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시끌벅적했던 집이 조용해지자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형제들이 많아서 정신없던 것도 있지만 호랑이 냄새가 난다며 킁킁거려대는 통에 더욱 신경을 썼던지라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우리 서율이가 토끼인 걸 알면서도 많이 도와주셨다고요…. 너무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말씀 낮추십시오. 편하게 대해주셔도 됩니다.”
“에이, 그건 예의가 아니지, 그래도 우리 서율이 상사 되시는 분한테.”
최서율의 서울살이를 마뜩잖게 여기는 아버지도 범진그룹 부사장이라는 강무혁 앞에서는 허허실실 웃기 바빴다. 그래도 자식이 외지에서 밉보이는 것보다는 낫다 싶어 그런다는 걸 알기에 괜히 입술이 비죽비죽 튀어나왔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였다.
몇 년 사이에 좀 늙은 것 같은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이 꿈같기도 하고 믿어지질 않아서 자꾸만 가슴이 술렁거려 그걸 다 잡느라 애쓰는 중이었다.
“축제에 누가 되지 않게 지내다가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서도 토끼 수인 마을에 대해서는 함구할 테니 너무 염려치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건 걱정 안 합니다. 서율이가 믿고 따르니 여기까지 함께 왔겠거니 생각할 뿐이지요. 모쪼록 계시는 동안 편안히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서율이 입술을 꿈지럭거리다가 강무혁을 바라보았다. 끔뻑거리는 눈을 바라보던 강무혁이 슬쩍 웃었다. 어머니의 시선도 그런 두 사람에게 끈질기게 닿아있었지만,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지 배시시 웃었다.
“부사장님은 제 방에서 같이 지낼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아버지, 어머니 일 보세요. 도울 일 있으면 얘기해주시고요.”
“그래. 일손 부족하면 연락할 테니까 재깍 튀어나와서 일해라.”
토끼 아버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최서율의 볼을 아프게 꼬집었다. 애지중지 키운 다섯째 아들이 기골이 장대한 호랑이를 달고 나타났으니 마음이 여간 심란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반갑다고 동동거리다가 부사장 앞이라고 어른스러운 척을 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샜다. 반면에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스러운지 눈썹이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엄마….”
“주방에 밥이랑 찬 준비해놨으니까 차려서 먹고… 자세한 건 밤에 얘기해. 너는 아주 혼날 줄 알아.”
“아, 왜에… 오랜만에 봤는데 혼낼 생각부터 해?”
“이놈이! 이따 봐. 저녁때 개천에 등불 보러 꼭 오고.”
“알았어요.”
쑥덕거리고 있지만, 옆에서 그 소리를 다 듣고 있던 강무혁이 웃음 지으며 산군 호랑이 영감과 눈을 마주했다.
“애를 열둘이나 키우면 저렇게 무서운 토끼가 되는 법이지. 허허허.”
어머니의 호통이 자주 있는 일인지 토끼 여사를 향해 눈짓하며 어깨를 으쓱인다. 최서율의 아버지와 어머니, 산군 호랑이 영감이 자리를 떴다. 마당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조카들까지 모두 안고, 업고 대문을 나서니 집에 남은 이가 아무도 없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너른 대청마루에 덩그러니 두 사람만 남았다. 최서율이 한숨을 푹 내쉬며 대자로 드러누워 얼굴을 가렸다.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제가 좀 긴장해서 그런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최서율의 옆에 다리를 펴고 앉은 강무혁이 뒤로 손을 짚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오랜만에 정신이 좀 없네요. 그래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은 가족들 사이에서 최서율 씨가 행복하게 자랐을 생각을 하면 나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최서율이 몸을 모로 돌리며 강무혁을 바라보았다. 팔을 접어 머리를 받치고 바라보는데 커다란 손이 볼에 닿았다. 대청마루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볼에 스며드는 따스한 체온에 긴장이 풀어지며 몸이 노곤해졌다.
제가 나고 자란 집에 강무혁이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꿈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긴 꿈을 헤치며 아직도 깊은 잠이 들어있는 건지, 지금 이곳에서 그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게 현실인지 모든 것이 두리뭉실했다.
“잠은 방에서 자야지. 일어나요.”
