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30/64)

29.

최서율은 아침부터 조금 정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몇 년 만에 고향에 내려가는 날이기도 했고,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무려 호랑이를 대동하고 가는 거니 그럴만했다. 새벽부터 잠을 설쳐대는 통에 해도 제대로 뜨지 않았는데 벌써 눈꺼풀이 무겁고 피로가 몰려오는 중이었다. 가족들에게 줄 선물과 며칠 묵을 짐을 챙겨 차에 실은 강무혁이 손을 탁탁 털어냈다. 트렁크 버튼을 눌러 문을 닫자 이제 정말 출발할 일만 남아있었다.

“긴장됩니까?”

“조금… 아니, 많이요. 엄청나게 긴장됩니다.”

“오랜만에 가려니까 긴장되는 겁니까. 나랑 가려니까 긴장되는 겁니까?”

강무혁이 최서율의 어깨를 감싸 조수석으로 이끌었다. 직접 문을 열고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봐주었다. 못해도 3시간은 가야 하니 편해야 했기에 시트를 하나씩 살필 수밖에 없었다. 벨트가 너무 조이지는 않는지, 발을 받치는 받침대의 높이가 잘 맞는지 확인했다.

“둘 다입니다.”

강무혁이 조수석에 앉은 최서율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괜찮을 겁니다.”

“네.”

최서율이 떨리는 숨을 내쉬며 힘없이 웃었다. 기운이 쭉 빠진 것으로 보이는 얼굴을 몇 번 더 쓰다듬은 강무혁이 문을 닫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도심을 벗어난 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무엇이 그렇게 걱정되는지 손을 가만히 두질 못하고 꼼지락거리는 최서율을 진정시키듯 강무혁이 운전석에서 손을 뻗어 왔다. 작고 말랑거리는 손바닥을 제 손안에 넣어 놓고 이리저리 굴려대며 만지작거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최서율 씨가 가족들에게 곤란해지도록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사실 그 부분이 걱정되기는 했다. 10년이 다 되어갔지만, 여전히 서울살이에 대해 부정적인 가족들에게 서울에서 만난 연인 그것도 호랑이 수인 강무혁을 내보이려니 걱정이 앞섰다. 고향의 산군 호랑이 할아버지가 가족들과 유대관계를 돈독히 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일이기에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한다고 해도 이해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가족들에게 소개하는 게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최서율이 그런 강무혁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수석 시트에서 아예 몸을 운전석으로 돌려 옆머리를 기댄 채 빤하게 바라보았다.

“왜 그럽니까.”

“저는 섭섭할 것 같습니다.”

“뭐가?”

“부사장님께서 저를 가족들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저는 섭섭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손등을 쓰다듬다가 들어 올려 제 얼굴 가까이 끌어당겼다. 손을 강무혁에게 내어준 최서율이 손등에 닿는 입술에 괜히 제 입술을 말아 물었다.

“우리 가족에게 인사할 기회가 된다면 나는 최서율 씨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할 겁니다. 호랑이를 본 토끼가 놀라겠지, 토끼를 본 호랑이가 놀랄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 가족에게 인사하는 건 조금 더 미루고 싶긴 합니다. 다들 최서율 씨를 귀여워할 텐데 그 꼴은 보고 있을 자신이 없네요.”

“부사장님도 참….”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헛기침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가족들을 상대로 질투심을 드러내는 호랑이가 좋으면서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탓이었다.

“오늘은 최서율 씨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겠습니다. 부사장으로 소개한다면 부사장으로 인사할 거고, 연인으로 소개한다면 연인으로 인사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않다고 해서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 앞에서 최서율 씨를 곤란하게 할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괜찮지 않은 마음은 나중에 충분히 받아 낼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최서율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방법으로 받아내겠다는 건지 강무혁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어 눈동자에 궁금증이 담겼지만, 힐끗 바라보며 눈을 맞추는 강무혁의 입꼬리가 알려주지 않겠다는 듯이 비틀려 올라간 걸 보니 아무래도 그때가 돼야 알겠구나 싶어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럼, 가족들 분위기를 보고, 제가 결정하고 말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강무혁이 최서율의 손등을 손끝으로 살살 굴려댔다. 살갗이 부드럽게 밀리고 그 위에 도드라진 뼈마디가 톡, 톡 걸렸다. 손을 내어주고 가만히 앉아 있는 눈은 매우 고요하게 강무혁에게 닿아있었지만,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터져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조차 되질 않았다. 어쩌면 꽁꽁 묶어두고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버리니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무혁은 계속해서 다 괜찮을 거란 듯이 손을 주었다. 힘없이 웃은 최서율이 잡은 손을 들어 올려 단단한 손등에 입술을 비볐다.

