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5화
245화 – 무기의 주인
#1
드레젠은 응접실에서 시청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체감상 20분 정도 지났을 것이다.
그는 하이디엔의 심정을 이해해 주었다.
용사 시절,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선, 일에 찌든 모습을 보이기 싫을 테지.
‘그나저나, 여기 하이디엔은 어떻게 할 생각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두 명의 하이디엔을 감당하는 건 이상했다.
언제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엘프가 들어왔다.
현실의 하이디엔과 똑같이 생겼기에, 기분이 묘했다.
“오, 오랜만이구나.”
“그래, 잘 지냈어?”
“잘? 잘 지내긴 했지. 솔직히…… 힘들어 죽을 것 같아.”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드레젠이 선선히 웃었다.
에일라의 말을 들어 보니, 평소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한다고.
누군가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는 건, 그만큼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로드의 자리가 힘들긴 하겠지. 안정화 되면, 그때는 여유로워 질 거야.”
“그 날을 기대하며 일하고 있다. 아 참, 장인들이 그대를 애타게 기다리더군. 그 물건이 완성된 모양이야.”
“그래? 재료는 남았어?”
“날붙이에 쓸 정도는 남겨 뒀다. 혹시 모른다면서.”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하이디엔을 보니, 작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엘프의 장인이라면, 불가능한 일에 도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니오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조금 도움을 줄 수도.
‘니오베가 이쪽 세계의 하이디엔을 보면 뭐라 그럴까?’
재미있는 일이었다.
하이디엔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물건을 보러 가자. 바람도 쐬고 싶으니.”
“좋아. 에스코트는 맡기라고.”
“그래.”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현실에서 보는 것 같은 미소였다.
-와 진짜 완전 예쁘네 ㅜㅜ
-약간 대표님이 코스프레 하신 느낌이다
-이 캐릭터는 무족건 공략해야됨 ㅜㅜ
-아……내가 아는 하이디엔은 만나면 창부터 들이대던데ㅜㅜ
다른 서버에서도 하이디엔의 분신들이 존재하겠지.
엘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공략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드레젠은 속으로 열심히 해 보라며, 응원했다.
“실물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황홀하더군.”
“그래? 기대되는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남은 재료는 널 위해서 쓰도록 해.”
“그게 정말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앞을 보며 당당히 걸었다.
협력해 준 것, 로드로써 우뚝 선 것에 대한 작은 선물이었다.
“고생한 값은 받아야지. 너도 맘고생 심했잖아.”
“……고맙다.”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대장간으로 향했다.
제2의 싱케루스는 점점 번화해지고 있었다.
엘프 전체가 협력하여 움직이는 덕분이었다.
와이번들의 체격도 많이 커지는 중이었다.
이곳에는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리라.
“곧 마족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야. 대비를 잘 해야 해.”
“곤란하군.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너무 완벽할 필요는 없어. 희생이 제일 적은 게 중요하니까.”
무거운 주제였지만, 분명히 논의해야 할 문제였다.
하이디엔의 표정이 축 처졌다.
잘 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겠지.
드레젠은 그녀에게 잘 하고 있다며 격려했다.
“최전방에는 항상 내가 선다. 엘프는 멀리서 보조만 잘 해주면 돼.”
“맡겨라. 받은 은혜는 꼭 갚을 테니까. 게다가-.”
새로 얻은 터전이었다.
결코, 다시 잃을 수는 없었다.
대륙 전체의 평화는 엘프뿐만 아니라 모든 종족이 이뤄내야 하는 목적이었다.
#2
엘프의 대장간.
그들의 생활 환경 중에, 유일하게 열기가 몰아치는 곳이었다.
엘프 장인들은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겐 유연하고도 탄탄한 근육이 오밀조밀 잡혀 있었다.
장인들이 드레젠과 엘프 로드를 보자 우르르 몰려나왔다.
“로드를 뵙습니다.”
“오늘은 귀한 손님이 왔으니, 물건을 보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은인. 이쪽으로-.”
장인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들의 기대감은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 되었다.
장인들이 힘을 합쳐 만든 역작.
그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진짜 가지고 싶다;;
-좋은 건 선생님이 쓰세요
-맞아, 팔기엔 아까울 거 같은데 ㅜㅜ
-일단 보고 결정해야죠
-쓰는 거에 한 표
시청자들의 의견도 반으로 갈렸다.
좋은 건 드레젠이 써야 한다는 것과 차라리 파는 것이 낫다는 의견.
지금 드레젠이 가지고 있는 무기도 상당히 강력한 옵션을 자랑하니, 두고 볼 일이었다.
드레젠은 무기에 구애받지 않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장비를 안 쓸 이유도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직접 열어 보시지요.”
단단하고 거대한 목함이 등장했다.
내려놓는 소리가 제법 묵직했다.
얼마나 잘 보관했는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장인들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관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대검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전투하시는 걸 보니, 힘과 기술을 잘 섞어 쓰시더군요. 그래서 손잡이도 제법 깁니다.”
“좋네요.”
손잡이가 길면 여러모로 유리한 면이 있었다.
검은 기본적으로 검신이 길고, 손잡이(검병)가 짧다.
힐트에 중심을 맞추기 위해선, 검신이 얇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검신과, 그에 맞는 검병이 특징입니다.”
달칵- 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드레젠 본인이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중으로 보완이 되어 있어, 두꺼운 천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감추고 있었다.
