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0화
250화 – 배신자의 최후
#1
콰지직-!
대현자는 미친 듯이 달려드는 드레젠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리 해도, 그는 결국 현자일 뿐, 전사가 아니었으니까.
자신을 도와주러 온 아군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대현자는 최후의 선택을 하기로 했다.
‘내 일은 끝났다. 잡혀서 정보를 부느니, 차라리-!’
그 안에 있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쩌적-!
그의 육체가 갈라지며 거대한 마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대현자를 잡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던 드레젠이 낌새를 알아챘다.
“자폭?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섬뜩하게 웃는 모습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엔 차라리 자신의 존재를 이 세상에서 지우는 것이 낫다.
용사를 타락시키는 것은 실패했지만, 이미 무의 추종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쟁의 승패가 어떻든, 브락시아가 멸망을 피하진 못할 것이다.
“난 다시 거대한 정신 안으로 들어간다.”
“그게 안 될 거라니까?”
콰드드득-!
신비한 힘이었다.
베리드에게서 받은 힘과는 질적으로 다른 힘.
드레젠은 스텔라의 힘을 끌어와, 대현자의 심장을 감쌌다.
그 막대한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꽁꽁 밀봉했다.
“뭐, 뭐냐 이건-!”
“이제 네 목숨은 우리의 것이다.”
“아니, 이, 이게 가능하다고!?”
“성좌들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거든.”
퍼억-!
드레젠이 시원스럽게 대현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마나가 잔뜩 실린 주먹을 직격으로 맞은 대현자의 눈이 돌아갔다.
생각보다 내구도는 없는 모양.
전투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커헉…… 너는…… 후회…….”
“넌 이제 곱게는 못 있을 거다. 알겠냐?”
후우-.
오랜만에 땀을 흘렸다.
주변의 마나가 불길하게 요동쳤다.
그가 힘을 너무 끌어다 쓴 대가였다.
찌릿찌릿할 정도로 강한 기운이 주변에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해당 장소를 바라봤다.
“……성좌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군.”
“이거, 너무 쉬운데?”
콰아아앙-!
굉음이 울릴 때마다 온몸을 관통하는 마나 파동이 몸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아득히 뛰어넘은, 초월적인 존재의 강림이었다.
드레젠 본인이 나설 필요도 없을 지경이었다.
“성좌들의 싸움이나 구경해보죠.”
그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없어진 것.
캠을 확인하자,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확인했다.
“다들 어디 가셨지?”
동시에, 엄청난 숫자의 시청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레빌’님이 1,000명 호스팅!]
[‘아나이’님이 5,483명 호스팅!]
[‘다영’님이 10,042명 호스팅!]
…….
…….
들어보지도 못한 스트리머들이 호스팅을 우르르 보내왔다.
진귀한 광경이었다.
-ㄷㅎ!
-ㄷㅎ!
-아니 선생님 방송사고 씨게 내시네!
-ㅋㅋㅋㅋ 돌아왔다구!
-오이오이, 드태식이! 오랜만이야!
반가움을 채팅으로 치는 시청자들.
그걸 보자, 들끓었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들은 이런 걸 노리고 있지 않을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걸 원한다면, 확실히 과거를 들먹이겠지.
‘어차피 이건 게임이잖아.’
심호흡을 해 보았다.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이곳은 진짜 현실이 아니었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저들의 수에 말려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쏟아질, 무수히 많은 전략과 수 싸움들.
그곳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때였다.
“이곳을 정리하고 성좌들을 만나보도록 하죠.”
날뛰는 꼴을 보아하니, 금방 끝날 것 같았다.
드레젠은 한 톨의 마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 신속하게 움직였다.
콰아아아아-!
계속해서 울리는 굉음과 기계들의 고통스러운 소리가 그가 빼앗을 마나를 흩어놓고 있었다.
“허공에 흩어져 있는 마나 보다는, 직접 흡수하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가서 싹 다 흡수해 버리겠습니다.”
-이제 진짜 전쟁인가!
-거의 엔딩일 듯
-대현자는 어떻게 할 겁니까?
-꼴 좋다 아주.
널브러져 있는 대현자.
그는 저기 있는 성좌들이 가져가, 심문하겠지.
영원히 죽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 고통받을 것이 분명했다.
드레젠은 뻣뻣하게 굳어버린 채 기절해 있는 대현자를 질질 끌고 갔다.
#2
“안녕?”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남자와 여자.
대한민국에서 본다면 연예인을 하고도 남을 정도의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생김새 역시 한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라, 멀티 플레이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드레젠이라고 모든 성좌를 만난 것은 아니었다.
“기을룡이라고 한다. 그냥 을룡이 형이라고 불러.”
“한지아입니다. 현의 명령을 받고 왔어요.”
“드레젠입니다.”
순간적으로 본명을 밝힐까 했지만, 이곳은 게임이었다.
굳이 현실과 엮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드레젠이라는 이름으로 말했다.
점점 자아가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현실과 게임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네가 파트너구나. 앞으로 한 100년 정도만 있으면 스텔라 말고는 이길 사람이 없겠는데?”
“맞아. 저 사람은 저희에게 넘겨 주시겠습니까?”
“네. 여기 있습니다.”
드레젠은 대현자를 가볍게 넘겼다.
그를 받아든 한지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엔, 반쯤 시체가 된 화신체가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적을 제압한 실력이라니.
새삼 감탄하게 만드는 광경이지 않은가.
“얘는 이제 평생 고문받겠지? 으으 불쌍하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드레젠이 입을 열었다.
