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식사를 마친 큰형님은
육아를 돕기 위해 귀가해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남겨진 강무혁과 최서율은 차가 마련된 연못 정원에 앉아 부모님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무혁의 어머니는 최서율이 혼자 서울에 올라와 살았다는 말에 꽂혔는지 최서율을 무척 안쓰러워했다. 강 회장은 그런 모습을 높게 산다며 칭찬했지만, 토끼 수인 마을에서 대두되고 있는 개방에 관련한 일에 더 큰 흥미를 보였다.
“아버지께서 그런 의견을 마을에 내놓으셨고, 마을 안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그럴 만하지, 그곳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어른들은 나서기 어려울 거야.”
“그래서… 다음 주에 회장님을 만나 의견을 구하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흠… 자네는 내가 촌장님을 불편하게 할까 봐 걱정했고?”
“네? 그, 그런 건….”
강 회장이 최서율의 속이 훤히 보인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나무라는 게 아닐세.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할 뿐이지. 내 긍정적으로 생각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감사합니다. 회장님.”
“내가 도울 일이 뭐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같이 생각하다 보면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나으니 좋은 방법이 생기겠지.”
속마음을 들켜버린 최서율이 진땀을 뺐다. 어쨌든 이 호랑이굴에 찾아온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꾹 얹혔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강무혁을 바라보자 잘했다는 듯이 웃은 강무혁이 습관처럼 손을 올려 최서율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보기 좋네. 나는 무혁이가 평생 혼자 살게 될까 봐 걱정했는데….”
“제가 토끼 수인이라… 싫어하시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이렇게 반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덜컥했는데… 서로 좋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사이좋게 잘 지내주면 좋고, 좋은 열매를 맺으면 더 좋고 그런 거지.”
“열매….”
얼음이 가득 든 차를 벌컥벌컥 마신 최서율이 달아오르는 볼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거기까지 생각하기에는 이제 겨우 두 계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었다. 조금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생각해보지 않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혹시 제가… 토끼를 낳으면 어떡하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거린 최서율이 새까만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강무혁을 바라보았다. 입꼬리가 길게 올라간 강무혁이 콧구멍을 씰룩거리며 의자에 편하게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입술을 달싹거리는 최서율의 손을 잡아 제게 끌어오더니 손등을 토닥였다.
“벌써 그런 걸 걱정하고 있는지 몰랐네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당황한 최서율이 말을 더듬자 강 회장과 호랑이 여사의 얼굴에 그제야 함박웃음이 걸렸다.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참지 못하던 호랑이 여사가 매우 흥미롭다는 듯이 최서율을 바라보며 조곤조곤 말했다.
“우리야 낳아만 준다면 너무 좋지. 너무 급히 생각할 일도 아니고, 연애도 더 즐기고 둘이 잘 상의해보도록 해요.”
옆에서 듣고 있던 강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 오랜만에 가득 피어오른 웃음으로 인해 분위기가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그래. 호랑이건, 토끼건 낳아만 준다면 우리는 다 환영이지.”
수인의 임신과 출산은 이러했다.
수인은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서는 임신하지 못한다. 단, 같은 종 혹은 수인 중에 다른 종과의 결합으로 임신할 수 있는데 이는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동물의 습성을 다 버리지 못한 수인은 발정기 때 임신 확률이 가장 높다. 동물처럼 다둥이를 출산하지 못하고 한 번의 수정으로 하나의 생명만 잉태할 수 있다.
수정과 착상을 통해 임신이 확정되고, 그렇게 열 달이 흐르면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는 짧게는 삼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 후에 동물화를 하여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다. 이 전까지는 무슨 수를 써도 아기의 종을 알 길이 없다. 부부가 같은 종이라면 가능하지만 다른 종과의 결합이라면 그때가 되어서야 아기의 종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동물화한 아기는 태어난 지 1년 후에 다시 사람의 꼴을 갖출 수 있다. 영아기와 유아기에는 몸의 상태,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 동물화를 반복하여 부모 혹은 양육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아동기가 되면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아이들은 인간의 모습에 동물의 신체 일부분을 달고 지내며 스스로 몸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미완의 시절을 보낸 후 사춘기에 들어서면 이차성징과 함께 수인의 모습을 완성할 수 있다. 강무혁과 최서율 모두 이 과정을 겪어 성장했고, 앞으로 태어날 수많은 수인 아기들도 같은 과정을 겪게 될 것이었다.
