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6/64)

35.

최서율을 품에 안고 골목을 벗어난 강무혁에게 바짝 붙은 윤 비서가 상황을 보고했다. 윤 비서의 목소리를 들은 최서율이 머리 위에 덮인 재킷 속으로 얼굴을 깊이 감추며 강무혁의 어깨 아래로 파고들었다. 어깨에 팔을 두르고 품으로 당겨 안은 강무혁이 재킷을 여며 주었다.

늑대 무리는 경찰에 넘겼고, 토끼 수인은 호랑이 어르신에게 보냈다고 말하는 윤 비서의 표정은 흔들림 없이 편안해 보였다. 오히려 윤 비서의 등장으로 불안한 듯 자꾸만 꿈틀거리는 최서율이 더 문제였다. 떨리는 몸을 단단히 받쳐 안은 강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죠.”

뒷좌석의 문을 연 윤 비서가 강무혁이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최서율을 바라보았다. 강무혁의 재킷을 꼭 쥐고 얼굴을 꽁꽁 감추고 있었지만, 얇은 여름 셔츠가 밀려 올라가며 언뜻 토끼 꼬리가 보였다. 벨트와 바지를 밀고 튀어나온 터라 새하얀 속살까지 내보인 최서율은 아무것도 모른 채 얼굴만 열심히 가리는 중이었다.

“어딜 봐.”

“보이니까 본 겁니다.”

이번 일을 통해 이미 최서율의 정체를 알게 된 윤 비서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강무혁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뒷문을 닫은 윤 비서가 빠르게 조수석에 올라탔다. 연이어 수행비서인 이주성 비서의 목소리까지 들리니 최서율이 기절이라도 한 듯 헐떡이던 숨조차도 멈춘 채 굳어버렸다.

최서율의 흐트러진 셔츠를 잡아 내려 바지춤 안으로 밀어 넣은 강무혁이 길게 한숨을 쉬며 시트에 기댔다. 품에서 떨어져나와 반대쪽으로 푹, 쓰러진 최서율이 창문에 기대어 참았던 숨을 색색, 몰아쉬었다.

차가 산의 초입에 다다랐을 즘, 토끼 마을을 지키는 호랑이에게 연락이 왔다. 산군 호랑이 어르신은 아니었고, 그의 아들 호랑이였다. 최서율에게 몹쓸 짓을 한 토끼는 토끼 마을로 데려가 처벌할 것이고, 추후의 일은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이었다.

음량을 최대치로 올려놓은 덕에 차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통화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최서율의 안부를 물을 때, 어깨를 옹송그린 최서율이 울음을 삼키는 듯 작게 훌쩍거렸다.

재킷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은 강무혁이 최서율의 볼을 잡았다. 손이 축축해지자 화를 참는 듯 뜨거운 콧김을 뿜어냈다. 그 기운이 흉흉하여 수인도 아닌 이주성 비서가 운전대를 고쳐 쥐어야 할 정도였다.

차가 집 앞에 멈춰서자 강무혁은 혼자 내리려 발을 내딛던 최서율을 번쩍 들어 안았다. 놀란 최서율이 강무혁의 목덜미에 얼굴을 박고 목을 꼭 끌어안았다. 여전히 윤 비서와 이 비서를 신경 쓰는 듯이 재킷을 당겨 얼굴을 감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도 없이 돌아서는 강무혁의 뒤에 대고 윤 비서와 이 비서가 가볍게 인사했다.

* * *

강무혁이 현관을 넘어서며 최서율을 덮고 있던 재킷을 걷어내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최서율은 그때까지도 목덜미에 코를 박고 얌전히 안겨있었다.

침실 문을 발로 밀어 열고는 곧장 침대로 간 강무혁이 폭삭 안겨있던 최서율을 침대로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단단한 매트리스가 크게 흔들렸지만,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내려준 자세 그대로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감춰버리는 최서율이었다. 머리 위에 솟아오른 토끼 귀가 힘없이 펄럭이다 축 늘어졌다.

“얼굴 좀 보게 일어나요.”

“…….”

“최서율.”

“…….”

“일어나서 얼굴 보자고 말했습니다.”

이미 헝클어져 제 모양이 아닌 넥타이를 완전히 풀어낸 강무혁이 테이블 위에 넥타이를 올려 두고 침대로 다가갔다. 엎드려있는 최서율의 엉덩이 위에 감춰진 꼬리가 셔츠에 감싸여 봉긋한 모양을 뽐내고 있었다. 손을 뻗어 꼬리를 움켜쥐자 깜짝 놀라며 파닥거린 최서율이 젖은 눈을 하고는 강무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봐주네.”

“부, 부사장님… 손 좀….”

“왜요. 손 떼면 또 엎드리려고?”

“…….”

