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4/64)

13.

제 것이 아닌 침구의 감촉에 눈을 뜬 최서율이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쏟아져 드는 달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보름인가…. 왜 이렇게 달빛이 밝은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몸을 몇 번 뒤척였다. 다리가 뻐근한 걸 보니 낮에 열심히 뛰었던 여파가 몰려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 더 몸을 뒤집어 대던 최서율이 커튼을 칠 생각으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밝은 달빛 때문인지 정원과 주변을 감싼 어두컴컴한 산이 훤하게 보였다. 눈이 나쁜 편이 아니어서 사물을 제대로 식별할 수 있으면 멀리 있는 것도 곧잘 보는 최서율이 정원에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고 갸웃거렸다.

침대에 앉아있던 터라 그 그림자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몸을 일으켜야 했지만 어쩐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멈칫했다.

“크릉-.”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듯한 호랑이의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소리 높여 외치는 울음소리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평소 부사장이 장난처럼 내는 그릉거리는 소리와는 또 달랐다. 토끼가 가만히 있어도 숨을 색색- 내쉬며 코를 실룩거리는 것과 같은 종류였다.

심장이 쾅쾅거리며 뛰어댔다. 일어나 직접 그 광경을 보고 싶은 호기심과 가슴이 다 녹아내릴 것 같은 두려움이 동시에 일었다. 다시 몸을 눕히고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달빛을 받은 호랑이의 빛나는 털을 보면 그대로 기절하진 않을까. 강무혁과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가 범의 기운을 비추기만 해도 다리에 힘이 풀렸던 제가 아닌가.

이불자락을 부여잡고 한참 꼼지락거리던 최서율이 두근두근 날뛰는 심장을 누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훔쳐보기로 했다. 호랑이 강무혁은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을 못이겨 결정하고 나니 다리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창문을 반쯤 덮고 있던 커튼을 붙잡고 슬쩍 밀었다. 낮에 제가 뛰놀던 정원을 어슬렁거리는 호랑이의 커다란 몸집에 눈이 커다래졌다.

“힉.”

놀란 숨이 쉰 소리를 내며 터져 나왔다. 얼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인간일 때 제 몸보다도 커다란 호랑이가 정원을 거닐며 잔디를 고르고, 나무에 몸을 비벼댔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일하고, 다정하게 손을 잡아 주었던 이는 저렇게나 커다랗고, 위협적인 몸을 가진 호랑이였다.

심장이 발치로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빈자리에 새콤하고, 달콤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제가 가지지 못한 덩치를 가지고 제가 누리지 못하는 걸 누리며 사는 그의 삶 속에 발을 디뎠다는 희열이 들끓었다.

아랫배로 뭉근하고, 질척한 감각이 피어올랐고 꼬리뼈 부근이 간질거렸다. 낯선 감각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자꾸만 몸이 떨렸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쓸어 주었던 귓가와 볼, 턱, 목덜미가 홧홧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저를 봐달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에 손끝이 떨렸다. 아주 쓸데없고, 아주 비틀린 호기심 때문에 몸이 달았다.

정원 구석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그림처럼 앉아있는 호랑이의 털을 만져보고 싶었다. 그의 얼굴로 쏟아지는 달빛이 형형하게 빛나는 눈을 더욱 반짝거리게 했다. 잇새로 혀를 밀어 넣고 꾹 눌렀다.

지금 나가면 종일 참고 있던 강무혁의 휴식을 방해하는 꼴이 될 거였고,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기에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내달리는 심장을 달래며 커튼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는 생각에 차갑게 식은 창문을 손바닥으로 더듬는 순간, 호랑이의 시선이 제게로 향하는 듯 움직였다. 숨을 곳도 없이 완벽하게 노출된 최서율이 헛숨을 삼켰다. 둥그렇게 떠진 눈이 번쩍 빛나는 눈과 정통으로 마주했다.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이 온몸을 감쌌다. 부여잡은 커튼을 뜯어낼 듯 힘을 주던 최서율이 입술을 아프도록 깨물었다.

컴컴한 밤, 산중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뚫고 어슬렁거리며 저를 향해 오려는 듯 몸을 돌리는 호랑이를 바라보던 최서율이 그대로 굳은 듯 멈춰 그런 호랑이의 움직임을 하나씩 뜯어보듯 바라보았다. 육중한 몸이 돌계단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흐…!”

