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봄〉
1.
봄비가 내렸다. 겨우내 메말랐던 땅을 적시는 봄비는 모두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 비를 맞으면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고,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씨앗이 새싹을 틔어낼 것이었다. 천지가 은은한 연두색으로 물들면 그 속에서 예쁜 빛깔을 뽐내는 꽃이 피어날 텐데 모두들 그 시기를 기다리는 듯, 사랑스러운 눈으로 봄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금요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월요일 새벽이 되어서야 그쳤다. 봄비치고는 많이 내리는 비에 많은 이들이 당황했지만 다가올 봄을 기다리듯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는 오랜만에 활기찬 기운이 가득했다.
단 한 사람. 아직 축축하게 젖은 땅을 구두코로 툭툭 쳐대며 갈 길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최서율만이 그 활기찬 사람들 사이로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았다. 긴 한숨을 내쉰 최서율이 터덜터덜 걸어 사무실로 향했다. 대한민국에서 월급쟁이로 살면서 출근하기 싫다고 뒤돌아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터였다.
“어머! 최 대리님! 나 진짜 못살아. 어떻게 된 거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축 처진 어깨로 사무실에 등장한 최서율과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달려와 말을 쏟아내는 선수미 과장은 사슴 수인답게 커다란 눈에 걱정을 담뿍 담고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날 너무 취했었나 봐요.”
“그러게요. 최 대리님, 저희 그날 경찰에 신고할 뻔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허리를 꾸벅거리던 최서율이 얼른 입고 있던 코트를 벗었다. 동료들이야 죄송하고, 고맙다는 말로 얼버무릴 수 있었지만 큰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지금이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만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결전의 시간 때문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최 대리님 여기요. 이거 제가 챙겨뒀어요.”
“고맙습니다. 유진 씨. 제가 다음에 밥 한번 살게요.”
“에이~ 저 맛있는 거 아니면 안 먹는 거 아시죠?”
“그럼요. 꼭 살게요.”
성격 좋기로 소문난 사무실 막내 황유진 사원이 밝게 웃었다. 건네받은 가방을 열자 퇴근할 때 챙겨두었던 태블릿, 지갑, 핸드폰이 보였다. 잃어버린 물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그나마 웃을 힘이 돌았다. 그러나 힘이 돌았을 뿐이지 웃지 못하는 입꼬리가 어색하게 경련했다.
회식이 있던 지난주 금요일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비는 봄비치고는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비가 내린다고 미리 잡아 두었던 회식을 취소할 위인이 아닌 제 상사는 직원들 기분을 풀어준다는 명목하에 고급레스토랑에 판을 벌였다.
월급쟁이가 1년에 한 번 먹어볼까 말까 한 고급스러운 음식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태어나서 먹어 본 고기 중에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어쩌다 보니 와인을 석 잔 마셨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 일어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걸 은연중에 알 수 있었다.
최대한 동료들에게서 멀어져야만 했지만, 체력이 오래 버텨주진 못했다.
서울에 상경하기로 했을 때 부모님과 철석같이 한 약속이 있었다. 절대 ‘토끼’인걸 들키지 말 것. 그때는 세상이 이만큼이나 변했는데 도대체 왜 그런 걸 강요하는 걸까 하는 야속한 마음이 들었지만, 직접 올라와 살며, 겪으며 여전히 변하지 않은 ‘토끼’에 대한 시선과 편견으로 가득 찬 소문에 생각을 바꾸고 결심했다. 절대 들키지 말아야지.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도전한 범진그룹 채용에 합격하면서 최서율은 그 마음을 더욱 단단히 다잡았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은 그에게 이런 시련은 감당하기 힘든 벼랑이었다. 차라리 올라가지 못할 산이라면 돌아라도 갈 터인데 벼랑 끝에 발을 내밀고 서 있는 기분마저 드니 돌아갈 용기조차도 내지 못하는 중이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와 죽을힘을 다해 공부하고, 취업에 성공해 서울살이하고 있는데 이렇게 무너져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울컥 마음이 요동쳤다.