비죽 튀어나온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젖은 눈이 일그러졌다. 발목을 잡아 반쯤 돌아간 몸을 제대로 눕히고 쭉 끌어당기자 늘어져 있던 토끼 귀가 위로 쫑긋 솟아올랐다.

바닥에 발이 닿을 정도로 당겨진 최서율이 얼굴을 가리려 손을 들어 올렸다. 손목을 낚아채 양쪽을 하나씩 잡아 눌렀다. 아프지 않을 만큼만 힘을 주었지만, 양팔을 벌리고 고정된 최서율은 억울한 듯 완전히 울상이 된 얼굴을 하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오, 오늘은… 화내지 마시고, 내일, 하시면 안 될까요….”

“…….”

“제가, 오늘은 너무 속상해서 그럽니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입술을 말아 문 최서율이 눈을 질끈 감고는 더듬더듬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부사장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압니다… 아는데요, 그런데, 오늘 말고….”

최서율은 제가 지금 얼마나 속상한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미움받아 본 일이 없었다. 인연을 맺은 누구나 저를 예뻐하고, 좋아했다. 서울에 살겠다고 말하면서 가족과 일족의 걱정거리가 되기는 했지만, 그들이 저를 미워한다고 느끼진 않았다. 부모님과 형제들과도 사이좋게 지냈다. 낯선 서울에서 혼자 대학을 다닐 때도 동기, 선배, 후배. 심지어 교수님들까지도 제게 상냥했다.

최서율은 제가 베푼 만큼 돌아오고, 자기가 선하게 사는 만큼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다. 순수하다 못해 순진했던 생각을 돌아보니 이십여 년의 인생이 다 헛것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 가슴이 무너졌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면서도 열심히 지금 제 상태를 변론하듯 말하던 최서율이 치밀어 오르는 설움에 후- 떨리는 숨을 뱉어냈다.

“그렇게 속상합니까?”

“…네.”

“그럼 나는 어떨 것 같은데.”

“…….”

최서율이 시야 끝에 맺히는 강무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속이 타들어 가는 일이었다. 쫑긋 솟았던 귀가 다시 늘어졌다. 강무혁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저였다면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벌써 돌아섰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차마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시선을 피하듯 눈을 감고 울먹였다.

“죄송합, 니다… 부사장님이 틀렸다고… 꼭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토끼 수인이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결국 꾹꾹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눈꼬리에 맺히지도 못하고 흘러내린 눈물이 귓바퀴에 고였다.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 관자놀이와 귓가가 금세 축축해졌다.

손목을 누르고 있던 손을 떼고 최서율의 얼굴을 닦아 낸 강무혁이 소리내어 흐느끼기 시작하는 최서율을 일으켜 앉혔다. 서율은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떨구며 울었다. 강무혁이 시선의 높이를 적당히 조절해 최서율의 발치 아래 무릎을 대고 앉았다.

“화도 못 내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한숨같이 뱉어낸 말에 코를 킁. 들이마신 최서율이 젖은 얼굴을 아무렇게나 비벼 닦아냈다. 닦아내면 또 흐르고, 또 흐르던 눈물이 어느 순간 잦아들고, 헐떡이던 숨도 진정되었다.

그때까지도 말없이 기다리던 강무혁이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한 눈을 보곤 최서율의 손을 밀어냈다. 건조한 제 손으로 축축한 눈가를 부드럽게 훔쳤다.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경험치가 하나 더 쌓인 거니까요. 그러니까 털어내요. 나쁜 사람은 응당 그에 맞는 벌을 받게 됩니다. 착하게 살고, 남들에게 친절한 건 나쁜 게 아닙니다.”

“…….”

“다만, 온 마음을 다해 믿는 사람은 적정한 선을 그어두고 구별해 놓는 게 좋습니다. 모든 사람이 네 착한 마음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평소처럼 다정한 목소리와 손길에 복잡하게 얽혔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그러다 또 불안이 밀려왔다.

“저는… 부사장님께 그런 사람입니까?”

“그런 건 왜 물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참고, 인내하는데, 더 답이 필요합니까.”

“제가 부사장님 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행동했으니까요… 제가 부사장님 선 밖으로 밀려나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새까만 동공이 강무혁의 얼굴을 더듬었다. 벌그죽죽해진 얼굴을 쓰다듬은 강무혁이 눈물이 고여 젖은 귓가도 살뜰하게 쓰다듬었다.

“내 선 안으로 들어오기 힘든 만큼, 나가기도 힘듭니다. 약속했잖아요. 끝까지 함께 가자고. 최서율 씨가 내가 생각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나를 믿지 못하고 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몇 번이고 참고 기다릴 겁니다.”

“…….”

다시 코가 시큰해진 최서율이 입술을 움쭉거렸다. 더 울면 눈이 짓무를 것 같아 그러고 싶지 않은데 가슴이 짜르르 울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아, 물론. 그때마다 혼나긴 하겠지만.”

