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9/64)

28.

고향에 가는 날이 다가오자 마음이 들떠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에 나섰다가 부모님과 형제들 조카들을 위한 선물까지 바리바리 사 들고 귀가했을 때는 거의 탈진 직전이었다. 그러기에 같이 가자니까 고집을 부린다며 짐을 옮겨 주던 강무혁이 한숨처럼 웃어버렸다. 최서율은 힘들어 보였지만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고 활짝 웃었다.

그다음 날에는 먼저 퇴근한 강무혁이 쇼핑을 잔뜩 해서 돌아왔다. 최서율이 사놓은 선물에 제 선물까지 보탤 요량이었다. 짐을 함께 옮겨 주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백화점 직원이라는 걸 알고 역시 부자…! 라고 말했다가 강무혁에게 꿀밤을 맞아야 했다.

차곡차곡 쌓이는 물건을 보다가 어느 순간엔가 이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무혁이 괜찮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부사장님, 이거 너무 많은 거 같습니다.”

“이미 값을 지불하고 산 물건을 다시 돌려보내는 것도 할 짓이 못되고, 우리가 집에서 쓰기에도 딱히 필요한 물건이 아니니 가져가는 걸로 하죠.”

“그렇지만….”

“첫 방문인데 빈손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애인의 고향에 방문하는 건데.”

거실 한편에 한가득 쌓여있는 물건은 명품가방부터 아기들 장난감까지 성별과 연령대를 생각하여 꼼꼼하게 고른 티가 나는 물건들이었다. 제가 산 것도 값이 꽤 나가는 것이 많았는데 그와 비교하니 아주 볼품없어 보일 정도라 진땀이 흘렀다.

최서율이 사 온 건강 보조제까지 옮겨 놓고 나니 거실이 마치 선물 가게라도 된 것처럼 한가득 들어찼다. 옮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과하다 싶었다. 그래도 강무혁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그저 선물들을 만지작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얼추 준비는 끝난 것 같네요.”

“네. 덕분에 정말 두 손이 무겁게 갈 수 있게 되었어요.”

웃음기가 가득 묻은 얼굴을 쓰다듬은 강무혁도 덩달아 웃었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걸 보니 가족들을 위한 선물 말고 최서율을 위해 좋은 건 다 사서 손에 쥐여주고 싶어졌다. 선물을 받아 들고 행복하게 웃을 얼굴을 생각하면 벌써 기분이 좋았다.

“이리 와요. 산에 가야 합니다.”

강무혁이 손을 뻗자 최서율이 들뜬 발걸음으로 달려가 손을 맞잡았다.

“네!”

그간 나흘이나 산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평일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산을 오르내린 강무혁이었다. 산에 새로운 짐승은 없는지, 태어난 아기들은 잘 자라고 있는지, 그들의 보금자리를 사람들이 파헤쳐 놓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폈고 장마에 무너진 굴을 보수하는 산짐승들이 혹시 먹잇감을 찾지 못해 고생하고 있는지 파악했다.

아직도 산군 호랑이와 친해지지 못한 작은 동물들은 최서율이 돌보았다. 이미 호랑이굴에 사는 토끼로 산짐승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기에 산군 호랑이의

정령쯤으로 인식하는지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거나, 공격하는 동물은 없었다.

장맛비가 산을 흠뻑 적시고 먹을만한 열매를 쓸어간 덕분에 먹이를 찾기 어려워진 작은 동물을 위해 최서율은, 창고에 넣어둔 열매를 한가득 짊어지고 산을 뛰어다녔다. 다리가 아파하면 산에 다녀오고 난 후에 직접 발과 다리를 주물러주는 호랑이가 있었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산군 호랑이의 일을 거들었다.

처음 강무혁이 제안했던 일을 이제는 약속 때문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 돕는 중이라 힘들다고 칭얼거리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산짐승의 굴 앞에 먹이를 놓고 돌아설 때면 기분이 좋아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졌다.

보송보송한 털을 휘날리는 갈색 토끼가 강무혁의 손을 잡고 낑낑거렸다. 통통한 뒷발로 바닥을 밀며 커다란 손에 매달리려 안간힘을 쓰는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고, 턱을 간질인 강무혁이 토끼의 작은 코에 입술을 비볐다.

