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2화
252화 – 수인의 탑
#1
흑마법사들은 갑작스럽게 날아온 충격에, 패닉에 빠졌다.
갑자기 검이 날아오더니, 자신들의 이동 요새인 어보미네이션에게 직격했다.
초월적인 내구도를 가지고 있던 시쳇더미가 움푹 패였다.
“당장 복구해!”
“쿨럭-! 저, 전투 불능이 된 놈들이…….”
“방어 마법을 둘러라!”
현재 파견 나와 있던 모든 흑마법사가 힘을 합쳐 만든 마법들이 쏟아졌다.
그들도 일단은 마법사.
흑마법 외에도 다양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최소 5서클 이상의 마법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역시 엘리트는 엘리트였으니.
“……단장님이 도착하셨나 보군요. 다들 힘내시죠.”
아그네스가 동료들을 독려했다.
그림자 기사단의 사기가 조금은 올라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오베론의 검이 마법의 중심을 꿰뚫었다.
다른 단원들 역시 그림자를 이용해 하나씩 마법을 지워 나갔다.
‘저기 오는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드레젠의 기운은 더욱 강해졌다.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감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것이 아군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피부가 저려왔다.
곧이어, 그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몰이 사냥인가. 그것도 좋지.”
그가 조용히 손을 뻗으며 웃으니, 어딘가에 박혀있던 검이 빨려 들어왔다.
어보미네이션의 육체를 꿰뚫었음에도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모습이었다.
흑마법사들도 그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몸을 떨었다.
‘저, 저걸 어떻게 이겨!’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절대 인간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흑마법사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망?
도망도 힘이 있어야 치는 법이다.
“도망은 없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것을 불태우고, 적의 정보를 전달한다.”
“알겠습니다.”
가장 강한 흑마법사를 따르는 자들 역시 죽음을 직감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이 세계 밖에 있는 무의 추종자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무의 추종자들은 베리드를 부리고 있어, 자신의 기억을 읽어볼 수 있을 터.
‘우리는 영생을 얻었다.’
그들은 죽어도 기계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 조건을 대가로 계약을 맺었으니, 계약은 반드시 이행되리라.
마나를 아낌없이 부어, 최고의 마법을 연성했다.
그건, 브락시아 자체에 꽤나 깊은 흉터를 낼 수 있는 마법이었다.
[떨어져라-!]
한 사람이 8서클 이상의 마법을 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마도사라고 불리는 자들 역시, 홀로 무리한 짓은 하지 않는다.
충분한 준비가 갖춰지고, 주변에 충분한 지원이 있을 때만 그런 마법을 사용했다.
그만큼 8서클 이상의 마법은 위험하고,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마법이, 지금 여기서 떨어졌다.
“이런-!”
“단장님!”
암궁, 아그네스는 황급히 드레젠을 찾았다.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흑마법사들의 마지막 발악이자, 어쩌면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 누군가의 지시였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 마법이 떨어진다면 이 주변이 싹 날아갈 것은 자명했다.
“아주 발악을 하는구만.”
고개를 위로 들어보니, 붉은 꼬리를 단 유성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8서클 마법 : 유성 낙하.
메테오라고도 하는 마법이었다.
그 대단했던 하이디엔도 꺼려했던 마법.
“저게 떨어지면, 우리는 몰라도 수인족은 터전을 잃을 거예요.”
“그러지 못하게 막아야지.”
드레젠이 검을 쥐고, 마나를 끌어모았다.
유성을 박살 내려면, 압도적인 힘이 필요했다.
잔해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고, 광범위한 공격이 필요했다.
그러기에 딱 좋은 기술이 있긴 했다.
“천마검법의 진수를,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됐군요.”
-캬!
-와 지린닼ㅋㅋㅋ
-진짜 연출 하나는 끝내주네;;
-이런 게임을 어떻게 접냐ㅜㅜ
-당장 브락시아 하러 갑니다.
천마검법의 후반부.
그야말로 파괴만을 위한 검법이며, 마교 특유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검법들이라고 했다.
천마는 홀로 무림 세계에 우뚝 섰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세력도 세력이지만, 홀로 모든 것을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몸에 상당히 부담이 가지만, 온전히 펼치기만 한다면 된다. 네가 지쳐도 네 주변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천마 본인이 그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힘이겠는가.
드레젠은 심호흡을 했다.
유성을 부수는 건, 강적을 상대하는 것과 또 다른 일이었다.
어마어마한 질량을 완벽하게 소멸시켜야 했기에 더 많은 힘을 요구했다.
‘일단 부순다.’
부수고, 잔해를 한 번 더 분해해야 했다.
일단 거대한 공격으로, 유성을 박살 내기로 했다.
파직-.
마력이 피어오르며 그의 출수를 알렸다.
콰득-!
힘차게 발을 굴러 작은 돌산 하나를 완전히 무너뜨리며 공중으로 치솟은 드레젠.
그가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천마검법 · 12장 · 천마강림
天魔劍法 · 十二章 · 天魔降臨
그가 검을 휘두르자, 거대한 악귀의 모습이 드러났다.
세상을 찢어발길 듯한 비명과 함께, 악귀의 형상을 한 마력의 덩어리가 유성을 향해 날아갔다.
흡사 드래곤 브레스를 보는 것처럼, 압도적인 크기와 빠르기였다.
엄청난 양의 마나를 흡수했기 때문에 펼칠 수 있는 천마강림.