문제의 그 날, 최서율은 가물거리는 정신으로도 제가 동물화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레스토랑 주차장의 구석진 곳, 바닥에 나뒹구는 옷가지를 헤치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어나와 차가운 빗물에 쓰러졌다. 그 순간 누군가에게 발견된다면 차라리 경찰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공권력이라면 저를 보호해 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간절한 바람은 토요일 아침 낯선 곳에서 눈을 뜨면서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부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바닥을 구르는 위엄 있는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심장이 깨질 듯이 날뛰는 소리에 귓가가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시간에 등장하는 부사장을 향해 막내 사원의 우렁찬 인사 소리가 사무실을 채웠다.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부사장을 맞이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계속 죽상을 하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니 아예 표정을 지우고 멍하니 있던 최서율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책상 위를 손끝으로 쓱쓱 문질렀다. 제발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로 가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범진그룹은 서울의 산을 지키는 산군 호랑이 집안으로 유명했다. 인간과 수인 모두에게 존경받는 집안이었고, 호랑이답게 집안 모두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기골이 장대했다. 사무실 앞을 가로 막고 서있는 최서율의 상사 부사장 강무혁도 마찬가지였다. 190cm에 육박하는 키와 너른 어깨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이 더욱 돋보이게 했고, 딱 보아도 호랑이상이라고 느껴지는 얼굴은 잘생김을 넘어서 서늘해 보일 정도였다.
그의 고른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날은 모두 잘 들어가셨습니까?”
“네, 잘 들어갔습니다. 부사장님도 별일 없으셨죠?”
금요일 회식 때 직원들이 편하게 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먼저 자리를 뜬 부사장의 질문에 박 부장이 눈치껏 치고 나와 인사를 거들었다. 강무혁이 가볍게 웃었다.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 유난히 크고, 붉은 입술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별일 없었습니다. 일들 보세요.”
강무혁의 인사가 떨어지기 무섭게 최서율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오전 일과를 보낼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수행비서진과 돌아서던 강무혁이 몸을 돌렸다.
“최서율 대리.”
“네, 네?!”
“잠깐 저 좀 보죠.”
금방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와 굴러떨어질 듯 커다래진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부장과 과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는 그들에게 ‘저 뭐 잘못했어요?’ 하며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손사래를 치며 얼른 따라 들어가라는 듯이 손짓하는 부장과 과장을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의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지금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최서율은 잘 알고 있었다.
* * *
질질 끌리는 걸음으로 부사장실 앞에 선 최서율을 부사장의 개인 비서인 윤성연 비서와 그의 후임 고경훈 비서가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사장님, 부르셨습니까.”
“네, 들어와서 앉아요.”
데스크는 내버려 두고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던 강무혁이 최서율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로 말했다. 범진그룹 부사장 지원실에서 일한 지 3년여의 세월이 지났지만, 부사장실에서 부사장을 독대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중요한 보고는 윤 비서나 박 부장이 했기에 지금까지 부사장과 독대할 일은 딱히 없었다.
그러나… 지난 토요일에 제가 한 짓이 있기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절대 다른 이유로 저를 부른 게 아니란 걸 직장 생활 3년 차가 된 최서율은 눈치로 알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부사장 발치에 무릎이라도 꿇어야 할까. 그날은 정말 죄송했다고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까. 토끼라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하는 걸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앉지 못하고 부사장의 옆에 서서 최대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는데 그 모습을 확인한 강무혁이 제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앉으라는 신호였다. 바로 눈치챘지만 그렇다고 넙죽 부사장 옆에 앉을 수 없어 눈치를 보던 최서율이 뭐 하고 있느냐고 묻는 듯한 눈과 마주하고는 슬쩍 엉덩이를 내렸다.
“재밌는 게 있는데. 같이 보겠습니까?”
“네?”
“보세요.”
강무혁이 태블릿을 건네자, 최서율이 태블릿을 받아들고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허리를 둥그렇게 말아 구부린 최서율이 태블릿을 쥔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게… 그러니까… 저, 부사장님….”
화면 속에는 부사장의 운동복을 걸쳐 입고 다용도실에서 가지고 나온 슬리퍼를 신고 대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최서율이 정확하게 찍혀있었다.
부사장 집 대문에 숨겨진 CCTV가 있다는 걸 알 리 없었던 최서율은 당장이라도 녹아서 증발해버리고 싶어졌다.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가 밖으로 밀려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걸 재밌게 바라보던 강무혁이 가볍게 웃었다.