폴짝 뛰어올라 강무혁의 다리 사이로 올라간 토끼가 허벅지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배를 감싸고 있는 흰색에 가까운 옅은 빛의 털을 쓰다듬은 강무혁이 토끼의 앞발을 잡아 살살 문지르며 옆에 내려 둔 보자기 꾸러미를 들어 올렸다.

작은 보자기에 담긴 말린 도토리와 알밤이 떨어지지 않도록 꼼꼼히 동여맸다.

“등.”

말하기 무섭게 강무혁의 다리 위에 드러누워 있던 토끼가 바닥으로 내려와 몇 번 깡충거렸다. 자연스럽게 등을 내보인 토끼의 몸에 보자기를 묶어 주었다.

오늘은 장성해 독립한 다람쥐 형제들에게 먹이를 전달하기로 했다. 작은 몸에 보자기를 묶고 귀를 잡아 내려 그루밍하는 걸 보던 강무혁이 그런 토끼가 귀여워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번쩍 들어 올려 입을 쩍 벌리고 토끼의 주둥이를 입안 가득 물었다.

“꺄!!”

허공에 달랑거리던 뒷발을 뻥뻥 차대며 하지 말라는 듯 버둥거리는 토끼를 힘주어 잡고 축축하게 젖은 코와 주둥이에 잔뜩 뽀뽀해댔다. 호랑이 냄새가 잔뜩 묻은 토끼가 코를 적신 침을 닦아내듯 앙증맞은 앞발로 코를 마구 비벼댔다.

“열매를 던져주고 사슴 골로 와요. 거기서 기다리겠습니다.”

“…….”

“알겠으면 낑. 해야지.”

“낑….”

코를 꼼질 거리는 토끼를 안아 쓰다듬은 강무혁이 산과 연결되는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최서율이 안전하게 청계산을 뛰어다닐 수 있는 이유는 강무혁의 냄새를 잔뜩 묻혀 놓았기 때문이었다. 감히 산군 호랑이의 짝꿍을 건드릴 간 큰 동물은 산에 존재하지 않았다.

얼른 뛰어다니고 싶은지 발을 꼼질 거리는 토끼를 바닥에 내려주고 엉덩이를 툭툭 쳐주자 잠깐 뒤돌아보았던 토끼가 폴짝폴짝 뛰어 숲길을 달려 나갔다. 보자기를 등에 메고 깡충깡충 뛰어가는 토끼를 사진으로 찍어 남겨둘까.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그랬다간 최서율이 난동을 부릴 테니 참기로 했다.

최서율이 산과 연결된 길 너머로 사라지고 난 후 강무혁이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여름의 산에는 청량하고, 시원한 냄새가 가득했다.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뒷문 나무틀에 걸쳐 놓은 강무혁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순식간에 호랑이의 두툼한 앞발이 땅에 닿았다. 입을 쩍 벌린 호랑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길게 기지개 켰다. 이내 목을 풀 듯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내리자 천둥 같은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포효하는 호랑이의 소리가 산을 울렸다. 산군 호랑이가 산을 둘러보기 위해 행차한다는 신호와도 같은 울음소리에 나뭇가지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산 새들이 놀라 퍼드덕 날갯짓을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자기 위치를 알리듯 울어대는 산짐승들의 소리가 요란해졌다.

다람쥐 형제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던 토끼가 멈칫했다. 본능적으로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토끼가 잠시 멈춰 앞발을 핥고, 귀를 잡아 내려 쓰다듬었다. 작은 심장이 도곤도곤 뛰어댔다. 소리의 근원이 강무혁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 번씩 이렇게 심장이 떨어졌다 오르곤 했다. 도무지 적응되질 않는 소리였다.

“낑!”

다람쥐 형제들에게 도토리와 알밤을 털어주고 보자기를 입에 물고 신나게 달려 골자기 깊은 곳에 숨어있는 사슴 골에 도착했다. 저를 기다린 듯 바위에 엎드려있는 호랑이를 보자 반가운지, 무서운지 폴짝 뛰며 소리를 내는 토끼였다.

