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최서율은 토끼라는 이유로 청각이 매우 발달한 채로 태어났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도 잘 들리는 터라 난감한 일이 종종 있었다. 강무혁이 소리 내지 않으려고 조용히 웃으면 귀가 마구 쫑긋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몸 어딘가가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부사장님 왜 항상 소리 내지 않고 웃으십니까? 저 귀가 엄청 좋아서 다 들립니다.”
“이게 다 들립니까?”
“네. 토끼는 청각이 무척 좋습니다. 저는 가족 중에서도 유난히 청각이 좋은 편입니다.”
“최 대리님 앞에서는 조심해야겠네요.”
“아니… 그렇다고 소머즈처럼 다 들리고 그런 건 아닙니다.”
볼을 긁적이던 최서율이 눈썹을 팔자로 내리며 민망한 듯 웃었다.
“최 대리님 가족은 다들 고향에 사는 겁니까?”
“네. 저 빼고 모두 고향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왜 혼자 서울로 왔습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뭐가 궁금했냐는 듯 바라보는 강무혁의 눈을 보며 최서율이 눈동자를 굴려 눈치를 살폈다. 왜 가족 얘기를 물어보는지 몰라서였다.
토끼 수인은 한 가족만 해도 마을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많다는 걸 알고 있을까. 종종 부사장이 하는 말을 들으면 토끼 마을을 아주 작은 시골 마을쯤으로 여기고 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와 정 반대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한 것들이 머릿속에 퐁퐁 떠올랐다.
“서울살이가 궁금했습니다. 고향보다는 더 발전하고, 새로운 문물이 많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형제도 많아서… 부모님의 보호에서 일찍이 떨어져 나와야 했으니까. 그럴 바에야 서울에서 한번 살아보자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반대 안 했나 봅니다?”
“했죠. 말도 마세요. 저희 아버지는 산군 호랑이 할아버지네 집에 찾아가서 술도 막 퍼마시고 오고, 저 때문에 속상해서 온 가족이 난리였습니다.”
“산군 호랑이?”
“네. 저희 마을을 지켜주시는 산군 호랑이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제가 서울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제일 먼저 지지해주신 분이셨습니다.”
그 산군 호랑이 할아버지라는 분의 성함의 성씨만 들어도 토끼 마을이 있는 지역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한반도의 산군 호랑이 가문은 여러 파가 있었는데 그 수장들의 사이는 마치 형제처럼 좋아 자주 왕래하고 교류도 활발했다.
얼마 전에는 백두산을 호령하는 집안에서 서울까지 내려와 아버지를 만나고 갔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 호랑이 할아버지를 많이 따랐나 봅니다?”
“네. 제가 기억하는 호랑이의 모습은 그 할아버지가… 근데 부사장님 왜 갑자기 사나워지십니까?”
“내가요?”
“네.”
크릉.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놓고 모른 척하는 강무혁을 바라보는 최서율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그가 다른 호랑이 얘기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렸다.
“미안합니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거짓말이란 걸 단번에 눈치챘다. 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다른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그것도 아주 나이가 많은 호랑이 할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는 데 저렇게 예민하게 구는 게 이상해도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강무혁을 힐끔거리며 훔쳐보았다. 왜 제가 다른 호랑이 얘기를 하는데 기분이 나빠진 건지 알고 싶었다.
“부사장님, 그렇게 하시면 저 기절 할 수도 있습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창문에 딱 붙어서 하는 말에 강무혁이 이번에는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꼬리를, 아니 귀를 잔뜩 내리고 얼어붙은 토끼가 보이는 것 같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직책으로 보나 뭐로 보나 최서율보다 제가 더 위였지만 스스럼없이 사과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지만 속은 잔뜩 쪼그라들었을 작은 동물을 위해서였다.
다시 입술이 뾰족해지고, 인중이 좁고, 길어진 게 보였다. 불만을 표출하는 표정까지도 너무도 토끼답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잔뜩 부어있는 볼을 찔러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토끼에게 물리는 최초의 호랑이가 되던가, 말 그대로 기절하는 최서율을 목격하던가 둘 중 하나를 할 것 같아 참았다.
