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7화
257화 – 공포의 팀
#1
우리는 게임을 하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상대를 만날 때가 있다.
자신 역시 게임을 좀 한다고 생각하는데, 손도 못 쓰는 상대를 만났다?
둘 중 하나로 생각할 것이다.
‘저놈 핵 쓰네.’
‘왜 이렇게 잘해!?’
엘레노어는 이 두 가지의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는 중이었다.
드레젠.
그 위명은 익히 들어왔다.
프로를 가르치는 자.
코치 중의 코치이자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이.
‘이 정도라고?’
엘레노어는 절망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저 정도까지 강해질 수 있을까?
혹시 불법 프로그램을 쓴 것은 아닐까?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경기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다음 선수, 준비해 주십쇼.]
대장전은 입은 피해를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지 않았다.
입은 피해의 30%
딱 그 정도만 가지고 계속 상대방과 싸워야 하는 것.
대장전의 백미이기도 했다.
“저게 말이 돼?”
“마나 소모가 엄청나네. 딱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진짜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 장난 아니네.”
“이게 퍼포먼스지!”
나름대로 우승 후보인 영국.
그중에서도 에이스급인 엘레노어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줄이야.
관객들이 술렁이는 것도 당연했다.
“엘레노어, 괜찮아?”
“난 괜찮아. 눈으로 보려고 하면 늦어. 무조건 마나로 반응해라.”
“……충고 고맙다.”
다음 순서는 마스크 선수였다.
수인족을 주로 플레이하는 유저로, 전직 격투기 선수였던 프로 선수였다.
반응 속도, 반사신경, 격투 기술 역시 수준급인 선수.
그는 일반인이라고 생각한 드레젠이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단순히 게임만 잘 하는 일반인이 아니라 이거지?’
크르르-.
그가 한숨을 쉬었지만, 수인족 특성상 짙은 울림으로 나왔다.
어쨌든 저 폭주 기관차를 막아야만 했다.
대장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지만, 선수들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마스크 선수는 바싹 긴장하며 승부를 기다렸다.
[2라운드! 준비-!]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레젠도 자세를 잡았다.
웅웅 울리는 마나가 경기장을 팽팽하게 당겼다.
[시작-!]
콰아앙-!
두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마스크 선수는 최대한 마나를 이용해 드레젠을 쫓으려 했다.
덕분에 첫 공격은 막아낼 수 있었다.
엘레노어 선수보단 나은 대처였다.
‘뭐야, 이 무식한 대미지-!’
“제법인데?”
드레젠이 씨익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마나를 다루는 스킬 자체가 달랐다.
정규 스킬 말고도 평타 공격에 얼마든지 마나를 응용할 수 있었다.
프로의 실력은 그런 곳에서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평타가 엄청 묵직한데? 마나를 대체 어떻게 다루는 거야?’
심지어 드레젠은 한 손으로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평타로만.
마스크 선수는 죽을 맛이었다.
공격을 막을 때마다 손톱이 빠질 것처럼 저릿했다.
“이 정도로군.”
순수 피지컬로만 따지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마스크 선수였다.
그 역시 막기에 급급한 정도.
딱 평균적인 마스터 수준이었다.
‘이 정도도 괜찮아.’
드레젠은 평가를 마쳤다.
지켜보는 것은 끝.
이제 경기를 끝낼 일만 남았다.
콰지지직-!
두 번째 스킬이 발동됐다.
[파멸의 일격]
위에서 아래로 찍는 단순한 공격.
본래 진짜 위력은 단순한 움직임 속에 나오는 법.
마스크 선수도 궁극기로 응수했다.
아우우우우우-!
늑대인간의 포효!
[진홍빛 손톱]
마스크 선수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이반 스킬과 궁극기의 대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
체력 게이지가 모두 없어진 쪽은 마스크 선수였다.
[K.O!]
[드레젠 선수 승리!]
와아아아아아아-!
일방적인 경기였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간단하게 묘사한 것 같았지만, 액션 영화 뺨치게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의 연속이었으니까.
“다음.”
드레젠의 체력은 현재 70%.
영국 팀 선수들은 드레젠의 벽을 실감했다.
2연승!
그 당당한 모습을 보는 선수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2
일본을 비롯한 선수단이 표정을 굳혔다.
저 괴물을 무슨 수로 이기지?
선수들의 표정은 카메라에 잡힐 수 없을 정도였다.
