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64)

3.

집에는 언제 가면 되냐는 물음에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주말에 가겠다고 약속을 정해놓고 긴장되는 마음에 일주일을 정신없이 보내버린 최서율이었다.

혼자 그 길을 도망치듯 뛰어 내려올 때 얼마나 무서웠던가. 새벽의 산길이 주는 스산함을 뚫고 덜덜 떨며 겨우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다 팽개치고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더랬다. 제 발로 그 집에 돌아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느낌이 이상했다.

혼자 가겠다는 최서율을 굳이 데리러 오겠다는 강무혁의 고집은 만만치 않았다. 사실 고집은 최서율이 부린 거고 강무혁은 단 몇 마디로 최서율의 고집을 꺾었다는 게 정확했다. 집 앞에 서서 강무혁을 기다리는 내내 몇 번이나 큰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토닥이듯 툭툭 두드렸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잘 잤습니까?”

“네. 잘 잤습니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잘 잤다고 둘러댄 최서율은 강무혁이 평소 업무를 볼 때 사용하는 세단과는 확연히 다른 집채만 한 SUV에 올라탔다. 누가 호랑이 아니랄까 봐 차도 꼭 자기 같다고 생각하던 최서율이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긴장했습니까?”

“긴장이… 되긴 합니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요.”

“놀러 간다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산으로 많이 뛰어다니면서 놀 텐데.”

“네, 감사합니다.”

운전석을 향해 어색하게 허리를 숙인 최서율이 그런 저 자신의 모습이 우스워 입술을 꾹 깨물었다. 도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마냥 웃기도 뭐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 * *

“바로… 산으로 가나요?”

“물이나 한잔 마시고 갑시다.”

“네.”

챙겨온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으며 거실을 둘러보았다.

강무혁의 집은 단층 건물로 되어 있었다. 현관을 지나면 사진 몇 개가 올려져 있는 선반과 벽걸이 TV, 아주 커다란 1인용 소파 2개를 제외하고는 운동장처럼 드넓은 거실이 보였다. 폴딩도어로 바로 마당과 연결된 거실에는 따스한 아침 햇살이 쏟아지듯 들이치고 있었다.

거실과 맞닿은 주방은 깔끔한 인테리어와 적당한 생활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장정 여섯은 앉고도 남을 크기의 식탁과 두 개의 냉장고, 커피머신, 정수기, 밥솥, 비싸기로 소문난 고기 불판이 보였고, 최서율이 슬리퍼와 옷가지를 구할 수 있었던 다용도실로 연결된 문도 보였다.

지난번에 이 거실을 뒤집고 다니다가 선반에 있는 강무혁의 가족사진을 보고 기절할 뻔했던 게 생각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색한 모양으로 1인용 소파에 앉아있던 최서율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말고 우와, 하는 소리를 내며 커다란 창 앞으로 빠르게 다가섰다.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주방으로 향했던 강무혁이 그런 최서율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실로 통하는 창문 앞은 나무 데크가 있었고 커다란 마당 한쪽에 거실만 한 수영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부사장님, 진짜 부자 같습니다. 마당에 수영장도 있고.”

“뭐라고요?”

“부자….”

커다란 잔에 가득 담아온 문을 내밀며 최서율 앞에 선 강무혁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부자인 제게 부자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평생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뱉어 버린 최서율이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컵을 받아 들었다.

“여름에는 수영장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더운 건 싫고, 물은 워낙 좋아해서.”

“아….”

“토끼는 수영 안 좋아합니까?”

“토끼는 물에 닿으면 놀라서 죽기도 하고, 귀에 물이 들어가면 죽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아예 수영을 안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토끼로서는 아예 없고, 인간으로만 어릴 적에 친구들이랑 물놀이했던 기억이 조금… 있습니다.”

물에 닿으면 놀라서 죽는다니 희한했다. 물을 홀짝거리며 마시는 최서율의 정수리를 바라보던 강무혁은 시간 날 때 토끼를 공부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기본적인 지식 정도는 갖추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다람쥐 부부가 내려올 시간입니다.”

아직 오전 9시가 되지 않은 시간. 강무혁의 말에 다람쥐 부부가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그 얘기를 들으니 토끼의 모습을 보여줄 생각에 귓가가 뜨겁다 못해 떨어져 나갈 듯 달아올랐다.

“나가서 놀아 보겠습니까?”

“…네.”