낳아봐야 종을 알 수 있으니 어떤 종을 낳을지 미리 걱정하는 건 무의미했다. 토끼도, 호랑이도 다 괜찮다는 호랑이 부부의 말에 내심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호랑이 아기를 품에 안은 저를 토끼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또 다른 걱정거리로 자리 잡았다.
최서율은 첫 만남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쏟아 낸 것 같아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야 혹시나 경거망동한 건 없었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 거 없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강무혁을 보며 오늘 중 가장 편하게 웃었다.
“다음에 오면 무혁이 방도 구경하고 가요. 오늘은 우리랑 얘기하느라 그럴 새도 없었네.”
“네, 꼭 보러 오겠습니다.”
“그래요. 조심히 가고. 다음 만남을 기약합시다. 우리.”
손을 맞잡고 토닥여주는 호랑이 부부에게 몇 번이나 인사했다. 호랑이 부모님이 토끼 수인 최서율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것처럼, 최서율도 어쩐지 호랑이 부모님이 앞으로 더 많이 좋아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산 중턱을 넘어 북악스카이웨이와 합류하기 전까지는 호랑이 족 사유지를 달리는 외길이었다. 가족과 종사자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길이라 고요했고, 어두웠다. 강무혁은 천천히 차를 몰며 최서율이 야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전망이 정말 좋습니다.”
호랑이 부모를 만나고 왔다는 기쁨에 기분이 들떴다. 큰일을 하나 해낸 것 같은 성취감과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토끼 수인으로 태어난 제가 감히 맹수의 집에서 밥을 먹고, 웃고 떠드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던지라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가슴께를 짚으며 숨을 길게 들이마시는 찰나, 차가 갓길에 멈춰 섰다.
“왜….”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던 최서율의 목덜미가 커다란 손에 붙잡혔다. 그대로 조수석 시트에 처박힌 최서율이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키스하는 강무혁의 어깨를 부여잡고 팔딱거렸다.
입술이 깨물리고 벌어진 틈으로 밀려 들어오는 호랑이의 성난 기운을 받아냈다. 진득하게 엉키는 타액이 입술 옆으로 번졌다. 가느다란 목덜미를 꾹꾹 주무르는 손을 따라 저도 모르게 어깨를 파르르 떨어대던 최서율이 혀를 감아올리는 강무혁을 따라 고개를 치켜올렸다.
“흐응, 음….”
목구멍을 간질이는 소리가 강무혁의 입안으로 쏟아졌다. 뜨거운 숨만큼이나 깊은 감정이 몰려왔다. 그가 저녁 시간 내내 참았던 애정을 쏟아내는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 숨을 헐떡이는 최서율을 깊게 짓눌렀던 강무혁이 맞닿았던 살덩이의 틈을 벌렸다.
“한 번 더 말해봐.”
“…….”
“서율아.”
금방이라도 이를 드러낼 듯 뜨거운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는 강무혁의 눈과 마주한 최서율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가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심장께가 간질거렸다.
입술만 달싹이던 최서율이 강무혁의 팔뚝을 감싸고 있는 셔츠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옆으로 돌렸던 눈길을 바로 세우며 시선을 맞췄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 시선을 맞추곤 눈가를 접으며 사르르 웃었다.
“자기야….”
수줍은 목소리가 전부 다 내어지기도 전에 다시 입술이 겹쳐졌다. 강무혁이 가족들이 모두 앉아 있는 식탁을 뒤엎고 당장이라도 키스를 퍼붓고 싶었던 마음을 얼마나 오래 참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키스였다.