입술이 닿을 것처럼 다가오길래 저도 모르고 입술을 내밀었던 최서율이 코끝을 콱 깨무는 통증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펄쩍 뛰어올랐다.
“부사장님!”
“곧 잠들 눈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릿한 코를 붙잡고 끙끙거리는 토끼를 보던 강무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내 커다란 손이 토끼의 가느다란 목덜미에 단단히 감겼다.
그대로 입을 맞춰오는 강무혁의 옷자락을 잡은 최서율이 낑. 앓는 소리를 냈다. 입술 틈으로 빠져나온 강무혁의 웃음소리가 대청마루를 지나 마당으로, 낮은 담장으로 훌훌 새어 나갔다.
* * *
새벽부터 설쳐대느라 피곤했는지 최서율은 밥을 먹기 무섭게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방을 구경하던 강무혁이 뒤를 돌아보았을 땐 이미 침대에 고꾸라진 채로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강무혁이 그런 최서율을 편하게 누울 수 있도록 자리를 봐주었다.
최서율이 나고 자란 집은 겉은 오래된 한옥이었지만 안은 현대식으로 개조해 놓아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최서율의 방만해도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밟고 올라와 문을 열었다고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인 물건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두 사람이 눕기에는 조금 좁아 보이는 침대와 최서율이 학창 시절에 사용했을 책상, 뒷마당이 내다보이는 작은 창문은 한옥과 맞지 않게 알루미늄 창틀로 만들어져 있었다. 게다가 시스템 에어컨이라니 더 둘러보지 않아도 집안의 구조쯤은 훤히 내다보일 정도였다.
작은 창을 통해 보이는 뒷마당에는 오래된 우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옆에 펌프를 이용해 물을 끌어 올리는 기계가 놓여있었다.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크고 작은 항아리를 옹기종기 모아 두었다. 구식과 신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세월의 흔적을 만들어 내었다. 창틀에 기대어 뒷마당을 한참 바라보던 강무혁이 몸을 돌렸다.
학생이나 쓸법해 보이는 오래된 책상에 놓여있는 액자에는 조금 더 앳된 모습의 최서율이 담겨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사진인지 같은 교복을 입은 녀석들이 카메라를 향해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꽃을 안고 활짝 웃고 있는 최서율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그 작은 얼굴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린 강무혁이 소리 없이 웃었다.
잠든 최서율을 살펴보려던 찰나 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몇 번 무시했던 윤 비서의 전화를 더는 미룰 수 없기에 문을 밀고 나와 마룻바닥에 걸터앉았다.
한옥과 흙으로 만들어진 낮은 담벼락 그 주변에 핀 이름 모를 들꽃, 흙과 돌이 아무렇게나 다져져 만들어진 마당. 앉아서 바라보니 그 고즈넉함에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부사장님, 저한테 이러시면 회사에 돌아오셔서 제 얼굴을 다시는 못 보는 불상사를 만들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전화를 받기 무섭게 불만을 터트려내는 윤 비서를 웃는 목소리로 달랜 강무혁이었다. 큰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부사장의 지시를 기다리는 일이 여러 개 있었기에 연락이 안 되는 일만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던 윤 비서가 당연히 터트릴 수 있는 불만이라고 생각하여 적당히 하고 넘어가려는 심산이었다.
보고는 간단했다. 이미 목요일 업무가 중반을 넘어섰을 테니 오늘 하루는 이렇게 넘어가지만 내일 잡혀있던 회의를 모두 다음 주로 미루게 되었으니 일정을 조정하는데 윤 비서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건 당연했다.
적당히 대답해주던 강무혁의 눈썹이 꿈틀, 치솟았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제가 늑대라는 건 잊지 않으셨길 바랍니다. 부사장님.
“아, 그랬죠. 잊을 리가 있습니까. 나를 뭐로 보고.”
-늑대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이 몇 명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행실이 워낙 좋지 않아 무리에서도 내쳐졌는데 그들이 최근 ‘토끼 수인’을 찾는다고 말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요.”
-소재를 파악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들이 찾는 게 정말 ‘토끼 수인’이라면 그 허무맹랑한 말을 믿고 우리 인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됩니다. 일단 회사에 ‘토끼 수인’이 없고 그들을 찾는다는 게…
“지체하지 말고 소재 파악해서 보고하세요. 다음 주까지면 되겠습니까? 가지고 있는 인력. 아니 그 이상을 사용해도 좋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최대한 빨리 파악해요.”