여기에 온 이유기도 했고, 이 약속을 꼭 지켜야 하는 이유도 분명했기에 최서율은 더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강무혁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손님방은 거실보다 훨씬 따뜻했다. 더위를 싫어하는 강무혁은 부사장실에도 히터를 틀지 않기로 유명했다. 이제 막 겨울이 끝난 터라 추운 날씨임에도 집안에는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서늘했는데 이 방은 이렇게 후끈할 정도로 따뜻한 걸 보니 보일러를 미리 돌려둔 티가 났다. 최서율은 괜히 간지러워지는 귓가를 벅벅 긁었다.

* * *

강무혁이 손님방을 안내해주고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마당에 모습을 드러낸 다람쥐 부부는 아침의 쌀쌀한 기온과 따뜻한 햇볕 때문인지 유독 즐거워 보였다. 강무혁은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다람쥐 부부는 담벼락 아래에 뚫어 둔 작은 구멍을 유일하게 잘 이용하는 동물이기도 했다. 작은 동물이 귀엽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는데 그날 두 손과 팔에 가득 안아보았던 토끼는 꽤 귀여웠다. 그런 느낌을 한 번 받고 나니 언제나 별생각 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다람쥐 두 마리도 귀여워 보였다.

강무혁도 괜히 코끝이 간지러워져 코 밑을 쓱쓱 문질렀다. 타닥. 소리를 내며 무언가 뛰어나오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최서율 대리?”

“삐….”

수인이 동물화하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나 사람의 말은 하지 못했다. 그걸 알기에 강무혁은 토끼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커다란 귀가 뒤로 한껏 젖혀졌다가 쫑긋 솟아올랐다. 황금빛에 가까운 갈색 털은 부드러워 보였고 짧은 앞발 아래로 토실토실해 보이는 뱃살이 묵직하게 자리했다. 뒷발이 바닥을 딛고 펼쳐지자 토끼가 펄쩍 뛰어올랐다. 멋지게 착지하기 위해 앞발로 바닥을 딛다가 꽈당 미끄러져 버린 토끼가 낑! 하는 소리를 냈다.

“괜찮습니까?”

대리석이 깔린 바닥이 보슬보슬한 털로 감싸인 발을 다 받아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토끼가 창피한지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넘어진 그대로 얼굴을 처박은 채, 낑낑 앓으며 코를 마구 움직여댔다. 분홍빛 코가 움직일 때마다 가슴 안쪽이 흔들리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진 강무혁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널브러진 토끼를 들어 올렸다.

가까이에서 눈을 맞추자 뒷발을 버둥거리는데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바닥에 매트라도 깔아야겠습니다. 이러다 어디 다치겠습니다.”

그는 한쪽 팔에 토끼를 걸쳐 들고 폴딩도어를 열었다. 한참 마당을 뛰어다니던 다람쥐 부부가 놀란 듯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자주 마주치던 강무혁을 보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코를 바닥에 박고 정돈된 잔디를 헤치고 다니기 시작했다.

눈앞에 너른 마당과 푸른 잔디가 펼쳐지자 토끼가 아픈 것도 잊은 건지 얼른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버둥거림이 심해졌다. 바로 내려놓기 아쉬워 머리부터 귀, 등을 지나며 몇 번 쓰다듬어 주었다. 목 부근의 말랑말랑한 살을 몇 번 조물조물하고 나서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손길을 받아낸 토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놀다 오세요.”

나무 데크에 내려놓기 무섭게 앞으로 달려가는 토끼의 엉덩이가 무척 신나 보였다.

저걸 데리고 어떻게 산을 오를까. 걱정이 앞서 이마를 짚은 강무혁이 데크에 놓인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침의 서늘한 기운도 이겨낼 힘찬 토끼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떠올랐다.

* * *

산의 동물들과 친해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당에 놀러 온 다람쥐 부부는 그래도 안면을 익혔다고 제법 아는 척을 해왔지만 그게 다였다. 사슴이나 고라니 같은 종류의 짐승은 토끼와 확연하게 크기 차이가 났기 때문에 다가가지 못했고, 너구리나 족제비 같은 크기는 작지만, 잡식성의 짐승은 토끼에게 너무 무섭게 달려들어 늘 강무혁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오늘도 산에 뛰어 올라갔다가 오소리에게 쫓기던 토끼를 낚아챈 강무혁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최서율은 강무혁의 팔에 안겨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기분은 괜찮습니까?”