“형제가 많다고 했는데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알다시피 형이 하나 있습니다.”
“부사장님 진짜 토끼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나름 공부한다고 했는데… 주변에 없으니 잘 모르는 게 맞습니다.”
고작해야 셋, 넷으로 예상하는 듯한 강무혁을 비웃듯, 최서율이 꼼질꼼질 손가락 열 개를 활짝 폈다. 저보다 두 마디는 작아 보이는 손을 보며 부드럽게 차를 멈춘 강무혁이 아예 최서율을 향해 몸을 돌렸다. 집 앞에 도착한 걸 확인했지만 하려던 말은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하나씩 접어가며 수를 세기 시작했다.
접힌 손가락이 일곱을 넘어갈 때쯤 강무혁이 제 이마와 코를 차례로 긁적였다.
“설마 형제 숫자를 세는 겁니까?”
“네.”
일곱을 넘어 열 손가락이 다 접히고도 두 개가 더 펴졌다.
“정말?”
형제의 숫자를 확인하기 무섭게 강무혁이 물었고, 최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열둘입니다.”
“맙소사.”
“저희 마을에서는 적은 편에 속하는 겁니다.”
“열둘이?”
“네.”
예전에 TV를 보면 다둥이 가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거기 나온 가족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자녀를 거느린다고 하니 의아할 만했다.
도시는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아이를 많이 낳던 수인 종족도 이제는 하나 혹은 둘만 낳아 기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기마다 짝짓기 하여 원하지 않는 아기가 생기지 않도록 정관 수술의 기술도 날로 좋아지고 있었고 양약과 한약 모두 발정기를 조절하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그 부분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가져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되는대로 낳는다고 해도 열둘 이상을 낳는다는 수인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최 대리님은 몇째입니까?”
“저는 열둘 남매 중에 다섯째입니다.”
“아… 다섯째.”
“네.”
엄청난 얘기를 들었다는 듯 멍해지는 강무혁을 바라보는 최서율의 눈에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 담겼다. 방금까지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더니 제 얘기에 금방 집중해주는 부사장의 모습은 이제는 회사와 완전 별개의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차이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 또한 느끼는 중이었다.
“부사장님 이제 기분은 풀리셨습니까?”
“기분 나빴던 적 없습니다. 그냥 생각하느라 그런 겁니다.”
“네….”
대답은 하고 있지만, 전혀 믿지 않는 눈치의 최서율을 바라보던 강무혁이 막 차 문을 열려고 움직이는 최서율의 손목을 잡았다. 깜짝 놀란 듯 어깨를 펄떡인 최서율이 얼른 돌아보았다. 와이셔츠 소매 아래로 드러난 피부에 닿은 체온이 너무 뜨거워 손목에 손자국이 그대로 남을 것 같았다.
“부사장님?”
“아, 미안합니다. 들어가서 쉬세요.”
오늘만 해도 강무혁의 입에서 두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게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손을 놓아준 강무혁을 등지고 차에서 내린 최서율이 꾸벅 인사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처음 몇 번은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부사장의 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집으로 쏙 들어갔는데 직접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강무혁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며칠 전부터 차 문을 닫고 두어 발 떨어져 출발하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안 들어갑니까?”
“가시는 거 보고 가겠습니다.”
“됐으니까 얼른 들어가세요.”
매번 같은 패턴이건만 고집스럽게 버티고 서 있는 최서율만큼 강무혁의 고집 또한 쇠심줄처럼 끈질겼다. 부하직원이 상사가 데려다주는 게 마음에 걸려 뒤꽁무니에 대고 인사라도 하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싫어서 들어갈 때까지 노려보고 있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고 꽁시랑거린 최서율이 어쩔 수 없이 다시 꾸벅 고개를 숙이고 집을 향해 걸었다. 등에 꽂히는 시선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현관에 다다라서는 얼른 계단을 뛰어올랐다.