-부사장님.
“최대한 빨리라고 말했습니다.”
-이러시는 이유가 혹시, 최서율 대리….
“윤 비서.”
-네. 부사장님.
“때가 되면 자세한 건 묻지 않아도 말해주겠습니다. 하던 일이나 잘하시고 오늘은 모두 일찍 퇴근하는 방향으로 일정 조정하세요.”
윤 비서와의 통화를 마친 강무혁이 차게 식은 얼굴을 하고 곤히 잠든 최서율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최서율이 경찰서에 다녀오기 전부터 늑대 무리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던 윤 비서가 유용한 정보를 얻은 건 다행이었지만, 기분은 몹시 불쾌했다. 그들이 최서율을 노린다는 게 확실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임신이 가능한 토끼 수인을 찾아 노리는 이유가 매우 불순하기 짝이 없을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감히, 호랑이의 소유에 눈독을 들인다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를 부드득 가는 강무혁의 기운이 몹시 사나워졌다. 최서율의 고운 미간이 움찔 떨렸다. 생각에 잠긴 호랑이는 토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삭이고 있었다.
“부, 부사장… 님?”
“아, 깼습니까.”
파르르 떨리는 까만 동공을 보던 강무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최서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범의 기운 때문에 놀라 눈을 떴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나셨습니까?”
“내가요?”
“네… 지금… 너무….”
놀란 눈을 보던 강무혁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화난 거 아닙니다. 회사에서 전화를 받아서 신경 쓰느라 그랬습니다.”
“회사에 무슨 일 있습니까?”
“아무 일도 없습니다. 이제 겨우 하루 동안 자리에 없었을 뿐인데 무슨 일이 있을 리가 있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제 잠 좀 깨죠. 곧 해가 지겠습니다.”
“아….”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잠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을 어쩌지 못하고 이불만 만지작거리는데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는 손에 화들짝 놀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힘없이 엎어지는 최서율의 어깨를 잡아 들어 올린 강무혁이 멍해진 입술에 쪽, 쪽 입을 맞췄다.
“부, 부사장니임….”
“왜요.”
“여기서 이러시면….”
문간을 힐긋거리던 최서율이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고 빤한 눈으로 강무혁을 바라보았다.
“집에서는 뽀뽀도 금지입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그럼 해줘요. 나가면 못하지 않습니까.”
방안에 아무도 없는데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최서율이 강무혁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저를 향해 끌어 내렸다. 미약한 힘에 비해 온 힘을 다해 입술을 내린 강무혁이 가볍게 맞닿았던 입술을 진득하게 겹치며 틈새를 파고들었다.
강무혁의 두 팔에 가득 안겨진 채 받는 키스는 달콤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짙게 서린 집 안에서 그것도 제 방 안에서 호랑이와 나누는 키스를 상상이나 했던가. 아찔해진 기분에 너른 품으로 푹 안겨들었다. 지금 당장 이 호랑이가 제 호랑이라고 동네방네 외치고 싶을 만큼 가슴이 크게 부풀어 숨이 찼다.
* * *
“그렇게 맛있습니까?”
“네. 이거 제가 진짜 좋아했던 겁니다. 서울에서는 이런 간식은 찾기 힘들지 않습니까.”
감자를 작게 잘라 볶고 설탕을 뿌려 버무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간식을 극찬해대며 먹고 있는 최서율을 보는 강무혁의 입꼬리에 큰 웃음이 걸렸다. 호호 불어가며 어찌나 열심히 먹는지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힐까 싶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넘어지겠습니다. 조심히 걸어요.”
“부사장님도 한 입만 드셔보세요. 진짜 맛있습니다.”
이쑤시개로 콕 찍어 입가에 내미는데 마다할 수가 없었다. 감자야 워낙 흔한 식자재고 그 위에 설탕까지 얹었으니 맛없을 리 없었지만, 굳이 그걸 입에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발 먹어달라는 듯 바라보는 눈길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벌어진 강무혁의 입 안으로 적당히 식은 감자 한 알이 쏙 들어왔다.
“맛있네요.”
