주쳤다.
“3개월쯤 되면… 너보다 크려나?”
“힉…!”
“설마 아빠를 물겠어?”
“그, 그렇겠죠?”
동그래진 눈동자가 바르르 떨렸다. 그 위로 강무혁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뭘 걱정해. 정말 호랑이면 물릴까 봐 그러는 거야?”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그냥?”
“저보다 크면 좀… 자존심 상하잖아요. 내가 아빤데?”
강무혁이 입술을 말아 물고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웃음을 참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 자기가 말해놓고도 웃긴 지 비슷한 얼굴을 하곤 소리 없이 끅끅거렸다.
“왜요, 왜 웃어요.”
“너도 웃고 있잖아. 말해놓고도 웃기지?”
“네, 그런데 전 좀 진지해요.”
결국 참지 못한 강무혁이 소리내어 웃는 바람에 이든이가 움찔거렸다. 조용히 하라며 강무혁의 팔을 아프지 않게 내리친 최서율이 침대 위로 쓰러지며 큭큭큭… 길게 웃는 강무혁의 입술을 손끝으로 부여잡고 꼭꼭 꼬집어댔다.
“우리도 좀 자자. 이제 여기서 나갈 준비도 해야 하잖아.”
다시 곤히 잠든 이든이를 어른 침대와 딱 붙은 아기 침대에 조심히 옮겨 놓은 강무혁이 침대 속을 파고들었다. 이든이 옆에 누운 강무혁을 타고 넘은 최서율이 그를 등지며 배시시 웃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야?”
“금방 수유할 시간이에요. 이렇게 자야 이든이가 울면 바로 일어나죠.”
“내가 도와줄게. 등지고 잘 필요는 없잖아.”
“이렇게 안아주면 되잖아요.”
강무혁의 팔을 베고 누운 최서율이 남은 팔을 제 쪽으로 끌어당겨 옆구리에 끼고 몸을 늘였다. 호랑이의 힘찬 콧바람에 정수리 부근 머리카락이 간지럽게 살랑살랑 흔들렸다.
아예 편하게 누워버린 최서율을 다시 돌려놓을 수도 없으니 강무혁이 팔을 구부렸다. 단단한 두 팔에 안겨진 몸이 꼼지락거릴 때마다 뒤통수와 정수리, 목덜미에 입술이 내려앉았다. 익숙한 호랑이 냄새를 뚫고 아기 분내가 폴폴 풍겼다.
* * *
“끼잉, 낑….”
새벽에 아기 수유를 해야 해서 깊게 잠들지 못한 최서율이 미간을 꿈틀거렸다. 이질적인 소리에 귓가가 간질거렸다. 제대로 뜨지 못한 눈으로 제일 먼저 보이는 강무혁의 단단한 가슴팍을 더듬거렸다.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어깨가 오르락내리락했는데 그 너머로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가득 차오른 방이 보였다. 눈을 느리게 깜빡거린 최서율이 제 바로 뒤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에 다시 귀를 쫑긋 세웠다.
“낑!”
“헉!”
손끝으로 더듬고 있던 강무혁을 밀쳐낸 최서율이 눈을 번쩍 뜨며 단숨에 벌떡 일어났다. 강한 힘에 몸이 밀린 강무혁도 눈을 번쩍 떴다.
“맙소사….”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새끼 호랑이 한 마리가 아기 침대를 벗어나 어미를 찾아 헤매듯 이불을 이리저리 밀며 용을 쓰고 있었다. 보슬보슬 노란색에 가까운 여린 털과 선명한 검정 줄무늬가 새벽빛에 반짝거렸다. 뒷다리를 이리저리 밀어대느라 짤막한 꼬리가 하늘로 바짝 치솟았다.
“아….”
토끼 수인인 제가 낳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호랑이의 모습이었다. 삐약삐약 자그마한 입을 벌리고 열심히도 울고 있는 새끼 호랑이의 등에 강무혁의 손이 먼저 닿았다.
“호랑이네.”
“아, 정말… 아….”
아비의 냄새를 가늠하듯 꼭 감은 눈으로 뒷다리를 쭉쭉 밀어대며 커다란 손바닥 안에 얼굴을 비비던 새끼 호랑이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목이 터지도록 어미를 찾아 헤매는 아기의 미약한 울음소리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호랑이의 아주 작은 분홍색 코가 열심히도 움직여댔다. 만져보라는 듯이 아기의 엉덩이를 밀어 최서율 가까이 보내준 강무혁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손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너무, 그러니까, 너무….”
허공을 유영하던 손이 마침내 호랑이 아기의 등에 닿았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여린 털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간질여댔다. 뜨거운 체온을 가늠하기 무섭게 왈칵 울음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가득 차오른 눈물이 최서율의 흰 뺨 위로 뚝뚝 흘러내렸다. 두 손으로 작은 몸을 잡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자 아기 호랑이 이든이가 어미의 냄새를 알아챘는지 발발 떨리는 몸으로 온 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품에 호랑이를 안은 최서율이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혹시라도 호랑이면 어떡하지, 잘할 수 있을까. 토끼인 제가 낳은 호랑이가 말이나 되나…. 짧게라도 스쳤던 지난 걱정들이 미안해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아기의 냄새를 맡기 위해 얼굴을 가져다 대자 자그마한 앞발이 아무렇게나 엉겨 붙어왔다. 최서율의 코와 입술, 뺨을 이리저리 밀며 삑, 삑 울어대는 새끼 호랑이가 어미의 볼에 입 맞추듯 코를 뭉갰다. 두 팔로 감싸 안아주자 필사적으로 품을 파고드는 힘이 너무도 여리고, 미약해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지저분해진 최서율의 볼을 쓰다듬고 열심히 닦아 낸 큼직한 손이 여린 털 뭉치를 소중히 받치고 있는 손 위로 겹쳐졌다. 품에 안은 아기도, 손에 닿는 체온도 너무 뜨거워 데일 듯했다. 최서율이 어깨를 떨며 훌쩍거렸다. 낑낑 울어대던 아기가 어미의 냄새를 맡으며 색색 고른 숨을 내쉬었다.
토끼가 낳은 호랑이는 지난날의 걱정은 기우였다고 말하듯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럽고,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