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3화
263화 – 전쟁 준비
#1
커뮤니티에선 상당히 이슈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저지른 행위는 훗날 다른 게임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부정행위였으니, 사태가 꽤 심각했다.
사나다 마에를 비롯한 선수들은 모두 은퇴를 선언한 상태.
<브락시아 측에서는 일본 선수단에게 소송을 진행할 것.>
이는 게임의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었다.
별들의 전쟁도 승부 조작 때문에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가.
하이디엔은 강력한 의사를 표명했고, 일본은 현재 수십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판이었다.
“자, 그럼 나는 방송을 진행해 볼까?”
며칠 만의 게임 방송이었다.
꽤 오랜만이었는데, 이젠 정말 끝이 보였다.
전면전을 준비하기 위해 각 종족들을 불러 모으기만 하면 끝.
그 뒤로는 전쟁이었다.
“다들 안녕하십니까.”
-ㄷㅎ!
-ㄷㅎ!
-와! 우승 축하드래요!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짘ㅋㅋㅋ
방송을 틀어놓자마자 우르르 몰려온 시청자들.
대한민국을 우승으로 이끈 주역이자, 단 한 라운드도 패배하지 않은 전설.
그의 몸값은 더욱 올라갔다.
시청자가 오르는 속도도 심상치 않았다.
“오늘따라 새로운 분들이 많이 보이네요.”
드레젠은 시청자들의 닉네임을 대부분 기억하는 편이었다.
외우진 않아도 보면 딱 아는, 그런 미묘한 기억력이었다.
오늘따라 새로운 닉네임이 많이 보이고 있었다.
대회의 여파였다.
‘새로운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네. 긍정적인 반응인가?’
후원도 빵빵하게 터졌다.
점점 더 많은 후원이 겹쳐서 터지기 시작했다.
다 읽기도 힘들 정도로 후원이 빠르게 지나갔다.
“여러분? 일반 방송 진행해야 하니까, 후원은 들어오게만 하겠습니다.”
-ㅋㅋㅋㅋ
-후원 가즈아!
-선생님 상금도 안 받으셨다면서요.
-엌ㅋㅋ ㄹㅇ?
-아니 이건 천산가 호군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아시겠어요?”
사람들은 깔깔대며 서로 떠들었다.
대회 후기 같은 것들을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적당히 빌드업이 끝났을 때, 드레젠이 오늘 할 콘텐츠를 밝혔다.
“이제 스토리도 막바지기 때문에, 앤딩을 향해 달려가겠습니다.”
-이제 전쟁인가!
-진짜 허구한 날 싸우겠넼ㅋㅋ
-시참 하나요 시참!?
“네, 중요한 전투 때마다 시참 할 겁니다. 여러분의 경험치를 책임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들이 좋다고 후원을 쏴 줬다.
그중에서는 이번 올스타전에서 활약한 프로 선수들도 있었는데, 그들 역시 꼭 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프로분들도 다 환영합니다. 모두 오셔도 됩니다.”
-진챠 스케일 장난 아니겠다
-ㄹㅇ 기대된닼ㅋㅋㅋ
-현기증 난다구요! 빨리 하자구요!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이브 더 브락시아를 실행시켰다.
사기라의 군대를 이끌고 부족으로 돌아가는 길.
거기서부터 게임이 재개되었다.
저 멀리 슬론이 머무는 쉘터가 보였다.
“저기가, 내 후손들이 사는 곳인가?”
“맞아.”
“기운 자체가 많이 변했군. 많이…… 유들유들해졌어.”
“그때랑 지금은 다르니까.”
사기라는 묘한 눈빛으로 부족원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자신이 예전에 정복전쟁을 했을 때도 이곳에서부터 시작했었지.
지금보다 훨씬 많은 부족민들이 살아갈 때였다.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이 아이들이 쓸모가 있겠어.”
“많은 도움이 될 거다.”
드레젠은 확신했다.
엄청난 숫자의 수인족.
그것도 전성기때 대륙을 질주했던 베테랑 수인들.
이들은 훌륭한 별동대며, 기동타격대이자 선봉대였다.
‘생각지도 못한 전력을 얻었으니, 이제 모두를 규합하러 가야겠군.’
서로에 대한 연락망을 만들고, 브락시아의 이름 아래 모든 종족을 뭉치게 할 생각이었다.
분열과 배신, 서로에 대한 분열로 인해 패배한 전쟁이었다.
이제는 달라야 했다.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겠지.
“후손에게 인사하러 가야지. 이제 수인족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인족들이 더 있을 텐데, 그건 어떻게 할 건가.”
“네 소식이 들리면 자연스럽게 모여들 아이들이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수인족에게 있어, 사기라의 이름은 절대적이었다.
대한민국으로 치자면, 이순신 장군께서 다시 살아나 군대를 모집하는 것과 똑같았다.
그만큼 사기라에 대한 환상과 전설이 수인족 전체에 퍼져 있었다.
“가자고.”
“그래. 이제 모두를 모을 거다.”
사기라는 조용히 지평선을 바라봤다.
자신의 후손을 만나러 가는 길.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자신의 냄새를 맡았음일까, 수인족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분은?”
“……대체-.”
“여, 여왕님?”
사기라는 자신을 알아보는 수인족을 둘러봤다.
살기가 옅어지고, 덩치가 작아졌다.
대륙을 휘젓고 다녔던 그 수인족이라고 생각하기엔 다소 나약해 보였다.
이들이 진정 수인족인가?
“나의 아이들, 많이 평화로웠구나.”
“지금까지는 평화의 시대였으니까. 다들 서로의 영역에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었지.”
무의 추종자가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런 시대였다.
사기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대는 흘러갔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이제 수인족의 시대는 갔다.