여린 살갗으로 느껴지는 연인의 단단함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속을 그득하게 채우는 호랑이의 냄새가 밀려드는 불안 따위는 그를 향해 차오른 감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안심되었다.

* * *

토끼마을은 말 그대로 첩첩산중에 있는지 찾아가기가 꽤 어려웠다.

도심을 벗어나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한적한 국도로 빠졌다. 산길에 접어들고 나니 점점 지나가는 차의 수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산을 두어 개 넘고서야 간신히 평지를 달릴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산을 올라야 했는데 높이가 만만치 않아 정상을 지날 즘에는 귀가 먹먹했다.

어느 지점부터는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질 않았다. 먼저 나서서 내비게이션을 꺼버린 최서율이 멋쩍게 웃으며 이제부터는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갈림길을 여러 개 지나고 나니 포장된 도로가 아닌 길이 나타났다. 오래전에 깔린 듯 울퉁불퉁한 시멘트가 멋대로 발린 길이었는데 차체가 매우 심하게 덜컹덜컹 흔들렸다. 강무혁의 눈썹이 절로 구겨졌다. 자연스럽게 조수석으로 팔을 뻗어 최서율의 몸이 너무 많이 흔들리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두꺼운 팔뚝이 몸을 막아주는 안정감이 좋아 괜히 그 팔만 만지작거렸다.

길이 아닌 것 같은 길을 한참 내달렸다. 외부와 토끼 마을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무혁은 이 정도나 되니 오랫동안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겠다고 생각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달리다가 산꼭대기에서 골짜기 사이가 훤히 보이는 지점이 되자 최서율이 아…! 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강무혁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을에 내심 놀라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높은 산들이 겹겹이 모여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낸 그 지점에 마을이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 새벽부터 움직였는데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마을을 발견했으니 좀 먼 정도가 아니었다. 몇 년 동안 집에 가지 못했다더니 이 정도면 1년에 한 번 오기도 쉽지 않았겠다고 생각했다.

“내려서 좀 보고 가겠습니까?”

“그래도 됩니까?”

“안 될 거 없지.”

불안해할 때는 언제고 마을이 보이기 무섭게 어깨를 들썩이며 기뻐하는 최서율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진다고 종알거린 최서율이 옆에 선 강무혁의 허리로 두 팔을 감고 가슴에 기댔다.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여름이 아닌 것처럼 서늘했다. 최서율의 어깨를 감싸 안은 강무혁이 고개를 내렸다. 당연하다는 듯이 발끝을 세워 호랑이의 코에 제 코를 맞대었다.

“부사장님, 제 고향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예쁩니다. 현실적이지 않아서 더 그렇게 와닿네요.”

토끼를 만나 사랑에 빠지리라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허무맹랑하게 떠도는 토끼마을을 직접 보고 있다는 게 현실감을 더욱 떨어트렸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였지만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길을 제외하고는 산속에 둘러싸인 요새 같은 마을이었다.

“다른 외부인은 아예 들어오질 않습니까?”

“들어와도 금세 쫓겨납니다. 이 산과 토끼마을을 지키는 산군 호랑이 족은, 호랑이 수인 중에서도 용맹하고 무섭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이제 이 아래로 내려가면 호랑이 수인이 사는 마을을 먼저 통과해야 하는데 다들 거기서 돌아가곤 합니다.”

강무혁이 열심히 움직여대는 최서율의 입술을 입에 물고 쪽 빨아당겼다. 고개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가슴팍에 기대며 혀를 할짝거리는 토끼의 어깨를 꽉 끌어안고 입술을 맞물렸다.