디테일한 모습을 보고 싶어, 천을 거둬냈다.
“오…… 진짜 멋있는데요.”
[천리송아모(千里送鵝毛)]
[엘프들은 자신들의 제주가 보잘것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정성은 진짜다.]
[공격력 + 160]
[특수 기술 : 아마 브레이크 사용 가능]
[아머 브레이크 : 검신을 폭발시켜 공격한다. 공격력은 검의 공격력의 500% + 마나를 넣은 값이다.]
[아머 브레이크를 사용 후 10분 후에 검이 재생된다. 아머 브레이크를 사용하면 숨겨져 있던 검신이 드러난다.]
“……호오.”
눈티아가 가지고 있던 금속이 검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족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금속이, 그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낼 준비를 마쳤다.
거대한 검신.
힐트는 따로 없었고, 직선으로 길게 뻗은 손잡이가 있었다.
양옆으로 마나를 분출하는 구멍이 있어, 언뜻 보기엔 SF에서 나올 법한 비주얼이었다.
“멋지군요.”
“특수한 금속이더군요. 떼어 놔도 중심으로 모여드는 성질이 있어, 그걸 활용할 기술을 고안해 봤습니다.”
기가 막힌 기술이었다.
무협지에서나 나올 법한 기술이지만, 어떻게든 구현했다는 것이 대단했다.
그리고, 그들은 작은 상자를 더 가져왔다.
“이건 남은 재료입니다만, 어떻게 할 건지 여쭤보고 처리하겠습니다. 결정해 주시지요.”
드레젠은 하이디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생각해 뒀던 일이었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항상 고생하고 있는 로드에게 원하는 걸 만들어 주시죠. 금속을 실처럼 뽑을 수 있다면, 이너 아머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오, 일리가 있습니다. 어지간한 오러로도 뚫리지 않으니, 가치가 있겠군요.”
“그, 그런 망측한 것을 만든다고!?”
하이디엔의 귓가가 벌겋게 변했다.
기껏해야 무기를 만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속옷을 만든다니 적잖이 놀란 것.
드레젠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의도는 전혀 불순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안전을 고려하면 꼭 만드는 게 좋아. 불의의 기습이란 건, 한 번 막으면 의미가 없어지니까.”
“……저, 정말 그걸 만들라고?”
“그래. 장인분들, 할 수 있겠습니까?”
장인들의 눈이 빛났다.
이건 시험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여기서 물러난다면, 엘프 장인이라는 이름이 아까웠다.
장인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이건 종족을 막론하고 통하는 신념이었다.
“로드, 이쪽으로 오시지요. 치수를 재야 합니다.”
“……진심이야? 진짜 이너 아머를 만들라고?”
“어, 자나 깨나 입고 다녀.”
드레젠의 단호한 눈빛을 본 하이디엔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겉옷을 벗고, 장인들과 함께 몸의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최고급 금속으로 만든 이너 아머.
불의의 기습으로부터 한 번 정도는 버텨 줄 것이다.
‘눈먼 공격이라도 맞으면 아프거든.’
전장에서 진짜 조심해야 할 건, 맞상대하는 상대가 아니라 뒤, 옆, 혹은 사각에서 날아오는 공격이었다.
정신없이 적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옆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제아무리 고수라도 손이 꼬이기 마련이니까.
물론 드레젠이나 다른 마스터들은 그런 제약에서 다소 자유롭지만, 그래도 체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었다.
“다 되었습니다. 그럼 저희는 제작에 착수하겠습니다. 새로운 도전이라, 아주 흥미롭군요.”
“고생하세요. 항상 고맙습니다.”
하이디엔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로드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예우였다.
장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칭찬을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그들은 싱글벙글, 미소를 띠며 작업을 하러 사라졌다.
“무기를 시험해 보러 갈 거냐?”
“한 번 해봐야겠지.”
-가지고싶어가지고싶어가지고싶어!
-공격력 기준은 최곤데, 다른 옵션이 좀 딸리는 듯
-역시 성좌가 만들어 준 무기 클라스
-저 정도면 경매에 내놔도 될 듯!
시청자들의 의견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지금 드레젠이 가지고 있는 검보다 특출나지 않다는 것이 이유.
아머 브레이크라는 특수기가 있긴 하지만, 드레젠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래도 시연은 보여 줘야 하니, 드레젠은 엘프 전사들이 훈련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로드를 뵙습니다.”
“훈련 중에 미안한데, 잠시 자리를 쓸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마침 휴식 시간이니, 비켜드리겠습니다.”
하이디엔은 한쪽으로 인원들을 모았다.
드레젠이 검을 한 번 휘둘러보며, 중앙으로 나섰다.
무게 중심이 잘 잡혀있는, 정말 잘 만들어진 검이었다.
누가 쓰더라도 금방 적응할 정도로 대단한 무기.
감히 역작이라고 불릴 검이었다.
“특수 기술을 써보겠습니다.”
-가즈아!
-얼른 보여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보여 주세요!
-ㄲㄲㄲ
드레젠이 검을 한 손으로 잡았다.
마나를 주입하며, 시동어를 읊조리자, 꽤 감탄할 만한 결과가 나타났다.
콰아아아아아-!
클레이모어가 터진 것처럼, 전방이 그대로 폐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드러난 검신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저 검의 주인은, 꼭 내가 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