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1화
261화 – 진짜 실력은 넘을 수 없다
#1
결승전 당일.
많은 이들이 도쿄 스타디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암표가 만연하고 밖에 있는 스크린으로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
전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인종이 모여, 하나의 축제를 만들었다.
“이야, 이렇게 오니 진짜 사람 많네.”
“이참에 우리도 제대로 구경하자고.”
“흐흐, 좋아.”
가브리엘과 미국팀.
그들 역시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을 구경하기 위해 사복 차림으로 경기장을 찾았다.
VIP 취급을 받았지만, 관객들과 함께 입장하는 기분은 색달랐다.
가브리엘은 매우 밝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사나다 마에? 그 선수가 얼마나 잘하는지 확인부터 해 봐야겠어.”
“솔직히 너보단 못하지 않을까?”
“그건 당연한 일이지만, 저쪽도 나름 준비한 게 있을 거란 말이지.”
일본.
사나다 마에만 놓고 비교한다면, 자신보다 한참 떨어지는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일본의 진짜 강점은 한국 못지않은 팀워크였다.
개인주의를 앞세운 영미권과 달리, 끈끈한 유대감으로 뭉쳐 있었으니까.
“진짜 문제는 팀전이지. 한국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맞아. 한국 팀이 그 팀워크를 깨지 못한다면…… 결국 패배하게 될 거야.”
“게다가 일본이 그냥 넘어갈까? 내가 아는 일본은 아닌데.”
일본은 미국 못지않게 권모술수에 능한 나라였다.
마냥 나쁘다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도 권모술수를 잘 쓰는 자들이 항상 승리해 왔으니까.
그걸 어떻게 들키지 않고 활용하는가.
그게 낙인이 될 것이다.
“아마 재밌는 승부가 될 거야.”
가브리엘은 개인적인 바람이 있었다.
지금까지 드레젠은 무조건 대장전에 나왔다.
그가 팀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정말 엄청난 활약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7경기까지 가야 하니까.’
일방적인 승부로는 절대 한국을 넘어설 수 없다.
이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가브리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경기장 내부로 들어갔다.
#2
대기실.
한국 팀원들은 옹기종기 모여 일본 팀의 경기 영상을 보는 중이었다.
일본 선수들의 스타일을 분석하고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곧 결승전이 시작됩니다. 선수들은 준비해 주세요.]
“스탠바이 부탁합니다!”
스태프가 와서 긴급하게 소리쳤다.
비장한 표정으로 변한 선수들이 일어섰다.
일본과 붙기 위해서 이곳까지 왔다.
한일전.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되는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머쥐겠노라 다짐했다.
“가자.”
“첫 올스타전 우승은 우리 거다!”
한국 선수들은 진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맨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강일이 훈훈하게 웃었다.
역시 사람은 큰 무대에 서야 성장한다.
더 큰 역경, 더 큰 시련을 겪으면 더 큰 사람이 되는 법.
지금 선수들이 그러했다.
[한국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이곳까지 온 무패의 팀! 지금- 입장합니다!]
위풍당당한 포스를 뿌리는 한국팀.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화려한 티저 영상이 쏟아졌다.
그간의 활약을 잘 편집해서 주르륵 틀어주는 모습.
한국 팀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이야 잘 만들었다.
-그래도 공은 들였넼ㅋㅋ
-어떤 사업인데, 당연히 들여야지 공ㅋㅋㅋㅋ
-뽕맛 지대루네ㅋㅋㅋ
방송에서도 난리가 났다.
간단한 인터뷰가 지나간 후, 일본 팀이 입장했다.
한눈에 봐도 긴장한 티가 역력한 모습.
특히 사나다 마에의 눈동자는 불이 타오를 듯 빛났다.
‘찔리는 것이 있으니 더욱 날카롭게 가시를 세우겠지.’
강일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혹시 잘못한 무언가를 들킨다면 어쩌지?’라는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물론, 이건 강일이 미리 들은 것이 있기에 알아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싱크로율을 얼마나 낮췄을까?
“이번 판은 힘들 겁니다. 그래도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알겠어요.”
선수들의 소개가 끝나고, 모두 캡슐로 들어갔다.
대기실에 입장하자, 확실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진 것 같았다.
다른 선수들을 둘러보니, 아직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
‘조금씩 차이를 실감하겠지.’
몸을 움직여 보았다.
싱크로율에 적응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약 10%의 차이가 있는 것 같으니, 감안해서 전투를 이끌어 나가면 되겠지.
한국 선수들은 처음엔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10%.
꽤나 큰 리스크였으니까.
[대장전에 축전시킬 선수를 선택해 주세요.]
드디어 벤&픽 룰이 다가왔다.
당연히 드레젠, 아트, 다이노는 고정으로 대장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해설진들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확실한 1승을 챙겨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트 선수! 결정적일 때 손발이 꼬여버렸습니다.”
“결승전이라 긴장한 걸까요? 이상하네요.”
-??
-방금 뭐지?
-찐으로 당황한 표정이던데;;
-아니 이걸 이렇게 진다고!?
첫 세트의 결과는 아트 선수의 석패였다.
아트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경기장을 내려왔다.
“고생했어. 나머진 이 누나가 해 줄게.”
다이노가 자신만만하게 나서려 했다.
그녀 역시 아트 선수의 컨디션이 조금 안 좋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경기장에 올라가려는 그녀를 잡는 아트.
그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듯, 다이노에게 말했다.
“뭔가 이상해요, 누나. 조심해서 상대하세요.”
“그 정도야?”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게 늦었어요. 아무튼, 이상하니까, 조심해야 해요.”
아트 선수가 이 정도까지 말하는 걸 보아, 뭔가 있긴 있는 모양.