이 지역 산군 호랑이 가족은 폐쇄적이고, 공격적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었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호랑이는 그 위엄이 몇 배는 커지는 법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그것도 수장에게 겁도 없이 찾아가겠다고 통보했으니 어떤 마음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었다.

“토끼 마을 보려면 호랑이 마을부터 뚫어야 한다는 거군요.”

“아, 제가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저 이래 봬도 마을에서 꽤 유명하거든요.”

“왜요. 서울에 살아서? 아니면 촌장님의 다섯째 아들이라?”

“둘 다….”

“이렇게 엄청난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최서율 대리님.”

강무혁이 최서율의 콧대를 톡톡 두드렸다.

“저만 서울에 사는 건 아닌데… 제가 촌장 아들이라 조금 더 유명합니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겁내지 말고 이만 갈까요? 다들 기다리실 텐데.”

“네!”

차에 올라탄 최서율이 처음처럼 긴장한 듯 등을 빳빳하게 펴고 길을 살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소리 없이 웃은 강무혁을 알아차리고 왜 웃냐며 볼멘소리를 냈지만, 마치 사유지 표시같이 생긴 거대한 입구에 다다랐을 때부터는 작은 웃음도 제대로 짓지 못하는 최서율이었다.

호랑이 마을을 빠져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수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안내만 받았을 뿐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서울의 산을 지키는 호랑이 가문은 호랑이 수인 중에서도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대외 활동을 하지 않고 고립되어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가문의 둘째 아들 강무혁을 모를 리 없었다.

마을은 보통의 시골 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초가집이나 기와집이 있을 것처럼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마을을 상상했던 강무혁은 현대식 주택들과 건물이 즐비한 마을을 흥미로운 눈으로 탐색했다. 최서율이 도대체 우리 마을을 뭐로 안거냐고 항의했지만, 강무혁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조선 시대쯤에 머물러 있을 거로 생각했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택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큰 한옥 앞에 차를 멈춘 강무혁이 최서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저희, 집… 입니다.”

최서율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얼마만큼 긴장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손을 잡고 몇 번 주물럭거렸다. 강무혁이 토끼에게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호랑이의 냄새를 확인하곤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리죠. 부모님께서 기다리겠습니다.”

“네.”

호랑이 마을에서 연락을 받았는지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한옥의 대문이 열렸다. 이미 형제들까지 모두 와서 최서율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강무혁의 차 옆에는 연식이 오래된 차와 오토바이, 자전거 따위가 즐비해 있었다.

“서율아!”

“엄마!”

문을 열고 나온 여인이 최서율을 향해 달려왔다. 차 문도 제대로 닫지 못하고 뛰어내린 최서율도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감격스러운 모자 상봉을 시작으로 가족들이 줄줄이 떼를 지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버지, 쌍둥이인 큰형과 둘째 형, 큰누나, 또 그다음 형, 그다음에는 동생 그들의 아내, 남편, 조카…. 줄줄이 나타나는 가족들의 숫자에 옆에 서 있던 강무혁이 헛기침을 했다. 알고 있었지만, 그 숫자가 이 집에서 다 나왔다고는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그마한 최서율과 다르게 덩치가 좋은 형과 동생들도 있었고, 체구가 비슷한 형제도 있었다. 키가 훨씬 큰 최서율의 큰누나는 얼굴이 최서율과 똑 닮아 있었다. 그런 가족들의 가장 뒤에서 나이대를 가늠하기 힘든 영감 하나가 강무혁과 눈을 마주하며 손짓했다.

그가 이 지역 산군 호랑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허허. 범진그룹 작은아들이 나를 찾아오겠다고 해서 기대했더니, 우리 귀한 토끼를 홀랑 잡아먹었구먼?”

“하하하… 눈치채셨습니까? 그런데 제가 잡아먹은 게 아니라, 토끼가 저를 잡아먹었습니다.”

“넉살은… 들어가세. 저 가족들 인사하려면 해 저물어.”

“네. 모시겠습니다.”

강무혁이 최서율보다 먼저 한옥의 대문을 넘었다. 영감은 깍듯하게 대하는 강무혁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종일관 허허 웃으며 마치 이 집이 자기 집이라도 되는 듯 대청마루에 자리를 펴고 앉아 강무혁에게 차를 건넸다.

