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1화
251화 – 말 안 듣는 사람은 매가 약이다
#1
기묘한 소리였다.
슬론을 비롯한 모든 수인족의 귀가 쫑긋 새워졌다.
드레젠은 알 수 없는, 수인족 특유의 텔레파시였다.
그들은 모두 탑을 쳐다봤다.
“탑이라…… 우리도 함께 가면 안 되나?”
“수인족은 이곳에 남아 줬으면 하는데.”
“왜지?”
드레젠은 잠시 고민했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나.
사기라는 수인족들에게 영웅이며, 꼭 보고 싶은 조상이었다.
그녀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이유야 어찌 되었든 들어가려고 하겠지.
‘고민이군.’
흘끔, 앞을 바라보자 그들의 귀가 연신 쫑긋거렸다.
저것도 조금 이상했다.
“외부 세력이 이곳을 노리고 있을 수 있으니 땅의 주인은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지.”
“흠-.”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요즘 발작하는 전사들도 꽤 많아지지 않았는가.
냉정하게 말해서, 그들을 제어하는 역할은 꼭 필요했다.
슬론은 못마땅했지만,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겠네. 대신 나머지를 마저 처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으면 좋겠군.”
“좋아. 어렵지 않은 부탁이군.”
킁킁-.
냄새를 맡은 슬론이 고개를 돌렸다.
궁금했다.
드레젠이라는 자가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탑에 들어가서도 제 몫을 할 수 있는지.
또한, 그가 그림자 기사단을 이끌 수 있는 재목인지도.
“그대의 전투 스타일이 궁금하군.”
“보면 알 거야. 수인들처럼 호쾌하진 않겠지만, 형편없지도 않을 거니까-.”
[우어어어어어어어어-!]
저 멀리, 작은 바위산보다 거대한 시쳇더미가 보였다.
오거의 시체를 베이스로 만든 어보미네이션.
그림자 기사단들의 마나도 저곳에서 느껴졌다.
“보아하니, 저놈이 마지막 같군. 흑마법사들도 보이는데?”
“재밌겠어.”
슬론이 씩 웃었다.
그가 막 걸음을 옮기려 했을 때,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야, 너는 인간의 말을 믿으면 안 된다.]
[아이야, 탑으로 오라. 그곳에서 나, 사기라가 기다린다.]
‘젠장, 이건 무슨-.’
오랜 기간 굶주린 것도, 근래에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한데 이런 환청이 들리다니.
고개를 돌려보니, 부하들도 마찬가지인 듯 서로를 쳐다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물었다.
“바, 방금 들었어?”
“너도-?”
옆에 있던 드레젠이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대현자, 그놈 때문에 일이 조금 틀어졌다.
벌써 사기라가 움직일 줄이야.
피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사기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죽었는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기 전에, 슬론을 설득해야겠군.’
이제 돌려 말하는 건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 위해 그가 몸을 돌렸다.
“슬론, 잠시 이야기를 좀 하지. 전사들도 잘 듣는 게 좋을 거야.”
“무슨 일이지?”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 곧 주의를 드레젠에게 돌리는 슬론.
하지만 이전보다 경계심이 조금 올라간 느낌이었다.
전사들 역시 미묘하게 긴장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드레젠이 그들을 둘러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환청이 들릴 거다. 너희들이 탑에 가는 걸 막은 이유도 거기 있어. 저 안엔…… 망령이 된 사기라가 있다.”
“사기라? 피의 여왕 말인가?”
“그래. 죽은 그녀를 다시 꺼낸 마족이 수인족을 이용해 전쟁의 도구로 쓰려 하고 있지. 나와 그림자 기사단은 그걸 막으려 이곳에 온 거고.”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지?”
슬론의 경계심이 한층 짙어졌다.
눈빛 역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걸 본 드레젠이 더욱 강하게 말했다.
“이상 현상. 너도 알고 있을 거다. 그걸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저기에 있는 거지.”
