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264화 (265/279)

제 264화

264화 – 종족 회담

#1

엘프들이 기거하고 있는 숲.

오늘도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이디엔, 그리고 에일라는 엘프 전사들의 훈련을 봐주는 중이었다.

요즘 하이디엔은 전사 육성에 주력하는 중이었다.

멜리젠이 깨어났을 때, 수많은 엘프들이 죽었다.

“더 빨리 움직여라-!”

“적은 너희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본래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육성을 하는 것이 엘프의 방식이었다.

소리 지르는 것, 얼차려를 주는 것,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방식은 엘프의 방식이 아니었다.

이런 변화에는 하이디엔의 영향이 매우 컸다.

그녀는 인간의 생활방식을 많이 보고 들었다.

드레젠과 만나서는 훈련 방법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었다.

<훈련은 많이 해도 부족해. 엘프들은 주어진 시간이 많으니, 더 강해질 수 있지.>

<너희들은 정말 축복받은 종족이야. 잠재력은 인간보다 뛰어나고 시간도 많지.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마.>

느긋하게 지냈던 엘프들의 인식을 단번에 뿌리 뽑았던 말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는 말.

주어진 시간 동안, 똑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들.

하이디엔은 그 말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바꿨다.

“실력이 많이 올랐는데.”

“역시 사정 봐주지 않고 몰아붙인 것이 주요한 것 같습니다.”

“역시 드레젠 님의 말을 따르는 것이 답이었군요. 이렇게 빠르게 발전할 줄 몰랐습니다.”

“……맞아. 우리도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 거였어.”

에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려 100년 만에 마스터라는 경지에 올라갔다.

하지만 인간들은 고작 십수 년 만에 마스터라는 경지에 올라간다.

그 말을 듣고 여간 충격이 아니었다.

장기적으로 간다면 엘프들이 더 높은 경지에 오르겠지만, 100년이라니.

“저도 요즘 실력이 부쩍 늘었습니다.”

“축하해요. 이제 엘프들도 전쟁의 한 축에서 당당하게 활약할 수 있을 거예요.”

에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가오는 전쟁은 그들도 예측할 수 있었다.

요즘, 부쩍 언데드들이 많아졌다.

정찰조들이 속속 보고하는 중이었는데, 특히 제국의 동쪽에서 많이 보인다고 했다.

“안 그래도 다크몬드쪽에서 연락을 취해 왔어요. 실버문과 함께 조사를 해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다크몬드라…… 그림자 기사단이 관리하던 곳이었죠?”

하이디엔은 옛일을 상기했다.

드레젠과 처음 만났던 사건도 바로 다크몬드와 관련된 사건이었지.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그 건은 엘르엘라에게 일임하도록 하세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에일라가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엘프 마을 전체를 관통한 ‘그’의 기운.

하이디엔이 벌떡 일어섰다.

“귀한 손님이 온 것 같군요.”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엘프 총사령관이 직접 움직일 정도로 귀한 사람.

그 이름은 드레젠이었다.

에일라가 황급히 움직였다.

하이디엔 역시 손님맞이 준비를 서둘렀다.

“옷, 옷이-.”

“후훗, 로드, 천천히 준비하고 계세요. 제가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겠습니다.”

“부, 부탁할게요.”

하이디엔의 귀가 발갛게 변했다.

에일라는 조용히 웃고 서둘러 드레젠을 맞이하러 갔다.

그녀가 들뜬 얼굴로 입구까지 나갔을 때, 입구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당장 물러나시오! 은인을 제외하면,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냐.”

에일라가 무겁게 목소리를 깔며 분위기를 잡았다.

그녀의 등장만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에일라에게로 향했다.

“장군님! 갑자기 수인족들이 들이닥쳐서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수인족이? 협곡에 살고 있는 자들이 갑자기 무슨 일이오?”

에일라가 입구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수인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엘프와 수인족은 수 세기 동안 교류가 전혀 없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자신들을 드레젠의 친우라고 소개하는 이들을 보며, 에일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본인은 사기라라고 한다. 엘프들과 중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곳까지 찾아왔다. 로드를 만날 수 있는가?”

“사기라…… 사기라!?”

이번엔 에일라가 놀랄 차례였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 대륙을 휩쓸었던 피의 여왕.

죽었다고 알려진 그녀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으니.

솔직히 에일라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피의 여왕입니까?”

“그렇게 불렸었지. 지금은 드레젠이라는 남자와 함께 다니기로 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숲속에서 에일라가 느꼈던 그 기운의 주인공, 드레젠이 등장했다.

에일라가 다시 놀랐다.

첫 번째로 대단한 위명을 가졌던 사기라가 부활했다는 것.

두 번째로 그녀가 드레젠과 함께하기로 했다는 것.

“은인, 대체…….”

“묻고 싶은 말이 많겠죠? 하이디엔과 함께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니, 바로 안내 부탁드리죠.”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너희들은 이제 다시 임무에 집중하거라.”

“네.”

철통같은 보안을 책임지는 엘프들이 다시 임무로 복귀했다.

사기라는 새로 꾸며진 엘프들의 도시를 보고 작게 감탄했다.

많이 나약해진 수인족과 달리, 엘프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이렇게 보니, 슬론과 다른 수인족들에게 아주 작은 실망감이 생겼다.