악귀는 모든 것을 부수기 위해 돌진했고, 유성과 부딪혔다.
“모두, 눈 감아요!”
무시무시한 광경을 직감한 아그네스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이미 그림자 기사단은 그림자 안으로 대피한 후였다.
흑마법사들만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위를 쳐다보고 있을 뿐.
곧, 형형색색의 세상이 단색으로 바뀌었다.
“모, 모두 쉴드를 쳐라! 당장!”
콰아아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폭풍이었다.
물론 유성이 직격한 현장보다야 낫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폭풍이었다.
번쩍, 하는 빛과 함께 그 단단하던 유성이, 악귀에게 잡아먹히기 시작했다.
실명할 듯, 점멸하는 빛더미 속에서도 흑마법사들은 똑똑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우어어어어어-!]
거체를 가지고 있는 어보미네이션이 울부짖었다.
폭풍에 고스란히 노출된 몸뚱이가 조금씩 분해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유성은 곧, 갈래갈래 갈라졌다.
비가 될 듯 내리는 ‘미티어 샤워’에, 흑마법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거라면, 그래도 일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어림도 없었다.
작은 점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다시 한번 마나를 뿜어냈으니까.
이번엔 시퍼런 섬광이 주변을 잠식했다.
페베스 검술의 묘리가, 이곳에서 다시 위용을 드러냈다.
‘제7형, 원이다.’
일정 공간을 점해,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페베스 검술의 묘리.
이 형은 성인이 된 크리스가 자주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 공간 안으로 들어온 물질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격을 감당해야 했다.
드레젠은 압도적인 마나로 일대의 공간을 모두 뒤덮었고, 곧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괴물.”
“저자는, 분명 성좌일 것이다.”
“으으, 이, 이걸 어떻게 견디냐고!”
흑마법사들은 절망했다.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는 이들도 있었다.
곧이어 닥쳐올 절망과 죽음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으니까.
자살을 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만큼 드레젠이 보여 준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으으, 겁나 힘드네요.”
-대박ㅋㅋㅋㅋㅋ
-그의 퍼포먼스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방금 봄? 방금 봄? 방금 봄!?
-히히히히히힣 나는 언제 저렇게 하냨ㅋㅋㅋ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건 덤이었다.
드레젠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탈력감에, 온몸의 힘을 풀었다.
자유 낙하 하는 동안, 그는 주변에 있는 마나를 쭉쭉 흡수했다.
유성을 부르는 데 필요한 마나는 상당했다.
그걸 조종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느낌이지.’
이제는 거리낌 없이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눈치 보지 않고 마나를 흡수하는 것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그는 지상에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약간의 탈력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자, 이젠 또 뭘 할거지? 응-?”
그가 착지한 곳은 흑마법사들의 바로 앞이었다.
질린 듯, 그를 쳐다보고 있는 흑마법사들.
드레젠은 피식 웃으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유언은-?”
“…….”
흑마법사들이 눈을 감았다.
#2
그림자 기사단을 이끌고 온 수인족의 쉘터.
분위기는 퍽 가라앉아 있었다.
수인족은 괴이한 울음소리에 의해 점점 정신이 붕괴되어 가는 중이었다.
이 방법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역시 탑을 무너뜨리는 것밖엔 없었다.
“심각한데요.”
“얼른 탑으로 가자.”
이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그림자 기사단이 쉘터를 지나쳐 탑으로 향했다.
사기라.
피의 여왕으로 불리며, 협곡뿐만 아니라 브레이시스 제국에도 큰 위협이 되었던 존재.
그녀가 지나간 곳은, 오직 피와 살육만이 남았다고 전해지는 극악무도한 수인족의 여왕.
“들어가지.”
이 탑을 정복하고 나면, 성좌들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모든 종족들을 규합해야 했다.
자신의 옛 동료들이자, 지금은 배신자가 되어버린 네 명의 영웅.
그들이 깨어날 때까지,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탑에 들어섭니다.]
[탑 꼭대기에 있는 피의 여왕 – 사기라를 물리치세요.]
[탑은 세 번의 죽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 번 쓰러지게 되면, 탑이 영구히 닫힙니다.]
“그렇다고 하네요.”
-난이도 무엇;;
-장난 없네
-진짜 극악이넼ㅋㅋㅋ
-이거 하다가 대가리 깨지는 애들 엄청 나오겠는뎈ㅋㅋㅋ
드레젠이 탑에 들어서자마자, 중력 작용이 변했다.
수인족이 머물고 있는 탑은, 재미로만 따지자면 으뜸이었다.
어느새, 그들은 탑의 바닥이 아닌, 옆면을 딛고 서 있었다.
위로 올라가는 구조가 아닌, 앞으로 달려야 하는 곳이었다.
[어서 와라, 도전자들이여.]
매혹적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까마득하게 먼 공간.
그곳의 끝에서 사기라가 도전자를 감지한 것.
드레젠이 그림자 기사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죽지 말 것. 원하면 그림자에 들어가서 쉬어도 된다.”
“알겠습니다. 단장.”
탑은 그림자 기사단에게 있어, 최적의 장소였다.
저 앞에 있는 사기라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도전을 기다리겠다.]
“그럼, 지금부터 달려라.”
크르르르-!
두 눈이 시뻘건 수인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쯤 그림자로 뒤덮인, 죽지 못한 괴물들.
이곳은 광기의 탑처럼 원한이 그득한 몹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사기라의 정복 전쟁을 다시 한번 치르고 싶어 하는 이들.
그런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