“지금 이곳을 다스리는 아이가 누구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사기라의 물음에 수인족 한 명이 대답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사기라 님이십니까?”
“그렇다. 내 후예여.”
사기라의 고고한 모습에 압도당한 슬론.
진정한 수인의 세대라고 불렀던 시대, 역사 속에서만 존재했던 인원들이 눈앞에 있었다.
덩치도 컸고, 가진 힘도 달랐다.
속도 역시 지금 수인들과 차원이 다르겠지.
“지금 수인족을 이끌고 있는 슬론이라 합니다. 정말…… 정말 영광입니다.”
“나는 이 남자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명맥이 끊기지 않아 다행이구나.”
슬론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가 아는 피의 여왕이라면, 조금 더 날카로운 말들로 지적할 것 같았기 때문.
슬론의 표정을 읽은 사기라가 미소를 지었다.
“조금 아쉬운 모양이구나. 왜, 본인이 해코지라도 할 것 같았느냐?”
“……사실 그렇습니다. 분명 예전에 비해 저희는 덩치도, 힘도 줄었으니까요.”
“나라고 그런 걸 모르는 건 아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어야지. 변화를 읽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란다.”
“명심하겠습니다.”
드레젠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기라는 단순히 전쟁으로만 영토 확장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무력으로만 통솔했다면, 분명 내분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세운 수인족의 제국은 꽤 오랜 기간 번성했다.
나름 정치도 잘 했다는 뜻이었다.
“무의 추종자, 그리고 베리드라는 마족이 등장했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들이 나를 죽음에서 부활시켰지.”
“그렇습니다. 이제 그들이 곧 대대적으로 쳐들어온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이 남자와 함께 준비해야 한다. 브락시아를 지키려면,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어.”
사기라의 안목은 정확했다.
그녀는 지금 수인족의 상태를 보고, 대륙 전반의 상태를 판단했다.
다들 이렇게 평화롭게 살아갔다면 전반적인 수준도 많이 내려갔을 테니까.
“인간들은 어떠한가, 모두 그대처럼 고강하진 않을 것 같은데.”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옛날에 비해 약해지지도 않았지. 네가 기억하는 인간과 비슷할 거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론, 사기라와 함께 협곡을 바라본 사기라.
그녀는 추진력이 대단했다.
“그래서, 다른 종족들은 언제 만날 건가? 이왕이면 바로 만났으면 좋겠는데.”
“말 한번 잘했어. 바로 만나러 가자. 가장 가까운 쪽은 바로 엘프들이로군.”
-노빠꾸 직진 누나네
-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
-새로운 히로인 각인가!
-아니다 이 악마들아!
-하이디엔과 사기라라니! 투샷이라니!
사기라 덕분에 일이 편해졌다.
슬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들의 여왕이라, 그의 세대에서는 절대 만나볼 수 없던 사람이었다.
“현재 엘프 로드는 누구지?”
“내 동료, 하이디엔이라고 있어.”
“그자도 미카엘의 창술을 이어받은 건가?”
“맞아. 거기다 9서클이 될 재능을 가지고 있지.”
재능만 보자면 드레젠 본인보다 훨씬 나은 수준의 엘프 로드였다.
사기라는 작게 감탄했다.
9서클, 그리고 미카엘의 창술을 마스터한 인물이라니.
정말 엄청난 전력이었다.
“한번 붙어보고 싶군.”
“그건 나중에 시간 날 때 하고, 일단은 출발하자고.”
“바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슬론이 말했고, 드레젠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사절단이 완성됐다.
동의를 얻을 것도 없었다.
수인족은 로드의 결정이 곧 수인족 전체의 결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준비 끝났습니다.”
“출발하지. 시간이 없다.”
뭐가 그리도 급한지, 사기라가 재촉했다.
드레젠이 와이렉스를 호출했다.
백색의 와이번이 하늘을 가르며 등장하는 모습에, 수인족들이 침을 삼켰다.
시청자들에겐 택시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으나, 그 역시 몬스터들 중에서는 최상위 포식자였으니까.
[뭔가 정말 오랜만에 부르는군. 주인.]
“그런가? 오늘도 잘 부탁한다.”
[그러지. 요즘 통 날지 못해서 심심하던 차였다.]
“이 와이번……비스트 마스터의 소환수였군.”
“맞아, 비스트 마스터를 알고 있나?”
“왜 모르겠는가. 나와 함께 자웅을 겨루던 사내였는데. 언젠가 홀연히 모습을 감춰, 뭐 하는지 모르고 지냈었지.”
사기라가 와이렉스를 바라보며 우수에 젖은 눈동자를 보였다.
그녀답지 않게 감상적인 모습이었다.
와이렉스 역시 사기라를 알아보았다.
[태우고 싶지 않은 손님도 있군.]
“옛일은 잊어버리라고. 지금은 동료니까.”
[흥, 이번 한 번뿐이다.]
드레젠의 부탁에 결국 고개를 숙여, 사기라와 수인족들을 태웠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와중, 드레젠이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새로운 황제는, 3황자가 되는 게 좋겠어.’
3황자는 본래 전쟁 중에 전사하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거인족과의 싸움을 지속했던 황자.
그 짐도 덜었으니, 남은 것은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것뿐이었다.
적당히 밀어만 준다면 3황자는 황제가 되고도 남을 재목이었다.
“더 빨리, 시간이 없다.”
[꽉 잡아라-!]
콰아아아아-!
소닉붐을 일으키며 초음속 비행을 시작하는 와이렉스.
이제 브락시아의 구원까지, 단 한 걸음만 남았다.
피비린내로 얼룩진 한 걸음이겠지만, 드레젠은 기꺼이 웃으며 그 길을 걷겠노라 다짐했다.
전 종족이 모이는 화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