“엘프들은 아직도 저력이 있군. 하지만 숫자가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맞습니다. 한 번의 재앙을 겪었죠. 본래는 대륙 끝의 대수해에 있었습니다만, 드레젠 님의 은혜를 입고 이쪽으로 오게 되었죠.”

“호오, 그대, 꽤 여기저기 설치고 다녔구나.”

설치고 다녔다니.

어감이 꽤 이상했지만, 사기라는 순수하게 감탄하는 중이었다.

드레젠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얼마나 설치고 다녔을지는 조금 더 봐야 할걸?”

“또 있단 말이냐?”

“보면 알 거야.”

-많지;

-ㅋㅋㅋㅋ 오지게 많지

-거인족까지 보면 기겁하겠넼ㅋㅋ

-표정이 기대된다

-ㅋㅋㅋ 빨리 회담하자 빨리!

시청자들도 어서 빨리 모든 종족이 모였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대륙 곳곳에 떨어져 있던 종족들의 동맹이라니.

“로드, 드레젠 공과 수인족의 사기라가 오셨습니다.”

“……들어오도록.”

하이디엔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현실에서 실제로 하이디엔과 알콩달콩 연애 중이었던 드레젠은,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설마, 수인족이랑 같이 온 것 때문에 그런 건가?’

그가 어깨를 으쓱하고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이디엔은 훅 풍겨오는 수인족 특유의 진득한 마나를 느끼곤 인상을 찌푸렸다.

예로부터 엘프와 수인족은 서로 상극이었으니까.

그냥 본능적으로 꺼려하는 것들을 가지고 타고 났을 뿐, 전쟁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어서 오세요. 드레젠. 옆에 분은?”

“사기라라고 한다. 피의 여왕이라고 불렸다지?”

“사기라…… 분명 그런 이름이 있었죠. 죽은 줄 알았는데-.”

“무의 추종자들이 날 살렸더군.”

하이디엔의 고운 아미가 잔뜩 찌푸려졌다.

무의 추종자라니.

그 이름만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엘프들에게 있어, 그 이름은 전혀 반가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자가 왜 지금 이곳에 있는지, 납득시켜줬으면 좋겠는데요.”

“당돌한 로드로군, 그래. 일족의 지도자라면 응당 그런 당당함은 있어야지. 날 세뇌하려 했던 것 같은데, 여기, 드레젠이 날 구해줬다.”

“성좌들이 대현자를 잡아갔어. 대현자가 사기라를 세뇌시키려 한 것 같더군.”

하이디엔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자.

그녀도 실버문에서 활동했을 때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대륙의 모든 대소사를 알고 있다고 전해진, 그야말로 현자 중의 현자라고 들었다.

그런 자를 성좌가 잡아갔다니,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째서…… 그는 인간이 아니었나요?”

“인간이라고 해도 무의 추종자에게 안 붙은 자는 없으니까. 모든 종족들이 그랬지.”

“그래…… 그랬군요. 그렇다면 남은 영웅들은 이제 둘인가요?”

“한 명은 있으나 마나고, 다른 한 명은 드래곤 밑에서 마법을 배우고 있어.”

하이디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사기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그들에게서 안전한 것이 맞나요?”

“그렇다. 아, 이 말투는 이해해 주도록. 오랜 기간 이렇게 하다 보니…….”

“괜찮아요. 앞으로 같이 일해야 할 사이니까.”

하이디엔이 손을 내밀었다.

사기라 역시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여인의 손이었지만, 단련된 기사 못지않게 단단한 손이었다.

“그대도 무기를 다루나 보군.”

“저 창이 제 주 무기죠.”

하이디엔이 한쪽에 걸려있는 묵빛 창을 가리켰다.

사기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을 때쯤, 드레젠이 말을 꺼냈다.

“하이디엔, 이곳 회장을 좀 빌려줄 수 있겠어?”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만.”

“그래, 그럼 이제 진짜 동맹을 만들어 보자고.”

드레젠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더 올 사람이 남아 있는 걸까?’

두 여인의 눈동자가 그렇게 묻고 있었다.

드레젠이 웃었다.

“여기, 이 자리에 모든 종족이 모일 거야. 기대하고 있으라고.”

그는 충격적인 말을 건넸다.

#2

깊은 동굴 속.

붉은 머리칼을 질끈 묶은 남성이 니오베를 마주하고 있었다.

짙은 마나가 주변을 잠식했다.

한 일족의 수장인 니오베 역시 긴장할 정도의 마나였다.

“그래, 그 인간이 이 세계를 구한다고.”

“그렇습니다. 로드.”

“재미있군.”

피식 웃는 모습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그는 감히 단일개체로 브락시아 최강자에 오른 자였다.

홀로 그를 감당할 생물은 단연코 없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그가 제일 처음 들은 말은 ‘구원자’가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적’이 나타났다는 것.

“진정 그가 성좌가 택한 자가 맞는가?”

“그렇습니다.”

“그럼 또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펄럭-.

모든 색의 비늘을 다스리는 정점만이 입을 수 있는 망토.

이 브락시아를 최종적으로 수호하는 ‘수호자’의 증표이기도 했다.

그 망토가 폭군의 상징으로 바뀐 것도 모른 채, 그가 움직였다.

“지금쯤 엘프의 성역에 있을 겁니다.”

“흥, 하등한 것들끼리 모여 있기는.”

그래도 궁금했다.

수 천 년을 지내온 동안, 성좌의 선택을 받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진정으로 이 세계를 구원할 자인지, 드래곤 로드가 직접 시험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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