손님방에서 씻고, 옷도 갈아입은 최서율이 1인용 소파에 앉으며 바닥에 깔린 러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집에 왔을 때 대리석 바닥에 미끄러진 탓에 강무혁이 깔아둔 것이다. 따뜻한 차를 담은 머그잔을 가져와 내민 강무혁의 손을 보고 고개를 든 최서율이 빙그레 웃었다. 부사장의 세심함에 감동했던 날이 생각나 기분이 둥실 떠올랐다.

강무혁은 그 옆 소파에 앉아 벌겋게 달아오른 최서율의 얼굴을 살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사장님께 도움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방문 때는 다람쥐 부부와 뛰어다니느라 힘든 줄도 몰랐고, 오랜만에 산을 타고 오른다는 재미에 푹 빠져 그저 좋았고, 약간 고단했다 정도만 느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문 때 마주친 멧돼지를 보고는 기겁했던 것이나 청설모도 다가오지 않는 제가 과연 부사장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이렇게 하고서도 부사장에게 제 비밀을 지켜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걸까. 하는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오늘 토끼를 보고 미친 듯이 돌진하는 오소리를 피해 달리면서 강무혁만 찾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을 때, 과연 제가 이 일을 잘하고 있는 건지, 적임자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졌다.

뜨거운 차를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최서율을 보던 강무혁이 제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마치 저를 보라는 듯 쿵. 소리가 나도록 세게 잔을 내려놓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최서율이 가만히 저를 보고 있는 강무혁과 눈을 마주했다.

“호랑이와 함께하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최서율 씨가 뭘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산을 거닐 때 모든 동물은 최서율 씨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 토끼는 왜 산군 호랑이와 함께 있는가.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이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새로운 산군 호랑이가 자기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인지하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는 최서율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간결하지만, 힘이 있는 말이었다. 산에 있는 모든 짐승이 저와 강무혁을 주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저 그들에게 강무혁은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저는 한낱 토끼에 불과하다는 게 꺼림칙한 것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제가 항상 같이 있을 겁니다. 최서율 씨가 혼자서 제멋대로 뛰어다니더라도 어디서든 찾아낼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지근해진 머그잔을 두 손으로 꼭 쥔 최서율이 확신이 가득한 강무혁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저를 주시하고 있는 눈빛을 보고 있자니 목덜미로 열기가 치솟았다.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제가 부사장님께 도움이 되지 못해서… 비밀을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을 파기할까 봐 걱정됐습니다. 저 큰 산에서 제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부사장님뿐인데 원하는 걸 채워드리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괜찮습니다. 어디서 잡아먹힐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최서율이 방긋 웃었다. 볼이 동그랗게 뭉쳐 위로 올라붙고, 동그란 눈이 초승달처럼 앙증맞은 모양으로 휘었다. 그 광경을 생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강무혁이 피식 웃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최서율 씨가 약속을 지킨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한배를 탔습니다. 앞으로도 최서율 씨가 토끼라는 사실을 밝힐 일은 없을 겁니다.”

목덜미를 맴돌던 열기가 얼굴까지 올라왔다. 안 그래도 열감에 화끈거리던 얼굴이 더욱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한배를 탔다니… 태어나서 한배를 타는 사람은 토끼 동족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임 승선한 호랑이가 어쩐지 믿음직스럽다고 느껴져 기분이 묘했다.

콩콩 작게 뛰던 심장이 쿵쿵 큰소리를 내며 힘차게 뛰어댔다. 무리를 가하면 멈춰버릴지도 모르는 토끼의 심장이 제 위치를 정확하게 뽐내며 뛰어대는데 실없이 웃음이 났다. 부사장은 회사에서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운 상사였는데 산에서도 집에서도 그 믿음직스러움은 여전하다는 생각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자꾸 웃습니까?”

“부사장님도… 자꾸 웃으시잖아요.”

“나는 이유가 있으니까 웃었지.”

“저도 이유가 있어서 웃었습니다.”

심장이 요란하게 펄떡이다가 드디어 멈춘 건가. 필터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뱉어진 말에 오히려 놀란 건 최서율이었다. 웃음기가 선연했던 눈이 동그랗게 멈췄다.

“그러니까 그게….”

“됐습니다. 이유가 있다는데 웃을 수도 있지. 기분 나쁜 것보단 낫습니다.”

“네….”

웃지 말아야지 싶어 입술을 말아 물고 단속하던 최서율이 저를 보며 웃고 있는 강무혁을 보곤 말아 물었던 입술을 스르륵 풀었다. 강무혁의 눈빛이 너무 따뜻해 저도 모르게 또 입꼬리가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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