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9화
249화 – 성좌들의 분노
#1
전쟁.
그것은 정말 참혹한 나날들이었다.
브락시아 안에 있는 생명들이 살기 위해 발악했던 날.
희망은 오직 일곱 영웅과 용사뿐이었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으아아아아아아아-!”
용사의 갑작스러운 전이.
그건 모든 것의 끝을 예고한 것이었다.
브락시아는, 단 하나의 별을 잃었다.
그리고 그 별이, 지금 대현자의 앞에서 마왕이 되어 돌아왔다.
“우리가 얼마나 치욕스러웠는지 안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애초에 날 끌고 오지 말았어야지.”
콰아앙-!
대현자는 생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그는, 이제 완전히 화신체의 모습을 갖췄다.
격돌은 곧 천지를 울렸다.
아직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는데, 주변 지형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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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창은 이미 먹통이 된 지 오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편집자, 엘리스가 직접 조치에 나섰다.
그녀는 손톱을 깨물며 서둘러 매니저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엄청난 마나가 게임을 너머 채팅까지 방해하고 있었다.
서둘러 중계방으로 돌려야 할 상황이었다.
“빨리-.”
그녀의 손이 바빠졌다.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는데-.
매니저들에게 연락을 돌리니, 매니저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동시에 그다지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있는 스트리머들에게도 인원들을 호스팅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잠시 문제가 생겨 중계방으로 옮깁니다. 다른 스트리머들은 이미 사전에 연락이 되어 있던 스트리머 분들입니다.]
엘리스와 다른 매니저들이 공지를 돌렸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매니저들도 당황할 법했지만, 베테랑은 베테랑이었다.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잘 옮기고 방송을 이어갈 수 있었다.
‘용사님이 이 조치를 받아들이셔야 할 텐데.’
엘리스는 훗날 닥쳐올 용사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제발, 저 간악한 대현자의 말에 넘어가지 말기를.
‘로드. 이젠 진실을 전해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대현자.
저 간악한 자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였다.
하이디엔도 저 장면을 보고 있겠지.
그렇다면, 반드시 전쟁의 끝을 전해 줄 것이다.
“너 하나 때문에 네 명의 영혼을 바쳐야만 했다! 그리고 나서도 엘프들을 멀리 유배 보내야 했지!”
“아, 그래?”
뜨거웠던 머리가 조금씩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대현자.
그는 말로 사람을 조종하는 자였다.
연신 대상의 약점을 후벼 파, 결국은 빈틈을 만드는 자.
그는 전쟁에서도 비슷한 전술을 사용했다.
‘이미, 난 너를 알고 있다.’
“그들은 차디찬 시체가 되었지. 하지만 결국 그 끝은 파멸이었다! 내 꼴을 봐라! 강제로 영생을 살았고, 다음 작전을 위해 이곳에 강제로 파견되었지!”
“너에게는, 이 세계가 몇 번째 세계지?”
“셀 수도 없다.”
“그렇구나-?”
드레젠의 기세가 점점 거세졌다.
대현자는 내심 당황했다.
용사의 심정은 옛날에 파악해 둔바.
이미 거대한 데이터베이스 안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반응은 대체 뭘까?
‘생전, 용사는 배신과 명예롭지 못한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뭔가!’
대현자가 바라본 용사는 그야말로 용사, 그 자체였다.
그 누구보다 공정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용하기가 더 쉬웠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움직였으니까.
“마왕! 마왕이 된 건가-!”
“어디서 잘난 혓바닥을 놀리고 있어-!”
콰지직-!
마력이 대현자를 집어삼켰다.
베리드의 수복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처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 애초에 용사는 정면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무시무시한 능력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몸을 빼야겠군.’
지금 용사를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아직 본대가 오지 않았다.
그를 속여, 죽이는 것도 실패했다.
용사는 계속해서 강해질 거다.
그걸 막기 위해선, 화신체의 협공이 필요할 테지.
“배신자, 너는 이제 마왕이 되었구나! 용사 따위가 아니었어-!”
“…….”
드레젠은 이제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검을 휘두를 뿐.
지금 그는, 대현자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만 담았다.
여기서 놓치면 훗날 매우 귀찮아질 것이 뻔했으니까.
‘도망갈 틈을 주면 안 된다. 마나를 모으는 것도 사치야.’
이쪽이 준비하는 시간이 있다는 건, 저쪽도 달아날 시간이 있다는 것.
드레젠은 큰 초식을 사용하지 않고, 검의 묘리를 담아 휘둘렀다.
주변에 있는 마나가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네놈! 이 세상을 멸망시킬 생각이냐!”
“넌 오늘 여기서 죽어.”
섬뜩한 말에, 대현자는 입을 다물었다.
굳건한 신념을 가진 자를 말로 흔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을 써야지.
“설마, 내가 혼자 왔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파직-!
대현자가 드레젠을 밀어내고 균열을 불러냈다.
그의 역할은 대륙의 분열을 조정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선봉대.
적의 동태를 살피고, 언제든지 본대를 불러들일 수 있는 효시(嚆矢)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카드를 쓰는 건 아깝지만, 여기서 죽여 주마.”
“……역시 네가 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말이었군.”
“거짓? 아니지. 네가 배신한 것은 사실이고, 그 때문에 우리가 멸망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대현자라는 이름이 아깝군. 그걸 보고 있었던 게, 과연 베리드뿐일까?”
세월이 많이 지났다.
베리드가 그간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모른다.
화신체로 변한 네 영웅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꼬투리를 잡았군.]
파지직-!
드레젠의 곁에도 균열이 열렸다.
저쪽에 베리드, 마족이 있다면 이쪽엔 성좌들이 있다.
이젠 방관만 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 성좌들이.