툭, 누군가가 먹고 있던 물이 떨어졌다.
“저거, 이길 수 있을까?”
“괜찮아. 어차피 우리는 대장전은 버리기로 했잖아.”
“그렇지.”
결승전은 7세트였다.
맨 마지막 팀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에이스 결정전이었다.
거기까지 간다면, 승리는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태까지 가지 않도록 해야겠지.
사다나 마에는 조용히 입술을 씹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오히려 잘 됐어. 드레젠의 전략이나 패턴을 연구하자고.”
“……그게 말처럼 쉽겠느냐마는.”
“해내야 해. 그게 일본에서 개최한 이유니까.”
사다나 마에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도저히 이길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사나다, 잠깐 나 좀 보자.”
“네, 감독님.”
“결승까지만 어떻게든 올라가라. 그러면 한국팀은 자연스럽게 지게 될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감독은 사나다 마에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국팀이 자연스럽게 지게 될 거라니, 이게 무슨 얘긴가.
감독은 사나다 마에를 두고 말했다.
“캡슐의 동기화를 조절할 거다. 한국팀은 무슨 수를 써도 너희를 못 이겨.”
“……말도 안 돼요.”
“말이 안 돼? 너희는 영웅이 아니야.”
“…….”
사나다 마에는 입술을 깨물었다.
일본 사람들은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다.
정정당당히 승부해서 깔끔하게 결과에 승복하고 싶었다.
사나다 마에는 순수한 실력으로 드레젠과 겨루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너희는 죽어도 드레젠을 못 이긴다. 만약 저들이 최종 결정전까지 간다면? 드레젠을 감당할 수 있겠어?”
“저희는 순수한 실력으로도 한국 팀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대장전은 그저 대장전일 뿐이잖아요.”
“이왕이면 안전하게 가자는 거지.”
“……대장전은 포기 못 해요. 적어도 그와는 정정당당하게 붙게 해 주세요.”
감독은 사나다 마에의 눈을 바라봤다.
저런 상태의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와도 못 말렸다.
결국, 감독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전 한 경기쯤은 충분히 내줄 수 있었으니까.
“좋아. 대신 대장전뿐이다. 알겠어?”
“네. 알겠어요.”
“네 명예가 걸린 일이야.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선수가 가져갈 수도 있어.”
“상관없어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렸다.
감독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저런 고집은 제 집안사람을 똑 빼닮았다.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면, 사나다 마에는 울고 싶은 감정을 꾹 참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그녀가 드레젠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그릇이었다면, 이런 제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당하게 가서 드레젠을 꺾으라고 격려했겠지.
더러운 수를 썼다는 건, 확실하게 이길 카드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나다 마에는 그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후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볼을 두어 번 두들긴 그녀가 표정을 다잡았다.
그래, 더러운 수를 썼더라도 걸리지만 않으면 합법이다.
세상은 승자만 기억하는, 더러운 곳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자가 된다면, 그 후는 다른 이들이 알아서 해 주겠지.
‘일단 이기는 것만 생각하자. 이기는 것만. 적어도 나는 명예롭게 싸울 수 있으니까.’
누가 듣는다면 상당히 이기적인 마인드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타협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다.
복잡한 심정을 가지고, 그녀가 다시 대기실로 돌아갔다.
#3
드레젠의 올킬.
당연히 한국에서 시청하고 있던 자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프로 사이에서도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사뭇 대단해 보였기 때문.
영국팀은 상당히 강력한 팀이었음에도 불구, 드레젠 한 명을 잡아내지 못하며 대장전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괜찮아. 어차피 대장전은 한 번밖에 없으니까. 나머지 경기에서 이기면 돼.”
“좋아, 본때를 보여 주지!”
대장전에서 패배의 쓴맛을 본 영국팀은 전의를 가다듬었다.
팀전에서 이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었으니까.
프로라면,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자, 가서 마음껏 날뛰고 오세요.”
“물론이죠. 대장전을 버리고 저희를 이기려고 하겠죠?”
“맞습니다.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가서 한국이 어떤 나란지 보여주고 와야겠습니다.”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그래, 바로 이런 자세였다.
어떤 적이 와도 웃으며 상대할 수 있는 정신력.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도 했다.
“자! 그럼 날뛰고 오세요.”
드레젠이 선수들의 어깨를 강하게 두들겼다.
한국 선수들이 자신 있게 나섰다.
게임이라면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는 대한민국.
그 전설의 서막이 지금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