* * *
강무혁의 본가에 다녀오고 난 뒤 호칭을 정리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중이었다. ‘자기’라고 했다가 ‘무혁 씨’라고 했다가 급하면 ‘부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최서율을 이제는 거의 포기한 강무혁은 어떻게 불러도 다 자기를 부르는 거니 상관없다는 듯이 굴었다.
“자기야.”
오랜만에 호랑이의 모습으로 마당을 거닐던 강무혁이 최서율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크릉.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래도 ‘자기’라고 부르면 가장 좋아한다는 걸 최서율도 알고 있었다. 막상 얼굴을 보면 그 말이 잘 나오질 않아서 문제였지만 그가 호랑이로 있을 때는 어쩐지 더 용기가 났다.
어슬렁거린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느리고, 묵직하게 바닥을 짚은 호랑이가 퉁, 퉁. 거리며 다가왔다. 이제는 호랑이를 보고도 놀라지 않을 걸 보니 호랑이의 연인이 다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용맹한 토끼의 모습이었다.
최서율은 가끔 토끼가 되어 마당을 뛰어다녔지만, 강무혁은 산에 가거나, 수영할 때 외에는 동물화를 잘하지 않았다. 여름이 가기 전에 볕을 많이 쬐어주어야 건강하다고 말한 호랑이 어머니의 말이 생각나 주말을 맞이해 얼른 마당이라도 산책하라고 강무혁의 등을 떠민 보람이 있었다.
서 있으면 당연히 최서율보다 크고, 두 팔로 다 감기도 힘들 만큼 덩치가 좋은 호랑이지만 네 발을 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선이 낮아져 끌어안기 좋았다.
두 팔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품으로 안겨든 호랑이가 최서율의 볼에 제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좋은 냄새가 나는 보드라운 털에 얼굴을 파묻고 이리저리 비벼댔다. 너무 좋아 저도 모르게 낑. 소리를 낸 최서율이 뒤이어 까르르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웃어댔다.
까슬까슬한 혀가 볼을 핥고 목덜미를 핥아 대는 탓이었다. 여린 목덜미에 코를 들이박은 호랑이의 무게에 뒤로 벌렁 넘어간 최서율이 잔디에 엉덩이를 찧었지만, 호랑이는 최서율에게서 입을 떼지 않았다.
“으아, 부사장님! 아니, 자기야아, 그만, 그만 하세요!”
간지러움과 통증이 동시에 몰려왔다.
간지럽힌다 싶으면 까칠한 혀 안쪽이 닿아 살갗이 쓰렸고, 아프다 싶으면 살랑거리는 털과 몽실한 혀끝이 닿아 간지러웠다. 마당 잔디에 눕혀져 잔뜩 찌그러진 최서율이 호랑이의 커다란 덩치를 받아내느라 숨을 헐떡이는 지경이 돼서야 호랑이가 물러났다. 머리와 등이 엉망이었다.
저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가는 호랑이를 알면서도 일어나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 숨을 고르던 최서율이 흰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여름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이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바람이 이끄는 대로 둥실둥실 떠다녔다. 저 멀리서 밀려오는 커다란 구름은 물고기 모양이었고, 그 뒤에는 작은 자동차 모양을 한 구름이 따라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와 진한 잔디 냄새,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나무 냄새가 콧속에 들어와 마치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녹아내리고 있다는 착각마저 일게 했다.
“계속 누워있을 겁니까?”
“부사장님….”
“호랑이일 때는 잘도 불러주더니, 다시 부사장인가.”
강무혁이 편한 옷을 입고 다가왔다. 마당 한가운데에 누워있는 최서율을 일으켜 앉히곤 엉망이 된 티셔츠와 머리를 털어주고 정돈했다. 그의 손길을 받던 최서율이 뜨거운 햇볕에 녹아내린 듯 흐물거리는 눈빛으로 강무혁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저는 왜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일까요.”
최서율의 머리에 붙은 잔디를 떼어낸 강무혁이 웃었다.
“나도 그렇던데.”