“그래. 그런 게 있었지. 하지만 완벽하게 믿을 수는 없다. 진짜 그녀가 있다면, 내가 두 눈으로 보고 싶다.”
“가서 우리를 방해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지. 여기 남아 있어라.”
-아 고구마 가나요 ㅜㅜ
-여기서 고구마라닠ㅋㅋㅋㅋ
-선생님, 자고로 말 안 듣는 놈들한텐 매가 약이라 했습니다.
-말 안 들으면 맞아야짘ㅋㅋㅋ
슬론.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지금 드레젠에겐 엄청난 마나가 있었다.
곧 있으면 100만을 바라볼 정도.
이 정도면 전성기의 약 5분의 1 정도의 힘을 회복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가 무서웠던 건, 본신의 마나도 마나였지만 주변의 마나를 계속 흡수한다는 점이었으니.
“아니, 나도 가겠다. 만약 방해된다면 죽여도 좋다.”
“로드!”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었던 수인족 부하들이 발끈했다.
그들은 벌써 드레젠을 반쯤 적대하고 있었다.
드레젠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수인족이 저 탑에 들어가는 건, 수인족뿐 아니라 함께 들어간 동료들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었으니까.
“거듭 말하지만, 사기라의 언령은 수인족 한정으로 절대적이다. 탑 안으로 들어가면 그 효과는 더욱 뛰어날 테고.”
“…….”
슬론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수인족 전사 한 명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듣자 듣자 하니까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한낱 인간 따위가 감히 로드에게-!”
“사기라의 영향력이 대단하긴 한가 보군. 아까와는 전혀 딴판인데?”
드레젠이 이죽거리며 그들을 도발했다.
그래, 시청자들의 말처럼 말 안 듣는 강아지들은 때려서라도 교육해야 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건 꽤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인류, 더 나아가 수인족과 브락시아 전체에 평화를 위한 길이었다.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슬론도 슬슬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드레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검을 꺼내, 바닥에 푹 찍었다.
“벌써부터 휘둘리고 있는 꼴이라니, 정말 한심하군. 그래서야, 수인족을 이끌 수 있겠나?”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크르르-.
수인족들이 흉포한 본능을 드러냈다.
드레젠도 손에 오러를 실으며 격투기 자세를 취했다.
“덤벼, 똥개들.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해 주지.”
[이 건방진 인간 놈이-!]
수인족 하나가 달려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슬론의 친위대 중 한 명.
인간 중에 그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맹렬하게 손톱을 휘두르는 그 기세가 사뭇 대단했다.
하지만-.
[깨엥-!]
콰앙-!
온 것보다 더 빠르게 날아간 수인족.
그는 혓바닥을 축 내밀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묵직하게 날린 스트레이트가 안면에 적중했다.
그 장면을 본 것은, 슬론밖에 없었다.
‘강하다. 하지만-.’
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검사다.
당연히 검을 들었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그런 자가 검을 땅에 박아 넣었으니, 당연히 그들을 무시하는 처사겠지.
수인족은 육체 능력에 한해서는 자존심이 강했다.
슬론 역시 마찬가지.
[검을 뽑아라. 당장.]
“헛소리 말고 집으로 돌아가, 똥개야.”
[죽어도 난 책임지지 않는다!]
슬론이 직접 달려들었다.
실로 무시무시했다.
발을 박찼을 뿐인데 주변 지형이 와르르 무너졌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평가.
강함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었다.
“생각보다 별거 없는데?”
콰아아앙-!
손톱을 막고, 반격했다.
슬론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첫 번째 공격을 피하고 재차 반격하려 했을 때, 거대한 충격이 복부에 꽂혔다.
[크헉!]
‘빠르다, 이게 뭐야!?’
드레젠은 수도사들의 기술도 착실히 익혔다.
지금은 은거하고 있겠지만, 그들도 세상에 위협이 된다면 튀어나오겠지.