“감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
서로의 균열이 확장되며, 무시무시한 군세가 튀어나왔다.
대현자는 서둘러 몸을 피하려 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이 어찌 성좌와-!”
“대현자, 네 최고의 실수가 뭔지 알아?”
콰득-!
드레젠이 빠르게 움직여 대현자의 촉수를 잡아챘다.
대현자의 반응도 빨랐다.
잡힌 촉수를 바로 버리고, 공간 너머로 달려들었다.
거기까지 읽은 드레젠은 이미 검을 내지른 후였다.
“난! 여기서 죽지 않는다!”
“그래, 넌 여기서 죽지 않아. 왜냐면? 내가 왔거든.”
콰아앙-!
드레젠의 앞에 등장한 그림자.
그가 드레젠의 검을 막아냈다.
덕분에 대현자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빨리 꺼져!”
“후, 알겠소. 전쟁의 시작이로군.”
“어딜 막아-!”
콰드드드드-!
극도로 분노한 드레젠이 마력을 휘감으며 천마검법의 초식을 전개했다.
갑자기 등장한 자가 그를 막으려 돌진했다.
“크윽-! 뭐 이런-!”
무식하게 강하다.
드레젠의 검을 받은 자의 느낌이었다.
분노한 드레젠의 검은 강력했다.
결국, 완전히 막지 못하고 튕겨 나간 의문의 인영.
그는 쫓아가려다, 섬뜩한 느낌에 황급히 몸을 틀었다.
“호오, 그걸 피해?”
“큭! 넌 뭐야!”
“브락시아는 오랜만이네. 흐흐.”
그건,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느껴지는 기운은 성좌, 그 이상.
심지어 저 앞에 있는 드레젠보다도 훨씬 강해 보였다.
“넌 뭐냐! 이 시대의 용사인가!”
“넌…… 전투에서 본 적이 없군. 기을룡이라고 한다. 한동안 잘 놀아 보자고.”
“진지하게 해라. 현의 명령에 실수는 없으니까.”
게이트에서 나온 또 한 명.
찰랑거리는 흑발을 늘어뜨리고,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고 있는 자였다.
중계방에 있는 자들이 그녀의 복장을 보고 난리가 났다.
-??
-저거 체육복 아님?
-아니 아디XX가 여기서 왜 나와?
-엌ㅋㅋㅋㅋㅋ 디자인 무엇ㅋㅋㅋ
-아 진짜 무냐고! 점심 나가서 먹을 것 같애!
후드 집업.
세 갈래의 줄무늬가 있는 트레이닝복.
뒤에는 한 자루의 검이 있었다.
그녀가 기지개를 켜며 검을 뽑았다.
대현자가 열어놓은 균열에선, 병력들이 천천히 쏟아지고 있었다.
“화신체 하나가 이곳에 왔다고 들었는데- 좀 시험해 보러 왔지.”
쾅-!
자신을 기을룡이라고 밝힌 자가 건틀릿을 부딪혔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마나의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대현자를 도와주려고 왔던 자, 비탄의 화신은 몸을 떨었다.
‘이건, 위험한데-.’
자신은 베리드를 이끄는 자들이었다.
그 베리드를 이끄는 자들이 무의 추종자들이었고.
이는, 무의 추종자 중에서도 간부급에 해당하는 자들이 보일 수 있는 전투력이었다.
고위 성좌가 직접 강림한 것.
화신체가 조용히 그들을 바라봤다.
‘성좌들에게 여유가 생겼나 보군. 이렇게 되면…… 위험한 거 아닌가.’
“여기는 한지아. 현, 을룡이와 도착했다. 그래…… 맡겨 둬.”
오랜 기다림이었다.
브락시아를 지키기 위해, 엘프들을 설득했다.
그들의 고향을 일부러 버려 가면서까지 시간을 벌었다.
지금, 그 모든 그림이 완성될 때였다.
“베리드를 축출한다.”
“오케이, 날뛰어 볼까?”
뚜둑-.
기을룡이 목을 한 번 꺾고 전투를 시작했다.
화신체가 이끄는 베리드의 군대는 끝도 없이 쏟아졌다.
만약, 이곳이 인간이 살고 있던 땅이었다면 재앙이 일어났겠지.
하지만 드레젠과 대현자가 적절하게 맛난 덕분에 그런 일은 없어졌다.
“현이 모든 걸 예상 한 건가?”
“그건 아니야. 아무리 그라도 미래 예지는 못 한다고. 어쨌든…… 일이 잘 풀린 것은 맞으니까.”
그들의 대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던 화신체가 슬금슬금 몸을 뺐다.
한 명만 있어도 버거운 상대였다.
두 명이면 단순히 1+1이 아니었다.
‘상위 종족을 불러와야 한다. 베리드만으로는 지금 이 둘을 이길 수 없어.’
콰아아아앙-!
저 뒤에서 대현자를 필사적으로 쫓는 드레젠이 보였다.
그래, 차라리 저놈을 인질로 잡는다면-.
“어디서 짱구 굴리는 소리가 막 난다?”
퍼어엉-!
화신체가 공중을 날았다.
자세를 제어할 수 있을 때까지, 무던히도 날아갔다.
겨우 정신을 차리니, 까마득한 자리까지 와 있었다.
[지원을 요청한다. 당장 전면전으로 돌입해야 해.]
그가 허공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전쟁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법.
수인족의 일을 처리하러 왔지만,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현, 저쪽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아. 용사가 일을 꽤 크게 벌렸는데?]
[괜찮아. 바로 군대를 보내지.]
기을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눈을 돌려, 드레젠과 대현자를 바라봤다.
“저것부터 해결해야겠군.”
떼어내려는 자와 철저하게 잡으려는 자.
두 존재의 전투를 마무리해줘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