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4화
244화 – 드디어 완성된 것
#1
한 번의 연습을 마치고, 프로팀과 해산했다.
모든 사람이 방송을 볼 수 있게 한 것은, 그의 노림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의 연습은 베일에 싸여있는 것이 기본.
전략의 노출은,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왜 있지 않은가.
위대한 게임에서 ‘마주작’이라고 불렸던 그 사례도 있었고-.
“2부 방송은 스토리를 진행하겠습니다. 지금쯤 성에 가면 완성 되어 있을 겁니다.”
엘프들의 장점은 섬세하게 작업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그만큼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홀로 작업을 했을 때의 얘기.
드레젠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 장인들이 모두 달라붙었으니, 지금쯤이면 검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는 선택해야 했다.
현존 최강의 무기가 될지도 모르는 이 무기를 팔 것인지, 자신이 쓸 것인지.
‘아니, 무기는 생각보다 많은가?’
일단 베드모아젤이 만들어 준 검도 끝까지 쓸 만했다.
무엇보다 손에 익어, 무기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예비용으로 하나 정도는 챙겨두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그게 엘프들의 무기일 필요는 없었다.
-경매!
-그 좋은 걸 왜 팔어 ㅜㅜ
-ㅋㅋㅋㅋㅋㅋㅋㅋ선생님한텐 좋은 게 아닐 텐데?
-그런가?
-예로부터 드래곤은 최고의 대장장이랬음
-그거 ㅇㅈ
드레젠은 채팅창을 바라봤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무기일 수도 있지만, 본인에게는 아니었다.
역작은, 그 쓰임새에 따라 가치가 정해진다.
드레젠은 지금 탄생할 역작의 주인을 찾아 주기로 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가 회백색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2
“이제 가는가?”
“그래야지. 나도 성을 돌보긴 해야 하니까.”
-돌본 적이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가면 맨날 바뀌어 있어서 구분도 못 할 듯
-사실 거 뭐야 이름도 까먹었네. 집사가 성주 아님?
-그거 킹정이지.
-하긴 너무 안 나왔엌ㅋㅋ
드워프들의 도시를 떠나며,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시청자들의 말이 맞았다.
사실 성에 있는 자들이 진짜 주인이지.
이솔데, 쿨레드, 아이젠하트, 샤페론 같은 자들.
그들이 진짜 성을 이끌어가는 주역이었다.
“저 혼자서는 그 큰 성을 커버 못 하죠. 싸우는 거라면 모를까.”
이제 슬슬 수인족에 대한 정보도 모였을 것이다.
그림자 기사단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
그들이 어떤 정보를 물어 왔을까?
무의 추종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빠른 진행으로 성까지 가겠습니다. 와이렉스가 다시 등장해야겠네요.”
-택시좌
-세상에서 제일 빠른 택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초반엔 이런 이미지 아니었잖아ㅜㅜ
어쩔 수 없지.
와이렉스가 강력한 것은 맞지만, 지금 전황에서 눈에 띄게 활약하기엔 또 애매했으니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와이번은 베리드가 가지지 못한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엘프들과의 협력을 끌어낸다면, 분명 큰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리드가 브락시아를 제대로 이기기 위해선,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었다.
“마족들을 때려 부수기 위한, 마지막 준비입니다. 어서 가시죠.”
보통 한 가지 게임, 그것도 싱글 플레이 게임을 한 달 이상 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매일 퀘스트만 빠르게 밀어도 이 정도.
서브 퀘스트나 모험, 유적 탐험, 그밖에 다양한 즐길 거리까지 있는 세이브 더 브락시아는 확실한 볼륨을 자랑했다.
‘내가 엔딩을 보고 나면, 진짜 앤드 콘텐츠가 나오겠지.’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
지금 브락시아는 그걸 구축하기 위해 온갖 연구를 하고 있단다.
그러니까, 자신이 더욱 힘을 내야겠지.
베리드의 본대의 대장은, 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다시 건너가야겠어.’
다시 신대륙으로 건너갈 때가 되었다.
그곳에서, 결전의 준비를 마친다.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린 그가, 마지막 준비를 위해 성으로 향했다.
#3
하시스 성.
성주가 없는 성임에도,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제일 처음 드레젠이 성주로 취임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성장한 부지.
이제는 성이 아니라 작은 도시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커졌다.
마탑에서 거래를 위해 마법사들이 들락거렸고, 골렘 파일럿들이 훈련을 위해 격납고에서 동조율을 올렸다.
“이야- 이거…….”
와이렉스를 주차시켜두고 성주실에 올라간 드레젠은, 작게 감탄했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여기 하시스 성 맞음?
-성주가 없는데 성이 더 잘 커진다;;
-뭐야 이게 무서워;;
-앜ㅋㅋㅋㅋㅋ조만간 성주 자리 뺏길듯ㅋㅋㅋ
드레젠이나 시청자나 반응이 비슷했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도시급으로 성장한 성.
이제는 이웃 영지까지 위협할 정도로 거대해진 백작의 성이었다.
베스티안 백작 역시 자주 들렀고, 그의 아들도 성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뭐, 제가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요.”