강무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모양을 바라보던 최서율이 너른 어깨에 손을 짚고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빤하게 바라보는 최서율의 머리 위에서 토끼 귀가 파르르, 떨렸다.

“앞으로는, 그럴 일 없도록… 잘하겠습니다.”

“오늘 혼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겁니까.”

“그, 그런 거… 아닙니다.”

얼른 몸을 뒤로 물리는 최서율의 목덜미를 잡아챈 강무혁이 혀를 길게 내어 꾹 다물린 입술을 핥아 올렸다.

“입 벌려. 뭘 해야 하는지 알잖아.”

낮게 내려앉은 목소리의 끝이 갈라졌다.

심장이 배꼽 즘에서 뛰는 것처럼 아랫배가 술렁여 꼬리가 꿈틀거렸다. 선이 옅은 입술이 눈물을 머금고 평소보다 더 발갛게 색이 올라있었다. 그 위를 엄지 손끝으로 쓰다듬는 강무혁의 손길에 홀린 듯 최서율이 제게 닿아있는 눈과 시선을 맞췄다.

천천히 벌어지는 입술을 참지 못한 강무혁이 그 좁은 틈새로 혀를 밀어 넣었다. 뾰족하게 세운 혀끝이 치열을 훑자 토끼의 입이 완전히 열렸다.

축축한 입 안쪽의 여린 살을 건드리는 혀가 뜨겁고, 부드러워 몸서리친 최서율의 귀가 위로 솟았다가 떨어져 내리며 강무혁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혀가 맞닿아 비벼지고, 타액이 넘나드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욱 예민해진 청각을 건드렸다.

강무혁의 셔츠를 움켜쥔 최서율이 엉덩이를 침대에 비벼대며 매달렸다.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고 강무혁의 혀가 입천장을 간질이고 목구멍을 건드리자 뜨거운 숨이 치솟았다. 그 숨까지도 먹어 치울 듯 깊게 맞닿은 입술에서 축축한 소리가 났다.

토끼 귀가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다. 셔츠가 엉망으로 구겨질 정도로 쥐고 있던 최서율이 손을 펴며 가슴팍을 밀어냈다. 순순히 물러난 강무혁이 젖은 입술 끝에 얕게 입술을 내렸다. 살을 빨아당기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귀, 귀가….”

“왜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립니다… 이상해요.”

“왜, 귀여운데.”

“귀여운…!”

수인의 동물화를 막는 약은 결코 몸에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최서율 몸에 약이 제대로 들질 않았는지 인간도, 동물도 아닌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제 모습이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구겨진 미간에도 입을 맞춘 강무혁이 웃었다.

“안 이상합니다. 오히려 잘 어울려.”

“이게… 어떻게 잘 어울립니까….”

“또, 내 말 안 믿지.”

“그런 거, 아닙니다….”

울상지은 최서율이 제 토끼 귀를 만지작거렸다.

강무혁이 그런 최서율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씻죠. 귀에 물 안 들어가게 조심히 씻겨 주겠습니다.”

“가, 같이요?”

“시간 아깝게 뭐하러 따로 씻어.”

싫다는 듯 도리질 치는 최서율을 번쩍 들어 어깨에 걸친 강무혁이 버둥거리는 최서율의 엉덩이를 찰싹 내리쳤다.

“부, 부사장님!”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지만 최서율은 굴하지 않고 열심히 움직여댔다. 그런다고 놓아줄 호랑이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 몇 번을 겪어도 같이 씻는 건 영, 익숙해지질 않았다.

욕실 벽에 기대어 세워지기 무섭게 뜯어진 최서율의 셔츠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맨살을 쓰다듬는 강무혁의 손이 옆구리와 허리를 휘돌아 엉덩이 근처까지 내려왔다. 솟아오른 꼬리에 손이 닿자 최서율이 커다란 어깨를 고쳐 잡으며 바짝 몸을 붙여댔다.

“거, 거긴….”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오늘은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는 게 좋겠네요.”

“부, 부사장님….”

작은 꼬리를 손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대던 강무혁이 최서율의 목덜미에 쪽, 쪽. 잘게 입 맞췄다. 바지와 속옷을 벌리며 뒤로 쑥, 들어온 손이 맨 궁둥이를 잡아 주물렀다. 양쪽으로 잡아 벌리고, 둔덕 사이를 밀고 들어오는 손가락에 무릎이 후들거려 제대로 서기 힘들었다.

“아으, 읏….”

“똑바로 서요. 오늘은 밤이 아주 길겠네.”

무너지듯 가슴팍으로 기대는 최서율의 토끼 귀에 대고 음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무혁의 웃음소리에도 저도 모르게 허리를 떤 최서율이 눈을 질끈 감았다. 싫지 않았기에 제가 먼저 허리를 살살 움직여 입구를 더듬고 있는 단단한 손끝 위에 움찔거리는 촘촘한 근육을 진득하게 비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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