한지아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드레젠은 궁금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멸망까지 과는 과정이 어땠는지.
“제가 떠나간 뒤, 브락시아는 어떻게 됐죠?”
“그건 여기서 말할 주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나중에 ‘함선’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그때 자세한 얘기를 해 드리죠.”
“모든 건, 계획된 겁니까?”
한지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젠은 허탈했다.
모든 일이 성좌들 손안에서 굴러가고 있었다니.
그간 자신이 했던 고생들이 생각나, 무어라 말하고 싶었다.
그가 입을 달싹이고 있자, 기을룡이 어깨동무를 해 왔다.
“걱정 마. 보상은 두둑이 해 줄 테니까. 안 그래도 마스터가 미안해하더라. 멋대로 이용한 것 같다고.”
“……그걸 아니 다행이네요.”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실제로 창조주는 그를 걱정했었다.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함선으로 들어가야겠지.
한지아가 마지막 말을 전했다.
“저희는 본대가 오면 다시 옵니다. 수인족의 일과 화신체만 맡아 주십시오, 나머지는 성좌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끝이 보였다.
하이디엔이, 그리고 살아남은 엘프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다.
기을룡은 저 멀리 솟아있는 탑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신체들이 많이 올 거야. 거기까지만 처리하면 네가 할 일은 끝. 그다음은 즐기면 되는 거지.”
“얼른 그 날이 왔으면 좋겠군요.”
사실 지구에서는 마나가 있어도 쓸모가 없었다.
항시 마나가 필요한 육체가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처럼 살았겠지.
지금도 그런 삶을 꿈꾸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간다. 뒷일을 부탁하지 수호자.”
“무운을 빌겠습니다.”
“정보는 어떻게 보내주실 겁니까?”
한지아가 균열 안으로 사라지며 말했다.
“전령이 갈 겁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수북이 쌓인 잔해가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거대한 정적이 주변을 내리눌렀다.
그림자 기사단은 잘 하고 있으려나?
수인들은?
그런 생각들이 밀려왔다.
“얼른 움직이겠습니다.”
-갑자기 보스전이라 정말 분위기가 그랬지
-이제 가즈아!
-탑 가나요?
-오늘은 대표님 안 오시나요?
현실에서 게임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드레젠은 웃으며 말했다.
“그림자 기사단과 탑을 공략하겠습니다. 흑마법사들을 잡았는지 확인해 보죠.”
자신이 대현자를 상대하고 있는 동안, 동료들이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오면서 아그네스에게 언질을 해 두었으니, 놓치는 일은 없을 거다.
저 멀리서 전투의 함성이 들렸다.
수인족들이 서로 협력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림자 기사단들은 알아서 할 테니, 시체를 처리하러 가겠습니다.”
황금색이 아닌, 검붉은 색의 시체 더미.
그걸 마무리하고, 탑으로 향할 것이다.
주변에 널려있는 마나를 모두 흡수한 후, 드레젠의 신형이 사라졌다.
오랜만에 충만한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 마나라면…….’
드래곤과도 싸울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니오베 같은 강자들과는 싸울 수 없겠지만, 이제 갓 성룡이 된 드래곤이라면 충분히 할 만한 것 같았다.
그는 기을룡, 한지아가 일부러 남겨둔 선물이겠지.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전투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으어어어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진격하는 어보미네이션.
빈틈을 노려, 한 곳만 계속 파는 수인족.
벌써 하나는 처리했고, 다른 하나를 따라서 온 것 같았다.
“잠깐 지켜볼까요?”
-아닠ㅋㅋ
-싸움 구경 꿀잼 ㅇㅈ
-꿀잼이지
-이건 못 참짘ㅋㅋ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라고 했던가.
드레젠은 슬론과 그 부하들의 전투력을 구경했다.
슬론의 전투 방식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마나를 온몸에 두르고 싸우는 무식한 방식.
‘무투파의 끝이로군.’
저 멀리 수도사들도 이렇게까지 싸우진 않을 거다.
체급 차이가 어마어마했지만, 오히려 수세에 몰리는 것은 어보미네이션 쪽이었다.
부하들이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고깃덩어리들이 터져 나갔다.
그렇게 계속 안쪽으로 파고들다, 핵이 보이면 슬론이 직접 나섰다.
“마나 컨트롤이 좋군요. 수인족은 본능에 기인한 전투를 선호합니다. 그들은 천부적인 무투가죠. 무투가를 지망하시는 분이 있다면 수인족에게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으
-무투가는 무서운걸 ㅜㅜ
-주먹 아플 듯
-저기서는 주먹 안 아프짘ㅋㅋ
슬론이 손톱을 세우고, 그대로 어보미네이션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그 자체가 송곳이 되어 핵을 관통하고 튀어나왔다.
털이 온통 피범벅으로 변하는 것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
그가 가볍게 착지하고, 몸을 털자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걸로 두 마리째로군.”
재가 되어 사라지는 어보미네이션을 바라보며, 슬론이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앞에 드레젠이 착지했다.
슬론은 순간 이를 드러낼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로 참았다.
“벌써 두 마린가?”
“그렇네. 그쪽은 벌써 볼일이 끝났나?”
“나름대로. 난 이제 탑을 올라갈 거다. 저쪽에 달갑지 않은 손님이 있으니까.”
슬론이 고개를 돌려 불길하게 생긴 탑을 바라봤다.
그가 멍하니 탑을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뇌리를 관통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야, 나에게로 오라.]
그것은, 무척이나 달콤한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