-ㅋㅋㅋㅋ
-맞음
-사실 이런게 근무하긴 편하지 ㅇㅇ
-사장 없는 사무실 좋다;;
-이상적인 사장님이었네 우리 선생님ㅋㅋㅋ
직장을 오가는 현대인들은 드레젠을 진심으로 칭찬했다.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에 떠도는 직장 괴담은, 사실 진짜인 것이 훨씬 많았다.
당사자가 그냥 쉬쉬하고 잊어버려, 세상에 나오지 못 하는 일도 허다했다.
“여러분은 저같이 좋은 상사를 만나길 바라겠습니다.”
이따금 이어지는 광역 도발.
시청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겨우 잠재우곤, 그는 엘프들이 기거하고 있는 숲으로 향했다.
숲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니오베가 깨어난 것도 있겠지만, 엘프들의 마나가 숲을 바꿔놓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조만간 성역으로 지정될지도 모르겠다.
“인간들이 흔히 부르는 성역이라는 곳이 있는데, 조만간 이곳도 그렇게 지정될 것 같네요.”
그가 탐색을 사용하여 시야를 반전시켰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시청자들을 반겨 주었다.
나무 하나, 하나에서 푸르게 뿜어져 나오는 마나.
반딧불처럼 은은하게 뿌려지는 마나는, 마치 숲 전체에 디퓨저를 뿌려놓은 듯, 은은한 향기를 만들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자, 엘프들의 진정한 힘이었다.
“이 힘은, 오직 엘프들만이 쓸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나는 식물들과 공감할 수 있거든요.”
이 숲은 주변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엘프들이 몬스터를 거의 걱정하지 않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었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가꿔주는 자에게 대들 강아지는 없었으니까.
여러모로 대단한 종족임에는 틀림없었다.
“정지! 신원을 밝혀라!”
“난데, 물건을 받으러 왔어.”
젊은 엘프가 드레젠을 바라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엘프의 기감이라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을 텐데도, 신원 확인은 확실하게 하는 모양.
아니면 단순히 졸았거나.
어쨌든, 엘프는 환하게 웃으며 드레젠을 맞이해 주었다.
“은인! 오랜만입니다! 로드께서 왜 안 오시냐고-.”
“하이디엔이? 얼른 가야지. 로드께서 기다리시는데.”
“안내인을 부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옆에 있는 파트너에게 눈짓을 한 다음, 그녀는 쏜살같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제 혼자가 된 신참 엘프는 벌벌 떨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드레젠.
말로만 들었던 자의 실물을 실제로 목격할 줄이야.
참사 당시, 그는 아직 전사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멀찍이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다였는데…….
“은인! 오랜만입니다!”
드레젠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에일라.
엘프의 총사령관이자, 와이번 부대를 이끄는 장군이기도 한 여인이었다.
마침 훈련을 마치고 순찰을 돌던 중, 경비와 마주친 것.
그녀는 드레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에일라. 오랜만입니다.”
“이런 영광이, 아- 이 모습은 조금 양해를…….”
“군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은 훈련하고 난 뒤의 땀 흘리는 모습이죠. 괜찮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엘프치고는 드물게 단발인 에일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시청자들이 ‘역시 연애는 인터넷을 배워야 제맛’이라며 떠들어댈 정도로 살살 녹는 멘트였다.
에일라는 헛기침을 하며 애써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에게 용건을 물었다.
“이곳엔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로드 얼굴도 보고, 슬슬 물건이 완성될 것 같아서 왔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장인들이 시끄럽긴 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탐이 나는 물건이라…….”
에일라가 욕망을 드러냈다.
그녀 역시 마스터급 인물.
인간까지 합해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었다.
드레젠은 곰곰이 생각했다.
과연 누굴 주는 것이 맞을까?
‘이왕이면 프로에게 주고 싶은데.’
NPC에게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웬만하면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게다가 NPC가 불의의 사고로 죽기라도 한다면, 애써 만든 역작이 적의 손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
플레이어의 인벤토리 안에서 돌고 도는 것이, 이 무기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마음에 들면 내가 가져도 되고.’
“아, 그리고 로드께서 요즘 많이 예민하십니다. 많이…… 심심하신가 봅니다.”
“도시를 재정비하느라 바쁠 겁니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이상한 일이죠. 그래도 로드라고, 묵묵히 할 일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네요.”
무언가를 결정하고, 말에 무게가 있는 위치.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드레젠은 알고 있었다.
에일라도 마찬가지.
하이디엔은 그들보다 조금 더 권한이 많았고, 조금 더 짊어진 것이 많았으니, 더 힘을 수밖에.
로드가 기거하고 있는 궁 앞에 도착한 두 사람.
에일라가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고생했어요. 고맙습니다.”
에일라에게 한 번 웃어준 뒤, 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이디엔을 만나기 위해서 꽤 많은 절차를 거쳐야 했다.
무기를 놓고, 신원을 밝히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로드.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그 시각, 하이디엔은 서류 더미에 파묻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업무량.
자신의 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하셨던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이 있다니?
“예. 드레젠 님이 오셨습니다.”
“……당장 들어오라고 해.”
순간, 그녀의 눈이 빛났다.
생기 없이 푸석푸석한 피부가 확 밝아진 느낌이었다.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미 했던 말을 번복했다.
“아니, 아니다. 응접실로 모셔라. 내가 곧 그리로 갈 테니.”
“알겠습니다.”
그녀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걸렸다.