“토끼 마을에 온 또 다른 산군 호랑이는 자네가 처음일세.”

“영광입니다. 다른 설명 없이도 바로 눈치채 주셔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온다고 할 때부터 내 이상하긴 했지. 오라고 말해놓고 며칠 고민도 많이 했다네. 서율이가 누구를 데리고 온다면 반려겠거니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정말 이었구먼?”

한여름에 뜨거운 차는 호랑이에게 쥐약과도 같았다. 그런 습성을 잘 알기에 커다란 주전자에 얼음을 가득 넣고 우려낸 차를 담은 영감이 휘휘 저어대며 강무혁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부친은 안녕하신가?”

“네, 잘 지내고 계십니다.”

“예끼! 잘 지내긴, 범진그룹 수인 사원이 납치 미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걸 우리가 다 아는데… 이래서 자식새끼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아비는 밤낮으로 그 일에 마음을 쓰는 것 같더구먼. 자식은 자기 짝꿍 집에 인사나 한다고 토끼 마을까지 찾아와서 칠렐레팔렐레하고 있으니… 쯧쯧….”

호통치는 영감을 보고도 강무혁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진 못했지만, 수장들의 친분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제 탓이 크니 말을 아끼는 것이 득이라 생각했다. 이보다 더 긴밀한 일이 있었지만 그건 나중에 알게 되어도 될 일이었으니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내 자네가 온다고 말은 해두었네. 서율이 상사라고 토끼 수인을 보호해줄 산군 호랑이라는 정도만 말해두었으니 나머지는 자네가 알아서 하게나.”

“감사합니다. 어르신.”

말을 마치기 무섭게 토끼 가족들이 우르르 대문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서율은 조금 울었는지 눈가가 벌겋게 부어있었다.

“하라버지! 삼촌한테 호랭이 냄새가 난대요!”

“우리 삼촌 멋있죠!!”

최서율의 조카로 보이는 아이 둘이 귀에 토끼 귀를 달고 마구 쫑긋거리며 산군 호랑이를 향해 달려왔다. 손을 뻗은 영감이 두 아이를 덥석 받아 안고 그래? 어디서 호랑이를 달고 왔나? 하며 강무혁을 힐끗거렸다.

능청스러운 영감의 말에 강무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잡았다.

“안녕하십니다. 범진그룹 부사장 강무혁입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강무혁을 향해 가족들이 주춤주춤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왜 같이 왔냐고 최서율의 귓가에 대고 묻는 말이 강무혁의 귀에도 다 들릴 정도였다.

“반가워요. 나 최서율이 아비 되는 사람이올시다.”

손을 내미는 어르신은 최서율과 다르게 키가 컸고, 나이 든 토끼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어깨가 다부졌다. 그 옆에 선 여인이야말로 최서율을 낳았다는 걸 생김새로 증명하는 듯이 아주 비슷한 얼굴을 하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강무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문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끼 마을 촌장이라는 최서율의 아버지의 손을 맞잡은 강무혁이 허리를 숙여 깍듯하게 인사했다. 형제들 사이에 있던 최서율이 빠르게 다가와 강무혁의 옆에 섰다.

“우리 부사장님이, 내가 토끼인 거 알면서도 비밀도 지켜주시고, 또… 어, 그게….”

“최서율 씨. 내가 말하겠습니다. 괜찮아요.”

강무혁이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정시키며 팔을 토닥였다. 뭐가 그렇게 다급한지 가슴팍을 씨근거리던 최서율이 그 손길에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선 토끼 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그 꼴을 바라보다가 비슷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형제들을 향해 휘휘 손을 내저었다.

“어서 나가서 축제 준비 안 돕니? 각자 할 일이 있는데 가서 일하고 서율이랑은 저녁 먹을 때 다시 인사해라!”

구시렁거린 형제들이 각자 제 할 일을 위해 흩어졌다. 촌장의 자식들답게 마을 축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했으니 인사한다고 비운 자리를 어서 채워야 했다.

어린 조카들만이 한옥의 마당을 뛰어다니며 오랜만에 혹은 처음 보는 제 삼촌과 호랑이 어른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동물화를 조절하지 못해 귀가 튀어나와 있거나 꼬리가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라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모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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