호랑이의 코앞까지 다가간 토끼가 눈을 감고 있는 호랑이를 깨우듯 앞발로 붉은빛이 맴도는 커다란 코를 톡톡 두드렸다. 호랑이가 눈을 뜨자 형형한 색을 빛내는 노란 동공과 마주했지만, 토끼는 물러서지 않았다. 작은 콧방울을 코에 맞추며 인사하듯 다시 삐융. 하고 울었다.

그런 토끼를 앞발로 낚아채듯 감싸 안은 호랑이가 하얀 털과 검은 주름선이 선명한 제 가슴팍에 토끼를 밀어 넣고 한참을 혀로 핥았다.

품에서 꿈틀꿈틀 몸을 비비 꼬던 토끼가 두꺼운 앞발을 배고 벌렁 드러누웠다. 크릉. 소리를 내며 뜨거운 콧김을 뿜어낸 호랑이의 혀가 색이 옅은 배의 털을 헤치고 아래부터 위로 꼼꼼히 쓸어댔다.

코를 토끼의 배에 묻고 토끼가 다녀온 길을 가늠하듯 냄새를 맡아대는 호랑이였다. 간지러운 감촉에 토끼가 버둥거렸지만, 쉽게 놓아주질 않았다. 마음껏 냄새를 맡아댄 호랑이가 고개를 들자 배가 축축해진 토끼가 색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꼼질 거리는 코를 기다란 혀로 핥자 앞발을 허공에 탁탁탁 휘둘러보는 토끼였다. 그러다가 별안간 튕기듯 벌떡 일어나 작은 혀를 내밀고 호랑이의 얼굴을 삭삭 핥기 시작했다. 토끼에게 얼굴을 내어준 호랑이의 꼬리가 허공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 * *

막상 출발하기 직전이 되니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오는 손님을 반기지 않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으니 어머니에게 친구를 데리고 간다고 할 수도 없었고, 토끼 수인이 아닌 다른 종을 애인이라고 떡하니 데려가 인사시키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말고 강무혁이 핸드폰을 들고 왔다. 어디로 전화를 하기 위해 열심히 화면을 뒤적거리더니 금세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곤 누구냐고 물으려던 최서율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청계산 호랑이 강무혁이라고 합니다.”

허허. 웃어대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귀를 쫑긋 세운 최서율이 궁금하단 눈으로 강무혁을 빤하게 바라보았다.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걸 알아차리곤 눈을 크게 키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사에 토끼 수인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토끼 수인이 어르신이 계시는 산마을에 산다고 하던데 혹, 최서율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최서율이 다급히 강무혁의 팔을 잡았다. 고개를 내저으며 안 된다고 신호를 보냈지만, 몸을 뒤로 빼낸 강무혁이 괜찮다는 듯이 손을 잡고 토닥였다.

“네, 네. 자세한 사항은 찾아뵙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주에 토끼 마을에 축제가 있다고 하여 제가 동행할 생각입니다. 괜찮다면 토끼 마을에 최서율 씨를 내려주고 산으로 올라가 직접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최서율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무혁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너무도 익숙하고, 그리웠던 사람의 목소리였다. 입술이 비죽, 앞으로 튀어나왔다.

“아, 그러십니까? 네. 그럼 촌장님 댁에서 인사받으시죠.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까지 깍듯하게 예의를 차린 목소리와 말투를 고수하던 강무혁이 전화를 끊고 최서율을 바라보았다.

“최서율 씨를 아주 잘 안다고 하던데, 산군 호랑이 어르신과 친합니까?”

“당연히 친합니다. 제가 서울에 올 수 있도록 부모님을 설득해주신 분이니까요.”

“축제 때문에 마을에 내려와 계셔서 토끼 마을 촌장님 댁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아….”

고개를 끄덕인 최서율이 할 말이 있는 듯 반질반질한 눈동자를 위로 올려 떴다. 강무혁이 봉긋하게 올라붙은 동그란 볼과 앞으로 조금 튀어나와 있는 입술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촌장님 댁이 어딘지는 알고 있습니까? 최서율 씨를 집에 내려주고, 혼자 찾아가 먼저 어르신을 뵙는 게 낫겠다고 생각되는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잘됐네요.”

“…촌장님 댁이 우리 집이거든요.”

강무혁이 최서율의 볼을 가지고 놀던 손을 멈추고 시선을 맞췄다. 훤한 이마에 주름이 지고, 수려하게 뻗은 눈썹이 꿈틀거리는 걸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그러니까… 제가 그 촌장님의 유명한 다섯째 아들이… 되는 거네요? 하핫.”