도망갈 새도 없이 창문 앞으로 달려온 호랑이와 마주친 순간 비명도 지르지 못한 최서율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커다란 두 눈에 들어찬 두려움을 집요하게 살피듯 섬광이 비치는 눈동자가 시선을 맞춰왔다.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호랑이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크릉. 낮게 울리는 범의 울음소리에 다시 부르르 몸을 떤 최서율이 마른침을 삼켰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짓눌려 있던 손을 들어 올려 호랑이의 얼굴을 만져보려는 듯 차가워진 창문에 손끝을 댔다. 미처 피하지 못한 눈이 호랑이와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덜컥거렸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어려운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황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깊은 산속의 서늘한 밤기운을 머금은 유리창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그 찬 기운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유리창을 살살 더듬거렸다. 마치 호랑이를 만지고 있는 듯한 착각에 정신이 아득해질 즘, 보슬보슬한 털로 감싸인 둥그렇고, 커다란 발이 바닥을 굴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호랑이가 최서율의 손바닥 위로 이마를 맞대었다.

“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다.

입술을 깨문 최서율이 차갑게 식은 유리창에서 손을 떼자 그 온기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 위를 손가락으로 쓱, 쓱 문질렀다. 최서율의 의미 없는 행동을 바라보던 호랑이가 몸을 돌렸다. 네 발이 차례차례 땅을 디디고, 근육이 꿈틀거리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매끈한 털이 나풀거리며 반짝거렸고, 그 몸에 어울리는 길고 두꺼운 꼬리가 허공에 살랑, 흔들렸다.

뒤이어 쿵. 정원 쪽 거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커튼 자락을 만지작거리던 최서율이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창문에 몸을 기댔다.

어릴 적 고향에서 보았던 산군 호랑이 할아버지와는 확연히 다른 강무혁의 위용에 기가 죽은 듯 힘없이 무너지는 어깨를 아래로 늘어트렸다.

일어나 침대로 올라 푹신한 이불에 몸을 파묻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최서율이 힘이 들어가지 않은 자그마한 주먹으로 다리를 퉁퉁 두드렸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거실을 밝힌 환한 불빛이 방안으로 쏟아 들었다. 빛을 등진 이가 가만히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최서율이 창문을 짚고 휘청이며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 습니다….”

“왜 안 자고 일어났습니까.”

“그냥… 깼습니다.”

다가오는 강무혁의 시선에서 벗어날 틈이 없었다. 바닥에 맨발이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데 귓가가 간지러웠다. 최서율이 손을 들어 귀 뒤를 살살 긁었다.

“호랑이 직접 본 소감은?”

“그게… 좀, 얼떨떨하고… 무섭기도 하고… 멋있기도… 했습니다.”

“그 호랑이 영감보다?”

둥그렇게 눈을 뜬 최서율이 고개를 들어 강무혁과 시선을 마주했다. 역시 신경 쓰고 있었구나… 속이 훤히 보이는 호랑이의 말에 눈치도 없이 입꼬리가 쑥 올라갔다. 빛을 등진 강무혁과 다르게 빛을 머금은 최서율의 눈동자가 반질반질 어여쁜 빛으로 반짝거렸다.

“네.”

망설임 없이 대답한 최서율이 다시 귓가를 만지작거렸다.

밤이면 청각이 더욱 예민해지곤 했다. 동물의 특성을 고스란히 받아 발달한 수인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왜 이렇게 귓가가 근지러운지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손톱을 세워야 했다.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던 강무혁이 귓가를 긁고 있는 최서율의 손을 잡았다.

“상처 나겠습니다.”

“아, 그… 괜찮습니다.”

보일러가 돌아가는 방 안이 따뜻했지만 더울 정도는 아니었다. 불에 델 듯 뜨거운 체온이 손에 닿기 무섭게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호랑이를 보았을 때 느꼈던 저릿한 감각이 허리를 치고 올라왔다. 최서율이 숨을 삼키는 동안 손을 잡아 쥔 강무혁이 귓가를 스치듯 톡, 건드렸다. 불꽃이라도 튄 듯 여린 살갗이 따끔거렸다.

단전부터 달아오른 숨이 터져 나오는 순간 몸을 앞으로 기울인 강무혁이 허리를 숙여 눈을 맞췄다. 미처 삼키지 못한 달큼한 숨이 강무혁의 얼굴에 닿고 주변으로 퍼졌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강무혁의 눈을 바라보던 최서율은 이대로 저 눈 속으로 끌려들어 갈 것 같다는 착각에 잠겨 눈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멈추어있었다.

“왜 이런 냄새가 나지?”

“네?”

“왜 이렇게, 달콤하고… 진한….”

“저한테… 그런 냄새가 납니까?”

“네.”

조금 더 앞으로 다가온 강무혁이 바짝 긴장한 최서율의 귓가에 입술을 댔다. 숨을 흡. 하고 참자 가슴팍이 아주 얕게 솟아올랐다.