어쩐지 출발하는 뒤꽁무니는 꼭 봐야 할 것 같아서 2층까지 단숨에 올라간 최서율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곧이어 출발하는 부사장의 차를 창틀에 턱을 괴고는 한참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익숙해진 커다란 차체가 마치 부사장의 무엇 같았다. 그의 어떤 것이 익숙해질 때마다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감정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 감정은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웠다. 간질거리는 손등을 박박 긁으며 남은 계단을 밟아 올라선 최서율이 그래도 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요즘이 정말 살맛 난다고 생각했다.
* * *
오랜만에 제시간에 퇴근한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여전히 바쁜 일상이었지만 강무혁은 이상하게도 퇴근 시간에 맞춰 항상 시간을 비워뒀다. 그가 베푸는 호의에 대한 비밀을 풀고 싶었지만 요즘 최서율은 자기감정이 흐르는 걸 감당하기에도 매우 벅찼다. 강무혁의 이유에 대해서 알아내기 전에 이 호의에 익숙해지고 있는 저 자신의 이유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여긴 별이 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별 따위에 큰 흥미가 없다는 듯이 건성으로 대답한 강무혁이 먹으라는 밥은 먹지 않고 창밖만 열심히 내다보는 최서율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았다.
“원래 눈이 그렇습니까?”
“눈이요?”
“네. 눈 말입니다.”
자기 눈가를 톡톡 두드린 강무혁이 그 손가락을 최서율에게 돌렸다. 눈이 어쨌다는 건지 제 눈가를 더듬던 최서율이 그제야 그를 향해 완전히 고개를 돌렸다. 길쭉하고, 정갈한 손가락이 놋으로 만든 젓가락과 무척이나 어울렸다.
손을 더듬어 올라간 눈이 강무혁의 눈과 정통으로 마주쳤다.
“제 눈이… 어떻다는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반 젓가락에 비해 무거운 놋젓가락을 들어 앞에 놓인 나물을 뒤적거렸다.
“우는 건 아닌데 항상 물기가 맺혀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반짝입니다.”
“반짝….”
최서율의 하얀 볼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서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자주 듣는 인사치레 칭찬이었다. 가족 모두가 토끼인 집안에서는 특별한 것도 없는 특징이건만 서울에서 살면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더랬다. 커다란 눈을 깜빡이면서 바라보면 없는 돈도 만들어 쥐여주고 싶어진다고 했었나…. 그런데 이런 말을 강무혁에게 들으니 저도 모르게 볼이 붉어졌다.
눈이 반짝인다니. 가슴께가 살랑이는 게 봄바람 때문인지, 유난히 많이 보이는 별 때문인지 앞에서 무심한 듯 고기를 집어 입에 넣고 있는 부사장 때문인지 모호했다.
“예쁘다는 뜻입니다.”
“쿨럭. 큽….”
좋아하는 나물 반찬을 가득 집어 입에 넣었던 최서율이 막 입안으로 들어갔던 나물을 뱉어냈다. 씹지 못한 나물 덩어리가 완벽한 포물선을 그으며 정확하게 강무혁의 앞접시로 떨어졌다.
“헉!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하.”
벌떡 일어난 최서율이 빠른 손놀림으로 강무혁의 앞접시를 제 앞으로 가져왔다. 이걸 다시 먹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혼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눈치 빠른 식당 종업원이 새 접시를 가져다주었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 빨개진 최서율이 금방이라도 접시에 코를 박고 죽을 듯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칭찬했더니 씹던 나물을 주네요.”
“그게… 그렇게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됐으니까. 먹던 거나 마저 먹고 별 보러 가죠.”
“넵.”
젓가락을 입에 물며 강무혁의 눈치를 살피던 최서율이 그래도 나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얼른 입으로 쏙 가져갔다. 입안에 물씬 풍기는 봄나물의 향긋함에 저도 모르게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입과 목구멍을 지나 코로 봄나물의 향기가 넘어와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