씰룩거리는 토끼의 볼을 콱 꼬집듯 잡은 강무혁이 자그마한 얼굴을 제 앞으로 쭉 잡아당겼다. 아프다고 울상 지으며 뭉개진 입술을 단단한 앞니로 깨물곤 크르릉. 무서운 소리를 냈다. 등을 흠칫거리며 강무혁을 밀어내던 최서율이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게 또 있으면 빨리 말해요. 사람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지 말고.”

“으으… 어쓰니다. 어써요.”

“진짜 없습니까?”

“지짜로, 어쓰니다아…!”

아프게 잡은 것도 아닌데 엄살을 떨어대던 최서율이 그대로 입 맞추는 강무혁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아랫입술이 얼얼하도록 물더니 이제는 그 위를 달래듯 혀로 살살 핥아 올리는 감촉이 화도 내지 못할 만큼 달고, 부드러워 조금 억울해졌다.

“제가 촌장님 아들인 게 싫어서 그러십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항상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엄청난 걸 터트리니까 하는 말이지.”

강무혁의 어깨를 밀어 떨어져나온 최서율이 얼얼한 볼을 문지르며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리곤 휙 돌아누웠다.

“그냥 웃고 넘어가면 되지… 볼도 꼬집고….”

“아프게 꼬집은 거 아닌 거로 아는데요.”

“그래도 호랑이가 토끼를 꼬집는 건 반칙입니다.”

“그래요. 내가 또 잘못했네.”

옆에 누워 몸을 꼭 끌어안은 강무혁이 최서율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비죽비죽 한참을 구시렁거리다가 팔 안에서 몸을 돌려 몸을 마주했다. 말없이 저를 바라보는 눈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우뚝한 콧대에 입술을 내리곤 살살 비벼댔다.

작은 일에도 발끈하고 심통 난 듯이 구는 저를 다 받아주는 강무혁이 누구보다 너른 가슴을 가지고,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놀란 마음에 불퉁거렸지만, 그런 저를 질책하지 않고 안아주는 품이 좋았다.

“그래도 같이 가주신다고 해서 좋았습니다.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지도 않고 덥석 같이 가겠다고 말할 만큼 좋았고, 고마웠습니다. 부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올해도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저는 부사장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모든 걸 보여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

“앞으로 저를 더 많이 아껴주고, 예뻐해 주십시오. 저도 부사장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드리겠습니다.”

“듣기 좋은 말이네요.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겠다니.”

부모님께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간지러운 말을 해주는 연인을 보는 강무혁의 눈에 달콤한 꿀이 한 바가지 차올랐다. 왜 사랑을 하면 세상이 달콤하게 보인다고 말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이마를 맞대고 작게 웃었다. 그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히고, 볼이 동그랗게 올라붙고, 입술이 움쭉거리는 모습이 어여뻤다.

“사실 앞으로도 내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천 개쯤은 더 있다고 해도 다 봐줄 수 있습니다.”

“푸흡. 그런 거 없습니다. 이제 진짜 없어요.”

뒷머리를 잡아 내리자 주저 없이 입술을 맞춰오는 제 토끼의 앙큼함과 깜찍함에 기분이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산에 나무를 모조리 다 뽑아 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강무혁의 어깨를 누르며 단단한 가슴팍에 제 팔을 올려 무게를 실은 최서율이 작은 입술을 열심히 움직여 강무혁의 혀를 쪽쪽 빨아당겼다. 키스에 집중한 최서율의 얼굴을 보고 싶어 눈을 뜬 강무혁이 집중한 미간을 보고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모든 일에 마음을 다해 열심히 하는 제 연인은 키스도 이렇게 자기처럼 열심히 했다. 애정으로 가득해진 가슴이 둥둥 떠올랐다.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옅은 웃음에 맞붙었던 입술을 떼어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음이 만연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하죠.”

멀뚱히 내려 보는 볼을 두 손으로 붙잡고 퉁퉁 부어오른 입술을 한입에 쏙 물었다. 최서율의 입이 마치 꽃봉오리 안에 있는 꿀단지 같았다. 닿는 곳마다 달지 않은 곳이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