잡은 손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까지 미처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기류에 모든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귓가에 닿은 강무혁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 심장을 쥐어 잡고 비트는 것 같아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할지 까먹은 사람처럼 헐떡일 수밖에 없었다.

촘촘하게 솜털이 올라온 귓바퀴와 안쪽의 작은 홈에 입술이 닿았다.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나는 최서율의 손을 힘주어 잡은 강무혁이 귓불을 입술로 물었다 놓았다.

소름이 돋아 오르고, 등줄기로 아프도록 저렸다. 흐… 연약한 짐승의 흐느낌에 강무혁의 눈으로 푸른 섬광이 스쳤다.

“부사장, 님….”

“쉿, 괜찮아요.”

귀 뒤쪽에 입술을 비비는 강무혁을 밀어내는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힘주어 밀어내면 어떻게든 밀쳐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음과 다르게 몸은 자꾸만 힘을 줄 수 없을 정도로 흐물거렸다. 결국 강무혁의 가슴팍으로 스르르 무너져버렸다.

혀가 움직일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가 정신을 요란하게 만들었다. 강무혁이 이를 세워 여린 살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놀라 파닥거리는 몸을 강하게 끌어안은 그가 달래듯 등을 토닥였다. 최서율은 전에 없이 다정한 손길이 좋아, 그의 품이 좋아 가만히 몸을 웅크렸다.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간지럽게 귓가를 괴롭히던 입술이 볼에 닿았다. 말랑하고, 보드라운 볼에 닿았던 입술 사이로 이가 드러나고, 콧방울이 물렸다.

최서율이 반만 열려 흐릿해졌던 눈을 번쩍 치켜뜨며 얼얼한 코를 더듬었다. 뒤로 물러나려는 듯 몸 물리는 등허리로 강무혁의 단단한 팔이 휘감겨 멀리 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찾았다.

“아프게 안 물었습니다.”

“네… 그런데….”

“아픕니까?”

“…아니요.”

코를 더듬던 최서율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가 금세 안으로 말아 물었다.

“이만 자요. 곧 해도 뜨겠네.”

놓아줄 것 같지 않았던 강무혁이 먼저 물러나며 허리를 스치고 앞으로 나온 손으로 옆구리에 말랑한 뱃살을 만지작거렸다. 그 손을 잡은 최서율이 강무혁이 물러난 걸음만큼 다가갔다. 어쩐지 이대로 잠들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귓가는 여전히 뜨거웠고, 물린 코는 아릿했다.

“이렇게 그만두시면… 어떡합니까. 이게 끝이라고요?”

“그럼 뭘 더 합니까?”

눈을 동그랗게 뜬 최서율이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강무혁을 바라보았다. 대답을 찾지 못한 입술이 오물오물 앞으로 내밀어졌다. 턱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선명해지도록 툭 내민 아랫입술을 바라보던 강무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소문이 거짓말은 아닌가 보네요.”

“무슨 소문 말씀이십니까?”

“토끼가 음란하다는?”

살면서 듣기 싫은 말 중에 단연 1등이었다. 자신은 난잡하지도 음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소문이 사실이 되어 떠돌도록 아주 오랜 시간 숨어 살기만 한 조상들이 미워질 때가 있을 정도였다.

“…아닙니다.”

“난잡한 건 모르겠고, 음란하긴 한 것 같네요.”

기대에 부응하듯 허리를 감싸 당기는 힘에 그대로 끌려간 최서율이 강무혁의 가슴팍을 짚고 섰다. 눈을 피하지 않으려 부릅뜨느라 눈가가 시큰거렸다.

이마에 닿은 입술이 뜨겁고, 촉촉했다. 심장이 꽉 조여들었지만, 이 낯선 감촉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강무혁의 가슴팍을 더듬던 손이 편하게 걸쳐 입은 티셔츠를 움켜쥐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고개를 비튼 강무혁이 다시 볼에 입술을 비비고 귓가에 입술을 문질렀다.

냄새를 맡듯이 킁킁거리는 소리에 발가락을 꼼지락거린 최서율이 손에 잡은 티셔츠를 쭉- 끌어당겼다.

“이런 좋은 냄새나 풍기고.”

“제가 무슨….”

“호랑이한테 이렇게 달콤한 냄새를 흘리면, 먹어달라는 말밖에 더 됩니까? 사람 된 도리로 참으려는데 부추기기나 하고 말입니다.”

귓불을 물고 늘어진 입술이 그 아래에 닿았다. 차례대로 여린 살갗을 자극하며 소리도 없이 다가오는 입술에 가슴이 녹아 사라질 듯이 안달이 났다.