“토끼를 한 마리 주웠습니다. 금요일에 회식했던 레스토랑 주차장에서요. 빗물에 젖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헐떡이길래 데리고 집에 갔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토끼도 없어지고, 제 운동복도, 슬리퍼도 사라졌더군요.”
“부사장님,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왜 몰랐지?”
강무혁의 손이 최서율의 귓가를 스치고 머리카락에 닿았다. 설마 때리려고 그러는가 싶어 한껏 움츠린 최서율이 눈을 꾹 내리감았다.
태어날 때부터 갈색이었던 머리카락은 어디를 가나 염색했냐는 물음을 불러왔다.
부사장과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도 현실감이 없는데 머리카락에 닿은 부사장의 손도 현실감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머리카락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 최서율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강무혁의 동태를 살폈다.
강무혁은 처음과 다름없이 평온해 보였다.
“이렇게 조금만 가까이 있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부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날은 제가….”
“알아요. 와인 석 잔 마시고 취한 거.”
“그게….”
“그렇다고 호랑이굴에서 옷까지 훔쳐 입고 도망갈 만큼 간 큰 토끼인 줄은 생각도 못 했지.”
강무혁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잔뜩 묻어 있었지만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는 최서율은 토끼가 호랑이굴에서 눈을 떴는데 도망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하는 짧은 불만을 떠올렸다. 차마 입으로 내놓을 수 없는 말을 삼키며 자꾸만 사각거리는 머리카락 소리를 피하듯 한쪽 어깨를 움츠렸다. 강무혁의 손끝에서 비벼지던 갈색 머리카락이 스르륵, 기다란 손가락을 타고 빠져나왔다.
“옷은 잘 세탁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다른 분들에게는 비밀로….”
“토끼인 걸 비밀로 해달라는 말입니까?”
“…네.”
저절로 숙어지는 고개를 무릎에 닿을 듯 조아리던 최서율이 얼른 고개를 들어 강무혁과 눈을 맞췄다. 토끼의 눈은 다른 사람이 부탁을 다 들어주고 싶게끔 만드는 힘이 있었다. 진짜 영물이란 뜻이 아니라 그 정도로 간절하게 생겨 먹었다는 뜻이다. 얇은 막이 하나 덧씌워진 듯 반짝거리는 눈은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토끼 수인 최서율의 타고난 장점이었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유난히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너 진짜 토끼 같다.’라고 말하던 동기와 선후배가 있었다. 토끼는 무슨 토끼냐며 웃어넘겼지만, 그때마다 심장이 두 동강 날 정도로 긴장하는 최서율이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간절함을 담아 그 힘이 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강무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수인인 걸 비밀로 해달라는 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는 알고 있습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사장님도 아시겠지만, 토끼 수인은 세간에 떠도는 소문 때문에 숨어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토끼 수인은 정말 몇 안 되고, 그마저도 저처럼 토끼라는 걸 숨기고 살고 있습니다.”
“아, 그 소문?”
“네.”
최서율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까탈스럽고, 조금 무서운 구석이 있지만, 겪어본 바로 생각하면 부사장 강무혁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산군 호랑이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대했고, 예의가 있었으며 특히나 동물을 아꼈다. 일개 사원들에게도 다정한 모습을 자주 보였고, 자기 울타리에 있는 수인 직원들도 세심하게 살피는 이였다. 최서율은 그런 그의 성정에 모든 걸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난잡하고, 음란하다고.”
“…….”
가까이 닿아있던 몸을 뒤로 빼며 기다란 팔을 앞으로 모아 팔짱 낀 강무혁이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정말 그렇습니까?”
“부사장님.”
금방이라도 압도당할 것만 같은 눈빛에 몸을 굳힌 최서율이 잇새에 힘을 주었다. 평온함 뒤에 숨겨진 그의 진짜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커다란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난잡하고, 음란한 거에 가까운 몸은 아니죠. 최서율 대리가?”
“…….”
똑바로 마주하고 있던 시선이 몸을 훑어 내렸다.
“맨날 그렇게 앉아만 있으니까 팔, 다리는 얇은데 뱃살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토끼도 배만 포동포동하던데.”
재킷을 당겨 앞섬을 여민 최서율이 씩씩거리며 들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