어쨌든, 그들이 수백 년 동안 쌓아온 격투술이 세상에 다시 나왔다.
그들은 한없이 약한 상태에서, 거대한 적과 맞서 싸워야 했다.
“흐읍-!”
콰아앙-!
정직한 정권 지르기.
단순한 경로로 뻗어온 정권 지르기였지만, 빠르고 강력했다.
슬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두 손을 단단하게 들어 막는 것뿐.
그 판단이, 결국 그의 패배로 직결되는 한 수였다.
[쿨럭-!]
“개 앓는 소리는 안 내네. 내가 말 했지. 얌전히 돌아가라고.”
‘이 무슨-!’
인간은 수인족보다 월등히 약한 신체 능력을 가졌다.
마나는 수인도 가지고 있으니, 결국 강함을 결정하는 건 마나 컨트롤과 그 마나를 뿜어낼 수 있는 육체였다.
슬론은 숨도 안 쉬어지는 고통 속에, 이를 악물었다.
“한 번 더 간다.”
드레젠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왔다.
황급히 발을 떼려 했지만, 슬론의 몸뚱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다시 선택한 방안은, 치명상을 입지 않기 위해 방비를 단단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콰아아아앙-!
빛살처럼 내질러진 주먹.
그 앞에 모여 있던 마나가 터져 나갔다.
“크학-!”
[로드-!]
수인화까지 풀릴 정도의 엄청난 충격.
까마득한 충격에, 그는 어떠한 반항도 하지 못했다.
시야가 흐려지는 충격 속에, 한 가지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에 박혔다.
‘격이 다르다.’
그래, 저 남자는 격이 달랐다.
“젠…… 장…….”
“로드!”
[이 새끼가-!]
콰앙-!
달려드는 족족 때려눕히는 드레젠.
한바탕 시원한 매타작이 이어졌다.
살아있는 성좌라고 불리는 드래곤과 비슷한 격에 올라선 드레젠이었다.
고작 수인족의 로드 정도로는, 그를 절대 막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전력이 약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일정 이상의 강자들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이 상승했다.
전쟁이 터질 때, 그들은 크고 작은 마찰을 겪었고, 그로 인해 성장했다.
이번에는 드레젠이 그런 경험들을 모두 막아낸 거나 다름없었다.
어찌 보면 손해라고 할 수 있는 상황.
“이제 말 잘 듣겠군요.”
-엌ㅋㅋㅋㅋ
-진짜 때렸엌ㅋㅋㅋㅋ
-사이다 좋구연
-말 잘 듣겠네 이젴ㅋㅋㅋ
서열 정리가 확실히 되었다.
갯과 동물은 서열이 한 번 정해지면, 끝까지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운반책을 위해 남겨둔 한 명만이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허공을 보고 있었다.
드레젠이 그를 향해 말했다.
“집 잘 지키고 있으라고. 알겠나?”
“후…… 알겠습니다. 실컷 얻어맞으니 정신이 좀 맑아졌습니다.”
“그러니 다행이네. 다 옮길 수 있겠지?”
“……네.”
역시 맞으니까 고분고분해진 강아지들.
드레젠은 고개를 돌려 탑을 바라봤다.
빨리 해결해야 했는데, 생각보다 더 늦어졌다.
일단 눈앞에 있는 거대한 시쳇더미부터 치워야겠지.
“어보미네이션부터 치우겠습니다.”
흑마법사들이 잔뜩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장소는, 역겹게도 어보미네이션 어깨 위였다.
그곳에서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아그네스를 비롯한 기사단과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제법 실력 있는 놈들인지, 팽팽하게 맞서는 게 보였다.
“빨리 끝내죠.”
그의 눈빛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땅에 박혀있던 검을 쑥 뽑은 뒤, 그대로 힘껏 던졌다.
콰아아아아아-!
공기를 찢어발기려 날아간 검이 굉음을 내며 흑마법사들이 있는 곳에 직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