“…….”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이, 그의 뒤로 보이는 작은 자동차 모양의 구름이 둥실거리는 모든 풍경이. 머릿속에 길게 남겨두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평화로운 이 여름이 끝나질 않길 바라는 욕심이 가당키나 한 걸까. 이렇게 좋은 걸 누려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유 없는 불안이 미세한 틈을 벌리고 존재를 나타내곤 했다. 오늘같이 평화로운 날은 더욱 그랬다.
“자기야, 안아주세요.”
“거절할 수가 없게 만드네.”
두 팔을 뻗은 최서율을 쑥, 안아 올린 강무혁이 엉덩이에 팔을 받쳤다. 익숙한 듯 그런 강무혁의 허리에 다리를 감은 최서율이 땀이 흘러 끈적해진 볼을 어깨에 살살 비벼댔다.
애교 부리는 척하면서 땀 닦는 상습범이라고 타박하는 강무혁의 목을 꽉 조여 안고는 더 격렬하게 볼을 비볐다. 강무혁이 웃을 때마다 맞닿은 가슴팍이 들썩거렸고, 그 몸에 매달린 최서율도 함께 들썩거렸다.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아닌데요.”
“한 거 같은데.”
“정말 아닙니다.”
폴딩도어를 훌쩍 넘어 거실로 들어온 강무혁이 최서율을 안은 채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최서율을 앉혀두고 얼굴을 확인하는 눈에 애정이 가득 담겨 뚝뚝 떨어졌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바쁘고, 주말에는 산을 돌보느라 바쁜 그였지만 함께하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주는 강무혁이었다. 가끔, 이 행복이 불안하다고 스치듯 말했던 최서율의 말을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평소와 다르면 기민하게 반응했다.
테이블에 손을 짚은 강무혁이 최서율과 시선을 마주했다.
“불안해질 때마다 안아주겠습니다.”
“…….”
“되도록 그런 생각하지 않길 바라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억지로 막을 수는 없지. 대신 그렇게 스쳐 가게 뒀으면 좋겠습니다. 그 불안이 우리 둘 사이에 스며들지 않도록.”
최서율이 다리를 달랑거리며 강무혁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런 마음이 우리 둘 사이에 스며들기도 전에 먼저 안아주시잖아요. 항상 스쳐 갑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강무혁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갠 최서율이 눈을 맞추며 웃었다. 볼을 쓰다듬고 입맛을 다시자 눈썹을 까딱, 움직이는 강무혁이었다. 귓가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입 맞추는 최서율의 어깨를 한가득 끌어안고 혀를 깊게 밀어 넣었다. 마주 안았던 손으로 어깨를 탕탕 두드렸다.
“얼음… 녹아요.”
입술을 떼지 않고 말한 최서율이 강무혁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얼음 잔을 힐끗거렸다.
“다시 꺼내면 되지.”
하느작거리는 여름용 티셔츠 밑단으로 손을 넣는 팔을 잡아 내린 최서율이 목말라요. 하고 속살거렸다. 코가 겹쳐진 채로 쭝얼거리는 입술을 깨문 강무혁이 몸을 물렸다.
“아야.”
“엄살은….”
잇자국도 나지 않을 만큼 살짝 물었는데 엄살을 부려대는 입술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훔친 강무혁이 미리 내려 둔 커피를 잔에 담았다. 그런 강무혁을 바라보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여름 바람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자기야, 오늘 저녁은 라면 어때요?”
“하, 참나….”
강무혁이 정말로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조리대에 팔을 짚고 뒤로 젖혔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고개가 최서율을 향해 돌아갔다.
“어제도 먹지 않았나?”
“그랬나요?”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려대는 최서율을 보던 강무혁이 고개를 저었다. 저 무구한 눈빛에 몇 번이나 속아 넘어가 주었지만, 오늘은 절대 라면을 먹일 생각이 없었기에 잔을 내려둔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요리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솜씨 좋은 곰 아주머니가 준비해둔 찌개와 반찬으로 상을 차리면 꽤 괜찮은 한 끼가 되었다. 거기다가 최서율이 좋아하는 계란후라이도 두 개 부쳐주면 라면에 대한 미련은 금방 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