다이노 선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아하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그녀가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아, 다이노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이번 라운드를 따내는 건 당연한 이야기겠죠?”
“그렇습니다. 관건은 얼마나 체력과 마나를 보존하면서 라운드를 가져가느냐겠죠.”
“빠르게 끝내줬으면 좋겠군요.”
해설위원은 걱정스러운 의견을 내놓았다.
선수들의 컨디션이 확실히 안 좋아 보였으니까.
걱정이 가득한 소리를 하는 사이, 경기가 시작되었다.
“다이노 선수! 초반부터 맹렬하게 밀어붙입니다!”
해설위원들이 열변을 토하는 경기장 속, 다이노는 위화감을 느꼈다.
아트 선수가 말하는 위화감.
그게 뭔지 정확히 파악했다.
‘싱크로율이 낮은데?’
평소 그녀가 플레이하던 것보다 0.5초에서 1초 사이의 렉이 있었다.
캐스팅도 위화감이 있었고, 마나가 모이는 것도 느렸다.
그렇다면 미리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닌가?
다이노의 생각은 간단했다.
“재밌는 장난을 쳐놨네. 그래도 진짜 실력 앞에서는 안 통하지.”
미리 대비하고 와서일까, 다이노는 여유롭게 라운드를 따냈다.
처음 교전할 때를 제외하면, 한 대도 맞지 않은 것.
그 장면을 본 일본 팀원들이 경악했다.
“저게 가능해?”
“……진짜 괴물들인가?”
“설마…… 이대로 지는 건 아니겠지?”
사나다 마에는 한국팀의 저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잘 하면…….
‘아니야, 저들은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 당연히 적응이 빠를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과 적응력이 다른 선수들.
선수들 사이에서 그런 자들을 보통 엘리트라고 불렀다.
그런 이들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빠른 적응력을 보이는 선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대단한 아트 선수도 밀렸어. 대장전은 반드시 우리 쪽으로 가지고 온다.’
그녀가 특별 주문한 것이 있었다.
드레젠도 어쩔 수 없는, 비장의 무기였다.
첫 대회이고, 아직 허술한 부분이 많은 점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부정행위.
그녀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제 연습은 해 놨어.’
적응은 충분히 해 뒀다.
그녀는 묵묵히 경기를 바라봤다.
경기 내용 자체는 팽팽했다.
한국 선수들은 10%나 낮은 싱크로율에도 불구, 분전했다.
사나다 마에가 나갈 때는, 드레젠이 앞에 서 있지도 않았다.
‘강해. 진짜 실력이 이런 거구나.’
한때 이런 말이 있었다.
일본에서 촉망받는 바둑 천재가 한국에 와서 일반인에게 참패했다는 소식.
사나다 마에 역시 그 소식을 들었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지.
‘그걸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이야.’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재능, 진짜 재능에서 차이가 나는 상황이었다.
10%.
누군가에게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치였건만, 저들에게는 더 날아오를 기회를 제공한 것 같았다.
‘나는 달라야 해.’
사나다 마에는 검을 움켜잡았다.
전설의 무인, 사사키 코지로가 사용했다던 거대한 카타나와 비슷한 형태의 무기.
마치 일본을 노리고 만든 것 같아 그녀가 택했던 캐릭터였다.
‘이 캐릭터로 일본을 세계 정상으로 만들겠다.’
세상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소리가 느리게 흘러갔다.
자신만 빼고 0.5배속으로 틀어놓은 동영상 같았다.
싱크로율 150%.
그녀가 택한 비장의 무기였다.
[양 선수 준비-!]
‘최대한 빠르게 끝낸다.’
가브리엘 때처럼 요행을 바라는 건 무리겠지.
아마 눈치챌 이들은 모두 눈치챘을 것이다.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어서 그럴 뿐.
길게 끌 이유는 없었다.
[시작-!]
장막이 사라지고, 그녀가 사라졌다.
퍼석-!
기다란 마나의 띠가 그려지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한국 선수가 쓰러졌다.
와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쏟아졌다.
“사나다 마에 선수! 정말 엄청난 일격이었습니다!”
“이 선수가 이런 기량을 가진 선수였나요? 마치 각성한 것 같습니다!”
일본 해설위원들이 열심히 떠들어댔다.
그녀가 보여준 일격은, 그야말로 전설의 무사와도 같았으니까.
이제 마지막 라운드!
드레젠만 꺾는다면, 한국 팀에게서 처음으로 대장전을 빼앗는 팀이 되는 것이었다.
“흐음-.”
“코치님, 이거 좀 어렵겠는데요? 너무 빨랐어요.”
“괜찮아요.”
드레젠은 여유롭게 경기장으로 올라갔다.
진짜 실력 앞에, 수치 놀음은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
실제 전쟁에서 이런 상황이 없었을 것 같았는가?
전쟁에선, 더 더러운 상황도 많이 겪어봤다.
“이건 뭐, 다시 돌려놓을 필요도 없겠구만.”
이 정도는 애교 수준으로 봐줄 만했다.
온갖 디버프와 저주가 난무하던 시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온 드레젠이었으니.
그가 웃으면서 사나다 마에를 바라봤다.
‘나가면 문제가 될 텐데.’
그건 저쪽 사정이겠지.
감각을 증폭시킨 후유증을 감소하고서라도 이기고 싶다는 마음.
그건 인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자신이 쌓아온 경험에는 미치지 못했다.
[경기 시작-!]
경기가 시작되고, 마나의 띠가 보였다.
일반인의 육안으로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최속의 발도술.
사나다 마에는 반드시 적중시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검을 내질렀다.
콰아앙-!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설프군.”
여유로운 표정의 드레젠이 한 손으로 검을 막아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