호랑이를 한입 가득 입에 넣고 싶은 충동. 토끼가 느끼기 힘든 충동이었지만, 식욕과 비슷한 욕구에 군침이 돌았다. 닿고 싶었고,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그를 느끼고 싶었다. 입 안에 넣고 굴려보고 코를 맞대고 냄새를 맡고 싶었다.

배꼽 아래가 빠듯하게 뭉칠 정도로 저릿한 감각을 참지 못한 최서율이 강무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른… 속삭이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무혁의 너른 가슴팍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깊숙이 안겨진 채로 입술이 맞닿았다.

“흐읍….”

가볍게 닿은 입술 사이로 숨을 삼킨 최서율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을 열었다. 후- 젖은 입안으로 웃음을 흘린 강무혁이 최서율을 밀어붙이며 여린 살점을 짓눌렀다.

입안의 예민한 살에 닿는 혀가 불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축축한 소리에 귀가 쫑긋 올라서고, 꼬리뼈 부근이 간지러웠다. 발끝에 힘을 주었지만, 아득해지는 기분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최서율의 무릎에서 힘이 풀려나갈 즘, 몸이 돌려지고 등이 침대에 닿았다. 놀란 최서율이 얼른 강무혁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등과 침대 사이에 강무혁의 팔과 손이 받치고 있어 아프지 않았다.

입안을 헤집는 혀를 따라 움직이며 혀에 닿는 강무혁을 느꼈다. 진하게 피어오르는 희열에 달뜬 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하… 부사장, 님….”

“쉬….”

달래듯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며 등허리를 가득 감싸 당기는 힘에 침대 위로 완전히 올라온 최서율이 굵은 목덜미와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곰실거리며 움직이는 손을 잡아내려 침대에 고정한 강무혁이 봉긋하게 솟아오른 입술을 아프지 않게 물었다가 놓았다.

“입 크게 벌려봐요.”

시야에 맺히는 강무혁은 제가 알고 있던 부사장과는 다른 눈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많이 느꼈지만, 오늘은 유독 더 달라 보였다.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들뜬 기분을 어쩌지 못한 최서율이 홀린 듯 아주 조그맣게 입술을 벌렸다.

선이 흐릿하고, 조그마한 입술을 힘으로 벌리며 밀려들어 오는 혀가 깊숙한 곳에 닿을 때마다 몸이 붕 떠올랐다. 입 밖으로 터지지 못한 숨이 강무혁의 혀를 간질이고 다시 목구멍 안쪽으로 밀려났다.

“흐으, 응….”

코가 쿰척거리고, 발가락이 이불을 아무렇게나 밀어댔다. 손목을 타고 오른 두툼한 손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아프게 파고들었다. 감각이 고장 난 듯 팽창하기만 하는 달뜬 기운에 덜컥 겁을 먹은 최서율이 엉켰던 혀를 뒤로 숨겼다. 척척한 소리를 내며 입안을 헤집던 강무혁이 잡은 손을 부러트릴 듯 힘을 주었다.

아!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소리와 함께 맞닿아있던 강무혁의 혀에 까슬한 돌기가 돋아 올랐다. 눈을 커다랗게 떴다가 감은 최서율이 강무혁의 어깨를 밀어내려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여린 점막을 찌르듯 스치는 아픈 감각에 혀가 스칠 때마다 약하게 피 맛이 났다. 움찔, 몸을 떨며 버둥거리는 최서율이 도망가지 못하게 옭아매는 팔에 금방이라도 몸 어딘가가 부서질 것 같았다.

“하아, 부사, 장님… 흣, 으….”

여기저기 상처 난 입안이 쓰라렸다. 눈썹이 꿈틀거리고, 미간이 좁아진 최서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런데도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모순적인 마음이 일었다. 진하게 풍겨오는 짐승의 냄새가, 꽉 끌어 안겨진 몸이 그를 더욱 원하고 있었다.

무릎 뒤쪽이 후들거렸다. 침대에 아무렇게나 문질러대던 다리에 힘이 풀려 힘없이 늘어진 최서율이 젖은 눈을 느리게 깜빡거렸다.

가쁘게 숨을 내쉬는 최서율을 달래듯 얕게 입 맞추며 떨어져 나간 강무혁이 옅은 핏자국이 남은 입술을 손끝으로 훔쳤다. 보드라운 입술 위를 핥아 올리는 혀는 다시 처음처럼 부드럽기만 했다. 취한 듯 몽롱하게 떠진 눈과 눈이 마주쳤다.

푸른 새벽,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고 반짝이는 최서율의 눈과 마주하는 순간, 강무혁은 세상이 뒤집히는 현란한 충격에 빠졌다. 달큼하게 풍겨오는 다른 종의 완벽한 민낯에 탐스럽게 열매 맺은 감정이 요동쳐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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