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0화
260화 – 결승전에서 일어난 일
#1
드레젠의 갑작스러운 발언.
심사위원들은 물론이고 방송을 보고 있는 자들, 해설위원들까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떤 내용을 말했을까?
심사위원들이 급히 모여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요? 드레젠 선수가 급히 심사위원에게 무언가를 전달했습니다.”
“추측하건대, 페널티를 지려는 것이 아닐까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잘 나와 있었죠.”
“아- 그럼 혹시 정정당당하게 라운드를 치르겠다는 걸까요?”
아트 선수를 비롯한 연달아 세 명을 쓰러뜨린 가브리엘이었다.
솔직히 드레젠이 출전해서 검 몇 번만 휘둘러도 승부가 날 수준이었으니, 제대로 된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드레젠은 재미있는 싸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심판이 가브리엘에게 다가왔다.
“가브리엘 선수, 드레젠 선수가 가브리엘 선수의 체력, 마나를 모두 채워서 대결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어떠십니까?”
“……흠.”
순간, 가브리엘은 기분이 살짝 상했다.
완전히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이 아닌가.
불리한 조건에서도 싸워야 하는 것이 프로였다.
사정을 봐준다는 건, 결국 상대방의 긍지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정규 리그도 아니고, 관객들에게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런 거라면 좋습니다.”
가브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축제였다.
세계의 최강 팀을 가리는 자리기도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의 의도를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규 리그에서는 아마 안 될 겁니다.”
“거긴 살벌한 전장입니다. 절대 안 되죠.”
심사위원이 끄덕이고 접속을 종료했다.
잠시 회의를 한 끝에, 결국 만전의 상태로 전투하기로 했다.
해설위원들에게도 그 소식이 전해졌다.
“아, 방금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드레젠 선수가 과감한 선택을 내렸습니다. 가브리엘 선수의 체력과 마나를 모두 회복한 상태로 경기를 치른다고 합니다.”
“손쉽게 승리를 취할 수 있음에도 정정당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 바로 이겨야 되는데 ㅜㅜ
-이러다 지면 어쩔라고;;
-선생님 못 믿음?
-ㅋㅋㅋ 저러다 지면 개쪽이지
-그래도 매너는 좋넼ㅋㅋㅋ
시청자들의 의견이 반으로 갈렸다.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해서 복잡하게 만드느냐, 혹은 좋은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는 의견이었다.
어쨌든, 흥미진진한 무대임은 변함이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흥미진진한 무대임은 분명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저도 방송을 즐겨 봤는데, 가브리엘 선수와 드레젠 선수에 대한 논쟁은 끊이질 않았죠.”
“그럼 이번 경기에서 결판이 나겠군요. 이건 승패를 떠나서 정말 흥미진진한 매치로군요.”
“과연 드레젠 선수가 어떤 활약을 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해설위원이 열심히 떠드는 사이, 경기가 준비됐다.
서로 완벽히 같은 조건에서 싸우게 되는 것.
이제 세기의 대결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 시작합니다.”
[양 선수 준비-!]
드레젠은 검을 늘어뜨리고 가브리엘을 바라봤다.
반면, 가브리엘은 페베스 검술의 준비 동작을 취했다.
‘날 얕보고 있는가.’
얕보고 있다면, 방심할 때 단번에 칠 것이라 다짐했다.
방심하고 있는 그의 허점을 찌르기 위해 마나를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그의 특기 중 하나로, 준비 동작에서 다른 기술을 쓰는 방법이었다.
드레젠은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웃기는 녀석이군.’
결국, 가브리엘은 자신이 보여주었던 검술을 바탕으로 싸우려 했다.
10년 이상 검술을 수련한 드레젠.
이제 막 몇 개월 수련한 가브리엘.
똑같은 검술을 배워도 깊이 자체가 달랐다.
검을 휘두르는 건, 수많은 요소가 겹쳐 만들어지는 동작이었으니까.
[시작-!]
경기가 시작되었다.
가브리엘은 한 줄기 빛줄기가 되어 드레젠에게 달려들었다.
한 방이 가장 강한 검술, 사라미스 검술이었다.
드레젠 역시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제법이군.”
“크윽, 역시 얄팍한 수는 안 통하나?”
거세게 튕겨 나가는 가브리엘.
사마리스 검술을 쏟아부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다음은 페베스 검술을 사용했다.
거기에 스킬을 곁들이니,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뿜어져 나왔다.
“어설프군.”
드레젠은 가볍게 검을 들어 공격을 상쇄했다.
마나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순간적으로 마나의 성질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을 한 번 휘둘렀는데, 스킬이 상쇄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드레젠 선수가 검을 휘저었는데 스킬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허어, 정말 놀랍습니다. 저런 기술이 있나요?”
“스킬 셋에서는 없습니다만, 이게 또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선수의 능력만 된다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기예는 모두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스킬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기술이나 기예를 끌어내는 건 가능했다.