감자를 입안에서 굴려대며 맛있다고 말하는 강무혁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그럴 줄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최서율이 다 먹은 종이컵을 근처 상점의 쓰레기봉투에 휙 던져 넣고는 강무혁의 손을 이끌었다.
“이거도 먹어봐야 합니다. 진짜 맛있거든요.”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보니 저절로 지갑에 손이 가는 강무혁이었다.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즐비한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 귀여워 여기 있는 모든 걸 다 사주고 싶어졌기에 최서율의 지갑까지 열릴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는 꼬챙이에 얼기설기 엮인 채소 구이였다. 보통 축제 요리하면 소시지나 스테이크, 튀김류를 생각했던 강무혁은 이 마을이 토끼 마을이라는 걸 이런 부분에서 실감해야 했다. 닭고기꼬치 굽는 냄새가 나긴 했지만 최서율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강무혁의 손목을 붙잡고 달고나 상점, 전통 음료 상점 따위를 휘저으며 걸어 다녔다.
마을 한중간을 가로지르는 개천에 가까워졌을 무렵에는 강무혁의 손에 최서율이 마시다 만 수정과 컵과 먹다 말고 건넨 구운 채소 꼬치가 들려있었다. 어딘지 들뜨고 신나 보이는 최서율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짐꾼 역할을 자처했지만, 그보다 조금 더 강무혁을 민망하게 만든 건 최서율의 시중을 들고 있는 호랑이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이었다.
“다들 내가 호랑이인 걸 아는 모양입니다.”
“모를 리 없지 않습니까. 부사장님 이마에 호.랑.이라고 적혀있는데요.”
“그렇습니까?”
“네.”
“그런데도 쫓아내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제가… 같이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제 형제들이 이미 온 동네에 다 소문내고 다녔을 겁니다. 서율이가 서울에서 부사장이라는 호랑이를 데려왔다고.”
“그래요. 불행 중 다행이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강무혁의 얼굴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마에 호랑이라고 적혀있는 것 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저를 위해 수정과 컵을 들고 먹지도 않는 구운 채소 꼬치 따위를 쥐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아이러니하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남은 달고나를 입에 쏙 밀어 넣고 그의 손에서 수정과 컵과 꼬치를 뺏어 들고 다시 쓰레기봉투에 휙 던져버렸다. 강무혁과 맛있게 나눠 먹기 좋은 닭고기꼬치 집에 가려는 심산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강무혁이 손을 잡아끌었다.
“해 떨어집니다. 등불 보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맞다!”
정말 잊고 있었다는 듯 멈칫한 최서율이 다시 발을 빙글 돌려 강무혁의 너머로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강무혁이 저와 최서율을 바라보고 있는 어떤 이와 눈이 마주쳤다. 멀리 있어서 확실하진 않았지만,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후다닥 뒤돌아 도망가 버리는 걸 보니 기분이 영 찝찝했다.
최서율도 그렇게 도망쳐버리는 이의 존재를 봤는지 어… 하며 머뭇거렸다.
“누굽니까?”
“아, 그… 일산 쪽에 살던 형입니다. 어머니께서 저 형이 큰일을 겪고 고향으로 내려왔으니 저도 조심하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안 그래도 내려오면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왜 저렇게….”
“큰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만 말을 해주셔서요.”
“그렇습니까.”
강무혁이 그 형이라는 사람이 도망간 곳을 한 번 더 바라보곤 아직도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시선을 중간에서 잘라버렸다. 어깨를 감싸 방향을 잡아 주곤 이끌었다.
“가족들이 기다리겠습니다. 얼른 가죠.”
산봉우리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상점에 방울방울 예쁜 전등이 빛을 뽐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와 음악 소리 음식이 익어가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복잡하고 시끌벅적했지만 그만큼 즐거운 시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강무혁이 이끄는 대로 걷던 최서율이 어깨를 감싼 팔에서 빠져나오며 한발 물러났다. 그런 최서율을 바라보는 강무혁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툭, 떨어졌다.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얼른 손을 잡은 최서율이 손가락 틈으로 제 손을 밀어 넣으며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손잡고 걷고 싶습니다.”
“역시, 요망하다니까.”
강무혁을 밉지 않게 흘겨본 최서율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들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