예를 들어, 파이어 볼이라는 스킬은 만들어낼 수 없지만, ‘폭파’라는 속성은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그렇기에 상쇄하는 속성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했다.
“이건 어떠냐-!”
이번에는 그림자 기사단이 쓸 법한 단검술이 튀어나왔다. 군노이스 자작가, 베스티안 백작가의 검술도 튀어나왔다.
가브리엘은 홀린 듯 검을 휘둘렀지만, 드레젠은 그 파훼법을 모두 선보였다.
공격이 막힐 때마다, 가브리엘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제길, 뭘 해도 안 되는 건가, 따라만 해서는 안 되는 거냐고!’
그래, 이게 문제였다.
가브리엘은 속성으로 강해진 스타일이었다.
분명 재능은 넘쳤지만, 무언가를 연구하고 강해질 시간은 부족했다.
반면 드레젠은 어떤가.
‘뛰어난 재능이군. 이대로 5년만 더 지나면 정말 강해지겠어.’
아마 또래엔 적수가 없을 거다.
아트 선수와 더불어 프로리그 최고의 선수로 오랜 시간 자리매김하겠지.
하지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드레젠은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을 조금 알려주기로 했다.
“흐아압-!”
“흠-.”
사라미스 검술로 쭉 뻗어오는 가브리엘.
드레젠 역시 똑같은 검술로 응수했다.
퍼엉-!
같은 초식을 썼음에도 더 뒤로 물러난 것은 가브리엘이었다.
캐릭터의 스텟은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왜-.’
똑같은 자세, 똑같은 기술을 썼는데도 더 많이 밀렸다.
마나도 비슷하게 썼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신이 더 못하단 말인가!
‘캐릭터의 차이 때문에? 아니야, 드레젠도 나와 비슷한 스텟의 캐릭이다.’
가브리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숙련도 차이인가?
그래, 그는 베타 테스터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넘을 수 없다 이거지.’
가브리엘은 분한 마음에 검병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서 보여주기로 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쏟아붓는다면, 더 위로 올라갈 답을 찾을 수 있겠지.
그 길은 드레젠이 보여주리라 믿었다.
“이길 수 없다면, 모두 보여주고 가지.”
“좋아, 와 봐라.”
드레젠은 명불허전이었다.
가브리엘은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부딪쳤다.
똑같은 기술로, 더 나은 부분까지 보여주며 가브리엘의 체력을 조금씩 갉아먹은 드레젠의 승리였다.
#2
결국, 미국과의 준결승전은 2:3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한국도 충분한 데이터가 있었고, 무엇보다 드레젠의 실시간 코치가 있었던 것이 주요했다.
선수들은 이제 그의 말이라면 마나로 똥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으아아아, 이제 일본만 이기면 된다!”
“다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우승컵을 들어 올립시다.”
“네!”
드레젠은 숙소로 가기 전, 하이디엔의 톡을 받았다.
그는 선수들을 먼저 보내고 조용히 그녀를 만나러 갔다.
하이디엔은 거대한 벤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요? 미안해요, 이렇게 불러내서.”
“괜찮아. 이야, 벤 따듯하고 좋네.”
벤 안쪽은 널찍했다.
강일은 하이디엔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하…… 일본에게 판을 맡길 때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치졸하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다 예상하고 있었는데 뭘.”
“그쪽에서 동기화를 조절할 것 같아요. 아마 한국팀 캡슐을 조작해 놓을 겁니다.”
“그래 뭐…… 근데 캡슐 동기화 정도야 네가 풀 수 있지 않을까?”
하이디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캡슐 동기화는 결국 마나로 이뤄지는 것.
멀리서 마나를 조작하는 방법만 알고 있다면, 캡슐의 동기화를 조정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제가 나설 거 있나요. 여기 영웅님이 계시는데.”
하이디엔이 강일의 눈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녀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은 강일 역시 마주 웃었다.
팀원들에겐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일본에게는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마음먹었으니까.
#3
준결승전이 모두 끝났다.
결국, 한일전이 성사된 이번 시나리오.
사나다 마에는 인지도를 확 끌어 올릴 수 있게 되었는데, 그녀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장전에서도 그랬지만, 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면 한국 팀은 무난히 이길 수 있을 거야.”
“선수들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사실 걱정이었다.
지금 일본 팀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으니까.
한국을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했다.
특히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준 드레젠과 몇몇 선수들의 위용 때문이었다.
‘팀전에도 정말 엄청난 선수들이 많아.’
분명 올스타전이 시작되기 전엔 이 정도 기량을 선보이지 않았던 선수들.
얕보고 있었다가 미국전에서 그 진가를 알아봤다.
사나다 마에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겠지.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감독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싱크로를 더 낮춰 주세요. 확실하게 꺾을 수 있게.”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일단 이기고 생각하려고요.”
이참에 대장전까지 이길 생각을 품은 사나다 마에.
불명예는 한순간이었다.
결국, 가문은 우뚝 설 것이다.
“그럼, 내일 뵙죠.”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결승전에서 일어날 일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